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픽사 인사이드 아웃 2 - 소설
테니 넬슨 지음, 김민정 옮김 / 아르누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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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같은 사람인데도 하루에도 열두 번 감정이 바뀐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신기합니다. 그 이유가 (알고보니) 내면에 사람 같은 감정들이 살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기발합니다. <인사이드 아웃> 1편은 2015년에 나왔었는데 사춘기 소녀의 변덕스러운 모습 이면을 지배하는 감정들 사이의 재미있는 티격태격거림을 재미있게 그려서 많은 관객을 모았습니다. 그동안 라일리가 좀 커서, 기존 다섯 명의 감정들 외에 이 2편에는 질투,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 다섯 명이 새로 등장하는데 사람이 크면 감정도 같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의 내용을 소설화했습니다. 책 맨앞에 등장인물 소개가 나오는데 라일리와 다섯 감정들, 그리고 2편에 새로 나오는 네 감정들이 설명과 함께 일러스트로 소개됩니다. 발렌티나 오르티스(밸)는 2편에 처음 나오는 하키 선수입니다. 그런데 "추억이(Nostalgia)"만 소개에서 빠져 있습니다. 추억이는 사실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가 좀 그런데, 애니판에서나 이 소설판에서나 비중은 작습니다. 소설에서는 p158 같은 데서 잠깐 나옵니다. 

라일리는 대체로 명랑한 소녀이므로 감정들 중에서도 기쁨이(Joy)가 비중이 크며 이 2편에서도 이야기를 주도합니다. 감정들은 각자 역할의 차이는 있어도 당사자를 보호하려 든다는 점에서는 목표가 같습니다. p26에서 기쁨은 "슈퍼 최첨단 라일리 보호 시스템"을 꺼내는데 이 튜브 덕에 감정들은 과거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소환, 관리하며 라일리를 더 밀착하여 케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라일리, 브리, 그레이스가 챔피언 트로피를 꺼내들던 기억 덕분에 라일리는 의기소침해하다가도 다시 의욕과 자신감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p42에서 라일리는 주장 밸을 처음 만납니다. 밸이야 당연 라일리를 모르지만 라일리는 이 전설적인 선배에 대해 익히 알죠. 소심이와 까칠이가 서로 다투던 끝에, 지나치게 오래 손을 잡고 있던 라일리는 밸을 놓아 주고, 미시간이 아니라 미네소타 출신인데도 잘못 고향을 부른 밸한테 버럭이가 화를 내지만 다른 감정들이 자제를 시켜 라일리는 실수를 모면합니다. 우리들도 타인을 대할 때 사실은 이렇게, 속으로는 감정이 오락가락하며 파국과 관계 개선 사이를 줄타기합니다.   

라일리는 착한 아이지만 악당 같은 감정(p70)이 인격을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죠. 아이들은 아직 미숙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불쑥 엉뚱한 반응을 보일 수가 있는데, 이때 어른들은 아 이 아이가 싹수가 노랗구나 라며 나무랄 게 아니라 아직 감정이 덜 자랐고 균형이 자리잡지 않아서 저렇다고 너그러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식의 흐름(p75), 모든 나쁜 기억들이 머무는 그곳으로 마냥 흘러가면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 모든 긍정적인 감정들(다른 부정적인 감정도 힘을 합쳐)이 정신을 차리고 막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다잡아 줘야 합니다. 

불안이는 감정들 사이에서 내내 왕따 비슷한 취급이고 p98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사람은 마냥 낙관만 하다가, 혹은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다가 조심성 없이 큰 위험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는 불안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 것을 다른 감정들에게 촉구합니다. "저 멀리 자아감이 등대처럼 빛나고 있었다(p105)." 모든 감정이 열심히 노력하면 이런 결과가 마침내 생깁니다. 

