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될까요?
노하라 히로코 글.그림, 장은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결혼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혼해야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없었던 것처럼

이혼해서 행복해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혼인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결혼을 포기한 젊은 층이 많아지면서 결혼을 안 하거나, 혹은 결혼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못하거나, 어찌되었던 70년대 이후로 역대 최저 수치라고 한다. 결혼을 기피해 노총각, 노처녀가 넘쳐나는 '결혼 안 하는 대한민국'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혼율은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50대 이상의황혼 이혼이 눈에 띄게 증가했단다. 그 동안 참고 살았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자의식이 발달한 탓도 있겠고, 그만큼 이혼을 선택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쉬워'진다는 뜻도 될 것이다. 특히나 불만과 갈등이 있었지만, 자녀 양육과 교육, 금전, 부모님 문제 등으로 참고 살다가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된 뒤에 갈라서는 황혼 이혼은 무려 30년 이상 함께 살았던 가족도 한 순간 남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니, 애초에 결혼부터 쉽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시사하기도 한다.

싫어하는 걸 좋아하게 되는 경우란 없을까? 있겠지...

하지만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게 되면 두 번 다시 좋아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작품 속 34살 시호는 6살과 8살짜리 두 아들을 둔 엄마이다. 그녀는 결혼 9년차에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런 상태로 앞으로도 이 사람과 함께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만... 이혼해도 되지 않을까?

시호의 남편은 성실하게 일 다니고 바람도 안 피고 빚도 없고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이웃이 보기엔 좋은 남편으로 보이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런 가정이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 속에 이혼 그 두 글자가 떠오르지 않는 날은 없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점차 쌓이게 되면 그로 인해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전혀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다. 물론 매일같이 회사에서 시달리고,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부담도 있겠지만, 하지만 모든 남편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결혼한지 9년이나 되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걸까.

시호의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부터 켜고,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 밖에 버리고, 세면대를 쓰면 항상 주변에 물이 튀어 있고, 양말은 항상 뭉쳐서 던져놓는다. 쓰레기는 제대로 통에 넣으라고, 양말 좀 제대로 벗어놓으라고 시호가 수백 번도 더 말했는데 왜 아무리 말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포기도 해보지만 그녀는 결국 또 다시 말해본다. 하지만 잔소리하면 남편이 오히려 화를 더 낸다. "대체 몇 번을 말하는 거냐고. 주부니까 집에 있으면 그 정도는 니가 알아서 하라고. " 그녀는 다른 집의 경우를 들을 때마다 별것 아닌가 싶어진다. 하지만 '작은 기대가 차례차례 부서져서 따끔따끔 찌르듯이 쌓여만' 갔던 것이다.

 

시호도 결혼 전에는 말하고 싶은 건 다 말해 버리고 마음껏 싸울 수 있었다고, 그렇게 다투고 또 화해사면서 결혼하게 되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될 거라고 믿었단다. 하지만 결혼해서 9년 동안 살아본 결과,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될 거라는 건 커다란 착각이었다고.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엄마랑 아빠가 가끔 다투실 때, 아빠가 뭐라고 하시면 엄마가 그냥 참는 것을 보며 왜 저러실까. 그냥 한마디 하시지 싶었는데 그게 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아빠는 그렇게 소리쳐놓고 금방 잊어버리셨기 때문에 그 순간만 지나가면 다툼은 없었던 일처럼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에 엄마가 참지 못하고 같이 맞서 다투기라도 하셨다면, 아마 좀 더 큰 다툼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아이들도 눈치를 보게 됐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아내들은 아이를 위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시호처럼 남편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참고, 숨을 죽이곤 한다. 그럼 겉에서 보기엔 행복한 가족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자신의 행복을 저당 잡혀 수십 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기분이 좋을 때는 '착한 남편' '좋은 가장'

케이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나는 숨을 죽인다.

