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 자녀 잃은 부모의 희망 안내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오혜련 옮김 / 샘솟는기쁨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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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아픔을 두고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참척(慘慽)이라 일컫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죽음학의 효시,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명저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이분은 21년 전에 타계하셨고 이 책도 1985년에 나왔던, 이 분야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원제는 On Children and Death이며, 우아하고 명징한 문장과, 주제인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기에 40년 동안 꾸준히 읽힙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당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답게 퀴블러로스 여사는 다양한 사례를 손수 다루며 사례귀납적으로도 엄청난 환자들을 접촉하여 업적을 쌓았고, 기술적으로뿐 아니라 인격적인 도움까지 제공한 분입니다. p63을 보면 자녀를 잃어도 아주 끔찍한 과정을 통해 잃은 부모의 사례가 나옵니다. 폭력이라든가,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의 만행에 의해서라든가... 출산의 노고와 정성어린 양육으로 자녀를 그 단계까지 올려 두었건만 그런 부당한, 급작스러운 상실의 과정을 통해 자녀와 이별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체험이겠습니까. 저자는 당대 최고의 카운슬러이기도 했던 만큼, 남겨진 부모가 그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게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까지 이끌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래서 퀴블러로스 여사는 유능한 학자를 넘어 인생의 스승으로까지 기려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단지 고치일 뿐이고, 죽음은 마치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우리 안에 있는 불멸의 부분이 육체를 벗어나는 과정일 뿐입니다(p71)." 인간이 종교라는 걸 만들어낸 이유는, 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결국은 상실하고 한줌의 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감언이설로 속여 사기를 치고,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자신의 물욕과 음욕을 합리화하는 미친 노파조차 칠십 이상의 생을 누리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젊은이가 먼저 세상을 떠야 하겠습니까? 죽음이라는 형벌이 그를 받아 마땅한 자들에게만 내려진다면 아마 죽음은 예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삶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에, 우리는 인격적 성숙함과, 피안에 대한 깊은 성찰로 눈을 뜨게 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참 생명의 시작입니다.

자녀가 죽는 경우 그 원인이 명확하게라도 밝혀지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때부터 새로운 지옥이 시작됩니다. p146을 보면 퀴블러로스 여사가 접한 많은 "사고"의 경우 실제로는 (그 자녀의) 자살로 판명된 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 입장에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법당국의 무성의함, 불공정성 등이 끼어들어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도 합니다. 사고라면 과실이 있는 자를 밝혀 그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며, 만에 하나 타살의 혐의라도 있다면 진범을 밝혀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심지어 어린이의 자살 케이스까지 다뤄지는데 이 역시 남겨진 부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요 악몽이 아니겠습니까.

p169 이하에도 참 좋은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대목에서 여사는 "죽음의 상징 언어"를 독자에게 가르치는데 임상의학, 정신분석학을 떠나 인문학적으로도 참고할 대목이 많습니다. 북미 대륙에 살던 원 종족 중에는 Sioux(수우) 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는데, 책의 이 대목에는 그들 고유의 오랜 기도문이 소개됩니다. 이 기도문을 보면 인간의 강한 열망, 담담한 체념, 망자를 향한 간곡한 애도 등이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필멸을 초극하려는 공통의 희구를 엿볼 수 있고 오랜 지혜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들에게 섬유낭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을 때(p226)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장 사랑하던 아들 크리스천이 죽었을 때 아버지는 그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고, 퀴블러로스 여사와 장기간 서한을 주고받으며 깊은 상처를 달래야 했습니다(p233).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이 또하나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어린 자녀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놓고 사례자와 퀴블러로스 여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치유와 안식의 지점입니다. p271 이하에서 저자가 전개하는 호스피스론은 오늘날까지도 이 분야 관계자들에게 하나의 교본으로 꼽히는데, 페이지마다 저자의 깊은 깨달음과 잔잔한 관조가 전해지는 명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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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 권으로 끝내는 JLPT 기출단어장 N5·N4·N3 - 원어민 MP3 음원 + 나만의 JLPT 단어 시험지 + 보충 단어 + 관용 표현 + 필수 기초 문법 진짜 한 권으로 끝내는 JLPT
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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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어학공인시험 JLPT 급수를 따기 위해, 먼저 가장 부담 없는 N5부터 시도해 보는 게 보통입니다. 외국어 공부의 출발점은 어휘이며, 이 교재에는 N5~N3까지의 기출 어휘가 실렸습니다. 보다 어려운 급수인 N2, N1은 이 책과 따로 만들어진 단어장이 있으니 그 책을 공부하는 게 좋겠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단어장이라고는 하지만 기초 문법이 함께 실렸는데, 공부해도 공부해도 뭔가 자꾸 햇갈리는 초심자들을 위해 아주 좋은 편집 같았습니다. 한 달은 급수별로 한 달이며, 이 책은 N5, N4, N3의 세 급수에다가 각각 4주 공부 분량을 담았습니다. 1주는 6일치 공부 분량이며 마지막 1일은 연습 문제를 통해 얼마나 실력이 잘 다져졌는지 체크합니다. 하루에 20개만 외우면 되므로 부담도 별로 크지 않습니다.

