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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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어른들 말에는 무조건 반항하고, 말만 많은 중2 학생들과 열정 넘치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김선영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엄연히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는데 왜 어른인 내가 읽어도 이렇게 공감되고, 재미있을까라는 것이다. 분명히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고,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도 그들만의 불안과 고통들이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고 나도 이해 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각 세대의 가려움(불안)을 꺼내어 서로가 서로에게 납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해'에 방점을 두고 시작된 이야기라 어른의 시선이지만 담백하게 표현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과는 상반된 이 아이들의 반응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수인은 눈앞이 아득했다. 어떤 것도 순탄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과도 학교와도 매번 힘든 고갯길을 넘는 것처럼 숨이 가빴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동굴의 아가리처럼 커졌다. 수인은 아이들과 소소한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일종의 염증 같은 거였다. 수인은 꼭 그 정도의 비겁함과 꼭 그 정도의 혈기 방자함, 난관이 닥치면 뒤로 주춤 물러서는 겁쟁이에 소심함까지, 밀어붙이지도 못하면서 비겁하기는 싫고 그게 싫어서 덤빈 이후 다시 비겁해지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자신을 보며 네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찾아온다. 그래, 이게 나야, 하고 그만 두 손 들고 싶었다.

수산나 고등학교에서 성공적으로 도서관을 꾸려가던 수인은 울창한 수풀 속에 방치해둔, 낡은 목조 건물의 도서관이 있는 형설중학교 사서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는다. 새로운 학교에서 기존 선생님들의 텃세도, 반은 강제로 모임에 나온 독서회에 나온 아이들과의 첫 만남도 만만치가 않다. 그녀에게는 상위 1% 엘리트에 속하지만 늘 불안에 쫓기는 연인 율이 있다. 아직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커플이었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더 나은 스펙을 쌓겠다며 일방적으로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관행에 젖어 있는 새 학교의 시스템과 동료 교사들도,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학교생활도 그녀에겐 감당하기 벅차기만 하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수인이 무작정 이해심 많거나, 완벽하게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려는 뻔한 선생님 캐릭터가 아니라서 무엇보다 공감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인물이라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좋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싶다.

폭력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전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도범은 이번에는 부모님을 위해 일진 생활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도범을 괴롭혀 일진에 돌아오게 하려는 대호 일당에게 보란 듯이 손가락을 짓찧었다. 새처럼 생긴데다 촉새처럼 말이 많다고 해서 새라는 별명을 가진 세호, 말더듬증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고 가방 속에 망치를 넣어 다니는 해명(해머), 혼자서 겉돌며 책 읽기를 즐기며 책이 자꾸 말을 한다는 이담까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사연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입체감 있고, 현실감 있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왜 자기 이야기의 뒤를 이어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책을 봤어요>라는 이담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충분히 공감할만한 인물이기도 했다. 책이 누가 더 이야기를 붙여달라는 말처럼 들린다는 건, 책을 그만큼 사랑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담이는 제대로 책과 놀 줄 아는 아이였던 셈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자신을 내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밖에서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끄덕 없어요. 밖이 뭐가 중요해요. 안이 중요한 거지. 스스로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밖에서 아무리 채우려고 해보세요, 채워지나, 오히려 불행하고 불안한 자신만 발견할 뿐이죠. 그런 어른들이 희곤이 같은 아이들의 싹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학생들에게도 예측 불허의 인물로 치부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왕따 처럼 구는 특이한 인물인 미술 선생 양희순은 아이들이 또라이 또는 광녀라고 부르는 것처럼 정말 이상해 보였다. 수업을 하다가 혼자 제멋에 겨워 자지러지게 웃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어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낯설게 하기의 달인으로 통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인이 도서관 건물과 교무실 건물을 바꾸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해서 모든 선생님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을 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수인의 편이 되어 주었고,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버려 학교를 떠도는 희손이라는 학생도 편견 없이 바라보며 챙겨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수인의 눈에도 어떤 규범과 제약도 너끈하게 뛰어넘는 에너지 넘치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수인의 어머니는 지독한 가려움을 가장 볼품없는 중닭에 빗대어 말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겄냐... 그애들이 지금 올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겄냐."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것도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수인은 짧은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만다. 그제야 그들의 행동이, 말이 모두 이해가 되었던 거다. '가려웠구나, 가려운 거였구나.' 하고 말이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막막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마다 이렇게 속 시원히 긁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엄마란 존재밖에 없지 않을까. 살아 있는 것들은 죄 가려운 법이라, 누구나 자신만의 가려운 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 던져도 통찰력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삶의 지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인의 어머니도, 미술 선생 희순도, 그리고 수인과 아이들도 모두 각자만의 가려움을 견디고, 더 멋진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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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입시
미나토 가나에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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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미나토 가나에가 최초로 드라마 극본에 도전했던 작품이다. 후지TV 인기리 방영했던 드라마 〈고교입시〉가 소설로 출간되었다. 명문고 입시를 둘러싸고 48시간 동안 펼쳐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으로 과열된 입시 경쟁과 집단 따돌림, 인터넷상에서 붉어지는 익명성의 폭력 등을 다루며 학교의 진정한 역할에 대해 그리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 학생 입장에서, 학부모 입장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고교 입시'를 얘기하고 있다. 화자가 계속 바뀌고, 매 장마다 한 줄씩 의문의 인터넷 게시판 글이 보여진다. 입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시판에서 실시간으로 올려지는 글인데, 놀랍게도 같은 시각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입시 관련 상황들이 즉각 업데이트되고 있다. 등장 인물도 많고, 그들 모두가 각자 화자로 등장하다 보니 초반에는 내용 파악이 좀 어렵기도 하지만 인물보다는 벌어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퍼즐은 어느 샌가 맞춰진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형제가 있는데, 형은 이치고에 붙어서 졸업한 후 삼류 대에 진학하고 동생은 이치고에 떨어져서 다른 학교에 가서 졸업한 후 일류 대에 합격했다고 쳐. 어느 쪽이 자랑스러운 아들인지 알아?"

