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 술꾼의 술, 버번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조승원 지음 / 싱긋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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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가까이하고, 버번은 더 가까이하라." 영화 <대부>에 보면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대사가 나오죠. 이 명언의 포인트는 애초에 속성상 가까이하기가 어려운 "적"을 가까이해야만 정세와 나 자신의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의 역설성에 놓입니다. 하지만 본디 버번 위스키는 (적과는 달리) 가까이 두기 쉬운 녀석 아닐까요? 물론 술에 아주 약한 이들도 많으며, 아마도 이 말은 그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지 싶습니다. 혹은, 설령 술을 즐기는 편이라 해도, 버번은 좀 뭘 알고 마셔도 마셔야 분위기도 살리고 자신의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런지 아닌지는, 책을 실제 다 읽고 나서 확인 가능했고 말이죠.


"모든 버번은 (아메리칸) 위스키다. 그러나 모든 (아메리칸) 위스키가 버번은 아니다(p14)." 술(종류)의 이름은 버번(부르봉)인데, 정작 아메리칸 위스키의 대명사로 통하는 게 역설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예사로 생각들 해도, 버번 위스키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받는 생산 과정을 거친다고 하네요. 저자는 또한 "버번만 잘 알면 콘이니 휘트니 라이 몰트니 하는 건 크게 신경쓸 게 없다"고도 합니다. 의외로 까다로운 족보와 근본을 요구하는 버번에 대해서 확실히 아는 게 이런 의의와 필요성도 있다는 말이라, 가볍게 훑어 보려 했던 마음이 여기서부터 삼가는 책읽기로 바뀌었습니다.


①당화 ②발효 ③증류 ④숙성 ⑤병입 


어느 주류나 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겠지만(단, 증류는 위스키 같은 증류주에 한함), 앞에서 말했듯 가장 엄격한 제조요건을 갖는다는 버번 위스키의 경우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책을 특히 꼼꼼히 읽었습니다. 옥수수, 밀, 맥아 보리가 버번의 필수 재료인데, 앞에서 콘, 휘트, 라이 몰트 3종 곡물 재료를 거론한 게 이 세 항목과 같습니다. 이들을 곱게 간 후 당화조에 물과 함께 넣어 가열한 후 저 재료들을 차례로 넣는데, 그 온도에 따라 엄격하게 넣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p23). 이 과정이 당화이며, 알코올은 효모가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고 난 후의 산물이라는 점 다시 강조하네요. 모든 주류 제조에 이 명제가 통하겠지만, 저런 곡물을 어떤 조건 하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 것이고 말입니다. 


미국 영화나 소설을 보면 유난히 밀주 제조업자가 자주 등장하고 그를 가리키는 단어도 많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이처럼, 어떤 브랜드를 상품에 붙일 때 당국의 제조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버번 위스키의 경우 알코올 도수는 40퍼센트(80프루프) 이상이어야 하니, 세상에 39도 짜리 버번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며, 그 어떤 인공 감미료 따위도 섞을 수 없다고 합니다(p12). 건강도 건강이거니와, 소비자의 취향과 선택이 이 정도 사회적 신뢰에 의해 유지되어야 그게 사람 사는 사회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이름난 프랑스의 와인류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 


아무리 이 책이 "버번만 알면 나머지 아메리칸 위스키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p21에는 그래도 다른 위스키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그러나 핵심만 잘 추려서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명품 위스키인 잭 대니얼스도 있는데, 이 브랜드는 테네시 위스키에 속한다고 하네요. 


1992년 영화 <여인의 향기>에 보면 알 파치노가 연기한 주인공 중령 캐릭터가 짐짓 "나에게 존 대니얼스 한 병 갖다 주시오."라고 하자, 소년 찰리가 "네?"라고 되묻고, 다시 중령이 "우리끼리는 본래 잭을 존이라고 부르곤 했지."라며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씬이 월도프 아스토리어가 배경인데, 어딘가 좀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생의 마감을 앞두고 털털한 취향을 솔직히 드러내는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하죠. 이 테네시의 경우, 버번의 과정에 차콜(charcoal) 여과 과정을 합쳐서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이 술에 대해서는 책 마지막 4장에 집중적으로 다시 다뤄집니다. 


저자는 MBC에서 최근 특히 보도 프로그램인 <스트레이트>를 제작하신 분인데, 우리가 특히 주류에서 스트레이트라고 할 때 무슨 뜻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물론 저 보도 프로그램의 제목은 직언직설이란 의미이겠지만). 버번이나 다른 위스키의 경우 숙성고에서 최소 2년을 묵었으며, 상표에 따로 숙성기간을 적지 않았다면 최소 4년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런 건 확실히 지식이 있어야 라벨만 딱 보고 판단할 수 있겠죠. 


책의 서장만으로도 버번 위스키에 대한 자세한 상식이 다뤄지기에 유익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본문 1장부터 죽 이어지는 명문 증류소 탐방입니다. 사실 인터넷에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로는 대충 그렇다는 식의 결론만 알 수 있을 뿐,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정보나 결론은 심지어 틀리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구글에 "버번 위스키"로 검색되어 나오는 모든 책을 찾아 아마존에서 주문하여 완독했으며, 이후 필히 탐방해야 할 증류소 목록을 뽑고는 발품을 팔아 꼼꼼한 탐방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사진 자료도 많고, 현지에서 전문가를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생생하고 깊이 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새뮤얼스 증류소는 도수를 많이 끌어올리지 않는 점이 독특했다고 합니다(p63). 2차 증류까지 마치고도 60도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호밀(휘트) 대신 가을밀을 쓰는데, 이 가을밀이라는 게 특히 온도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증류소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은 특히나 장인 정신의 소유자들인 듯 보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로버트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를 인용하며, 영장류의 후각이 특히 발달한 건 땅에 떨어져 자연 발효되는 과일을 즐겨 찾았던 습성에서 비롯했다고 하는데 술을 즐기지 않는 저 같은 독자로선 좀 놀라운 결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 특히 공감했는지 "증류소에서 (자신이) 킁킁대던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도 합니다(p65). 


