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경리실무 - 회사에서 바로 써 먹는
손원준 지음 / 지식만들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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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득세법에는 중간예납제라는 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금액이든 한꺼번에 마련하려면 무척 힘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직 신고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무당국에 미리 납세액 일부를 납부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겠죠.

어떤 이들은 "국가의 편익을 위한 제도인데 왜 마치 납세자를 위해 준비한 양 생색을 내느냐?"고 반문합니다. 일리가 있고, 사실 제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 구시대적 관존민비 관념의 잔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 과거에는, 관서(官署)에서 인적, 물적으로 준비가 된 기간에 무슨 접수, 신고를 받아도 받아야 공무원들이 편했겠으며, 과세 표준 신고, 과세액 납부 역시 한 번에 처리해야 공무원 입장에서 그 처리가 원활했을 듯합니다. 뭘 띄엄띄엄 가져오면 수기로 다루기에 번거롭기만 하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는(?) 난감함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실제로 어제 제가 어느 채널에서 고령의 영세민이 법률 상담을 하는 걸 봤는데, 어느 변호사분이 나이도 있고 인상 쓰는 걸로 봐 성격도 좀 있어 보이던데 그런 외관이 주는 기대와 달리(?) 사건이 조금만 정형성에 어긋나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인상을 쓰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이 있어 보기에 참 안타까웠습니다. 변호사건 의사건 자신의 진짜 적성에 안 맞아서 루틴에 어긋나는 부분이 조금만 생겨도 당황을 하는 겁니다. 나이가 어린 루키면 루키라서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베테랑처럼 생긴 사람이 저러는 데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화풀이를 엉뚱하게도 의뢰인에게 하고 있으니 까딱 잘못하면 갑질이다 뭐다 해서 불미스런 일로 TV에나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 되더군요. 뭐 물론 이런 소위 전문직의 삽질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고, 미국에서도 서투른 중년 변호사, 의사 등의 더듬거림은 그리 드물지 않게, 또 대단히 민망하게 목격되기는 합니다.

여튼 요즘은 업무가 전산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꼭 이런 중간예납제가 아니라 수시 납부라고 해도 세무 당국에서 별 불편함을 겪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납세자의 편익을 더 고도로 도모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게 모두 전산, 디지털 혁명의 성과이며, 가뜩이나 모호한 규정으로 원성이 자자한 판에 그나마 이런 부분에서 편의를 마련해 주는 게 시대적 소명을 다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은 얼핏 보아 정말로 왕초보들이나 참고할 만한 편집이지 싶어도, 꽤 분량이 많고 두꺼워서 책상에 비치해 두고 자주 참조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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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관광 실무 -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2차 실기시험 대비
서병로.김민성 지음 / 박문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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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료관광이라 하면 아직 국내에는 낯선 분야처럼 여겨지지만 현대인의 기대수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장래에 급부상할 유망 산업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적용할 때 한국은 특히 인적자원,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편입니다. (그 외 근원적 입지 요인으로, 13억 인구라는 거대 수요 집단을 이웃에 두었다는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반면 산업 발달의 장애요인이라면 "의료 민영화"에 대한 공중의 강한 반감인데, 만약 의료관광이 의료서비스의 공적 순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위협할 수준이라면 독자로서 저 역시도 반대가 당연한 입장입니다.

의료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정체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거시경제에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게 원종하 교수님(외 공저)의 저서였는데요. 이런 저술 말고도 벤처기업 창업시 유의할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깔끔한 책도 지으신 교수님의 새 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인제대학교에 재직 중인데, 학교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친 분답게 "대학행정"에 대한 권위서도 집필하신 적 있어서 그에 대해서도 유익한 공부가 독자로서 가능했던 기억입니다.

KIPP 교육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약어(略語)이지만 이 책은 원 교수님 스스로 창안한 모토와 방침, 프로그램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헨리 8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를 거치는 기간의 영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 아니라, 국토는 협소하고 안보는 허술하며 국민적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 경제활동도 부진한 쪽이었습니다. 이런 많은 약점을 지닌 국가가 이후 세계 패권을 논할 만큼 번영을 누린 건 어떤 비결 덕택이었을까요? 이유는 여태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많은 논거가 지적되었습니다만, 저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적, 실천적 펀더멘털이 사회로부터 널리 수용된 데에서 그 기원을 파악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의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은 현재의 번영상을 가져다 준 표준화 교육, 지식 주입 양태의 시스템으로부터 큰 혜택을 본 바 있습니다. 교육의 객체들(학생들 중 주입식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도 중추 기능을 사회에서 맡으며 중산층으로 기반을 잡았고, 시스템 역시 양질의 인적 자원이 수행하는 서비스로부터 많은 기여를 받아내었습니다. 허나 이는 과거에는 그리 해서 성과가 났었다는 소극적 체험, 교훈일 뿐,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지금 큰 도움이 되질 못하며, 오히려 바른 교육과 인적 자원 계발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지상의 순위를 점해야 하며, 지식의 반복 재생이 아닌 창의적 안출과 건설 능력이 중요해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저자 원 교수님은 이에 대해 어떤 실천 방안을 마련할까요?

