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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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지질학자들은 판게아의 운동학적 춤에 대체로 동의한다. 이렇게 해서 초대륙이 무엇을, 어디서, 언제 형성하는지 답이 나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초대륙 순환이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머피와 낸스의 난제로 돌아왔다. 우리는 판구조론과 판게아가 실제로 형성된 원리를 융화시킬 수 있을까? ... 초대륙 논쟁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기존 모델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맨틀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너무 큰 게 빠져 있었다.             p.83


지구의 표면은 여러 개의 단단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조각을 '판'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일 년에 몇 센티미터 정도라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지만, 거대한 판들의 움직임은 그 경계에서 지진과 화산 활동을 만들어 낸다. 바다 또한 크기와 모양이 변하고 있는데, 지구의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대서양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륙 이동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판 구조론'이다. 판들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으로 앞으로의 면적 변화를 예상하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를 보면 각 대륙이 전 세계에 흩어져 저마다의 고유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2억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이들은 한데 뭉쳐 있었다. 대륙 다수가 하나의 판으로 모여 있던 과거 지구의 시기를 가리켜 '판게아'라 부르는데, 이는 초대륙이라고 불리는 반복되는 현상의 최신판이다. 지구가 존재해온 45억 년 동안 붙었다 떨어지며 적어도 두 개의 초대륙이 있었고, 일부 과학자들은 미래에도 초대륙이 또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물론 다음 초대륙이 형성되기까지 앞으로 2억 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과학자들은 미래의 초대륙에 대해 여러 가지 방향에서 예측을 하고 있다. 대륙 이동은 여러 판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미래의 초대륙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초대륙의 형성과 분열은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질시대는 지질학자들이 시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지구의 역사는 수천, 수십만, 수백만, 심지어 수십억 년에 걸쳐 있어서 시간을 구분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숫자로만 시간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 방식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지도 않다. 마치 1년을 계절이나, 달, 또는 주로 나누지 않고 온전히 365일로만 세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 역사는 긴 시간 간격을 더 짧은 단위로 점차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사건의 흐름에 따라 결정된다... 한마디로 지질시대는 지구 변화를 측정하는 척도다.              p.193


이 책은 미국의 주목받는 지질학자가 적어도 세 개의 초대륙이 존재했다는 증거에서부터 약 2억 년 후에 만들어지리라 예상되는 다음 초대륙에 대한 전망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다음 초대륙 지형을 노리는 주요 후보들을 제시하고, 판구조 운동에 여전히 남아 있는 현대 미스터리를 탐구하며, 대륙이 움직이는 원리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과학을 설명해준다. 수많은 데이터와 사진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고,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지구과학 교양서'라고는 하지만, 사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주고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몇 억 년 뒤에 벌어질 지구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를 이해한다는 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탁월한 방식'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빌린 용어인 '지리 문해력'을 살짝 변형한 '지질 문해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앞으로 인류가 자연과 문화 자원을 보호하고 각종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지리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저자는 지리학이라는 지구와 대기, 그리고 인간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지구 전체의 물리적 구조를 연구하는 지질학으로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인류에게 그 어느 때보다 ‘지질 문해력’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의 새로운 현실이고,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대중과 정치계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해 부족이라고, 수많은 사람이 지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기분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지질학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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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보물에 숨겨진 놀라운 과학 Philos 시리즈 31
브린 넬슨 지음, 고현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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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이 관계망에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배출하는 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사람들은 우리의 똥이 한편으로는 악취를 풍길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험에서 구해 줄 수도 있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똥은 인류를 지켜 주고, 혁신을 일으키고,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물질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19~20