일별 단어 뭉치도 주제별로 묶어 놓았으므로 효율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N5의 첫째주 DAY 6는 주제가 "공부"에 관한 것인데, p29 이하에 예쁘게, 보기 좋게 단어들이 배열되고 예문도 함께 제시됩니다. 사전은 じしょ인데 한자로는 辭書일 수도 있고 字書일 수도 있습니다. 典은 발음이 다르므로(てん) 해당사항 없습니다. 교재에는 この ことばを 知らなかつたから、 じしょ 使いました。라는 예문이 나오는데 그 뜻은 "이 말의 뜻을 몰라서 사전을 사용했습니다"입니다. 이 문장을 일본어 원어민 목소리로 듣고 싶다면 시원 일본어 사이트에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N5 4주째 DAY 1에는 교통에 관한 어휘들이 정리됩니다. 비행기는 중국어로 飛機라 하는데 페이지처럼발음합니다. 보통 機라고 간판에 쓰였으면 비행기이거나 아니면 핸드폰(手機)입니다. 그런데 일본어로는 이 비행기를 뭐라고 할까요? ひこうき입니다. 한국어 飛行機하고 한자가 같습니다. 다리는 はし라고 하는데 한자로 橋라 쓰며, 인명에 자주 나오므로 한국인들도 잘 아는 어휘입니다. 안전(安全)은 일본어로 あんぜん이라 읽고, 이는 우리말과 별 차이도 없습니다. 재미있는 예문이 있는데, ひこうきは 車より 安全でつ。입니다. 그 뜻은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안전합니다."입니다.

N4 DAY 5를 보면 안전에 대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安心, 案內 등 우리가 잘 아는 단어들도 나옵니다. 注意, 委險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리다"는 일본어로 傳える인데, 傳이란 글자가 한국과는 다릅니다. 일본어는 한자뿐 아니라 영어에서 그대로 유래한 것도 많은데, テキスト는 교과서라는 뜻입니다. "복습(하다)"는 ふくしゅう(する)입니다. 이 역시 復習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뿐입니다. "분발하다"는 일어로 がんばる인데, 頑張이라는 한자를 일어식으로 읽은 것이며 우리말에는 이런 게 없습니다. "간바레"가 여기서 왔습니다.

N3은 주제어 분류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난이도도 올라가고 숫자도 적어지므로 이런 것들까지를 일일이 주제별로 묶기는 어려웠겠습니다. 예문도 사라지고 단어/읽는법/의미만 딱 깔끔하게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p320을 보면 平日이 나오는데 へいじつ라고 읽고, 그 뜻은 "평일"인데 우리말로도 한자를 저렇게 씁니다. 만약 한자 실력이 탄탄하다면 웬만한 일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커버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關心은 かんしん이라 읽고 그 뜻은 "관심"인데, 이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말에는 없는 용법도 있는데 若い는 わかい라 읽고 그 뜻은 "젊다, 미숙하다"입니다. 若을 이렇게 새기는 건 아마 若冠에서밖에 없을 것입니다.