그가 제안하는 정답이 KIPP 교육입니다. 앞서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금언(金言)이 "아는 것이 힘이다"인데, 이의 원 표현에서 앞 한 글자를 따온 애크로님이죠. 공교롭게도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대 혁신(그레이트 이노베이션)"을 당시에 주창했고, 암묵적 동의이건 명시적 추종이건 영국 사회, 경제, 강단, 시민 사회 전체가 이에 호응했기에 여튼 국내 차원에서 대도약을 이루는 게 가능했습니다. 원 교수는 이의 현대적(그리고 한국적) 변용을 주장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나 자신을 알자"는 선결 과제를 제시합니다. 외우는 지식, 베끼는 학습을 통한 자기과시 혹은 자기기만이 아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면의 발전이 뒤따르는 공부가 되려면, 우선 학습 주체인 내가 누구이며 어떤 세계관, 어떤 필요, 어떤 적성을 지녔기에, 향후 무슨 학습과 연구를 통해 어떤 인간으로 발전해 나갈지 먼저 분명한 상(像)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저자는 "어떤 대답도 그 학생에게는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무슨 해답에도 일단은 긍정해 주고, 다만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학생 스스로 충분한 근거와 이유를 마련하게 하라"고 주문합니다. 또한 저자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어, 스스로 알아 가는 쾌감을 체질화하게 돕는 단계를 강조합니다. 질문은 그 자체가 성취이므로 포인트를 부여하여 동기를 심어 주고, 바른 질문이 곧 현실에 대한 바른 답을 도출하는 지름길임을 인식시킵니다. 물론 질문은 내적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추동력을 마련하는 반응이라야 하며, 멋진 질문을 통해 지도교수나 클래스 동료의 감탄을 끌어내려는 연극적 의도라면 이는 경계, 지양되어야 합니다. 교수의 역량은 이 지점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자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책 제목인 "인생과 사랑을 디자인하라"와 어떤 연결지점을 마련할까요? 저자는 KIP 프로그램의 초석인 "너 자신을 아는" 단계에서 형성된 강한 주인의식, 자존감, 정체성 등으로부터, 현재의 젊은 세대가 빠져든 소위 삼포, 칠포의 절망감이 치유되고, 밝은 미래의 설계를 위한 정당한 기초가 장악된다는 주장입니다. 바르게 자리잡힌 인생관과 자아관으로부터 창의력도 형성되고, 사회에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빚어 낼 수 있는 인생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도 절로 순도 높게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디자인"입니다. 자아실현, 거시경제 활성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 단계의 노력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이 KIP 프로그램은 압축적으로 설득하여 공동체 전체를 향한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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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학 첫걸음 사회자본연구총서 1
이승무 지음 / 사회자본연구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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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람에서 요람으로"

무슨 뜻일까요? 18세기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생산과 경제 생활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이래, 굴뚝에서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쉴새없이 돌아가는 공장 설비 같은 걸 두고,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상징적 풍광처럼 여겨 왔습니다. 풍요와 윤택를 떠받치는 두 축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벌어서, 기업이 대량으로 쏟아내는 상품을 부지런히 소비해 줘야 합니다.

매체에서 부지런히 광고해 대는 온갖 유혹에 그닥 끌리지 않는다면(당신의 수요곡선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도 이 화려하고 매혹적인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혹 부적응자로 살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아니, 타인의 일자리 창출과 고용 증진에 조금도 기여 못 하는 "소비 무능력자"라면, 당신은 아예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이 탐욕적이고 착취적인 경제 구조는 역시 쉴새없이 당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입하고, 당신더러 매 순간 이런 세뇌로 거듭나는 "선형경제"형 인간이길 요구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소비 충동에 자극된 대중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은 역시 중단없는 생산을 완수해야 합니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은 채권자와 투자자, 주주,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죄를 짓는 시설입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상품은 무조건 만들어야 하며, 자원을 얼마나 낭비하든, 끊임없이 신상을 갈구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멀쩡한 집도 헐어내고, 싱싱히 자라는 나무도 마구 벌채할 뿐입니다.

