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달러 슈퍼리치 - 환율과 썸 타기
변정규 지음 / 연합인포맥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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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나 채권 시장의 규모보다 훨씬 큰 게 외환 시장의 스케일입니다. 자본의 큰손이라는 게 그만큼 외환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 든다는 건데, 작년 11월부터 해서 한국 원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큰 우려를 낳았고, 이제는 1400원대를 뉴노멀로 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신 정부가 갓 들어서서 여러 정책의 혼선(의도든 아니든)을 빚는 중이므로 더 상황을 주시해 봐야 합니다. 여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미들도 "외환 변동성으로 수익(또는 손해)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환율의 파고를 타고 영리하게 주식, 채권을 갖고 노는 방법을 새로 배울 때라고 하겠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연합뉴스 산하의 경제 전문 케이블채널인데, 다른 채널에는 잘 안 나오는 고위 임원, 권위자들이 가끔 출연하므로 개인적으로 휴일에 고정으로 재방송이라도 챙겨 보는 편입니다. 저자 변정규 전무님은 아주 자주 나오는 패널은 아닌데, 그만큼 드문 기회라서 더 집중해서 시청하곤 했습니다. 지금 이 책은 2년 전, 코로나 위기가 가라앉아 갈 무렵에 처음 출간되었고 이번에 개정된 것입니다. 그때에도, 코로나 때 풀린 돈을 회수하느라 파월 의장이 금리를 급격히 올렸고, 덩달아 원홧값 환율도 올라(달러 가치가 급상승했으니) 위기론이 돌기도 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지금 트럼프가 욕 먹는 만큼이나 엄청난 원성을 들었고 주식 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 과연 환율 공부할 때가 맞기는 합니다.

p109를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외환 시장 규모"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달러나 옌, 유로를 구경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여행을 간다 해도 카드(비자나 마스터 제휴)나 유로패스 같은 걸 미리 준비해 가니 말입니다. 상경계를 졸업하고 은행 같은 데 취업을 해 봐야 아 그런 세상이 있구나 하고 눈치를 좀 채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큰손, 제도권 금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1997년 한국 외환 위기에서 큰 이익을 본 조지 소로스 같은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의 필드가 바로 외환 시장입니다. 메이저 시장은 24시간 돌아가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지인한테 해 주니까 "마치 코인 같네"라고 대번에 반응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사실은 외환 시장이 코인 같은 게 아니라 코인이 (훨씬 먼저 나온) 외환 시장을 따라한 것입니다. 이제 한국도 짧게 나이트 거래 타임이 열렸으니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초판을 읽고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변정규 전무님의 이 책은 일러스트, 도판이 많아서 경제 서적(대중서)이라는 무거운 인상이 거의 없습니다. 마치 중고등학생 독자라도 배려하는 듯 어투도 친절하고 설명이 쉬워서 우리 주린이 경린이 환린이 독자들도 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챕터 말미에 가면 묵직한 이론 정리가 깔끔하게 차트, 표와 함께 등장하여, 실무뿐 아니라 이론적 배경까지 탄탄한 엘리트로서의 저자 면모가 드러납니다. 변정규 전무님은 소속 하우스가 미즈호 은행인데, 미즈호는 (요즘은 히라가나나 아예 로마자로만 표기하는 게 일본에서도 대세이긴 한데) 한자로 瑞穗(서수)라고 씁니다. 훈독하면 저게 일본을 가리키는 미칭이죠. 한국을 청구, 밝달(=배달. '배달의 민족'이라고 할 때 그뜻) 등으로 부르듯 말이죠.

모든 거래는 무엇인가를 주고 받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거래소를 그냥 exchang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외환은 특히 일정 비율에 따라 특정국 간의 통화를 교환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두 통화의 페어(pair)가 맞아야만 하는데, p119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거래가 많은 통화페어는 유로-달러라는 내용도 나옵니다. G2니 뭐니 해도 돈들의 게임, 저기 천룡인들의 세상에서는 아직 저렇게 백인들이 주도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p134를 보면 SWIFT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3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갔을 때 바이든이 러시아를 이 국제결제시스템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때 관측자들은 당장은 러시아가 힘들겠지만 오히려 대체 결제 체제가 생겨 궁극적으로는 달러 패권이 약화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SWIFT에 어떤 위상 약화가 감지되지는 않는데, 작년 10월 카잔의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주머니에서 새 지폐를 꺼내들고 브릭스 통화를 만들자고도 했지만 중국이 위안화를 지키는 이상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겉으로 보이는 만큼 그렇게 친하지 않으며 오히려 앙숙에 가깝습니다.

