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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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른 건 몰라도, 어려운 주제를 어린이용 모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가독성 최고로 표현하는 재주만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당할 작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전편을 통해 "감정이 농도 짙게 흐르는 기억은 유독 강하게 뇌 속에 남는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 책에 나온 뇌신경학 여러 원리와 "당신이 몰랐던 진짜 역사"의 편린들은 아마 독자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책 2권 p242에는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법칙(?)은 작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지 않겠나 싶어요.

p26에 "그렇게 우리는, 아니 자네들은.."이란 말은, 역사에서 언제나 "them and us"로 나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영원한 간극을 실감케 합니다. 이 신작 <기억>의 주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왜곡된 진실을 언제나 회의해 보고 비판할 줄 알자는 쪽이니 말입니다. 이 대목에 나오는 로베르 조르주 니벨 장군은 2차 대전의 매국노(1차 대전 구국의 영웅) 페탱과 동갑이죠.

주인공 르네는 역사 교사이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오팔의 도움을 얻어 전생(前生)의 자신(들)인 (여러) 영혼과 교감합니다. 처음에 아직 재주가 서투를 때는 먼발치에서 영화처럼 구경만 하다, 슬슬 스킬이 늘수록 대화도 나누고 "그보다 더한 것"도 시도합니다. 전생 중 하나인 메노는 갤리선의 노잡이 노예인데, 적절한 시점에 르네가 개입하여 "내면의 소리(웹툰 마음의 소리가 생각나네요)"를 들려 주어 그(라기보다 자기 자신)가 바른 선택을 하게 돕습니다.

이 1권에서는 자주 로마인들의 의도적 역사 왜곡 중 하나로 "카르타고 인들은 식인 습관을 지닌 야만인"이라고 한 행적을 거론합니다. 이는 전근대 사회,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그릇된 타자의식을 주입하여 "누구누구는 너의 적"임을 세뇌하는 관행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이겠습니다.

책에는 없지만 신대륙 선주민에 대한 잘못된 지식 중 하나가, 미개인은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것은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계시"라며 폭주한다는 것이죠.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현재는 이런 인식이 백인층의 왜곡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작가 베르베르는 이런 잘못된 선입견을 재치있게 비틀어 이 소설의 제재로 활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도 어느날 문득 좋은 생각(영감)이 떠오르면 전생, 혹은 후생의 "나의 영혼"이 잠시 찾아와 조언을 베푼다고 여겨야겠습니다. ㅋ

베르베르 특유의 여전한 유머도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이를테면 p126에서 "자신은 언제나 조정이 싫고 요트가 좋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제2권 p74에서는 다시 "요트의 진화를 보면 메노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도 합니다.

베르베르의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통찰도 여전히 빛납니다. p126에는 고통의 중단이 곧 쾌감이라고 하며, p128에는 행복한 삶은 주관적이라는 타당한 진리를 되뇝니다. p134에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제2권 p77에서 이 대목이 오팔의 말 "게브가 가르쳐 준 대로..."에서 반복되기도 하죠.

저 뒤 p186에는 하고자 하는 확신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다시 나오는데, 2권의 p293, p303에는 "정신의 자유로운 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또 하나의 전생에서 사무라이였던 르네는 "적아 칼을 뽑고 내가 그걸 대비하는 사이에 무한대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깨우치는데 많이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건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죠.

