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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썼어 너도 써 봐
장용 지음 / 마음시회 / 2024년 10월
평점 :
마음시회에서 나온 장용 시인의 시집입니다. 시인 장용은 1964년생, 희극인 출신이며, 1998~99년 문화방송 코미디언실 실장도 지낸 분이라고 책날개에 적혔습니다. 일단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참 겸손한 분이시라는 인상을 독자는 받게 됩니다. 시심이 동해야 시가 창작되는 것이며, 그 시심이라는 게 깨끗하고 정직한 영혼에서만 발동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장용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 보니 짧고 담백한 어구들 속에 진실되고 깊은 통찰을 담았으며, 사물을 이처럼 깨끗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자체가 아무나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품들은 아마도 장용 시인의 손글씨로 직접 쓰였을 폰트로 한 번, 활자로 한 번 해서 같은 페이지에 두 번씩 게시되며, 특이하게도 페친들의 한 마디 코멘트가 하단에 같이 실렸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런 댓글들도 촌철살인이라서 읽기에 재미있습니다.
장용시인은 동음이의어를 통해 삷의 패러독스, 페이소스를 표현하는 기법을 자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p56의 <해녀> 같은 게 그렇습니다. 시는 매우 짧습니다. "마음이 전복돼도 엄마는 전복을 딴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살면서 얼마나 자주 속이 뒤집어지시는 적이 많았겠습니까.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일러스트를 보면 거꾸로된 자세로 물질을 하십니다. 김종성이라는 분은 댓글을 달길, "전 복이 많아요."라고 합니다. 페친들도 내공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청명한 가르침을 담은 작품을 읽고 마음이 맑아지는 우리 독자들도 복이 많습니다. 그럼요.
p144에는 <책>이라는 작품이 나옵니다. "책 잡아야 책잡히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인데, 이 시집에 나온 작품들이 대개가 이런 식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해를 못했는데, "아, 혹시 남을 먼저 비판해야(속된 표현으로, 선빵을 날려야) 내가 비판받지 않는다는 뜻인가?"라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시인의 맑은 마음에서 고작 그따위 수준의 한심한 말이 나올 리 없습니다. 책(冊)을 평소에 자주 접해야, 남한테 책(責)을 잡힐 만한 실수가 줄어든다는 뜻이죠. 옆에는 참하게 생긴 어떤 젊은 여인이 책을 읽는 일러스트가 실렸습니다. 저도 제 옆에 이런 여성분이 혹 있다면, 그 책 읽으시는 동안 잔심부름도 해 주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만약 그게 필요하다면요), 혹시 근처에 모기나 날파리,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면 책 읽으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대신 잡아 드리고 싶네요. "야! 저리 가!"
p65에는 연작시 <젠장>이 나오는데 아홉번째 작품의 소제목은 "소"입니다. 전문을 인용하면, "이승을 놓으면/편히 쉬겠지/구두가 되었네/젠장!"입니다. 소의 입장에서, 아마도 도축되기 전 복잡다단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아마도 내내 고단했을 일생이 차라리 종착점에 달하면 편안해지겠거니 지레 위안했겠지요. 그런데 깨고 보니 신발의 원료로 쓰인 자신을 발견했다? 죽어도 고생이 끝날 날이 없으니 기가 찼겠으나 그래도 젠장!이라는 탄식 한 마디로 더 이상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는 태도가 의젓합니다. 정인규님은 "지갑이 되어 하루에도 허리가 몇 번이나 접혔다 펴졌다 합니다"라고까지 하네요. 그래도 지갑보다는 구두 신세가 나으려나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p142 <영면(永眠)>은 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종점일까/환승일까/그냥자자" 아마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이, 이대로 모든 게 끝나는 종말일지, 아니면 내세 같은 게 또 있을지 우리는 내내 궁금합니다. 그런데 만약 전자라면 그 완전한 사멸이 두려우나, 발버둥치며 뭘 해 볼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니 가뜩이나 피곤한 몸 그대로 잠이나 자자는 게 하나의 체념적 선택일 수도 있겠죠(그 역시도 얼마 안 남은 시간의 마지막 가능성). 하지만 정말로 버스 안이기라도 하다면 정신 바짝차리고 생의 치열한 전투에 참여해야 합니다. 잠은 나중에 실컷 자든지 하고 말입니다.
장용 시인의 작품들은 시이기도 하고 잠언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오묘한 진리와 보람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