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기저귀를 갈기 위해 수유실에 들른 적이 있다. 휴일이라 수유실에 아이와 엄마들로 북적북적했는데, 너무도 요란하게 자신의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는 엄마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자연스레 엄마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다소 오글거리는 혀 짧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에게 먼저 시선이 갔는데, 순간 너무 놀라 움찔 했을 정도로 아이의 얼굴이 평범하지 않았다. 아직 돌도 채 지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기였는데, 얼굴이 단순히 못생겼다고 표현하기도 뭔가 모자랄 만큼 특이했던 것이다. 웬만하면 아기들은 다 예뻐 보이게 마련인데 내가 그렇게 당황했을 정도면 어느 정도 아마 대충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으니, 잠시나마 아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한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역시 모성애란 이런 거 아니겠는가. 사실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말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두꺼비 같아 보여도 내 눈에는 토끼 같은 것이 자신의 자식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정말 이상한 부모를 만났다. 아이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 만으로 아버지는 딸을 외면하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린다. 대체 이 아이, 이 가족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는 못생겼다. 진짜로 못생겼다.

그렇다고 불구는 아니어서 남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다 붙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락없이 어딘가는 기준치보다 조금 더 짧거나 길다.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린아이처럼 예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못생긴 여자>에 등장하는 레베카는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의 외면과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넘어서 험담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한 미남에, 어머니 또한 한때 상당한 미인이었다니 주변에서 이해가 안 갈만도 하고 말이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낳고 처음 대면한 순간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게 슬프다. 엄마는 '그저 자신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를, 자신이 만들어낸 찌그러진 머리와 잔인한 얼굴 윤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를 안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젖을 먹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건넬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추악하고 끔찍하게 생겼더라고 하더라도, 세상 모든 엄마에게 자신의 아기는 천사처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에 묘사된 상황 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레베카에게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그려져 막막하기만 했다. 레베카의 부모는 아이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아이를 집에서만 지내도록 한다. 아빠와 이란성 쌍둥이인 에르미니아 고모와 두 살 때부터 그녀를 돌보게 된 보모 마달레나가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엄마는 집에 있었지만 거의 그녀에게 말하지도, 챙겨주지도 않았고,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빠는 늦게나 집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무지무지하게 못생겼다는 사실로 얼룩진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태어날 때부터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할 줄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못생긴 여자에게 삶이란 세상의 눈썹 끝으로 밀려나 언제나 뒤꿈치를 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레베카의 체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외면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극중에서뿐만 아니라 2016년을 살고 있는 우리네 현실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우울하고, 어찌 보면 결말이 뻔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이상하게 '아름답다'. 바로 주인공이 '못생긴 외모'로 고통 받고 있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 때문일 수도, 주인공이 치는 피아노 선율처럼 리듬이 있는 구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에 깔려 있는 '담담한 희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희망이란 것이 못생긴 여자도 외면보다 내면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 결국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뻔한 해피 엔딩이 아니라, 외모로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과 사람들에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피어나는 것이라 더 은밀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시작부터 우울하고 참담한 슬픔으로 시작해, 각종 편견과 불행한 고통으로 점철된 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전혀 쓸쓸하거나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하고 싶지 않다.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또 그가 선한 존재인지 전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따금 지독히도 산만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신인 작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탈로 칼비노상의 2010년 수상작이자, 이탈리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의 2011년 최종후보작이다. 그러니까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라는 작가는 자신의 데뷔작을 이렇게 황홀하게 그려낸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프레드 바르가스의 <트라이던트>가 문득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 외모지상주의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멋진 캐릭터를 만났었는데, 바로 여형사 르탕쿠르이다. 그녀는 키 169센티미터, 몸무게가 무려 110킬로그램이나 되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그렸을 법한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보릿자루만도 못한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내 그 존재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무시 당한다고 불쾌해하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을 서운해하기는커녕, 그것을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초연함을 가장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전혀 들키지 않고 상대방을 샅샅이 관찰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전략 덕분에 이제까지 수사를 진행할 때 상당한 수확을 거두어 왔다고 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불가시성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그 능력이야말로 외모를 넘어서서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녀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외모가 제일 먼저 눈에 띄겠지만,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녀는 어디에서든 적응력이 뛰어나며, 지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와 행정 처리, 사격 솜씨, 몸싸움까지 우수한 강력계 형사이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넘어 자신 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구축한 점이 매우 놀라웠는데,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주인공 역시 색깔은 다르지만 그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단점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사실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고 힘이며, 누군 가에게는 생존과 직결이 될 정도로 절대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상체중의 사람도 체중 강박증에 시달리게 되는 외모강박시대, 외모불안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외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TV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중시 현상 등 외모불안을 조장하는 것들은 이미 사방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살아가야만 한다. 이 땅의 모든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들에게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의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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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이 된 것을 보고 들어왔습니다. 역시 당선작이 될 만한 글입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이건 진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할 수 없이 가지고 세상으로 나온 것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만큼 서러운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데로 여자들에게 정말 혹독한 것 같아요. 정말 외모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외모 때문에 차별 받아서 생긴 장점은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는 성품이 조금이나마 갖추어진 것 같아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았을 때 그 모멸감을 누구에게는 주고 싶지 않아요. 마치 내가 칼에 찔려서 그 아픔을 아는데 누군가를 내가 찌른다 생각하면 소름끼쳐요.