"일라이자 크레이그는 버번 역사책마다 등장하는 유명한 인물이다(p124)." 아마도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 엘리야의 엄청난 존재감 덕분인지, 이름 난 전도사 이름은 유독 이 이름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저는 저 구절을 통해, 대체 버번 한 종류만 다룬 역사책이 그리도 많았던가 하는 점에 다시 놀랐습니다(p555 이하에 저자가 참조한 원서 목록이 나옵니다). "향부터 알싸한 느낌이 두드러지"며, "시트러스한 느낌도 강하"고, "여운이 부드럽고 길게 남"지만 유독 헤븐힐 위스키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p125). 사실 저부터도 그런 주류명을 들어 본 적이 없고요. 저자는 특히나 이 브랜드를 거명하는 술꾼을 만나면 반갑기부터 하다는데 사실 요즘은 편의점에만 가도 예전보단 훨씬 다양한 와인을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보드카도 흔히 만납니다. 이렇게까지 헤븐힐을 극찬하시니 술 못하는 입장에서도 궁금해지더군요. 


책은 술깨나 하실 듯한 저자가 일일이 현장을 발로 답사한 느낌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윌랫을 방문하고 2층 증류실로 올라가는 장면(3장 중 p142)에서는 설렘마저 느껴집니다. 앞 1, 2장도 마찬가지인데 이름난 증류소는 거의 항상 특정 가문이 관리하는 게 보통이며 대(代)가 끊이든지 해서 이름이 바뀌었으면 아무래도 옛날 책(버번 전문서)에는 사항이 언급 안 되죠.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버번의 내력(나아가 위스키 전반)을 일반인 수준에서 아는 데 부족함이 없고, 위스키에 소양이 높은 독자라고 해도 이 책 한 권을 서가에 나란히 꽂아야 (비교적) 최신 정보도 보충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2020년 6월 현 시점에선 한국어로 된 유일한 버번 전문서이겠고요. 


버번의 수도 바즈타운(p177)에 와서 만나는 짐 빔. 이 술이 버번 위스키의 일종(을 넘어 대표주자)인 줄도 모르면서 아마 그 유명한 브랜드만큼은 웬만큼 사회생활을 하는 한국인이 누구나 들어봤음직합니다. 저자는 유독 이 대목에서 <켄터키 옛집>이라는 미국 노래(미 가곡의 왕 스티븐 포스터의 작품이죠)의 가사(와 아마도 가락까지)를 떠올립니다. 사실 가사에 "검둥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그리 잘된 번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티븐 포스터 원곡 lyrics도 오늘날 기준에서는 인종차별적 표현이 등장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2차 산업혁명을 막 일으키며 세계적 강대국으로 도약하던 시절의 미국, 그 특유의 낙천주의와 활기가 은연 배어나기 때문에 느낌이 각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버번의 발전도 다 이를 배경으로 하며, 이 책이 버번 전문서의 성격 외에 기행문, 여행서의 서정을 풍기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p214 같은 곳을 보면 루이빌, 바즈타운, 프랭크포트 등의 시설 명단이 보기 좋게 정리됩니다. "2019년 12월 기준"이라며 시점도 표기되는데 이처럼 믿을 만한 출판사, 저자의 "보증"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며, 인터넷에 나온 정보라든가 허접한 책, 저자의 말이라면 안된 소리지만 사실 다 믿을 게 못되죠. 다음 페이지에는 요즘 미디어의 인포그래픽이라든가 카드뉴스에 나올 법한 세련된 편집으로 또 보기 좋은 정보가 제시됩니다. 기억력이 어지간히 나쁜 독자라도 이 그림 두 폭으로 핵심 정보(그저그런 술자리에서 아는 척할 만한)는 다 정리되겠네요. 


한국야구의 레전드 장효조씨도 말년에 과음하여 아깝게도 일찍 타계했듯이, 술은 뭐 누가 생각해도 건강과는 상극이며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그러나 p260에는 "올드 포레스터가 생명을 연장하고 노인들을 건강하게 돕는다"는 광고 구절을 담은 오랜 도판이 나옵니다. 만약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지인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여기에 부득이하게 술이 빠질 수 없다면 잘 관리된 질 좋은 술이 분명 (질이 나쁜 주류보다는) 건강에 도움이 될 터입니다. 올드 포레스터는 저 앞의 새뮤얼스 작품들과 달리 2차 증류에서 도수가 70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역시 노인이라면 음주에 절제가 필요합니다!(아니 젊은이라고 해도)


예전 화장품 서브브랜드에 피어리스라는 게 있었는데 아마도 위스키 라벨에서 영감을 얻은 작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각진 데가 없고 동글동글한 귀여움이 묻어나는 병을 거론하는데(p322) 애주가의 눈에는 병의 미학도 취향과 기준에서 빠질 수 없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말도 있죠. 카슨 집안이 이 명물을 생산하는데, 역시 여기서도 기자 본능이 발휘되어 담당자와 관리직(회장님 아드님이라고 하네요)과의 생생한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제조인의 각별한 장인정신이 다짐되는 워딩은 확실히 술맛까지를 더할 듯합니다. 나아가 내가 이런 술을 마신다는 자부심이, 설령 술이 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드문 한 모금에 농도와 추억을 배가하겠죠?


"석회벽돌을 재료로 삼은 숙성고는 우드포드에 있는 게 유일하다."(p396) 대부분은 나무 숙성고인데도 말입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느 숙성고에도 특유의 곰팡이가 피게 마련인데, 이 곰팡이는 알코올 증기를 먹고 살며 내부 습도 조절이라는 유용한 기능을 행한다고 하네요. 여기서 저자의 말이 걸작입니다. "위스키는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천사도 좋아하고 곰팡이도 좋아한다." 


"켄터키에는 사람보다 말[馬]이 더 많다."(p471) 그 중에서도 렉싱턴은 "세계 말의 수도라 불릴 만큼 말의 사육으로 유명하다"며 저자는 강조합니다. "석회암 지대를 통과하며 철분이 제거되어 위스키를 만들기에 적합한 물"이라는 건데, 바로 위 문단에서 언급한 우드포드의 숙성고가 석회벽돌로 지어진 점도 함께 떠올릴 만합니다. 이것 관련 제임스 페퍼라는 이의 파란만장한 생도 함께 언급되네요. 대개 영미권에서 말이라고 하면 사행 스포츠인 경마가 먼저 떠오르고,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술, 그 중에서도 대중적인 위스키가 빠질  수 없겠죠. 