아이들에게 감정의 조화로운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가르쳐 준 명작애니메이션. 이 주니어판 소설로 내용을 되새기며 읽으면 애니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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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엘츠 마스터 IELTS MASTER - 한 권으로 끝내는 아이엘츠 마스터
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LAB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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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엘츠는 영국 유학, 이민 등을 준비하는 한국인들이 근래 들어 특히 많이 응시하는 시험입니다. 토익, 토플 등에 대해 영국 이민 당국에서 제한 조치를 취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게도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초보자가 차근차근 접근해도 무방한 교재로 여겨지지만, 출판사의 공식 태도로는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은 있으나 아이엘츠는 처음인 학습자"에게 최적인 기본서이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공인점수 스펙이 급히 필요한 이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취지인 듯합니다. 실제로 교재 서두에 보면,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어떤 계획표를 따라 공부할지 여러 대안을 제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문법, 어휘, 그 외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한 여러 지식과 기능 부분도 쉽고 자세히 설명하고(시원스쿨 교재들의 장점이죠), 아이엘츠에서 고득점을 올리기 위한 여러 팁들도 소개됩니다. 팁이라는 게 어느 시험에서나 통할 만한 막연한 게 아니라 실전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교재 서두에는 아이엘츠 시험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으며, 아마 주변 사람들로부터 막연히 들어 왔던 것과는 이런 공신력 있는 정보가 제법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엘츠는 리스닝, 리딩, 라이팅, 스피킹 등 네 영역인데 교재는 각 파트 문항의 핵심 구조, 고득점 비결 등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리스닝은, 학습자가 이미 토익이나 토플 등 미국식 발음에 익숙해졌다면, 이 아이엘츠에서는 영국식 발음이 주류이므로 그에 더 잘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토익 등도 최근 10여년은 캐, 호, 영 발음 비중이 높아졌습니다만). 먼저 시원스쿨랩 홈피에 가서 음원을 다운받아야 합니다. 시원스쿨 타 사이트에 가면 괜히 헤맬 수 있으며 반드시 랩 닷 시원스쿨 닷컴에 가야 합니다. 아이엘츠 탭을 클릭하면 이 교재 포함 세 권 정도가 나오는데, 자료실로 따로 들어갈 필요 없이 이 교재 이미지 하단 맨왼쪽 버튼을 클릭하면 (로그인 후에) 바로 다운이 됩니다. 압축파일은 150Mb 정도이며 압축 해제하면 227Mb 정도가 됩니다. 

시원스쿨 교재에 대해 평소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이처럼 원어민 발음을 잘 들을 수 있는 음원이 아주 충실하게 제작된다는 점입니다. 재생해 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 듯한, 아주 활기찬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 강한 영국식 억양으로 문제의 sentence를 또렷하게 읽어 줍니다. 여성 성우도 있는데 마치 내 인생의 첫째 신조는 신중함이라는 듯 차분한 음색입니다. 사실 아이엘츠가 그리 난이도가 높은 시험은 아니므로 이런 음원을 통해 브리티시 딕션에 조금만 적응하고 교재를 착실히 학습하면 원하는 점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라이팅 파트에서는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을 고치는 문제도 나옵니다. p112 같은 곳을 보면 주거 임대 비율이 그간 꾸준히 증가했었는데 2012년에 급격히 떨어졌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얼핏 봐서는 그간의 추세를 설명할 때 현재완료형(계속의 의미)을 썼으니 자연스럽고 틀린 데가 없어 보이지만, 기준시점이 현재가 아니고 과거입니다. 그러면 현재완료가 아니라 과거완료가 되어야 옳습니다. 5번 문장을 보면 since 절(clause)이 앞에 왔으므로, 뒤에는 저렇게 단순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감소했다는 뜻에서 현재완료, 즉 has decreased가 되어야 합니다. 타 어학 시험을 준비했던 이들도 무난히 풀어낼 만한 수준이며 다만 이런 문제가 라이팅 영역에서 나온다는 점만 유념하면 되겠습니다. p174 이하에 나오는, 같은 단어 피하기, off-topic(논점 일탈) 피하는 방법 등이 유익했습니다. 

이 교재에서 가장 잘된 부분이 저는 개인적으로 리딩 파트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어 실력이 탄탄한 학습자라면 어떻게 해도 문제 풀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교재를 보면 아이엘츠에 맞는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하며 정답에 이르는 습관이 따로 몸에 배게 됩니다. sentence completion, matching information 유형들도 혹 처음 접한다 싶어서 당황할 수 있으나, 이 교재에서 이끌어 주는 대로 잘 따라가다 보면 괜한 실수를 저질러 오답을 고르는 결과를 막을 수 있습니다. 

