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종말의 시대, AI가 HR의 솔루션이다 - DX를 뛰어넘는 AX의 시대가 도래했다
최학철 지음 / 라온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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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DX를 뛰어넘는 AX의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서 DX라 함은 디지털 중심(digital transformation)의 약자이며, AX는 인공지능 중심이란 뜻이 있다고 이 책 p30에 나옵니다. 그런데 왜 T가 아니라 X인가. X라는 글자가 요즘 엔터테인먼트 계에서 아티스트들이 콜라보레이션한 결과물에다가도 쓰이곤 하는 걸 많이들 봅니다. 이때의 X는 cross의 약자라고 볼 수 있는데, 서로 달랐던 두 영역이 역동적으로 혼화, 융합하는 걸 뚜렷이 드러내기 위해 이렇게도 표기한다는 것입니다. 20여년 전 일었던 DX의 거센 물결에 간신히 적응하고 나니 이제 AX가 다가온 셈인데, 언제나 그랬듯 개인 입장에서는 트렌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의 체질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프롤로그 p7을 보면 대략 20년 전에 주목을 끌었던 ERP, 즉 전사적(全社的) 지원 관리 시스템에 대해 저자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어떤 유행 하나가 불가피한 대세로 여겨지면, 일선의 회사들도 무슨 큰일이나 난 듯 너도나도 허겁지겁 도입하다가 공연히 불필요한 비용만 날리고 말았던 과거의 실패 사례를 든 것입니다. 어떤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이 도입되었을 때 이것이 과연 미래 사회의 중추를 이루게 될지 혹은 거품인지는 그 판단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지난세기말 인터넷의 도입이 반신반의되던 와중에 결국은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았듯, 이제는 AI가 그런 위치를 차지하게 되리라고 저자는 전망합니다. 

요즘은 우리 나라 기업들도 AI 면접 방식을 많이 채용합니다. 이에 대해 책 p47에서는 이 AI 면접관(?)이 인종이나 종교, 민족, 국적 등에 기인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또 공정하게 인재(지원자)를 판단하는 긍정적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AI에도 어떤 오염된 학습 전단계가 거쳐졌다면 이런 결함 사항은 아마 사람이 수동으로 개입하여 교정해야만 할 듯합니다. 공정성과 포용성 이슈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대중들이 특히 사법부의 재판 시스템에 대해, AI 판사 도입이 시급하다다며 그 나름의 의견을 표시해 왔던 바 있습니다. 앞으로 이 부분 기술 진보가 어떤 양상으로 이뤄질지 궁금합니다. 

p75를 보면 이 책을 골라든 독자들이 아마도 가장 관심있어하고 궁금해할 이슈가 이 대목부터 차근차근 설명되기 시작합니다. AI는 인재 선별의 단계에서부터, "초"우수 전략을 이용한 초특급인재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지금껏 HR 분야에 종사하며 특히 한국 기업의 인사관리 실태가 어떠한지, 어떤 강점과 취약점이 있는지 권위 있는 진단을 내릴 만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분 말이 직원의 이직, 유출에 있어 HR 담당 쪽에서 판단할 때에는 사적인 술자리에서의 직감(p78), 노련한 직감(p79) 등에 많이 의존해 온 바 있습니다. 그뿐이면 좋은데. 줄서기(줄세우기)나 내 사람 만들기 등으로 구태 가득한, 비합리적이고 정실에 치우친 인사가 그간 기업에 만연했었죠. 이제 AI가 본격 HR에 채용되면, 적어도 사내 정치에만 서툴렀을 뿐 역량은 뛰어난 인재들이 아첨꾼들, 덩치 큰 무식한 행동대장 따위에 밀려나는 일은 많이 줄어들 듯합니다.    

요즘 직장인들은 그 이름을 모르기가 좀 힘든 곳이, 글로벌 기술기업 SAP입니다. 대략 8년 전부터 한국에도 고객사를 급격히 늘린 곳인데, 이곳이 새로 출시한 솔루션이 바로 SuccessFactors Conversation입니다. 놀랍게도 이 시스템은 동종업계의 임금격차라든가 사내의 부당처우 등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조직 안에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p155)" 담당자에게 경고함으로써 인사관리의 무결성과 공정성을 담보, 실현합니다. 변화라는 건 어느날 갑자기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살금살금 전체 판세를 물들이는 것입니다. 

