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의 팔월
최문희 지음 / 문이당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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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감정이란 참 집요하고 무섭습니다. 사실 값싼 용서는 상대방을 향해 복수할 힘이 더 이상 내게 없다고 판단될 때 못난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는 도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정당한 원한을 갈고 닦아, 그 잘못한 상대가 죗값을 치를 때까지 죽죽 진행하는 게 맞으며, 그리하지 않는다면 본인의 생의 의지가 꺾여 시드는 결과를 맞을 것입니다. p209에도 나 대표 말 중에 "저항할 수 없으면 그냥 구부리고 살라고? 어림없어."라는 게 있습니다(사실 이건 모경인의 말 인용). 이 소설에 나오는 여인 조안의 마음이 또한 그러리라고 독자인 저는 생각합니다. 결말에 가서 과연 조안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끝까지 통독한 독자들만 알고 감동을 받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6에 강문혁에 대한 소개가 사회자 배우정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32세에 하버드 교수로 초빙되었고(영문학), 그럼에도 구태여 한국의 강단에 서기를 고집했다니 뭔가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이어 그의 친구인 모경인 작가, 나주연 대표(출판사) 등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이며 남들이 모를 무슨 사연이 있는 듯도 합니다. "남의 자서전이나 써 주는 대필 작가 주제에!(p31)" 이 말을 듣고 모경인도 격분하여 나 대표의 뺨을 칩니다. 조안은 모경인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녀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언니처럼 조안도 머리가 좋습니다. "의대 공부, 아르바이트, 소설, 거기에 연애까지. 독종이 따로 없어(p86)." 나 대표는 그녀의 완벽주의가 너무도 마음에 듭니다. 배우정은 모경인에 대한 존경심만큼은 틀림없기에 일일이 사소한 일에까지 찌르고 들어가지만(p128), 글쎄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태산(泰山)은 모경인이고, 강(江)은 강문혁 자신을 일컫습니다. 문학동아리 멤버들다운 표현이지만 글쎄 속에 무슨 감정들이 오가는지는 남이야 모를 일이죠. 너무나도 반가운 해후이지만(그렇게 보이게 하려고 애쓰지만) 과연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그들만이 아는 사정이 16년 동안 여러 구비를 틀었습니다. 

배우정은 총신대근처(p154)에 자취방을 얻습니다. ㅎㅎ 이 소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제가 거쳤던 장소들과 이 소설의 지명들이 많이 겹쳤기도 해서입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게 강문혁이라는 인물의 행동반경이 또 그쪽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조안은 나래 시인과 함께 신림동에서 기거하는데 이 소설에는 서울 시내 곳곳의 여러 동네 이름들이 등장해서 더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p27에는 운니동(雲泥洞)이 나오는데, 책에 나오는 대로 월탄 박종화의 몇 소설에 주요 무대로 세팅됩니다. 월탄의 작품 중에 제목이 <흥선대원군>인 건 없고, 전야, 여명, 민족의 3부작이 있습니다. 주소로 운니동이라고는 누구라도 써 본 적이 없고 등기부 등본이나 호적 등본 뗄 때에나 본 적 있을 텐데(그쪽에 연고가 있다면), 운니동은 행정동명으로는 이제 쓰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p231에는 재미있는 말이 나옵니다. "지성적인 것과 지성인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림막이 존재한다." 강문혁의 부친 만복(이름도 좋네요ㅋ)은 성공적인 사업가였지만 매우 야만적인 성품이었습니다. 자녀를 낳고 부모의 위치에 섰으면 성욕 정도는 스스로 콘트롤되어야 하는데 참... 그나마 이 사람은 돈이라도 많고 생리적으로 구조가 그렇게 되었기에 일말의 이해라도 되지만 발정난 70노파는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꼴인지 원. 불멸을 남용한다는 강문혁의 처지(p244)도 이해는 됩니다. 