웬만한 소국 몇 단위를 합친 분량의 해양을 오염시켜 생태계 일정 구역을 절멸시킬 위험이 따르더라도, 해저건 대륙붕에서건 기름을 파 내어 연료로 원료로 끊임없이 조달해야 합니다. 많이 쓰고 많이 벌 각오로 눈에 핏발이 벌겋게 서야 하며, 혹 자본이 충분치 못하면 어디서 빌려와서라도 물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레버리징이란, 유망한 사업에 잘만 활용되면 채권자나 경영자 본인이나 돈방석에 앉게 해 주는 참으로 융통성 있는 기법이기 때문이죠.

이런 선형경제의 구조는 다른 말로 "차입 경영"과 같습니다. 현실 경제에서 무모한 사업을 벌여 놓고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않으면 당장 서슬 퍼런 채권자들이 몰려와 문 앞에 진을 칩니다. 허나 약탈적 선형경제가 마구 끌어다 쓰는 자원은, 사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건 그렇지 않건, 합리적인 계획 하에 투입이 되건 아니건 간에, 누구 독촉할 채권자가 없죠. 선형 경제 시스템은 어디서 이런 무분별한 자원을 빌려다 쓰면서 함부로 낭비까지 저지르는 걸까요? 우선 우리들의 후손입니다. 다음으로, 말 없고 불평 없고 온화한 어머니 지구입니다. 채권자가 독촉을 않으니 우리들은 일단 빌려다 쓰고 봅니다.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분별한 차입은 곤란한데, 그나마 자원이 알뜰히 투입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당대 아니면 멀지 않은 후대에 파산이 확실시됩니다. 이런 추세, 지금 바로 막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경제를 떠받쳐온 구조는, 그 싸이클을 매우 빨리, 또 상당한 광폭으로 회전시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분별하게 요람이 생성되어 감당 못 할 생산물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쓸모가 다한(때로는, 채 다하기도 전인) 물건들이 하루빨리 신상에 자리를 내어 주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점유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공간은 유한한데 무분별하게 생산된 온갖 욕망의 대상물인 각종 상품의 찌꺼기, 폐기물들이 여기저기서 내 무덤이라며 몸을 누이니, 이제는 새 요람을 어디서 마련할지도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약탈 경제의 필연적 귀결점은 엄청난 폐기물의 무덤들입니다. 상품들은 물론, 이를 소비하는 우리 인간들까지, 지구상에 발 뻗고 자리할 공간이 없으며, 생산과 성장은커녕 생존의 여지까지 위협 받습니다.

저자들은 이런 선형경제, 낭비경제, 약탈경제의 대안으로, 무한한 업사이클링이 이뤄지는 "순환 경제 시스템"을 제시합니다. 이런 순환 경제는 사실 아주 예전부터 환경론자들, "지속 가능 성장론자"들로부터 지지되었고, 이 책의 저자들이 컨설팅 그룹 액센츄어 소속이며, 세계 경제 포럼(WEF) 측과 밀접한 유대를 맺는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듯, 일부 과격한 몽상가들로부터만 지지되는 입장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세계 곳곳의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고안, 창안되고,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주류적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아젠다입니다.