AI는 그저 직원들의 일거리만 덜어주어 간접적으로 복지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직원의 편의를 높여주기도 합니다.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데 이는 공연한 잉여잡무나 시행착오를 줄이며, 동시에 직원들의 건강을 면밀히 체크함으로써 갑작스러운 건강의 collapse를 방지하는데, 이제 AI를 잘 도입한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회사에 계속 소속되고 싶어질 듯합니다. AI는 내 밥그릇을 뺏어가는 공포스러운 괴물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임을 가장 먼저 깨달은 직원이, 급변하는 미래에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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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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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물들은 그 생명의 아득한 기원이 바다입니다. 현대 과학이 이처럼이나 발달했는데도 아직 바다에 사는 그 많은 생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는지,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는지 인류는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과연 어떠어떠한 종(種)들이 바다에 사는지 그 목록조차 정확히 갖지 못한 채입니다. "나는 해변에서 예쁜 조개를 줍는 어린이에 불과하며 미지의 세계는 저 거대한 바다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400년 전 뉴턴의 말인데 저 상황이 아직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닙니다. 우린는 여전히 많은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젊은 연구인인 저자 빌 프랑수아 박사는 그 전공이 생물물리학인데, 이 해양생물들이 물리적 환경의 가혹한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하여, 경탄이 절로 나오는 방식으로 살아남아 우아하게 대(代)를 이어가는 모습에 매혹되었습니다. 빌 프랑수아 박사도 프랑스 최고 명문인 고등사범 출신인 천재인데, 그는 오히려 이 해양생물들이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연이 정해 둔 온갖 장애를 뚫고 끈질기게 생존을 지속하는 "천재"라며 최상의 찬사를 바칩니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운 교과서를 보면 특히 생명과학 파트에 많은 일러스트와 도판이 실립니다. 교과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런 시각 자료가 필요해서인 이유도 있지만, 그런 그림과 사진을 보기만 해도 그 기기묘묘한 생김새에 빠져들어가듯 몰입하게 됩니다. 그저 이상하고 기발해서가 아니라, 수십만 수백만 년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남은 비결이 그 모양 안에 응축되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연스럽게 겸허한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죠. 히트 상품도, 빼어난 성능을 가진 것은 그 유니크한 디자인부터가 자신의 성능을 입증하는 중입니다. 이 책은, 전문저널 에디터이자 이 분야에 특화된 일러스트레이터인 발랑틴 플래시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교과서나 과학 도서에서, 무호흡 잠수 분야의 챔피언으로서 향유고래가 꼽힌다는 걸 상식으로 알아 왔죠. 그런데 이 책 p63을 보면 민부리고래가, 수심 2992m까지 내려가서 137분 가까이 잠수한 기록으로 이 분야 최고자리를 꿰어찼다고 나옵니다. 2992m면 백두산이 거꾸로 박힌 것보다도 더 깊습니다. 137분은커녕 13초만 숨을 못 쉬어도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이 민부리고래(우리와 같은 포유류이기도 하죠)의 귀여운 컬러 일러스트가 나오는데, 정말 귀엽게 생기기도 했습니다. 과학 지식에 정통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은, 많은 경우 그 핵심을 사진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또 이 부분 프랑수아 박사의 문장도 일류 수필마냥 화려하고 흥이 넘칩니다. 