마지막 장에서는 켄터키 주를 떠나 테네시로 옮기며 잭 대니얼스를 다룹니다. 테네시 주도 완전 남부도 아니면서 정말 보수적인 곳인데 20세기 말에 앨 고어 같은 인사가 나온 건 정말 의외이며 인근의 아칸소 주도 대책 없는 우파 지역인데 거기서 빌 클린턴이 출현했죠. 이 테네시 주는 미국이 1차 대전 후 금주를 헌법 사항으로 규정하기 10년 전부터 자체 규율했다는 점 언급합니다. 이런 고장에서 잭 대니얼스가 먼저 탄생했고 현재까지도 활발히 명맥을 이어가는 점은 역설입니다. 뒤에는 특유의 차콜을 위해 사탕단풍나무 구입에만 거액을 쓴다는 사연이 나오는데, 장인정신은 예컨대 우리네 도자기 제조에만 소용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점. 지구촌 곳곳에 모범례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겠으나, 접대라든가 여러 상황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그 바람직한 음주 방법, 절제된 방식으로 즐기는 게 좋겠죠. 그런데 사실 음주 문화는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다양하고 세밀하게 발전한 게 또 특징입니다. 버번 위스키뿐 아니라 술의 족보와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분위기에 가장 알맞게 즐길 줄 안다면 이 또한 사는 낙이 하나 더 생길 뿐 아니라, 접대 받는 상대에 대한 최대한의 성의요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무릇 아는 게 없으면 착한 마음을 품고도 바른 방법으로 상대에게 예의를 갖출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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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로 변한 찰리 찰리 시리즈 3
샘 코프랜드 지음, 세라 혼 그림, 도현승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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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변한 찰리" 시리즈 중 세번째 권이라고 합니다. 저는 전작을 하나도 안 읽었지만 재미있게 이 책을 즐기는 데 전혀 지장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유쾌한 이야기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 코드가 따로 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전작 두 권을 안 읽은 독자들에게 은근 권유하는 광고성 멘트도 곳곳에 깔렸는데 이것 자체가 하나의 유머라서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이를테면 머릿말이라든가(티렉스로 변하는 게 제목인 2편에서 티렉스가 안 나와서 독자들이 항의편지 보내옴), p38의 각주에서 "이래도 전작을 읽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찰리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다른 동물(꼭 동물이라야만 하지만)로 변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동물로 꼭 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이 셋째 권에서는 p27에 그 조건이 나오는데요. "...찰리는 다시 변신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느꼈다. 열정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겁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면서 웃음보가 터지면 그때 변신이 이뤄지고, 비슷한 조건 하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p18, 아침에 통학 버스를 타기 힘들어진 찰리는 파리로 변신합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고... 앞으로 날며 뒤가 보이니 신기하다"는 말이 있는데 360도 눈을 가진 파리니까 그렇겠죠?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은 파리 등 일부 곤충의 눈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겠네요. p13에는 "콘플레이크 흡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흡입이라는 단어를 안 쓸 곳에 써서 웃음을 자아내는 건 한국도 요즘 마찬가지고, 몇 페이지 뒤에 파리로 변하는 장면 때문에 더 웃겼습니다. 원어로는 뭐였는지 궁금합니다. p19에 파리의 습성이 각주를 통해 설명되는데 이 시리즈는 작가가 쓸데없이 끼어드는 각주들이 본문 이상으로 웃깁니다.

p20에 "맛있고 고소한 똥 스무디"라는 문구가 이 시리즈 전체를 대표하는 웃음 코드인 것 같습니다. 저 뒤 p173에서는 찰리가 선충으로 변하여 다시 똥맛을 보는데요. 이게 그냥 웃기는 상황 설정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자는 유익한 제안 같이도 보였습니다. 찰리의 숙적(?)인 딜런의 대변을 통해 선충 찰리는 밖으로 나오는데 동시에 사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여기서 저는 1999년작 <오스틴 파워>란 영화에서, 어떤 사람이 공중화장실 한 칸막이에 들어가 변기 안에 누가 빠진 걸 보고 거기서 나온 사람더러 "당신 뭘 먹었기에 (이 사람을 싼 거요)?"라고 놀라는 장면이 기억 났습니다(물론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p31에서 선생님이 "세 시까지 안 오면 사육사들에게 말해 악어 먹이로 던져 주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있는데 좀 심하다 싶었습니다. 뒤로 가서 p56를 보면 정말로 던져주지는 않더군요(당연하지!). 그런데... 이 소설은 독자들 웃으라고 터무니없는 장면이 나오다가, 나중에 이게 일종의 복선이 되어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아니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거나요). 찰리는 p54에서 변신 타이밍 잘못 잡아서 정말로 악어 먹이가 될 뻔하거든요.

p22, 딜런의 성냥갑 안에 잡혔던 찰리는 p40에서 사자를 괴롭히는 딜런을 보고 혼내 줘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런데 악어로 변한 찰리는 정말 악어의 본성을 발휘해서(p47) 딜런을 깨물려 드는데, 해도 되나, 안 되나 라며 바다악어 영혼과 사람 찰리의 영혼이 갈등하는군요. 저 앞에서도 아무 생각 없어지는 게 영락없는 파리로 되어감을 느낀다는 대목이 있고요. 만약 악어의 이빨로 딜런을 깨물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죠.

p184에 보면 "그런데도 네가 진정한 악당이야?"라며 딜런을 다그치는데 영화 등에서 악당이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다 털어놓는 클리셰의 패러디입니다. 찰리는 이처럼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딜런을 절대악으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찰리는 왜 이렇게 딜런이 자신을 미워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후 오해를 푸는 과정이 나오고요. 아무리 나쁘게 보이는 아이라도, 무심결에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딜런과 대화를 시도하는 게 기특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가 뭘 먼저 잘못했는지는 꿈에도 생각 않고 그저 자기 감정 억울한 것만 중히 여겨 온갖 거짓말과 합리화를 일삼는 게 습관이 된 못난, 못된, 어처구니없는 어른들도 부지기수지요. 그에 비하면 이 동화에 나오는 어린이인 찰리, 심지어 딜런조차도 참 어른스럽습니다. p227에서 찰리는 딜런더러 "다시 친구하고 싶어."라고 하는데 아주 교훈적이네요.

이 작품은 곳곳에서 작품의 액자를 넘나들며 유머코드를 내뿜는데 p51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혼을 해고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저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 글자를 넣었다고 기분이 나빠져서랍니다. 그런데 몇 페이지는 코플랜드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사라 혼을 다시 오라고 청합니다.