p137에서는 "지진? 가끔씩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삶이 지루하지"라는 게브의 말이 나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합니다. p141의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이라든가, p146의 "살아있는 한 삶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불행은 잔파도에 불과하다"는 말 등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돕습니다. 저 뒤 p346에는 스트레스가 잦으면 해마에 구멍이 나고 이것이 기억력 감퇴를 유발한다는 신경학 지식이 나오죠. 그러나 강한 사람이라면, 저 게브의 말처럼 "삶에 있어 일종의 자극" 정도로 잘 소화할 수도 있습니다.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 p289에서 르네를 조사하던 형사는 그의 범죄 혐의보다 초연한 태도를 두고 더 큰 증오심을 표현합니다. 소인배가 더 우월한 존재를 질시하는 이런 모습은 제2권에서 원시 인류가 아틀란티스 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p150, 또 제2권 p100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이 나오는데 십여 년 전 미국 영화 <나비 효과> 역시 (일기장의 도움과) 정신 집중을 통해 위험한 순간마다 붕 자신의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였죠. 어쩌면 베르베르도 그 영화를 통해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맞을 듯) p152에는 "법률상 아버지의 30퍼센트 이상이 사실은 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의 혼외 관계는 상상을 초월하게 문란하죠. 영화 <셸부르의 우산>도 사실은 이런 모티브를 조금은...  p175에는 아버지가 요양 중인 시설 이름이 "파피용"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게 "나비"라는 뜻이며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시설에서 르네의 아버지는 "사람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p177)를 보이는데  르네는 이걸 두고 "혹시 아버지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많은 환자들은 "아프니까 저런 행동을 하지" 싶은 동정의 시선을 받지만, 사실은 그 중 상당수가 의도된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르네의 부친 그 동기는 2권에 가서야 제대로 드러나고요. p181에 "간유 한 잔"에서 와 정말 비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부친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사회 해체를 주장하는 히피의 삶에 크게 공명했다는 말이 있는데 p278, p166, p178 등에 나옵니다.

p183에서 다윈의 말이라며 "그들이 이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건 사실 다윈이 생전에 가장 경계했던 태도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에 대해 다윈 본인은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죠.

르네의 여친 엘로디는 과학 교사인데 p211에서 "그래서 나는 남자들에게 너는 여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만다"고 하는데 신중하긴 하지만 뭔가 피해의식이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p332에서는 다시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2권 p84에도 다시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1권에는 남녀 관계에 대해 작가 베르베르의 유익한 통찰이 나오는데, p212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의 유형에 대한 언급, p215에는 "성적인 접촉이 배제된 그저 편안한 융화"가 최종지점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p274에는 유명한 에릭 번의  교류 분석 이론이 나오며, 르네를 향해 너의 행태는 "퇴행 분석이 아니라 그냥 퇴행"이라고 꼬집는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p392에서 "슈멩 데 담의 전투 교훈" 같은 건 절대 그렇지 않고 유익하죠.

한편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는 게브와 르네의 소통이겠는데, p136에 벌써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의 전후생"이 언급됩니다. 2권 p97에는 오팔의 말로 "어쩌면 당신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은"이 나오고요. 아마 1권 p136에 저 말이 나왔을 때 많은 독자들은 예사로 여기고 넘어갔을 겁니다.

p220에서 구두장이 신발이 가장 더럽다는 말은 우리네 속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와 비슷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초연하고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게브 들의 독특한 삶의 특성 중에는 "(p244)우리에게는 잉여가 발생하지 않아" 같은 게 있어 마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기도 했네요. p305에는 뇌 활용 방법이 언급되는데 아마 재발견만 된다면(!) 자계서 주제로 짱일 것 같습니다. 여튼 그들의 삶은 매우 평온하고도 이상적이며 p305의 폭력에 대한 경멸이라든가 p243의 육식에 대한 혐오, p247의 "무려 80억이 사는 공동체라면 애 다루듯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겠군!" 같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권 p238에는 이것 관련 "우리 조상들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나옵니다.

p358에는 게브와 그의 배우자가 서로 싸우는데 경지에 이른 현자답지는 않은 행동입니다(ㅋ) p359에서 "우리는 대체로 건강함"을 자랑하나, 소설 2권에서 p111 배 위의 다툼이라든가, 2권 p114에서 드디어 병에 걸린다든가 하는 장면은 그들 존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p383에서 다시 나오듯 사실 그들의 기술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p258의 "집단의 기억"이란 키워드는 사실 이 작품 전체의 주제어에 가깝습니다. 2권 p347에도 "인류는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이란 말을 통해 그 과제의 절박성을 다시 일깨웁니다.