편집도 깔끔하고 분량도 큰 부담 없어 초보자도 잘 활용할 수 있는 교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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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 권으로 끝내는 JLPT 기출단어장 N2·N1 - 원어민 MP3 음원 + 나만의 JLPT 단어 시험지 + 필수 관용 표현 진짜 한 권으로 끝내는 JLPT
나루미.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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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N5~N3용 기출단어장과는 달리 이 책은 하루 30개씩 외워야 표준 계획대로 한 권 분량이 끝납니다. 또 N5~N3용 기출단어장은 핵심 문법이 함께 실렸지만, 이 책에는 필수 관용 표현이 부록으로 첨부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급자라고 하더라도 앞단계의 교재 N5~N3용 기출단어장을 먼저 공부한 후 이 책을 보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앞 교재와 마찬가지로, 급수별로 4주 분량입니다. N2, N1용이므로 모두 8주, 2개월 완독이라고 보면 됩니다. 필수 관용 표현도 N2용, N1용으로 따로 나옵니다. p4~p5를 보면 1회독, 2회독, 3회독시 각각 어떻게 진행할지, 표준적인 스케줄이 제시되었습니다.

p14를 보면 輕快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뜻은 우리말로도 그저 "경쾌"이며 일어나 우리말이나 뜻은 같습니다. 이러니 한자를 많이 알면, N2라 해도 단어 상당수가 거저 정복되며, 다만 이것들을 일본식으로는 어떻게 읽는지, 훈독인지 음독인지는 따로 공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輕快는 일어로 けんかい로 읽고, 이미 많은 일어단어를 학습해 온 이들이라면 대략은 감이 올 만한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繼續은 일본식으로 けいぞく라 읽는데, 續이 이때 탁음이므로 "조쿠"라 읽는 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p54를 보면 福利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復利하고는 구별해야 합니다. 후자는 "후쿠리"라 읽는데 발음상으로는 (우리말도 그렇지만) 전혀 전자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何氣ない라고 하면, なにげない라고 읽으며 그 뜻은 "무심하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나옵니다. p42를 보면 絞る라는 단어가 있는데, 읽는 법은 しぼる이며, 그 뜻이 재미있게도 "쥐어짜다, (관점 등을) 좁히다"라고 나옵니다. 이 단어 옆에는 원문자로 숫자가 표기되었는데 출제 연도라고 보면 됩니다. 한자만 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단어도 있는데, 吐う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희망대로 되다, 꿈이 이뤄지다"라고 합니다. かなう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濁る라는 단어가 p110에 나옵니다. 그 뜻은 탁하게 되다, 흐려지다이며, 이 단어는 ⑮㉒ 두 숫자가 옆에 붙었고, 출제 연도를 가리킵니다. 目新しい라는 단어도 나오는데, 읽는 법은 めあたらしい이며, 새롭다, 신기하다라는 뜻 풀이가 따라나옵니다. 역시 한자로만 보면 그 뜻이 어렴풋이 추측이나 될 뿐,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어를 그 맥락 속에서 따로 공부해야 알 수 있겠죠.

p152를 보면 透かさず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透라는 글자는 す라고 읽는데, 우리말로 저 한자는 발음이 "투"이니,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곧, 즉각, 빈틈없이라는 뜻인데 역시 한자만 봐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終般은 우리말로 "종반'이라 읽고, 일어로는 しゅうばん이라 읽는다고 합니다. 대개 우리말로 종이라 읽히는 글자는 일본식으로 쇼 아니면 이렇게 슈 소리가 납니다. 裁く는 さばく라 읽는데 이는 훈독이며, 다만 뜻은 중재하다, 재판하다라서 글자만 보고도 짐작이 되긴 합니다.