모든 금융거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헷징하는 의도에서 비롯하고, 새로운 상품이 설계, 고안되는 것입니다. p236 이하에는 스왑이 설명되는데, 한국인들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통화스왑이라는 조치로 여러 번 고비를 넘겼기에 이 용어가 익숙합니다. 통화스왑은 이 책에 나오듯이 자산스왑, 부채스왑 등의 유형이 있습니다. 회계 원리에 익숙하다면, 자산스왑이라는 게 있다면 부채스왑 포맷도 얼마든지 있겠음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겨 보면, 해외 자산에 투자할 때는 거의 언제나 환 헷징이 필요한데, 이걸 바이앤셀이라고도 한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전 처음에 저게 왜 저런 이름인지 몰랐는데, 책을 읽고 보니 너무 쉽게 이해되어서 약간 허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요즘은 동네 아줌마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아파트 주식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롬 파월이 어떻고 재닛 옐런이 어떻고 글로벌하게 대화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호키시 도비시 같은 영어가 뭐 일상언어처럼 되어 버렸는데, 대화의 맥락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대충 무슨 뜻인지야 알지만 그래도 체계 속에서 정확히 이해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p402 같은 곳을 보면 연준 매파와 비둘기파의 스탠스 차이가 표로 정리되었는데, 뭔가 비주얼적으로도 깔끔해서 한눈에 바로 이해가 됩니다. p359를 보면 세상에 홍콩 같은 나라(라기보다 경제구역)가 어떻게 고정환율제를 운용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나오는데 그간 아리송하던 게 단박에 해결되었습니다.

환린이들에게 너무도 쉽고 친절힌 기본서이지만 의외로 깊이 있는 설명도 많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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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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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헤밍웨이, - 글쓰기의 발견>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도 같은 소설가, 언론인, 평론가 래리 필립스가 편집했는데, 글의 취사 선택과 배열에 있어 어떤 일관된 시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우리에게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작가인데, 젊어서부터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을 살았으나 배우자 젤다, 그리고 자신의 무절제함 때문에 말년에 큰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재능만큼은 진짜였는데, 이 책에 실린 그의 솔직한 고백들을 보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를 바까지는 없는, 한 인간이었음도 확인하게 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60에는 원래 1936년(그가 죽기 4년 전) 에스콰이어 誌에 기고한 글 일부가 인용됩니다. 스스로에게 "설교"한다는 표현을 쓰며 원칙과 초심을 잊지 말 것을 다독이는 느낌인데, 사후에 출판된 <The crack-up>에서 이 부분 원문을 독자인 제가 잠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et me preach again for a moment: I mean that what you have felt and thought will by itself invent a new style, so that when people talk about style they are always a little astonished at the newness of it, -because they think that it is only style that they are talking about, when what they are talking about is the attempt to express a new idea with such force that it will have the originality of the thought. (It is an awfully lonesome business, and, as you know, I never wanted you to go into it, but if you are going into it at all, I want you to go into it knowing the sort of things that took me years to learn.)

newness, originality 등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래리 W 필립스가 인용하지 않은 뒷부분도 제가 괄호 안에 옮겨 보았는데, 이로써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책 p48 상단을 보면 스콧 피츠제럴드가 맥스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 일부가 인용되었는데, 이 맥스 퍼킨스라는 편집인은 (피츠제럴드가 지금 거론하는) 토머스 울프(Wolfe)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특히 저 토머스 울프는 이 편집자가 완성해 낸 천재라고 해도 되겠는데, 편집자가 작가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시켜 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연을 다룬 영화가 콜린 퍼스(M 퍼킨스 역), 주드 로(울프 역) 주연의 2016년작 <지니어스>입니다.

