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인 2022년 2월 특서에서 나온, 이 시리즈 세번째 작품 <약속 식당>을 읽고 리뷰도 썼었습니다. 이제 시리즈 제3권의 특별판이 이렇게 나왔는데, 규격은 약간 위아래로 길어졌습니다. 손에 들고 읽기에는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이 시리즈 핵심 키워드인 "파감 로맨스(p19, p47 등)"를 다시 만나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던 느낌도 다시 살아나고, 연휴에 제가 재료를 직접 사서 이게 진짜 되는지 만들어 보고도 싶어졌습니다.

(*북뉴스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에게 만호는 교활한 여우가 아니라 소중한 기회를 내려줄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p59)." 그러게 말입니다. 기한이 고작 100일이고, 다른 더 멋진 생을 살 수 있는 기회까지 마다하면서 구태여 한설이를 다시 만나려는 유채우도 유채우이지만 만호는 왜 이렇게 채우에게 친절히 구는 걸까요. 어떤 아줌마가 들어와 다짜고짜 "이런 식당을 사(서 개업하)다니 사기를 당한 셈"이라며 단단히 오지랖(이게 뭔 소리인지는 저 뒤 p186 황 부장 이야기까지 들어 봐야 합니다)을 부리는데 채우는 (40대 여성으로 변한 건 물론) 이 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고, 자신이 채우이며 설이를 만나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제 채우는 전혀 낯설 뿐인 이 잠시(길어야 백일이라고 하니)의 새 인생에 대해 적응해 가야 합니다.

채우는 이 생에서 식당 아줌마(김보영. 42세. p187)로서의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질문에 대해 "나는 하루치 재료만 준비하고, 다 쓰면 음식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제대로) 대답합니다. 이상하죠. 방금 막 들어오게 된 인생인데도 이런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맞는 답이 척척 나오니 말입니다.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합니다(p70). 이런 걸 보면 아줌마의 정신에는 원래의 다른 트랙이 깔려 있는데 잠시 쉬게 하고, 100일간만 잠시 이분의 몸을 빌린 후 기간이 되면 도로 내 주는 식인가 봅니다. 우리도 가끔 공황이 왔는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지요.

왕 원장이라는 남자는 날 언제 봤다고 언니 언니 거리며 파마비는 십만 원만 받겠다고 합니다. 아줌마로 살아 본 적이 없으니(정확히 말하면, 기억에 없으니) 파마가 얼마나 비싼지도 모르고, 식당 주인 노릇도 처음이니 아이한테 돈을 도둑맞지 않게 잘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몰랐다가 낭패를 겪습니다. 그래도 이 삶이 편하기도 해서, 원장한테 나중에 십만 원 어치만 와서 밥을 사 먹으라고 하니(이런 융통성이 발휘되는 것도 신기) 또 그러겠다고 합니다. 누구의 생이건 일장일단이 다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는 사두개인들이 묻기를 여러 번 결혼한 여인이 천국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하자 아버지의 나라에서 지상의 가족관계란 아무 의미 없다고 대답했다는 게 마태복음 22장에 나옵니다. p85를 보면 채우는, 아이 누나 이름이 고동미라면 아이 이름이 (구동찬 아니라) 고동찬이라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애쓰지만 곧 이게 다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가족의 형태도 수없이 변화"하니 말입니다. 형제나 남매면 성이 같아야 한다는 발상이 촌스럽다고도 합니다. 이런 생각도 아마 그전의 유채우의 삶을 그대로 사는 중이었다면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음식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별 진상이 다 있겠다는 건 직접 장사 경험이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왕 원장이 시식하고 가라고 권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순순히 올까요? 장사에 달통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감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기도 하나 봅니다. "돈을 벌려 애쓰면 돈이 찾아오길 망설이고, 일을 하려 애쓰면 돈이 절로 찾아든다(p104)." 어디 장사뿐이겠습니까. 세상 이치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와중에도 구주미는 채우더러 재료가 나빠서 게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둥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갑니다(p177을 보면 이게 집안 내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에휴). 여튼 이 구주미로부터 예쁘다미용실, 그리고 설이에 대한 정보(p133)를 알아 내야 하기 때문에 채우는 얘를 마구 대할 수는 없습니다. 동찬이는 비밀병기(메뉴 이름입니다)를 좋아하며 파감로맨스를 싫어합니다(p156).

