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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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청년 이벽은 적대하던 이가환과 대화하며 "군자는 빈천에 임하면 빈천하게 살고, 오랑캐 안에 끼면 오랑캐로 살며, 더러운 데에 들면 더럽게 살다가, 부귀에 재하여 또 부귀하게 산다(1권 p114)."고 달관한 경지를 논했습니다. 또, 다산은 금정 찰방으로 좌천되어 늙은 이방의 간악한 수작(1권 p133)에 의연하게 대응하던 대목도 있었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2권에서 다산은 강진(2권 p46)으로 유배온 후, 놀랍게도 현지의 민초들이 자신을 마치 역병 보듯 피하는 걸 예리하게 깨닫습니다. 이 양반이 천주학쟁이라서 이 먼 곳까지 정배되었는데, 천주학쟁이와 엮이면 3대가 망한다는 걸 조정의 지독한 박해 덕에 백성들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평생 목민관으로서 농민들의 삷을 걱정했던 이런 암담한 현실 앞에 다산이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다산은 의연합니다. 신념과 올바른 지식으로 무장핱 영혼만이 보일 수 있는 저력입니다. 

2권 p61을 보면 다산이 승지 벼슬을 지낸 줄은 아는 이방이 찾아와 색다른 부탁을 합니다. 아전 신분이라 해도, 글을 알아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확신하기에 이 귀인이 자기 아들의 글눈을 틔워 주었으면 하는 용건이었는데 1권의 그 간악한 자와 일단 대조되는 태도입니다. 하방(下方)하여 모진 고생을 했던 덩샤오핑이 결국 그땅에서도 현지인들에게 존경받았듯, 다산 역시 강진 땅에서 공맹의 도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세상의 바른 이치를 깨닫는 작은 초석을 놓는 데서 보람을 찾습니다. 

서울 노론 세도가들이 꽉 장악한 고을 수령직 하나하나에 바르지 못한 벼슬아치들이 들어서서 직권 남용이라도 한다면 다산은 또 한 번 곤욕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다산의 인격에 감복한 강진 주민들은 행여 선생의 신상에 어떤 해악이나 닥칠까 전전긍긍합니다. 돈으로 직을 샀는지 <맹자>의 구절도 모르는 무식한 현감 탓에 다산은 중벌을 받을 위기일발 상황에 처했으나 이 지역 병마절도사의 혜안 덕에 간신히 방면됩니다. 공연히 "무식한 무장 앞에 물고(物故)나 나지 않을지"를 겁내었던 다산도 다소 경솔했던 자신을 다시 돌아봅니다. 스승을 역모로 거의 몬 셈이었던 손가 애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맹자>의 특정 구절은 예로부터 매우 민감한 정치적 파장을 낳았던 전력도 있었기에 까딱 잘못했으면 불귀의 객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말입니다. 

"여자의 몸은 남자보다 우주의 율동에 더욱 민감하다(p124)." 그러게나 말입니다. 관계의 열락도 그 궁극의 단계를 더 절실히 느끼는 쪽은 여성입니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 격물치지의 현인들이 陰陽, 雌雄, 요철, 빈모 등 특정 어휘에서만은 여성상당어를 먼저 배치한 건 다른 각별한 뜻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퇴계나 화담도 방사에서 그렇게나 절륜한 실력을 보였다는 민간전승이 있듯(믿거나말거나입니다), 소설 속의 다산도 운우의 지극한 보람과 희열에 대해 객관적 관념론의 충실한 학인(學人)답게 결코 논외의 경멸감으로 일관하지 않고 겸허한 태도를 취합니다. 

p164에서 젊은 승려 혜장과 함께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다산의 모습은 마치 이때로부터 300여년 전 금강산에서 19세의 나이에 산사의 老僧과 논쟁하여 이긴 율곡 이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老幼의 배치가 정반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다산은 다만 교조적 논리로 혜장을 압박하여 진영의 명예를 높이려는 공명심 따위야 추호도 없습니다. 그는 이미 조선 유학의 본진인 노론으로부터 배척, 타매, 축출된 상태이며 사상과 학문의 고향 격인 남인 무리들은 구심을 잃고 흩어졌습니다. 이런 판에 불도자 청년 하나를 윽박지르거나 기를 꺾어 얻는 게 무엇이겠으며 그가 지금 추구하는 실학(實學)의 도가 윤택해질 바가 어디 있겠습니까. 파계승 초의(p220)와도 그는 신분, 나이를 초월하여 격의없는 교분을 나눕니다. 

