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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양지열 지음, 박유나 그림 / 특별한서재 / 2025년 1월
평점 :
전직 중앙일보 기자이며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양지열 변호사가 저술하고 박유나 작가가 일러스트를 곁들인 책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대성한 전문가들이 자녀분에게 나긋이 들려 주는 듯한 내용으로 이어가는 책은, 아무 관계 없는 독자가 보기에도 흐뭇하고 마음이 뿌듯해지는 느낌입니다. 대한민국은 반 세기를 훌쩍 넘기는 긴 시간 동안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그런 희생과 분투의 산물이자 선물이니, 기성 세대가 그 의미에 대해미래 세대를 향해 들려 주는 이야기는 대단히 유익하고 교육적이라 하겠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모두 9일에 걸쳐 아버지가 딸 민주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 일반론, 기본권론, 통치구조론, 시민참여, 선거제도, 재산법, 가족법, 형법, 노동법 등의 주제로 모두 아홉 파트를 이룹니다.헙헌법은 모든 법의 아버지와 같으므로 책의 절반이 넘는 분량이 할애되었습니다. 저자의 평소 관심사를 반영하듯 선거와 시민참여,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해 큰 비중이 놓인 게 눈에 띕니다. 또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적인 질서를 규정한 민법에 대해 제7장과 8장에서 자세히 풀어 주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법은 당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에서 작동되는 유효한 규칙과 질서이기도 하므로 어린 세대는 이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생존에 유리해지고 정당한 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p96) 권력 분립을 설명한 코너에 이 제목이 붙었습니다. 씁쓸한 말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애초에 사람이 같은 동료, 동족을 온전히 믿을 수 있었다면 법이나 공권력이라는 게 필요 없었을 터입니다.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면, 그 권력은 모두의 공공복리와 행복 추구를 위해 작동하기보다 그 반대 방향의 해악을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입법, 집행, 사법(재판) 등으로 세 분야에 갈라 놓은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이라는 건데, 아무리 법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었다고 해도 신성불가침 무제한은 아니라서 국회가 헌재에 두고 그 파면 여부를 탄핵소추할 수 있음이 헌법에 보장되었다고 변호사 아빠는 딸에게 가르칩니다.
저자는 기자 출신이라서인지 책 곳곳에 언론 관련 사항을 첨가하여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p128 같은 데를 보면 게이트키핑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헌법에도 언론의 자유가 규정되었으므로 이는 헌법 내용 본연의 사항 설명이기도 합니다. 가짜 뉴스는, 세계적으로 망 연결이 완성되다시피한 기술적 발전과, 소셜미디어에의 의존도 증가에 힘입어, 이제 지구인들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자유와 권리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그 편익만 향유하고 의무를 방기하려 든다면 이는 개인의 윤리적 타락과 사회의 아노미 상태를 유발할 수 있겠습니다. 게이트키핑은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를 지키기 위해 필요할 수 있다는 점 독자들이 유념했으면 합니다.
p179에서 어린 민주가 아빠에게 묻듯, 요즘은 음식점에서 밥을 사먹어도 키오스크 등을 써서 주문을 완료하곤 하며 이 과정이 숨쉬듯 자연스럽기에 무슨 법적 절차 같은 것이 낄 여지가 없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변호사 아빠는, 대부분 일상처럼,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상적으로 진행되기에 간과하기 쉬우나, 행여 불법적이거나 상례를 벗어난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때부터는 재산법(그 중에서도 계약법)이 개입합니다. 이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어서, 법의 원리가 생활 곳곳에 이미 스며들어 시민들의 평온이 깨어지지 않게 암암리에 작동 중입니다. 어린 학생들은 이를 모르기 쉽지만 사실 아침에 학교에 평화롭게 등교하는 것도 시민법(civil law)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죠.
나에게 먼저 위해를 가한 범죄자에 맞서 내가 내 신체를 지키려 드는 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형법도 이런 권리를 보장하는데 이게 정당방위이며 한국 형법에서는 제21조에서 규정합니다. 법은 지나치게 당연한 이치에 대해서는 일일이 명문화하지 않는데, 21조의 진짜 의의는 (이 책 p232에서도 암시하듯) 오히려 거꾸로 정당방위의 요건을 엄격히 정해, 위법성 조각사유를 남용하여 새로운 불법이 무한정으로 확산하지 않게 배려하는 데에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아빠가 딸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형식이라서 내용이 쉽고 친근하게 다가와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