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힐링 컬러링북 : 길운이 깃들다 (스프링) 시니어 힐링 컬러링북
미아(이혜란) 그림, 베이직콘텐츠랩 기획 / 베이직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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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운(吉運)이 깃들다...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안정되고, 내일은 또다른 태양이 떠오르는다는 명언이 더불어 생각날 만큼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문장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시는 시니어분들, 평생에 걸쳐 땀흘려 일하고 버젓한 집 한 채 장만하여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시는 듯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아쉬움도 간직한 시니어들께, 베이직북스에서 잇따라 펴내는 이 시니어 힐링 컬러링북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저는 여태 <추억에 물들다>, <만다라에 물들다> 등 두 권을 리뷰했는데, 특유의 BGM과 함께 빈 공간에 선을 따라 색연필(저는 이걸 씁니다)로 채색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동식물 한 쌍씩들이 그려진 직사각형 모양의 그림들이 스무 장 나옵니다. 시리즈 지난 권들에서도 이렇게 책 처음에 완성된 그림이 찍힌 카드들이 먼저 제시되고, 본문에서는 그를 따라 색칠하게 하는 미션이 나왔었고 이 책도 같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겨 보면 채색 연습하기 코너가 나오는데, 선 긋기, 면 색칠하기, 혼합 칠하기 등이 (전권들에서처럼) 자세히 설명됩니다. 

맨처음에는 잉어와 붓꽃이 나옵니다. 잉어는 예전부터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였고, 붓꽃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이 책에 제시된 의미는 "풍요와 균형의 운"입니다. 사람이 물론 풍요롭게도 살아야 하지만, 그 풍요로움 안에는 균형이라는 게 동시에 자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풍요는 당장은 아쉬울 게 없어 보여도, 나중에는 그 불균형 요소에 균열이 생겨 반드시 그 빈틈으로 저주가 스며들어옵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싶을 때 그 빈틈, 약점을 메꾸어야 하며, 그러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나비와 구슬을 담은 그림이 네번째로 나옵니다. 저는 처음에 다양한 색깔을 띤 나비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줄은 알겠는데, 구슬이 어디 있나 싶어 좀 찾았습니다. 배경 무늬가 아니라 작은 원형이 그림 곳곳에 찍혀 있었으며, 그게 바로 (작은) 구슬들이었습니다. 음... 이 그림의 의미는 "재물과 번영의 운"인데, 저 다채롭게 색깔이 박힌 나비들만 봐도 뭔가 돈줄이 줄줄 엮일 듯한 러키비키한 느낌이 드네요. 구슬도 고대 중국 이래 내내 귀한 신분과 권세를 드러내는 물품이었으니 말입니다. 

박새와 블루베리 그림도 있습니다. 박새가 원래 저런 빛깔이었던가? 마치 블루베리(시니어들이 많이 드시는 강장제 건기식으로 인기있죠)의 색에 맞추어 저렇게 일시적으로 단장한 듯한 착각도 듭니다. 이 그림에는 "건강과 활력의 운"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방송인 이종환씨가 원로 작곡가 손목인씨를 인터뷰하고 나서, "아, 사람은 대체 왜 늙는 걸까요?"라며 탄식하던 게 기억납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은 늙지도 죽지도 말고 영원히 사회에 남아 제 기능을 하게 해야 하는데 같은 아쉬움의 표현이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손목인씨는 1913년생으로 북한을 세운 김일성보다 1살 아래, 정주영 현대 창업주보다 2살 위이며 26년 전에 별세했습니다. 손 작곡가보다 24년 연하인 이종환씨도 11년 전에 타계했습니다. 