스피킹파트에서는 어떻게 해야 고득점이 나오는 답변을 해 낼지 효과적인 전략을 세우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 부분도 제가 만족스러웠던 건, 뭐랄까 공부를 마치고 나서 답을 잘하는 마인드셋이 생긴 것 같다는 자신김과 뿌듯함이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p302의, 사회적 이슈: 채점기준에 따른 답변 파트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어 실전모고 2회분이 나오고, 별권으로 해설책이 있는데, 자동 분권은 되지 않고 칼로 조심스럽게 잘라내어야 합니다. 실전모고뿐 아니라 본문 중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해설이 자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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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힐링 컬러링북 : 길운이 깃들다 (스프링) 시니어 힐링 컬러링북
미아(이혜란) 그림, 베이직콘텐츠랩 기획 / 베이직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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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운(吉運)이 깃들다...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안정되고, 내일은 또다른 태양이 떠오르는다는 명언이 더불어 생각날 만큼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문장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시는 시니어분들, 평생에 걸쳐 땀흘려 일하고 버젓한 집 한 채 장만하여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시는 듯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아쉬움도 간직한 시니어들께, 베이직북스에서 잇따라 펴내는 이 시니어 힐링 컬러링북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저는 여태 <추억에 물들다>, <만다라에 물들다> 등 두 권을 리뷰했는데, 특유의 BGM과 함께 빈 공간에 선을 따라 색연필(저는 이걸 씁니다)로 채색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동식물 한 쌍씩들이 그려진 직사각형 모양의 그림들이 스무 장 나옵니다. 시리즈 지난 권들에서도 이렇게 책 처음에 완성된 그림이 찍힌 카드들이 먼저 제시되고, 본문에서는 그를 따라 색칠하게 하는 미션이 나왔었고 이 책도 같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겨 보면 채색 연습하기 코너가 나오는데, 선 긋기, 면 색칠하기, 혼합 칠하기 등이 (전권들에서처럼) 자세히 설명됩니다. 

맨처음에는 잉어와 붓꽃이 나옵니다. 잉어는 예전부터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였고, 붓꽃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이 책에 제시된 의미는 "풍요와 균형의 운"입니다. 사람이 물론 풍요롭게도 살아야 하지만, 그 풍요로움 안에는 균형이라는 게 동시에 자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풍요는 당장은 아쉬울 게 없어 보여도, 나중에는 그 불균형 요소에 균열이 생겨 반드시 그 빈틈으로 저주가 스며들어옵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싶을 때 그 빈틈, 약점을 메꾸어야 하며, 그러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나비와 구슬을 담은 그림이 네번째로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다양한 색깔을 띤 나비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줄은 알겠는데, 구슬이 어디 있나 싶어 좀 찾았습니다. 배경 무늬가 아니라 작은 원형이 그림 곳곳에 찍혀 있었으며, 그게 바로 (작은) 구슬들이었습니다. 음... 이 그림의 의미는 "재물과 번영의 운"인데, 저 다채롭게 색깔이 박힌 나비들만 봐도 뭔가 돈줄이 줄줄 엮일 듯한 러키비키한 느낌이 드네요. 구슬도 고대 중국 이래 내내 귀한 신분과 권세를 드러내는 물품이었으니 말입니다. 

박새와 블루베리 그림도 있습니다. 박새가 원래 저런 빛깔이었던가? 마치 블루베리(시니어들이 많이 드시는 강장제 건기식으로 인기있죠)의 색에 맞추어 저렇게 일시적으로 단장한 듯한 착각도 듭니다. 이 그림에는 "건강과 활력의 운"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방송인 이종환씨가 원로 작곡가 손목인씨를 인터뷰하고 나서, "아, 사람은 대체 왜 늙는 걸까요?"라며 탄식하던 게 기억납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은 늙지도 죽지도 말고 영원히 사회에 남아 제 기능을 하게 해야 하는데 같은 아쉬움의 표현이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손목인씨는 1913년생으로 북한을 세운 김일성보다 1살 아래, 정주영 현대 창업주보다 2살 위이며 26년 전에 별세했습니다. 손 작곡가보다 24년 연하인 이종환씨도 11년 전에 타계했습니다. 