이 책의 표지에 커다랗게 표기된 제목을 보고 기겁하지 마시라. 설마, 내가 아는 그것? 이라고 생각했다면 맞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는 자원이자 가장 많이 낭비되는 똥의 과학적 가치와 무한한 잠재력을 탐구한다. 사실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태국에서는 코끼리의 배설물로 친환경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고,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들어지는 고가의 루왁커피도 있다. 게다가 인간이 배출하는 똥은 죽어 가는 환자를 치료할 수도 있고(미생물 치료), 친환경 버스 연료가 될 수도 있으며,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로 사용되고, 범죄 현장에서 단서가 되거나 멸망한 문명을 추적하는 귀중한 자료도 될 수 있다. 미생물학 박사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똥에 대한 혐오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부터 생태계 순환에서의 물질적 역학, 범죄 수사와 고고학의 증거, 건강의 지표와 질병 추적 도구로서의 가치와 재생 가능한 미래 자원이자 환경문제 해결의 열쇠로서 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에 살던 거대한 동물이 숲에서 똥을 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거대한 초식동물들은 몸집에 걸맞는 양의 먹이를 먹었고, 섭취한 식물들을 거대한 거름더미로 변화시켰다. 이들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면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고, 그들은 또 주변 곳곳에 배설물을 배출한다. 이러한 배설물로 비옥해진 땅에서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이 식물을 먹은 초식동물들은 다시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순환이 반복된다. 그로부터 약 2만 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에서 소 다음으로 똥을 많이 싸는 인간은 이러한 순환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인간은 자기 배설물을 자연 세계에서 격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지구에서 가장 쓰임새가 많은 천연자원 중 하나를 사실상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그럴리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음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똥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가 왜 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똥이 몸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똥에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 동물로서 우리는 자연을 대체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자연의 순환과 일치하는 가치의 순환을 복원하고 확장할 능력과 책임을 가진다. 똥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똥은 변화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시모고에, 인분, 인디언의 검은 토양, 검은 황금을 다시 떠올려 보자. 때때로 희망은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정의할 풍경 곳곳에 그 선물을 전달해야 한다.               p.606


사람들은 자신의 똥이 회색곰이나 코끼리의 똥만큼 유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생존하는 동안 인류는 계속 똥을 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똥을 재사용하지 않고 계속 낭비할까. 사실 똥은 '역겨운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똥에서는 기생충과 원생동불부터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미세 생물체들이 발견되고, 그 냄새 또한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혐오의 대상은 똥뿐만이 아니라 혈액, 땀, 구토, 소변, 정액, 타액 등 타인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을 역겹게 하는가? 저자는 흥미진진한 취재와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우리가 똥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누구나 다 누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똥, 누구나 고정 관념 때문에 언급하기 싫어하는 똥에 대한 이야기는 거침없고, 유쾌하게 우리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선다. 우리가 남긴 똥에는 DNA와 냄새 그리고 미생물과 곤충에 대한 방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보존된 똥은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이동했는지, 그들이 죽음과 질병 그리고 주변 세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려 주는 타임캡슐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똥이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줄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를 들여다보게 해 주는 증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이다. 한때 서양 국가들에서 '질병 중의 질병' '문명 특유의 모든 끔찍한 질병의 원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던 위력적인 질병이 '변비'였다는 점을 비롯해 시대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똥에 대한 사유는 기발하고 재치있으며, 생생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우 복잡하면서도 가장 과소평가되고 있는 자원 중 하나인 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그것의 엄청난 잠재력을 만나보자. 과학적 호기심과 창의적 발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펼쳐지는 이 놀라운 책이 우리가 똥에 대해 개똥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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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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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즈는 엄청난 실패를 겪어본 사람들에게만 마음이 간다고 말하곤 했다. 엄청난 실패를 한 번 겪어보아야만, 모든 희망이 완전히 짓밟혀보아야만 흥미진진한 삶을 꽃피울 수 있다고 믿었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웅장하고 아름답게 자라지만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는 이기적으로 최대한의 햇빛을 받으며 수직으로,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것처럼. 에이미와 헤어지고 난 뒤에야 리즈는 어쩌면 에이미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실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255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는 항상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된다면 외로움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연스럽게 배어나던 여성성을 마침내 가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 년 전 리즈는 에이미라는 이름의 트랜스 여성과 레즈비언 커플로 지냈다. 에이미는 IT 업계에 괜찮은 직장이 있었고, 리즈는 그녀와 함께 트랜스 여성으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가정을 꾸리는 데 상당히 근접했다. 하지만 이제 리즈는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 들었고, 다시 미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리즈와 연인이었던 에이미는 육 년 동안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으면서 테스토스테론 억제제를 먹었다. 당시에 의사는 영구 불임이 될 거라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트랜스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진다. 자신의 젠더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거지 같은 꼴을 당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은 트랜스가 맞미나 꼭 트랜스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트랜스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 지쳐 성환원(디트랜지션)을 결정했고, 현재는 에임스라는 이름의 생물학적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에임스는 직장 상사인 카트리나와 연애 중이었고, 그녀가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문제는 이혼한 이성애자인 카트리나는 에임스가 과거에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로서는 젠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이제 다시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대체 어느 시점에서, 엄마는 아무 아기를 원하다가, 그 아기를 원하게 되는 걸까? 그런 변화가 언제 일어나는 걸까? 리즈는 카트리나가 유산을 하고 나서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마도 그 첫 번째 유산에서 카트리나는 그녀의 아기가 아닌, 아무 아기를 잃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또 그 일을 치르려 할 수 있을까? 리즈는 늘 아무 아기의 아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야 미처 몰랐던 진실을 깨닫는다. 리즈는 바로 그 아이의 바로 그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정체성과 거의 상관없는 애착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아기일 것이다.                 p.508