용과 모란이 담긴 그림도 있습니다. 용(龍)은 고래(古來)로 최강의 권위와 성공을 상징하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는 그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지상(至上) 지존(至存)의 신분을 표상합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림 설면에는 부귀와 성공의 운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모란 역시 군주의 주변을 장식하던 길(吉)한 식물입니다. 이 책에서 상상 속의 다른 동물들은 용 말고 유니콘, 봉황 등이 등장하는데 전자와 후자 모두 고귀라는 키워드에 연결됩니다. 채색 작업과 함께 정서적 안정과 행운의 기원도 수행할 수 있는 책, 다만 두루미와 능소화 그림 같은 걸 보면 그라데이션이 제법 단계가 많아서 눈으로 보기엔 좋지만 직접 칠하기가 약간 난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 책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Lucky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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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좀 그만 버려라
강철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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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철수 선생님은 1990년대에 <발바리의 추억>으로 많은 팬을 모았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올해 여든의 연세이십니다)는 인기 만화만 창작하셨던 게 아니라 영화나 TV 시나리오도 집필하신 다재다능한 문예인입니다. 저는 아주 예전에 MBC의 한 단막극을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재방송으로 본 적 있는데, 강철수 선생님이 각본을 쓴 에피소드가 몇 개 보여서 처음에는 동명이인인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만화건 드라마건 특유의 명랑한 분위기,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힘찬 마음가짐,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등이 주제로 표현되었기에, 독자나 시청자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요즘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 가구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개를 키우는 건 좋지만 키우다가 싫증이 나든가 하면 무정하게도 개를 도중에 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여태 돌봄을 받다가 갑자기 버림을 받으면 개 혼자서 살아나갈 방법도 막막할 뿐 아니라, 들개로 습성이 변하거나 새끼를 낳든지 하면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일 마치고 귀가하다가 늦은 밤에 들개를 만나서 진땀을 흘린 적이 몇 달 전에 있었는데, 당국에서 대책도 물론 마련해야 하겠으나 근본적으로는 시민들의 인식부터가 하나하나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p50)" 저는 이 시(詩)를 박인환(1926~56)의 작품 <세월이 가면> 중 한 구절로만 알지만, 나이 드신 세대에게는 인기 유행가의 가사 일부이기도 한가 봅니다. 노래로는 과연 어떤 느낌인지 언젠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한번 들어 봐야겠습니다. 이 시가 책 중에 왜 나왔냐 하면, 1인칭 주인공인 유기견이 서울 곳곳을 떠돌다 만난 사람들, 온갖 군상 중에 "시인"이 한 분 있어서, 그가 즐겨 암송하는 구절이 바로 저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창작하는 건 잘 못 하면서 다른 시인의 작품 읽기는 즐겨한다"며 주인공은 비웃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아름다움을 즐겨찾는 건 우아한 품성의 증명입니다. 