아무튼 그는 토머스 울프가 (자신과 같은) 천재임을 인정하며, 이런 천재가 천재로 태어난 재능, 모습 그대로 성장해야지 세상과 독자의 기호에 맞추느라 무슨 서커스 차력사 같은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제발 울프를 그 생긴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좀 놔두라고!라며 퍼킨스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 절규가, 꼭 울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을 염두에 두고서도 하는 말 같이 들렸습니다. "그러니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무슨 좀머 씨(Herr Sommer)도 아니고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페이지 하단의 글에서는 피츠제럴드 자신이 헤밍웨이에게 준 영향에 대해 본인이 직접 평가하는(가정법을 쓰긴 했으나) 대목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는 피츠제럴드가 가장 나이가 많고, 헤밍웨이, 울프 순서입니다. 울프를 빼고 도스패서스를 넣으면 Lost Generation 대표 리스트 완성입니다.

애초에 글을 쓸 때 그 구조부터가 잘 이뤄져야지, 누덕누덕 기워 만든 글은 본인이 나중에 읽어도 잘 읽히지 않더라고 털어놓는 대목도 p36에 나옵니다. 스스로도 자기 글이 잘 안 읽힌다면 남이 읽을 때야 대체 어떻겠습니까? 물론 이것도 에스콰이어 誌를 읽을 만큼 어느 정도 문해력을 갖추고 독서 감각이 있는 독자를 전제로 하는 말이지, 초등 국어 교과서 말고 읽을 수 있는 글이 하나도 없는 사실상의 문맹자라면 무슨 불평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저는 어느 커뮤에서 초6용 고난도 수학 문제를 보고 "이런 걸 애들더러 풀라니 미친 나라 아니냐!"고 포효(?)하는 분을 봤는데, 나라에 이런 아저씨들만 잔뜩 있으면 반도체 회로나 자동차 엔진은 누가 설계하겠습니까? 부존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은 뭘 먹고 살겠고 말입니다.

p25를 보면 피츠제럴드가 과연 그답게, 헤밍웨이 스타일(당대 독자들이 더 좋아했던)을 자신에게 은근 강요하는 퍼킨스더러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는 헤밍웨이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다"고 강력 항의합니다. 헤밍웨이는 문장이 단조롭고 간명했는데, 그건 헤밍웨이가 대단한 공력을 갖추고 시적(詩的) 심상을 문장에 담을 줄을 알았기에, 그 사람이니까 그래도 되었던 것이지, 무슨 초딩 문장의 합리화 같은 게 아닙니다. 피츠제럴드는 "이건 생존 본능의 문제"라고까지 말하는데, 쉽게 말해 "당신 자꾸 이러면 작가로서 나는 죽으라는 소리"라는 뜻이죠.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 <낙원의 이편 This side of paradise>로 데뷔했는데 p136 이하에 보면 그 숱한 거절을 당하면서도 기어이 출판을 이뤄내던 때의 기쁨, 다른 일화 등이 나옵니다. 이런 걸 보면, 고뇌와 불안 끝에 예술적 희열을 맛본 14세기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다를 바 없는 삶입니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려면 무릇 이 정도가 되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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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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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4년 동안 프린스턴에서 사랑받아 온 바움가트너 교수(p81). 키는 185cm 정도이며(p72), 그에게는 이제 곁에 아내가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분명 있는데, 다만 그 연장(延長)이 이제 없을 뿐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75에 나오는 연장이라는 말은, 최고의 번역가 정영목 선생이 역주에서 설명하는 대로 데카르트가 썼던 용어입니다. l'extension이 불어 원어인데 영어로도 그냥 extension이라 씁니다. 대륙 합리주의의 완성자답게 그는 본질이 따로 있고, 그 본질이 차지하는 물리적 실체는 그저 "연장"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바움가트너 교수님이 사랑하던 부인 애나는 사망했지만, 이는 단지 육신, 연장이 소멸했을 뿐 그녀는 여전히 교수님의 마음과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그 본질이 이렇게 뚜렷이 그의 곁에 있는데 고쟉 그 "연장"이 땅에 묻혔다 한들 어찌 감히 누굴 죽었다고 평가하겠습니까.

p35에는 환지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도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환상통, 유령 감각 같은 말이 더 익숙할 텐데, 영어 원어로는 phantom pain이라고 하며, 손가락이나 팔, 다리 등이 (사고 등으로) 잘려나갔는데도 여전히 그 부분에 아픔을 느끼는 현상을 뜻합니다. 물론 고통이란 실제로도 팔다리가 느끼는 게 아니라 뇌가 그리 느끼는 것이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limb에 대해 아픔이 느껴진다는 게 어쨌든신기한 일입니다. 내 팔다리란 그만큼 나한테 소중했기에 없어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기이하게도 이게 저 데카르트적 의미에서 "연장"과도 통합니다.

