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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학 첫걸음 ㅣ 사회자본연구총서 1
이승무 지음 / 사회자본연구원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요람에서 요람으로"
무슨
뜻일까요? 18세기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생산과 경제 생활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이래, 굴뚝에서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쉴새없이
돌아가는 공장 설비 같은 걸 두고,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상징적 풍광처럼 여겨 왔습니다. 풍요와 윤택를 떠받치는 두
축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벌어서, 기업이 대량으로 쏟아내는 상품을 부지런히 소비해 줘야
합니다.
매체에서 부지런히 광고해
대는 온갖 유혹에 그닥 끌리지 않는다면(당신의 수요곡선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 화려하고 매혹적인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혹 부적응자로 살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아니, 타인의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진에 조금도 기여 못 하는 "소비
무능력자"라면, 당신은 아예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이 탐욕적이고 착취적인 경제 구조는 역시 쉴새없이 당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입하고, 당신더러 매 순간 이런 세뇌로 거듭나는 "선형경제"형 인간이길 요구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소비 충동에 자극된 대중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은 역시 중단없는 생산을 완수해야 합니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은
채권자와 투자자, 주주,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죄를 짓는 시설입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상품은 무조건 만들어야 하며, 자원을
얼마나 낭비하든, 끊임없이 신상을 갈구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멀쩡한 집도 헐어내고, 싱싱히 자라는 나무도 마구 벌채할
뿐입니다.
웬만한 소국 몇 단위를
합친 분량의 해양을 오염시켜 생태계 일정 구역을 절멸시킬 위험이 따르더라도, 해저건 대륙붕에서건 기름을 파 내어 연료로 원료로
끊임없이 조달해야 합니다. 많이 쓰고 많이 벌 각오로 눈에 핏발이 벌겋게 서야 하며, 혹 자본이 충분치 못하면 어디서 빌려와서라도
물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레버리징이란, 유망한 사업에 잘만 활용되면 채권자나 경영자 본인이나 돈방석에 앉게 해 주는 참으로
융통성 있는 기법이기 때문이죠.
이런
선형경제의 구조는 다른 말로 "차입 경영"과 같습니다. 현실 경제에서 무모한 사업을 벌여 놓고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않으면 당장
서슬 퍼런 채권자들이 몰려와 문 앞에 진을 칩니다. 허나 약탈적 선형경제가 마구 끌어다 쓰는 자원은, 사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건
그렇지 않건, 합리적인 계획 하에 투입이 되건 아니건 간에, 누구 독촉할 채권자가 없죠. 선형 경제 시스템은 어디서 이런
무분별한 자원을 빌려다 쓰면서 함부로 낭비까지 저지르는 걸까요? 우선 우리들의 후손입니다. 다음으로, 말 없고 불평 없고 온화한
어머니 지구입니다. 채권자가 독촉을 않으니 우리들은 일단 빌려다 쓰고 봅니다.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분별한 차입은 곤란한데, 그나마
자원이 알뜰히 투입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당대 아니면 멀지 않은 후대에 파산이 확실시됩니다. 이런 추세, 지금 바로 막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쳐온 구조는, 그 싸이클을 매우 빨리, 또 상당한 광폭으로 회전시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분별하게 요람이 생성되어 감당 못 할 생산물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쓸모가 다한(때로는, 채 다하기도 전인) 물건들이
하루빨리 신상에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점유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공간은 유한한데 무분별하게 생산된 온갖 욕망의
대상물인 각종 상품의 찌꺼기, 폐기물들이 여기저기서 내 무덤이라며 몸을 누이니, 이제는 새 요람을 어디서 마련할지도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약탈 경제의 필연적 귀결점은 엄청난 폐기물의 무덤들입니다. 상품들은 물론, 이를 소비하는 우리 인간들까지, 지구상에 발
뻗고 자리할 공간이 없으며, 생산과 성장은커녕 생존의 여지까지 위협 받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선형경제, 낭비경제, 약탈경제의 대안으로, 무한한 업사이클링이 이뤄지는 "순환 경제 시스템"을 제시합니다. 이런 순환
경제는 사실 아주 예전부터 환경론자들, "지속 가능 성장론자"들로부터 지지되었고, 이 책의 저자들이 컨설팅 그룹 액센츄어
소속이며, 세계 경제 포럼(WEF) 측과 밀접한 유대를 맺는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듯, 일부 과격한 몽상가들로부터만 지지되는
입장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세계 곳곳의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고안, 창안되고,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주류적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아젠다입니다.