이 책 맘에 드네요 ㅎ

피오나 2016-06-09 15:42   좋아요 0 | URL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모 지상주의는 생각보다 너무 주위에 만연해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기도 해서 더 무서운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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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뒤 풍경
케이트 앳킨슨 (지은이), 이정미 (옮긴이) | 현대문학 | 2016년 3월

 

비밀과 복선, 반전으로 이루어진 탄탄한 플롯과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는 아주 매혹적이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은 ‘주(footnote)’를 소설에 도입한 독창적인 기법이다. 현재의 삶에서 예고치 않은 순간에 끼어드는 ‘주’에는 루비 윗대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이 담겨 있고, 그 사건들은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서술 형식은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투명하게 형상화하고, 보다 밀도 높은 감동을 전해준다

 

 

 

 

 


편혜영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

 

 

 

 

 

 

 

에논
폴 하딩 (지은이), 민은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16년 3월

 

어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뒤, 한 남자가 끝도 없는 나락 속으로 빠져든다는 게 이 소설의, 거의 모든 내용이다. 별 한 개를 준비하고 싶은가? 하긴 고통을 통해 이 세상은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중년 남자가 나오는, 삼백오십 쪽에 달하는 소설이라면 참신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면 어떨까? 이 절절한 고통과 먹먹한 환상 앞에서 별 하나를 던질 마음이 들겠는가?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 때문에 그저, 무조건 궁금해진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지은이), 권수연 (옮긴이) | 문학동네 | 2016년 3월

 

소설은 작가 장 다라간이 사소해 보이는 한 사건으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의 공간을 집요하게 더듬어가며 자신의 기억과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려 애쓰지만, 서로 맞춰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과 메워지지 않는 공백에 가로 막힌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은이), 조구호 (옮긴이) | 문학동네 | 2016년 3월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으로,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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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던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9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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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건은 이렇다. 스물 두 살의 여자가 자정 무렵 살해된다. 범인은 육중한 것으로 여자의 두개골을 내려친 다음 복부를 칼로 세 번 찌른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 현장 근처에서 술에 곯아떨어져 잠들어 있던 노숙자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는 범행에 대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한다. 그다지 특별해 보일 것 없어 보이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담스베르그 반장을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된다.

"난 사실을 믿지. 그가 돌아왔고, 나에겐 다시 기회가 찾아왔어. 더구나 난 그 조짐을 미리 느꼈다네."

"조짐이라뇨, 무슨 조짐이오?"

"경고 말일세. 술집 여종원원, 포스터, 일렬로 꽂혀 있는 압핀."

당글라르도 당황한 나머지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느님 맙소사, 조짐이라뇨? 서장님, 이젠 신비주의자가 되셨나요? 도대체 무슨 허끼배를 따라다니시는 겁니까? 귀신? 유령? 그 귀신은 어디에 산답디까? 서장님 머릿속에 둥지를 틀었나요?"

