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언어 - 하 -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고전 아틀리에 4
최기재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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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4) 2월에 최기재 선생의 <치유의 언어> 상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또 재작년(2023) 2월에는 같은 저자의 <일리아스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독후감도 썼었습니다. 이 하권은 2024년 6월에 발간되었으며 제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지금에서야 후기를 등록합니다. 또 이 책은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고전아틀리에 시리즈 제4권이기도 합니다. 

상권에서 저자가 공자를 잠시 분석한 후 <도덕경>과 <열자>를 심층적으로 해설했다면 이 하권은 <장자>에 집중적으로 분량을 할애하며 전개됩니다. 노장 사상, 도가의 개조가 이이, 즉 노자이긴 하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더 그 사조의 깊이를 더하고 더 친숙한 이미지로 어필한 사상가는 장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최기재 박사님은 <장자> 원문을 병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특유의 시원시원한 어조로 일관된 관점으로부터의 해석을 자구 하나하나에 적용하십니다. 

무용의 용(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신세를 서러워할 게 아니라, "쓸모 없는 그늘에 누워 쉴 수 있으니 이 또한 쓸모이다(p30)"라는, 잘 알려진 교훈입니다. 혜자(惠子)는 이 대목에서 쓸모 없는 박을 쪼개 버린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이에 장자는 답하여 말하길, 손등을 치료하는 약을 어떤 이는 돈 몇 푼을 받고 솜 트는 일꾼에게 팔 뿐이지만 어떤 이는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을 돌보는 데 요긴히 활용하여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박의 쓸모를 졸렬하게 파악하여 기어이 쓰레기로 만든 혜자의 협량을 할난하는 데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소요(遡遙)가 곧 지락(至樂)이라는 장자 사상의 요체가 저자의 입으로 되풀이됩니다. 최 박사님의 지적대로 이 대목은 춘추전국시대 지사들의 유세(遊說)의 한 예화인데, 장자에게서 우리 독자들이 의외로 실용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면모를 엿보게도 됩니다. 

내편(內篇)에 보면 진인(眞人)에 대한 장자의 긴 논변이 있습니다. 도인, 신선 등을 소재로 삼은 민담을 보면 자주 나오는 단어이기도 한데 간혹 사이비종교의 경전에서도 접하는 말입니다. p158에서 장자는 이로움과 해로움을 초월하여 하나로 볼 줄 모르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파하는데 여기서 진인과 군자(君子)는 서로 통하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발뒤꿈치로 호흡한다는 구절이 인상적인데 수행의 한 방법으로써 "인도의 요가 수행이 중국에까지 영향을 끼친 흔적이라는 학설이 있다"고 최 박사님이 각주에서 짚습니다. "부지런히 걸어간 사람"이란 뜻의 근행자(勤行者)란 언명도 우리 독자들이 곰곰 새길 만합니다. 