p72에서 유기견 주인공은, 예전에 자신을 돌봐줬던 가정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댁 사모님(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십대가 된)은 자신을 러키라고 자주 불렀는데, 용케도 간만에 둘아온 개를 알아보고 또 그 이름으로 부릅니다. 정작 주인공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도 말입니다. 이 댁 아들은 3수까지 하며 대학을 가려 애썼으나 끝내 실패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도피성 유학을 외국으로 떠났는데, 그만 현지의 흑인 여성과 정분이 나서 부모의 뜻과 결정적으로 어긋나게 됩니다. 이 재미있는 소설에는 참 다채로운 인생들이 등장하는데, 한국이란 나라가 은근 인구가 많다 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들도 천태만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은 좀 독특한 누군가를 만나게 됩니다. 에아이인지 뭔지 하는 경비견인데, 분명 개처럼 생기기는 했으나 냄새도 나지 않고 뭔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알고보니 피와 살로 된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 로봇이며 그 머리에는 AI인지 하는 게 들어 있어서 사람 마음도 읽고 시키는대로 척척 수행한다고도 합니다. 주인공은 가뜩이나 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 정체불명의 괴물과 경쟁까지 해야 한다니 화도 나고 겁도 들며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원 그런 처량한 신세가 어디 개뿐이겠습니까. 직장에서 파리 목숨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를 버리고 잠이 옵니까? 개를 버려놓고 밥이 넘어갑니까?(p180)" 우리 주인공은 신세가 이렇게 처량하면서도 자신감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로봇개가 아무리 세상에서 설쳐대도, 개만큼 매력있고 귀엽고 의리 있는 생명체한테 비기겠냐는 겁니다. 저 절절한 외침에, 우리 독자들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공감이 되죠. 갈수록 사회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지고 자본의 삭막한 논리만 팽배해지는 가운데, 실수도 많고 병에도 걸리고 언젠가 수명을 다하기 마련인 생명체의 가치는 점점 퇴색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처음부터 우리들 생명체가 주인공이었으며, 전선과 금속 덩이가 절대 우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계와 돈에 주인 자리를 내주고 뒷전으로 밀리는 우리 인간들을, 이 유기견이 열렬히 대변하고 옹호하는 듯하여 왠지 우스우면서도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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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지는 연습 - 생각이 너무 많은 당신에게
임태환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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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복잡한 세상, 사람은 슈퍼컴퓨터가 못 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머리를 싸쥐고 고민해도 최적해를 도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역발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핵심에만 집중하여 상황을 단순화해야 답이 더 잘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우리들이 사회와 조건이 부과하는 온갖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에 상시적으로 중독되어, 빤히 보이는 최선의 해결책도 눈 앞에서 놓치고 있다면서 단순화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2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인용되는데, 인간은 노동에 종사하는 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이미 단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자유민과 노예의 구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2천 년 후 발생한 산업혁명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드디어 일은 기계가 대신하고 사람은 감독 업무에만 종사해도 충분한, 진정한 낙원이 도래하리라고 다들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이 예측이 깨어진 건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기존시민들이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밀려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만연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저자는 이런 도전 앞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습관에 빠져 불행의 늪으로 자진하여 빠져든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걸 수양이 덜 된 증거로 여겨 금기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감정을 자꾸 억압하면 정신에 골병이 듭니다. p72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감정에는 선악이 없다. 감정은 그저 감정일 뿐이다." 요즘은 자기 감정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남의 감정을 잘 읽는 사람이 사회적 고지능자로 환영받습니다. 이는 남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자기 감정이 억압당하기 때문에, 당장 작은 이익은 건질지 모르나 나중에 본인한테 탈이 나니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죠. 나의 감정, 타인의 감정은 행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배우들도 감정을 끌어올려야 할 때 행동을 예열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타인에게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니멀은 상식이다(p109)." 맥시멀리즘도 하나의 선택이며 꼭 미니멀리즘만 답이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전자를 선택한 사람은 미래를 현재보다 중시하는 성향이며 후자는 그 반대라는 거죠. 그럼 독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그럼 지금만 사는 하루살이 같은 단견(短見)이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지금의 발걸음을 가볍게하여 미래로 더 성큼성큼 뛰어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명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선택은 역시 자신의 상황과 철학에 맞게 알아서들 정할 수 있습니다. 

p142를 보면 저널리스트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인용됩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라." 결론만 간단히 요약하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우리는 뭘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를 이뤄내도, 알게모르게 그 대가를 다 치른다는 겁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삶은 많이 편해졌지만 대신 끔찍한 환경오염, 인간소외, 자원고갈이 발생했죠. 명저 <엔트로피>도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어떤 과학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애써서 공부하고 좋은 대학 나와서 직장 잡고 안정된 삶을 살지만 그런 똑똑한 엘리트의 인생도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이미 치른, 씁쓸한 공허함일 수 있습니다. 결국 본인이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거절은 과감하고 담백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남의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주다 보면 내 인생이 내가 아니라 타의(p199)에 의해 채워진다고 합니다. 내 몸과 정신에 내가 아니라 남(들)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신세이겠습니까. 그런데 내 생각 내 감정이라고 해도 이걸 일일이 다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걸 다 끌고 가면 나는, 내 감정은, 또하나의 이상한 상전 하나를 어깨에 떠얹고 가는 꼴입니다. 내가 진정한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이런 부분조차도 미니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책 후반에는 저자가 터득한 노트 정리법, 키워드 기억법 등이 나오는데 이걸 활용하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걸 잘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삶의 전 영역에서 미니멀리즘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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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 개정판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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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동아시아 어느 나라에서건 남자의 로망과도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걸 영어로 번역한 제목이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인데, 물론 일차 의미는 소설이란 뜻이긴 하나 여튼 워딩 자체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삼국지 몇 번을 읽지 않은 이와는 말을 섞지 말고(말을 나눌 가치가 없으므로), 삼국지 몇 번 이상 읽은 이와도 말을 섞지 말라(처세에 달통한 자이므로 그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있어서, 아니면 내 속셈을 빤히 꿰뚫어보는 자이므로)는 오래된 격언도 있지만, 사실 다 번거로운 언사일 뿐입니다. 삼국지의 가치는 읽어 본 사람만이 알며, 수백 년 전(나관중 시대 기준)이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의 본질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점도 깨닫게 됩니다. 처세 심리의 택틱스에 있어 삼국지만큼 생생한 교과서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20을 보면 조조의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진림이 조조를 토벌하는 격문을 작성할 때, 비천한 환관의 자식이라는 문구를 일부러 집어넣어 상대의 감정적 격동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선결 과제에만 집중하며, 이런 현명한 처신의 연속이 결국 그의 승리로 연결됩니다. 조조는 그런 모욕적인 도발이 자신의 감정에 일으키는 교란이라는 게, 결국 현실적 이익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시적이고 유치한 전기적 파동에 지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겠습니다(물론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자기학 기초를 놓기 1700년 전이긴 합니다만). 어떤 분노, 짜증, 복수 욕구 분출 등이 자신의 이익 관철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되며, 사람인 이상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야 없겠으나 이를 메타적으로 잘 관리하여 빨리 평정심을 찾고 필요한 과업 수행에 집중하는 게 최상의 선택일 뿐입니다. 