p291에는 감옥과 호스피스의 공통점에 대해 뼈아픈 한 마디가 있는데 마치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스페인에서 벌어진 노인 유기 사태가 생각나더군요. p313에 그 유명한 "메스머라이즈"라는 단어의 어원이 나옵니다.

p319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명언이 나옵니다. 맥락상, 마치 예전 6. 25때 대중 사이에서 유행한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다"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이것 관련 2권의 p116에 "시련은 끊이지 않는다..."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문장입니다.

p322에서 "어떤 거짓말쟁이들은 탐지기도 속을 만큼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한편으로 신념의 중요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팩트를 무시한 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비판도 되는 문장입니다.

p337에 "아틀란티스는 그리스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기록의 맹점 내지는 "승자의 기록이 낳는 왜곡"의 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상상대로 아틀란티스가 설령 있었다 한들 그 endonym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우리가 아는 페르시아나 그 수도 페르세폴리스 역시 페르시아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이듯 말입니다.

p354 이하에는 마치 닥터 멩겔레 같은 괴물 의사 쇼브가 나와 "기생 감정"의 불필요성과 해악이라든가 "잡초 제거(p330)" 같은 요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 중 일부는 매우 타당성이 크기도 하죠. 안타깝게도요.

p370에서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크메르에서 자신의 또다른 전생(상좌부 불교 승려)을 만난 르네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결국 광신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391에는 드디어 수시로 영혼 둘이 합쳐지며 더 큰 힘을 발휘하는데 르네-이폴리트가 아예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 비슷한 예는, 2권 p91의 르네 -게브, p306의 르네-야마모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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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2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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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부터 르네의 모험은 스케일이 훨씬 커지고, 전생들과의 치열한 소통이 이어질 뿐 아니라 그가 현생에서 맞닥뜨린 다른 골칫거리들과의 투쟁도 가속화합니다.

사실 역사선생 르네는 별 힘도 없고 유약한 개인일 뿐이기 때문에 그 혼자 힘만으로는 우리 독자가 뭘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p10에서는 "모두가 나의 전생"이라며 역사교사의 각성과 다짐이 두드러지며,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한 열망도 다시 강조됩니다. 저 뒤 p90에서 "이폴리트의 용기와 피룬의 침착성"이 함께 강조되는 미덕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p107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성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억>이라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저 뒤에 나오는 "과연 우연일까?(p232)"라든가 "우리 모두는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다(p348)"도 마찬가지입니다.

p140에는 오팔 역시 "현생의" 나쁜 기억 때문에 고통 받았다는 고백이 나오는데 1권에서 여친 엘로디가 사이비 같은 전문가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 삼촌을 감옥에 넣게 된 아픈 기억과 비슷합니다. p154에는 전생에 마녀사냥으로 희생자가 된 이들의 아픈 기억이 이어지는데 이와 반대로 p301에서는 "(가해자로서) 더 이상의 업(業)을 짓고 싶지 않다"는 르네의 충고가 나옵니다. 르네는, 평소에도 동양 사상에 깊이 천착한 작가 베르베르의 페르소나인 셈이네요.

p155에서 베르베르는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저술가 쥘 미슐레를 또다시 까는데 이미 1권 후반부에서도 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나왔더랬습니다.

p119, p162에는 두 번, 르네의 이름을 딴 "네에의 방주"가 나오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노아의 방주"일 것입니다.


p164에서 비로소 "자네 키가 그렇게 작았나? "라며 게브가 놀라움을 표시하는데 우리 독자들도 2권 이 대목에서 그들이 거인족인 줄 처음 알게 됩니다. 1권에서는 p358에 게브 부부가 "서른 몇 살 짜리 아기"라며 르네를 부르는 대목이 있었죠. 근데 이건 그들의 장수성만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은 1권에서 우리 인간들보다 열 배의 수명을 사는 걸로 나옵니다. p169에서 멤피스가 "두번째 심장(그들 언어로)"이란 어원이 등장하네요.

