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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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인문학자의 군주론 해설서를 4개월 전에 리뷰했었고 여태 네 권의 책을 읽고 리뷰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철학자들의 명언을 담았는데 모두 네 파트로 나뉘었습니다. 제1장은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2장은 인간의 사유에 대한 말들, 3장은 특히 대문학가들이 남긴 말들, 4장은 동양 위인들의 말들을 분석합니다. 이 시리즈가 항상 그랬듯 원어, 혹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 번역어를 함께 실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도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책은 제4장이 조조, 루쉰, 한비자, 여러 제자백가 거두들의 말을 주제로 삼았기에 한문 원문을 병기한 점이 시리즈 기간(旣刊)들과 다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41 이하에는 사르트르가 남긴 명언들이 나옵니다. 원문이야 불어이겠지만 사르트르 정도 되는 거장들에겐 영어 번역가들도 일류들이 커버하므로 이 문장들도 충분히 권위 있습니다. "불안이란 자유가 느끼는 현기증이다"라고 하는데, 역시 그다운 멋진 말입니다. 노예나 돼지의 정신에는 불안이고 뭐고가 깃들지를 않는 법입니다. 사르트르가 즐겨 쓴 현기증이라는 보조관념에는 그의 신체 특징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작용했겠다고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이렇게 그의 말 자체에만 집중해도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시즘은 그 피해자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살인의 방법에 의해 정의된다"는 명언도 있네요.

같은 시대 프랑스 실존주의의 또다른 거장(사르트르와는 자주 대립한) 알베르 카뮈는 3장이 아니라 2장에서 다뤄지는데 아마 "인간의 사유"라는 주제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서 그리하신 듯합니다. Man is mortal, but I must rebel and die.라고 할 만큼 그의 사상은 "반항적 인간" 한 마디에 잘 녹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Life is not something to be built but to be burned down.이란 말도 있는데, 확실히 이분은 화끈한 형님이십니다. burnt가 아니라 burned down이라고 하신 그 깊은 의도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서쪽에서 온 달마는 조사(祖師)도 죽이고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이 형님은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너는 인생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양반 돌아가신 모습을 보면 자신의 말에 참으로 충실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됩니다.

황제의 자리가 그저 마음 편하고 온갖 호사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책임이 또한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고생과 고민만 잔뜩 하고 군주로서 영화를 즐기지는 못했던(=않았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마도 수백 년 먼저 살다 갔던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 정치라는 게 바로 이런 이의 치세를 두고 이름일 것입니다. "세계는 변화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들이 결정한다(p111)." 이 말의 원어는 고전 라틴어이겠지만, 영어 번역문에서는 섬세하게 세미콜론이 두 절(clause)을 가릅니다. 5현제들의 시대에 세미콜론의 저런 용법은 없었을 테고, 김태현 인문학자의 한국어 번역도 그 문장부호를 살렸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p74). 다들 알듯 이건 그의 책 제목인데, 독일어 원어는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이죠. 영어나 독일어나 조상이 같아서 저런 allzu같은 표현을 보면 두 언어가 정말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 확인하게 됩니다.이 저서의 부제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인데, 인간 정신과 영혼의 본질이 독창성을 기반으로 삼는 자유라는 점, 니체는 온몸으로 절규했던 것입니다. "믿음(faith)이 과연 무엇을 입증하는가? 정신병원을 산책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다." 니체다운 냉소적인 말입니다. 뭘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자는 시설에 수용된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음을 잘 드러냅니다.