한편, 악어로 변한 찰리를 빗자루로 쳐 가며 딜런을 구하려는 윈드 선생님은 참 용감하죠. 기자들이 몰려올 만도 합니다. 악어로 변한 찰리는 아마 "왜 선생님이, 나쁜 아이를 혼내려는 나를 오히려 혼내는 거지?"라며 갈등했을 만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는 거죠.

p69에는 "찰리의 온 세상은 산산조각났다"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님의 별거 때문입니다. p171에는 딜런의 뱃속에서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히자 느닷 이혼하려는 부모를 떠올리며 다시 분노를 표출하는 찰리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불화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알 수 있습니다.

p75 각주에는 옥토퍼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작가는 "문어+고양이"로 이 단어를 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octo(8)+pussy(고양이 말고 다른 뜻)이 그 영화 제목 풀이로는 더 정설에 가까우며.... 아 뭐 여튼 작가는 자신이 이 드립을 못 치는 게 007 제임스 본드 영화가 선수를 쳐서라며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이 셋째 권은 위대한 고츠비가 갑자기 사라진 게 중요 사건인데, 찰리의 친구들인 우건, 플로라 등이 마치 <코난>에서 어린이 탐정단처럼 활약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만화에서 아이들은 코난 정체를 모르지만, 여기서 친구들은 찰리의 사정을 훤히 알고, 찰리보다 훨씬 상황 파악이 빠르다는 겁니다. 딜런이 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 든다는 걸 독자보다도 더 빨리 알아 내죠. 반면 엄마는 찰리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도통 모르는데 대화를 엿듣다가(p113) "뭐가 네가 아니야?"라고 묻는 게 엄청 웃깁니다.

p132에는 드디어 펭귄 떼가 등장하여 "우리는 안 귀여워!"라고 외치는데 사실 펭귄은 전혀 귀엽거나 순수한 마인드를 가진 애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이 그리 감정을 투사할 뿐이죠. p222에는 "냉혹하고 잔인한 눈"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지 않나요? p135에는 "생선 먹는 것만 빼면 채식주의자"라고 하는데 그럼 채식주의자의 의의가 대체 뭐라는 건지요? p221에는 "펭귄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라고 하며 웃겨 줍니다(원문이 뭐였을지). "왜 도난이라고 할까? 훔쳐서 이불 밑에 숨기면 도란도란?(p136)" 같은 말도 우습습니다.

p158 각주에 보면 "선충은 눈이 없는데 어떻게 선충으로 변한 찰리가 뭘 보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며 누가 묻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서는 작가 스스로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내놓아 웃겨 줍니다. p202 에 "슈퍼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라며 드디어 매머드로 변하여 드디어 작가가 약속을 지키는 줄 알았는데(제목으로 낚기 그만)... 더 지켜볼 일이더군요. p205의 각주에서 애들이 서로 이마를 쳤다는 게 아니라고 일부러 설명하는 데서 빵터졌습니다. 작가는 "혹시나 해서" 설명해 봤다고 하네요. "윈드 선생님이 폭발했다. 귀에서 연기가 펄펄 나왔다.(p207)" 같은 문장도, 아이들의 감성에 잘 맞는 해학입니다.

p236의 각주에는 에필로그의 정의가 나오는데 일종의 자학 개그입니다. 바로 이런 게,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어른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유머 코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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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지도 - 돈 되는 아파트만 골라낸 특급 답사기
이재범 지음 / 리더스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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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지금 중국 주식에 투자하면 10년 후 강남 아파트를 산다>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뀐 지금, 강남 아파트가 얼마다 중국 주식이 얼마다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성공을 가름하는 하나의 척도가 "강남에 아파트 보유 여부"라는 점이 새삼 두드러졌다는 겁니다. 중국 주식에 대한 전망은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강남 혹은 서울에 아파트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합니다.

이 책은 현실적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는 나름의 전략, 혹은 지금은 낮은 가격을 형성하나 앞으로 크게 뛸 만한 유망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눈여겨 봤던 아파트들이 있다면 구체적 전망은 어떠한지, 혹은 엄두도 못 냈던 곳이지만 의외로 파고들어가 볼만하다든지 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게, 사진과 더불어 자세한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복잡한 말이 없고 직관적으로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상세한 안내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p41에도 나오듯 성북구는 잘사는 사람들은 잘사는 부촌이지만 안 그런 곳은 주거 조건이 아주 열악합니다. 성북구뿐 아니라 강북에는 이런 곳이 많으며, 한강 이남의 동작구 흑석동 같은 곳도 마찬가지죠. 성신여대, 한성대, 고려대, 동덕여대 등 대학교들이 많이 자리한 게 성북구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특히 길음동을 두고 "성공적인 뉴타운이 정착한 곳"으로 평가합니다. 좋은 점은 젊은이들이 자주 왕래하는 상권 형성이 여튼 가능하다, 나쁜 점은 도심으로 직행하는 노선이 없다(비록 대학교 이름을 딴 전철역은 많지만)고 하는군요.

책에서는 갭을 세심하게 따집니다. 갭이라 함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인데, 이론적으로는 둘이 같아야 정상이지만 한국 주택 시장에서 여지껏 그런 적이 없다가 극히 최근에 들어 "정상" 패턴을 찾아가는 중이죠.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가격이든 뭐든 이론의 값에 수렴하는 법입니다.

책에서는 특정 연도와 현재의 가격을 살피며, 투자 수익률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따집니다. 하긴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이걸 따지며, 이게 익숙지 않은 분은 예전 생각에 아직 머물러 있는 거죠. (주식도 마찬가지구요) 1998, 1999년 기준 돈암삼성은 2억이 올랐고 갭은 8천입니다. 인근 다른 곳은 갭도 별로 없고 1억 3, 4천 정도가 고작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저자는 역에서부터의 거리 때문으로 정리합니다.

중랑구를 보면 지나가는 노선이 6, 7호선인데, 이곳의 중심인 상봉역은 "서울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것이라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직주근접의 효과가 별로 없다(p76)"고 합니다. 노선의 "직주근접"은 이 책에서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반대로 저자는 "그런 만큼 대체로 조용하고 아이를 키우기에는 좋다"고도 하네요. 이런 직관적인 설명도 현장에서 고도의 감을 키운 저자의 지나가는 듯 한마디이므로 의외로 이런 부분에 신경 쓰이는(꽂히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중랑구에는 목동이 아니라 묵동이 있는데, 묵동아이파크는 산책 코스가 좋고 "7호선의 위력 덕에(p83)" 최근 2억 2천(1년 6개월 동안) 올랐다고 합니다.

