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공부다 - 18시간 공부 몰입의 법칙
강성태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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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solidarity)란 프랑스 혁명 3대 정신 중 하나인 "박애"와 매우 밀접한 관계입니다.  동양에서도 옛 성현들은 "군자는 화이부동"이라 하여, 시류에 간사하게 영합하는 처신을 소인배의 가장 큰 악덕으로 보되, 주위의 공론과 대세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처세의 미덕도 잊지 않고 떠올리게 했습니다. 소인은 힘에 버거워 애써 쫓아가는 시류를 두고 "대세"라고 애써 미화, 왜곡하지만, 둘의 차이는 건전한 양식을 지닌 모두의 눈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판명될 것입니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존재라서, 아무리 자유로운 개성, 자각, 자긍을 갖고 사는 개인이라도 고립된 섬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소통, 관계의 패턴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이냐 하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연대"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정신분석가인 저자 이승욱 선생님이 주장하시는 바는, "마음의 연대"입니다. 사악한 인간, 남의 정당한 몫을 뺏으려 드는 인간, 질서를 파괴하고 지배욕을 떳떳지 못한 방법으로 충족하려 드는 인간, 중상모략으로 검은 속을 채우려 드는 인간들도, 자신들끼리, 아니면 순진한 타인들을 꾀어 "검은 연대"를 꾀할 수는 있습니다. 저자분이 내세우는 건 그런 연대가 아니라, 바른 마음 열린 자세를 지닌 양식 있는 모두가 내릴 수 있는 판단으로, 파멸적 경쟁(이 역시 그를 부추기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의 책동이 있죠)이 아닌, 파편화하고 원자화되어 무기력해진 개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연대, 전선을 구축하자는 제의입니다.

 

 

처음에 책을 펴기 전에는 "제목이 별로 임팩트가 없다"고 느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에 붙을 제목은 이것 말고는 없었겠고, 책을 위해 책 제목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의 연대라는 주제를 위해 책의 몸을 그저 빌렸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처럼 체제 위기가 고조되고,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그것대로 부진하며, 정치적으로나 경제 구조상으로나 양극화가 진행된다는 실상을 감안하면, 이 "마음의 연대"는 새로운 시대 정신(Zeitgeist)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신 독자도 그 수가 제법 되는지, 인터넷 서핑하다 보면 "마음의 연대가 필요한데!"를 외치는 글도 제가 간간히 구경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연대의 작은 불씨가 피어나 마침내 온 들을 뒤덮게 되는 걸까요.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그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심리학적 도구"를 쓰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사실 인간의 행동이 왜 그런 패턴으로 이뤄지는가, 저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려면 그게 인간의 거동(bewegung)인 이상 심리의 발생, 전개 기제를 더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사회 전체에 적용하려면, 그 사전 준비 작업으로서 역사에 대한 고찰이 또 필요할 수밖에 없죠. 저자는 유난히 질곡과 고비가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며, 왜 특정 세대가 특정 정치인에 대해 특정한 감정과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일종의 발달 과정상 심리 구명(究明) 방법론을 개인이 아닌 집단, 세대 전체에 적용해 "부가가치 창출, 신분-계층 상승, 저축 잔고의 증대, 위신의 유지"에 대한 거대한 규모의 총체적 강박이 오늘날의 정치 지형 고착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성장지향의 가치관(때에 따라 윤리관)을, 환경상의 궁핍이 낳은 정신적 장애 요소로 꼽는 것입니다. "왜 OOO을 지지하는가? 정신이 병들어서이다." 이게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온 결론이라면 심드렁하게 지나칠 수 있는데, 심리학 베이스에서 출발하니 다른 관심과 주목을 모으는 거죠.

 

지금의 세대는 다르다는 거죠.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할아버지가 겪은 시대의 제약, 아픔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지난 세대가 깔아 놓고 지나친 시대의 또다른 모순과 부작용을, 온갖 상처를 받으며 부대껴야 하는 그들에게, 지난 세대가 "그들만의 역경"을 헤쳐 온 방식으로 극복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1) 환경 조건, 문제의 성질이 다르고, 2) 애초에 지난 세대가 가친 가치관부터가 뭔가 근본적 잘못을 안고 있기에, 지금 세대가 귀따갑게 듣고 있는 처방 아닌 처방, 훈계 아닌 훈계는 그들의 상처를 전혀 치유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치유는 고사하고 오히려 상처에 독극물을 주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시야입니다.