톨스토이는 니체보다 16살이 많았는데 죽기는 십 년 뒤에 죽었습니다. 그의 명언들을 읽어 보면 니체의 격정적인 세계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김태현 저자가 p148에서 말하듯 그는 (의외로) 여성 심리를 읽는 대가(大家)였고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에서도 그 섬세한 문장 안에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 사이에 대립이 있을 때 p156 이하에 실린 그의 말을 읽어 보면 매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마지막 장은 동양인들의 지혜인데, 한비자(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저자가 평가합니다)의 말 要講統治術 不要講信任關係라는 문장을 보고, 어쩌면 조금 뒤에 나오는 맹자(孟子)의 말과 이렇게나 빛깔이 다를까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명언의 지혜와 함께 한자 공부도 할 수 있어서 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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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를 공감합니다 - 타인의 뇌를 경험하는 역할놀이 사고법
고보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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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 바깥의 세계(타인들 포함)를 인식할 때,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이게 가능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인생의 실패란 없습니다), 뇌가 그러려니 해석하는 대로 인지할 뿐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뇌가 경험대본으로 만들어낸 연극"을 우리가 믿을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소통할 때 힘든 이유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나를 왜곡하고, 나는 나대로 그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이가 아닌 어른은 "저 사람은 정말 답이 없지만, 나 역시 그를 오해한 부분이 있겠거니"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인지를 조금이라도 수정하는데, 인격이 미숙한 인간은 끝까지 자기만의 망상을 고집합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 이런 경우를 가리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할 때 사이코드라마라는 걸 시켜 보기도 합니다. p37을 보면 브레인 롤 플레잉이 나오는데, 저자는 기본적으로 "뇌의 연극"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모든 논의를 시작하시기 때문에 이런 기발한 방법론을 조직과 개인, 특히 관리자급에게 권하는 것이겠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말씀하시는 대로, 대체로 공감이란 체험의 공유(동시간이면 더욱 좋고)를 통해 형성된다는 게 통념에 가깝죠. 그러나 저자는 이와 달리 "어차피 연극이니 연극으로 풀자!"라고 믿고, 타인과 나에게 아예 특정 역할을 부여하여 합동으로 공연을 펼치자는 것입니다. "타인의 진실한 행동"이 아무리 내 눈앞에 펼쳐져 체험이 가능해도, 이를 perceive하는 내가 즉시 왜곡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전에 이건희 회장도 그런 말을 했는데, 영화광인 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며, 한 번은 캐릭터 A의 관점에서 보고, 다음 번은 캐릭터 B의 관점에서 본다고 했습니다. 현대 미술은 추상적이라서 어렵다고 하는데, 그게 보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고, 그 해석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그게 명작입니다. 조직에서 각각의 성원들이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뷰를 떠올리며 행동한다면, 그 중에 공통되는 세계관이 분명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이 팀은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고, 하나의 유기체처럼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비주얼 씽킹이라는 방법론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 주제 관련 여러 대중서를 리뷰해서 제 블로그에 올렸고, 네이버 등에 비주얼 씽킹으로 검색하면 정말 많은 책들이 나옵니다(아마존 등에 올라온 미국 서적은 훨씬 더 많습니다). 저자께서도 p74 이하에서 이른바 가시화 작업이라고 해서 이 개념을 설명합니다. 또 많은 책들이 팀에서 피드백을 원활히 하고 팀원간 소통 밀도를 높이기 위해 사무실에 여러 상황판을 설치하고 모두가 같은 인식을 공유하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상황을 다 알고 머리 속에 훤히 펼칠 수 있는 팀장 역시, 그래도 자기 방 벽에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게 차트화해 두라고도 조언합니다. 그러면 그냥 머리로만 생각할 때와 달리, 새로운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관점, 2관점, 3관점으로 현실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팩트, 객관이 파악됩니다. 이걸 저자는 편파, 반전, 중립(p86)이라고 정리합니다. 나는 나지만, 내가 내 적의 입장에도 서 보고, 나아가 나와 적을 저 위에서 판사처럼 내려다보는 시야까지 갖춘다면, 이게 바로 가장 현명한 자의 사고입니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곧 지옥이라고까지 했는데, 저 지긋지긋한 적수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해 보라니 그만큼 괴로운 일도 또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손자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 이 치열한 경쟁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2관점 3관점의 장착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이를 자기객관화라고 표현합니다. 공감은 남한테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같이[共] 느끼는[感] 과정입니다. 어른이라면 당연히 남을 일정수준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p128, p154 등에서는 리더일수록 휴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간혹, 열심히 일하는 팀장급 중에 번아웃이 오는 분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같은 공황장애가 오기도 합니다. 영국의 명배우 제레미 브렛 같은 경우 말년에 정신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캐릭터에 스타니슬랍스키 식으로 몰입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직업병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입장에도 서 보는 노력을 행하는 건 여간 그릇이 커서는 감당이 안 되며, 리더의 직분은 그만큼 힘들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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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생각 글쓰기 : 고사성어 편 - 하루 한 장 논술 훈련 공부 잘하는 글쓰기 1
이혜정 지음 / 미래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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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에서 논술 전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집니다. 논술로 메디컬 학과 여러 군데를 동시에 합격했다는 이들도 있고, 수능처럼 여러 과목의 적성을 동시에 체크하는 전형에 부담을 느끼는 수험생들이, 아예 중학생 때나 고 3 초반부터 논술 준비에 열을 올리기도 합니다. 물론 수능 최저 등급이라는 다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연대 같은 경우 최저 조건이 아예 없기도 합니다. 꼭 논술 합격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분명하게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건 큰 의의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래는 생성형 AI의 활용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인데, 챗지피티에게 일을 잘 시키기 위해서라도 바른 글쓰기 훈련은 필수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모두 다섯 개의 챕터로 되었으며 챕터마다 열 개의 교과내용이 들었습니다. 하루에 한 주제씩 마치게 구성했으므로 총 50일이면 책이 끝납니다. 예를 들어 6일차(p22)를 보면 甘呑苦吐(감탄고토)를 배우는데, 학생과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 뜻을 설명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 준 후, 이 고사(故事)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무엇이겠는지 학생의 능동적인 사고를 이끌어냅니다. 이 페이지를 보면 학생이 참 똑똑한 것 같습니다.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거론하며, 소년(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무를 너무 이용만 하는 이기적인 성격이라고 비판합니다. 우리는 동화의 교훈인 "아낌없이 베풀기"에만 주목하여 소년의 태도에는 잠시 소홀히할 수 있는데, 사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소년의 행동이 문제라면, 그런 소년의 행동을 유발한 나무의 이타주의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부차적으로 연상된 토픽과, 메인 토픽인 甘呑苦吐를 연결시켜 글 한 편을작성하게끔 연습합니다. 주장을 간결히 쓰고 그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어, 글쓴이의 개인적 경험이라든가 사례를 들어 내용을 더 풍성하게 가꿉니다. 마지막으로 결론 또는 제안을 힘있게 덧붙이면 깔끔한 논술 한 편이 완성됩니다. 이 교재에서는 "자신의 이익(여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건 왜 나쁜가?"를 생각하고 그 근거를 치밀하게 전개해 볼 것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저도 주변의 아동에게 이걸 한번 시켜봤는데, 그 애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소년이 나쁘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甘呑苦吐라는 고사성어하고는 큰 관계가 없지 않냐고 되물어왔습니다. 일관되게 나무를 이용만 했고, "행동이 바뀐 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어른인 저도 좀 생각을 더 해 봐야 하겠습니다. 