p232 이하에서 다산은 구강포 인근을 지나다가 완전범죄로 묻힐 뻔한 살인범죄 하나를 적발하고 고을 형방에게 넘기기도 합니다. 여인의 곡소리에 진정한 슬픔이 전혀 서리지 않았음을 날카롭게 꿰뚫어본 데서 시작한 그의 간단한 수사 기법은 마치 셜록 홈즈의 재주를 방불케 합니다. 텅 비어야 할 나폴레옹의 흉상 안 공간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듯, 어느 조선 남자 시신의 상투 안에도 끔찍한 것이 박혔던 걸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p305에서 이미 망인이 된 다산의 혼은 천계에서 젊을 때의 벗이던 이벽을 다시 만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저승의 객이 된 다산은 이제 그토록 궁금해하던 세상사의 모든 답을 알고 석가세존처럼 깨달은 정신으로 승화하는데, 부디 저 위에서 우리 불쌍한 후손들을 계속 굽어보시어 행여 멸망의 길, 악의 유혹에 접어들지 않게 그 애민정신을 발휘하시어 조국을 보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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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따라쓰기 1-2 - 2024년 시행 국어 교과서 따라쓰기
컨텐츠연구소 수(秀) 지음 / 스쿨존에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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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따라쓰기 2023년판을 읽고 작년 10월에 리뷰를 올렸더랬습니다. 지금 이 교재는 2024년 신판이며, 교과서의 개정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정확하고 친절한 설명, 풍부한 일러스트 등의 장점이 여전히 돋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교재 처음에서는 바른 자세를 가르칩니다. 국어건 수학이건 간에 책상과 의자에 바르게 자세를 잡는 것이 모든 공부의 시작입니다. 바르지 못한 자세에서 대상에의 올바른 집중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교재 p4에는 바른 자세를 잡은 한 학생의 예가 그림을 통해 제시되며, p5에는 나쁜 자세의 세 가지 예가 나옵니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서 자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고, 어려서부터의 바른 자세는 학생의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죠. 

1-2 교재지만 아직 학생들은 자음과 모음의 개념이 완전히 습득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p8에서는 ㄱ,ㄴ,ㄷ,ㄹ 등 자음을 순서대로 또박또박 쓰게 가르칩니다. 자음이 끝나면 모음이 나옵니다. 자음과 모음이 모여 온전한 소리와 글자가 생깁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모음은 혼자서도 온전히 소리가 나기에 홀소리라고도 부르고, 자음은 그렇지 않기에 닿소리라고도 부른다는 이치가 아직 완전히는 납득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ㅏㅑㅓㅕㅗㅛ... 등이 모음이고 이 글자들은 ㄱㄴㄷㄹ 등과는 다른 부류이며 그 집합명칭은 각각 이렇다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일단 성공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됩니다. 