백락(伯樂)은 말을 잘 다스린 사람이었으며, 목수와 도공은 나무와 흙을 잘 다스리는 직분(p226)이라는 게 세상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 역시 많이 부족한 말들일 뿐이며, 천하가 어울려 돌아가는 이치가 어떻게 한두 사람의 재주로 가능하겠냐고 반문합니다. 도공이 고운 흙을 놀려 가마에 넣고 그릇을 빚는 게 기실 그 전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 나아가 불어오는 바람과 음양의 이치인들 그에 기여하지 않았겠냐는 것입니다. 대동(大同)의 큰 의미를 새길 때, 자연 안에서 결국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늘과 교통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상권에서도 그러했지만, 저자는 수시로 유가(儒家)의 경전 <논어(論語)>에서 여러 구절을 뽑아 "필사하기" 코너에 배치하여 독자의 학습을 돕는데, 여기서는 자로(子路)편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발췌하여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선행은 남들이 모르게 완수해야 그게 참된 선행이며, 남들 다 보란 듯이 크게 목소리를 높이면 그게 어디 선행이겠냐는 뜻입니다. p283을 보면 송나라의 탕(蕩)이 장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장자는 과연 그답게 "인은, 이리와 호랑이가 곧 인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는 유가의 가르침 중 인(仁)을 비판하는 의도이며, 범이나 이리도 부자(父子)간에 서로 친하니 그를 어질다 못할 바가 어디 있겠냐는 반어입니다. 소위 삼강(三綱)이라 하여 상하간의 서열이 분명히 정해져 있고 위에서 아래에게 선심이나 쓰듯 어짊을 작위하는 건 전혀 어짊이라 할 수 없다는 호된 꾸짖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63에는 서무귀(徐無鬼)가 여상(女商)을 따라 위(魏)나라의 무후(武候)를 찾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의 관상, 고양이의 관상을 논하며 진실로 세상사에 달통한 사람은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는데 무후는 서무귀와의 회견을 마치고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여상은, 자신이 시, 서, 예, 악을 논하고 육도삼략을 설파했을 때도 주군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찌 그같은 하찮은 변설로 높은 이의 마음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듭 묻습니다. 서무귀(가상의 인물)는 무후가 진인의 기침 소리조차 듣지 못한 지 오래였으나 이제 비로소 참된 인간의 담론을 접하고 기뻐하지 않을 리 있겠냐며 답을 대신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사실 언어의 상론이 문제가 아니라 그 태도와 눈빛, 처신 자체가 모두 뜻이 깊은 가르침이며, 이를 알아본 무후 역시 예사로운 군주는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책 곳곳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던지고 있으며, 실제로 서강대에서 출제되었던 논술 기출 문제들도 수록되었으니 수험생들이 심화 학습 교재로 활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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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표준 정보보안 + 사이버보안 + 개인정보보호
박억남.권재욱 지음 / 위즈앤북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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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인 2022년, ISO/IEC 27002가 개정되었습니다. 이 국제규약은 일반인들이 뉴스를 무심히 넘기는 중에도 제법 빈번히 개정이 되는 편입니다만, 특히나 한국의 현실은 매우 심각합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보안 의식이 극히 미비하여, 심지어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금융기관에서도 그 주체조차 불분명한 해킹을 당하고서 아무런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고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예조차 봅니다. 일반 기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올바른 보안 의식을 함양하여, 개인 레벨에서 철두철미한 경계심과 개념으로 무장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6에서는 국제표준 정보보안 및 용어 및 원칙이 친절히 설명됩니다. 보안규약을 설명한 국내 서적 중에는 이런 기초 용어 설명이 부족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개별 도서에의 이해를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결국은 보안의식 제고, 지식 보급이라는 목표마저 그 달성을 방해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용어의 정리를 통해 그나마 최대한 초심자를 배려한 건, 이런 이유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ISO 27002 체계 안에서 사이버보안 통제 속성은 CSF Core, 또는 Cybersecurity Controls로 표현된다고 p19에 나옵니다.

p81에는 정보 라벨링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ISO 27001 정보보안 속성은 기밀성, 무결성, 가용성에 해당하며 사이버보안 통제(concept)는 보호를 고려하여 적용할 수 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정보 라벨링에 대해, 속성, 가이드라인 등으로 세부 분류하여 ISO 27001과 27002에서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독자가 한눈에 보기 편하게 정리합니다. 또 p85에서는 데이터 유출 방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역시도 표를 통해 통제 유형, 정보보안 속성, 사이버보안 통제, 운영 능력, 보안 도메인 등으로 나눠 이 섹션의 핵심이 무엇인지 비교적 알기 쉽게 전달합니다.

p101이하에서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구현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대체로는 통제 유형과, 이에 따른 CSP, CSC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 표 안에 정리된 형식입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로는 IaaS, PaaS, SaaS 등이 있으며, 특히 IaaS 사업자는 "국제표준에 따라 안전성, 신뢰성, 책임성, 투명성 등을 보증하고 클라우드 보안을 강화한다"고 나오네요. 바로 아래 항목에서 PaaS 등과 IaaS가 어떻게 다른지를 한 줄로 요약해 줘서 더 머리에 잘 들어옵니다.