 

 

효율성의 극대화, 타인보다 나은 지표의 달성, 오늘보다 수치상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내일, 일초일각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는 모든 시간의 자본화, 이런 패러다임으로는 시스템의 붕괴, 파산을 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전망. 이 대표님은 진단에 이어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연대입니다. 왜 남성은 여성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유지하는가? 왜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서까지 부당한 굴레를 씌우는가? 폭력은 결코 소통의 방편이 될 수 없음에도, 약자조차 종종 폭력에 의존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부모들은 자기 친자식에게조차 혈연이 빚은 자연스러운 소통 경로를 통하지 않고 "외부의 프레임"을 통해 대하고 마주치며 대립하는가? 신자유주의가 모순에 가득한 건, 결국 인간 본성을 배반하는 출발점에서 그 태생을 맞이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소신입니다. 이를 해소하고 지양(止揚)할 방법은,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연대" 뿐이라는 게 결국 최종적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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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무엇인가? - 전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블록체인 입문서!
다니엘 드레셔 지음, 이병욱 옮김 / 이지스퍼블리싱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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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레이 커즈와일이 혁신의 "특이점"을 예견한 이래 우리는 놀라운 기술 진보와 급변하는 환경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커즈와일이 예견한 각론은 상당 부분이 틀렸거나 전망의 투명도가 개선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변화의 양과 질 면에서 이전 인류가 겪은 체험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격변의 세월을 우리가 살아내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상상의 타겟은 현실에서 목표를 비껴갈 수 있을망정, 상상의 볼륨만큼은 어느 저자나 예언가, 혹은 소설가의 거창한 담론이라도 현실의 그것이 이에 버금가지 않을 만큼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각각의 관점에서 아무 소리나 떠드는 듯해도, 지나 놓고 보면 경로에서 차이가 날망정 어느새 (살짝 바뀐 모습으로라도) 현실화하여 있습니다. 

본디 자본주의는 신용을 바탕으로 성립합니다. 중화 제국 오천년사(史)에서 그토록 통일 지배체제의 수요가 강했던 게, 마음 놓고 거래를 수행할 수 있게 상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돈을 떼어먹으면 끝까지 추적해서 채무를 상환받을 수 있는 공권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행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시중에 돈이 돌 수가 없습니다. 서유럽이 독자적인 논리와 구조로 세련된 경제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건(예:환어음), 열악한 여건(예:통일된 중앙 정부나 권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신뢰, 신용"이라는 그들 고유의 거래 문화가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진화를 거듭하며 장점을 잘 보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회 제도의 핵심은 종교나 문화, 정치 이전에(아니, 기저에) "경제"가 차지하며, 부(富)와 계약의 연속성은 곧 문명 지속의 담보를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트코인이란 거래 수단을 언제, 누가, 어디서 최초로 발명, 고안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몇 년 전 큰 부도(不渡) 사태가 도쿄에서 벌어지기도 했고, 근원적으로 그 실체를 담보해 줄 어떤 권위 있는 조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지금껏 존재해 왔던 모든 교환 시스템을 능가하고도 남을 효율성을 갖춘 이 비트코인의 장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습니다. 투기성 심한 자산(자산성이 있기나 한지도 의문이었고)을 부둥켜안고 있어 봐야 사기꾼들의 선동에 속아 돈만 날리기 쉽다는 경각 풍조가 정설로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사실 비트코인이 제아무리 태생적으로 장점을 갖췄다 해도, 경제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인 이상 경제 주체들의 믿음을 얻지못하면 기껏해야 장난감(더 나쁘게는 범죄에의 악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이란, 경제 "외적(外的)" 섹터에서 느닷 이 비트코인(뿐 아니라 여하의 전자 결제 수단)의 취약성을 보완하고 나선 흑기사입니다. 이 자체는 네트워크 테크놀로지의 독자적 진화 결과 등장한 기술이지만, 진척이 이뤄지다 보니 비트코인과 결합하여 익명성, 보안성 면에서의 약점을 메워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속도, 단순 편의"라면 순정 비트코인 시스템만으로도 이미 확보된 장점이었습니다만, 이제 그간 이용자들 사이에 못내 미심쩍었던 취약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의 돌파구를 찾은 셈입니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연구가 동력을 얻어 빠른 진전을 보이다가도, 어떤... 근본적이다 싶은 장애 요소가 등장이라도 하면 전망이 어두워지거나 아예 폐기되기도 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문명의 전 분야가 워낙 파괴적 혁신을 거듭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원군을 얻어 제2의 도약기를 맞기도 합니다. 이 블록체인의 경우가 딱 그렇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비트코인의 암울한 장래"를 논한 십 몇 년 전 글을 읽어 보면 무슨 석기시대의 넋두리 같습니다. 물론 물리학이나 인문, 어학 등 본성상 단계 도약이 힘든 학문에서는 사정이 다르고, 오히려 거장의 고전을 읽고 나서야 영감이 얻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전산학이나 로봇학습("인공지능"은 마케팅 용어고 요즘 공과대학에서 확립된 term은 "로봇학습이론"이죠), 또는 금융공학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물론 기초가 탄탄히 학습되지 않은 엉터리에게는 최신 사항의 학습 자체가 (뜻도 모르는) 구호 복창에 불과할 뿐이겠고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니, 구체적으로 그래서 우리 거래 현실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데?"라며 의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헌데, 책 한 권이 독자의 모든 의문을 풀어 준다면 그건 이미 책이 아니라 독자의 운명을 바꿔 줄 위대한 스승입니다. 이렇게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 어떻게 정답이 (특정 국면에서의 임시 정리 형태일망정)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을 읽고 뭔가 "내 미래는 이런 방향으로 개척해야 하겠구나." 같은 작은 영감이라도 떠오르고, 그를 바탕으로 개인에 알맞은 미래 설계를 꾸려야 할 것 같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서 평생 그걸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기술 발전 분야에 대해 스스로가 맞춤형 연구를 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살아남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블록체인을 화두로 삼은(아직 아주 구체적인 그림이 안 잡혔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화두 수준입니다) 책은 여러 권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한국"의 현황과 전망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창업이나 연관 섹터의 트렌드를 파악하려는 독자에게 최적화한 내용입니다. 