프랑스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의 무술(유도 등)을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수련하던 유행이 있었는데(무술뿐 아니라 회화, 자기 등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수용했었습니다), 저자는 p116에서 지느러미발도요의 생태를 설명하며, 이 새가 어떻게, 작은 먹잇감이 들어 있는 물방울을 분당 100개 넘게 삼킬 수 있는지를 아주 쉽게 독자에게 가르칩니다. 이 새가 물방울을 다루는 솜씨를 보고 마치 합기도의 고수가 선뵈는 현란한 기술에다 비유하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합기도는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성립한 무술인데 저자 취미가 참 독특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여기서 이 새가 물방울을 (아주 빠르고 빈번하게) 삼키는 게 왜 예술이냐면, 물방울에는 기본적으로 표면장력이라는 게 작용하기 때문에, 빨대 구조가 아닌 부리로써는 이걸 빨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자의 "물리학" 소양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해저에는 열수(熱水)분출공(噴出孔)이라는 게 있습니다. 물 아래 지각의 구멍으로 열기가 새어나오면 그 압력에 의해 인근의 데워진 물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인데, 여기에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모여 각각의 색깔과 움직임을 뽐내며 수중 쇼를 벌이는 걸, 1977년 과학자들이 갈라파고스 심해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햇볕이 수심 2500m 가까운 곳에 들 리가 없는데 어떻게 생물들이 이렇게나 군집할 수 있을까요? 지각에서 메탄 등 독성물질(p149)가 삐져나오고, 이걸 양분으로 삼는 세균이 번식하며, 그 세균을 먹이사슬의 가장 바닥층으로 삼아 생물 피라미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모든 심해생물이 이런 식으로만 사는 건 아닙니다. 과학자들의 관심사는, 빛(지상의 식물은 광합성이 모든 생명 작용의 기초를 이루죠)이 없는데 어떻게 생명체가 그 첫발이라도 뗄 수가 있냐는 의문을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어디에선가는 생물이 자체 발광(發光)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야 하는데, p181 이하에 녹틸루카 신틸란스(noctiluca scintilans)의 예가 나옵니다. noctiluca가 "밤에 빛나는 것"이란 뜻이며, scintilans는 불꽃처럼 반짝인다는 뜻의 라틴어 현재분사입니다. (영어나 불어가 아닌) 라틴어식으로 읽으면 스킨틸라스가 되겠죠. 자체 발광을 위해서는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물의 흐름도 생물이 일일이 이용한다고 나옵니다. 

눈은 생물의 진화 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바다이구아나는 두 눈을 분명 감았는데도 빛을 감지하고 냉큼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이마에 세번째 눈이 (우리가 잘 볼 수 없지만) 달려 있어서라고 합니다. 어떤 생물이라도 빛을 잘 감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인간이 자연광 대부분을 (아마도) 가장 정확히 인식하게끔 진화한 눈을 달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죠.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취사선택이 있었고, 다른 동물들에게 저렇게 두정안(頭頂眼) 같은 독특한 기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과학자들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저자의 전공은 생물물리학입니다. 이 분야가 저자를 특히 매혹한 건, 생물이라는 게 물리 법칙에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살아온 매우 독특한 존재라서입니다. 생물물리학이란 어떤 의미에서 형용모순(contradictio in adjecto)인 것입니다. 대체 빛이 없는데 어떻게 동물이건 식물이건 기초적인 활동이나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입의 구조가 먹이를 먹을 수 없게끔 방해하는데도 무슨 수로 그 난관을 뚫고 나가겠습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해양생물의 세계는 그 자체로 경이(驚異)의 바다입니다. 

최고의 번역가 이충호 선생, 최고의 과학서적 출판사인 해나무의 정성어린 번역서라서 더 편하게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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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픽사 인사이드 아웃 2 아트북 : THE ART OF 인사이드 아웃 2
피트 닥터.켈시 만 지음, 김민정 옮김 / 아르누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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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에서 만들어 온 작품들은 자라나는 어린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이 관람해도 재미있고 교훈적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이성만을 강조했던 근대와는 달리 현대에는 사람들이 감정을 중시합니다. 내 안에 든 감정들이 마치 사람처럼 대화하고 싸우고 마침내는 서로 도우며 나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상상은 기발하며 유쾌하기도 하고, 내 안의 감정 기제에 대해 다시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홍콩식이라면 監制) 피트 닥터(Pete Docter. 철자가 원래 이렇습니다)는 9년 전 인사이드 아웃 1편으로 오스카 상도 받은, 픽사의 CEO입니다(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직접 서문을 썼는데, 왜 이번 2편에 "불안이(Anger)"가 새로 출연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불안은 그닥 유용한 감정이 아니며, 내일이나 먼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차분히 대비하기에도 빠듯한데 오늘의 사소한 일들에 일일이 불안감을 느끼는 게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히 좋은 친구이며, 우리가 관계나 업무에서 보다 더 책임있는 사람이 되게 돕는다고도 합니다. 이 피트 닥터 CEO는 1편, 2편에서 라일리 아빠 안에 들어 있는 감정(아빠의 "버럭")의 목소리 연기를 직접 맡기도 했습니다. 