사람 마음이 가는 길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채우는 어느새 고동미와 구주미가 황우찬을 동시에 좋아한다는 사실도 눈치챕니다(p167. 그러나 p208 이하를 보면...). 파감로맨스는 대체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지 황부장도 시큰둥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왕 원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생에서 설이의 정체는 바로 ooo이었음이 소설 끝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그리 큰, 단단한 실체가 없음을 확인하면 많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만호 같은 존재한테 이렇게 특별한 호의도 받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말미, 호소야 마사미쓰[細谷正充]의 해설이 밝히듯이 이 작품집은 일본의 학습잡지에 실린 여러 단편들을, 수정 가필을 거쳐 한 권으로 묶은 것입니다. 일본에는 아직도 5학년, 6학년 하는 식으로 특정 학년생에 특화한 (학습지 아닌) 잡지가 나오나 본데, 한국에도 이 비슷한 게 한때 있었습니다만 오래 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2003년에 출판되었던 책이며, 그래서 평론가 호소야 씨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변화구가 다양하지만 결정구가 아쉽다"라는 평이 한때 있었다는 언급을 하는 건데, 만약 지금이라면 아예 이런 말 자체가 안 나올 것입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여섯 본편의 1인칭 화자,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며 다른 환경에 처해 다른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학교를 옮겨다니는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비상근"이란 설정을 넣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각기 다른 비상근 교사라고 해도 무방하며, 이 책은 장편이라기보다 단편집으로 보는 게 맞겠습니다. 20세기 초중반 영미의 추리 장르에서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시크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물이 유행하여 이걸 하드보일드라 불렀는데 이 책 제목에 든 "非情"은 그를 염두에 둔 듯합니다. 스승의 바른 길이니 뭐니 하며 학생들에게 과하게 가까이 다가가진 않겠다는 건데, 해설에서 평론가 호소야 씨도 그런 취지로 말하지만 작품을 읽어 보면 막상 주인공은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다정하기만 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는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결과적으로 더 해로운 존재일 텐데, 비정규직치고는 지나치게(?) 예리한 두뇌의 주인공인지라 독자에게는 더 살갑고 고맙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어에서는 한자에 다양한 발음이 구현되지 않기에 동음이의어가 많습니다. 비상근(非常勤)이나 비정근(非情勤. 작가가 만들어낸 말입니다)이나 둘 다 일본어로는 독음이 [비죠-킨]이니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p54:6을 보면 후지와라 선생의 발언 의도에 대해 주인공이 "비상근이라 정이 없다는 뜻인가요?"라고 짚는 대목이 있는데, 한국어로는 이 말의 재미가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임시직으로 일하는 이상 과한 소속감을 두지 않겠다는 거지 정말로 비정하게 굴겠다는 뜻이 아니며 천성적으로 고립감을 즐기는 주인공의 스타일도 한몫합니다. 

여섯 편의 미스테리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실력을 보면 대체 이런 사람이 왜 고작 비정규직으로 박봉의 신세에 머무는지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독자는 특히, 심각한 사건이 품은 미스테리의 대단히 빈약한 단서만 갖고도 마치 코난처럼 가뿐하고 우아하며 논리적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주인공의 안목과 통찰력에 경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고작 이걸 갖고..?"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도, 살인이나 중상(重傷)처럼 심각한 결과가 아니었다뿐이지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빚어졌는지 이해가 도통 안 되는 일은 자주 벌어집니다. 우리도 이 비상근 교사처럼, 과한 감정적 집착을 버리고 필요한 부분에만 집중하면, 그런 수수께끼들을 다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전 그 점이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해결을 기다리던 말썽이나 사고는 우리의 무능으로 인해 부당히 잊히거나 그냥 묻어간 게 그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정의(正義)는 그때마다 일일이 훼손되었겠고 말입니다. 

두번째 작품 <64분의 1>에서, 사실 중2(초5라기보다) 수준의 수학 확률만 제대로 배워도 64가 2의 6제곱이라는 사실로부터 대략 이게 무슨 성질의 숫자인지는 감이 옵니다. 그 여학생들(p49)이 수업 시간에 배우는 독립시행의 확률곱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도, 내가 돈을 걸고 재미를 보려는 도박이 관심사가 된다면 갑자기 까다로운 계산도 척척 해내게 되나 봅니다. 첫째 작품에서는 이른바 다잉 메시지가 등장하는데 사실 영미권에서는 이런 이상한 말을 쓰지 않습니다. 이 클리셰 자체는 영미의 장르에서 처음 만들어졌어도 말입니다. 호소야 평론가도 그런 취지로 말하지만 다잉 메시지란 장르문학에서나 등장할 뿐 대단히 비현실적입니다. 범인이야 그 뜻을 이해했건 못했건 현장에서 인멸해 버리는 게 절대우위전략이고, 만약 범인이 메시지의 존재를 모르겠다 싶으면 피해자는 (힘이 남은 한) 직설적으로 할 말을 남기면 그만이죠. 그래도 우리 장르팬들은 마술쇼를 찾은 관객들처럼 즐겁게 속고 디테일의 정성에 감동합니다. 