바움가트너 교수에게 아내의 부재는, 잘려나간 손가락이 두뇌에 보내는 환지통과도 같으며, 교수에게는 여전히 아내가 곁에 있는 셈이기에 이걸 환상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역시 똑똑하신 지성인이라서 배우자의 사별로 인한 아픔도 대단히 형이상학적으로 체험하고 또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고 수준의 은유적 적합성(p68)입니다. 농담이고, 소설 전반을 꿰뚫는 슬픔과 허무함은 어지간히 무딘 독자의 마음에도 환지통을 전염, 전파하기에 충분할 만큼 절절합니다. 폴 오스터 특유의 문체의 힘이며 공교롭게도 이 소설이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페이소스의 농도가 짙습니다.

시모어 티쿰셰 바움가트너. Baumgartner라는 독일계 이름을 쓰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이었으며 부친 야코프(제이컵)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고작 여섯 살이었다고 p153에 나옵니다. 아버지는 그리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바움가트너 교수 역시 밀턴 프라이버그 등 진보 성향 일색인 교우관계에 싸였던 인생이었습니다. 미국에도 진보주의자들은 특히 교육 받은 이들 중에 많았으며 1939년의 독소 불가침 조약은 그들에게 어지간히 충격을 주었나 봅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은 그들의 삶에 직접 피해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기준으로도 170cm의 키는, 더군다나 1940년대라면 여성에게 작은 키가 아닙니다. 196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도 당시에 장신이라고 했는데 저 정도입니다. 애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잘했고 힘도 세었던 편이지만 2차 성징이 나타나고 호르몬이 제대로 작용한 후 비교도 안 될 만큼 근육량이 늘고 강해진 남자 아이들과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습니다. p46을 보면 "주제를 모르고 감히" 남자들과 육체적으로 경쟁하려 나선 애나가 잔인하게 조롱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영목 선생이 역주에서 설명하는 대로 bite the dust는 쓰디쓴 좌절을 가리키는 관용 표현입니다. 그룹 퀸의 노래 제목도 있었죠.

하지만 프라이버그가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에 들어가 파시스트 돼지들을 박살내려 들고 악마와 손을 잡은 스탈린을 바로 손절쳤듯이, 이들(애나의 첫사랑인 프랭키 보일도 포함)은 대체 마르크스적인 기계의 법칙과 그리 잘 맞는 심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육신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의를 위해 희생하려 들기도 했죠. 그들은 본래 사람 됨됨이들이 그랬던 것입니다.

가스 검침원 에드에게 "그냥 사이라고 부르세요."라고 할 때(p15) 바움가트너 교수는 참 소탈해 보입니다. 시모어가 어떻게 Sy(사이)로 줄여지는지 이상할 수 있으나 Seymour Tecumseh Baumgartner라는 원 철자를 보면 납득이 될 것입니다. 가스 검침원은 우스꽝스럽게 긴 그리스식 성씨를 부끄러워하고 교수는 시모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만(이 이름은 양성적입니다), 사실 독자인 제게는 티쿰셰가 더 눈에 띄었습니다. 인디언 추장의 저 이름을 이상하게도 미국 백인들은 좋아합니다(제각각의 이유에서). 교수는 가스 검침원이 자기 이름을 잘못 읽었을 때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다지만, 사실 Baumgartner는 작중에서 에드의 발음처럼 읽힐 가능성이 미국에서는 훨씬 크죠. 뭘 그 연세에 새삼스럽게요. p190에는 오스터(!)라는 이름이 스타니슬라프 유대인에게는 흔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소중합니까. 연장입니까, 아니면 그 이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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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람의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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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 diplomat". 이 책 저자 매슈 워커 교수의 별명입니다. 현존하는 최고 권위의 신경과학자이자 방송 셀럽이며, 독자인 저도 미 공영라디오 NPR에 이분이 출연하여 쉽고 명쾌한 표현으로 "잠"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는 걸 듣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현대인은 많은 경우,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고생하곤 합니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 중 뭔가 숙면에 방해를 주는 치명적인 루틴이라도 있는 걸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잠의 본질이 무엇이며, 평소에 어떻게 습관을 바꿔야 양질의 수면을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을지를 매우 실용적으로 독자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문충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독자인 저는 18년 전에 앤드루 파커 박사가 쓴 <눈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개별 생명체들(우리를 포함)이 그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세상을 인식하지만, 실제로 자외선, 적외선, 20000Hz 이상의 주파수 음향 모두가 어우러진 세계는 또 어떤 모습일지 모릅니다. p96에서 저자는 진화 과정에서 어떤 목적, 즉 시지각(視知覺. visual perception)을 위해 눈이 생긴 것처럼, 렘 수면 역시 개체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사적으로 만들어내었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눈만큼이나 잠이 중요하다고 발언하는 것입니다.