 

평범해보이는 사건으로부터 특별한 것을 이끌어내어 우리의 주인공과 연결해내는 방식에서 작가만의 개성이 가장 드러나게 마련인데, 프레드 바르가스의 방식은 정말 이상하기 그지 없다. 우리는 우선 강력계 형사 스물네 명을 추위에 떨게 만든 보일러 고장에 대해 알아야 하며, 아담스베르그 반장을 비롯해 주요 인물들이 곧 퀘벡에 가서 DNA 연수를 받게 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비행 공포증이 있는 당글라르는 그들이 타게 될 비행기가 대서양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연수를 가지 않으려 하는 중이고, 일년 전 자취를 감춘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아담스베르그의 여자 카미유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된다. 게다가 아담스베르그 반장이 문제의 이 사건과 맞닥뜨리는 방식은 더욱 기묘한데,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등을 내려친 폭풍 같은 충격으로 전조를 만들고 있다. 그는 당글라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길을 걷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그것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특별한 사건과 제대로 연결되기 까지 우리는 오십여 페이지를 넘게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세발작살 살인 사건과 아담스베르그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지만, 거기서 이야기는 곧바로 이들의 퀘백 연수로 연결된다. 이어지는 백여 페이지 동안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거의 상관없어 보이는 퀘백에서의 일상이 길게 늘어지더니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하고 나서야, 그러니까 이백오십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사건은 급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전혀 연결될 것 없어 보이던 퀘백 에서의 그것에서부터 비롯되어 아담스베르그 서장의 발목을 잡고 그를 과거로부터 옭아매는 귀신 과도 같은 세발작살이 그의 현재 삶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딱 이 책의 중간 정도 되는 분량인데, 이렇게 느긋하게 흘러오던 이야기는 이후 가속도가 붙어 엄청나게 속도감이 생긴다. 빨리 마지막 페이지가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안달이 날 수밖에 없도록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이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들이 두툼한 두께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있다. 정말 치밀하게 날줄과 씨줄로 연결된 플롯을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유 넘치는 흐름으로 끌고 가다가, 어느 순간 시계 톱니바퀴 마냥 딱딱 이가 맞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는 뭐 게임 끝이다. 그 누구도 프레드 바르가스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입조심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를 믿으라고 설득하지 말게.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자네가 용감하고, 정신이 똑바로 박혔다고 믿네. 악마를 찾아내게. 악마를 찾아내서 법의 올가미로 옭아 넣을 때까지는 남의 관심을 살 행동일랑 하지 말게."

아담스베르그는 내내 난간에 기대서서 순수함으로 빛나는 이마를 지닌 캐나다 동료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상스카르티에 자네는 왜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않나?"

"그거야 자네가 미친놈이 아니니까 그렇다네. 아주 간단하지. 밥 먹으러 갈 텐가, 갈 텐가 벌써 정오가 지났네."

 

수십 년에 걸쳐 무려 열 세 명이나 되는 살인을 저지른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범인은 그 존재 유무만 의심스러웠지 이야기의 시작부터 밝혀 놓고 있기 때문에 살인 사건 수사 자체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아담스베르그 서장을 비롯한 캐릭터들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페이지를 찢고 인물이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담스베르그는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고 여유로운 형사로 느림의 미학을 말과 행동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세상에, 살인 사건 조사에 '느림의 미학'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때로는 멈춘 듯한 시간 속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진주가 숨어 있다고 믿는 그의 감각이 분명히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천재적인 수사 감각을 가진 것도 아닌 주인공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홀린 것처럼 그에게 점점 사로잡히고 마는 마력의 캐릭터이다.