미주아파트는 강북에서 유일하게 강남권 고급 아파트와 견줄 만한 곳으로 꼽혔었죠. 오래된 곳으로 갭이 크고, 아직 재건축에 대해 확정적인 말이 없긴 하나 저자는 이곳이 여전히 투자 대상으로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매우 잘되었고 가장 적은 평수가 86㎡일 정도(p98)"라고 하네요.

성동구에 대한 저자의 말은 "서울 주요 지역에 가기 편리한 위치에 있는 거의 유일한 구(p112)"입니다. 요즘 괜히 뜨는 게 아니죠. 또 서울숲트리마제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고급 아파트의 상징이죠. 여기서도 교통 입지 요건이 중요한데 1996년 입주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숲삼부가 행당 일대에서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이유는 딴 게 없고 왕십리역의 위치 때문입니다. 전 여길 우습게 봤는데 역시 뭘 모르면 용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84㎡ 기준 11억 8천이라고 합니다. (2020. 10)

역세권이 아니면 숲세권(...)이라도 바라봐야 하는데 버티고개역 등 교통도 편하면서 여러 조건이 좋은 곳이 신당동 남산타운이라고 합니다. 서울에는 왠지 그 동네 소속이 아닌 것 같은 곳이 몇 곳 있는데 저자도 "이곳은 왠지 신당동이 아닌 것 같다"고 하네요. 약수옆 옆에는 약수하이츠가 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투자금을 고려할 때 생각보다 가격 상승이 크지 않고 갭도 크다. 그러나 더블 역세권임을 유의하라"고 합니다. 오히려 이런 곳을 찾아들어갈 필요가 있는 분들도 많을 테고, 장점이 새로 발견되어 입소문이 나면 "가격은 합리적으로 바뀌겠죠(제 생각)."

본래 투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성공이든 실패든 하는 거고 그 중에 내공도 쌓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책 저 뒤 p191로 가면 저자가 이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단톡방에 좋다고 소문 나면 그때부터는 누가 먼저 사냐의 게임인데 이땐 이미 늦었다는 겁니다.

용산구의 이촌동은 사실 쳐다볼 엄두가 안 나죠. 1971년(!) 입주한 한강맨션(이름부터가... 사실 이런 건 일본 영향이었습니다)은 "도로에 맞닿은 일부 동에 상가가 형성되었는데, 이걸 놓고 권리금을 재건축 시 인정할 것인지가 어려운 문제(p153)"라고 합니다. 2020년 1월 전용면적 101㎡이 26억(평균)이라고 하네요(같은 페이지).

막간에 저자는 유용한 팁 하나를 소개합니다. 돈이 충분치 않으면 매매가가 낮은 것만 찾다 말곤 하는데, 상승기에는 대체로 상승률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럼 싼 아파트보다는 고가 아파트가 당연히 수익금이 큽니다. 저자가 이런 충고를 하는 건 요즘 유행하는 갭투자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전세 대출이 가능할 때(아니면 내가 입주자를 구해 전세금을 받아서), 실제 내가 얼마를 가졌는지만 고려에 넣으면 된다는 거고 괜히 고가아파트라고 해서 겁을 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한국인은 아파트를 선호하는가? 사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관리의 편차가 그나마 가작 적은 게 아파트이고, 한번 주거의 패턴이 이리 대세로 형성되고 보니 환금성이나 가치 척도 면에서 객관적이고 편합니다. 획일적이라 해서 언젠가는 극복될 양상이 아니고, 저자는 아파트 기술이 더욱 고도로 발달하여 이대로 쭉 갈 것이라고 합니다. 하긴 국토가 좁다 보니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고 말이죠.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욕망의 집합체"이며(이는 예전에 어느 인문학자가 비판적 뉘앙스로 한 말이지만), 더군다나 "실거주와 투자를 함께 만족시키는(p163)" 거의 유일한 수단이니 말입니다.

"동대문은 동대문구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서대문구에는 서대문이 없다.(p179)" 성북구에도 대학이 많지만 이곳은 좀 더 유명한 대학들이 들어섰으며, 또 더 화려한 소비 패턴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비슷한 곳에 세워진 아파트 중 어떤 곳이 가장 많이 올랐을까? 저자는 자문자답하면서 "가장 신축, 대단지, 84㎡ 세대수가 많은 곳(p184)"이라고 합니다.

은평구는 과거 주거 조건이 열악하기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뉴타운이 많이 들어서서 이미지가 예전 같지 않죠. 그러나 교통 요건은 대체로는 여전히 좋지 못합니다. 특히 유명했던 데가 진관동, 불광동인데 그나마 이 일대에선 녹번역으로 잘 통하는 응암동이 유망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특히 일시적인 가격에 현혹되지 말고, 언젠가는 장점이 발견되어 제 가격을 찾아갈 곳을 잘 보라는 게 저자의 주문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불광롯데캐슬이라고 합니다. 역에서 가장 가깝고, 이제는 가장 비싼 아파트가 된 곳.

영등포는 과거 주거지로서 위신이 대단했으나 현재는 여의도와 여의도 아닌 곳 사이에 편차가 있는 편이죠. 다만 더블 역세권으로 가치가 높아진 당산, 그 중에서도 저자는 당산2가현대를 꼽습니다. 이곳은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대림동 때문에 근래 이미지가 바뀌기도 하는데 그래서 영등포구가 서울에서 가장 "글로벌"한 곳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비꼬는 말인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겠죠.

동작구는 근처 지나가 본 분들은 알겠지만 교통 요건이 참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발전이 빠르다고 못 하는데 저자는 노량진 고시학원가 등 입지를 전반적으로 저해하는 요인 상주(가난한 학생들이 밀집 거주), 태평백화점 등 쇼핑 시설 부족(여기가 어딘지는 근처 사는 사람이라야 알 겁니다) 등을 꼽네요. 앞에서 제가 흑석동이 잘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이들 편차가 크다고 했는데 현재는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같은 상징적인 고가 아파트 때문에 그런 추세가 더한 듯합니다. 저자는 "흑석동은 (이미) 강남을 꿈꾼다"고 합니다. 그래도 원 거주자들이 그리 큰 보상을 못 받고 떠났죠.