p191 이하에서 "전에는 몰랐던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는 게브들의 안타까운 투쟁에 대한 동정어린 언급이 있습니다. 한편 그들에게 선 문명의 존재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오팔의 말이 나오는데, 작가 베르베르가 십수 년 전 미국 영화 <프리퀀시>에서 아마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p213에 나오듯 "세상은 돌고도는 법"이며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p242에는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란 말이 나오는데 작가 베르베르 자신에게도 해당되겠네요. "진실의 영역보다 믿음의 영역을 더 중시하는" 인간 종족의 불쌍한 한계도 다시 비판됩니다. p248에는 뉴스에 부정적인 평가가 다시 나오며, p219에는 "뉴스를 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병원을 보고 파리 전체를 이해하려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p270에는 "살의가 한순간에 경외심으로 바뀌는 인간의 한심함"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러디야드 키플링의 고전 <왕이 되고자 한 사내> 중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p317에는 "우리를 섬기는 데서 희망을 찾는 소인족"을 보고 연민을 표현하는 게브 족의 말이 있는데, 글쎄요... 소설 후반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종교에 대한 비판입니다.

p299, p334에는 각각 "선택을 피하는 손쉬운 삶"과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회한이 언급되며, 우리 동양인들의 심성을 날카롭게 꿰뚫어봤다고 생각되네요.

앞서 언급했듯 르네 개인은 별반 힘이 없는 개인일 뿐입니다. p327, p355에는 "두 존재를 뛰어넘는 에너지"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하는데, p389에 나오듯 "아직 113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뿐입니다. 인간 존재의 존엄은 자유의지에 있으며, 순간의 선택과 자존의 추구를 통해 우리는 미미한 개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뿐입니다. 약간 슬프면서도 묵직한 메시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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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 아들과 엄마의 17년 성장기
마쓰나가 다다시 지음, 황미숙 옮김, 한상민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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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속으로 낳은 아이가 혹 어디가 아프다면, 어머니 입장으로서는 그보다 더 큰 시련과 죄책감이 또 없을 터입니다. 그래서 아픈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모두 영웅이시며, 그런 시련을 용케 피해간 다른 이들에게 과연 생의 목적과 존엄이 어디에 있을지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하게 돕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생각 자체를 극복해야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고요.

"웃기도 하고 눈도 그럭저럭 마주칩니다!" 의사에게 반론을 가하는 엄마는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특별학교 교원)도 갖춘 분입니다. 그러나 비록 보통의 유형과 다를망정 의사는 그녀의 아이가 자폐증임은 확실하다며 가슴 아픈 진단을 내립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엄마는 그러나 의기를 잃지 않고, 우리 소중한 아들에게 어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할지를 고민, 연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영웅은, 부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현실에 대해 결코 도피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특히 요즘 자주 강조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 아이는 단지 특별할 뿐이다." 그래서 지적 장애가 있는 분들이 참여하는 올림픽을 (패러림픽과 달리) 스페셜 올림픽이라고도 부르죠. 어떻습니까? 우리는 일상과 깊은 심리 속에, "특별하다"는 어의 중 과연 그런 뜻을 담고 생활합니까? 생각해 보면 정상인이라 자칭하는 우리 모두의 "정상성"은, 고작 유전자 배열의 우연적 장난 그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인간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의 재능을 두고는 "우연의 산물"이라 폄하하며, 반대로 이처럼 우리한테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이웃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을 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폄하 자체가 없어져야 하겠으나, 구태여 그런 부당한 폄하가 간신히 올바른 대상을 찾는다면 바로 저런 비뚤어진 심뽀의 소유자들이 그 목표 지점이겠습니다.