p148이하에서는 시스템 네트워크 보안에 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네트워크 보호 및 관리 가이드가 step1에서 step3까지, 식별, 보호, 탐지, 대응, 복구 등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페이지의 서술이 책 전체를 요약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페이지의 내용을 잘 이해해야 다른 디테일로 확장이 자유롭게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p161에는 안전한 시스템 아키텍처와 엔지니어링 원칙이 나오는데, 지난번 ISO 27002의 개정이 많이 이뤄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p167에는 외주 개발에 대한 규약도 나오는데 ISO 27001 초창기부터 있긴 했으나 이 규약이 이런 부분까지도 예비하고 있었나 해서 새삼 놀랍기도 했습니다.

p201에는 ISO 27001의 적용대상이 나오는데, 페이지 중간쯤에 보면 PII 컨트롤러를 대신하여 PII 프로세서로 컨트롤러의 지시에 따라 개인정보를 처리한다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회사의 실무자들은 이 대목에서 아 원칙이 그리 되어 있었구나 하며 새삼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습니다. p213에는 물리적 환경적 보안과 운영 및 통신 보안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실무자들은 바로 하단에 나오는 정보 백업에 대한 서술을 정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p221에는 컨트롤러의 추가 가이던스가 나와 이 상황에서 통제의 디테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많은 참고가 됩니다. 보안 규약의 바이블이자 참고서 구실을 일목요연하게 수행해 줄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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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똑해지는! 실뜨기 놀이 우리 아이 두뇌 회전 손놀이 시리즈
아리키 테루히사 지음, 류지현 옮김, 오쿠야마 치카라 감수 / 시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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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같은 시리즈의 실뜨기 놀이 편을 리뷰합니다. (당연히) 저자는 다른 분인데, 감수자가 오쿠야마 치카라 원장으로서 같은 분입니다. 그 이력이 소아과 닥터이며 아동발달 클리닉을 운영하는 분이라서 (아마도 성장기 아동을 자녀로 두었을 법한) 독자는 믿음을 보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종이접기도 그렇고 실뜨기도, 이 분야를 정확히 감수할 수 있는 분은 기하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본질은 어린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므로 책도 그쪽에 포커스를 두는 게 맞겠습니다. 이분은 <아이 뇌를 알면 진짜 마음이 보인다>라는 책을 지었고 저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되었다고 책 앞날개에 나옵니다. 이분 성함은 한자로는 奧山力(오산력)이라고 쓴다는데, 力이 훈독으로 "치카라"죠.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 뒤표지를 보면 "부모님께는 추억의 놀이,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놀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가 시간을 내어 실을 갖고 오셔서 같이 실뜨기 놀이를 하자며 시범도 보여 주셨는데, 사실 저는 재미가 없어서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데 엄마가 아들하고 같이 놀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걸 좀 참여를 해 드렸어야 맞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닥 재미는 없어도, 사실 간단한 실을 갖고 이렇게나 많은 도안이 나온다는 게 어떻게 보면 참 놀랍습니다. 그 점에만 생각이 미쳐도 실뜨기는 재미난 놀이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늦은 나이에 책을 보고 이 놀이에 열중하고 있네요.