그러면 이 집은 밖에서 보기엔 행복한 가족이 된다

 

다들 시작할 때는 이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 죽고 못살아서, 한시도 떨어져 있는 것이 못 견디겠어서, 매일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을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모두 첫눈에 반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적당한 나이에 조건 맞춰서, 나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도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그 동안과는 다르게 주위의 재촉에, 나이에 떠밀리듯이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으면 어떨까. 지금 이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었다. 머 결국은 사 년의 오랜 연애를 결혼과 연결시켰고, 정해진 수순처럼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었지만 말이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많은 것들이 생겨났고, 인생이 그저 짐작했던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는 막연히 가족이라는 개념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십 년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매 순간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가끔은 무조건 희생해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사실은 엄청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었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책 표지가 두 개로 되어 있다. 뒤집어서 씌우면 <이혼해도 될까요>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바뀐다. '남편이 절대 손댈 수 없는' 핑크빛 페이크 표지란다.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남편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 숨겨 놓기에 딱 인 깜찍한 설정이다

 

결혼이 사랑의 문제가 아닌 책임의 영역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 또한 절대적인 포기와 희생을 통해서만 견고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참아질 수 없는 부분이 어느 순간 생겨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내 선택이 처음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내 주변의 친구들, 선배, 언니들의 경우를 보면서 숱하게 들어왔던 그런 에피소드들이, 실제 결혼을 하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생각보다 더 많이 어려운 거라는 걸 이제 막 깨닫게 된 이들에게 이 책은 그 사소한 일상들을 너무도 콕, 잘 찝어 내고 있어 공감을 넘어선 위로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한 집에서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너무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결혼은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지만, 사실 결혼하지 않아도 다른 종류의 행복을 찾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혼율이 높아졌어도, 극중 시호처럼 이혼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문제만큼이나, 이혼이라는 것은 그 배로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이다. 혹시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먼저 이 책을 읽어보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4-2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피오나님.

피오나 2015-04-27 23:12   좋아요 0 | URL
결혼을 했거나, 아님 결혼 적령기이거나..모두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될거예요. 꼭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공감되고 그러더라구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내년부터는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공공기관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정년이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바뀐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럼 전까지는 만 55세가 정년이었다는 건데, 알다시피 55세는 아직 너무도 정정하고, 멀쩡한 나이 대이다. 55세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쉬기에는 아직 많이 아까운 나이라는 말이다. 대부분 정년 퇴직을 타의로 하게 되면서 퇴직금으로 새 사업을 시작해서 그 돈 마저 날려버리거나, 혹은 퇴직 후에 우울해하며 소일거리를 하며 갑자기 늙어버리거나 그럴 것이다. 아예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경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 아빠도 정년 퇴직 후, 그러니까 잘 나가던 회사의 이사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아저씨의 위치에 오게 되고 나서 몇 년, 계속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에 비해 금방 늙으셨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정년'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가에 대한 의문을 나는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고, 55세가 되기 전에는 꼭 그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해 대비를 별도로 해두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뭐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 되겠냐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그렇게 사회에서 밀려난 4050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신문 에 연재했던 중편소설 다섯 편인데 모두 중, 장년인 주인공이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 새 출발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년 퇴직 후에 찾아오는 어려움은 경제적인 격차에 따라 다양할 텐데, 이 작품집 속의 다섯 인물들의 스토리를 읽다 보니 나에겐 아직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이면서도 어딘지 공감이 되어 쓸쓸해지기도 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기존의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꽤 읽었던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색다르게도 느껴질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인물들의 내면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들의 현실과는 다르게 꽤 희망적이라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겠죠?"

"그게 실은, 스스로 인생의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결혼 상담소>의 나카고메 시즈코는 정년 퇴직한 남편이 재취업을 하려다 번번히 실패하자 온종일 텔레비전 앞에 대고 불평불만만 늘어놓기 시작하자, 함께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30년 가까이 함께한 사람과 이렇게 간단히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이혼이 순식간에 결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혼자 살게 된 적막감과 해방감을 느끼며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결혼 상담소에 등록을 하고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재혼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평생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다른 남자를 한번 사귀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녀가 선을 보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취향과 성격의 남자들은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기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늦은 나이에 재혼하려는 그녀의 냉정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의 인도 시게오는 쉰네 살에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뒤로 노숙자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자신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무리에 끼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날이 커져 차량 안전 요원으로 일을 한다. <캠핑카>의 토미히로 타로는 회사의 조기퇴직제도에 응하는 형태로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회사의 영업 방침이 바뀌면서 한직으로 밀려난데다, 조기퇴직우대제도에 따른 특별 가산금 때문이었다. 그는 퇴직 후 한 달이 되어 갈 때 즈음 그 동안 꿈꿔왔던 일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바로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보는 것. 그러나 아내는 앞으로의 노후도 있는데 캠핑카에 들이는 지출은 안 했으면 하고, 휴가를 길게 내기도 어렵다고 말하고, 그는 뭔가 소중한 것이 산산조각 난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재취업 자리라도 있으면 모를까, 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저금도 나날이 줄어들기만 하지. , 장년층 자살이 많은 것도 당연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앞으로 좋은 일 같은 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내게는 이런 좋은 일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희망이잖아. 뭔가 희망이 필요한 거야."

