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할리우드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이다.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푸른 수염>, <빨간 모자>, <장화 신은 고양이>, <푸른 수염> 등과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 <백설공주>, <라푼첼>, <헨젤과 그레텔> 등등.. 재미있는 건 곰팡이가 피어 있을 것만 같은 낡은 이야기일 것 같은 이들 작품들이 동화와 호러 스릴러가 꽤나 어울린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소녀들부터 중장 년 여성들까지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 로맨틱하며 위험한 남자 주인공과 아름답고 순진한 여자 주인공의 조합은 소녀 풍 동화들이 성인용 드라마로 진화했을 때도 크게 어색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다니, .... 기이한 일이다. 그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바보 같다. 따지고 보면, 윈드리벤 애비가 존재해 온 다양한 시기별로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이곳에서 살고 죽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 후견인의 부인들이 모두 너무나 최근에 이곳에 살았다는 점과..... 그들의 머리가 모두 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 모든 것이 과하게 느껴졌다. 마치 어떤 동화 속에서처럼 이 세계 전체가 화려함으로 뒤덮여 있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 <푸른 수염>은 영화로 만들어 진 적도 있고, 아멜리 노통브를 비롯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소설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만큼 잔인하지만 매혹적이라 할만큼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 플롯 자체가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에 현대물로 풀기에도 변주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어떻게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플롯은 이거다. 엄청나게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는 남자, 그리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어떤 이유로 남자의 집에 가서 살게 되고, 남자는 외출하면서 대저택의 열쇠를 맡기면서 특정한 장소에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여자는 금기 따위는 무시해버린다. 그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그 남자의 아내였던 여자들의 시체들이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하는 것은 그녀의 가족들로, 다양하게 변주가 되어도 이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제인 니커선의 이 작품은 노예 제도가 살아 있던 19세기 미국으로 가져와 부유한 대부이자 후견인의 초청으로 그의 대저택을 방문하게 된 17살의 아름다운 소녀와 매력적이지만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40대 남자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소피아가 대여섯 살 때 변호사인 아버지의 고객이자 친구였던 버나드는 그녀가 미성년일 때 아버지가 죽게 된다면 자신이 법적인 보호자가 되겠다고 나선다. 아버지는 그렇게 되면 최소한 소피아라도 부족함 없이 살 거라고 그걸 허락했고 말이다. 몇 달 전, 소피아의 아버지가 죽었고 그녀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 그 때 버나드 씨가 자신의 저택으로 그녀를 초대한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물론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그가 홀아비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피아가 그를 처음 본 인상은 이랬다. <내 속의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는 기분이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여태껏 본 중에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라고. 그 동안 상상으로 부풀어진 이미지에, 직접 와서 보게 된 어마어마한 저택에 압도된 어린 소녀는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버나드씨가 내 손을 쓰다듬거나 그의 입술이나 뺨으로 내 손을 가져가는 행동을 허락했다. 그런 애정표현이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프랑스식" 행위이리라고 치부했다. 게다가 나는 그에게 홀딱 반했을 뿐 아니라 그를 진정 사람으로서 좋아했다. 물론 때때로 그의 눈빛에 뭔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는 어쩌면......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 왜 그런 표현이 머릿속을 스쳤을까? 어쩌면 그 표현이 어울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버나드 씨는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늘씬하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존재였으며 미소를 짓지만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소피아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며 일상을 가족들에게 자주 편지로 보냈지만, 가족들로부터 답장은 전혀 오지 않는다. 저택의 주인인 버나드씨와는 함께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 보기도 힘들고, 그곳에서 그녀가 할 일이라고는 산책을 하거나 승마하기, 바느질, 피아노 연주, 독서 등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의 시간을 채워 보내기 위해 은밀히 이곳 저곳 다니면서 저택을 둘러보고 시작한다. 너무도 커다란 저택이라 활용되고 있지 않은 층들도 있고, 사용되지 않고 있는 통로도 있고, 여기저기 과거 수도원의 유물들도 많아 호기심 많은 그녀의 시간을 가득 채워준다. 그러면서 그녀는 버나드씨의 전 아내들에 대한 흔적을 하나 둘 씩 찾아내어 그들의 정체에 대해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본다. 네 명의 전 아내들이 모두 자신처럼 빨갛다고 묘사될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버나드씨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분노를 드러내거나, 어느 순간 화를 내거나 급변하는 그의 눈치를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로맨틱한 긴장감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별다른 사건도 없이 매일매일이 흘러간다. 책을 읽는 우리는 홀아비인 그가 왜 어리고 예쁜 소피아에게 잘해주는지, 왜 그녀를 이곳에 와서 살게 했는지 모두 알지만, 우리의 순진무구한 주인공은 그것을 깨닫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버나드씨 또한 전혀 서두르지 않고, 그가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어 소피아에세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은 무려 이야기가 70프로 이상 진행된 시점이다. 그제야 이곳에서 정말로 도망가고 싶다고 깨닫는 소피아의 자각 덕분에 그 이후에 진행되는 스토리는 나름 긴장감이 부여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너무 천천히 진행되어 이 작품이 로맨스인지, 미스터리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풍경 묘사와 집주인의 비밀스런 전 부인들에 대한 상상은 매혹적이지만, 샤를 페로의 원작이 동화 치고 꽤나 잔혹했던 충격에 비하면 이 작품의 스토리는 부드러운 편이다. 아무래도 작가는 원작의 소름 끼치는 잔혹성보다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동화를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읽었던 제임스 에이지의 <가족의 죽음> 또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나서 남겨진 가족들이 슬픔을 견디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너무도 다른 색깔로 그린 두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만나게 되어 비교하면서 읽는 맛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웠던 저자가 아버지가 갑자기 죽고 나서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빠는 반은 언짢고 반은 재미있어 하는 심정으로 날 내려다보며인내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뭔가 아주 간절히 보고 싶어서 때로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때는, 그것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를 기억하고 참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신문에 실어야 할 사진을 촬영할 때면, 가끔 내가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시간씩 차 안에 앉아 있어야 하는 때가 있단다. 차를 마시러 가거나 심지어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날 수도 없지. 그냥 인내해야 되는 거야. 매를 보고 싶으면 너도 참아야 해.”

