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고전 갈등: 가족 기담>은 2012년에 출간된 <가족 기담>을 전면 개정한 개정판으로, 총 9개관에서 주제별로 고전 문학의 큐레이팅을 시도했다. 이 책의 저자인 유광수 교수는 고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지성의 단련법, 지금의 삶에 대한 해답을 한층 더 쉽게 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저자는 치밀하고 발칙한(?) 고전 비평은 물론, 하나의 이야기를 근현대 서구 사상가들의 이론・지식과도 입체적으로 견주었다고 소개했다. 고전의 이면을 들추면 인간이 가진 은밀한 욕망이나 권력욕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되새겨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옛이야기를 다시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작이 갖고 있는 재미와 즐거움 외에도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을 찾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금의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상징들은 지금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이기도 한 유광수 교수는 고소설과 현대소설, 설화와 동화, 구비문학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현대인에게 지침이 될 만한 옛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선별한다. 여기에 새로운 상징과 가치를 부여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탁월하게 안내해 주는 고전 큐레이팅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불변의 희생양 메커니즘에서부터 열녀 이데올로기, 처첩의 세계, 가부장의 이중생활, 욕망의 짝패, 무능열전, 은폐된 패륜, 자식 사랑 패러독스, 가족의 재탄생까지 세상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9가지 주제로 새롭게 고전을 풀이했다.
<문제적 고전 살롱: 가족 기담>에서 유교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아래 숨어 있는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 아름답게 치장된 장면 뒤에 가려진 피해자들의 신음과 한숨, 통곡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주문했다. 특히 양반과 남성 중심으로 엮여져 있는 서사 속에 미화된 고전들은 새롭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의 강점은 고전을 단순히 문학적인 재미로 받아들이는 대신, 고전에 등장하는 세계를 현대 사회와 문화를 연결 지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이나 체제들에 ‘왜?’라는 의구심을 품고 접근했다. 고전은 이제 문학적 즐거움에서 시작해 지적인 단련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족, 사회, 국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이야기’라면, 고전 속에는 차마 들춰내지 못한 불편한 진실이 가득하다고 소개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학창 시절에 고전을 배울 때는 문제를 푸는 답만 추구해서인지 크게 의심해 보진 않았다. 오래된 이야기 속에 불편한 진실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다양한 고전이 등장한다. <쥐 변신 설화>, <옹고집전>, <배따라기>, <열녀함양박씨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춘향전>, <구운몽>, <옥루몽>, <홍계월전>, <흥부전>, <심청전>, <변강쇠전>, <손순매아>, <헨젤과 그레텔>, <장화홍련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여우누이>, <최고운전>이 소개되어 있다.
이 중 읽어 본 책은 몇 권이고, 이야기를 알고 있는 고전은 몇 권 정도 되는지 살펴보시기 바란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몇 가지 이야기 중에서 관심을 끌었던 내용 2가지를 소개한다.
옹고집네 식구들이 웃음거리가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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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전은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될 만큼 인기가 많았다. 이 책에서는 <쥐 변신 설화>와 <옹고집>을 묶어 비교하는 형태로 소개했는데, 원작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사실은 옹고집네 식구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름부터 한 고집하게 생긴 '옹고집'은 대단한 부자다. 고을의 유지이며 향촌 양반들의 우두머리인 좌수(座首) 양반이다.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데 이 양반, 욕심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가짜 옹고집이 진짜 옹고집을 쫓아내고 안방을 차지해 버리게 되는데...
저자는 진짜냐 가짜냐로 다투다가 결국 가짜가 진짜를 몰아내는 것이나, 변신한 가짜가 진짜처럼 처를 차지해서 사는 것이 <쥐 변신 설화>와 닮았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저자는 <쥐 변신 설화>에서는 별로 부각되지 않았던 선비 남편이 <옹고집전>에서는 욕심쟁이 옹고집이 되면서 '오쟁이 진 남편'으로 격하됐다고 표현했다.
'오쟁이 진 남편'이란 말은 제 아내가 딴 남자와 간통을 저지르는 것을 모른다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처가 딴 남자와 놀아나도 그것도 제대로 모르는 얼간이 같은 남자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저자는 옹고집이나 부인은 가짜를 퇴치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가진 못하게 됐다며 옹고집은 오쟁이 진 남편으로, 처는 경박한 여자로 집안 모두가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평했다.
팔딱팔딱 재주를 뛰어넘는 누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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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떵거리는 천석꾼 부잣집이 있었는데, 아들만 셋을 두어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예쁜 딸을 하나 더 두는 것이 이들의 소원이었다. 그들은 신령께 빌고 빌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을 하나 얻었고,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하룻밤만 자고 나면 외양간에 있던 소가 한 마리씩 죽어 나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부자는 첫째 아들을 시켜 외양간을 지키게 했다. 깊은 밤, 막내 누이동생이 외양간에 오더니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변신하고, 소의 간을 먹는 것이 아닌가. 첫째 아들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다음날 아버지께 이야기했다가 쫓겨 났다. 누이의 변신에 대해 진실을 말한 둘째도 쫓겨났다. 셋째는 그냥 소가 그냥 죽었다고 거짓말해 쫓겨나진 않았다.
그 후, 첫째와 둘째는 깊은 산속에서 어느 도사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집이 걱정되어 되돌아오게 됐다. 도사에게 받은 호리병 셋을 품에 넣고 두 형제는 폐허가 된 집을 찾는다. 이때 누이동생이 반기며 부모와 셋째 모두 병들어 죽었다고 말한다. 아들 둘은 이 말을 듣고 놀라지만 누이가 밥을 차려준다며 잠깐 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누이가 부엌으로 간 사이에 이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게 되고, 여우로 변한 누이가 쫓아오지만 빨간, 하얀, 파란 호리병을 차례로 던져 여우로부터 겨우 목숨을 구한다.
저자는 현명한 부모는 자기가 바라보는 자식의 모습에 주위에서 들려주는 자식의 모습을 겹쳐볼 줄 안다며, 자식에 대해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은 요즘 부모들의 극성스러운 마음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부모들은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을 잡게 해주려고 허리가 휘어도 자식을 학원에 보내며 뒷바라지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처럼 되진 않는다. 따라서 부모의 지나친 바람이 아이를 망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 책은 신랄하게 현대의 세태에 빗대어 고전에 담겨 있는 속뜻을 끄집어 내고 때론 비틀어 보고 있다. 재밌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고전 속에 사실은 지배층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 속에 숨겨진 가족의 신음과 한숨, 통곡 소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진 않았나?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기보단 단편적인 지문을 해석해 출제자가 정한 정답을 맞히기에 급급했던 건 아닐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점들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다. 뭐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도 쉽게 고개를 가로젓지 못하는 것은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5G, 디지털 트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인공지능(AI) 등을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전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론 오래간만에 정말 읽고 또 읽고 싶은 재미난 책을 발견했다.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