아이다 선생이 간단한 예를 들어 쿄코 선생에게 설명했다."

"난 동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의 상식으로는 형?

"정답."

인생을 걸고 시험을 치지만, 채점하는 놈들은 타인의 인생이 걸렸다는 생각 조금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한 적 있어?

 

이야기의 주요 배경인 지역 최고의 권위를 가진 명문고인 이치고는 비상식적일 정도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서 맹목적인 선망을 받고 있다. 이곳의 합격 여부가 마치 인생의 승자와 패자를 정해버리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러니 졸업생들의 자부심은 대단하고, 이치고 출신 교사들인 이른바이치고 OB’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치고에 합격한 후 책상을 버리는 행위를전설이라 부르며 멋있는 전통인양 떠들고, 현재 비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거나, 변변치 않은 직장도 못 다니고 있더라도 이치고 출신이면 전혀 상관없고,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더라도 일반 고등학교 출신이라면 어느 정도 무시하는 분위기마저 생성되어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 가장 명문고인 이치고의 입시 전날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시험을 시행하는 날을 거쳐 합격자 발표 날까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입시 전날 <입시를 짓밟아버리자>라는 내용의 벽보와 칠판 위에 숨겨진 교사의 휴대전화 등으로 불길한 암시를 주며 시작된 입시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입시 중간에 휴대전화가 울려 실격 당한 학생은 알고 보니 현 의원의 딸인데다, 자신은 그에 대한 전혀 주의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 소동에 편승해 누군가는 커닝을 했다고 하고, 채점을 위해 걷은 시험지 중에 한 장이 모자라고 빈 시험지도 발견된다. 나중에 시험지를 찾게 되지만 동일한 수험번호가 두 개 발견되는데, 유난스러운 동창회장의 아들의 시험지로 밝혀지는데다 그 두 장의 점수는 또 확연하게 다르다. 휴대전화 사건으로 인한 실격과 시험지 분실과 관련해서 극성맞은 부모들은 학교로 난입하고 우연히 발견된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렇게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에 대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사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입시 전날과 당일에 발생한 사건에 점점 휘말리기 시작한다.

 

 

"공립 고등학교 입시에서 채점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게 들통이 났구나. 학교는 비밀주의여서 채점 실수가 있어도 잠자코 있을 것 같은데."

형은 채점 실수를 발각한 경위를 설명해주었다. 수험생이 현 교육위원회에 답안지 개시 청구를 했다고 한다.

개시 청구에는 2단계가 있다. 한 가지는 다섯 과목의 점수만 보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채점이 끝난 자신의 답안지를 보는 것이다. 후자는 형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아는 것은 자신의 점수뿐이다. 학교별 합격 최저점은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합격 점수에서 몇 점이 부족한지는 알 수 없다.

합격 최저점을 공표하지 않는 것은 학교 순위가 명확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번에 채점 실수를 발각한 사람은 입시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1단계인 점수 개시 청구를 했다. 그랬더니 임시 채점 결과와 크게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제2단계인 답안지 개시 청구를 했더니, 채점 실수가 발각되었다.

