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책 인문학 세계 고전
사사키 다케시 외 83명 지음,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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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는 점은 우리의 독서 의욕을 북돋웁니다. 인문이란, 사람의 본성과 사회의 작동 원리, 감정과 이성의 핵심을 통찰하여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일깨웁니다. 그래서 기술 서적, 공학 서적처럼 직접적인 효용을 전달하지 않아도 수백 수천 년 동안 읽히는 게 고전입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 이하에는 고(故) 송자(宋梓) 교육부 장관의 추천사가 나옵니다. 책에는 직함이 연세대 총장(前)이라고만 나오지만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 명지대 총장도 지내신 분입니다. 활동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연대 총장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분입니다. 6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특강 오셨을 때 접한 그 맑고 깊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들리는 듯합니다. "누군가가 나더러 이 책과 고전 한 권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완성도가 높다는 뜻인데, 집필진 중 사사키 다케시[佐佐木毅] 전 도쿄대 총장도 포함되어 있고, 압축된 문장 안에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설이 담겨, 이 책이 단순한 요약서가 아니며 문사철(文史哲)의 참된 경지로 독자를 이끄는 가이드라는 평가가 암시됩니다.

미국은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세계에 유례가 없던 공화정을 꾸려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민주정, 공화정은 천 수백 년 전 그리스, 로마에도 있었지만 성문 헌법을 따로 만들고 삼권을 분립하며 대통령도 권한 행사를 이성적으로 자제하는 풍조는 여태 인류사에 없었습니다. 프랑스 사람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 신생국의 훌륭한 정치를 잘 분석했을 뿐 아니라, p110을 보면 현대 대중 사회의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 중산 계급이 주동이 되어 무난하게 중지(衆智)를 모아 가는 모범적인 정치를 차분하게 서술하는 놀라운 대목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같은 사회계약론이라 해도 홉스, 푸펜도르프 등은 복종 계약을 전제로 논의를 편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주권자인 국민의 형성 행위(p45)"가 담론의 중핵이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본능에서 정의로, 충동에서 의무로, 욕망에서 가치로"라는 루소의 논의는 사실상 현대 민주주의, 주권재민 사상, 자유와 다양성의 존중 등 핵심 가치의 창안지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 계약 하에서 사람들은 종래의 불안정하고 들쭉날쭉한 자연인들이 아니라 일반 의지(volonte generale)의 영도 하에 새로운 법인격을 부여받는다는 그의 서술은 언제 읽어도 박력이 넘치고 심오한 울림을 유지합니다.

고전파 경제학의 창시자는 애덤 스미스, 이를 발전시키고 내용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 이는 데이비드 리카도입니다. 리카도는 오늘날 세계인 모두가 추구하려 노력하는 자유무역의 효용과 비교우위론을 정초한 천재였습니다. p171을 보면 J S 밀(Mill)이 논의되는데 그는 천재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로부터 광범위한 지식을 교육받았고, 근대 사회를 이끌어갈 대원칙, 철학적 원리를 다듬는 데에 독자적인 기여를 남겼습니다. 재미있는 건 선배 격인 스미스나 리카도는 "가치론"을 중시했는데, 밀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가격 이론이라는 도구가 앞으로 가치론을 대체한다고 내다봤던 것입니다.

사자의 강한 이빨과 턱, 악어의 재생력 강한 껍질이 없었으나 인간은 생각하는 힘 하나로 만물의 영장이 되었습니다. p330 이하에 나오는 <팡세>를 저술한 파스칼은 "한없이 연약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서 위대하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칸트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한 업적으로 유명한데, p337의 설명을 보면 "순수 이성이라고 할 때의 '순수'는 경험이 개재하지 않은, a priori(선험적인)한 상태"라는 그의 유명한 규정이 인용됩니다. "근대 과학의 대자화(對自化)를 표방하지만 지식만능주의는 아니"라는 책의 설명에서 엄청난 공력이 느껴집니다. 이런 시원시원하고 정확한 문장들 때문에 송자 교육부장관께서 그렇게 좋아하셨나 봅니다.