또한 순환경제
아젠다는, 최근의 기술적 발전, 메가트렌드로부터도 추진의 큰 모멘텀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사물인터넷(IoT)입니다. 어디에
있는 무슨 기기건 망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며, 이로 인해 소통의 한계 비용이 0에 가까워짐에 따라, 폐기물에서
부(wealth)를 만드는 기제를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폐기물과 자원
고갈 때문에 성장과 생존이 한계에 도달한 지금, 생각지도 못한 부문에서 이뤄진 혁신이 이런 기발한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으니,
긍정적인 시야와 원칙(편법 아닌)을 지향하는 문제해결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절감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메가모멘텀 중 하나는 우리가 다 잘 알듯 공유경제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유효하게 쓸 뿐 아니라, 개인
레벨에서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만족을 얻게 도우니, 경제학의 기본 과제와 이념에 상충되지도 않으면서, 근본 목적에 대한 더
영리하고 건강한 성취까지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 공유경제와 순환경제는 서로 별개의 지점과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만, 지속 가능한
성장과 쾌적한 환경, 후손에 부끄럽지 않은 윤리적 삶, 이 모두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이만큼 환상적인 궁합, 팀웍, 시너지의 예를
다른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이상이라도 현실에 옮겨지거나 검증이 채 마쳐지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는 남들보다 앞선 동참을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미 구체적인 실천 모델을 마련하여,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 한 나라의 거시경제를 선도하는
대기업들, 건전한 재무구조와 알짜 수익을 산출하는 중견 기업들, 장래가 유망한 스타트업 등 다양한 기업군과 협조하여 원대한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겨우 파릇파릇한 제언이나 벅찬 원칙의 천명이 아니라, 반대로 그간의 분투와 성과를
정연히 요약한 실무 백서,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이만큼이나 현실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명백한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니, 늦게
참여하면 그만큼 손해일 뿐이다." 어떻습니까? 남들이 따스하고 쾌적한 요람에서 윤리적 생산 활동에 몰두할 때, 본인만 꺼림칙한
"폐기물의 무덤"에서 남들 눈총 받아가며, 남는 것도 없고 양심에도 켕기는 재래식 순환생산만 고집한다면, 그건 참 처량하고
낯뜨겁고 어리석기까지 한 선택이겠습니다.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건 아직은 뭔가 큰 마음을 먹고 내리는 결단 같은 게 필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인류 경제사가 걸어온 지난
족적을 한번 되돌아 봅시다. 장인 수공업 경제에서 공장 생산 시스템으로, 속절없이 사람 손만 많이 가는데다 위험도 크게 따르는
방식에서 자동화로 다시 이행할 때에도, 초기 투자 비용은 많이 들고 경영상 이질감의 극복도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겁니다. 허나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 여겼기에, 많은 저항을 감수해 가며 썩 내키지만은 않는 발걸음을 디뎌 온 겁니다. 이 발걸음들이
그간 부정적인 발자국(footprint)만 잔뜩 남겼다면, 이제는 윤리와 산업적 성공을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며(그동안은, 절대
화해가 어려운, 영원한 상극이자 trade-off 관계였습니다), 여태 망쳐 놓은 생태 환경까지 복원하는, 역사상 유례가 없던
새로운 도전, 아니 축복의 전조에 직면하는 중입니다.
환경의
파괴와 온갖 혐오스러운 폐기물의 잔해는, 우리보다 앞선 세대가 우리에게 남긴 나쁜 유산이며, 우리는 지금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기에, 이대로라면 후손들에게 그나마 긍정적인 재산은 한 푼도 못 남긴 채 재앙만을 떠넘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파국만은
막아야 하며,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은 더 미룰 수 없는 "바로 지금(RIGHT NOW)"입니다. 그간의 나쁜 관행과
폐습에서 벗어날 각오만 품으면, 이미 뛰어난 인재들이 현실에서 유효성 검증까지 마친(아니, 유효성 개념의 재정의까지 이룬)
비즈니스 모델로 과감히 전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