그의 충직한 보좌관 당글라르는 직관에 의존하는 자신의 상사와는 달리 논리로 무장한, 웬만한 정보들은 모조리 습득하고 있는 만물박사이다. 다섯 명의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홀아비인 그는 바람둥이 상사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그의 여자 카미유를 몰래 도와주는 다정다감함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는 이 작품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여자 형사 르탕쿠르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그렸을 법한 우람한 체구를 자랑하는 그녀는 어디에서든 적응력이 뛰어나며, 지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에 행정 처리 능력도 우수하고 몸싸움에도 지지 않는데다 사격 솜씨 또한 일품인 강력계의 다재 다능한 대들보이다. 특히나 그런 그녀의 에너지를 불가시성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은 가히 놀라울 만한데, 작품의 후반부에 그녀가 아담스베르그를 어떻게 돕는지 그 활약은 정말 멋지기 그지 없다. 뿐만 아니라 퀘백에서 만난 상스카르티에, 아담스베르그의 오랜 친구인 클레망틴 할머니와 그녀의 절친인 할머니 해커 조제트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이 두 할머니의 역할은 이 작품에서 매우 놀라운 분위기 전환과 사건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 정말 이 두 할머니는 너무 사랑스럽고 흥미진진한 캐릭터이다.

 

대부분의 범죄, 스릴러, 추리 소설들을 읽으면서 책장들을 다시 휘리릭 넘겨보며 놓쳤던 단서와 복선과 디테일들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하지만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정교한 플롯과 탁월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 이야기지만, 페이지마다 너무도 여유롭고 침착하게 진행이 되어 그것들을 인물들과 함께 고스란히 즐기기만 한다면,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레 막바지를 향해 속도를 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만 않는다면, 읽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만나더라도 그 어떤 단서도 놓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책은 그 동안 꽤 많이 출간되었었다. 물론 현재는 모두 절판 상태지만 말이다. 우선 아담스베르그 서장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파란 동그라미의 사나이>, 그리고 이번 <트라이던트>의 바로 전 작품인 <4의 비밀>이 있고, 다른 시리즈 작품인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도 있다. <트라이던트>는 지난 2008년에 <해신의 바람 아래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의 개정판이고,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도 올해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될 예정이다. 아담스베르그 서장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그래 봐야 2011년 작이지만)은 작년에 비채에서 출간되었던 <죽은 자의 심판>이다. 9권의 시리즈 중에 국내에 출간된 것이 4권이니, 나머지 시리즈도 곧 출간되기를 기다려본다. 특히 시리즈의 최신작이 바로 작년에 출간되었으니, 국내에도 최신작부터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아무래도 그 전에 원서부터 사 모으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하지만, 아담스베르그 시리즈의 다음 작품을 빨리 국내에서 만나보고 싶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이야 말로 내가 왜 미스터리 소설을 사랑하는지 제대로 이해할만한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누가 범인인가' '대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국내 출간된 추리, 미스터리 분야의 소설이 이백사십 여권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 팔십 프로가 넘는다. 거의 매년 그렇게 해왔으니 꽤 많은 책들을 읽어 온 셈이다. 그런데 그 어떤 작가도 프레드 바르가스처럼 쓰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성, 배경, 등장인물이 완벽하게 조합되어 있는 기막히게 멋진, 아름답게 쓰인 이야기를 읽고 싶은가.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을 만나보라. 특히나 그녀의 작품 중에 <트라이던트>는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당신도 무조건 그녀에게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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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3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의 원제와 출간연도를 꼼꼼하게 정리한 글이 좋습니다. 이런 정보가 있어야 독자는 특정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

피오나 2016-03-31 19:00   좋아요 0 | URL
하핫. 감사합니다ㅎㅎ 프레드 바르가스의 작품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수요가 있어야 새로운 책들이 계속 번역 출간될테니까요^^

ICE-9 2016-03-3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프레드 바르가스의 팬이셨군요. 반가운데요, 저도 팬.
오, `해신의 바람 아래서`와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가 원래 저런 표지였군요. 저게 초판본이겠지요. 제 것은 파란 동그라미 사나이와 같은 디자인인데, 아무래도 나중에 통일되었나 보군요. 그건 그렇고 작년 국내 출간된 미스터리의 80%를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부지런히 읽어야될텐데...ㅠ ㅠ;

