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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영화 레시피 - 10대의 고민, 영화가 답하다 ㅣ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9
김미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3월
평점 :
영화는 세상과 역사를 압축한 텍스트라서 잘만 찾는다면 그 안에 모든 질문의 답들이 예비되었을 수 있습니다. 10대들은 성장 과정에서 온갖 고민이 있겠고, 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적절한 작품 안에서 관련 있는 시퀀스에서 감상한 후 강렬한 감동과 함께 수용할 수 있겠습니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자신감, 용기, 깨달음, 친구, 위로, 미래의 꿈 등이 필요할 때에 활용할 수 있을, 저자 김미나 씨가 제시한 레시피가 담겼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게, 마치 실용서 편제처럼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레시피들이 죽 나열된 게 아니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마녀(?)와, 중3 박준희의 우연한 만남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책의 메인입니다. 그 안에서 잠재적 독자의 마음은 이 박준희가 대변하는 역할입니다. 마녀는 생긴 것뿐 아니라 이름도 중성적인데 이준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마녀 이준은 영화 감상이 취미인데 "쭌"으로 친구 사이에 통하는 박준희가 고민이 있으면 그걸 미처 털어놓기도 전에 마녀가 십 리 앞을 내다보고 영화로 처방을 척척 해 줍니다. 영화 레시피도 레시피지만 마녀와 쭌의 이런 티키타카도 재미있습니다.
아이 필 프리티는 2018년에 나온 영화인데 저도 몇 년 전 어느 일요일 낮에 EBS에서 틀어 주길래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 영화도 (제목과는 달리) 안 예쁜 여자들이 잔뜩 나와 자존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젊었을 때 세계를 주름잡은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도 조연으로 나옵니다. 이게 원래는 고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서 여주인공 마리아(충분히 예쁜)가 남친 토니를 생각하며 들떠 부르는 노래인데, 로큰롤의 아버지이자 천재 뮤지션인 리틀 리처드가 (남자인데도) 코믹하게 부르는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이 영화와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노래가 극중에 나오긴 합니다).
쭌도 안 예쁜데다 공부도 못해서 고민인데, 마녀는 좀 놀라운 처방을 내립니다. 애니 말고 실사판 2019년작 <알라딘>을 대조하여, <아이 필 프리티>의 주인공 르네는 겉은 안 예쁘지만 내면이 성숙하고, 반면 알라딘은 어찌어찌 지니의 도움으로 왕자가 되었지만 내면, 실질은 그저 고아에다 찌질한 도둑놈일 뿐인데, 쭌 너는 과연 둘 중에 누구를 닮아야 하겠냐며 마녀가 단칼에 고민을 정리합니다. 허, 그걸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나 싶었는데, 감독 가이 리치가 혹 이 의견을 듣기라도 한다면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 아니 그게 아니라 이준이 아마 같은 마씨 계열인 지니한테 무슨 정보를 얻고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죠. 뭐 꿩 잡는 게 매라고, 이런 충고를 듣고 쭌이 힘을 얻기라도 한다면 뭔 상관이겠습니까. 이렇게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레시피가 진행되어서 더 생동감이 있습니다.
"거짓말 중에 가장 최악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다(p102)." 마녀가 쭌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마녀의 가르침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아서인지 꽤나 생생하고 실감나는데 "생각이라는 게 한번 굳으면 잘 안 바뀐다"는 말에서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p113에서 마녀는 I can speak의 뜻이 영어를 (그간의 노력을 통해) 드디어 몇 마디 하게 되었다는 뜻도 되고, 이제는 나의 참된 자존을 찾아 내 언어(위안부 강제 연행에 대한 이야기 포함)를 내 뜻대로 말하게 되었다는 뜻도 된다며 교과서적으로 모범적인 해석을 내립니다. 민족의 아픈 역사 한 자락을 개인의 몫으로 살아낸 이 위대한 할머니 역을 맡아 나문희씨가 좋은 연기를 보였죠. 반면, 나이 칠십을 먹어도 여중생 수준의 지능으로 되지도 않은 환상을 우기며 본인을 연예인으로 여겨달라는 어딴 노파의 투정이란 참으로 추합니다.
예전에 송건호 선생은 기독교 성경 구절을 다소 변형하여 "언론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일어서 소리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p210 이하를 보면 2015년작 <스포트라이트>가 소개되는데, 보스턴 글로브가 폭로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 실화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여기서는 쭌과 마녀의 개인적 스토리가 살짝 톤을 낮추고 객관적인 담론이 메인입니다. 청소년 중에는 커서 기자 되기를 꿈꾸는 이들도 있겠는데, 언론인의 핵심 자질은 현란한 문장력이 아니라 진실 앞에 눈감지 않는 용기와 양심이라고 마녀는 준엄히 이릅니다. 에필로그에서 마녀는 쭌과 다음 영화를 고르며 포근한 대화를 재개합니다. 쭌의 방학이 대단히 값지게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