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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11월
평점 :
이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의 말씀대로, 철학의 본분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는 조직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며, 구태여 의미를 찾는 게 사치스럽게 여겨질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평범한 동물과 달리 답을 꼭 알아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며, 대체 그 뜻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좇는 데에 대해 메타적으로 성찰할 줄도 압니다. 철학은 이처럼 의미를 찾는 사람들,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구실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에 활동한, "심리학의 아버지(p40)"라 불리는 철학자입니다. 철학에서 우상을 논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라면 프랜시스 베이컨일 텐데, 이 책 p45 이하에서 인용되는 W 제임스는 우리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우상을 따르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는 노력이 방해될 뿐 아니라, 이미 "의미"의 자리를 우상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므로 모든 과정이 출발점부터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하기 전에, 의미를 찾는 노력을 전개하기 전에, 기존의 우상부터 저 멀리 갖다버려야 합니다.
우상이란 이런 것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등등...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 목표를 이뤄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쥐떼처럼 벼랑 밑으로 뛰어내리는, 아무 생각없이 남따라 춤을 추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우상과 환상을 버리고, 자신을 먼저 겸허하게 돌아보고, 내가 과연 이 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공연히 남의 자리를 대신 점유하고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성찰하여, 참다운 자신의 행복을 찾아 겸허하게 내려놓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저자는 이를 페르소나(p112)라 규정합니다. 살다 보면 가면도 필요하고 내 진짜 모습을 남들이 궁금해하거나 관심있어하는 것도 아니므로 구태여 매사에 진심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는 없습니다(남들도 알고 싶어하지 않고 피곤해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서 (아무도 관심없는) 자기만의 연극에만 몰입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자신이 인물이 어디 가서 안 빠진다는 둥, 자기가 착하게 살아서 자식이 복을 받아 대신 잘 산다는 둥(결국 지 자식이 깜냥이 안 된다는 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듣다 보면 무대 위 주인공도 이런 주인공이 따로 없습니다. 현실은 그저 남들이 먹다버린 쓰레기나 치우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즉시 행복해지는 비결은, 환상을 버리고 자신의 현실로 지체없이 복귀하는 길, 아주 간단한 결정이면 충분합니다.
19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의 큰 발달로 사람들은 더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위에서 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최소한의 두려움도 없다면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악당들에게는 이런 헛된 믿음이라 해도 아예 없느니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와중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를 선언했는데(p145), 신이 없으면 내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추하고 무절제한 성욕 식욕을 마음놓고 채우려 드는 한심한 동물적 삶을 사는 게 그럼 깨어있는 삶이기라도 한가. 이에 대해 저자는 여튼 그 기준은 나 자신이라야 하며(p147) 이로부터 짐승과 참된 인격자가 갈리는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합니다.
p211에서 인용되는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라고 합니다. 반면 하찮은 동물은 한심한 욕구가 충족이 안 되어 외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읽고, 사색을 통하여 무슨 생각이라는 걸 좀 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어디서 EBS 강사가 몇 마디 떠드는 걸 주워듣고, 연예인들이 주절거리는 만담 몇 마디가 역사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한심한 영혼들도 책을 읽고 생각 비슷한 걸 하기 시작하면 구제불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p244)은 원래 부유한 출신이었으나 그 우수한 두뇌를 철학에 오롯이 헌신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시골에 은신했습니다. 세네카는 네로 같은 폭군과 대치하는 와중에도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며 집요하고 부지런하게 시간의 중요성을 탐구했습니다(p260). 우리네의 삶도 이처럼 경건하고 근본을 응시하는 그 무엇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