정년 후에도 대부분은 재취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정년퇴직이라는 제도는 오로지 회사의 입장만 고려해 만들어낸 냉정한 제도라는 생각도 든다. <펫로스>의 다카마시 요시코의 남편은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으로 밖에서는 쾌활하고 화제도 풍부하지만,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볼 뿐 그다지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는 인터넷 블로그를 시작해 거의 하루 종일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부부 간의 대화는 더욱 없어졌다. 정년퇴직 후 시간이 많아지면 그 동안 함께 못한 시간들을 더 많이 공유할 수도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도 같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은 애견 보비, 그녀는 애견 모임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시키고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지만, 나이 든 보비가 병에 걸리게 되자 하루하루가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다. <여행 도우미>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시모후사 겐치이는 예순 살이 되자 회사에서 해고된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취직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운전사가 남아도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헌책방에서 추리소설을 즐겨 읽던 그는 비슷한 취향의 유부녀를 만나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병든 남편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죽겠다고 결심하고 죽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에 끌어당겨지듯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행선지가 정해진 트럭을 담담하게 몰고 가듯이, 어떤 장소로 피해 옮겨 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내 인생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구나.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트럭으로 운반하는 내 일은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55세라는 나이는 많은 것 같으면서도 아직 늦지 않은, 그러니까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늙었다고 말하기엔 어딘지 아까운 그런 나이이다. 수십 년을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았던 이들이라면, 정년퇴직 후에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막막할 것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어린 사람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절만이나 실의를 겪고 나서, 용기도 없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들었을 때는 더욱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는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건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한번뿐인 내 인생 아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지나가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도 내일은 온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당신의 인생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막막해하기보다,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들에 감사해보자.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해보지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실컷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용기를 가지면 당신의 인생은 이전보다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5-04-2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에 씽긋~ 웃으며 ^^ 잘 읽었습니다. 필요한 책이네요.

피오나 2015-04-26 12:3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 나이때가 되었을 무렵에..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매 순간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빛나서 시간이 지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삶이 퍼펙트 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되돌아보면 내 삶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뭘 해도 나쁜 결과만 봐야 했던, 이렇게 계속 좋지 않은 일만 생겨도 되는 걸까 싶었던,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억울하기도 했던 그런 시간들. 당시에는 세상이 전부 끝장나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했었는데, 어느새 지나고 보니 나는 그 순간들을 마치 남의 일이었던 것 마냥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굳이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쓰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는 잊어버리고 싶었던 시간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 기억을 팔아서 무언가 가치 있는 걸로 바꿔주는 곳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자신의 기억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없애버리겠는가? 어차피 우리가 생의 모든 순간들을 전부다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니, 그래 몇 가지 기억쯤 없어도 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자신만이 가지고 있던 그 기억들이 점점 사라지고 나면, 남아있는 ''를 온전한 ''로 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기억이 없다면, 타인과 구분되는 것이 허울뿐일 터인데, 그럼 빈 껍데기처럼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물고기들은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환전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기억과 맞바꿀 수 있을 뿐이죠.