뇌는 정보를, 단기 저장 장소에서 장기 창고로 옮깁니다. 이렇게 해야지 라고 의식하지 않아도 뇌가 자동으로 그런 작업을 행하는 건 정말 놀라우며, 더 놀라운 건 그처럼이나 놀라운 기능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뇌로 그런 점을 모르고 여태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장기 기억, 단기 기억이라는 걸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의식해 본 적 있나요? 학교나 인터넷에서, 혹은 독서를 통해 배우기 전에 말입니다. p186에서 저자는 자신의 실험에서, 운동 기억은 (사실과는 달리) 의식 아래로부터, 작동하는 뇌 회로 전체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 피아니스트의 경우, 처음 연습할 때 아무리 반복해도 안 되던 것을, 하룻밤 푹 자고 나니 거짓말처럼 다음날 완벽하게 되었던 경험을 저자에게 이야기합니다. 성공적인 수면은 수백 회의 연습을 능가하는 효과를 내었다는 거죠.

p266을 보면 natural killer cell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가 들려 줍니다. 이 NK 세포에 대해서는, 요즘 한국인들도 워낙 건강에 관심이 많고 건기식을 자주 섭취하며, 심지어 TV 광고에서도 일상용어처럼 나올 정도이니 그 이름만은 익숙할 것입니다. 요약하면, 잠을 잘 때 이 NK세포, 천연 항암제가 생성되는데, 청년들의 경우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수면을 줄이면 NK 세포가 70%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잠 잘 자는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도 줄어든다는 뜻이 되죠. 

월남전 이래 미국 의학계는 이른바 PTSD에 대해 많은 연구를 이뤄 왔습니다. 꼭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니라도, 극한 환경에서 비일상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질환으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p304 이하에서 저자는 렘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을 때(저자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씁니다) 이 PTSD마저도 환자들 사이에서 뚜렷한 극복 조짐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환자들이 벅찬 어조로 "선생님! 나아진 것 같아요!"를 말했을 때 의사로서 학자로서 그가 느끼는 긍지와 성취감도 책에 잘 드러납니다. 이 분야 또다른 권위자 머리 래스킨드를 만났을 때의 일화도 책에 유머러스하게 서술됩니다.