트랜스 여성으로서의 삶은 너무도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성전환이라는 것조차 가족들에게 절연당할 결심을 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것을 다시 되돌리는 성전환 환원(디트랜지션)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인의 임신 소식에 고심하던 에임스는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리즈를 떠올린다. 그렇게 자신은 사랑하는 카트리나와 함께 있을 수 있고, 카트리나는 임신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리즈는 원하던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면 어떨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카트리나는 연인으로부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얻을 수 있고, 리즈는 아기를 갖게 되고, 에임스는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니고 아버지이지만 아버지가 아닌 모습으로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과연 생물학적 엄마와 일종의 아빠, 그리고 아빠의 트랜스인 전 여자친구 세 사람이 함께 살며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토리 피터스는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이다. 주류문학계에서 벗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품을 무료 배포하며 활동을 시작해 자신의 경험을 살린 글쓰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트랜스젠더 문학의 판을 넓히기 위해 트랜스젠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작품을 무료로 배포하고 소규모 자비출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작품 <디트랜지션, 베이비> 부터이다. 이 작품은 트랜스젠더 작가 최초로 여성문학상 후보에 올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일반적인 퀴어 서사의 금기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두 명의 트랜스젠더와 한 명의 시스젠더 여성을 통해 오늘날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묻는다. 기존의 젠더 규범과 가족 구조를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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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 그래피티 - 양장,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균의 미국 횡단기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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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요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숨어 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현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자. 대여섯 개쯤 떠오를 것이다. 이제 눈을 감고 오래전에 먹은 음식, 어린 시절의 음식을 떠올려보자. 그런 다음 배우자나 친구, 동료, 혹은 여행을 통해 좋아하게 된 음식을 적어보자. 목록이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 속에 개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풍미와 질감이 들어 있고,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먹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p.27


<스모크 & 피클스>에 이은 에드워드 리 셰프의 두 번째 책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금 셰프들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리, 이균 셰프일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우승자보다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준우승자이니 말이다.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 남부 요리와 한국 전통 음식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자유로운 스타일과 위트있는 말솜씨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사실 그는 그는 요리사이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버터밀크 그래피티>에서 유려한 그의 글솜씨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요리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 책에는 레시피가 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나오지만 요리책은 아니다. 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분량의 이 책에는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지만 사진이나 그림은 없다. 그는 일부러 사진을 넣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해진 이미지가 없으면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신만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부디 자신의 직감을 믿고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이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말한다. 요리는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요리 못지않게 그것을 만든 사람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만들어 진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관심사는 요리이지만, 그의 태도는 항상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이민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스란히 이민자들의 요리와 미국 음식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모든 학습 과정의 첫 단계는 모방이다. 아말도 모방을 통해 영어를 배웠고 나도 같은 식으로 요리를 배웠다. 이제 인터넷과 요리책만으로도 어떤 요리든 배울 수 있지만 여전히 글이나 영상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신비로운 요리들이 있다. 사워도우나 크루아상이 그렇다. 스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맛을 좌우하는 요리. 스멘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전부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거기에는 모종의 리듬이, 여러 번 반복해야 배울 수 있는 움직임이 있다. 모로코인 친구에게 그것을 직접 배우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p.225