p40에는 輕擧妄動이라는 성어가 나옵니다. 책에서 선생님은 이순신 장군의 고사를 드는데, 싸움을 앞두고 긴장한 군사들에게 "침착하며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할 것"을 명하는 대목입니다. 명량에서 안위라는 부장이 충무공께 "군법에 죽고 싶으냐!"라는 호통을 듣기도 했죠. 사실은 안위 장군도 너무나 훌륭한 분이었는데, 원래 충무공 같은 생각 깊은 인격자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고, 잘하는 부하에게 더 잘하라는 경각심을 심기 위해 저렇게도 하신 거죠. 안위와 충무공은 18년 나이 차이가 납니다. 선생님은 이와 관련된 표현으로, 노루 제 방귀에 놀라듯이라든가, 침묵은 금, 긁어 부스럼 같은 속담도 함께 가르쳐 줍니다.

p80에는 그동안 배운 고사성어를 응용해 퀴즈를 풀게 합니다. □상이몽이라고 하면, 네모 안에는 어떤 글자가 들어가야 할까요? 객관식 선지까지 나와서, 문제를 풀기가 더욱 쉬워집니다. 아이가 잘 하면, 다음에는 혹시 같을 동(同)을 한자로도 쓸 수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 페이지에는 후안무□, 동□상련, 십시□반 같은 문제를 내어 네모 안을 채우게 합니다. 또, 상황을 제시하고 이에 걸맞은 고사성어는 무엇일지 말해 보게 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8×8 규격의 십잣말풀이 퍼즐을 내었는데, 모두 네 글자짜리이며, 다만 가로⑧만은 특이하게 여덟 칸인데, 방□□□이□□□ 꼴이며 무엇이 빈 칸에 들어갈지 맞혀야 합니다. 賊反荷杖과 뜻이 통하는 속담이라고 하는데, 과연 뭘까요? 답은 p131에 나옵니다. 물론 본문 p70에서 이미 가르쳐 줬던 내용입니다.

맨뒤에는 가나다순 색인도 있습니다. 고사성어 책이지만 한자는 최소화하여 부담을 줄이고, 본연의 목적인 사고력 함양에 더 중점을 둔 깔끔한 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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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생각 - 아이디어 번아웃에 필요한 24가지 생각 습관
로히트 바르가바.벤 듀폰 지음, 김동규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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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암기력, 계산 능력보다는 창의력이 훨씬 중시되는 세상입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중시됩니다. 아이디어는 아이큐보다 평등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회사에서 아이디어 머신이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어느 시점에서는 아이디어가 고갈됩니다. 슬럼프에서 빨리 벗어나, 잘되었을 때처럼 반짝반짝 아이디어를 뽑아올리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 책에 좋은 제안이 많이 나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어에서 You're so predictable, you're too obvious. 라고 하면 넌 너무 속이 뻔히 보여, 다 읽혀, 뭐 이런 뜻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패턴, 또는 그의 아이디어 생산 기제라는 것도 판에 박힌 듯 뻔하면 사회 생활이 어렵습니다. 저자가 창립한 회사 이름은 non-obvious company인데, 일단 뻔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회사가 주목받을 자격이 있다는 발상입니다.