저자는 책 여러 대목에서 손견을 비판합니다. 손견은 <연의> 초반 그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강동의 호랑이"이므로 독자들에게 대체로 호평을 받습니다만 저자는 p117에서 "열등감, 인적 구성의 획일화"를, p136에서 "부족한 신중함"을 들어 그를 비판합니다. 그의 둘째 아들 손권은 소설에서는 그 실책이 딱히 부각되지 않고 대개는 "수성(守城)의 달인"으로 평가받지만, 요즘은 정사(正史)까지를 내처 읽는 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가 말년에 저지른 여러 실책이 지적되고 평판이 많이 내려갔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p106에는 원술을 두고 "남양의 꿩"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원소나 원술이나 가문의 어드밴티지를 제대로 활용 못 하고 모든 것을 날려버린 어리석은 자들이므로 뭘 봐 줄 만한 데가 없습니다. 책에서도 당연히 부정적인 평가뿐입니다. 

"과거 성인(聖人)들의 가공된 스토리에 허우적대는 구강 수동적 성격(p199)" 저자가 유요(劉繇)를 두고 내린 평가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원영적 사고"가 있는데, 10대 소녀가 세상을 마냥 낙천적으로 보는 거야 누가 뭐랄 일이 아닙니다만 한 지역을 책임지고 다스려야 할 유지, 소군주가 그 현실 인식이 미숙하다면 본인에게나 백성들에게나 여간 큰일이 아니며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합니다. 저자의 심리학 이론 원용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마냥 현실을 낙천적으로 보고 경우에 맞지도 않은 레퍼런스에 현실을 왜곡시켜 투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년기 부모 보살핌으로 정신적으로 아직 독립을 못한 탓이라고 합니다. 보통 연의 독자들이 무능한 유요를 두고 비웃기는 해도 그의 심적 게슈탈트를 두고 oral-passive로 규정하는 건 처음 보는데 예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p169를 보면 여포의 패인 중 하나로 "자신과 똑같은 맹장(孟將)들만 밑에 둔 선택"을 저자는 들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큰 그릇으로 휘하에 다양한 유형을 두루 포진시켜야 하는데 한고조 유계라든가 제(齊) 맹상군 같은 인물들은 본인부터가 그릇이 크니 온갖 사람을 곁에 두었습니다. 반면 협량한 소인배들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본인과 비슷한 유형만을 곁에 두기에 상황 발생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지 못하므로(이른바 에코 체임버 효과) 실패하는 정치세력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진궁(p314)은 조조가 궁벽하던 시절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으나 너무도 비인간적인 모습에 크게 실망하여 조조가 방심한 틈을 타 그를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삼국지 독자 중 촉(蜀)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능력도 뛰어난데다 최후도 지사답게 비장하여 널리 인구에 회자됩니다. 여포도 그의 태도가 불손하다 하여 마냥 멀리할 게 아니라 그의 좋은 충언을 들었으면 정치적으로도 성공했을 텐데,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려 들지 않는 자의 말로가 다 이러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설정과 처세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점이 많이 정리되었으며, 삼국지를 설령 안 접해 봤다 해도 인용된 스토리와 저자의 심리학적 해석이 재미있기 때문에 읽어 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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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면 철학
양현길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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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의 말씀대로, 철학의 본분은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는 조직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며, 구태여 의미를 찾는 게 사치스럽게 여겨질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평범한 동물과 달리 답을 꼭 알아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며, 대체 그 뜻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좇는 데에 대해 메타적으로 성찰할 줄도 압니다. 철학은 이처럼 의미를 찾는 사람들,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구실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에 활동한, "심리학의 아버지(p40)"라 불리는 철학자입니다. 철학에서 우상을 논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라면 프랜시스 베이컨일 텐데, 이 책 p45 이하에서 인용되는 W 제임스는 우리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충고합니다. 우상을 따르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는 노력이 방해될 뿐 아니라, 이미 "의미"의 자리를 우상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므로 모든 과정이 출발점부터 왜곡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하기 전에, 의미를 찾는 노력을 전개하기 전에, 기존의 우상부터 저 멀리 갖다버려야 합니다. 

