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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 사상 최악의 불황을 극복하는 12가지 경제 이론
린다 유 지음, 안세민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이름 난 경제학자들 중에는 시스템의 본질과 인간 본성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존 메어나드 케인즈는 알프레드 마셜의 수학자 입문 권유에 대해 "수학 같은 걸 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말을 했는데, 수학처럼 천재의 영역인 학문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외에 다른 분야의 재능까지 두루 타고난 이에게 경제학 같은 보다 복합적인 전공이 더 어울린다는 뜻이겠습니다. 경제의 필드는 다양한 인간들이 복합적인 욕망을 안고 참여하는 장이므로, 일차원 아닌 다차원 변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이라야 정확히 이해가 가능할 것 같고, 그런 이유에서, 지난 시대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처방 중 오늘날에도 적용될 만한 게 없겠는지 살피는 노력이 매우 유익, 유용할 듯합니다. 조순 전 서울시장은 "경제학은 아이디어는 돌고 도는 것"이라며 자신의 저서 <경제학 원론>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책 처음에는 애덤 스미스가 나옵니다. 故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라든가 유시민 같은 사람은 애덤 스미스 같은 독특한 지성을 배출한 스코틀랜드의 풍토에 대해 지적한 적 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정부에 의해 어떤 재조정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는 이론을 정초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보이지 않는 손")이며, 수백 년 후 이에 수정을 가한 사람이 케인스입니다. 책에서는 두 입장을 교차시켜 가며 이 오래된 입장들의 대결을 설명합니다. 케인스 이야기는 뒤의 6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그저 지난 시대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요약,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오늘의 이슈"와 관련하여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느냐를 또 집중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를 독자들은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으며, 사실 애쓰지 않아도 저자가 노련하게 두 논점을 잘 교차시켜가며 결론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그의 책 중에서 "아이디어는 탁월하나 읽기에 너무도 까다로운, 대책 없는 서투른 문장을 구사한" 리카도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했었습니다. 이 책 저자는 문장력에 대한 언급은 길게 하지 않고, 대신 그의 놀라운 투자 수완(당대에 그를 거부로 만든)에 대해 칭찬합니다(유시민 책에도 이 말은 있습니다). 천재답게 그는 당시 영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으며, 그 해답은 바로 과감한 자유무역이었고, 이는 동시대인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자유무역이라 해서 만능의 해답은 아니지만, 분명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답이 됩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노 대통령이 미국과 FTA를 추진하려 들 때, 노동계 등에서 격렬한 반대를 했으며, 많은 이들은 미국에 크게 종속되는 패자의 게임이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14년 정도가 지난 지금, 오히려 미 대통령 트럼프가 "끔찍한 협상"이라 비판하며 재개정 내지 폐기를 주장할 만큼 우리에게 유리한 거래가 되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미국에서 최근 리쇼어링 붐이 일어나는 것도, 자유무역의 폐해 그 일단을 드러내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저자는 폴 새무얼슨의 말을 인용하여, 리카도의 자유무역 이론이 "틀림없이 타당하지만,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이들에게도 쉬이 납득이 되지는 않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듯, 제조업 분야에서는 선진국이 손해를 대체로 보며, 이를 서비스업의 우위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메꾼다고 합니다. 아마도 FTA 협상 당시, 미국이 실수를 하여 우리 국민이 미국 서비스(3차 산업) 분야를 잘 소비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당시 법률 서비스 수입 쪽에 역점을 두었는데, 현재까지도 "미국 변호사"를 매매, 등기, 교통사고, 채권 회수 등 사건에 우리가 고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기업이 국제 소송에서 저들을 많이 활용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3장은 칼 마르크스 이야기인데, 저자는 이것 관련하여 "중국이 과연 성장을 계속하여 강대국이 될 수 있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끌어내려 합니다. 삼십 년 전만 해도 국내의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은, 덩샤오핑의 노선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할 만큼, 중국의 노선은 사실 마르크스의 입장과는 궤가 아주 다른데도 말입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실제 중국은 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트리에르까지 가서 마르크스 관련 사업을 후원하고 현재 자신들이 그의 입장을 계승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첫째 노동력의 이동("요소 재배치")이 중국에서는 대단히 제한적이며, 두번째 중국의 공업 시설은 다른 개도국의 그것과는 달리 "재공업화의 과정"을 거쳤으므로 순수하게 맨땅에 헤딩 식은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 앞 단계에서 마오 주도의 거대한 실패까지 다 감안하면 보다 비용이 큰, 비효율적인 성장이었다는 소립니다.