켈시 만은 올해 50살인 남성이며 이 책 소개글(p11)에도 나오듯 <몬스터 대학교>, <굿 다이노>, <온워드> 등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았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1편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는데 감독으로서는 지금 이 <인사이드 아웃 2>가 데뷔작이며 각본은 <굿 다이노>가 처음이었습니다. 1편 감독은 저 피트 닥터였었고요. "라일리의 머릿속 세계가 픽사 역사상 가장 큰 세트장"이었다고 평가하는 그의 말이 재미있습니다. 큰 일을 멋지게 마무리짓고 그 성과의 공을 같이 일했던 훌륭한 동료들에게 돌리는 그의 문장들을 보며 멋지다는 생각도 들고, 이 정도 성취를 죽기 전에 한 번 해 봤으면 하는 부러움도 누구한테나 생길 법합니다. 

p33을 보면 부럽과 질투가 함께 나옵니다. 물론 "질투"는 처음에 등장시키려 했던 시안 중의 캐릭터이며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부럽이와 질투는 일란성 쌍둥이이며 누가 누군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아이디어였다고 회고합니다. 영어에서는 envious와 jealous의 차이에 대해 전자는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하는 감정, 후자는 남에게 내 것을 뺏길까 우려되는 감정이라고 설명하는데, 뭐 말은 이래도 원어민들 역시 일상에서는 마구 섞어 쓰거나 정반대로 헷갈리곤 합니다. 라일리처럼 사춘기 소녀 때 감정이 건전하게 자리잡게 하며 성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게 잘못되면 남한테 피해나 끼치고 사기나 치고 다니는(끝내 장사도 실패하는) 못난 어른이 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이 2편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였던 존 호프먼은 p45에 나오는 대로라면 원래는 "본부(Headquarter)"에 더 많은 감정들을 등장시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정들이 자리하고 서로 소통하는 곳을 본부라고 부른다는 점부터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감정(모두 캐릭터)들이 등장하면 관객이 집중하기도 힘들겠다는 판단 하에 넷("추억"을 뺀 언급인 듯합니다)만 추가하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다른) 감정들이 등장하는 시간이, 불행하게도 라일리와 기쁨이에게 가장 좋은 시간은 아니었다." 이 말이 알쏭달쏭한데, 누구에게라도 그 감정이 기쁨으로 가득할 때가 행복하겠고, 다른 감정들에 지배될 때가 불행해서라는 뜻으로 독자인 저 혼자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감정 역시 다양하게 그 사람 안에 깃들어야 정상이며, 항상 기쁘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못합니다. 