종이접기 편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앞부분(p8)에, 공통된 기호나 이름의 뜻이 정리되었습니다. 진청색 원은 실에 표시되며,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표시된 빨강색 원과 매칭됩니다. 흰색 원은 색이 안 겹치게 하려고 흰색으로 처리된 것 같은데 이것도 그림을 잘 보면 실과 손이 매칭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따라하다 보면 저절로 이해되기 때문에 그냥 해 보면 됩니다. 이런 책은 설명해 주는 그림 비중이 절대적인데 저자나 제작진이 진짜 고생했겠다 싶었습니다. 그림으로 좀 불충분하다 싶은 데에는 여지없이 실제 사진이 삽입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실뜨기 놀이에 초보라고 해도 "실을 (아래에서 바깥으로) 떠 온다", "위에서 떠온다" 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을 준비해서 실제로 해 보는 것입니다. 책에 제시된 놀이, 도안들이 기계적으로 나열만 된 게 아니라 난이도나 그 성격에 따라 세분화하여, 마치 학년이 올라가며 교과 내용이 차츰씩만 어려워지게 배려한 것 같습니다. 1과는 처음 수준, 2과는 살짝 어려움, 3과는 챌린지 레벨입니다. 그런데 이 구성이, 난이도의 점증 요소말고도 몇 사람이 놀이에 참여하냐의 팩터에 따라서 이뤄진 점도 눈에 띕니다. 8과에는 다함께 실뜨기라고 해서, 여러 사람들이 하기에 적합한 도안들이 나옵니다. 단, 3과 p50의 거미집, 4과 p67의 베틀 같은 경우 친구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예외도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특히 좋게 본 부분이, 6과 고무줄 실뜨기입니다. 어려서 저희 엄마에게 배울 때는 이걸 바느질 실뜨기, 그것도 미싱용 가느다란 실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굵기가 있는 실이 그 소재였는데, 어렸을 때 제가 혼자 한 생각으로는 이걸 고무줄로 하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고무줄로 하는 실뜨기도 이렇게 따로 모아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앞의 2과 p29 열쇠고리를 보면 마지막에 손가락들을 잘 빼는 게 중요한데, 책에도 나오듯이 이건 형상이 안 무너져야만 하므로 고무줄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교재에는 과정과 결과만 설명서처럼 정리한 게 아니고, 만약 이 단계에서 조금만 방향을 바꾸거나 한다면 어떤 모양이 나오겠냐고 어린 독자들한테 물어보는 코너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응용력을 키워 주려는 의도입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의 지능이 발달하지 않겠습니까. p34의 큰물고기, p41의 카누는 각각 하와이 사람들, 이누이트 족이 발전시킨 도안이라고 책에 나옵니다. 저는 그런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도 실뜨기를 즐기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바느질이란, 물론 신석기 농경 혁명과 함께 시작된 활동이지만 놀이로서의 국면은 또 다른 것인데, 이 책을 보고 어린 독자들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더 깊은 동질감과 연대의식도 느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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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똑해지는! 종이접기 놀이 우리 아이 두뇌 회전 손놀이 시리즈
고바야시 가즈오 지음, 오쿠야마 치카라 감수, 류지현 옮김 / 시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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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앙카레는, 여인의 뜨개질하는 진도, 상황만 보고도 앞으로 어디어디를 뒤집고 찔러나가야 할지 정확하게 짚어내었다고 합니다. 위상기하학 센스가 이 지경에 이르면 가히 3D 프로그래밍을 수행하는 컴퓨터 수준이겠는데, 이 책 표지를 보면 양손 종이접기를 통해 어린이의 두뇌 발달을 도와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푸앙카레의 사례만 봐도 이 말이 맞겠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외에도 어린이가 처음에 원했던 모양이 여러 단계를 거쳐 기어이 나온다면 그걸 보고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게 메우 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종이접기를 통해 몇 가지 모양을 지금 당장! 해 보라고 하면 머뭇대지 않고 뭐라도 바로 해 낼 수 있는 어른이 많을까요? 전 겨우 비행기 정도이며, 학(鶴) 같은 건 아예 택도 없습니다. 그나마 어렸을 때 엄마한테 배워서 이 정도인데, 어려서 들여 놓은 습관은 확실히 평생을 가는 듯합니다. 지능도 어려서 발달시켜 놓아야 그게 일머리이든 공부머리이든 자신의 능력, 자질로 확실하게 자리잡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시원북스에서 나온 이 비슷한 책들을 전에도 읽어 보았기에 그 편집 수준에 대해서는 이제 미리부터 어느 정도 기대치라는 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책을 펼쳐 봐도, "와 예쁘다. 종이접기 책이 이렇게 럭셔리해도 되나?" 같은 생각은 뭐 새삼스러울 뿐입니다. 예전 육아 잡지 같은 걸 보면 종이접기 요령이 교양 지식으로 거의 주기적이라 할 만큼 게재되곤 했는데(아마도 그런 컨텐츠 역시 일본 것을 따라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걸 지금 이 책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인스트럭션이 자세해서, 한 번만 읽어 봐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아이들뿐 아니라 시니어분들도 한번 따라해 보시면 좋지 싶습니다.