스물 아홉의 나는 스승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독립해 프렌치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어 버려다 오픈을 앞두고 모든 게 박살 나 버리자, N국 국경 근처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렇게나 숙소를 정하고 빈둥거리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국경 너머의 P국으로 가기 위해 메카데로 왔다. 그는 그곳에서 열 살 연상의 전 연인 로나와 동갑내기 백인 주코를 만나 함께 요리를 해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그들과 파티를 즐기다 로나가 떠나는 날이 되자 부랴부랴 P국으로 함께 가기로 한다. 그들은 출입국 관리소에서 자리를 비운 관리를 반나절이나 기다리다 밖으로 나왔고, 그곳을 걸어 다니다 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소년들을 만난다. 소년들은 보름달이 뜰 때마다 장이 선다며, 그들을 국경시장으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온갖 물건들이 가득 있었고, 배낭 객들이 골목마다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고, 거기서 계산을 하려다 난관에 봉착한다. 이곳에서의 화폐는 강 상류에서 잡히는 물고기 비늘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 있다니, 그들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의 기억을 판다. 보통은 첫 거래에서 출생부터 두세 살까지의 기억을 판다고 하는데, 어차피 생각나지도 않는 기억이니 없어도 별 상관 없겠거니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씩 자신의 기억을 팔아 바꾼 화폐로 시장의 갖가지 물건을 정신 없이 사들이다, 결국 기억을 모조리 팔아 버리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기억을 모두 전소시켜버린 로나는 더이 상 로나가 아니었다. 우아한 독신 귀족 같던 여자는 이제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장이 열리기 때문에, 달이 기울어지자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한다. 붐비던 시장은 열두 개의 골목에서 여섯 개의 골목으로, 거기서 다시 세 개의 골목으로 서서히 줄어들어 결국 단 하나의 골목만 남기고 사라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달의 음모였던 것일까. 표제작인 <국경시장>은 이렇게 환상동화 같은 미스터리하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술궂은 삶에 이제는 지쳐버렸다. 더 이상 사람들의 결점을 찾아 음미하는 일이 즐겁지가 않다. 어릴 때는 똑똑하다고 따돌림을 받았고, 커서는 음침한 성격이라며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모두가 피서지로 떠난 여름에도 혼자 도서관에 앉아 모래 대신 잉크를 묻히던 청춘의 시간들. 그때 내 목표는 일찌감치 교수가 되어 지나치게 똑똑한 나머지 마음의 온도를 잃어 차가워진, 그런 인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쿠문>의 나는 여섯 살 어린 동생의 재능을 질투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매를 죽도록 미워했다. 선천적으로 평형기관에 이상이 있어 자주 넘어지곤 하는 동생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외면한 순간, 그들 사이를 차 한대가 지나갔고, 그렇게 동생은 두 번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천재 동생의 언니에서 바보 동생의 언니가 되고, 끝을 알 수 없던 질투가 종결되자 목적과 생기를 잃은 나는 권태에 빠져 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타블로이드에서 믿거나 말거나 가십 기사를 읽게 된다. <쿠문>은 일명 천재 병이라고 해서 잠복기에는 갑자기 명랑하고 영리한 사람이 되어 주변의 인기를 차지하고, 첫 번째 발작이 시작되면 갖은 환영을 보며 온갖 창조적인 작업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3~5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이 병은 일종의 불치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에게 쿠문에 걸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짧고 고통스러운 천재의 삶과 이전의 삶 중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나는 결국 죽음을 불사할 용기를 자신의 재능에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도 있을 법한 스토리라 잔혹 동화 같지만 그럼에도 어딘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였다. <필멸> 역시 뛰어난 재능을 얻기 위해 무섭게 달려드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건강과 재산이 모두 파산한 앙투안은 세 의 동료들과 광란의 밤을 보내고 불멸의 곡을 작곡하기 위한 영감을 얻는다. 그런데 그 영감이 그에게만 내려진 게 아니라 함께 했던 세 명의 동료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찾아왔다면? 그렇다면 그 곡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 것일까. 재능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버린 이는 그걸 얻기 위해 그 어떤 방법도 서슴지 않고 달려든다. 그것이 설사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쿠문> <필멸> 그리고 <국경시장> 모두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삶을 파멸로 이끄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작품의 배경이 현실 같으면서도 환상적인, 꿈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섬뜩하다는 데 있다. 어디선가 멜로디 인형의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로 가다가 갑자기 잔혹동화의 결말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것이다. <동족>에서 글자를 읽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킹코브라 여왕의 죽음이나 <관념 잼>에서 결혼과 회사생활에서 모두 실패해 지방으로 이사 온 낙경 씨가 점점 '사물화'되어가는 모습은 사실 좀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김성중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이 들어보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세계 말이다. 그런데 그곳은 묘하게 자꾸만 빠져들고 싶은 세계이기도 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야기의 매력이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슬플 땐 절대로 날 위로해줄 만한 사람들을 향해 고개 돌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래서 우리는 더 슬퍼지지.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해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가, 어느 날 부모님이 나와 함께 있는 걸 썩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가 생각만큼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란다. 힘겨운 일이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전작인 <내 욕망의 리스트>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늘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와 자고 싶어서 그녀가 예쁘다고 칭찬을 하고,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진실을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사랑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거짓말을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재능이 있으니 멋진 삶을 살 거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인생을 바꾸는 건 책에서나 가능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면, 그제야 그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삶이 거기서 거기이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평범한 삶이 대부분이라는 걸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엄마들은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들은 대개 상대를 배려해서이거나, 혹은 마음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는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 <행복만을 보았다>에서는 정반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마음 한편에 연민이나 동정, 인정 같은 것을 놓아둘 자리 없이 냉철하고, 계산적으로 일해온 그는 양쪽 보험회사의 입장에서 셈을 하고 가치를 따져봐야 하는 손해사정사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하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그는 사고가 나면 신체적 피해, 심리적 피해, 직업적 손해, 의료 비용, 손상된 차량의 가치, 심리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 등등을 따져서 계산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면서 그는 종종 자신이 타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조사 중에 발견된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어서 누군가를 곤경에서 빠져 나오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누군가의 인생을 끝장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최소한으로 지불하게 만들어서 돈을 받는 사람이에요. 인정도 없고 연민도 없는 사람. 조난자에게 손을 내밀 권리가 없을뿐더러 마음 한편에 친절을 놓아둘 자리도 없어요. 사람들이 날 인정머리라고는 없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만들었어도 난 그저 가만히 받아들였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못 본 척해야만 돼요. 그렇지 않나요, 그제스코위악 씨? 당신이 물에 빠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대신 당신은 마음껏 날 욕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복종은 비겁한 사람들의 자존심이죠. 훈장 같은 것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앙투완은 스스로를 '결핍'속에서 자랐다고 기억한다. 어머니의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의 품이 아닌 곳에서 허전함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 말이다. 반면 쌍둥이 여동생 둘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나, 그들 중 한 명이 죽는 바람에 가족의 행복도 끝이 난다. 여동생이 죽자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고, 남은 여동생 안나는 어머니와 쌍둥이 자매가 곁을 떠난 뒤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는 아버지를 향한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매주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그도 어른이 되어 나탈리라는 매력적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조세핀과 레옹이라는 남매를 둔 가장이 되어 살고 있다. 하지만 한 순간의 연민으로 실직자가 되어, 아내도 잃고, 나중엔 결국 아이들 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한테 느꼈던 증오심을 스스로에게 돌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저도요, 아빠, 죽고 싶을 때가 있어요.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부는 주인공 앙투안이 아들 레옹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2부에서는 모든 걸 잃어버린 뒤 멕시코로 추방된 이후의 삶과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과정, 3부에서는 그의 딸 조세핀의 시점에서 그녀가 아버지에게 받은 충격과 상처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개 같은 일이 벌어졌던 그 첫해 5 5, 끔질’(끔찍한 질문)이 다시 떠올랐어요.