일본의 표음수단 가나는 한자의 변형, 간이화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한자와 형태가 부분적으로 겹치는 게 많고, 가나 몇을 적당히 합치면 특정 한자가 나오거나, 반대로 한자를 적당히 파자(破字)하면 특정 가나 몇 개가 나오기도(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들의 트릭은 대부분 글자 구성 유희의 묘미에 기대는데 이렇게 하는 게 아마 초등 고학년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유익하겠다고 작가가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코난에서도 브라운 박사(아가사 하카세)가 이런 트릭을 쓴 농담을 자주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만 아무리 비정(非情)의 컨셉을 써도 그 착한 마음, 주제의식이 절로 삐져나오는 걸 도무지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과 동정, 정의감은 그 내면에 상근(常勤) 중이라는 점, 이 작가는 언제나 강조하지 않고 못배긴다는 걸 우리 한국 팬들도 다 잘 알지 않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나일지도 몰라 - 지친 나에게 권하는 애니메이션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작 애니메이션을 보면 의외로, 사람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멋지고 울림 깊은 대사가 있습니다. 명대사뿐 아니라 대중가요 가사도, 마음이 센치해질 때 들으면 "이거 완전 내 얘기네" 싶은 게 있죠. 애니도 극에 몰입하면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서희 작가님은 그런 개인적 순간들을 모아 이렇게 멋진 책을 만들어 내신 것 같습니다. 책에는 모두 12편의 작품들이 실렸는데 두 편만 미국 작품이고 다른 열 편은 모두 일본산입니다(웬만한 한국인들은 다 아는 유명한 작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원문장이 함께 제시되기 때문에 외국어 공부를 겸할 수 있다는 게 좋고, 건전한 자기계발 목적으로 독해가 가능하다는 점도 유익합니다. 명대사는 모두 147개가 뽑혔고, 챕터 말미에 독자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노트가 한 페이지 마련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6을 보면 029번 문장, 惱む時間に一つでも多くしてみて。가 있습니다(일본식 한자는 예스 같은 인터넷 서점 보드에서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그냥 한국식으로 적겠습니다). 이 문장의 뜻은 "고민하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해 봐."인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도라에몽의 재촉에 지쳐 잠시 이슬이를 만나러 온 진구가 듣는 충고인 것 같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회적 분위기, 개인 정서가 닮은 데가 많아 이런 대사가 (교훈뿐 아니라 말투까지) 공감이 잘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이키의 유명한 카피 Just do it!이라든가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고민하며 불안에 영혼을 잡아먹히기보다 뭐라도 행동으로 옮겨서 현황을 타개하라는 조언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p87에 나오는 062번 문장(중의 하나)은 あなたの名前は?인데 이게 대사이기도 하고 작품 제목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목에서는 물음표 아닌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라 뉘앙스가 다릅니다. 왜 당신의 이름을 물어 보는 걸까요? 알면서도 묻는 질문이라면 더 뜻이 깊습니다. 한국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만큼이나 존재의 본질을 다시 구성할 만큼 중요한 매개입니다. 저자는 이 작이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담은 주제나 분위기 면에서도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고 평가합니다. 