이성만능의 차가운 근대철학에 대한 반동으로, 생의 강력한 의지를 중시하는 니체 같은 철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시적(詩的)인 문장으로도 유명한데 "내 적들은 강력해졌고 내 가르침의 초상은 왜곡되어 버렸다(p377)"라며 산을 다시 내려가는 거인의 내러티브를 장엄하게 낭독하는 니체 영혼의 위엄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태여 저자들이 이 대목을 인용한 건 나중에 히틀러 세력이 니체의 사상을 잘못 끌어대어 프로파간다에 활용한 사실을 환기하는 듯도 합니다. 

보통은 정치 사상, 철학의 조류 등을 요약 설명하는 데 그치지만 이 책은 마지막 5장에서 역사, 종교 분야애서의 명저까지 소개합니다. 에드워드 기번, 토인비, 알베르 마티에 등의 명저 소개는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대목만 읽어도 세계사 일부가 잘 요약되어 독자의 머리에 안착할 만큼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번역자 윤철규 대표가 권말에 쓴 후기는 "교양"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 혼란스럽고 천박한 21세기에 어떻게 변용, 승화, 재구축되어 독자와 마주할지에 대해 깊은 생각의 여지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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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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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에 나오듯이 독일어로 된 책이 원서입니다. 그래서 번역자도 독문학자 모명숙 박사입니다. 영국인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여러 글들(당연히 영어 원문)을 편집(번역)했고, 일기, 편지, <제이콥의 방>, <세월>, <존재의 순간들>, <등대로> 등이 그 출전입니다. 편집자는 유타 로젠크란츠라는 여성이며, 독일어 원제는 Eines jeden Glück, 즉 "모두의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자신만의 방"이라는 어구와 묘하게 대구(對句)를 이룹니다. eines jeden은 ein jeder의 2격(속격. genitive)이며 영어로 옮기면 each and every와 의미 면에서 약간 비슷합니다(문법적 기능은 다름).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으로 유명하니 그녀의 이름만 들어보고 20세기 전반의 그 고전들을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아주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오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책이 보여 주는 대로, 그녀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었던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지인, 편집자,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상당 부분을 발췌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다정다감한 면모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역시 독일어로) Mit Virginia Woolf durch den Garten인데, 이 번역본은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로 옮깁니다. durch den Garten은 "정원을 거쳐, 통해" 정도의 뜻이겠는데 그래서인지(?) 책 중에는 정원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면 p57에서, "비가 내리고 난 후 기운차게 핀 자두꽃"에 대해 쓴 대목이 그렇습니다. 꽃은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가장 아름답게 대지를 수놓습니다. 여성들이 꽃 선물을 받으면 좋아하고 꽃의 본성을 닮으려 애쓰는 건 그 본능 안에 내재된 동기가 있어서입니다. 사람인 이상, 생명체인 이상 꽃을 싫어할 수 없습니다.

p131에서 p142까지는 <올랜도>의 일부가 인용됩니다. 버지니아 울프 이후에도 프랑스 페미니즘의 시조새 시몬 드 보부아르가 지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SF 같은 건 아니고 성별의 전환 문제에 대해 깊은 고찰과 사색이 담긴 명작인데 책에서는 그 혹은 그녀 올랜도가 서펜타인 호수에서 책을 공물로 파묻는 유명한 장면이 인용되네요. 그런데 잰 모리스(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손녀뻘이었던)가 편집한 <버지니아 울프와의 여행>에서 재인용한 편지에도, 저 서펜타인 호수가 배경으로 등장하여 묘한 기시감을 줍니다.