사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국내에는 흑맥요리사로 알려졌지만, 2010년 <아이언 셰프>라는 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여러 유명 요리 대회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의 스타 셰프이다. 이 책을 통해 받은 제임스 비어드 상 수상뿐 아니라 백악관 만찬 셰프이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티비만 틀면 광고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이제 유명인이 되었는데, 그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의 이민자들에 대한 삶에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집에서 먹는 한국 음식을 숨기려 했던 어린 소년이 이제는 자신의 식당에 오는 모든 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이렇게 커다란 도약이 일어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그저 운이 좋은 것도, 누군가 도와줘서 이룬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에드워드 리 셰프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이야기가 모두 그렇듯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요리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각각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같은 요리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추억과 사랑, 그리고 과장 한 꼬집이 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가 흡족한 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문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사유와 깊이, 그리고 음식과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놀라웠다. 미국 각 도시의 이민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만든 각양각색의 음식을 먹어보고 여러 세대를 걸쳐 변형되고 재조합된 다양한 문화와 삶을 배우는 과정은 음식이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맛에 대한 놀랍도록 완벽한 비유, 주방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존중, 요리의 이면에 있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마치 소설을 읽듯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었다.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인내와 친밀함을 담아 느리게 만든 음식처럼 시간을 들이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탄생한 이 아름다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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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 昏君 -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었던 조선의 네 군주들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2
신병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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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혼군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해야 하는 인물은 연산군이 아닐까 싶다. 연산군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나라를 망친 잔인한 폭군이었으며, 조선에서 최초로 탄핵을 당한 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군주제의 나라에서 왕이 탄핵을 당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왕이 탄핵까지 당하게 된 것일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부터 알아야 한다.              p.15~16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서른두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겨 다양한 분야의 지식 콘텐츠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조선 시대 왕실 연구 권위자인 신병주 교수가 역사의 오명을 남긴 네 왕의 비틀어진 권력 이야기를 밝히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것은 조선 시대 왕실 연구 권위자인 신병주 교수가 역사의 오명을 남긴 네 왕의 비틀어진 권력 이야기를 밝히는 책이다. 역사 속에는 성군과 혼군이 함께 존재했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정책 수립에 소임을 다하고 능력 있는 참모들과 힘을 합해 국정을 운영했다면 성군이고, 국가와 백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이를 조장하는 간신과 함께한 군주는 혼군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혼군 네 명, 연산군, 광해군, 인조, 선조에 대해 알아본다. 우선 이미 수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유명해진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폐비 윤씨 사사 사건 이후 조선 최초로 탄핵당한 연산군의 광기와 폭정에 대해서는 너무도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누구라도 복수의 피바람을 떠올리면 그가 혼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어 그가 왜 탄핵을 당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혼군이라고 표현했다. 폭정과 사치를 일삼았던 연산군과 같은 취급을 하자니 조금 다르지만, 광해군 역시 폐위를 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두 차례의 반정이 있었다. 쿠데타와는 달리 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새 임금을 세우는 일을 반정이라 하는데, 1506년 9월에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중종반정, 1623년 3월에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 인조반정이 조선 시대의 반정이다. 두 번의 반정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 중종반정으로 왕이 된 진성대군, 즉 중종은 반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추대된 왕이지만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능양군, 즉 인조는 직접 반정 세력을 규합해 병력을 거느리고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그렇다면 왜 인조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반정에 참여했을까? 광해군과의 악연이 큰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p.170~171


선조는 우리에게 임진왜란이 일어났음에도 도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왕, 열악한 전장에서 활약한 이순신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고 시기했던 속 좁은 왕이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즉위 초반에는 꽤 능력 있는 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선의 학문과 문화를 발달시켰다. 하지만 사림파의 등용은 당쟁의 시작이 되었으며, 문을 중시한 나머지 국방이나 국외 정세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선조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의 암흑기에 굴욕의 왕으로 알려진 인조는 명분만을 중시하는 고루한 사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두 번이나 치렀다. 왕 또한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치욕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수많은 조선인이 포로로 끌려가 노예 시장에서 팔렸고, 가족과 재산과 땅을 빼앗겼다고 한다. 두 번의 호란이 조선 땅에 이토록 큰 생채기를 남겼으니,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혼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폭정과 사치로 조선 최초의 탄핵을 당한 핏빛 군주 연산군, 뛰어난 정치력과 패륜이 공존했던 두 얼굴의 군주 광해군,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무능의 군주 인조, 임진왜란에서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책임 회피형 군주 선조의 행적을 통해 국가와 백성 위에 군림했던 권력이 어떤 비극을 초래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혼군들의 잘못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나라를 뒤흔들고, 백성의 삶을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혼군이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역사 속 혼군들의 사례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오늘날 리더십과 권력이 지녀야 할 책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라는 뜻의 '혼군'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왜 지금 수백 년 전 군주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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