의성어라는 게 있죠. 소리를 흉내내는 단어인데 아직 1학년이면 "의성어"라는 단어 자체는 몰라도 됩니다. 성질상 그런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는 정도만 이해해도 충분하죠. 교재 p18에 의성어의 세 예, 바스락, 까르르, 휘휘 등이 나옵니다. 이 의성어들을 해당하는 그림들에 각각 연결시키는 게 목적인데, 아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해 낼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애들이 공부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최대한 부담을 덜어 주고 친근감을 붙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다가 잠시 쉬어가라는 뜻인지 p26 같은 곳에는 "놀이터" 코너가 나옵니다. 호수에 비친 한 개의 풍선(열기구)가 있는데, 하늘에 뜬 여덟 개의 풍선 중 저 수면의 그림자가 누구 것인지를 맞히는 문제입니다. 저는 답이 세 개인 줄 알고 p103의 해답을 들추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답은 한 개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다시 잘 들여다 보니 과연 그림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풍선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도 푸는 문제를 어른인 제가 틀렸기에 충격도 적잖게 받았습니다. 아무튼 이런 문제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고 특히 어른이 옆에서 틀리면 (자신은 맞혔는데) 더 즐거워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이 교재의 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따라쓰기" 컨텐츠가 정식으로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 p34 같은 곳을 보면,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했어." 같은,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을 네모칸 안에, 띄어쓰기를 준수하며 따라쓰게 합니다. 이때 원고지 사용법의 일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원고지 사용법을 잘 알면, 나중에 대입 논술 같은 걸 준비할 때 제법 도움이 됩니다. 뭐든 간에 어렸을 때부터 배워 버릇해야 이후에 힘이 덜 듭니다. 

저 문장에서, "하마터면" 같은 부사도 어린이가 아직 못 알아들을 수 있고, 어디에선가 들어 봤기에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처음 접하지만 교과서의 이 맥락을 보고 바로 납득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발음이 하.마.터.면임을 잘 이해시켜야겠고 동물 하마와는 관계 없다는 점도 같이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또 "잡아먹히다"는 하나의 의미 단위라서, "잡아 먹히다"처럼 띄어쓰기를 해서는 안 됨을, 좀 학습 진도가 빠른 아이한테는 한번 일러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뻔했어"도, 비슷한 이유에서 "뻔 했어"가 아닙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재지만 막상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도 정확히 몰랐던 내용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배움 앞에서 겸손할 필요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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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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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자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다룬 소설은 많이 나왔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한승원 선생의 이 <다산>이 결정판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작이니 그리 오래된 소설도 아니거니와, 선생님이 예전 분이니 문장도 읽기 어렵고 쓰인 단어도 고풍이겠거니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문장 길이도 짧고 술술 읽힙니다 .저는 사실 선생의 1980년대식 스타일 문장이 훨씬 좋았기에 이 대작을 읽고 약간은 실망도 했으나 그래도 최고입니다. 깊이도 가독성도 재미도 모두 달성한 걸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인이 된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실전(失傳)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사실은 어느 수도원에 비밀리에 전한다는 가정 하에 흥미진진한 미스테리를 풀어 냅니다. 이 소설에서도 어떤 가상의 현대 화자(혹은, 한승원 선생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가 서두의 액자 밖에서 <다산비결>(토정비결도 아니고)이라는 책이 사실은 있었다는 회고를 꺼냅니다. 그 책이 알고보니 기존의 <경세유표>였다느니, 이제는 태반이 부식된 낡은 언문서라느니 하는 논쟁은 중요치 않습니다. 후손들이 다산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얼마나 바른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내는지가 더 본질인 것임을 작품은 내내 19세기 사건들의 재구(再構)를 통해 역설합니다. 

p80에는 서울 서부 교외에서 열렸던 향사례(鄕謝禮)를 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용을 대었다고 설정된 김범우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이죠. 다만 조정에 의해 사형을 당한 게 아닌 등 몇 가지 이슈 때문에 아직 성인도 복자도 아닙니다(가경자로 심사 중). 악사들, 기생들도 동원되어 행사를 거들게 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물론 여기서 기생은 술 시중이 아니라 기예를 행하는 예술단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이벽 등은 뛰어난 활솜씨로 관중(貫中)을 해 보여 군중(群衆)을 놀라게 하지만, 청년 정약용은 담백하고 솔직한 연설을 통해 사람들을 감탄케 합니다. 그의 말은 개혁을 갈구하는 열정, 민중에의 사랑 등으로 가득하여 청중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천지는 저절로 된 게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p111)." 청년 다산은 이벽의 이 힘있는 설득을 듣고 감명받지만 실은 동아시아의 오랜 理氣論의 원칙에 의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며 다만 천지의 이치에다 天主(혹은 釋尊. p212)라는 이름을 붙이냐 마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조선 과거의 최종 전시(殿試)는 임금이 직접 채점을 보는데 다산의 답안을 보고 정조는 백 년 만에 처음 재상감을 보았다며 감탄합니다. 원래 과거는 미사여구의 나열이 아니라 정치 현안의 해결을 논하는 경세방략을 겨루므로 그 식견이 이미 답안에서도 드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p34에서 소설은 다산의 서거 장면으로 도약하는데(이후 청년기로 다시 돌아옵니다) 죽어서 이미 어둠과 합일한 다산(더 이상 다산도 아니지만)의 독백 대목을 보면 역시 한승원 선생의 소설적 기교가 참 뛰어납니다. 