心構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옆에 ⑭가 찍힌 걸로 보아 아마 2014년 JLPT에 출제되었나 봅니다. 읽는 법은 こころがまえ이며, 마음의 준비, 마음가짐이라고 합니다. 한자만 봐도 마음 심(心), 얽을 구(構, 구조, 구성 같은 말에 들어가는)이므로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되는 단어이겠네요. 堪能이라는 단어도 바로 옆에 나오는데, 이게 우리말로는 감능이라 읽지만 무슨 뜻인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어사전에 혹시나해서 찾아보니, 일어단어와는 좀 의미 차이가 있어도 항목에 있기는 있어서 더 놀랐습니다. 아무튼 일어로는 たんのう(탄노오)라는데, 우리말 발음과는 상당히 동떨어졌죠. 堪도 우리식 한자에 "뛰어나다"는 뜻이 있기는 하나 발음은 확실히 "감'입니다.

깔끔한 편집, JLPT 합격에 정말 필요한 단어만 나와서 대만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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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특강 -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글쓰기 팁부터 베테랑 작가들의 글쓰기 습관까지
유수진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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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특히 사람들과 소통하는 글쓰기가 중요해진 듯합니다. 저자 유수진 에디터님은 문창과를 졸업하고 마케터로 일하시는 분인데, 브런치스토리 계정 개설 후 상위 0.5% 작가로 올라선 분이라고 이 책에나옵니다. 솔직하게 쓰기, 처음과 끝을 연결하기, 첫문단에 힘주기 등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포인트인데, 그 외에도 어떤 글 잘쓰기 비결이 있을지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글을 쓰실 때에도 저자는 독자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그 글의 성과를 정리한다고 나옵니다(p54).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애써 만든 광고를 그냥 넘기지 않게 하려는 마케터의 노력과 같다"고 말씀하시네요. 사실 우리가 소비자의 입장에 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라고 하면 일단 그냥 패스하기 바쁘고, 솔직히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찬찬히 음미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얼마전 전기차 에너지의 효율에 대한 인포그래픽을 접했는데, 다른 이들의 리액션을 보고서야 아 이 그림이 그런 뜻이구나 하고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마케터가 무슨 예술가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메시지를 암호화하면 대체 누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상업화 시대 글쓰기는 일단 남들과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책 뒤표지에도 나온 말인데 잘된 글쓰기, 독자에게 인상을 깊이 남기는 글쓰기는 수미쌍관이 이뤄진 형식(p86)이 그 중 하나라고 합니다. 바로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이상형 글쓰기를 예로 들며, 비유가 적절하게 구사된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저 처음과 끝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마치 잘 짜여진 영화처럼 독자에게 임팩트를 준다는 건데, 저는 결론 자체보다 이런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글을 매번 분석한다는 저자의 말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목으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숫자를 사용하라고 합니다(p121). 그냥 오랫동안이라고 하지 말고 60년 동안, 겨울 내내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합니다. 또 말장난을 즐겨쓰라고 하는데 저자 자신의 히트작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같은 제목이 성공하는 예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 제목을 보니 그저 말장난이 아니라, 생각을 숙성시켜 불특정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책쓰기의 본질이니 핵심을 기막하게 담았다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깨에 힘 빼고 가볍게 말장난하듯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는 게 저자의 제안입니다.