방배동, 서초동은 서리풀 터널 때문에 안 그래도 잘 살던 동네가 더욱 각광받습니다. 삼풍아파트에 대해 저자는 "부모님들이 결혼한 자녀를 같은 아파트에 살게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평합니다. 또 저 강남구로 넘어가면 한보은마, 한보미도, 선경 등 전국민이 다 아는(?) 화제의 아파트들이 등장합니다. 이 파트는 제가 배도 아프고 마음도 쓰려서 더 자세히 못 읽겠더군요.

책은 2020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쓰여 있지만 지금이라도 공부하려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딱 기본서로 삼아 개념을 잡고, 이후 변화무쌍한 시황을 따라잡는 식으로 공부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책을 볼 때 주의해야 할 건 가치 투자입니다. 어느곳이 좋다더라는 식으로 남을 따라가면 맨날 상투만 잡다가 끝납니다. 교통입지, 세대수, 전용면적 비율, 숲 등 주거조건을 복합적으로 파악하여 "진짜 가치"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낮아도 나중에 오를 수 있고, 지금은 거품이 끼지만 나중에 폭락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일시적 가격 왜곡에 항상 조심해야만 성공적인 투자가 가능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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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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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980년 5월 26일, 27일 양일간, 전남도청 진입을 앞둔 계엄군과 대치하던 어느 (가상의) 시민군의 회상을 담았습니다.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다양한 기록을 참고하여 사건과 인물들을 재구성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다큐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책 띠지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도청에 있는 이유는 단 한 사람, 희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본문 p157에도 나오는데요. p157이면 소설 2/3가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독자들은 아마 (어지간히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건의 진상인지 정확히 파악 못 할 겁니다. 저 역시 그랬고 인용문에서도 "희순을 사랑한다"고만 했지 "희순이 거기(즉 전남도청)에 있어서였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지레짐작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소설 말미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다는 점 미리 말씀 드리고요.

26일, 27일 양일간의 회상입니다만 아직 젊은 청년이었던 주인공이 길지는 않은, 그러나 최근 몇 달 간 높은 밀도를 갖추게 된(?)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과거사를 회상하기 때문에 시간적 배경은 좀 범위가 넓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가난하고 비참했던 광주의 토박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광주의 민중들 눈을 틔우기 위해 야학을 연 "강학(선생, 교사가 아니라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들입니다. 전자는 주인공처럼 밑바닥 인생들이 주류이고(공장 직원, 하급 기술자, 유명한 서방파 깡패 들이 두루 포함됩니다), 후자는 저들 입장에서 선망의 대상인 대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캐릭터로서는 아니지만 (차라리) 거대한 사건으로서 등장하는 계엄군이 있겠네요.

p57에는 "총을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저 말은 소설이 다름 아닌 5. 18의 그 급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기에 더욱 묵직한 함의를 갖습니다. 전남도청에 모인 이들은 고교생을 비롯 미필자도 있기 때문에 총을 그리 잘 다루지 못합니다. 시민군이 카빈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말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 책에는 "식스틴(M16을 가리킵니다)이 대학생이라면 카빈은 중학생"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만큼 화력이 약한 게 카빈이고, 계엄군을 대체 중화기 무장 면에서나 머릿수 면에서나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 소설에는 기관총류로 p67 등에 "에레무지(LMG)"가 나오기도 합니다. (전 처음에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본문 중에 친절히 설명됩니다)

총화기의 차이를 하필 중학생, 대학생 등 학력으로 비유한 게 눈에 띄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상당수는 가난 때문에 못 배운 이가 많습니다. 무학에 한이 맺혀 유독 비유도 저렇게 든 듯합니다. p77 에 보면 주인공이 스스로를 가리켜 "대2 나이에 국졸임"을 자탄하고, 광천공단, 전남방직(p111) 등 당시 가난하고 비참했던 광주를 상징하는(그곳에 다니는 노동자들과 그들이 형성한 거리) 이름이 자주 보입니다. "가난, 무학, 자학의 수렁" 역시 주인공이 자주 되뇌는 말입니다.

소설에는 1980년대 비참하고 가난한 광주를 제유하는 현지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p44의 학동고아원, 무등육아원이라든가 p213의 광주소년원이 그것입니다(후자는 교정 시설이라 성격이 다릅니다만 여튼). 얼마나 가난하고 핍박 받는 고장이었으면 도심에 저렇게나 시설이 많았겠습니까. 이런 곳에 대체 누가 누굴 고아랍시고 멸시하고 우월감을 느끼고 어쩌구할 여지가 있겠습니까만 한심하고 인성이 비틀린 인간이야 또 어느 곳에나 분포하기 마련이죠.

소설에는 개성 있고 향토색을 드러내는 표현이 여럿 나옵니다. p34 에는 "뉘집 자식 머기시" 란 구절이 있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 아무래도 이 단어가 "머시기"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p129에 "귄이 있는"이라든가, p170의 "귄이 있고" 같은 표현이 있는데 "귄"은 사전을 찾아 보니 "귀염성"의 전남 방언이라고 하네요. 좋은 지식 하나를 배운 듯했습니다.

계엄군 진입을 대비하는 시민군의 마음가짐은 결연합니다. p32에는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이 나오는데 말 자체야 우리에 익숙하지만 여기서는 좀 의미가 다릅니다. 즉, 벼랑 끝으로 한 발짝만 디디면 다죽는다는 뜻이며, 그래도 그 죽음이 의미가 있기에 "진일보"라는 거죠.

책 초반에 나오는 인요한은 물론 우리가 잘 아는 실제 그분이 맞습니다. 실명 그대로 나오더군요. 캐릭터로서 활약상이 나오는 건 아니고 성함이 언급되는 정도입니다. p48에는 "작가 황수영의 양림동 집"이란 구절이 있는데, 황수영이 곧 황석영이며 5. 18 당시 실제 행적과 일치합니다. p147에는 박관훈이란 인물이 등장하여 일신방직 여공 최순임과 노선상의, 그리고 개인상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장면이 있는데 혹시 실존 인물 "광주의 넋 박관현"을 이리 묘사했을까요? 저 뒤 p199에는 조순임이라는 인물도 나오는데 순임이라는 이름이 당시 광주에는 많았나 봅니다.