정조 임금 이산(혹은 이성)이나 다산이나 당대의 천재들이므로 대면하여 지혜를 겨루는 대결이 실제로 있었음직하고 상상만으로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p208 이하에 그 장면이 나오는데 임금은 天, 仁, 无 등을 문제에 꼬았으나 다산은 오래 걸리지 않아 알아냅니다. "저절로"라는 뜻의 그러할 然을 염두에 두고 다산은 문제를 내는데 정조가 맞히긴 했으나 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이 글자에 개고기 굽는 사연이 깃들었음을 새삼 (그 글자를 보고) 독자도 수긍하게 됩니다. 

유학은 예나 지금이나 체계 내 여성의 취약한 위치 때문에 힘들어하는 면이 있습니다. 18세기 남인 명문가들에서 천주학을 처음 접했을 때 그토록 열광했던 게, 물론 정치적으로 소외된 그들 정파의 딱한 사정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녀의 평등, 혼인에의 신성한 의의 부여(따라서 아내도 중요 위치 차지) 등이 우리 동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청신한 교의였기에 특히 여성들에게 큰 각성과 지지를 이끌어내서였습니다. 이벽이 정약용에게 아담과 하와의 피조를 논할 때 반짝이던 눈빛은, 사람의 깊은 본심에 호소하는 보편 진리만의 강한 설득력에 기대어서였겠습니다. 우리는 경상도라고 하면 몰락 남인의 향토적 기반으로만 아는데, 그래서 p55에 나오듯 노론 수령이 향신을 핍박하는 저런 쟁의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입니다. 무슨 안동 김씨 세도라고 하니까 경상도가 선말에 큰 힘이나 쓴 줄 알아도 장동(서울 사대문 안 소재) 김씨들에게 안동은 그저 먼 조상의 발원지일 뿐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p251 이하에는 다산(아명은 귀농이었다고 하네요)의 형 약전이 물고기들과 함께 노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자산어보> 같은 명저("현산"이라 읽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를 저술할 큰 깜냥이 벌써 이때부터 엿보였다는 거죠. p266을 보면 맏형 약현은 아주 보수적인 인물로서, 윤지충 사건 등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기색인데 개혁가 다산의 험난한 여정이 벌써 가내에서부터 이렇게 도전을 맞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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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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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뤼미에르 형제의 나라 프랑스로 건너가신 후 어언 20여 년 동안 거주해 오신 저자께서는 프랑스어의 달인이 되신 후에도 여전히 한국어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고 말씀하십니다(p213). 한 사람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어른이 되게 만들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어 온 네이티브 랭귀지라는 것의 힘이 그만큼이나 강한가 봅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저는, 성년이 된 후 배우기 시작한 언어인 프랑스어를 저자께서 저렇게 능숙하게 구사하게 된 비결이 솔직히 더 궁금했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고교에서 제2외국어로 (그당시 분들에게 프랑스어와 함께 유이한 선택지였던) 독어를 공부하셨다는 말씀도 책에서 하십니다. 성장기에 아무 연도 없던 외국어와 친해지고 마침내 그를 통해 해방의 쾌감까지 맛보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3에도 그런 말씀이 나오지만 아무래도 제2언어는 컨디션에 따라 그 구사의 질이 달라지나 봅니다. "당신의 프랑스어, 오늘 무슨 일이지?" 저자는 이게 그 언어가 무의식까지 스며들지 않아서라고 말씀합니다. 달리 말하면,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순간 그 언어로 탄식하고 환호하고 신음할 줄도 알아야 어느 단계를 확 넘어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님처럼 해당 국가의 문화를 너무도 사랑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습니다. 이란의 어느 젊은 여성이, 구조도 어휘도 한 구석 닮은 데 없는 한국어를 두고, 그저 문화 컨텐츠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처럼 실력을 늘릴 수 있었던 사례를 봐도 이 점 확인 가능합니다. 