또한 순환경제 아젠다는, 최근의 기술적 발전, 메가트렌드로부터도 추진의 큰 모멘텀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사물인터넷(IoT)입니다. 어디에 있는 무슨 기기건 망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며, 이로 인해 소통의 한계 비용이 0에 가까워짐에 따라, 폐기물에서 부(wealth)를 만드는 기제를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폐기물과 자원 고갈 때문에 성장과 생존이 한계에 도달한 지금, 생각지도 못한 부문에서 이뤄진 혁신이 이런 기발한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으니, 긍정적인 시야와 원칙(편법 아닌)을 지향하는 문제해결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절감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메가모멘텀 중 하나는 우리가 다 잘 알듯 공유경제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유효하게 쓸 뿐 아니라, 개인 레벨에서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만족을 얻게 도우니, 경제학의 기본 과제와 이념에 상충되지도 않으면서, 근본 목적에 대한 더 영리하고 건강한 성취까지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 공유경제와 순환경제는 서로 별개의 지점과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만, 지속 가능한 성장과 쾌적한 환경, 후손에 부끄럽지 않은 윤리적 삶, 이 모두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이만큼 환상적인 궁합, 팀웍, 시너지의 예를 다른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이상이라도 현실에 옮겨지거나 검증이 채 마쳐지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는 남들보다 앞선 동참을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미 구체적인 실천 모델을 마련하여,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 한 나라의 거시경제를 선도하는 대기업들, 건전한 재무구조와 알짜 수익을 산출하는 중견 기업들, 장래가 유망한 스타트업 등 다양한 기업군과 협조하여 원대한 프로젝트를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겨우 파릇파릇한 제언이나 벅찬 원칙의 천명이 아니라, 반대로 그간의 분투와 성과를 정연히 요약한 실무 백서,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이만큼이나 현실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명백한 대세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니, 늦게 참여하면 그만큼 손해일 뿐이다." 어떻습니까? 남들이 따스하고 쾌적한 요람에서 윤리적 생산 활동에 몰두할 때, 본인만 꺼림칙한 "폐기물의 무덤"에서 남들 눈총 받아가며, 남는 것도 없고 양심에도 켕기는 재래식 순환생산만 고집한다면, 그건 참 처량하고 낯뜨겁고 어리석기까지 한 선택이겠습니다.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건 아직은 뭔가 큰 마음을 먹고 내리는 결단 같은 게 필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인류 경제사가 걸어온 지난 족적을 한번 되돌아 봅시다. 장인 수공업 경제에서 공장 생산 시스템으로, 속절없이 사람 손만 많이 가는데다 위험도 크게 따르는 방식에서 자동화로 다시 이행할 때에도, 초기 투자 비용은 많이 들고 경영상 이질감의 극복도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겁니다. 허나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 여겼기에, 많은 저항을 감수해 가며 썩 내키지만은 않는 발걸음을 디뎌 온 겁니다. 이 발걸음들이 그간 부정적인 발자국(footprint)만 잔뜩 남겼다면, 이제는 윤리와 산업적 성공을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며(그동안은, 절대 화해가 어려운, 영원한 상극이자 trade-off 관계였습니다), 여태 망쳐 놓은 생태 환경까지 복원하는, 역사상 유례가 없던 새로운 도전, 아니 축복의 전조에 직면하는 중입니다.

환경의 파괴와 온갖 혐오스러운 폐기물의 잔해는, 우리보다 앞선 세대가 우리에게 남긴 나쁜 유산이며, 우리는 지금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기에, 이대로라면 후손들에게 그나마 긍정적인 재산은 한 푼도 못 남긴 채 재앙만을 떠넘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파국만은 막아야 하며,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은 더 미룰 수 없는 "바로 지금(RIGHT NOW)"입니다. 그간의 나쁜 관행과 폐습에서 벗어날 각오만 품으면, 이미 뛰어난 인재들이 현실에서 유효성 검증까지 마친(아니, 유효성 개념의 재정의까지 이룬) 비즈니스 모델로 과감히 전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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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시대의 경영학
최수형 외 지음 / 피앤씨미디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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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민완 저널리스트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 그의 경력 상당수를 쌓은 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그가 중국 현지의 사정에 정통한, 몇 안 되는 인 물 중 하나라는 뜻인데요. 최근 10년을 중국이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성장의 거대한 스트림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버텨 내었던 세계 경제가, 이제 그 성장 동력이 꺼져 가는 시점을 맞이하여 앞으로 믿을 만한 엔진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창조 경제"라는 키워드를 갖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조경제"라고 하면, 정부의 슬로건과 무조건 단세포식 조건 반사로 동일시(그에 대한 찬성, 반대를 막론)하고 보거나, 혹은 이스라엘식 벤처 열풍만을 연상하는 분위기가 우리 나라에서는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의 신정부 출범은 물론, 이스라엘의 "후츠파이즘chutzpahism"이 성황을 이루기 이전 시점에 이미 나온 책입니다(원서 기준). 그러니, 성장의 방식, 동인 물색에 치열한 고민이 이뤄지는 지금, "창조경제"의 원전 격인 이 책을 읽어 보는 건, 개인이나 정책 결정자에게나 공히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 선 이 책은 도입부가 상당히 신선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 CG 성과는, 이 영화를 본 세계 수억의 인구가 동의하듯, 종래와는 차원이 다른 역동성과 생동감으로 빛났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알고리즘의 고안을 두고, <반지...> 제작진은 이후 시스템의 인수라든가 후속 작품 제작을 위한 사용 계약 따위를 제안하지 않더라는군요. 본디 헐리웃은 개별 발주 건별로 생산 요소를 물색할 뿐이며, 대상이 (재고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 무형 자산이라고 해도) 그 영속적 보유라는 부담을 원치 않는 게 보통의 태도라는 거죠. 애써 개발해 둔 성 과물을 아깝게 사장할 위험에 처했으나, 엉뚱하게도 영국의 교통 신호 체계 개선이나, 화재 발생 같은 때 비상구의 구조 고안 같은 데에 이 체계가 대단히 요긴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요즘 경영 서적을 읽으며 대단히 자주 발견되는 게 "혁신"의 키워드인데, 이 혁신의 가장 흔한(그러나 유용한) 패턴 중 하나가, 특정 상품, 장치, 서비스를 기 존의 용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창조"라는 게 순전한 무(無)로부터 대단히 유용한 무엇을 창조해야만 하는 부대조건이 붙는 건 아니죠. 실물의 창의성뿐 아니라, 그 용도상의 창의성도 역시 창의성임은 분명하니까요.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이룬다면 그때 창의성이란 오히려 더 빛나게 마련 아닐까요.