알프리드 마셜은 (부분적으로) 케인스의 스승이었고 따뜻한 마음을 강조한 학풍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중 어느 요소가 가격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난제를, "가위의 두 날"이라 정리하여 명쾌하고 지혜롭게 해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의 문제"가 다시 대두하였고 이 덕분에 버니 샌더스나 코빈 같은 이가 미국, 영국의 정계에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이 불평등 이슈를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셜에게서 단서를 잡은 저자의 태도가 독특하죠.
부자는 소비 성향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적으므로, 가난한 사람한테 가는 몫을 더 늘여야 그들이 돈을 더 많이 써서 경제 전체가 살아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고, 이런 입장의 먼 단초가 마셜이었습니다. 마셜은 그 외에도 조세 제도, 복지 시스템의 정비를 주장했죠. 그러나 우리 시대의 원로 폴 크루그먼은 이에 반대했고, 오히려 부자가 돈을 더 많이 써 경제 회복에 기여한다고 말합니다. 젊은 토마 피케티도 이제는 중요 사상가로 대우되며 불평등의 근원적 독소에 대해 지적합니다(라고 이 책에서 인용됩니다). 부자의 소비 성향이 설령 생각보다는 크더라도, 그들이 새로 소비하는 분야가 비 전통적인 섹터이며, 이런 섹터에서의 생산자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경기 회복의 정도가 더딘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섹터로 빨리 진출, 적응하게 경제 활동 인구의 참여를 돕는(재교육 지원 등) 게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어빙 피셔가 (다른 책들에서보다는)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은 같으나 케인즈가 워낙 그 천재성을 매력으로 앞세워 인기를 끌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고 책은 말합니다(p183 마지막줄 역자 설명에 "평창→팽창" 오타 있습니다). 책은 그의 입장을 버냉키라든가, 하이먼 민스키의 최근 해석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특히 미국인들)이 08년 위기를 아직 완전히 극복 못했거나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므로 디플레이션, 리세션에 대한 핸들링은 매우 중요합니다. "재평가가 필요한 최고의 경제학자" 이것이 책의 평가입니다.
08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12년도에는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까지 몰리며 또다시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공공투자와 저금리의 효과적인 활용"이 등장하며, 전자는 케인스의 재정정책, 후자는 피구 등의 금융통화정책을 대변합니다.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강조하는 것처럼, 케인스는 "저축과 투자는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서투른 기제를 정부가 적극 개입해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피구 등은 "그래봐야 소용없다!"(구축 효과 등 때문에)에 가깝습니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는 노동의 착취를 통해서만 창출이 가능하다"고 했으며, 이에 대해 슘페터는 사실상 완벽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아니다. 혁신을 통해 자본가 역시 잉여가치를 만든다." 만약 누가 애플의 아이폰을 사면서 "스티브 잡스의 혁신이라는 명분"을 찬양한다면, 그 사람은 어디 가서 마르크스를 원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겁니다(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죠). 슘페터는 분명 자본주의가 자기 완결적이 아니며 대단한 취약한 시스템이나, 자본가(뭐 당연 노동자도 가능합니다)의 혁신이 언제나 그런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본질은 혁신이지 계급 대립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저자는 중국 경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데,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라고 반드시 자체 모순을 해결하고 타국 경제에 도움을 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저가의 가격 경쟁력에 만족하고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핵심을 찌른 지적 아니겠습니까.
하이에크는 우리 시대의 경영 구루였던 피터 드러커의 스승이며, 그렇게도 비판 받는 신자유주의의 원류로 꼽히지만 정작 진보 진영에서 이 사람을 그리 막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좌파를 자칭하면서도 하이에크 이야기가 나오면 "위대한 사상가"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 걸 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이에크는 <노예에의 길>을 써서 큰 반향을 얻었고, 헤르만 파이너는 이에 대해 <반동(reaction)에의 길>을 저술하여 반박했죠.
조앤 로빈슨은 우리 나라에서 한때 추종자가 많았으며, 이 책에서는 독립된 항목으로 다뤄지고 케인즈의 "제자"로도 성격 규정됩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사람"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녀의 영원한 토픽은 바로 "오르지 않는 임금"이죠. 앞에서는 밀턴 프리드먼이 나오는데 저자는 "하이에크가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 의의를 높이 둡니다.
더글러스 노스는 경제 성장에 있어 중요한 건 "제도"임을 강조하고 이 때문에 왜 어떤 나라는 번영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지, 즉 "실패한 국가"가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경로의존성에 의한 이런 설명은 "중국은 아프리카에 비해 성공한 국가이며 큰 위기도 없고 빈곤을 거의 근절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만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습니다.
"잃어버린 30년" 때문에라도 오늘날 일본을 성공 사례로 꼽는 입장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저성장은 과연 그럼 우리 모두의 미래인가? 한국에 대해서도 그런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최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로버트 솔로의 모델을 소개하며, 그 요체는 "역동적인 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