용과 모란이 담긴 그림도 있습니다. 용(龍)은 고래(古來)로 최강의 권위와 성공을 상징하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는 그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지상(至上) 지존(至存)의 신분을 표상합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림 설면에는 부귀와 성공의 운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란 역시 군주의 주변을 장식하던 길(吉)한 식물입니다. 이 책에서 상상 속의 다른 동물들은 용 말고 유니콘, 봉황 등이 등장하는데 전자와 후자 모두 고귀라는 키워드에 연결됩니다. 채색 작업과 함께 정서적 안정과 행운의 기원도 수행할 수 있는 책, 다만 두루미와 능소화 그림 같은 걸 보면 그라데이션이 제법 단계가 많아서 눈으로 보기엔 좋지만 직접 칠하기가 약간 난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 책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Lucky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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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좀 그만 버려라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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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철수 선생님은 1990년대에 <발바리의 추억>으로 많은 팬을 모았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올해 여든의 연세이십니다)는 인기 만화만 창작하셨던 게 아니라 영화나 TV 시나리오도 집필하신 다재다능한 문예인입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MBC의 한 단막극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재방송으로 본 적 있는데, 강철수 선생님이 각본을 쓴 에피소드가 몇 개 보여서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만화건 드라마건 특유의 명랑한 분위기,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힘찬 마음가짐,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등이 주제로 표현되었기에, 독자나 시청자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 가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개를 키우는 건 좋지만 키우다가 싫증이 나든가 하면 무정하게도 개를 도중에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여태 돌봄을 받다가 갑자기 버림을 받으면 개 혼자서 살아나갈 방법도 막막할 뿐 아니라, 들개로 습성이 변하거나 새끼를 낳든지 하면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일 마치고 귀가하다가 늦은 밤에 들개를 만나서 진땀을 흘린 적이 몇 달 전에 있었는데, 당국에서 대책도 물론 마련해야 하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시민들의 인식부터가 하나하나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p50)" 저는 이 시(詩)를 박인환(1926~56)의 작품 <세월이 가면> 중 한 구절로만 알지만, 나이 드신 세대에게는 인기 유행가의 가사 일부이기도 한가 봅니다. 노래로는 과연 어떤 느낌인지 언젠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한번 들어 봐야겠습니다. 이 시가 책 중에 왜 나왔냐 하면, 1인칭 주인공인 유기견이 서울 곳곳을 떠돌다 만난 사람들, 온갖 군상 중에 "시인"이 한 분 있어서, 그가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 바로 저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창작하는 건 잘 못 하면서 다른 시인의 작품 읽기는 즐겨한다"며 주인공은 비웃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을 즐겨찾는 건 우아한 품성의 증명입니다. 