 

이어 저자는, 이 창의성에는 물적 설비나 거대 자본이 소요되지 않으므로, 누구나 자신 개인의 "사고력"만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런 창조경제 종사자, "thinker"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업들도 더 저렴하고 더 효율적인 아웃소싱이 가능하므로, 시장의 기능 역시 더욱 활성화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저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를 두고 비정규직화라는 쪽으로 인식하고 거부감을 드러낼 수 있으나... " 여기서 창조경제는 어찌보면 신자유주의와 친화점을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본질 중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창의성"이 잘 구현되는 게 그 번영과 생존을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 분명하므로, 이데올로기의 구획 노력보다 이 이슈가 더 상위 차원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숙련 노동의 잉여는 상대적으로 어디서나 풍부한 편이나, 구미와 중국 모두 숙련 인력("창의력, 창조성을 충분히 갖춘 인적 자원"을 의미하는 걸로 보입니다)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이 어려움은 중국보다는 구미에서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은데, 우리 독자는 일단 중국통인 저자의 휴리스틱 진단을 믿고 갈 수밖에요.

 

그 다음에 전개되는 내용은 솔직히 좀 아쉽습니다. 전통적인 지식재산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물론 각국의 법제와 실제 사례(대학 교재에서 곧잘 제시되는 고전적 실례들)가 책 안에 이렇게 실 리면 무게감이 더해지는 건 사실이죠. 그런데, 1) 창조경제 = 지식경제의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스케이프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창조"의 내용이 "비창의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2) 책이 좀 오래 되다 보니 냅스터의 사례, dvd 불법 복제 등 낡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3) 지 식재산권에 대한 설명은 다른 책에서 많이 봐 오던 내용이고, 너무 규격화되어 있습니다.  p204 밑에서 다섯 번째 줄에 나오는 서술은 번역이 불명료합니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으니, 그런 성질을 띠는 것이 상표 등록 대상이 된다는 것인지, 예외로서 안 된다는 것인지가 모호합니다. p138의 "최혜국 조항"은, 과연 "국'이라는 말 뜻이 뭔지를 정확히 알고 그리 옮긴 건지 의문스럽습니다. 이런 책은 저자의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단어 하나까지 정확히 전달하는 쪽에 초점을 둬야 하지, 그저 겉으로 무난하게 보이게만 하는 윤문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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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新자본론 - 지난 10년 피케티가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자본주의 문제들
토마 피케티 지음, 박상은.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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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본디 "정치경제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범한 학문입니다. 이는 애덤 스미스 때도 그러했고, 리카도와 맬서스의 시대까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였던 것이, "순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란 존립 가능성이 의심스러웠다기보다, 그 존재 이유가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이며, 따라서 정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학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아니면, 계량적 분석 방법이 채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상황의 한계도 작용했을 터입니다.

물리학에서나 쓰이던 고등 수학의 방법론이 경제학에 도입되고 난 후, 이 학문은 이제 가치 판단이나 계급 간의 (추한)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이론 세계가 구축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과도한 비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적 세계관을 바탕에 둔 비주류는, "어차피 서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했음"을 명분으로, 이론적 통합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제 갈 길만 가는 모습도 보였지요. 그나마 최근의 모습은, (주류로부터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로빈슨 부인 같은 경향도 다소 완화되고, 주류 내부에서도 "비등하는 대중의 분노와 모순을 가뜩 노정하는 엄연한 경제 현실"을 이론이 반영해야 한다는반성이 일고 있습니다.