p75에는 "외국어 공부 최고의 방법은 그 나라 연인을 사귀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어 R이란 분과의 오랜 교제 이야기기 나오는데 이 역시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이성연인이 아니라 그저 동성친구(들)이라 해도 언어 익히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데, 이건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젊은 여성(주로 백인) 유학생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너무도 한국어를 그럴싸하게 해서, 불평하거나 푸념하거나 할 때 외국인의 육신 안에 한국인의 영혼이 그대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옆에서 보면서 저는 살짝 소름이 끼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부작용이, 저자께서도 말씀하듯 나의 언어 나의 생각이 아니라 그(그녀)의 언어 그의 프레임 안에 갇혀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긍정/부정을 넘어 이것이 언어의 힘 그 강력한 예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두 언어 사이를 오가는 일은 마치 손으로 모래를 옮기는 것 같았다(p106)." 그래서 애초에 번역이라는 게, 이미 다리 하나를 건너며 많은 느낌이나 맥락이 희생되고 왜곡되는 작업입니다. 해당 언어에 익숙해지면 또 구태여 번역을 거칠 필요도 없이 편안한 두번째 집에 머물면 되는 것이고요. p111에 보면 윤진 번역가님의 센스에 대해 저자께서 감탄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책의 중요 주제 중 하나가 번역이라는 작업의 본질 탐구이기도 합니다. 이 이슈는 AI가 또한 얼마나,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주요 기준이기도 합니다. AI가 아직 수학 문제 풀이라는 벽을 그리 쉽게 넘지 못한다고도 하는데 과연 오랜 난제인 번역하고 어떤 걸 먼저 완성도 있게 해 낼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 책은 매 꼭지마다 프랑스어 문장을 제목으로 뽑아 독자들에게 생각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p150에는"Ne vous inquiétez pas, c'est par gout."라는 말이 나옵니다. 약간 뜻이 통하는 말로 영어에는 "There's no accounting for taste."라는 것도 있죠. 취향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자리잡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는 아무도 시원하게 해명못하고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비밀스럽게, 또는 대놓고, 이게 내 취향이라며 지인들과 함께 공유, 음미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자부심을 갖기도 하지만 점잖은 사람이라면 다 모른척해주고 넘어갑니다. 이 대목에서 소개되는 <타인의 취향>은 2000년 세자르상(프랑스의 오스카 격) 작품상 수상작이었죠. 프랑스에 그처럼이나 몰입했던 사람도, 알고 보니 "그 프랑스는 사실 예전의 프랑스이며 지금 프랑스는 더 이상 그 프랑스가 아님"을 깨닫고 허탈해지기도 하는데, 어디 이런 게 프랑스뿐이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나만의 취향, 나만의 착각이라는 강고한 성채 안에 갇혀 살 권리가 있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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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니까 불안해!
채은 지음 / 책고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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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사교육이 극성스러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저자 채은 작가님은 그 대강의 경력만 봐도 동연령대 어느 여성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한 예라 할 만합니다. 마케팅과 홍보 분야의 전문가이며 한때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에도 몸담아 (당시 아무도 예상 못했던)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다른 전선에 나서면 그 분야에서 더 잘나가는 다른 엄마를 만나 위축감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하신다니 한국의 사교육 현장이란 산업의 최전선보다도 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p25 이하에는 이른바 "돼지엄마"라는, 이런저런 사교육 정보에도 밝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성공적인 교육 업종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도 영재로 잘 키우는(안 그러면, 동료 엄마들이 선망하거나 추종하지도 않죠, 애초에요) K라는 분의 이야기가 잠시 나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도 힘든데 이렇게 엄마 노릇에서까지 극심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니 과연 한국은 예사 나라가 아니며 이런 물질적 풍요가 괜히 얻어진 게 아닙니다. 긍정적인 뜻에서건 시니컬하게건 모든 뜻에서 그러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2 이하를 보면 순전히 아이를 위해 제주도로 이주하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론 현지에 소재한 그 국제학교 때문입니다. 채은 작가님만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그 남편분도 성공한 개업의로서 한국에서 전문직 최고 티어로 치는 선택받은 인생입니다. 이런 분들도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롭게 생을 시작해야 한다니(사실 제주 국제학교라는 곳이 좀 과장하면 본래부터 이런 분들을 유치하려고 설립된 시설이라고 해도 됩니다), 한국에서 애 하나 제대로 키우는 게 이처럼이나 힘들다는 점 새삼 확인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사정이 이런 판에 한국은행 총재께서 대치동 사교육 이상(異常) 열풍을 지적하며 특정 조치를 거론했으니 엄마들이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은 학비가 수십억 한다는 외국 학교에 자녀를 보냈니 어쨌니 하며 말입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제주도 국제학교에 애를 보내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책의 이 부분에 정리가 잘 되어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할 만합니다. 