예전 잡지 기사를 보면 순서를 또렷하게 표시하지 않거나 편집 과정에서 바뀌어서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가 혼동되고, 그저 눈치껏 해 내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책은 굵은 회색 화살표로 죽 이어서 경로를 표시하기 때문에 순서를 독자가 헷갈릴 수가 없습니다. 또 순번도 큼직합니다. 아이한테 일일이 어른이 옆에서 지도할 필요도 적고 애 혼자서 독학(?)을 해도 좋을 듯합니다. p46을 보면 코끼리 옆모습이 나오는데, 이런 걸 보면 처음에 누가 과연 연구해서 정리했을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제가 몇 년 전 뜨개 관련 책을 리뷰하면서, 2차원 평면에다 공예 절차를 설명하는 책 제작의 고충을 새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모양에다 일일이 모든 과정을 다 반복 설명할 수 없고, 접기마다 공통이 되는 모듈(부품과도 같은, 기본 접기 기법)에다가는 이름을 붙여 놓고, 여기에서는 그 모듈이 적용된다고 간단하게 언급만 할 수 있습니다. p6, p7에 그 방법과 기호 설명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방금 말한 "코끼리 옆모습" 파트를 보면 p47의 5, 6번 단계에 "산 (모양) 접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알려면 책 p6을 찾아 보면 나옵니다. 종이접기의 구구단과도 같다고 하겠네요.

순서만 멋대가리없이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빨강색으로 원을 쳐서 강조해 두기도 합니다. 또 어떤 단계는 더 자세히 보여 주려고 조금 확대된 배율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p66 이하를 보면 5번에서 6번으로 넘어갈 때 빨강색으로 "뒤집기"라고 표시되었습니다. 이런 설명이, 종이접기 목표가 되는 모양을 완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학교에서 IQ 테스트나 적성시험에 간혹 나오는, 점대칭 또는 선대칭 이동 후 나오는 모양을 맞히는 문제와도 닮은 데가 있습니다. 종이접기 활동이 두뇌 발달에 더움이 될 뿐 아니라, 이 책을 공부하며 입체를 상상하는 그 과정도, 수학에서 중요한 공간 감각 키우기에 도움이 됩니다. 요즘은 아닌데 십여년 전엔 공간도형 벡터 영역에서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나왔더랬습니다.

p78에는 산타클로스 모양 접기가 나옵니다. 저도 정사각형 색종이 마침 빨강색이 보여서 이걸 따라해 봤는데 역시 (책에서도 그걸 강조하지만) 접는 걸로 다 끝나지 않고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 넣어야 완성입니다. 마치 별을 보고 가상의 선을 이어 별자리를 가정하는 것과 비슷한데, 아이들이 이 한 권 다 떼고 나면 그저 손기술만 몸에 밴 게 아니라 인문적 상상력까지 키운 멋진 어린이가 되어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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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깨달은 인생의 후반전 - 마흔의 길목에서 예순을 만나다
더블와이파파(김봉수)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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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예순에게서 삶의 깊이를 배워라. 예순은 마흔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저자께서는 이제 마흔의 연령을 지나는 분입니다. 글쓰기 코칭을 하시며 시니어분들과 자주 소통하는 저자께서는, 마흔과 예순이라는 세대 사이의 차이점과 생산적 교차점이 어디일지 자연스럽게 깊이 분석하는 시간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 아마 2030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40대나 60대나 똑같이 올드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60대가 보기에는 40이라는 나이가 아들 같고 아직도 많은 걸 더 배워야 하는 미숙한 영혼처럼 파악될 수도 있습니다. 백세시대를 맞아 끝없이 생산의 일선에 참여하고 인생도 신선한 감각으로 계속 가꿔나가야 하는 건 40대의 중년이나 60대의 노년이나 사정이 같으며, 그러한 세대 간 생산적 교류에 이 책이 아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저자께서 상담하고 코칭한 사례자, 상담자 분들의 실제 이야기가 많이 담겨 더 재미도 나고 독자(60대이시라면)가 자신과 맞는 예에 공감해 가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p98에는 담서제미라는 분의 사례가 나오는데, 글에 대한 애정, 끈기와 신념, 공감과 사랑의 능력 면에서 탁월한 시니어분(이제 퇴직을 앞둔 분이셨다고 합니다)이어서 코칭에 있어서도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직장에서 자기 일에 열심이고 헌신이었던 분이, 글쓰기라든가 다른 과제 다른 상황에 직면해서도 탁월한 진척을 증명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글쓰기야말로 전인적 교육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제자를 상대하다 보면 코치도 오히려 배우는 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73에도 "인생의 스승"이라며 이 비슷한 말이 나왔습니다.