우상이란 이런 것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등등...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 목표를 이뤄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쥐떼처럼 벼랑 밑으로 뛰어내리는, 아무 생각없이 남따라 춤을 추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우상과 환상을 버리고, 자신을 먼저 겸허하게 돌아보고, 내가 과연 이 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공연히 남의 자리를 대신 점유하고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성찰하여, 참다운 자신의 행복을 찾아 겸허하게 내려놓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저자는 이를 페르소나(p112)라 규정합니다. 살다 보면 가면도 필요하고 내 진짜 모습을 남들이 궁금해하거나 관심있어하는 것도 아니므로 구태여 매사에 진심을 일일이 공개할 필요는 없습니다(남들도 알고 싶어하지 않고 피곤해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서 (아무도 관심없는) 자기만의 연극에만 몰입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자신이 인물이 어디 가서 안 빠진다는 둥, 자기가 착하게 살아서 자식이 복을 받아 대신 잘 산다는 둥(결국 지 자식이 깜냥이 안 된다는 건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듣다 보면 무대 위 주인공도 이런 주인공이 따로 없습니다. 현실은 그저 남들이 먹다버린 쓰레기나 치우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즉시 행복해지는 비결은, 환상을 버리고 자신의 현실로 지체없이 복귀하는 길, 아주 간단한 결정이면 충분합니다. 

19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의 큰 발달로 사람들은 더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위에서 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최소한의 두려움도 없다면 거리낌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악당들에게는 이런 헛된 믿음이라 해도 아예 없느니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와중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를 선언했는데(p145), 신이 없으면 내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 추하고 무절제한 성욕 식욕을 마음놓고 채우려 드는 한심한 동물적 삶을 사는 게 그럼 깨어있는 삶이기라도 한가. 이에 대해 저자는 여튼 그 기준은 나 자신이라야 하며(p147) 이로부터 짐승과 참된 인격자가 갈리는 갈림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합니다. 

p211에서 인용되는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외로운 존재"라고 합니다. 반면 하찮은 동물은 한심한 욕구가 충족이 안 되어 외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책을 읽고, 사색을 통하여 무슨 생각이라는 걸 좀 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어디서 EBS 강사가 몇 마디 떠드는 걸 주워듣고, 연예인들이 주절거리는 만담 몇 마디가 역사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한심한 영혼들도 책을 읽고 생각 비슷한 걸 하기 시작하면 구제불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p244)은 원래 부유한 출신이었으나 그 우수한 두뇌를 철학에 오롯이 헌신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시골에 은신했습니다. 세네카는 네로 같은 폭군과 대치하는 와중에도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며 집요하고 부지런하게 시간의 중요성을 탐구했습니다(p260). 우리네의 삶도 이처럼 경건하고 근본을 응시하는 그 무엇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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