 

우리나라의 비평준화 지역 고등학교 입시나 명문 대학에 대한 선망, 그리고 매해 수능시험 후에 자살 사건들이 숱하게 보도되는 우리의 입시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까지 합격에 목을 매는 분위기 속에서 공명정대하고 정확하게 처리되어야 할 시험 채점에 문제가 생긴다면, 극중 이치고의 상황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것이다. 채점도 사람이 하는 거라면 당연히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학교가 분명히 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극중에서 보도된 뉴스로는 <과거 5년간의 채점 실수가 500건 이상 있었던 것으로 판명. 현 교육 위원회는 합격 여부 판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나오지만, 이 또한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채점 실수에 따라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불합격해서 그 이후의 삶 자체가 달라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와중에 학교에 쳐들어온 학부모들을 어쩌지도 못하고, 사라진 시험지의 처리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던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48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긴박감 넘치게 펼쳐진다. 미나토 가나에 특유의 교차 서술도 여려 명의 독백으로 숨쉴 틈 없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드라마로 먼저 만들어진 작품을 소설로 바꾸어서인지 기존의 작품에 비해서 밀도는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화자들의 독백 가운데 툭툭 끼어드는 인터넷 게시 글의 효과도 영상으로 본다면 바로 이해가 되고 긴장감을 주었겠지만, 초반에 사건 진행이 두드러지기 전에는 이야기 전개를 더디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직이 고등학교 교사였던 탓에 누구보다도 리얼한, 진짜 학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 이들의 유난스러운 고교입시나 우리네의 살벌한 대학입시나 별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되고, 몰입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도 모르게 진정한 학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입시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벚꽃이 피는 이 날은 절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새로운 무대의 출발점이다. 고등학교란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곳이니, 아이들은 모두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부딪히며 해나가면 된다. 때로는 깨지고, 다치고, 눈물 흘리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온 힘을 다해 막아주는 어른이 있다.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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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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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이번 신작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과 함께 이어지는 미국 3부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1960년대 말의 혼돈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껏 달아오른 미국의 분위기가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면서 어떻게 한 순간 사라지는지를 한 개인의 삶 속에서의 비극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 유대계 미국인인 스위드 레보브는 뛰어난 외모와 온화한 성품, 거기에 운동 능력까지 갖춘 위퀘이크 고등학교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스위드라는 이름은 마법이었다. 그는 풋볼에서는 엔드, 농구에서는 센터, 야구에서는 일루수로 활약했는데, 팀의 성적과는 별개로 치어리더들은 스위드만을 위한 응원 구호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그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했을 정도로 또래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 또한 전폭적으로 그를 우상처럼 숭배했던 것이다. 이것은 스위드의 남동생 제리와 동기였던, 작품의 서술자이기도 한 네이선 주커먼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인물은 필립 로스의 작품 여럿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필립 로스의 문학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네이선은 1995년 동창회에서 스위드의 비극적 인생에 대해 듣고서 그에 관한사실주의적인 연대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적 열망을 느끼고 주커먼의소설혹은상상속에서 스위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행복은 인위적인 것이 되며, 그나마도 자신과 자신의 역사와 고집스럽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갈등이나 모순에 온화하게 대처하던 착하고 다정한 남자, 공정한 적과는 무슨 싸움을 하더라도 분별력 있게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던 자신만만한 운동선수 출신의 남자는 공정하지 않은 적, 즉 인간관계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악과 만나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나버리고 만다.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천성적 고귀함을 타고났던 사람은 너무 많은 고통을 겪는 바람에 다시는 순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스위드는 2차 대전 후의 호황기를 누리며 자라 미스 뉴저지 출신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아버지의 장갑공장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전원적인 집까지 마련하고, 목가적인 삶을 향한 그의 꿈은 모두 완벽하게 실현된 듯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스위드의 찬란했던 꿈이 산산이 깨지고 마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딸 메리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살아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역사적 광풍 속으로 휘말려 들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반전운동에 도취된 딸은 미국인을 향해 폭탄 테러를 가하고, 가업은 서서히 몰락하고, 사랑하는 아내는 외도를 저지른다. 보통의 미국인들처럼 평범하고 목가적인 삶을 꿈꾸었던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는 한 유대인 가족에게 닥친 이 비극은 시대적 사건들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비극적으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그리고 있다. 1960년대 말 미국은 위기에 처한다. 2차 대전의 승리가 가져온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집단적 도취의 기간을 보낸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뛰어들지만 수세에 몰린다. 급기야 베트남의 기습으로 미국 대사관마저 피해를 입게 되자, 미국 내 반전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어지면서 바야흐로 반정부, 반체제 운동으로 폭력과 무질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갔던 무수한 참전용사아버지들은 졸지에 반전주의자아들들의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고, 피땀 흘려 일군 가업은 인종차별에 반발한 흑인들의 폭동으로 어려워진다.

