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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존 R. 히빙.케빈 B. 스미스.존 R. 알포드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미국이나 한국이나 극심한 정치적 분열 때문에 나라 전체가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국가에서는 다른 이가 나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며, 이미 성장을 멈춘 죽은 공동체가 아닌 이상에야, 시민들은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슈를 어떻게 다른 시민과 다뤄 나가는지를 실전을 통해 배우며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내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메타적으로 바라볼 생각이 들었다는 건, 곧 내 개인적 신조와 성향이 절대 진리, 종교적 교의가 아님을 긍정하는 첫걸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정치 성향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그 신체 기관 중 어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지를 따지자면 아마도 대뇌일 것입니다. 그래서 p34에서는 편도체, 뇌섬엽, 해마, 전방 대상회 피질 등 뇌과학에서나 쓸 법한(사실은 대중 자계서에도 자주 나오지만) 용어들을 원용하여,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이 사실은 어떤 해부학적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지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특히, 심리학 용어인 동기화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란 말에 주목하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겉으로는 사안 별로 모두 별개의 인식 틀이나 논리 도출을 행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처음에 형성된 사고 습관이나 기존의 선입견이 반복 작동되는 데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동기화가 synchronized가 아니라(同期化), 처음에 부여된 동기(motivation. 動機)를 따른다는 의미임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p112를 보면 자동증(自動症. automatism)이란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서, 우리들 대부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이식된 무의식, 습관, 선입견, 집단 가치관 등에 지배되며 일상의 매순간 뭘 일부러 의식하고 일일이 다른 결정을 내려서 행동하고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 반사는 대뇌까지를 거치지 않지만, 조건 반사는 대뇌를 거쳐 그 사람이 여태 살아온 과정과 사연을 반영합니다. 이어 책에서는 대단히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이, 사실은 뜻밖에 그 사람 뇌 안에 생긴 종양 때문이었음이 밝혀집니다. 그렇다고 이런 취향을 가진 모든 환자, 범죄자가 다 뇌종양 때문에 이렇게 된 건 아닐 것입니다. 여튼 허무하게도, 뭔가 숭고하고 불가해한 이유 때문에 정치적 신념이나 성향이 생겼거니 여겨도, 사실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적 요인 때문에 그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을 이 부분 논의는 지적하려 합니다.
p180 등을 보면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도출합니다. 대체로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 즉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진영에서는 긍정적 이미지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모두 강화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지성보다는 감성적 반응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주의, 반응, 인식 등에 이런 성향의 차이가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정보의 획득과 활용에까지 차이를 낳게 하는지에 대해 책은 논의를 이어갑니다. 루치아나 카라로가 주도한 이탈리아 학자들의 연구와, 이 책 저자들의 연구가 비슷한 듯 다르게 대비되어 정리, 서술되므로 독자들은 이 맥락을 잘 찾아서 읽는 재미를 높일 필요가 있겠네요.
아무리 프랑스의 젊은 세대가 학교에서 PC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그 심층에 흐르는 호오의 감정이나 본능적인 반응에는 후천적인 노력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나 봅니다. p214를 보면 블레즈파스칼대학교 연구진이 세바스티앙(백인)과 라시드(아랍인)의 사진을 보여 주고 측정한 반응을 보면, 대부분이 백인인피실험자들에게서 아랍인에 대해 더 경계하는 전기적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정치적 태도와 행동에 생물학적 요인이 (마치 운명처럼) 작용한다는 다소 씁쓸한 결론은 이 책 전체를 통해 시시컬하게 유지되는 편입니다(전적으로 긍정되는 건 아니라 해도). 대립 유전자, 다형성 영역, AVPR1a 유전자 구간, 1바소프레스 수용체(펩타이드 호르몬의 일종) 등의 개념을 적용하여 전개되는 논의는, 운명론과 정치성향 사이의 상관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탐구하도록 돕습니다. p325 이하에 전개되는 "두 도시 이야기", 컨서베이턴 이론(가상의)은 저자들의 논의에 인문적 깊이를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