p104에는 "영화 속에서 라일리에게 일어나는 발달적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건축이라는 은유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영화 제작이라는 대형 프로젝트, 종합 예술의 완성이란 관점을 떠나서도, 한 사람의 감정을 오밀조밀 잘 꾸려서 조화롭고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나는 과정은 건축이라는 작업에 비길 만합니다. 걸작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재주꾼들의 헌신과 열정이 필요한지 엿볼 수 있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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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네버 마인드 - 이기거나 죽거나
이근웅 지음 / 라온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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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번성하고 청년 성공 신화가 끝없이 탄생하는 나라라야 그 장래가 밝습니다. 중국만 해도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그렇게나 많습니다. 한국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체제인데도 청년의 도전이 중국보다 더 비활성화되었으니 개탄스럽다고 할 밖에요. 이스라엘이 사방으로부터 적에 둘러싸였는데도 저처럼 효과적으로 응전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것도 후츠파 정신에 기반한 끝없는 개척 정신 덕분임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저자 이근웅 대표는 스타트업 전문 컨설턴트로서 스타트업 창업을 근거리에서 지원하며 한국 벤처의 실상과 가능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입장입니다.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이들, 창업의 실질적 문제나 장애사항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구체적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역시 저자는 컨설턴트답게 "고객의 구체적인 고통이 무엇인지"를 먼저 귀기울여 들으라는 조언을, 미국 세콰이아 캐피틀 홈페이지에 게시된 어느 사업계획서로부터 인용하여 p76에 영어 원문과 함께 보여 줍니다. 그 밑에는 참 재미있는 공식도 하나 실렸는데, (고통의 크기)×(그 고통을 겪는 사람의 수), 이 계산의 결과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시장의 크기)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감탄했는데, 어디서 돈이 거저 굴러들어오는 데가 없나 요행을 바랄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재빠르게 캐치하고 저 고통을 내가 개발한 서비스로 덜어 줄 수 있다면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이게 바로 성공하는 사업가의 마인드입니다. 이런 과감하고 창의적인 사고로 매사를 바라봐야 큰돈을 벌 수 있고 없던 시장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작은 자영업의 성공도 요즘 세상에는 쉽지 않습니다. 좁아터진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정도 같으면 아마 사막한복판에 갖다놔도 어떻게든 생존귀환할 것입니다. 여튼 작은 성공도 쉽게만은 이룰 수 없는 게 작금의 형편인데, 그 작은 성공에 머물지 말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라고 하면 아마 많은 이들이 주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망설이지 말고 규모를 키우려고 더 먼 곳을 바라보라고 조언하는데 이게 바로 p108에서 말하는 스케일업(scale-up)입니다. 

특히 이 대목에서, 매출 확장을 게을리하고 연구와 개발에만 몰두하는 일부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저자는 걱정합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예비창업자가 있다고 해 보죠. 이 사람은 시장을 뛰어다니며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 알려 든다거나 관계사들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한다거나, 이런 쪽은 그닥 적성에 맞지도 않고 내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랩에서 폐쇄적으로 연구와 진리탐구에만 골몰해서 성공하는 섹터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야생의 필드입니다. 제품의 시장 적합성이란 스타트업 생존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스타트업의 성공 동력은 첫째도 둘째도 고객만족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저자는 충고합니다. 또 일정 성공이 이뤄진 후에도 현실에 안주하며 고객을 그저 숫자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게 저자의 말씀인데, 초심을 강조하는 이런 교훈을 젊은 CEO들이 잊지 않아야 하겠네요. 또 p127을 보면 한국의 경우 B2B는 제품집착형, B2C는 고객집착형이 많다고도 합니다. 기업 상대라면 그 기업 고객이 무엇을 가장 불편하게 여기고 큰 고충으로 여기는지 먼저 알아야 하며, 개인 고객 상대라면 디자인, 이미지 등에 최우선적으로 기업 역량을 집중하라고도 조언합니다. 

어느 기업이나 그 대표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 회삿돈과 자기 개인 돈을 구별하라는 겁니다. p169 이하에 이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는데, 함부로 회사에서 돈을 끌어쓰지 말라(횡령 이슈)는 흔한 충고가 아니라(그건 당연한 말이고), 대표로서 세금 내기 아깝다고(개인 소득세 문제) 급여를 괜히 낮게 책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사에 머무는 돈도 내 돈인데 하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이며, 직원이나 다른 공동창업자(현실적으로는 이 문제가 중요할 듯합니다)들에게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자신이나 타인들에게나 일한 만큼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라고 합니다. 