 

미스 아메리카를 원했어? 그래, 형은 미스 아메리카를 얻었네. 말 그대로 말이야. 형 딸이 미스 아메리카잖아!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 그래, 이제 그렇게 됐네. , 딸 덕분에 말이야. 이곳의 현실이 바로 형 입안에 있어. 딸 덕분에 형은 그 똥더미, 진짜 미국의 미친 똥더미 속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한 깊이 내려가 있단 말이야. 미친 듯이 날뛰는 미국에! 길길이 날뛰는 미국에! 젠장, 시모어, 이 빌어먹을 인간아, 네가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자신의 삶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어 고뇌하는 레보브, 그의 딸 아이는 처음에는 말더듬이였다가, 다음에는 살인자였다가, 다음에는 자이나교도가 된다. <그는 평생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잘못을 저질렀다. 그가 그 자신 안에 가두어두었던, 그가 있는 힘을 다해 깊이 묻어두었던 모든 잘못됨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는 표현처럼 이 또한 모두 그의 잘못인 걸까? 미국의 목가가 파괴된 이유를 찾으려는 네이선 또한 스위드의 삶을 파헤쳐가지만 사실 이것은 답 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선하고 도덕적인, 한때 모두의 영웅이었던 그의 노력과 성실함으로도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생의 광포함. 이것을 과연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유대인인 스위드가 이방인과 결혼까지 하여 미국 주류 문화에 깊숙이 동화되었다는 환상에 빠져 살다가 딸이 미국 사회의 격변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 전체까지 크게 뒤흔들리게 되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 자체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전작인 <에브리맨>에서도 주류의 삶을 살아왔다는 착각에 빠졌던 한 유대인의 말년을 그린 적이 있는 필립 로스는 이번 작품에서 비로소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서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가 유대인 작가만이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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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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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고, 행방불명이 65, 상이 후 사망 추정자는 376명이다.

이 중 30명은 만 18세 이하였다. (고등학생 11, 중학생 6, 초등학생 2)

26년이 지난 현재, 65명이 행방불명자로 등록되어 있으며

최초 발포 명령자와 장소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1980 5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바라본 열다섯 어린 소년의 시선은 어떨까. 소년의 눈에 입관을 마친 뒤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도,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것이며,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느냔 말이다.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궁금해하던 소년이 물었을 때 함께 있던 누나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대답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아마도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던 건 이 지점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5.18 당시의 상황을 기억할만한 세대도 아니거니와, 주변에 그와 관련된 이들을 만나본 적도 없었기에 솔직히 영화나 책으로만 접했던 그 사건이 어느 먼 외국의 일인 것처럼, 그러니까 남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었다. 가끔 관련된 소재의 영상을 접하거나, 영화를 보게 되거나 할 때 너무도 어이가 없어 그들의 입장에서 분노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그 순간일 뿐 이야기가 끝이 나면 다시 너무도 먼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차라리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라고 싶었던 비현실적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어 가는 내내, 어쩐지 숨죽이고 가슴 조이며 읽었던 것 같다. 편한 마음으로, 그저 소설을 읽는 다는 기분으로 읽어나가기엔 너무도 무겁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한강은 열 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5.18 당시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낸다. 6개의 이야기와 에필로그는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5년뒤, 10년뒤, 20년뒤.. 이렇게 시간을 건너면서 이어진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한 순간에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명들.. 열 여섯 살 짜리가 자신이 마치 일흔여섯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을 만큼 영혼이 부서진다는 게 대체 어떤 걸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데모로 점철된 대학생활 대신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여고생 은숙은 원고의 검열 문제로 끌려가 맞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선주는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대학생 진수는 연행된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고통 받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들은 살아 남더라도 생이 치욕스러운 고통이 되거나, 일상을 전혀 회복할 수 없어 35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기억은 영원히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그것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들이 서서히 마모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당시, 인구 40만의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80만발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도록 어린 그들까지 시위현장으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다만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하나였다고 한다. 그들도 당연히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가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양심'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날마다 혼자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운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도 싸운다. 과연 이게 살아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자비한 군인들도, 그런 명령을 내렸던 이들도 모두 인간이었다. 지금 우리가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 또한 인간이란 것을 되새겨보자니, 어쩐지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조그만 라디오를 선물 받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디지털 계기판에 연도와 날짜를 입력하면 된다고 했다. 그걸 받아 들고 나는 '1980.5.18'이라고 입력했다. 그 일을 쓰려면 거기 있어봐야 하니까. 그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인적 없는 광화문 네거리에 혼자 서 있었다. 그렇지, 시간만 이동하는 거니까. 여긴 서울이니까. 오월이면 봄이어야 하는데 거리는 십일월 어느 날처럼 춥고 황량했다. 무섭도록 고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2013 1월의 서울 거리는 며칠 전의 꿈속처럼 황량하고 차가웠다. 예식장의 샹들리에는 화려했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사랑하는 이들이 죽은 뒤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자신의 삶 자체가 장례식이 되어 버린 이들. 만약 그 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 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절대로 아물지 않는 기억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강이 마음을 다해 쓴 이 글을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읽어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해 모두 기도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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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차윤진 옮김 / 북뱅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는 그런 일상생활이 첫 번째 인생이고,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라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우산을 펴거나 비옷을 꺼내 입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린 채 걸음을 서두른다. 하지만 작가라면 노트와 펜을 들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 웅덩이를 바라보며 물방울을 관찰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조금 어수룩한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글쓰기란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고,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삶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억하고 글로 옮기는 법을 찾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책을 읽고 실제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신작 <버리는 글쓰기>에서는 '왜 작가들은 늘 불행한가? 행복한 글쓰기란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글쓰기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성공 이후 10, 극심한 슬럼프를 맞이한 저자가 처절한 내적 고통을 겪으며 정립한 자신만의 글쓰기 훈련 법을 진솔한 경험담과 함께 풀어낸 것이다.