"충격"은 미래를 대비하고 변화의 파고에 올라타려는 준비된 이에게는 충격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금융 섹터와는 무관한 인생이다 싶어 쉽사리 넘길 주제가 절대 아니고, 먼저 가능성을 캐치하고 과감한 첫발을 디디는 이에게 블록체인 기술은 금맥 발견의 설렘과도 같은 흥분을 안깁니다. 제가 다 읽고 나서 느낀 포인트는 1) 현대 사회에서 어떤 혁신이건 타 분야와 무관한 건 없고, 먼저 연결지점을 찾는 사람이 대박친다는 것, 2) 4차 산업혁명이 너무 광범위해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라면 이 블록체인 기술을 먼저 공부하고 다시 큰 그림을 볼 것, 이 정도입니다. 4차 산업 혁명의 상당 부분이 특정 기업(들) 소속 성원에게만 의미를 갖는 주제라면, 세상에 돈 안 쓰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 블록체인 화두는 열외, 무관한 개인이 있을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 (그렇다고 섣부른 투자 권유에는 혹하지 말기. 주체적으로 공부하고 맞춤형으로 미래에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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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마음처방전 : 행동 - 천방지축 아이를 위한 행동처방전 오은영의 마음처방전
오은영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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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들러가 시대만 좀 잘 만났으면 아주 돈방석에 앉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하긴 이처럼 각양각색의 컨텐츠에 자기 이름이 인용되는 것도 엄청난 영예이며, 그게 다 자기 인생을 치열히 산 공정한 대가를 사후에나마 받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평가도 이미 무덤 속에 누워 백골이 진토된 고인의 넋이 어찌 알겠으며, 다 세상 이치가 바르고 고르게 마련이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은 우리 후세 사람들 마음 편하라고 지어내는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워낙 코칭을 자처하는 분들, 카운슬링의 대가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많아서 경력을 꼼꼼히 따져 보고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시절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반인 불특정 다수를 많이 상대해 온 인물보다, 유명 인사, 사회에 구석구석 영향력을 미치는 거물급을 고객으로 모시고,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 온 이들을 더 신뢰하곤 합니다. 이 책 저자 오히라 노부타카 같은 분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들러의 노작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결론이 언제나 "행동이 답!"으로 정리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자계서의 연구 노력(...)들이, 유독 그런 명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시대의 대중이 유독 이 지침에 호응을 보낼 만한 환경이 조성된 까닭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큰 결심을 하고 냅다 행동에 옮기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우리 독자들이 더 잘 알죠. 이런 식의 무리한 결심은 결심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이를 행동에 옮기다가 좌절하기가 쉽고, 그런 좌절이 모이고 모여 정신적 에너지를 갉아먹는 나쁜 습성만 키우기가 쉽다는 점을 말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그래서 살라미스 전술의 핵심처럼,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하되, 그 실천을 "습관"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살라미스 스트래티지의 핵심은, 목표를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라 놓을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우리는 흔히, "1시간이 무리이니 10분, 15분 단위로 쪼개라"는 식의 코칭을 접합니다. 이것도 학습자, 행위자를 배려한 원칙이나, 역시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저자는 아예, 10초를 기본 단위로 설정합니다. 10초. 도대체 무엇인가를 10초 단위로 잘라서 뭘 현실에서 얻어낼 수 있을지 일단은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이 10초의 시작이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고 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예시들은, 예외 없이 실천에 옮기기 편한 것들입니다. 독자로서 제가 맞닥뜨린 난관은, 그 예시 중에 제가 지금 직면한 과제, 혹은 그 비슷한 범주로 넣을 만한 항목이 없었다는 겁니다.