피오나 2016-04-01 08:43   좋아요 0 | URL
하핫. 역시 헤르메스님도 프레드 바르가스의 팬이시군요ㅎㅎ 저야 워낙 특정 장르에 편중된 독서를 해서 그렇구요. 헤르메스님처럼 폭 넓게 읽는게 더 어렵지요^^
 
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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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그림책이라니! 읽기도 전에 궁금증이 마구 샘솟았다. 그가 자타공인 애묘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들려주는 어릴 적 고양이 친구 단쓰와의 추억에는 애정이 마구 묻어 있다는 것이 첫 페이지부터 느껴진다. 게다가 마치 아이들의 동화책처럼 컴팩트한 판본에, 산뜻한 봄 날씨처럼 가벼운 무게에, 표지 또한 구름처럼 폭신폭신하다. 제목인 '후와후와'가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 혹은 소파가 푹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 또는 커튼이 살랑 이는 모습을 비롯해 고양이 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라는데, 제목의 뜻을 책 표지에 고스란히 구현할 생각을 하다니! 책을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고스란히 상상이 되는 이미지가 동화를 읽는 내내 설레 이게 만들었다.

 

 

하루키는 온 세상 고양이를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유는 해의 온기를 잔뜩 머금은 고양이 털이 생명이란 것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에 관해 가르쳐주기 때문이란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털에 손을 뻗어, 통통한 목덜미며 끝이 동그래진 차가운 귀 옆을 가만가만 쓰다듬어주는' 그 기분을 나도 느껴 본 적이 있다

나는 고양이 숨결에 맞춰,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그 숨을 내뱉는다.

살며시, 살며시-주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다행히 고양이의 시간은 내가 느끼고 있다는 걸 아직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이 좋다. 고양이는 그곳에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 있으면서, 그곳에 없다.

 

어릴 적에 몸집이 커다랗고, 검정색에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를 몇 달 키운 적이 있다. 길 고양이였고 자주 보여서 먹이를 주다가 우리 가족과 친해진 경우였는데, 하루키의 고양이 단쓰 처럼 꽤 나이를 먹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강아지만 키우다가 처음 만난 고양이였기에, 어린 나에게 고양이는 예쁘긴 하지만 자신의 곁을 쉽사리 내주지 않는 차가운 동물처럼 느껴졌었다. 게다가 고양이는 우리 가족 중에 유독 아빠만 따랐었는데, 한참 찾아봐도 안 보이다가 아빠만 등장하면 어느 샌가 그 곁에 등을 대고 얌전히 앉아 있곤 했었다. 새끼 때부터 키운 게 아니라서 정을 많이 주지는 못했었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가르릉 거리는 소리와 고양이의 조그만 귀를 만졌던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하루키는 제법 많은 것을 고양이에게 배웠다고 그 시절을 추억한다. '생명체에게 한결같이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행복이란 따스하고 보드라우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든가' 말이다.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는데, 실제로 아이에게 동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정서적으로 훌륭한 교육이 된다고 한다. 아마도 하루키가 느낀 것처럼 생명의 소중함과 따스하고 보드라운 행복을 동시에 알게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곳곳에서 특유의 느슨한 듯 자유스러운 그림 체로 활약했던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은 하루키의 글과 더불어 폭신폭신, 말랑말랑한 단쓰와의 추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한 편의 시인 듯 동화인 듯, 따뜻한 시심과 예쁜 동심으로 써 내려간단쓰에 대한 단상에 안자이 미즈마루 특유의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그림을 얹었다'는 책 소개 문구에서 유독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이라는 문구에 시선이 간다. 실제로도 더할 나위 없이 '대충' 그린 것 같은 일러스트인데도, 묘하게 하루키의 글과 어우러져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고양이 이야기이니 고양이를 그리면 되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그후와후와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처럼 '후와후와'가 마구 느껴지는 그림책이 아닐 수 없다.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 부는 봄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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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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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장편소설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익사>를 읽었고, 그 전에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를 읽었었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 비롯되듯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강렬한 이야기였고, 작가의 자전적인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들은 읽기가 마냥 편하고 쉬운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그의 단편들을 만나보니,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하게 들었다. 장편도 물론 좋았지만,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 그의 삶을 관통하는 사상과 생각이 제대로 드러나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장편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둘러 갈 수도 있고, 숨겨 두었다가 은근하게 보일 수도 있고, 하고자 하는 그것에 다가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인 반면, 단편은 짧은 이야기 속에 그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에둘러 가지 못하고 정면 승부해야만 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전쟁 때 너는 아직 어린애였겠지?