가족이 죽는 경험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의 슬픔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말이다. 제임스 에이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며칠 동안 가족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했다면, 헬렌 맥도널드는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새뮤얼존슨상을 수상한 것만 보아도, 이 작품이 진행되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표지 조차 참매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고, 제목 또한 헬렌이 매에게 붙여준 이름인 '메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허구화된 '픽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있는 '논픽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고, 감동적이었다. 매를 통해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무언가를 남겨 주었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중에 '사별'과 관련된 단어는 모두 '없다, 빼앗다, 훔치다, 강탈하다'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나온 거라고 한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마치 무언가를 강탈당한 것처럼, 혹은 빼앗긴 것 같은 감정이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남들과 공유하거나 나눌 수는 없는,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이고 말이다. 헬렌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이 여전히 전과 같이 돌아간다는 것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몇 주간 나는 둔하게 달궈진 쇳덩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달군 쇳덩이 같아서, 오히려 몸은 차디찬데도 침대나 의자에 몸을 눕히면 온몸이 곧바로 활활 타 버릴 것만 같았다.>라는 표현은 그녀의 상태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만큼 체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가족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이렇게 세상 자체가 슬픔에 젖어 버리고, 나라는 존재가 그 속에 빠져서 정상이 아닌 상태가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도 언젠가 닥쳐올 그 순간이 두려워지기 까지 했다.

나는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이듯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매와 함께 꿩의 털을 뽑기 시작한다. 매를 위해서. 메이블이 먹기 시작하자, 나는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다. 찬찬히 살핀다. 깃털이 날려 산울타리 밑으로 떠다니다가 거미집과 가시 돋은 가지에 걸린다. 발톱의 붉은 피가 마르고 굳는다. 시간이 흐른다. 햇빛의 축복. 바람이 엉겅퀴 줄기를 흔들다 잦아든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한다. 소리 죽여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꿩 때문에, 매 때문에, 아버지와 그의 인내심 때문에, 울타리 옆에 서서 매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운다.