2차 대전은 히틀러라는 광인과 일부 추종세력이 일으켰다고 하지만 1차 대전은 명백히 독일 민족, 또 오스트리아의 상당수가 열렬한 민족주의적 지지를 실었던 대규모의 충돌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30대 초중반이었던 때 치러낸 전쟁은, 가뜩이나 신경쇠약이었던 그녀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리젠트 파크에서 전후(戰後)의 감상을 담은 p182 이하의 글들은 이무렵 그녀가 얼마나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자신도 조심스러워하며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제이콥의 방>에서는 스튜어트 오몬드 씨와 키티 크레스트의 묘한 만남과 소통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데 p235에 나오듯이 국화가 최악이라는 문장이 유명하죠. Chrysanthemums are the worst. 이유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데 세계 어느 누구라도 국화라는 꽃을 알면 다 공감할 만한 내용입니다. p254에서는 글라디올라스와 달리아에 대해 단상을 피력하는데 무심한 하늘, 교만한 꽃들에 대한 푸념도 재미있습니다(<질병에 대하여> 중), p287의 <막간> 인용문에서는 야생란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 엿보입니다.

같은 문장들이라도 어떻게 배열되고 무슨 주제에 편입하냐에 따라 의미가 새롭게 읽히는 체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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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대기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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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극심한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저자는 그 후유증 때문에 온전한 대인 관계를 맺기 어려웠나 봅니다. 이 회고록의 제목이 "물의 연대기"인 이유는 일단은 저자가 수영 선수 커리어를 10대 때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좋지는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이들(독자인 제 눈에는 멋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에 대한 회고가 구체적이며, 저자가 비록 큰 상처가 있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여 미국에서 그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책이었겠다고 짐작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지난달 말에 마무리된 7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이제 연출자로 초대된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트와일라잇 4부작의 벨라)가 감독한 작품 원작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합니다. 아쉽게,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소재가 될 자격이 충분하게, 이 책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p59를 보면 가수 제임스 테일러를 닮았다고 해서 별명이 JT맨인 필립, 첫사랑이자 첫남편인 남자에 대한 애증(愛憎) 가득한 회고가 시작됩니다. 저는 처음에 제임스 브라운으로 잘못 읽고 작가가 남자 외모 절대 안 보는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제임스 테일러도 꽤 예전 사람입니다. 작가분도 나이가 꽤 많으시기 때문에 예전 연예인이 이렇게 언급되기도 하나 봅니다. 왜, 로드 테일러나 로버트 테일러를 예로 드시지 않고...(닮았으니까 닮았다고 했겠죠)

수영선수라고 하면 (여자라도) 어깨가 딱 벌어지고 건장한 체격이 바로 연상됩니다. 그런 작가가 열세살 때, 아니 열다섯살때 큰 욕구를 느꼈던 상대 시에나 토레스는 열일곱 살이었다고 나오는데(p174), 대체 체격이 얼마나 좋았으면 "나보다 큰 소년이 필요했다"고 하는 그녀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는 것인지. 물론 서양인들은 대체로 체격이 좋긴 합니다만 이 정도 예외적인 여성(여자 맞습니다)은 서양인들한테도 마찬가지 느낌인가 봅니다. 저는 여기서(p169) 저자 린다(당시 십대)가 하고 싶었던 행동을 꾹 참는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이 그때 충동을 참아서 지금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는 대목도 그랬습니다. 물론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충동을 일일이 행동에 옮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우리는 이 당시 작가가 큰 위기에 처했다는 점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북미 대륙에 이주하기 시작한 건 물론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이런 나이 많은 저자의 회고록 앞부분(대체로 저자도 젊었던 파트)에 한국계 셀럽이 등장하는 걸 보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여기(p179)에서 언급되는 이창래라는 분은 지금 이 작가보다는 나이가 몇 살 아래지만 글쓰기 멘토 구실을 하던 분인데, 작가(당시 대학원생)는 이분(교수)의 클래스에서 모욕적인 평가를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책에서도 여전히 앙앙불락하는 낌새가 느껴집니다. 뭔지는 독자인 제가 알 수 없으나, "당신의 글은 충격적인 소재로 사람들 관심을 끌려는 소재주의이지, 스타일은 진부하기 짝이 없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책에는 그녀가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에서 캐디(골프 캐디가 아니라 캔디스의 애칭입니다)의 관점에서 소설을 썼는데, 교수 이창래씨가 그런 평가를 했다고 나옵니다.