긴 전쟁 동안 나는 죽 성장했어.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는 것만이 불행한 일상의 유일한 희망인 것 같은 시기에 성장해 왔다. 그리고 그 희망의 징조가 범람하는 가운데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 시체가 어른의 뱃속 같은 마음속에서 소화되고, 소화가 불가능한 고형물이나 점액이 배설되었지만, 나는 그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윽고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도 흐지부지 녹아 버렸다.

-나는 너희의 그 희망이란 걸 온몸으로 짊어지고 있던 셈이지. 다음 번 전쟁은 너의 차지가 되겠구나.

 

이번 단편집은 오에 겐자부로가 60년 가까운 작가 생활 동안 발표했던 모든 단편소설 중에서 직접 스물세 편을 가려 뽑아 고쳐 썼다고 한다. 그가 소설 집필을 그만둔 뒤 자신이 발표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고 고르고, 거기다 문장까지 모두 꼼꼼히 손을 본 보물 같은 작품집이니, 그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기에는 이만한 책이 또 없을 것이다. 스물 세 편의 단편들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그의 작품들을 어렵게만 느끼는 이들에게도 초기의 이야기들은 꽤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기묘한 아르바이트> <사자의 잘난 척>에서는 죽음을 대하는 독특한 시선을 볼 수 있고, <사육>에서는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인간 양>은 지금 현대의 우리 모습을 보는 듯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중기로 넘어가면 연작 소설들로 단편이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중기에 실린 이야기들에 마음이 갔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의 첫아이는 뇌에 치명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성인이 된 큰아들은 천재적인 음감을 지닌 음악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일상 생활은 미숙하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가끔은 간질 발작도 한다. 그는 아들의 삶에 쉽사리 간섭하지 않는데, 아들을 바라보는 강인하면서도 담담한 아버지로서의 시선은 가슴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 고통, 그리고 절망을 넘어서 문학으로 보편성을 다루게 된 대 작가의 눈물겨웠던 삶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기로 들어가면 자신의 자전적인 부분을 넘어서는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확실히 집중력을 요하고, 그만큼 어렵긴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내밀한 작가적 성향,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이요는 지상 세계에 태어나 이성의 힘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고 무언가 현실 세계의 건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블레이크에 의하면 이성의 힘은 오히려 인간을 착오로 이끌며 이 세계는 그 자체가 착오의 산물이다. 그 세계를 살면서 이요의 영혼의 힘은 경험에 의해 손상되지 않았다. 이요는 순수한 힘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이요와 내가 이윽고 '레인트리' 속으로, '레인트리'를 지나서, '레인트리' 저 너머에 이미 합일을 이루었으나 개체로서 더욱 자유로운 우리가 귀환한다. 그것이 이요에게나 나에게 의미 없는 삶의 과정일 뿐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스스로 장애를 가진 큰아들과의 공생과 블레이크의 시에서 환기된 영감을 하나로 엮어서 일련의 단편집을 완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들을 중심으로 아내와 여동생 남동생을 포함한 가족의 지금까지의 나날들을 돌아보고 앞날을 전망해 보고 싶었다고 말이다. 오에는 누구나 꿈꾼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성공했지만 그의 삶 자체는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자살, 장애가 있는 아들, 작품성에 대한 비판 등 그는 고난의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고, 그 모든 경험들은 그의 문학으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나이에 시작해 버린 소설가로서의 삶에 본질적인 곤란을 평생 느끼며 살아 왔다는 오에 겐자부로. 그는 자신이 쓴 것을 고쳐 쓰는 습관으로써 그것을 극복해 왔다고 말한다. '긴 시간을 들여 경험을 통해 그것을 기른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커다란 곤란을 만났을 때, 그 습관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위대한 노작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삶의 습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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