요즘 최강야구로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도가 확 높아진 김성근 감독 이야기가 p151에 나옵니다. "돈을 받는 건 프로답게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실 프로야구 선수로서는 더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백인천이고 이 말도 백인천씨가 더 실감나게 표현했는데 나이들고 예능에서 더 성공한 사람이 이분이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설득력이 더 크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아무튼 이 저자는 사회 초년생 시절 사진을 찍어 윗선에 올려야 하는데 나중에 보니 전부 수평이 맞지 않아 크게 절망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책을 읽을 만한 같은 나이 또래 젊은 여성들이, 이럴 때 저자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엿보고 벤치마킹하는 게 자기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네이버프리미엄컨텐츠를 운영하며 그 세부 데이터를 일일이 분석하고 자신의 컨텐츠를 분석한다고 합니다(p176). 이렇게 현재의 자신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이 잘된 비결이었으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독자가 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나하고 잘 맞는 방향성이 무엇인지부터 잘 정해 보라는 게 저자의 제안입니다. p181을 보면 뾰족한 페르소나 설정이라는 제안이 있는데 마치 몇 년 전 어떤 드라마에서 김혜수 배우가 유행시킨 "엣지 있게(발음은 엉터리지만)"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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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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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지런히 가꾸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내면을 들여다 보며 무엇이 참된 나였는지 알아내는 노력도 물론 큰 의미가 있고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런 노력에만 몰두하다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 버린다면 이 역시도 문제입니다. 모색과 탐구는 적정 선까지만 하고,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자연의 신비는 실로 놀랍습니다. 흰개미는 목재를 먹고 살기 때문에 인간 거주의 안전에 아주 큰 해를 끼치는 곤충입니다. 그런데 흰개미의 생체만 놓고 보면 셀룰로스 분해 효소가 없어, 목재를 먹어 봐야 소화를 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기능은 흰개미의 위장에 기생하는 아메바가 대신하며, 만약 흰개미 주변에 열을 가하면 아메바는 모두 죽지만 흰개미는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목재로부터 셀룰로스를 섭취, 동화할 수 없으므로 목재만 먹고 살던 종은 결국 모두 죽게 되죠. 여기서 저자는 질문을 제기합니다(p59). 흰개미와 아메바는 같은 생명체라고 봐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나, 저자는 일단 "공동 운명체" 정도로 선을 긋는데,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람과 세균 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여튼, 저자가 이 예에서 끌어내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만의 독립된 자아라는 게 알고보면 얼마자 허망한 개념인가? 우리는 우리와 일견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에서도 서로 밀접히 의존한다. 뿐만 아니라 저 사람이 표명하는 의견과 감정, 저 사람이 끼친 사소한 영향이 돌고돌아 큰 파장을 만들어 내게로 돌아올 수 있다. 과연 저 사람과 내가 완전히 구별되는 인격체이며, 아무 관계 없는 남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일본 의사분인데, 전근대 시절부터 공동체의식을 강조해 온 우리 동아시아인들의 정서를 많이 반영했기에, 이 주장 역시 우리들의 어떤 근원적인 공감대를 자극하는 면이 있습니다. 저 타인과 나를 선 하나로 구별하는 자체가, 세상과 우주의 작동 원리를 이해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함의입니다.

"이상적인 자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미국 페리 제독이 군함을 끌고 와 대포를 쏘며 경제 개방을 요구했을 때, 서양 문명의 발달된 현황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와 타인이 명확히 구별 안 되는 농업공동체의 삶은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의학, 물리학, 화학, 각종 공학 등을 공부하고 다시 태어난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불교에서는 같은 영혼이 몇 번이고 다른 삶에서 다시 태어난다고들 상상하는데 이 역시도 개인의 삶 그 독립선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비이성적 미신으로 격하되기도 했죠.

그러나 저자는 의사로서 임사(臨死) 체험이라는 것도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혼이 일단 육체로부터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잠시의 시간 동안 나를 벗어나 관찰한 나의 모습은 매우 낯설고, 그토록 애써서 집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도 느껴졌다고도 증언됩니다. 물론 당사자들의 이런 발언들은 그 디테일을 하나하나 신뢰할 건 아닙니다. 사람의 의식이나 기억은 사후(事後)에 편할 대로 조작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임사체험을 책이나 미디어에서 이미 접하고서, 자신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없다고는 못 합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죽음 앞에서 "나는 완전히 독립된 영혼이며 타인들과 분리된 개체이다."라고 과감히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변해야 할 상황인데 말입니다.

저자는 p128에서 현재의 일본 정치계를 맹렬히 비판합니다. 당대의 근시안적인 이익을 위해 함부로 국민의 세금을 쓰며 이 중에는 좁고 복잡한 일본의 국토와 자연에 민감한 영향을 항구적으로 남길 위험한 사업도 많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별개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 대상일 뿐이라는 못난 생각도, 내가 사회와 세계로부터 고립된 개체라는 아집이 그 근원입니다. 좀 더 멀고 깊게 세상을 볼 필요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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