p202에는 좀 특별한 서술이 있습니다. 앞에서 여성수영선수 토레스에 대한 묘사에서도 몸에 털이 보슬보슬했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머리털을 상자에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영어로 체모와 모발은 철자가 같아서, 맥락으로만 구별되는 단어입니다. p203에는 샤를 드브로스(Charles de Brosses)가 페티시라는 개념을 널리 보급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사실 좀 섬뜩해지기도 하는 문장입니다. 이 사람은 활동 시기가 사드 후작보다 더 앞섭니다. 이어 피부, 살갖에 대한 인문적(?), 자전적 회고가 이어지는데 영어로 skin이라고 하면 "목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작가가 꺼내시는 말들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유도합니다. 집착, 욕망, 사랑, 치유 등에 대해서.

현재 린다는 영화감독 앤디 밍고와 부부 사이이며 재주 많은 운동선수 마일즈 밍고라는 99년생 아들이 두 사람 사이에 있습니다. 남편이 십 년 연하이며 특히 이 책 p318 이하에 깨가 쏟아지는 연애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을 다 읽고,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과연 이 책을 대체 어떻게 스크린에 옮겼는지 무척 궁금해지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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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뉴욕 - 최고의 뉴욕 여행을 위한 가장 완벽한 가이드북, 2026년 최신판 프렌즈 Friends 4
이주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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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판 <프렌즈 뉴욕>의 앞 표지 사진에는 뉴욕 고가(高價) 코압(co-op)의 대명사인 엘도라도가 담겼네요. 그 앞 저수지에서는 페도라를 쓴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듯한데, 뉴욕은 이런 목가적인 풍경도 뽑아낼 수 있는 멋진 도시이긴 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88을 보면 저자 이주은씨는 "최고의 커피가 모이는 도시, 그곳의 스페셜티 커피"를, 사진과 저자 특유의 압축적이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원래 최고의 커피가 서빙되는 곳은 당대 패권국의 수도에 모이기 마련인데 15세기 이후 오스만 투르크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했을 시기에는 이스탄불이 최고급 카페 밀집지였습니다. 21세기 뉴욕에 최고의 커피숍이 모인 것도 당연한데, 데보시온, 블루보틀(한국에도 요란하게 입점한 브랜드라고 저자가 말씀하는데 저는 모르겠습니다), 랄프스, 인텔리겐차 등이 중요하게 소개됩니다. 물론 이 파트의 첫머리에는 스타벅스가 나옵니다.

p118을 보면 비싼 도심에도 쇼핑몰이 있는 게 뉴욕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코엑스나 영등포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 북미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씀이겠습니다. 이런 곳이 대부분 그렇듯 상점과 식당이 함께 있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합니다. 브룩필드 플레이스, 키스(Kith), 어반 아웃피터스 등이 소개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빈티지숍이 나오는데 우리로 치면 인사동쯤 되겠지요. 디스카운트 스토어도 소개되는데 노드스트롬, 블루밍데일스, 마샬스, 벌링턴 등이 사진과 함께 등장합니다. "원하는 사이즈가 잘 없다! 진열 상태가 안 좋다! 하지만 높은 할인율로 용서가 된다!" 저자의 평가입니다.

p146 이하에는 현재의 뉴욕을 이끈 인물들이 나오는데 이주은 작가님 책은 이렇게, 여행과 직접 상관은 없는 것 같아도 깊은 여행의 맛을 근원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문 지식이 소개되어서 좋습니다. 독립 초기 연방파의 리더 알렉산더 해밀턴, 앤드류 카네기, JP 모건, 빌리 조엘(크~), 아마도 그 드라마 때문이겠지만 사라 제시카 파커도 들어갔습니다. 멋지고 센스 있는 리스팅입니다. 그런가보다 하면서 봤는데 의외로 여운이 남네요.