최전선에서 스타트업을 많이 다루고 창업가들과 상담해 온 전문가의 생생한 가르침이 많아서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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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인생에 답하다 - 고전에서 건져올린 삶의 지혜
한민 지음 / 청년정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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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2500여년 전 뭇 사람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등불처럼 밝혀 준 동아시아의 성현입니다. 공자는 어떤 극단적인 선택이나 사고방식을 경계하며 세상에 화합할 것을 가르치면서도 불의한 폭력과 무도에는 단호히 맞설 것을 권했기에 예로부터 뜻있는 지식인들에게 대성(大聖)으로 존숭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공자의 교훈을 21세기에 들어 우리들이 어떻게 재해석하고 실천적으로 체화할 것인지를 논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23을 보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마지막 글자 동(同)은 부화뇌동이라고 할 때의 그 동 자와 통합니다. 유학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권세 있는 자에게 붙어 아부하는 것입니다. 소인배는 험한 세상에서 비루하게 살아남기 위해 힘 좀 있어 보이는 자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어줄 듯 비위를 맞추며,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이들에게는 길에서 난폭 운전하는 무법자들처럼 잔인하고 안하무인격으로 구는 게 보통이죠. 공자는 이런 저열한 처신을 경계하되, 세상의 큰 흐름은 그것대로 정확하게 내다보아 이에 부응하여 처신할 것을 권합니다. 그래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색당파 중 북인의 아득한 개조라고 할 수 있는 화담 서경덕이 p59에 언급됩니다. "천 리가 어긋나는 것도 한 걸음의 어긋남에서 비롯한다." 아마 화담은 21세기에 태어났어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가 되어 삼전이나 SK하이닉스를 이끌었을 듯합니다. 저 말 관련하여 각종 공학의 핵심 이슈 중 하나인 초기 오차(initial error)가 갖는 함의를 저 말이 거의 그대로 담았기 때문입니다. 千里鏐從一蹴差(천리유종일축차)라고 한문 원문은 이르는데 우리 후손들이 진정 가슴에 새기고 유념할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p82에는 역부족(力不足)을 경솔하게 논한 염구(冉求)에 대해 공자가 힐난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에는 이어 이 염유(冉有)에 대해 공자가 파문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책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원래 이 사람은 공문십철(孔門十哲) 안에 꼽히는 역량 있는 인재였습니다. 그랬기에 천 수백 년 후에도 서공(徐公), 팽성공(彭城公) 등으로 추봉되며 존중받았고 말입니다. 다만 이런 파문이라는 평가는, 다름아닌 <논어> 선진편에 "子曰, 非吾徒也"라며 정면으로 그를 비판하는 대목이 뚜렷이 있으므로 반박이 어렵죠. 염유가, 당시 노나라에서 정도를 어겼다고 뜻있는 이들에게 비판받던 계강자를 섬겼기에, 이처럼 공자를 따르던 이들에게 문외로 내쳐진 것입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의 명언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님"도 인용되고, 저자는 발심(發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실력자에게 아부하며, 능력도 없이 연명해 온 자는 그 실력자가 하수인을 용도폐기한 후 개처럼 버려지기 마련인데, 이런 사람을 두고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사자성어를 적용하곤 합니다. p116을 보면 行己有恥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처신에 있어 염치를 아는 행동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라는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저자는 정치인을 국민이 주권자 자격으로 선출할 때에도 과연 저 후보자가 염치를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p126에는 두 가지 대조되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미생지신이요, 다른 하나는 진채(陳나라와 蔡나라) 사이에서 곤욕을 치르다가 위(衛)나라로 가지 않겠다는 맹세 후에 풀려난 공자가 약속을 어기자 제자 자공(子貢)이 그 이유를 물은 고사입니다. 강요된 맹세는 신이 듣지 않는다[神不听]는 게 공자의 답이었는데, 역시 실용적이고 시원시원한 그의 퍼스낼리티를 보여 줍니다. 사실 미생지신도 그런 약속을 지키라는 취지가 아니라,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 못 하고 어리석게 문언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게 본의라는 점에서 두 고사는 서로 통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世家) 중 공양유(公良孺) 관련 기술 중에 나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현대에 되살려 무엇이 우리의 바른 선택이 될 수 있을지 쉽고 재미있게 들려 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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