계엄군 진입 전야의 그 급박한 순간.... p52에는 이 종이에 적힌 글이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까? 라며 회의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p54에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또 나오고요. 이 페이지에는 "미국인 하나를 인질로 잡고 투쟁하자"는 강경한 노선을 주장하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은 상당 부분을 실제 기록을 참고하여 창작되었다고 작가가 말하므로 다 근거가 있는 묘사일 것입니다. p60에는 상우 형이 세 손가락을 펴 보이며 "앞으로 삼일만 버티면 계엄군이 알아서 물러간다고 외신 기자들이 보도했다"고 하며 시민군의 사기를 높이는 말을 하는데 물론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래야 할 때가 있죠.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기) 동네에서는 똥개도 50은 먹고 들어간다.(p113)" 이 말은 등장인물 중 하나인 수찬이, 서방파 깡패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동네 선배(남호)의 형수에게 담배연기를 뿜으며 도발하는 깡패들에게 수찬은 대담히, 술잔을 깨고 몸에 자해를 해 가며 맞섭니다. 결국 서방파 중간보스한테까지 끌려가서 온갖 구타를 당하는데, 그 용기와 배짱이 가상해서 그냥 풀려나네요. "니 꿈이 뭔데?" "츄레라(트레일러) 운전수요." 소설에는 남호 형과 수찬이 운전을 하며 수고비를 횡령(이른바 "삥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당시 생활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입니다. 당시 막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수주될 시절인데 일당이 어마어마하다며 설레어들 하는 모습이 나오네요.

주인공 노명수는 공장에 다니며 일이 힘들면 "본드를 부는 등" 절망에 가득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우연히 김희순을 알게 되고,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공장직원인 줄 알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게 소설 뒤에 가서 나오듯이, 사실은 김희순은 박희순이었고 대학생 신분인데 여공으로 위장 취업했던 거죠. 검정고시 통과가 고작 꿈(p67)이었던 노명수는 희순이 좋아하는 듯 보이는 상우를 질투하는데 p67에서는 아직 희순이 대학생인 줄 모릅니다. 그 뒤 p151에 가서야 우리 독자들에게 희순의 진짜 신분을 말하고, 여공이면 좋았을 텐데 대학생이고 누나라서 약간 실망했다는 말도 합니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여튼 그가 그리 생각한다는 거고요. p201에 다시 "형을 질투한다"는 그의 독백이 또 나옵니다. 이때는 희순이 누군지 알고 난 시점입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천하의 노명수"로 자칭하거나, 별로 여성스럽게 꾸미고 다니지 않는 희순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p96에 "학삐리들은 겁쟁이"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강학 선생님들의 훌륭한 모습을 보고도 저러네요. p100에 "설마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는 말이 나오며, 역시 계엄군 진입 직전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잘 표현합니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싸워야지 그 어떤 간극도 없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p193). "오지 마라. 하지만 피하지 않겠다." 같은 말은 얼마나 비장합니까(바로 뒤에 더 용감한 의지의 피력도 나오구요).

야학에서는 노동자가 평생 노동자로 가난하게 착취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님을 배우고, 동시에 형들과 어울리며 음악도 습득합니다. p92에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언급되는데 제가 몇 주 전 책프 리뷰에서 리처드 클레이더만 악보집을 리뷰한 적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저는 이 피아니스트가 1980년대에만 한국에서 인기를 끈 줄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대학생들 사이에 이미 1970년대말부터 유명했던 줄을 새로 알았어요. p85 이하에는 아주 길게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에 대한 토론(?)이 나오는데 저항가요로서 그리 해석될 여지가 있나 보죠. 더 넘어가면 조언 바예즈와 양희은, 김상국(!)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p82에 보면 담배를 달라는 말에 "이것들이 내가 전매청인 줄 아나?"며 우습게 받아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담배를 국가 관청인 전매청에서만 취급하던 시절의 단면을 드러내죠. "공수부대가 무서워, 아님 고양이가 무서워?(p173)" 같은 대화에서 임박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잊지 않는 인물들이 돋보입니다. 이들 중에는 커플도 많고(병규와 미서라든가) 18세 나명환처럼 고작 교련 시간에 모형 총 잡아 본 게 전부인 고등학생도 있습니다.

(이하 내용 누설 있습니다)
p183에 "나는 상우형이 갖고 있는 그런 추상을 가져 본 적 없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나오고, 이제 야학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희순은 사실 동경하던 또래 여공이 아니라 상우형처럼 자신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희순과 주인공이 사랑을 맺을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1979년 크리스마스(그러니까 5. 18 이전)에 그 둘은 연을 맺기로 약조합니다. 명수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며칠 후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희순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합니다. 즉 5. 18(소설 속 현재) 당시 희순은 이미 고인이었던 겁니다. 책 한참 앞인 p36의 "내일 나는 망월의 희순과 데이트를 한다"는 말은, 알고보니 전혀 다른, 엄청난 암시가 숨어 있었네요.

희순이 도청 어디엔가에서 지금 투쟁하고 있어서 내가 그녀를 차마 떠날 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희순이 내게 스승으로서 생전에 가르쳐 준 그 무엇과, 연인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5. 18이야 미처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때문에 도청을 못 떠난다는 뜻이었습니다. 처음에 전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생각 밖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만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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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워크 습관법 - 평생이 달라지는 작은 실천의 힘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니들북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일과 삶(혹은 놀이)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바람직하다고들 합니다. 많은 기업들(특히 스타트업)도 직원 채용 공고문에 "우리 회사는 워라밸을 최우선으로..." 같은 문구를 즐겨 게시합니다. 직원의 개인 삶을 경시하는 회사는 이제 구직자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우호적인 시선을 받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말을 합니다. 일과 삶이 분리되는 자체가 이미 한계가 있고, 인간은 태생적으로 일과 삶이 분리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십 년 전 철학자 에리히 프롬 등이 말한 "인간 소외"도 크게 봐서 이로부터 비롯했는지 모릅니다. 일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정상이며, 그 결과물이 결국 기업에서도 바랄 만한 양질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일단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합니다. "아 이정도는 되어야지." "지금의 나로는 안돼." 구식 리더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혹독한 연습을 시키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종전의 너와 다른 인생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에도 일말의 타당성이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한자어로는 극기(克己), 영어로는 self-denial이라고 부르는 이런 방식은 이제 자칫하면 정신에 문제를 빚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감정에 충실하되, 나의 장점도 거리낌없이 드러내라고 합니다. 이런 작은 면에서의 변화가, 라이프워크 습관법, 즉 일과 삶이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라고 하네요. 남을 의식해서 "에이 뭘요." "운이 좋았죠." "다음에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겠습니다!" 같은 판에 박힌 멘트를 일삼는 건, 과거에는 몰라도 현재에는 이미 낡고 뒤처진 태도입니다. 자기 긍정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데(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목표 지점 중 하나입니다), 저런 가식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태도는 그저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습관을 들여야 하는가? 이 책은 챕터마다 우리 독자가 유념해야 할 구체적인 습관 프로젝트를 따로 정리하네요. 나의 평소 행동을 되돌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싫어하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반대로) 하고 싶은 일 등의 목록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두면, 나의 감정이나 나의 성격, 스타일이 더 확연하게 파악된다는 겁니다.