어릴 때부터 사진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함께 자연을 누비며 매잡이가 되려는 꿈을 키워온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참매를 분양 받고, 그 매에게 '메이블'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참매를 훈련시키면서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치유하고, 절망감에서 벗어나 서서히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참매는 개나 말처럼 사교적인 동물이 아니어서 강압이나 체벌을 이해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매를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먹이를 선물하는 긍정적인 강화를 통하는 길뿐이라고. 야생의 두 눈, 줄에 매인 매가 분노와 공포로 인해 거칠게 몸부림 치는 몸짓, 어린 매가 그녀의 손에 앉아 원색적이고 방어적인 공포 속에서 먹이를 발치에 두고 있는 그 순간, 매를 길들이려는 주인은 그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의 상태여야 한다. 움직이는 앉는 매는 최대한 잡아당긴 새총처럼 긴장하고 흥분한 상태, 공포와 먹이 사이의 공간, 마비되고 꼼짝 못하는 둘의 마음을 어떻게든 끈으로 이으려고 하는 순간은 너무도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고, 어느 순간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저자인 헬렌 맥도널드는 역사학자이자 동물학자이기도 하고, 전문적인 매 조련사로 유라시아 전역에서 펼쳐진 맹금류 연구와 보존 활동에도 참여했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이 책은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야생 참매 따위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우와. 싶은 순간이 꽤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동물과 인간의 교감, 자연 속의 어우러짐, 죽음과 애도, 그리고 상실과 치유... 어떻게 야생 참매를 길들이는 순간을 슬픔을 다스리는 과정으로 그려낼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은유와 상징이 넘쳐난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각별히 가깝고, 누군가는 남처럼 무관심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애틋하게 가슴에 돌처럼 박혀 있기도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는 나카마치 신의 이 작품은 일본 최초로 서술 트릭을 사용한 작품으로 트릭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던 작품이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서술 트릭 작품들 <도착의 론도>, <살육에 이르는 병>, <통곡>,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등은 모두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가 출간된 이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1971년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그리고 죽음이 찾아온다》를 40년 만에 개고한 작품으로, 출간 후 20년이 훌쩍 지나 한 서점의 추천으로 주목 받아 삽시간에 1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이 쓰인 지 무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멋진 한 방을 날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쓰쿠미의 시선이 그 제목 위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7 7일 오후7시의 죽음. 그것이 제목이었다.

77일 오후 7.

바로 이날, 이 시간에 사카이 마사오는 독을 마시고 죽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7 7일 오후 7, 사카이 마사오는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는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유서로 추정되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기에,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무명 작가의 신변 비관 자살로 처리된다. 그런데 그의 죽음에 이상한 점을 느낀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어느 신인 작가의 자살로 가십거리처럼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기 전 남긴 원고 ‘7 7 7시의 죽음과 같은 시각에 사망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상한 일이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나카다 아키코는 평소에 그와 업무 관련해서 종종 부딪히던 사이다. 그러다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었고, 나름 가까운 사이라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그가 얼마 전에 보냈던 원고를 떠올린다. 주간지에 살인 리포트라는 기사를 쓰는 쓰쿠미 신스케는 잡지 사의 제안으로 사카이 마사오 사건을 글로 재구성하게 된다.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결성한 동인잡지 모임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던 그는 취재를 위해 그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나카다 아키코와 쓰쿠미 신스케의 이야기가 교대로 전개되면서 점점 사카이 마사오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는 증폭된다.

다음 장에 펼쳐질 뜻밖의 결말을 예상해보라고 독자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이 작품은 자신만만하다. 그만큼 웬만해서는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결말을 만나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작품을 읽더라도 작가가 거짓을 말한 부분은 전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서술 트릭만의 묘미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모든 정보는 '사실'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감쪽같이 속을 수 밖에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고 말이다.

서술 트릭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 남자라고 생각되던 인물이 사실은 여자라던가, A라고 아무 의심 없이 생각했던 인물이 사실은 B라던가 하는 등의 오해이다. 물론 그 외에도 시간, 장소나 상황, 물건, 행위, 동기나 심리에 관한 트릭도 있다. 나카마치 신의 이 작품에서는 이 중에 어떤 걸 트릭으로 사용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추측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즐기는 진짜 방법은 머리 굴리지 말고, 그저 사건의 흐름을 아무 생각 없이 쭉 따라가는 것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작가가 설치한 오인의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지만, 또 그것이 서술 트릭 만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니 작가에게 속았다고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은 너무도 크고 넓어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어도 아버지에게만 달려가면 모든 일이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든든했고, 믿음직스러웠고, 때로는 무섭기도 했으며, 가끔은 어려웠지만, 대부분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누군가의 부모가 될 만큼 나이를 먹고 보니 작고 굽어진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 가끔 서글퍼진다. 누구나 나이를 먹게 마련이니까. 세월을 당하는 장사는 없으니까 말이다. 가끔 얼굴을 볼 때마다 어깨며, 팔이며 조금씩 수척해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할 시간도 오겠구나 싶은 마음에 울컥해지기도 하고, 언제나 아버지의 그늘 아래 보호 받았던 내가 이제는 반대로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에 책임감 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까지 가족 중 그 누구와도 완전한 이별을 해본 적이 없기에, 언젠가는 겪게 될 아버지와의 이별이 두렵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임스 에이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소설로 쓴 자전적 추도사인 이 책을 읽는 내내 조금 두렵고, 긴장이 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익숙해져야 할 거라는 걸 알기에 말이다