피케티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벼락출세자가 아니라, 18세때 파리 고등 사범에 입학한 수재였으며, 학부 시절부터 "불평등 이슈" 쪽으로 파고들어 美 MIT에서도 이 분야의 경력을 혁혁히 쌓았으며,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21세기 자본>이 최근에 학계는 물론 미디어의 주목까지 받으면서 대중에 유명해진 것 뿐입니다. 당장 이 책만 해도 일찍이 1997년에 그 초판이 나온 것인데, 이 책에서 그는 이미 "될성부른 나무"의 싹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집필한 이 책은, 짧은 분량(본디 교과서라는 게, 각론에서는 분량이 많지 않습니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무게로 다가옵니다. 흔히 갖는선입견대로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나 털어 놓는" 대중서가 아니라, 학생들 공부하라고 지어 놓은 교과서의 성격이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는 여기서 기존 학문적 성과를,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출처를 밝혀 가며 인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그것도 주로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의 소스까지 성실히 끌어오며 꼼꼼하고 치밀한 논변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극복해야 할 테제에 대해, 먼저 그 진의를 파악하고 성실한 인용을 베푸는 것이, 피케티와 같은 수재들이 언제나 잊지 않는 기본적인 아카데미즘 스탠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는 주로 프랑스의 현실에 주목하여,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사이에서 두드러진 건 임금 소득의 재분배 부분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위 계층은 사회 보장 섹터에서 지급, 보조 받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를 가르는 건 기본적으로 근로 소득이라는 것입니다. 세습 부문(그는 굳이 이 용어를 쓰네요)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나, 다만 그 분배의 불공평이 극심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상속-증여와 이전 소득에의 과세 통합을 주 내용으로 하는 부의 소득세(물론 우리 나라 경제학 교과서에도 소개되는 개념입니다. 재정학이라든가 타 분야에서도 익숙하죠. 이 책은 아무래도 프랑스어 원문이라서, 피수식어가 수식어의 앞에 위치하는 이 같은 어휘가 난무합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원 없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impot negatif. 영어라면 네거티브 인컴 택스라고 하죠)를 다시 환기합니다. 프리드먼이라는 이의 족적을 아는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구태여 이 이름을 들고 나온 피케티의 의도를 눈치 채고 미소가 씩 지어졌을 만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생전에 이미 이 이야기를 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은 이미지만 기억하고 디테일을 생략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아마 잊고 있었을 텝니다.

그는 여기서 다시 쿠즈네츠의 법칙을 "까기" 시작합니다. 사실 왜, 세이의 법칙 이래 아름다운 경제학 법칙들은 도통 현실에서 실현될 줄을 모르고 책 안에서만 폐쇄적 유희를 즐기고 있는 걸까요? 경제학의 거의 관성적 진리에 의하면, 선진국의 생산성은 하락하고, 개도국의 역동적 성장은 이와 대조되듯 각국의 자본을 끌여들여야 마땅합니다. 이로서 궁극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실종되고 공평한 부의 향유로 수렴해야 마땅하나.. 그 현실이야 우리가 보는 바대로입니다.

피케티의 결론은, "완전 균형 완전 시장 청산"이 신화에 가깝듯, 불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어 항상적 특질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왜 인도의 한계 생산성이 그리 높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본은 인도를 향해 러시하지 않는가? 그는 예리하게도 "생산 수단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닌, 인적 자본의 공평성 척도"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충실한 기존 성과의 인용에 이어, 이처럼 자신만의 독창적 견해를 치밀한 분석과 함께 클리어한 명제로 척척 이어가고 제시하는 솜씨, 과연 프랑스가 낳은 엘리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탁월한 재주입니다.

피케티의 주장 말고도 예컨대 가족 계수(quotient familial) 같은, 프랑스에만 특유한 제도나 개념, 기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용어 사전도 나와 있어서, 경제학 개념이 생소한 독자들을 배려하고,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일일이 참고 문헌 목록을 싣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아직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내용인데, 한국에서의 피케티 열풍을 감안하여 거의 세계 최초로 외국어 번역본이 나온 셈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피케티의 "리즈 시절"을 이 책을 통해 머리에 그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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