소설 대단원으로 치달으며 조안은 강만복과 정면으로 대립합니다. 강 회장은 참 뻔뻔스러운데 이 나이 또래들이 좀 이런 면이 있습니다. 그나마 강회장은 어설프게 진보인 척은 안 하는 사람이니 동정은 갑니다만. 문학박사 강문혁은 비명(碑銘)을 "용서받지 못할 자"라며 생전에 스스로 만들었는데(p276), 세상에 진짜 용서 받지 못할 살인자는 따로 있고 아마 그 자식한테 복수의 칼날이 그대로 향할 수도 있겠습니다. 섬뜩하면서도 절절하고 치열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투와 애증이 잘 녹아든 멋진 장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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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피그마 -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책 한 권으로 따라해보는 UXUI 프로세스!
김시완.정현민 지음 / 정보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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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의 중요성은, 저렇게 영어로 쓰면 뭔가 어려운 듯 보여도 사실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이미 체감하는 중입니다. 길가다 들르는 가게에서 하다못해 키오스크 하나를 사용해도, 알기 쉽고 직관적으로 접근이 편한 게 있는가 하면 대체 뭐가 뭔지 모를 실패작도 겪곤 합니다. 쇼핑몰도 마찬가지라서, 들어가자마자 마음이 끌리고 상품 검색이 간편한 데가 있는가 하면, 사이트가 미로 같고 동작도 잘 안 되는 곳도 있습니다. UX의 핵심은 바로 이용자의 편의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발자가 소비자 다수의 니즈와 욕구에 쉽사리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그마는 개발자가 손쉽게 배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만약 그 장점을 잘 체득했다면 최상 최적의 UI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도구라서 좋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 서두에도 잘 나오듯(특히 v 같은 곳), 피그마는 첫째 윈도나 맥뿐 아니라 어느 OS 하에서도 설치, 작업이 대체로 가능한 툴(tool)입니다. 또 언어가 직관적이라서 비전공자가 배우기 쉽고, 여러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접속하여 협업하기에도 편하다고 평가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마치 지금 회사원들이 누구나 엑셀, 파워포인트를 써서 작업하듯, 누구나 간이 개발자가 되어 사이트도 만들고 버그도 고칠 정도가 되지 못하면 회사에서 버텨내지 못할 것입니다. 피그마가 이 분야 표준이 될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쉽고 강력한 도구를 잘 쓸 줄 알게 된다면 회사에서 나의 존재감과 비중은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p25를 보면 프레임과 그룹의 차이가 설명됩니다. 프레임과 그룹이라는 용어는 꼭 피그마에서만 쓰이는 건 아니고, 회사에서 임기응변으로 이런저런 툴을 통해 작업을 해 봤다면 대충은 뭔지 알고들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공자가 아니라서 아무래도 확실한 개념이 아직 안 선 이들이 많을 텐데, 그런 마음을 이미 얼고 있다는 듯 책에서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화면 크기를 구현해 내려면 프레임을 써야 합니다. 책에도 설명이 되었듯 그룹은 그저 여러 객체를 한 번에 관리하려는 용도뿐이며, 프레임을 처음부터 써야 할 경우에 그룹을 쓴 경우, 대체 왜 이걸 손봤는데 저기서 에러가 나는지 실무에서 당황했을 만합니다. 아무리 임기응변으로 어느 정도 익숙하게 해 왔다 해도, 이론상으로 체계를 다듬어야 일이 잘 되는 게 이런 데서 다 이유가 찾아집니다.

p62에서 중앙 정렬(align center) 기능을 배웁니다. 프레임 안에서 각 디자인 요소들이 예쁘게 배열되게 신경 써서 손을 쓰지 않으면 어디가 삐끗해도 삐끗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 페이지로 돌아가서 위/왼쪽 정렬과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꼼꼼하게 봐 둘 필요가 있겠죠. 많은 이들이 실무 작업에서 시행착오를 범했을 만한 경우가 p63에 나온 clip content를 다루는 과정이겠는데, 특히 ②에서 보듯 옵션을 해제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는지, 이론적으로 세심하게 공부를 미리 해 둔 경우와 그렇지 않을 때가 실제 작업을 해 보면 제법 차이가 많이 나곤 합니다.