p100에는 070번 문장, もう終わりだ。美しくなかつたら生きる意味がない。이 나옵니다. 제가 이 작품(<하울의 움직이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무굴 제국의 창립자 바부르가 델리를 함락하고서도 아쉬운 듯 말하길 "이곳 사람들은 아름답지를 못하다."고 개탄했습니다. 고향 중앙아시아가 그리워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세상 천하를 다 얻어도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더 이상 내 마음에 안 든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울이 더 이상 악마와 교류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소피는 단호하게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애욕만 충족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처럼 서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2022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명대사들이 뽑혀 이 책 3-3, 9번째 챕터에 정리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최근작입니다. p153의 102번 문장은 좀 긴데 제가 여기 잠시 옮겨 적어 봅니다. 命は儚いことを知っています。死はいつもそばにいあいあるうくことを知っています。여기서 儚은 덧없다는 뜻을 특히 일본어에서 갖습니다(한국 한자는 이런 의미로는 잘 안 씁니다). 저 글자의 인변을 마음심으로 바꿔도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같습니다. 목숨이라는 게 덧없고 죽음이 항상 곁에 있음을 뻔히 알아도 우리는 생을 좋아하며,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게 있을 정도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생이 우리에게 부여한 육신의 고마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168에는 문장 111번이 있습니다. <겨울왕국>에서 그랜드 패비가 왕족들에게 안나의 상태를 설명하며 안심시키는 대사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The heart is not so easily changed. But the head can be pursuaded). 머리와 가슴 중 어느편이 진짜 우리에 가까운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에 확신을 갖는 순간이라면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때입니다. 우리부터가 남들에게 머리로나 가슴으로나 끌리고 동의가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상, 사람을 읽는 성공 심리학
김승길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에서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관상은 사이언스다"라는 게 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남을 속이려고 혈안이 된 사기꾼의 외모, 태도, 말투 등 겉으로 드러나는 뭔가 "쎄한" 낌새 같은 건,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팩터라고 하겠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쓰던 말은 빠알리(Pali)어라고 하는데, 스리랑카 빠알리 불교대학을 졸업하시고, 문인으로 강연자로 다채로운 경력을 쌓으신 저자 김승길 선생의 현대적 관상론은 우리에게 많은 실용적 지혜를 던져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87에는 대화 중에 눈을 자주 깜빡이는 버릇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에도 이 사람이 평소부터 그런 습관을 가졌던 사람인가, 아니면 유독 특정 상황에서만 저런 특징을 노출하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평소에도 습관이 된 사람이라면 어려서부터 뭔가 강박에 시달리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재미있는 말씀은, 이런 이들이 대체로는 소극적인 성격이라서 이성에게 잘 접근은 못 하지만, 일단 이성을 사귀고 결혼에까지 이르면 배우자에게 지극히 잘하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초년에 설령 좀 고생을 하더라도 말년에 이르러 재물 운이 터져 풍족하게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하니 관심 깊게 볼 일입니다.

p121에는 흥미롭게도 "커피숍에서 꼭 어두침침한 자리에 앉는 사람"에 대한 분석이 있습니다. 대체로 소극적인 이들이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하시네요. 밖에서는 어두운 자리를 선호하면서 집에만 오면 거꾸로 이런 자리를 싫어하며 답답해하는 유형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성격이 히스테릭한 구석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자세나 습관에서도 이런 경향이나 개성이 드러나는데, 저자가 이 대목에서도 강조하는 바는, 상대방의 특징을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부터도 먼저 간파하는 사람이야말로 대인관계에서 어드밴티지를 잡고 선제적인 스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81에는 저자께서 살아온 이력의 한 편린이 나옵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의 말처럼 저자도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운이 트이신 사례라고 하는데, 유명해졌다는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운이 절로 트이게끔 계기가 마련되었는지에 대한 서술도 우리 독자들은 좀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은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조직 안에서 상사와 부하에게 두루 원만하게 관계를 설정하며, 일을 추진할 때에는 긍정적인 전망을 항상 갖고 추진 과정에 있어 공연한 장애물이나 비관론이 끼어들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광대가 돌출된 여성은 성격이 드세고, 기혼자의 경우 남편의 기를 꺾으려 드는 등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며 가정에 불화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고 나옵니다(p212). 그러나 저자께서는 덕담도 곁들이는데 이런 여성들이 추진력이 좋고 자녀 교육에도 열성이며 생활력도 강한 편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실 관상보다 앞서는 게 심상(心相)이라는 말도 있듯, 당사자들이 서로 화합하며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다독인다면 그 어떤 부부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다. 또 여성이 말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남성이야말로 관계를 잘 가꾸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남편감이라고도 합니다.  