아빠는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고 싶지 않은 것 같았고, 분명 아들과 같이 있는 이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았다. 요즘 들어 루퍼스는 구름다리를 다 내려올 무렵이면 이곳에 들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빠와 함께 바위에 앉아 있는 일이십 분 정도가 어찌나 행복한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말로든 생각으로든 그 정체가 무엇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그저 그래 보이고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아빠도 여기서는 다른 어느 곳과 달리 유독 만족스러워 보였다. 둘이 느끼는 만족감이 아주 비슷하고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생가기 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제이는 아버지의 첫 모습을 떠올려 본다. 매부리코에 잘 생긴 얼굴, 당당하고 위압적이던 검은색의 멋진 콧수염. 천성이 워낙 낙천적이고 심성이 따뜻했지만,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겼던,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제이가 분개하게 만들었던 그 아버지. 창문 넘어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면서 그는 벌써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제이는 생각한다. , 누구나 언젠가는 가야 하는 거잖아. 그렇게 다시 삶의 초점이 돌아오자 그는 외출 준비를 한다. 옷을 차려 입고 방을 나서려다 구겨진 침대를 보고는 아내의 자리에 남아 있는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이불을 위로 당겨 덮어둔다. 그리고 방문이 살짝 열린 아이들 방 앞을 지날 때는 깨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메리와 제이는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고, 메리는 아빠가 인사도 없이 가면 아이들이 실망할 까봐 깨우고 싶은 걸 참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최악의 상황이 되면 생각보다 그가 더 오래 가족을 떠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리는 바깥양반께서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무슨 일이 닥치든 그걸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메리의 눈빛이 빛났다.

"감당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 그저 최선을 다해 견디면서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저절로 풀리게 놔두렴. 그거면 충분해."

"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준비할 시간이 너무 적어요."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닌 것 같구나. 그냥 겪어 내야 할 일이지."

결국 그들은 사고 현장에 다녀온 오빠를 통해 제이가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할 새 없이 그저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 이해하고 감당할 수 없어 그저 견뎌내야 하게 되는 일들 말이다. 이제 남겨진 가족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만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메리는 종교에 의지하려 하지만, 믿음으로 충만한 자신에게 왜 이런 아픔이 왔는지 감당하기 어렵다. 죽음이 뭔지 아직 모르는 네 살 캐서린은 그저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여섯 살 루퍼스는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특히나 아빠와의 소중한 시간,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소년 루퍼스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저희 아이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세요." 엄마가 나직이 읊조렸다.

"은총을 내려 주시고 저희 모두를 지켜 주세요."

"아멘." 루퍼스가 예의 바르게 속삭였다. 불편한 마음을 떨쳐 내기 위해 엄마를 더 꼭 끌어안은 루퍼스는 엄마도 자기를 더 힘껏 끌어안는 느낌을 받았다. 그사이 서글프고 외로워진 캐서린은 돌처럼 딱딱하게 서있었다.

거짓의 아들과 거짓에 속은 엄마, 그리고 깊은 상처를 받은 딸이 그렇게 정물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있었다.

이 책은 제임스 에이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소설로 쓴 자전적 추도사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그 경험으로 그는 한 가족에게 찾아온 죽음을 어떻게 견뎌내는 지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소설가 겸 시인으로서, 영화 비평가 겸 시나리오라이터로서, 르포라이터 겸 저널리스트로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것을 쏟아 부었는데,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 하게 되고 만 탓이다. 죽음은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와 남겨진 이들에게 그저 견뎌내라고 말한다.