애를 조기 유학 보내고, 엄마가 양육, 보호, 학습 지도를 위해 따라가는 패턴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있었고 TV 드라마 소재로까지 자주 쓰입니다(상당수가, 공교롭게도 그 부친이 의사라는 설정이기도 하죠). 이 경우 애가 외국행을 간절히 원하면(특히 p117 참조) 부모님들로서는 들어 주는 것말고는 방법이 따로 없는 듯하며 이해도 충분히 됩니다. 제가 올해 6월에 <캐나다 캘거리에서...>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었는데 한국에서 예나 지금이나 유학지로 인기 높은 곳이 캐나다이며 책에 나온 설명을 보면 과연 그럴 만한 환경입니다. 미국처럼 치안이 위태롭거나(물론 미국도 미국 나름이지만) 물가가 살인적으로 비싸거나 풍속이 난잡하지도 않고(요즘은 한국이 더합니다만) 차분한 사회적 분위기에 깨끗한 환경, 게다가 저자님 경력상 영주권 취득에 유리한 부분도 있어(이게 결정적이었겠죠) 책을 읽다 보면 처음에 고개가 갸웃했던 부분도 서서히 수긍이 갔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저자는 아들을 캐나다 보딩스쿨에 진학시키게 됩니다. 맹모삼천(三遷)지교, 아니 아예 다른 하늘 아래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맹모삼천(三天)지교라 할 만합니다. 

"쉽지 않지만 아이보다 엄마가 더 노력해야 한다(p169)." 이 말만 보면 뭐 그러려니 하며 예사로 넘길 분들이 많겠으나, 이 책을 읽어나가다 여기에서 일단 숨 한 번 돌리는 독자로서는, 과장 좀 보태서 정신이 아찔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정성껏 부모 노릇 한번 한다는 게 이렇게도 힘들단 말인지! 물론 금전적인 뒷받침도 따라줘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온갖 정보 채널을 다 가동하고 이를 취사선택하여 전략을 짜고 칼 같은 실행력으로 아이를 밀착 마크하며 바른 성장을 돕는 엄마의 매일매일의 고된 여정과 도전입니다. 흡사 기업 하나를 설립, 운영하는 노고와 열의, 재능에 견줄 만합니다. 잠시 과거를 회고하시는 p179에 보면 (저는 처음 들어보는) 전자간증(前子癇症. pre-eclampsia) 증상까지 생기셨다고 하는데 그러실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고대 그리스어 동사 ἐκλάμπω가 그 어원이며 등잔(lamp)하고도 먼 어원으로 관걔가 있는 단어이고, 쉽게 말해 (책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고혈압성 임신중독증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가지시고 출생한 자녀분인 만큼 더군다나 각별한 열의로 양육하시려던 그 마음에 공감이 되고도 남으며, 아울러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께 경의를 표하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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