저는 몰랐는데 p167을 보니 뉴욕 여행에 쓸 수 있는 할인패스가 꽤 많았네요. 시티패스, 고시티, 빅애플(뉴욕의 별명이기도 하죠) 등이 설명됩니다. 요즘 같은 강달러 시대에 반드시 챙겨야할 정보입니다. 뉴욕 하면 또 미술관을 챙겨봐야 하는데 p178 이하에 권장 3일 코스가 나옵니다. 그림지도와 함께 거쳐야 할 순서까지 나와서 보기 편리합니다. MoMA는 둘째 날 네번째로 들러보라고 합니다. 뉴욕 하면 또 세계의 경제 수도라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를 안 볼 수 없겠는데, NYSE, 페더럴 홀, FRB, 그리고 조스피자가 마지막에 소개되어 독자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911 때 무너져서 그라운드제로가 되었던 WTC도 소개합니다.

소호를 소개하며 그린스트리트, 리틀싱어빌딩, 실크익스체인지 등이 다뤄집니다. 소호는 사우스 오브 하우스턴의 약자라고 나오는데(p212) Houston을 하우스턴이라 읽는 이들은 아마도 뉴요커들뿐일 것입니다. p214에는 플래그십 스토어인 프라다 브로드웨이가 나오며 앤 해서웨이, 메릴 스트립이 나왔던 바로 그 영화도 여기서 찍었습니다. "붉은 벽돌에 청록색 파사드가 소호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저자의 말입니다.

예전에 가 보고 최근 사정은 모를 여행자들에겐 p273의 해리포터 뉴욕점 정보가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매디슨스퀘어파크의 명물인 230 Fifth도 그 위풍당당한 전면 사진과 함께 추천됩니다. 익히 알던 장소도 프렌즈 시리즈에서 보면 앨범의 사진처럼 더 정겹고 예쁩니다.

매년 이렇게 개정판이 나와서 더 믿음직하고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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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크 미래의 기회 - 의료 3.0 경제가 이끌어갈 투자 패러다임 쉬프트
앤드류 크레이그 지음, 이상훈 옮김 / 길벗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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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크레이그는 롬바드 스트리트(한국으로 치면 여의도나 학동?)에서 잔뼈가 굵은, 날카로운 안목, 광범위한 시야로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목 받던 애널리스트, 창업가였으며 <How to own the world>가 그의 책 중 가장 유명합니다(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분이 이렇게 책 한 권 전체에다 바이오섹터로 주제를 잡은 건 이 신간(원서는 작년 8월)이 처음인데, 과연 투자 패러다임 쉬프트를 논할 만큼 메가트렌드 자체가 이제 변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90에서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아툴 가완다 박사라는 분도 앞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른바 "재생성 신체조직"에 대해 어느 분이 혁신적인 발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혁신이 (타 산업과는 달리) 현장에 혹은 기기업계, 제약업계 등에 급속하게 확산되지 않는가? 왜 이런 전문가들이 바로 돈방석에 앉고, 투자자들은 30일 연상 같은 대박을 치지 못하는가? 저자가 잠정적으로 내리는 결론은, 인력의 재훈련, 고용 위협, 기존 시스템의 전면 교체에 따른 부담(과감하게 매몰비용으로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심리적[비합리적] 주저함) 때문이라는 취지로 저는 읽었습니다.

사실 이런 건 미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한국도 최소 5년 전부터, 코스닥에 이런저런 유망한 바이오기업들이 있는데, 이 회사는 대표의 얼굴만 봐도, 살아온 경력이나 스펙, 학력, 창업 전 직책만 봐도 반드시 잘된다며, 혹은 지금 추진하는 신약이나 요법 개발 등이 정말로 혁신적이라며, 이제 4상도 다 통과했으니 다음달에 열릴 미국의 무슨 학회 후에는 반드시 폭등한다며 얼마나 기대를 불어넣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름시름 주가가 주저앉더니 지금은 그야말로 동전따리 신세입니다.

