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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한동안 영화 분야를 취재하러 다닐 때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느라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영화관을 찾았다. 보통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시사회에 참석하려면 오고 가는 시간과 2시간 정도의 영화 상영 시간을 합치면 4시간 정도를 비워야 해서 시사회가 있는 날에는 취재 일정을 접곤 했다.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 이후로 인해 영화관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개봉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일은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그렇지만 영화 상영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아 볼 시간을 내야 한다.
이미 본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기를 하거나 스토리나 상황 전개에서 주요 장면들을 빠트리면 안 되는 추리물이나 스릴러가 아니라면 가능한 영상 재생을 빨리 돌려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읽어보면 OTT 시장을 주름잡고 넷플릭스를 비롯해 유튜브에서도 영상을 빨리 재생해 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영화를 빨리 돌려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p.13
단말기나 OS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많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가 빨리 감기 기능이나 스킵 기능을 기본적으로 제공한다. 유튜브에서는 재생 속도의 폭을 0.25배에서 2배까지 0.25단위로 세세하게 설정할 수 있으며, 10초(5초) 빨리 감기, 10초(5초) 되감기도 가능하다.
p.22
이처럼 방대한 영상 작품을 모두 감상하기네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인은 이미 쏟아지는 미디어와 서비스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영상 미디어뿐만 아니라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우리의 시간을 호시탐탐 노린다.

빨리 감기로 보면 뭐가 기억이 날까 싶었는데, 1.5배 속도로 봐도 큰 무리가 없는 콘텐츠가 의외로 많다는 점에 놀라고 있다. 특히 영화관처럼 특정한 장소에 오고 가는 시간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잠깐씩 카톡도 하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있는데, 재생 버튼을 잠시 멈춤으로 해두면 된다. 또 지나간 화면은 되돌려 보고 이미 알고 있거나 스토리 전개에 큰 무리가 없다면 빨리 감기로 봐도 상관없다.
이 책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 보게 된 이유로 편집해 올린 10분 내외의 짧은 영화 소개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영화 해설 등을 참고하면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고 하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을까? 이에 대해 이 책의 저자인 이나다 도요시 씨는 콘텐츠의 공급 과잉 문제를 꼽았다. 그러고 보면 과거에 비해 요즘에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또한 저자는 '시간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p.49
'결말을 빨리 알고 싶은 욕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소하려면 결말까지 적힌 스포일러 사이트나 리뷰 사이트를 읽으면 된다. 보통은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중간까지 보다가 질리면 이런 사이트를 찾는다. 줄거리만 알면 되니 나머지는 빨리 감기로 보든, 건너뛰든, 한 회를 통째로 건너뛰든 신경 쓰지 않는다. 중간을 전부 건너뛰고 마지막 회만 봐도 작품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85
설명이 과도한 애니메이션 늘어난 배경에는 소설 투고 사이트가 있다. 소설 투고 사이트란 누구든 자기가 쓴 소설을 공개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말한다. 독자의 감상이나 평점이 실시간으로 보이는 데다 작품 순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출판사가 신인 발굴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으며, 2010년대 이후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빨리 감기로 보는 영상을 보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이 늘어난 데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흑백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위주였다면 이제는 컬러로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져 애니메이션이 제공하는 정보량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만화에서는 한 장의 그림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정보를 독백으로 보충할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러한 보충 정보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주인공이 기쁜지, 슬픈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로 설명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기반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의 숏츠 영상을 비롯해 넷플릭스, 티빙 등 OTT가 제공하는 다양한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교양 콘텐츠들이 이미 포화상태다. 어떤 것을 보고 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가끔은 보진 않았어도 아는 체해줘야 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과거와 달리진 '콘텐츠 시청 습관'이 우리 사회 전반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감상 모드인가, 수집 모드인가, 보고 싶은 건가, 알고 싶은 건가? 지금 나는 어느 영역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