저자는 지난시절 사회가 개인더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것"에 방점을 두어 교육,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인드셋이나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강점에 대한 인식도 약화할 수밖에 없죠. 저자는 "라이프워크란, 가족관계나 일을 염두에 두고 취미, 동료, 시간 사용, 건강을 '나다운 행복한 삶'으로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p45)합니다. 그렇다면, 나다운 게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게 라이프워크 스타일의 첫걸음이 됩니다. "남들의 성공 사례는 그저 참고만 하는 게 어떨까? 네가 좋아하고 네가 하기 쉬워하는 일을 먼저 발견하는 게 어떨까?" 남들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성공했기에 그게 좋아 보여 몇 십 번을 반복해서 시도했지만 결국 안 될 경우, 이럴 때엔 과감하게 포기하고 "나는 이걸 못하는 사람"이라며 인정하는 게 차라리 용기라고 하는군요.

남들따라 사는 삶은 결국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라고 합니다. 내 감정을 내가 그대로 들여다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난 왜 이렇지?"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걸 억지로 묻어두거나 왜곡하면 자기 긍정감이 생기기가 더 힘듭니다. 나의 진짜 행복은 내 행복과 내 긍정을 내가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기에, 저자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강점을 빨리 발견하자고 제안합니다.

자기긍정감을 갖고 라이프워크를 일상에서 실현시키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에게, 말로 분명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라고 합니다. 다소 뜻밖인데, 저자는 라이프워크("일과 삶이 하나되기")를 "고립된 나 개인"에서 찾지 않고, 가족이면 가족, 직장이면 직장, 이렇게 어떤 집단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라이프워크는 일종의 팀웍 발휘가 되어야 가능하다는군요. 감사를 표현 받은 상대방이 기분 좋아지는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도 타인에게 감사를 표현하면 내 자신의 기분이 힐링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라이프워크는 상대방과 내가 즐겁게 공존하는 환상적인 팀 안에서 완성됩니다. "감사하라"는 주문은 저 뒤 p108에서도 다시 되풀이됩니다.

특히 일본에서, 혼자 힘으로 해 내지 못하고 남한테 의지하는 걸 굴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건 결국 상대방이나 "팀"에 민폐만 끼칠 뿐입니다. 내가 못하는 건 (앞에서도 말했지만) 못하는 것이므로 그걸 부인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걸 잘하는 팀 안의 다른 분에게 과감히 해달라고 조르고 의지하라는 겁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내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며 남을 못 믿는 유형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남을 잘 못 믿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참된 자존감, 자기 긍정감이 생긴 사람은 일 배분도 잘하고 주위와 융화도 능숙하겠다는 점을 알 수 있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언제나 효율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저자는 "설렘의 원천(p85)"을 찾아내라고 합니다. 과거에 누구나, 아무리 고전하던 시기라도 "이거만 떠올리면 힘이 절로 나고 행복한" 경험을 누구나 갖습니다. 진짜 설렘은 어렸을 때, 아마도 사춘기나 그 이전일 텐데 저자는 그때로 기억을 거슬러가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합니다. 해 내야 할 건, 대체 왜 그게 설렜는지 구체적으로 이유까지 밝혀내는 겁니다. 사람마다 이유는 다 다르겠으나 내 자신이 솔직히 설렌 이유가 떠올리기에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이유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앞으로 라이프워크 스타일을 만들고 실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 뒤 p148에는 "동기 부여는 행동력의 트리거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재능을 이끌어낸다.(p99)" 못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은 포기하라고 했지만, 모든 일을 포기하고 말고가 내 마음에 달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든 마무리지어야 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되, 그 치열하게 문제를 상대하는 과정에서 "진짜 나"를 찾으라고 합니다. 물론 힘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초라하게 고전하는 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으려고 진심으로 애 쓰면서 예전에는 미처 못 봤던 나의 온갖 모습을 다 보는 건 또 다른 체험입니다. 그 중에는 기특하고 신통한 면도 포함됩니다. 어려운 과제를 푸는 중이라야 이 모든 (숨겨졌던) 나의 모습들이 다 발견되는 겁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나의 장점과 매력이 분명히 찾아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에 쪼들릴 때, 돈을 싫어하고 부자를 혐오하는 습관이 자연스레 들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습관에 굴복하면 영원히 인생의 패자가 된다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합니다. 인생의 매 순간에 부딪히며 승자가 되는 건 "그 불쾌하고 힘든 대상을 일일이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왜 누구하고 힘든 시간을 가졌을때, 해결도 안 될 거면서(그 사람에게 원수를 갚는다는가 공개 망신을 준다든가) 그런 괴로움을 누구한테 털어놓으려고 할까요? 그렇게 하소연이나 수다를 떨기라도 해야 "내 감정이 해방되어서"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아마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내 감정이 일단 해방이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용서"가 필요하고, 그 다음은 "나에게 도움 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겁니다. 참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맞는 말씀입니다.

저자는 전문 상담사입니다. 그래서 상담사답게 많은 내담자들을 겪어 봤으며 무엇이든 스토리화하여 문제 해결하는 방법을 즐겨 쓴다고 합니다. 저자는 사람을 1) 목표 달성형과 2) 천명 추구형으로 나누는데 1)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2)는 어떤 큰 그림이나 이정표를 세우기보다, 눈 앞에 닥친 과제를 바로바로 해결하며 인생을 채워나가는 유형이라고 하네요. 어떤 유형의 인간이든 저자는 라이프워크 스타일을 온전히 체득하는 게 수단이자 목표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질투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질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정 처리가 미숙하고 자기 긍정감이 미확립된 인간에게는 저 둘 다 나의 적입니다. 그러나 라이프워크가 일상화된 사람에게는 둘 다 나의 동지이며, 인생의 추동력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습니다.내가 나의 강점을 사랑하면 일과 삶이 일체가 되고, 나 주변의 모든 이들까지 행복으로 이끈다는 책의 결론이 참으로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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