왜 당신은 날 먼저 쏘았나요?

조세핀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대체 그는 왜 딸에게 총을 쏘게 된 것일까. 그는 나름 자신의 입장에서 딸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당한 상대방의 입장까지 고려하지는 않았다. 그가 평생 원망하고 서운해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눈이 멀어 아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바람을 피웠던 그의 아내 나탈리도, 오로지 오토바이 때문에 엄마의 새 남자친구 아저씨에게 마음을 연 레옹도, 자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한 아빠라는 존재를 용서하고 인정하기 위해 애쓰는 조세핀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복만을 보려 한다.

나의 엄마, 네 친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거짓말도 보이지 않고, 네 엄마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탓에 네가 생기기 1년 전에 지운 아기도 보이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무한하고 거대하면서도 비극적인 그 사랑도 보이질 않네. 당시에 내가 흘렸던 눈물도, 소파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던 무수한 밤도, 되살아난 야수의 모습도 보이질 않네.

그저 행복만을 보았어.

극중 앙투안은 레옹이 태어날 무렵의 사진을 보며 그 속에서 당시의 상처, 비극, 우울함 등은 보이지 않고 행복만 보인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평범한 어느 집에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단란한 가족 사진 말이다. 사진이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기 위한 장치이다. 영원히 간직할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체크하고, 밝게 웃는 표정을 짓는다.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도 십 여 년 전에 찍은 가족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다. 사진 속에는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도 계시고, 지금보다 많이 정정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도, 훨씬 어려 보이는 파릇파릇한 나와 동생의 모습도 있다. 물론 되돌아보면 당시에 마냥 행복한 일,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사진 상으로는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라도 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붙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짓고 있는 미소가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다면 그 순간만큼은 진짜처럼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희망이 정말 행복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동네 아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막과 맞닿은 황무지에 보란 듯이 우뚝 서 있는 대저택에 살고 있는 자발라위가 아들 다섯 명을 부른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다들 그 자리는 당연히 장남인 이드리스의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발라위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 넘고 막내인 아드함을 지목한다. 형제들은 모두 곤혹스러웠고 장남인 아드리스는 분노해서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한다. "저와 저의 형제들은 지체 높은 귀부인의 자식이지만 이놈은 흑인 노비의 아들이에요." 라고. 그러나 자발라위는 아드함이 소작인과 임차인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글을 쓰고 계산을 할 줄도 알기 때문이라고 그의 반발을 묵살시켜버린다. 아드리스는 격분해 노비의 자식을 자신의 위에 두고 싶어하신다면 아버지에게 복종하지 않겠다며 격분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너는 현명해. 나는 너의 후손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너에게 알려 주려고 왔어. 그건 바로 네가 오늘 겪게 될 일이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거야. 앞으로 자손을 많이 낳아 시끌벅적한 일가를 이뤄야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 이뤄질 거야. 네 생각은 어떠냐?"