물론 애초에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했겠고, 대표님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훌륭한 분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른바 "만족 모형", 즉 흠 없는 최상의 솔루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들을 감안할 때 혁신 없이 그대로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의료 산업에선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지만 경영학, 행정학 등을 공부한 이들도 저 만족 모형에 대해 많이 들어 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뭐 하나가 나왔다고 우루루 몰려가 돈부터 박고 보는 국장식 행태는 특히 바이오 섹터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겠습니다.

p107에서 저자는 기하급수적(exponential) 성장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람의 뇌는 기하급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설계된 조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1 때 로그함수라는 것을 배워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을 보다 편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종이를 일곱 번 접는 게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재미있는 상식도 이 원리에 기반합니다. 익숙한 선형적(linear) 사고에서 벗어나야  바이오테크의 발전을 현황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p117에서 저자는 일본에서 특히 두드러진 암치료법으로 독자의 주의를 돌립니다. 사실 2세대 항암요법이라는 표적치료에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데 3세대(면역 항암), 최근에는 4세대(대사. 특히 ADC)까지 등장한 걸 보면 그렇기도 한 것 같습니다. ADC 테마가 국장에서 작년에 얼마나 핫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새롭죠.

p167에 나오듯 천연두, 나병, 장티푸스, 페스트 등 온갖 무서운 질병들을 과학의 위력으로 지상에서 퇴치한 건 정말 위대한 업적입니다. 20세기 중반에는 페니실린이 나와 그간 답이 없었던 폐병 치료율을 높여 크나큰 공포 하나를 퇴치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른바 현대성 질병(disease of modernity)이 새로 등장하고, 항생제가 먹히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여 사람들의 진을 빠지게 합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파이어월>이란 스릴러를 보면 어린 아들이 땅콩알레르기로 고생하는(죽고사는 문제입니다) 설정이 있는데, 땅콩버터는 미국인들, 최근에는 한국인들도 꽤나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더욱 공포감을 자아냈습니다. 무서운 병 몇을 퇴치했다 싶으면 새로운 문제가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의학과 질병 사이의 게임에 과연 승산이 있는지 회의감을 자아냅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장내 미생물 균형, 면역력 증대 문제가 앞으로 바이오업계가 사활을 걸고 매달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장수하며 80 전에 돌아가시면 무슨 문제가 있으셨냐고 물어 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투병 기간이 길거나 하면 이는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니 단순히 수명의 길이로 모든 걸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p278을 보면 QALY라는 지표가 나오는데, 삶의 질이란 팩터를 고려하여 보정한 수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표가 왜 중요한가? 종래 고가의 약물이라면 정책 입안 단계에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픙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예 초기에 (효과도 좋고 대신 비싸기는 한) 약물을 과감히 처방함으로써 Qaly를 늘리는 선택을 하자, 무의미한 장기 입원, 요양이 크게 줄었다는 쪽으로 최근 컨센서스가 생겼다는 거죠. 보건의료 분야는 그저 시장에서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공익성을 고려하여 관료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므로 이 이슈가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수혜주가 될지도 잘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CRISPR 기술이라는 게 일반들에게도 알려진 게 근 9년이 다 되어갑니다. 뚜렷한 발전이 있었냐면 답은 "그렇다"인데, 그래서 우리네 삶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아졌냐고 물으면 아무도 명쾌하게 답을 못합니다.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건 p306의 카스게비(Casgevy)입니다. 겸상 적혈구병 환자들에게 바로 다음날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한 임상 기록(의 요약)은 바이오 문외한이 읽어도 경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단백질 스캐폴드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들도 주의깊게 관찰해 보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노화 퇴치, 완화는 암치료보다 쉽다(p338)는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말도 흥미롭습니다. 노화 지연 테마가 며칠 전 코스닥에서도 잠시 주목을 끌었던 사실도 기억났습니다. 바이오테크와 태양광 발전이 접점을 마련하는 언급도 있는데 이는 확실히 통섭적 인사이트를 갖춘 애널리스트라야 가능할 듯합니다.

맨뒤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일일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한국에서 번역 출간이 된 책들에는 제목과 연도가 다 표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전 이런 건 드물게 보는 터라 좀 놀랐습니다. 번역자와 편집진의 성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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