글쓰기는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과 외면, 영혼과 육체를 통합하고 실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운동선수들이 근육을 훈련하며 단련한 몸으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듯, 글쓰기 훈련 법을 통해 글을 쓸수록 우리는 점차 삶의 핵심에 다가가게 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전히 솔직하지 못하면, 독자를 납득시킬 만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만큼의 희열과 보람을 주는 주체적인 삶의 방식으로써의 글쓰기를 다시금 제안한다.

 

첫 번째 소설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조그만 책상 위에서 썼어. 하루에 점심시간 35분 정도를 할애해서 매일같이 썼지. 여름 방학 때는 9시부터 12시까지 주 4회 보모를 고용해서 애를 맡기고 그 시간에 소설을 썼어. 요즘은 자꾸 이 시기를 떠올리려고 노력해. 왜냐하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정규직 교사로 근무하는 데다가 이제는 세 아들을 키우는 싱글 맘이기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며 내 자신을 딱하게 여길 때도 있거든. 여기서 한 시간, 저기서 삼십 분. 글을 쓸 시간은 딱 그 정도면 돼. , 시작해. 펜을 움직여. 그게 다야. 나머지는 다 헛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변명만 늘어놓고 글은 쓰지도 않으면서 괴로워하기도 해.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사실 간단해. 그냥 쓰면 되는 거거든.

 

첫 소설을 마치고 플롯 짜는 것에 대한 필요성으로 공부를 했던 케이트의 경우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재지 말고, 조절하지 말고, 그저 쓰기만 하라는 것 말이다.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대고, 당신 지갑 속에 단돈 1달러만 남아 있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수술을 받은 어머니도 걱정스러울 수 있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갑자기 보이지 않고, 고양이가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발기 찢고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꺼내어 잡고 그저 쓰고, 또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전작부터 주장했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내면의 본질적인 외침을 쓰는' 방법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나 구조 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녀가 터득한 특별한 글쓰기 훈련 법을 제안하고 있다. 글에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자신에게 솔직한 작가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바쁜 일상 속에서 애당초 글 쓸 시간을 어떻게 마련하냐고 반문하기 일쑤라고 한다. 힘든 정규직 직장에 간신히 다니고 있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도 있으며,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해야 할 일들 속에서 대체 언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평하기 전에, 우선 시작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다. 테니스에 입문한 첫 주부터 윔블던 경기에 나가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먼저 시작하고, 그것이 꾸준하게 이어져서 시간이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작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제는 뭔가 본때를 보여주자고 말이다. 언제 시작하냐고? 헤밍웨이가 말했듯이 "너무 이르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늦어 터지지도 않게."

글을 쓴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나는 안다. 나와 당신이 유명한 작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글쓰기는 시간이다. 멋진 글을 쓰고 싶으면 일단 엉덩이를 붙이는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이 책에서 철저히 내면의 목소리에 따르는 그녀의 훈련 법을 따라 하다 보면 누구라도 유혹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늦지 않았다.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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