"우리 훈이가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무래도 이런 자녀분을 둔 어머니들이 맨먼저 믿고 의지할 곳은 그런 특수 교육기관입니다. 무사시노히가시교육센터는 훈이가 그나마 주변에 조금 관심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했습니다(p87). 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세상이라는 게, 이 못된 세상이라는 게 특별한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배려, 아니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습니다. p107에는 천주교회의 어느 신도가 훈이에 대해 가정 교육을 똑바로 하라며 어머니에게 면박을 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교인이라면서 이런 한심한 처신을 하는 인간이 어느 나라에나 있기 마련이며, 동시에 일본식 친절과 예의라는 게 사실 그 한계가 뻔한 위선이기 쉽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했습니다. (좀 비약인가요?)

훈이는 자폐증세도 있지만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도 있는데 알레르기라는 게 결코 우습게 볼 질병이 아니죠. 여튼 이런 이중의 어려움 때문에 엄마는 훈이를 맡기고 교육할 만한 시설과 학교를 찾기가 더욱 힘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는 훈이보다 훨씬 몸이 아픈 아이들도 보게 되는데, 그를 통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고도 특별한 상황이 있음을 확인하셨나 봅니다. 우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될 텐데, 이 책에 나오는 가슴 아픈 사연은 그저 다른 세상 일일 뿐이더군요.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같은 의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질 필요가 있어요, 분명.

도호대학의료센터에서 엄마는 좀 다른 진단 결과를 듣게 됩니다. "훈이의 행동은 자폐의 집착이 아니라 강박성 장애인 것 같습니다(p147)." 그런데 세상 누구보다 훈이를 잘 이해하는 엄마였기에, 의사의 이런 진단은 금방 납득이 갔죠. 리스페달, 데프로멜 등을 처방 받았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훈이의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TV에서 인지행동요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고, 도쿄 대학 병원의 최고 권위자를 만나고서야 약물 치료가 아닌 대면 요법으로 효과를 봅니다. K 의사를 특별히 잘 따르는 훈이를 보고 엄마는 조금이나마 안도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은, 아픈 아이들이 서로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마는 게 아니라, 정말 각각의 방법으로 힘든 투쟁을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증상 하나를 치료하고 호전시키면, 그대로 낫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증상 하나가 새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과잉교정의 일환이라고도 보이는데, 훈이가 자신이 새로 들인 습관을 엄마에게도 막 적용하려고 든 겁니다. 사실 어린 아기를 키울 때 말을 잘 안들어서 얼마나 엄마들이 고생을 합니까. 그 어린 심성이 몸이 커서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든 없든 그 아이를 키우며 엄마는 부모가 된다."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요즘 광고를 보며 "나를 엄마가 되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장면을 봤는데,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명언이 아닙니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자체가 여간한 시련이 아닌데, 그걸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엄마들이란 영웅을 넘어 성인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치료에 대한 정보 공유가 좀 체계화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아이를 그나마 좀 낫게 할 수 있는지 일일이 엄마가 발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게 더 막막해 보이더군요. 사회가 이런 특별한 아이들의 길 하나를 온전히 마련 못 한다면, 그 성원 모두가 사실 죄를 저지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의 존엄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의 평안과 권익도 결국 어느 순간에서는 침해되게 마련입니다. 무관심도 때로는 죄악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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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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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 예전에는 TV 오락 프로그램이 그리 재미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보면서 그 유치함에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반면 요즘은, 오히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예능 감각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포인트가 간혹 발견될 정도입니다. 최소한, 시간이 남아돌아가는 인생이 지루함 때문에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TV나 미디어가 삶의 핵심에 자리하여 대중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건 20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이때 등장한 학자들도 있는데 지금 이 책의 저자 닐 포스트먼, 그리고 캐나다 출신 마셜 맥루언 같은 인물이 그들입니다. 전자는 지금 이 책, 이름난 고전에서 보듯 신랄히 그 부작용을 비판하는 경향이며, 후자는 반대로 미디어 자체의 의의와 막강한 영향력을 일단 긍정하고 분석한 인물이죠.