최고의 문장가로 명성을 쌓은 작가답게 이 책들의 문장은 매우 공들여 읽고 싶을 만큼 단단하다.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부터 그날 저녁,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단 며칠 만에 이들 가족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심리들은 고스란히 감정을 따라가느라 몰입하게끔 매우 밀도가 높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하지만 비 종교인에게도 거부감이 없을 만큼 스토리에 잘 녹아져 있고, 담담하고 정확한 문장들로 표현된 이들의 마음은 마치 내가 그들 가족의 일원이라고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언젠가는 나도 맞이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더욱 차분해지고, 정돈되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는 이렇다. 누군가 아주 우연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집을 발견하게 된다. , 미래로, 과거로 원하는 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대가는 '더 하우스'가 지정하는 여자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래서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 빛나는 소녀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는데, 자유롭게 시간대를 넘나드는 그이기에 절대 발각될 염려는 없기에 그는 점점 더 살인 행각에 중독이 된다. 그 와중에 그가 살해했다고 생각했던 한 소녀가 극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녀는 몇 년 뒤 자신의 사건을 취재했던 신문사의 기자가 되어 그를 쫓기 시작하고, 우연히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그의 반격이 시작된다. 정말 너무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타임 리프라는 장르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빛나는 독창성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깨달음. 마치 어떤 문이 속에서 열리는 듯했다. 열이 최고조에 달했고, 무언가가 목 놓아 울부짖으며 그를 통과해갔다. 그 소리는 경멸과 진노와 불로 가득했다. 그는 빛나는 소녀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지 알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죽여. 그녀를 막아.

타임리프 스릴러라는 읽기도 전부터 구미가 확 당길만한 소재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책 날개 뒤쪽에 소개된 정보가 미리 없었다면, 아마도 그 여정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대가 너무 뒤죽박죽 섞여 있는데다, 짧은 이야기로 자꾸만 화자가 바뀌는 이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하기란 너무 복잡했으니 말이다. 100여 페이지가 지나서야 주인공 하퍼가 가지게 된 정확한 능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더 하우스'는 머릿속에 어느 시간만 생각하면 문이 그때로 열리는 시간의 블랙홀 과도 같은 장소였다. , 그는 이곳 '더 하우스'를 통해서 미래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마룻바닥이 피로 젖어 있고, 시체가 복도에 널부러져 있는 걸 보다가 문지방 너머로 몸을 다시 빼고, 손을 넣어 문을 닫은 다음 다른 시간대의 날짜에 집중하고 나서 다시 문을 열면 시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그런 식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왜 다른 시간대로 가서 소녀들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74년의 하퍼는 여섯 살이던 커비를 만나 모든 것을 한데 연결해주는 '그 물건들' 중 하나인 조랑말을 선물로 준다. 언젠가 너에게 돌아올 테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나중에 조랑말을 가지러 오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89년에 커비의 개와 그녀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우리는 이 장면이 올 때까지 하퍼가 왜 빛나는(?) 소녀들을 찾아가 죽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시간대를 넘나들며 벌이는 살인의 배경에 '더 하우스'가 어떤 힘을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92년의 카비는 신문사에 들어가 자신이 겪은 사건을 추적해 살인자를 찾으려고 하는 중이다. 스토리는 막판에 가서야 긴장감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를 더 하우스로 이끌었던 것과 똑같은 인력이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해 갈 때의 그 날이 퍼렇게 선 인식, 그러고서는 '그 방'의 부적들 중 하나를 알아보면 그만이었다. 그것은 게임이었다.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거치며 여자들을 찾아내는 일은 게임이었다. 그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 써 내려가고 있는 운명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추고 그의 장단에 맞추어주었다.

 

시간을 여행하는 살인마라는 매력적인 소재는 어쩌면 영상으로 재 탄생했을 때 더 빛을 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작으로 미국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정돈된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훨씬 더 몰입도가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는데, 아무래도 영상으로 보여진다면 뒤죽박죽 스토리를 정리하기가 더 쉬울 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연쇄살인마가 되어 버린 하퍼도, 끔찍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소녀 카비도 아니고 바로 '더 하우스'라는 장소 자체이다. 시간 여행을 하는 다양한 시대 별로 다양한 소녀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은 바로 그것을 지시하는 '더 하우스' 뿐이니까. 빛나는 소녀들이 죽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더 하우스'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스릴러라기 보다 공포로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얼핏 예전에 한참 유명했던 미드 '로스트 룸'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텔의 열쇠를 통해서 세계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었던 그 드라마의 주인공 또한 초능력이 깃들어 있었던 '물건'들이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