쫓겨난 그는 매일마다 못된 짓에 빠지고 점점 더 타락해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고, 식당에서 계산 없이 배를 채우며, 술을 마시고 망나니 짓을 해댄다. 그러던 어느 날, 멀쩡한 모습으로 아드함 앞에 나타난 아드리스는 지난 날을 후회하는 것처럼 그를 설득해, 아버지의 유언장에 재산에 관한 모든 서류가 있으니 그것을 몰래 확인해보자고 그를 유혹한다. 결국 아드함은 형과 아내의 부추김에 힘입어 아버지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 들키게 되고, 역시 집에서 내쫓기게 된다. 여기서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 있는 하느님이라면, 막내 아드함은 아담, 부인 우마이마는 이브, 장남인 이드리스는 사탄으로 상징된다. , 이 작품은 알레고리 소설인 것이다.

알레고리 소설이란 무엇이냐 찾아보니 '인물, 행위, 배경 등이 표면적인 일차적 의미와 이면적인 이차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란다. 쉽게 <이솝우화>를 예를 들면 일차적으로는 동물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이면에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작품 해설을 참고하자면 '일신교인 유대교, 기됵교, 이슬람교의 신앙을 알레고리 기법을 차용하여 본의를 암시하고 알레고리의 특질인 이원론적인 구조와 객관전 현세와 교훈적 메세지를 드러낸다'고 되어 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이어 갔고 모두들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리파아도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진정한 이야기꾼이었고 그가 하는 이야기는 실화였다. 얼마나 자주 압다가 그에게 말했던가!

"우리 동네는 이야기가 많은 동네란다."

정말로 이야기들은 좋아할 만했다. 이 이야기에는 그가 놀이터 삼아 놀던 무깟탐 시장과,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된 외로움을 보상할 만한 위안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내 장들의 숫자는 머릴말을 제외하고 코란의 114장과 같은 숫자로 구성되어 있고 주된 인물들은 아라파를 제외하고 코란과 성서 속 성인과 선지자들이라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이 작품과 코란과 성서 간의 상호 텍스트성을 간파할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종교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그러니까 이런 분야로는 완전 문외한이라서 작품을 읽으면서 내재된 의미까지 바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작품 해설을 보고, 다른 리뷰들을 읽으면서 아, 그런 거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어렵지는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담이 사탄과 이브의 유혹에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 아드함도 이드리스와 우마이마의 부추김에 대저택에서 쫓겨난다. 질투심에 카인이 아벨을 살해했던 것처럼, 까드리도 질투로 인해 후맘을 살해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아담의 자손들은 번성해서 세상을 이루며 살아가고, 자발라위의 후손들도 동네가 커지고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하나의 동네, 즉 사회를 이루게 된다.

지금 우리 동네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카페에서 리벡의 반주에 맞춰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 자발, 리파아, 까심이 대체 누구지? 이야기가 아닌 카페 밖 어디에 대체 그들의 흔적이 있다는 건가? 어둠 속에 잠긴 동네와 꿈을 노래하는 이야기꾼들만 눈에 들어온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동네 사람들은 외부 세계와는 철저히 담을 쌓고 대저택에 칩거한 자발라위에게 모습을 드러내 세상을 올바로 잡아 줄 것을 간원한다. "당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어떻게 지내세요? 더는 존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세요?" 라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에게 아버지도, 세상도, 땅도 희망도 없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막막하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신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식의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은 세상에 천지이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 없을 거야. 싶은 일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벌어지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가느냐 아니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구원하는 희망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극중 카이로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동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과연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평화, 희망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