의예과 대학생이 아니라도 somnambulism이라는 단어를 구경은 해 봤을 것입니다. "잠"이라는 어근 somn-와, "걸어다니다"는 뜻의 ambul-이 결합한, 어원 중심 영단어 공부의 아주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입니다. p338에 잘 나오듯 몽유병(夢遊病. 수면보행증)은 아직 그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질환 중 하나입니다. 이 페이지에서 설명되는 대로 해당 질환은 비(非)렘수면의 가장 깊은 단계, 그리고 꿈꾸지 않는 렘 수면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비렘수면이 지하실, 각성(覺醒. awakening)이 펜트하우스라면(저자의 비유입니다), 갑자기 신경이 전기 충격으로 깨어나면서 뇌가 지하와 펜트하우스 사이에 갇혀버린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잠은 기본적으로 뇌의 기능이며, 이 뇌의 건강한 풀가동에 렘수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 세계 최고 두뇌의 권위자가 베푸는 설명과 비유의 향연으로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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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만나다 - 구토 나는 세상, 혐오의 시대
백숭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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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사르트르는 "작가는 무엇인가의 도구가 되는 걸 거부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수여된 노벨 문학상을 사양하기도 한, 자기 시대의 양심이자 가장 명석한 두뇌였습니다. 파리 고등사범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세기 페미니즘의 대모라고 할 시몬 드 보부아르 여사와 계약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에게는 자유롭기를 그만둘 자유가 없다."가 그것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freedom fighter라는 직분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동료 인류를 위해 미래의 후손을 위해 개체의 이익을 포기하고 그런 고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의미 추구를 중단하고 말초적 쾌략만을 추구하며 극단적 감정만을 표현하는 반지성주의의 시대에 우리는 재기 넘치던 천재의 화려한 문장과 심오한 사색을 톺아보며 무엇이 참된 삶이고 가치일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투(被投)적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본디 마르틴 하이데거가 Geworfenheit라는 개념으로 코인한 것인데, 독일어 동사 werfen(던지다)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형은 warf, 과거분사형은 geworfen인데 이 과거분사형에서 저 단어(명사형)가 나왔습니다. 하이데거는 히틀러와 나이가 같고,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는 그보다 16살 어렸습니다.

프랑스어로는 저 피투성(被投性)을 etre jete라고 하는데, 청년 P가 사르트르 살롱에서 어느 교양 있는 신사에게 처음 듣는 철학용어(p34)입니다. 발레 용어 그랑주떼라고 할 때 그 jete와도 같은 단어입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이렇게 던져져서 이처럼이나 고생을 하며 살지만, 그 와중에도 생존만을 위해 존엄을 포기하지는 않기에, 우리 인간은 (파스칼의 말처럼) 전 우주보다도 큰,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썼고,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라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우리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궁극의 질문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입니다. 이보다 더 고차원적인 질문은 필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상정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le vertige, "현기증"이라고 하면, 사르트르에게는 이것이 "존재의 불안"에 붙인 보조관념이었습니다.

이 책 p93에서 수수께끼의 신사는 현기증이라는 게, 어려서부터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시(斜視)로 고생한 사르트르의 일생을 따라다닌 장애로서 자연스럽게 생각난 비유일 것이라는 취지로 청년에게 이야기합니다. p100에, 유명한, 토끼인지 오리인지 모를 착시 그림이 인용되는데 이게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심지어 사르트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되었다고 하죠.

p128에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이 인용되는데, 신사는 이 말을, 실의에 가득찬 청년 P에게 격려의 취지로 들려 주는 듯합니다. 이걸 책에서 그대로 필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homme n'est point la somme de ce qu'il a, mais la totalité de ce qu'il n'a pas encore, de ce qu'il pourrait (avoir).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봐도, 그 해석만 놓고 봐도 멋진 말입니다. p131에는 <슬픔이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어린 나이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한 짧은 소개가 있는데, 사르트르와도 만난 적이 있다고 나오네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그 당/부당에 무관하게 유명하죠.

p156에 보면 사르트르는 존재에 아무 이유가 없고 그저 모든 게 우연이라고 선언했는데 실존주의라는 철학의 출발점과도 같습니다. 존재 이유(raison d'etre)라는 걸 존재를 걸고 집요하게 따지던 이전의 철학자들과 달리 사르트르는 감각적이면서도 현란한 문체로 그 부조리를 냉소했습니다. 실존(l'existence)이란, 이면의 본질(l'essence)이 규명되기 전의 현상(le phenomene)을 가리킨다고, 신사는 p158에서 청년 P에게 아주 깔끔하고 쉽게 가르쳐 줍니다. 용도가 평생 고정된 채 존재해야 하는 의자와 달리, 사람은 자유롭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의지로 살아갈 수 있으며, 위의 명언도 이런 그의 철학적 스탠스를 알고 읽으면 그 의미가 완전히 새롭습니다.

자유, 엘란 비탈로 가득한 인생은 결코 구토에 시달리지 않으며, 평행우주에서 앙투안 로캉탱과 Ogier P(혹은 도서관의 독학자. l'Autodidacte a la bibliotheque)는 다시 개운한 마음으로 재회하여 유쾌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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