이 교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이론 설명도 꼼꼼하지만, 학습자가 모든 과정을 직접 과제를 수행하면서,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유도하는 편제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p97 같은 곳을 보면, 컴포넌트 세트 한 번에 수정하는 팁이 나옵니다. 작업을 하며 속으로 생각만 했지 그게 과연 되겠어 싶었던 과제인데, 역시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저자들이 마침 필요했던 요령을 잘 짚어서 알려 줍니다. 책에 나오듯이 수정을 다 마치고 나서 멀티엔딩 옆 버튼 [X]를 누르는 것,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p103에서 실습, 스위치 만들기 6번째 단계에서, 색상을 [Fill]에 들어가 6156D9로 설정하는 것도 잘 봐 둬야겠죠.

초보자, 혹은 이런 플랫폼에 어느 정도 익숙한 학습자 모두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책입니다. p121 이하에 나오는 AI 기능과의 접목도 아주 요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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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로 책쓰기 - 책 쓰기를 위한 나만의 현명한 AI 활용 비법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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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로 책쓰기

최근 우리 주변에서 열풍인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AI의 진화는 실로 놀라우며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 노동력 상당 부분을 대체할 듯합니다. 한편, 이렇게 AI 발달하면 사람도 그 막강한 성능의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글쓰기와 책쓰기입니다. 사실 책쓰기 노동의 많은 비중은 창의력이나 혁신과는 큰 관계가 없는, 단순 반복 작업에 가까운 군더더기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AI가 글쓰기를 도와 주면, 사람은 그저 창의적인 컨셉만 갖고서도 좋은 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런저런 소스를 통해 짜깁기만으로 책 하나를 만들어내는 좋지 못한 관행은 많습니다. 그럴 바에야 공인된 글쓰기 AI의 도움을 받았음을 떳떳이 밝히고, 작가는 빛나는 아이디어나 컨셉의 창안에 더 주력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2를 보면 이 클로드의 장점이 나옵니다. 첫째가 대화의 자연스러움, 둘째가 기억력이라고 나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챗GPT 같은 (더 범용성 높은) 엔진을 써 봐야 실감이 납니다. 챗GPT를 써 본 이들은 알겠지만 사실 "챗"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 말투가 대단히 판에 박힌 스타일입니다. "네! 맞아요!" 같은 뻔한, 진정성 없는 그 특유의 대화투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는 주변의 반응도 많이 접합니다. 또 챗GPT가 기억력 나쁘다는 평도 이미 대중에 널리 퍼졌습니다. 질문을 할 때 간단한 것도 엉터리 답이 잦게 나오는데, 질문자가 다그치면 다른 오답을 몇 개 더 내놓다가 다시 처음의 오답으로 돌아갑니다. 즉, 앞의 실수로부터 뭘 배우고 개선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입니다. 클로드는 이 점에서 (아직 아쉬운 면이 있긴 하나) 챗GPT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습니다.

또 일관성이란 점에서도 챗GPT보다 클로드가 낫다고 합니다. 이 역시도 제가 써 봐서 느끼는 건데, 챗GPT는 어떤 때는 반말을 했다가 갑자기 존대로 바뀌는 등, 내가 대화하는 상대가 어떤 영혼(ㅋ)을 갖는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극단적으로는, 그때그때 상황만 모면하려고 겉으로만 그럴싸해보이는 답을 내놓는 기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치를 하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이 안 나온다 싶으면 다소 유보하는 듯한 말투로 이용자의 기대를 낮추어야 하는데, 언제나 자신만만하니 이용자는 잔뜩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클로드는 일관성이라는 점에서 챗GPT보다 낫기에 유저가 불의의 타격으로부터 약간은 안전해집니다.