이 귀여운 책에서 제가 재미있게 본 건, 책 맨뒤에 몰아 놓은 "뻔하지 않은 주석"이었습니다. 대개 책의 미주는 참고문헌, 인용구의 출처를 모아 둡니다. "아니, 뭘 어떻게 했기에 심지어 주석까지도 뻔하지 않다는 거지?" 우선 이 책의 주석은 도서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인터넷 문서의 URL로도 출처를 일일이 표시해 줍니다. 그런데 책에서 URL 출처를 대는 관행은 적어도 대략 십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물론 인터넷 문서는 자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므로 따로 아카이브되어 있지 않다면 매우 불안정합니다. 여튼 이 책의 주석이 뻔하지 않다는 건, 책이건 인터넷 문서건 일반 유저들이 쉽게 접하지는 않던 컨텐츠를 참조시켜 준다는 의미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무리 회사에서 일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해도, 어느 시점부터는 타성에 젖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하루의 시작을 달리해 보라(p60)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밤낮을 바꾸거나 할 수는 없고, 루틴에 변화를 주라는 뜻입니다. 의외로 강박적으로 믹스커피 한 잔을 꼬박꼬박 챙기는 이들이 많은데, 커피 아니라 (건강에도 덜 해로운) 홍차 등으로 하루를 연다고 해도 큰일 나는 건 아닙니다. "꼭 이럴 필요가 없었네!"를 내 자신에게 알려 주면, 이 메시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내가 정신의 리듬을 바꿉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감각은 여기서 다른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영어에 rebuttal이란 말이 있습니다. "받아친다"는 뜻인데, 표현이 재치있기까지 하다면 repartee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p41에서 prebuttal이란 말을 꺼냅니다. 이건 원래 영어에 없던 말이고 일종의 신조어입니다. 상대가 아직 나더러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치가 나를 이렇게 보겠거니 짐작하고 선수를 쳐서 쏘아붙이는 걸 말합니다. 물론 사회생활에서 때로는 이렇게 해 줘야할 필요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대개 이런 행동은 괜한 자격지심, 자존감 부족, 피해의식 등의 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인간관계가 원활히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폐단보다는, "프리버털이 습관이 되면 당신 자신의 시야가 좁아진다"고 합니다. 아이디어 생산에 해로운 루틴은 모두 디톡스하라는 이 책의 주제에 잘 맞습니다.

"의도적으로 뺄셈을 거듭해 보라(p146)." 회의를 할 때도 최소 인원으로 최소 장비로 홀가분하게 해 보라고 합니다. 이 페이지에서 저자가 인용하는 생떽쥐페리는 "인생에 있어 진정한 행복은, 더할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게 없을 때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참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의 진짜 뜻은, 가족들끼리 휴일에 집이나 휴가처에서 오순도순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아무말도 없이 따뜻한 온기를 공유할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작업 환경을 풀옵션으로 세팅할 생각만 하지 말고(대개는 허영심입니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차리고서 머리를 비울 때 진짜 아이디어가 찾아옵니다.