p72에서 유기견 주인공은, 예전에 자신을 돌봐줬던 가정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댁 사모님(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십대가 된)은 자신을 러키라고 자주 불렀는데, 용케도 간만에 둘아온 개를 알아보고 또 그 이름으로 부릅니다. 정작 주인공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말입니다. 이 댁 아들은 3수까지 하며 대학을 가려 애썼으나 끝내 실패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도피성 유학을 외국으로 떠났는데, 그만 현지의 흑인 여성과 정분이 나서 부모의 뜻과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됩니다. 이 재미있는 소설에는 참 다채로운 인생들이 등장하는데, 한국이란 나라가 은근 인구가 많다 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들도 천태만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은 좀 독특한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에아이인지 뭔지 하는 경비견인데, 분명 개처럼 생기기는 했으나 냄새도 나지 않고 뭔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알고보니 피와 살로 된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 로봇이며 그 머리에는 AI인지 하는 게 들어 있어서 사람 마음도 읽고 시키는대로 척척 수행한다고도 합니다. 주인공은 가뜩이나 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 정체불명의 괴물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니 화도 나고 겁도 들며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원 그런 처량한 신세가 어디 개뿐이겠습니까. 직장에서 파리 목숨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를 버리고 잠이 옵니까? 개를 버려놓고 밥이 넘어갑니까?(p180)" 우리 주인공은 신세가 이렇게 처량하면서도 자신감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로봇개가 아무리 세상에서 설쳐대도, 개만큼 매력있고 귀엽고 의리 있는 생명체한테 비기겠냐는 겁니다. 저 절절한 외침에, 우리 독자들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공감이 되죠. 갈수록 사회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지고 자본의 삭막한 논리만 팽배해지는 가운데, 실수도 많고 병에도 걸리고 언젠가 수명을 다하기 마련인 생명체의 가치는 점점 퇴색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처음부터 우리들 생명체가 주인공이었으며, 전선과 금속 덩이가 절대 우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계와 돈에 주인 자리를 내주고 뒷전으로 밀리는 우리 인간들을, 이 유기견이 열렬히 대변하고 옹호하는 듯하여 왠지 우스우면서도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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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지는 연습 - 생각이 너무 많은 당신에게
임태환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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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복잡한 세상, 사람은 슈퍼컴퓨터가 못 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머리를 싸쥐고 고민해도 최적해를 도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역발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핵심에만 집중하여 상황을 단순화해야 답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우리들이 사회와 조건이 부과하는 온갖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에 상시적으로 중독되어, 빤히 보이는 최선의 해결책도 눈 앞에서 놓치고 있다면서 단순화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2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인용되는데, 인간은 노동에 종사하는 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이미 단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자유민과 노예의 구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2천 년 후 발생한 산업혁명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드디어 일은 기계가 대신하고 사람은 감독 업무에만 종사해도 충분한, 진정한 낙원이 도래하리라고 다들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이 예측이 깨어진 건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기존시민들이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밀려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만연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저자는 이런 도전 앞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습관에 빠져 불행의 늪으로 자진하여 빠져든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걸 수양이 덜 된 증거로 여겨 금기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감정을 자꾸 억압하면 정신에 골병이 듭니다. p72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감정에는 선악이 없다.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이다." 요즘은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남의 감정을 잘 읽는 사람이 사회적 고지능자로 환영받습니다. 이는 남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자기 감정이 억압당하기 때문에, 당장 작은 이익은 건질지 모르나 나중에 본인한테 탈이 나니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죠. 나의 감정, 타인의 감정은 행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배우들도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때 행동을 예열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타인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니멀은 상식이다(p109)." 맥시멀리즘도 하나의 선택이며 꼭 미니멀리즘만 답이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전자를 선택한 사람은 미래를 현재보다 중시하는 성향이며 후자는 그 반대라는 거죠. 그럼 독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그럼 지금만 사는 하루살이 같은 단견(短見)이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지금의 발걸음을 가볍게하여 미래로 더 성큼성큼 뛰어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명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선택은 역시 자신의 상황과 철학에 맞게 알아서들 정할 수 있습니다. 

p142를 보면 저널리스트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인용됩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라." 결론만 간단히 요약하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우리는 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를 이뤄내도, 알게모르게 그 대가를 다 치른다는 겁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편해졌지만 대신 끔찍한 환경오염, 인간소외, 자원고갈이 발생했죠. 명저 <엔트로피>도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어떤 과학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애써서 공부하고 좋은 대학 나와서 직장 잡고 안정된 삶을 살지만 그런 똑똑한 엘리트의 인생도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이미 치른, 씁쓸한 공허함일 수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거절은 과감하고 담백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남의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주다 보면 내 인생이 내가 아니라 타의(p199)에 의해 채워진다고 합니다. 내 몸과 정신에 내가 아니라 남(들)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신세이겠습니까. 그런데 내 생각 내 감정이라고 해도 이걸 일일이 다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걸 다 끌고 가면 나는, 내 감정은, 또하나의 이상한 상전 하나를 어깨에 떠얹고 가는 꼴입니다. 내가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이런 부분조차도 미니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책 후반에는 저자가 터득한 노트 정리법, 키워드 기억법 등이 나오는데 이걸 활용하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걸 잘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삶의 전 영역에서 미니멀리즘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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