경영학 마케팅에 4P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product, price, promotion. place가 그것인데, 저자께서는 이것을 관상학과 인간관계, 조직론에 적용하여, 나라는 상품을 어떻게 계발하고 최상의 포장을 씌워 사람들 앞에 버젓이 제시할지가 사회 생활의 요체라고 힘있게 가르치십니다(p268). 조직 안에서 남들을 통솔하는 직에까지 오른 이런 사람은 부하들의 실력과 자질까지도 한눈에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만 성실한 척하고 뒤에서는 온갖 꾀를 부리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염불처럼 외우는 무능자의 속셈을 바로 간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칭찬에 인색하던 자가 갑자기 칭찬을 늘어놓는다? 반드시 뒤로는 무슨 속셈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니 잔뜩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을 읽고 세상을 이기는 전략"이 무엇인지 자세히 배운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주론 인생공부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김태현 지음,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작 / PASCAL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네마 명언>, <실리콘밸리의 천재들> 등을 쓴 인문학자 김태현님의 새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체사레 보르자라는 유력 정치인을 모시며 이탈리아의 통합된 국가 체제를 꿈꾸었던 책사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고전 <군주론>에 대해서는 패도정치를 옹호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날카롭게 포착했고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정확히 통찰했다는 찬사도 같이 받습니다. 어떤 고전이 그저 듣기에만 좋은 소리를 달달하게 늘어놓은 것도 아닌데 이처럼 오래 읽힌다면 그에는 뭔가 특별한 장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고전의 맥락과 의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인문학자의 솜씨로 요약, 분석된 책은 바쁜 현대인들의 노력과 시간을 크게 덜어 주며 고전의 정수는 정수대로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3을 보면 "군주는 자신이 한 약속을 언제든 깰 권리가 있다"는, <군주론>의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를 우리는 속된말로 양o치라고 하죠.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원활한 기능의 작동을 위해 일정한 규약을 정해 두고 이의 준수를 성원들에게 당연히 요구합니다. 이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동의했던 바라서, 이런 걸 지키지 않는 자가 늘어나면 질서와 체제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런 상식과 이치를 마키아벨리가 몰라서 저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겠습니다.

김태현 저자의 유려한 필치로 분석되는 바에 의하면, "과거의 약속이 현재 상황에 맞지 않게 되면, 성공을 위해 보다 유연한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동아시아에서도 미생지신이라 하여 미련할 만큼 문언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고, 민사재판에서도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김태현 저자가 이 챕터의 서두에서 <동물농장>의 명언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를 잠시 거론한 건, 저 마키아벨리의 명언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기는 당혹스러움을 솔직히 표현한 의도로도 읽힙니다. 라틴 금언에 pacta sunt servanda라는 것도 있습니다.

"대중은 항상 외관에 속고 세상은 주로 대중으로 이뤄져 있다.(p72)." 그래서 일부 사악한 정치인들이 언제나 어리석은 대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불측한 목적을 달성하려 들고, 이런 역사는 수백 수천 년을 통해 반복되었습니다. 저자도 히틀러를 책 곳곳에서 거론하는데 실제 <나의 투쟁>도 이런 점을 거듭하여 강조함으로써 대중을 현혹할 걸 가르치는 대목이 많습니다(물론 마키아벨리의 고전과 달리 독창성은 아주 부족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자면, 우리들도 그저 남들이 좋다며 우루루 몰려가는 생각없는 소비, 개성 몰각, 속물적인 유행 가담에 대해 아무 자각이 없다면 저 마키아벨리가 꼬집은, 선동정치인의 먹잇감이 되기 좋은 어리석은 대중을 자처하는 꼴이겠습니다.

적대 세력을 처리함에 있어 아예 반격의 빌미조차 주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아마 이 살벌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통쾌한 느낌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복수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해야 하며, 상대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또 재기 불능에 빠지도록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끔찍한 한 방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극히, 지극히 타당합니다. 저자는 p86에서 코폴라의 고전 <대부>를 인용하는데, 그 영화에서 부친의 장례식이 끝난 후 주인공 마이클은 4대 패밀리의 수장들을 한날한시에 모두 처단하는 과감함을 보입니다. 마치 오다 노부나가가 오케하자마에서 이마가와 군(軍)을 기습하여 한큐에 쓸어버린 고사와도 비슷합니다. 결코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며, 어설픈 동정심은 자멸을 부를 뿐입니다.

p128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덕목을 다 가진 양 위장하라"던 마키아벨리의 말이 인용됩니다. 저자는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거론하며,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 남자로 분장하고 살 1파운드에 피 한 방울도 섞이면 안 된다는, 이른바 필요적 부수행위의 개념을 무시한 채 궤변으로 연인 안토니오의 목숨을 건진 포샤, 그녀의 과감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셰익스피어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김태현 저자의 이 대목을 읽으면 무척 좋아할 것 같습니다. 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다가 샤일록 같은 인간쓰레기 좋은 일만 시킨다면 그건 악질 고리대금업자의 범죄에 공범으로 가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고전을 읽을 때에는 그 고전이 쓰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자 김태현 저자의 좋은 해설이 곁들여져, 이 험한 세상에서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남는 멋진 방편들을 더 재미있게 익힐 수 있었던 독서였습니다(그러나 다들 이웃과의 약속은 지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