플랜B가 없이 사는 사람은 무모합니다. 아무리 능력, 자신이 있어도 사람 사는 세상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끼어들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두 대안을 놓고 보다 나은 선택지를 고르며, 정 안 될 때에는 기존의 차선책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p167을 보면, 플랜C를 마련하는 습관을 들여 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아이디어 스로틀이 뻑뻑한데 무슨 C 타령이냐? 이 플랜 C라는 건 제3자 시야에서 사태를, 상황을 보는 습관에서 잘 나올 수 있다고 하네요.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타인과 관계를 원만히 가지고 내 안에 그가 들어올 공간을 넓히라는 점입니다. 왜? 내 아이디어의 풀(pool)을 더 넓히고, 더 신선히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관계 개선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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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않는 법 - 무엇이 죽고 싶게 만들고, 무엇이 그들을 살아 있게 하는가
클랜시 마틴 지음, 서진희.허원 옮김 / 브.레드(b.read)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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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들고 처음에는 좀 의아한 느낌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방법도 아니고 "나를 죽이지 않는 방법"이라니? 그런데 요즘처럼, 전혀 모르던 사람과도 밀도 높게 소통해야 하고, 젊은 객기에 다소 무모한 도전을 벌이다가 실패라도 겪을 일이 많은 세상이라면, 자살 충동도 뜻밖에 자주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충동이라는 게 신산(辛酸)을 많이 체험하고 스트레스에 크게 노출된 어른들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치밀어오르는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릴 줄 모르는 아이들도, 느닷 닥친 쇼크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큰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잘 살기 위한 방법보다 먼저 배워야 할 건, 까딱 잘못해서 나를 성급히 내 스스로 죽이지 않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건 우리집 지하실이었고 나는 그때 개 목줄을 사용했다." 이 책의 머리말인 "지금의 나는 살아 있어 기쁘다" 중 p10 맨처음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런 말을, 우리가 책을 통해 접하니 이 정도로 무덤덤하게(도) 다가오겠지만, 아무리 모든 고뇌를 극복하고 사뭇 의연, 성숙해진 마인드셋으로 꺼내는 말이라 해도, 당사자는 얼마나 참담한 기분이겠습니까. 저자 클랜시 마틴 교수님은 본인이 열 번 이상의 자살을 시도하고 그 끔찍한 체험으로부터 회복을 이뤄낸, 이른바 자살 생존자입니다. 보통 영어권에서 suicide survivor라고 하면, 자살로 생을 마친 이의 지인, 가족이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에서 쓰는 말인데, 이 경우는 자살 미수와 이후의 피폐해진 심신 회복 과정을 마친 이를 일컫는 드문 용례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애 셋 있는 집안을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그런데 책 p58을 보면, 마틴 교수님은 슬하에 자녀가 무려 다섯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서며 그 누구보다 "삶, 생존"의 중요성을 절감한 분이니, 가족 계획(?)이 이렇게 진행된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다만 저자는 세 번 결혼하셨는데, 첫째 부인에게서 한 명, 둘째 부인에게서 두 명의 자녀를 봤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쓰지 않으시고 약간 우회적인 문장으로 진술하셨는데, 위트와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입나다. 독자인 제가 이 대목을 눈여겨 본 이유는, 상처로부터 그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를 체크할 하나의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경우 예전부터 자살을 죄악으로 간주했습니다. 신이 내린 소중한 선물인 목숨을 스스로 파괴한 자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으며 교회의 묘지에도 묻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 p168을 보십시오. 제임스 힐먼은 그의 1968년 저서에서 "자살 역시 인간 가능성 중 하나이며, 선택은 존중되거나 이해될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의 지성답게 자살에 대해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인간 자유의 궁극적 형태가 자살"이라고까지 주장했는데, 이에는 전근대적 종교의 그늘을 합리주의의 기치 하에 걷어내려는 배경도 있었던 거죠. 지금은 무슨 종교 같은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살은 그냥 자살로만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문은 늘 열려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교 이전 로마 사회 지배층의 주류 사상이었던 스토이시즘 철학자들이 자살할 권리를 옹호하며 표명한 명제입니다. 저자는 그저 후세 학자들이 스토이시즘을 해석하며 도출한 사항이 아니라 그들의 원전에 이 말이 나옴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어 저자는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 때문에 검거되어 단기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deferred adjudication 처분을 받았다고 털어놓는데, 책에서는 친절하게 역주를 달아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설명해 줍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십여 년 전 텍사스에 체류해서 이 제도에 대해 들은 적 있는데, 이게 미국에서도 텍사스에만 있습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검사 아니라 판사가 내리는 "기소유예" 처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에선 이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미국은 기소독점주의가 아니고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conviction) 여부를 결정하므로 판사가 저렇게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다.

스토이시즘은 로마 제국 최전성기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본, 신선과도 같은 유한 계층에 의해 만들어진 사상이므로 요즘 사람들이 봐도 매우 쿨한 면이 있습니다. 요즘도 스위스에서 합법적 안락사를 요청하기 위해 현지 시설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입니다. "살 만큼만 사는 게지혜로운 선택이다."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사회 문제가 되는 자살은 대부분 취약 계층의 선택이거나 아직 판단 능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의 경우입니다. 이런 자살은 개인에게도 비극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입니다. 저자처럼 충분한 학식, 능력, 경험을 갖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파국을 면하고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적 전거가 매우 많이 쓰였기에, 자살이라는 이슈를 떠나 유능한 인문학자가 어떻게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담론을 펴는지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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