"죽도록 즐기기." 다른 말로 하면 "당신, 즐기기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우선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그에 걸맞게 "문자와 배움"을 활용하였는지 그 독특한 개성에 대해 분석합니다. 지배 엘리트의 개성과 독특한 정신 구조는 판결문 등 법률 문헌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 현학성이라든가 복잡한 표현 방식은 현재 TV를 통해 길들여진 우리 현대인들의 즉물적 감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정치인들도 지금처럼 TV에 나와 감성적인 언사 몇 마디로 대중을 현혹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냉정한 논리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식이었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이를 이해 못 했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쓴다"느니, "잘난척한다"느니 하는 폄하를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내공 깊은 독서 과정을 거친 이가 으레 도달할 만한 성취이겠거니 하며 합리적인 이해, 승복을 했기 때문이죠. 반면 현대인들에게 링컨 같은 이가 차분한 논리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 든다면 빈축의 휘파람을 날리기나 했을 겁니다. 이 시대는 위대한 정신을 이해 못 하는 중증의 병에 걸린 것이며, 그 주범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싸구려 감성을 퍼뜨리는 TV임에 다름 아니죠.

뉴스는 일찌감치 쇼로 전락하였으며, 광고에서 사용하는 충동적이고 말초적인 소통 방식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여 올바른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대중은 그저 선동의 대상이며, 사회는 오웰(<1984>)식 세계를 넘어 이미 헉슬리식 세계(<멋진 신세계>)로 접어들었다는 게 저자의 개탄(p214)입니다. 싸구려 선동과 감성팔이에 길들여진 우중(愚衆)에게는, 차라리 독재자의 출현이라는 번거로운 중간과정도 필요 없이, 기계화하고 획일적인 사회로의 타락이라는 처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독서와 사색이 이 미친 엔터테인먼트의 지배를 즉각 대체하지 않는 한, 우리 자손들은 아마 현재보다 훨씬 암울한 생을 미래에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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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의 도크 다이어리 14 - 별로 친하지 않은 끈질긴 절친 이야기 도크 다이어리 14
레이첼 르네 러셀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주니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도크 다이어리 시리즈 열네번째 권입니다. 주인공은 니키 맥스웰인데 아직 나이어린 여고생이며 더 어린, 더 철부지스런 여동생(p11에 "그 정신나간 미치광이"라고 언급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도크"는 일종의 별명이며, 매킨지 홀리스터라는 그녀의 숙적이 (1권에서) 붙이더군요. p126에 이 매킨지 양이 (14권 중에서는) 처음 등장하며 막강한 재력가인 아빠를 배경삼아 니키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p136에는 "악마와의 거래"라는 말이 니키 입에서 나오며, 물론 악마는 매킨지를 가리킵니다. 그 거래의 구체적인 내용은 p254 이하에서 자세해집니다만 거래가 어찌될지는 이 14권의 또다른 볼거리입니다. 


p13에 플랜 B, 플랜 C가 연달아 실패하여 좌절하는 니키가 불쌍한 모습입니다. 여고생이면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여튼 꼼꼼하게 예비 계획을 마련하는 게 대견하네요. 사실 세상사가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요. 인생이 본래 그렇다고 옆에서 격려라도 해 주고 싶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꼼꼼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 양반(트레버 체이스 씨) 정도라면 워낙 바빠서 한 번 통화에 실패하면 저렇게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어느 자계서 리뷰에도 썼지만 사람은 사회 생활 기본이 전화 칼 같이 받는 겁니다. 혹 안 되면 확인 즉시 바로 콜백. ㅎㅎ