작가는 책을 다 쓰고 나서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운지, 퇴고가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지 묻고 이 클로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p46). 사실 이 기능은 작가보다는 편집자, 나아가 출판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책에서는 이 때에도 유저가 클로드에게 질문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해야 기능이 극대화한다고 일러 줍니디. 생성형 엔진에의 프롬프팅 일반 원칙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이 책을 꼼꼼히 읽고 클로드에 가장 잘 맞는 프롬프팅의 특징이 무엇인지도 우리 독자들이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p66에도 여러 좋은 요령들이 나옵니다. p116 이하 부록에는 유용한 프롬프트 모음이 나옵니다.

자계서, 실용서, 에세이,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클로드가 도와 주고 사실상 대필(?)해 줄 수 있는 책 저술의 장르도 참 다양합니다. 이 책의 p70 이하에 장르별로 어떻게 클로드를 활용할 수 있을지 자세히 나옵니다. 자 그러면, 책을 쓸 때 클로드의 도움만 아무 생각없이 받고 책을 출판해도 될까요? 만약 결과물이, 이미 출간되어 있는 타 저작물의 내용과 형식 상당부분과 일치할 경우, 본인이 기 저작물울 직접 봤건 아니건 무관하게,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이 져야만 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이디어와 주제를 자신만의 언어, 표현(p97)으로 완성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지적인 성과를 이루는 최후의 결정적인 기여는 바로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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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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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간다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어려서 엄마, 아빠만 알던 아이가 또래들과 소통하고 긴밀한 정서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격도 성장하고 감정도 더 풍부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작은 책은 모두 13단계로 구성되었는데, 표현 하나에 9개 국가 언어가 같이 딸려옵니다. 예전 같으면 9개 국어를 배워 봐야 일생을 두고 어디다 써먹을까 회의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챗GPT 등이 있어 말을 번역도 해 주겠지만, 기왕이면 사람이 직접 자신의 영혼을 담아 정겨운 말투로 말을 건넨다면 사람 간의 마음이 더욱 도탑게 오갈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3챕터에는 QR코드가 달려 있어서 원어민들의 발음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원어민들의 발음을, 아직 선입견 없이 깔끔하게,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어른은 이게 안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자주 들려 줘야, 나중에 발음기호나 다른 보조 수단 없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인사 "안녕!"은 아마도 모든 언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표현이겠는데, 프랑스어로는 봉쥬르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한국 제빵 브랜드인 "뚜o주르"도 tous les jours, all the days라는 뜻이라서 이 단어 jour가 들어가는 표현입니다. 정작 good day 같은 영어 인사 표현은 호주 등에서만 많이 쓸 뿐이니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도 hello!가 대표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챕터 4에서는 같이 놀자는 표현을 배웁니다. jouons ensembles라는 게 프랑스어의 표현인데, "쥬옹 앙상블"이라 발음합니다(책에 한글로도 써 놓았습니다). 동사 jouer의 1인칭 복수 명령형인데, 영어에는 명령형이 2인칭에만 있고 그나마 형태가 원형과 같습니다. 따라서 영어만 배운 이들은 복수 명령형 활용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let's 형태가 있을 뿐인데 이건 다른 사역동사의 힘을 빌린 것이지 자체 활용(conjugation)이 아닙니다. 독일어도 영어와 비슷하여, lasst uns zusammen spielen!에서, lasst uns는 영어의 let us와 완전히 같습니다. lasst는 lassen의 2인칭 복수형이며 예전 같으면 laßt로 쓰였겠습니다. 아무튼, 어린이용 책이므로 복잡한 문법 사항은 알 것 없고,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바를 자꾸 듣고 표현이 상황에 따라 척척 나오게끔 연습하는 게 최고입니다. 