p153 이하에는 빨강솜사탕이란 분의 사례가 나옵니다. 저자님은 처음에 이분의 글을 읽고 맞춤법이 틀린다든가 어색한 표현 같은 게 눈에 띄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글에 서린 풍부한 감성, 정직한 마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정 같은 게, 노련한 글쓰기 장인인 저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고 말씀하시네요. 기교가 좀 서툴러도 그 안목, 시선 같은 게 순수하고 독창적이어서 독자가 마음을 뺏기는 경우는 많습니다. 어쩌면 현재 우리 니라에서 이름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금을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재주를 지닌 게 그 비결일지도 모릅니다.

p229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흔은 지금 당장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예순은 지금 이 선택이 나에게 앞으로 무슨 결과릂 가져올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관조할 줄 안다는 게 다르다." 이게 지금 시니어 예순의 입장이 아니라 마흔인 저자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책 앞부분에도 그런 말이 나왔지만, 마흔이란 예순을 아직 못 겪어 본 입장이고, 반면 예순은 이십 년 전쯤에 마흔을 이미 겪어 봤으니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 거죠. 얼마 전부터 유행한 "넌 늙어 봤니? 난 젊어 봤다"도 같은 맥락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42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글은 투명한 창과 같다. 우리는 글을 읽거나 쓰며 그에 나이를 붙이거나 사회적 지위, 재산 등을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영혼과만 소통한다." 사실 우리는 다들 속물들이기 때문에 별것도 아닌 말이나 글도 성공한 사업가의 것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난 진리나 이치가 담긴 양 과장하고 치켜세우곤 합니다. 저는 몇 달 전 어느 유명한 소설가에 대해 그 외모가 복스럽다며 무턱대고 칭찬하는 사람과 잠시 이야기한 적 있는데, 그 소설가가 무슨 작품을 썼는지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 없는 사람이 이런 소릴 하니 그 천박한 인성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만 독점해서 칭찬해야 한다고 여겼는지 그 부친에 대해서는 또 근거없는 폄하를 일삼는 게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일생을 두고 주류에 끼어 본 적 없는 인생이 카톡 프사만 손흥민으로 해 둔다고 갑자기 축구 선수가 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생을 겉껍데기가 아닌 진정성으로 산 사람이라야 말 한 마디에도 무게가 실리기 마련입니다.

"정답은 없다. 마흔과 예순은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성장시킨다.(p28)" 이처럼 세상에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개념이 없으며 누구나 누구로부터도 뭘 배울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되지도않은 권위의식에만 가득차서 조직 안에서 부하들을 거칠게 다루는 자가 어느 회사에건 꼭 있는데, 이런 사람이 그렇다고 자기 일을 유능하게 잘 해내지도 못하며 애초에 이런 사람이 뭘 배우려는 유연한 두뇌나 심성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썩은 고목으로 죽지 않으려면 우리는 독서나 글쓰기를 통해 꾸준히 배움에 임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삶이 전에 얼마나 치열했겠는지(p147) 먼저 생각해 보라고 저자는 말씀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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