일이 다 꼬여서 독립기념일 휴일에 니키네는 웰링턴 호수(p40)로 휴가를 떠납니다. 아빠도 이 14권에서 큰 분량은 없지만 코믹한 소동 때문에 인상은 강하게 남고요. 엄마는 언제나처럼 무심하고 그렇습니다. 호숫가에서 멀지도 않은 지점에서 그리 큰 소동을 겪는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ㅎㅎ 뒤 p101 이하에서는 니키의 남친 브랜든까지 불러 음식을 해 먹이는데 그리 성공적이지도 않으면서 전부 자기가 다 했다고 생색은 오지게 냅니다. 과연 엄마가 해 주는 미트로프가 맛있었을까요? 브랜든은 워낙 착해서 맛있게 먹었을 것 같습니다.


맥스웰이라는 성씨는 이 14권에서는 p58에 처음 나옵니다. 독립기념일에 맥스웰 가족이 겪은 봉변은 사실 7월 4일 하루에 몇 시간 잠깐 겪은 사건이지만 이 일기책에서는 3일에 걸쳐 서술됩니다. 물론 거기 콜로라도의 호수가 아주 큰 곳도 아니고 3일 간 표류할 수도 없으며 그 정도 긴 사건이었으면 인명 피해(....)가 컸겠지요? p65엔 손뼉을 치다 언니를 떨어뜨리는 브리아나의 철없음이 코믹합니다. 발로 바퀴 같은 노를 저어 운전하는 배는 독립 초기 미국에서 패들러 휠이라고 해서 영화 같은 데서 종종 보는 풍경 중 하나죠. 얼마나 낡았으면 바퀴에 걸린 걸 빼는 도중 바닥이 뽀개질 정도니...


p72에 다시 트레버 체이스씨를 만나는 대목에서 세상 참 좁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장르에서 이 정도 기막힌 우연의 일치야 일도 아니라서 예상이 좀 되긴 했지만 너무했다 싶었습니다. 


이 14권은 가상의 보이그룹 "배드 보이즈"의 라이브 행사에서 무려 니키의 친구들이 (아직 밴드 이름도 결정 안 된 판에) 오프닝 공연을 벌이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배드 보이즈는 전세계가 알아주는 아이돌인데 그 선망하던 연예인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게 어디인데 아예 공연까지 한 무대에서 한다는 게... 이런 판타지는 사실 이 또래 여학생들이 마음 속에 언제나 품곤 하죠. 현실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근데 꿈이 결국 이뤄지는지는 모르지만 방해꾼은 도중에 어지간히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체이스 씨가 소개하는(p147) 빅토리아 스틸은 니키들이 익히 아는 순악질 여성, "드래곤 레이디"입니다. 전직 올림픽 피겨 스케이터 금메달리스트라는 게 실제 인물 토냐 하딩을 잠시 떠올리게도 하네요. 이 빅토리아 스틸이, 니키에게는 천하의 앙숙인 매킨지 양과 다시 콜라보(?)를 이루니 원수는 과연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나 봅니다.


p153에는 "천박, 무례, 이기적이고 버르장머리없"다며 온갖 악평이 쏟아집니다. 하긴 이런 인간은 어느 커뮤니티에나 꼭 있게 마련입니다. 역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건다거나 말이죠. 그나마 매킨지는 아빠가 부자이고 친구라도 많지만, 가망 없는 루저(p122)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튼 p177에서 맥킨지는 다시 등장하며, 니키는 생각지도 못하게 스틸 아줌마와 한패가 됩니다. 저 앞 p137에서는 "가뜩이나 No라고 말한 (체이스 씨)..." 이라고 하는데 이때만 해도 니키는 자기가 매킨지한테 선심이나 쓸 수 있는 처지라고 착각했던 거죠. 그런데 스틸 아줌마는 체이스 씨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매킨지와 손을 잡았으니... 