포르투갈어는 재미있게도 vamos jogar를 쓰는데, 스페인어로는 같은 페이지에 juguemos(후게모스)라고 책에 발음도 정확하게 나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스페인어로는 간략하게, jugar가 1인칭 복수 격변화하여 표현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구태여 vamos를 조동사처럼 끌어들여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와 같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언어인데도 이런 패턴은 영어와 비슷하게 생성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기본어휘만 놓고 보면, jogar(포르투갈어)와 jugar(스페인어)도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것만 놓고 보면 방언의 차이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넌 할 수 있어! 아이한테 힘을 주는 멋진 말입니다. 영어로야 You can do it!이며, 요즘은 어린이들도 아주 유식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통해 다른 언어 표현도 함께 공부하는 건데, 이탈리아어로는 puoi farcela!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puoi는 potere의 2인칭 단수형인데, 이게 영어의 can과 같은 조동사입니다. 조동사이므로 뒤에 farcela라는 동사원형이 왔습니다. potere는 영어의 potential 같은 말과 어원이 같으며 possum이라는 라틴어의 직계 후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tu puedes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본동사가 따로 안 온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포루투갈어로는 conseguir라는 동사가 따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tu consegues!라고 책에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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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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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행만 추구하는 브랜드보다 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p54)." 브랜드는 그저 듣기에, 발음하기에 좋은 음소 몇을 모아 놓은 단순음향이 아니라, 창업자와 그의 승계자들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를 압축해 둔 한 마디의 기업헌장입니다. 그러니 현대의 소비자들이 어찌 브랜드의 지향성을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 민은선 대표는 말합니다. "유행은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니 유행에만 기대는 기업은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여 민 대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기업만이 영속할 수 있으며, 기업은 따라서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지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는가? 저자는 자신이 업계에 데뷔할 무렵에는 열정, 감성 등의 요소가 높이 평가받았으며, 이런 요소들이 패션 그 자체로까지 여겨졌다고도 회고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진리라면, 그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어야 했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물론 열정은 소중한 요소이지만,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토종, 혹은 해외 브랜드의 많은 예들이 열거되는데, 무엇이 행동이고 무엇이 철학이며 또 무엇이 단순 열정에 불과했는지를 독자들이 읽으며 확인 가능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같이 정보가 흔한 사회에서는 일반 소비자들도 어떤 기업이 말뿐이며 어떤 기업이 행동에까지도 나서는지 얼마든지 검토 가능한 세상이라는 점도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정부 예산이 대거 투입된 사업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습니다. 대구 중심의 섬유 공업이 사양산업화하자 고부가가치 구조로의 전환을 꾀했던 건데, 이 책 p126 이하에서는 그 시도를 실패로 규정합니다. 한국도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제조업이 크게 일어났던 나라이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모두 그런 과거가 남긴 흔적에 크게 빚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덩샤오핑의 영도 하에 본격 부흥을 시작했었으며, 이 책에서는 경남 진주(한때 세계적인 실크 원단의 본산 중 하나) 역시 신화직물의 폐업을 계기로 완전히 명성을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원단 산업이 근방에서 잘 지탱되어야 의류 섹터도 활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인사이트에 수긍하게 됩니다.  

외환위기 여파에도 알게모르게 생명력이 지속되던 곳도 있었습니다. 밀리오레, 두타 등이 흥했던 건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리모델링에 힘입어 쾌적한 쇼핑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몰(mall)들이 "자생적 컨텐츠 생산지가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으로 변질되면 상가는 투자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라고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왜 바이어들이 떠났는가? 더 이상 새로운 디자인과 상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p136). 

원가 타령만 하고 중국에 운명처럼 먹힐 수밖에 없었다고 자탄할 게 아니라 원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아이디어, 창의력이 샘솟듯 솟아야 하는데 그게 더이상 안 되니 쇠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동대문 업체들이 광저우에 가서 카피를 해 오는 현실이란 말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들(특별히 눈 밝은 이들)이 서울 남대문, 동대문에 와서 싸고 질 좋은 디자인에 감탄했었습니다. 한국은 원래 이런 걸 잘하는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과거에는 동대문 주변의 봉제공장들이 있어 배후의 공급기지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된 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니어들을 시니어라고만 부르는 것도 일종의 편견입니다. p190을 보면 better, not younger라는 브랜드가 소개되는데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젊어지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원숙미가 갖춰지면 충분하다는 철학의 압축이라고 하겠습니다. 패션+아트로 머추어한 콘텐츠를 만드는 도쿄의 긴자식스 예를 보며 우리 패션 산업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도 영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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