이 14권은 배드 보이즈를 향한 열렬 팬심이 묻어나는 일종의 헌정 일기입니다. 그래서 곳곳에 배드 보이즈를 소재로 한 심리 테스트가 나오는데, p116 립글로즈, p106 파티 드레스, p96 데이트, p94 favorite, p163 생파 아이템 등이 소재로 나옵니다. 저자가 아마 이 나이 또래 딸을 두고 있기에 가상으로 이렇게 절절한 팬심이 묻어나는 아티클을 양념으로 쓸 수 있었겠습니다. 


p91에는 "끈끈한 우정"에 대해 길게 말이 이어지고, p104에는 장난스럽게 "진흙"이 등장하여 심상이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p82에도 "실은 아직 결정 못했어요"가 니키네 밴드 이름으로 나오고, 책 저 앞에도 "밴드 이름을 결정 못했다는 고민"이 몇 차례 언급됩니다. 반대로 매킨지는 "맥스 매니악(p120)"이란 이름을 자기 밴드에 일찌감치 결정했었죠. 


p31에는 배드 보이즈 맴버 중 하나로 빅터 첸이 나옵니다. 그림만 봐서는 백인으로 보이는데 사실 첸(陳)은 미국에서 중국계의 흔한 성씨이죠. 중국 표준어로는 "천"애 가까운 발음이지만 미국인들은 "첸"으로 발음합니다. 한참 뒤 p191에 그의 문제 많은 인터뷰가 나오며, 이 때문에 p195이하에선 서로 싸우기까지 합니다. p225에 보면 그가 "가장 키가 크고 건장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모르긴 해도 동아시아계는 아닌 듯하네요.


p183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어쩌구는 미국인들이 흔히 하는 농담투인데, 재미있어서 잠시 인용해 보면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는 게 좋은 소식"이며(?), 나쁜 소식은 "그게 착각이었다(즉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 농담이 너무 재밌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그건 뭐 니키 입장에서는 저 웬수덩어리 매킨지에 관한 사연이구요. p286에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나쁜 소식, 좋은 소식'이 나옵니다. 


"(모든) 십대들의 꿈(p200)"이라는 배드 보이즈에게 "너희 셋은 모두 재능이 엄청나구나!"라는 칭찬(p207)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p208에는 배드 보이즈가 니키 밴드 이름을 아예 "소녀들이 세상을 지배하다"로 지으라고까지 하네요(공룡도 아니고). p221에는 FFF 코드라는 게 나오는데 이게 뜻이 frenzied fan fainted라고 합니다. 이런 건 정말로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현장 용어로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게 실감이 났습니다. 


저 나이 또래 틴에이저들에게는 벌점이 중요하겠죠. p140에는 블레인 씨가 "10점이면 퇴출"이라 규칙을 정하는데 한참 뒤 p260에는 그 드래곤레이디와 매킨지가 별점 규칙을 정하기까지 합니다. 10대 소녀들에게는 여튼 지구가 자기들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갑자기 멤버들이 실종되자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며 니키는 자책하는데 설마 그렇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몇 페이지 더 넘어가니 니키 말이 맞더군요! p235에는 "배드 보이스에겐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오로지 우리에게만 시선을 줄" 거라며 자기들끼리 농담하고 긴장을 푸는 대목이 있습니다. 반면 p287에는 멤버 실종을 놓고 트레버 초이스 씨가 "모든 게 내 잘못"임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결국 결말은 권선징악입니다. 남친은 니키에게 머물고(애초에 브랜든은 매킨지처럼 못된 아이한텐 관심도 없었죠), 센터는 무사히 잘 운영하게 되며, SNS에는 매킨지 아닌 니키가 잔뜩 올릴 사진과 글감이 생깁니다. p14에 "내 인생은 왜 이리 거지 같냐!"며 한탄하던 니키는 마침내 승자가 되는데, 사실 이 모든 게 이리 잘 풀리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죠. 어쩌면 모든 게 18세 니키 맥스웰의 행복한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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