저자 역시 이런 반응을, 그의 오랜 경험을 통해 예상했을 겁니다. 이 책 2장(2레슨)에서 그는, 당신이 "사실은 무엇을 정말로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고 정확한 답을 내어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독자를 이끄는 그 과정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책을 봐도 요즘 트렌드처럼 강조되는 게, "바른 질문이 먼저 던져져야 바른 대답, 나아가 바른 실천과 성과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사람이 어떤 습관을 들이는 데에는 "그걸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정직하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사고로 소화도 못한 내용을 길게 떠들기만 하고 스스로도 무슨 내용인지 갈피를 못 잡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자도, 저렇게 하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니 저런 습관, 아니 강박에 빠져 들었을 겁니다. 이런 중독적 거동이 그 장본인의 가뜩이나 비틀리고 병든 정신을 더욱 해롭게 한다는 점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동을 거는 게 자동차든 그 외의 기계든 어떤 대상을 다룸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흔한 명제를 확인해서도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일단 F가 발생하면 그에 필수적으로 a, 즉 가속도가 붙기 때문입니다. 10초가 10초로 그치면 그건 아이들 장난 깨작거리다 마는 겁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거대한 성과로 이어지는 두번째 발걸음은, 일단 시동이 걸린 10초 액션에 가속이 붙게 하라는 주문이네요. 여기서, 밀도 향상이니(처음과는 달리, 같은 10초도 내실을 더 채워서 이어가라는 것), 환경 가속화(나의 힘뿐 아니라 과업의 최적화가 이뤄질 환경을 꾸미라는 것) 등등 다른 데서 못 들어본, 정말로 저자 자신이 고생고생해서 원칙화시킨 소중한 매뉴얼이 잔뜩 이어집니다. 추상적인 훈령으로는 가까운 사람들마저 교화시키지 못합니다. 잘하는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일일이 알고리즘화할 수 있는 이들은 드뭅니다. 저자의 노고에 대해 다시금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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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9-01-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책에 리뷰가 쓰여져 있는 것 같아요.
이 리뷰는 오은영씨 책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연습>으로 옮기셔야 할 것 같아요.
 
린 스타트업 - 지속적 혁신을 실현하는 창업의 과학
에릭 리스 지음, 이창수.송우일 옮김 / 인사이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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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개념화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 없이 툭툭 내뱉곤 하는 말 하나하나가 의외로, 정말 의외로 우리 자신의 먼 앞길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 구실을 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사 앞에서 동료 곁에서 제깐엔 날카로운 척 결정적 한 마디를 내놓는 척하며 그 나름 "분석의 한 마디"를 꺼내는데, 이게 윗사람 보기에, 그리고 이 상사와 선이 바로 닿아 있는 동료들 보기에 여간 신경 거슬리는 게 아닙니다. 말 자체도 부정확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거니와 아무나 다 알 수 있는 뻔한 이치를 혼자 특별한 안목으로 꿰뚫어 본 양 거드름을 피우는 그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사람도 남이 발견한 (객관적으로 우월한) 안건의 시방화(specification)을 두고선 "아무나 다 하는 걸 말만 꼬아서 표현했다"느니 뭐니 폄훼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할당된 기본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고서 이런 밉상을 떨어도 떨어야 할 텐데, 일도 못하는 자가 이런 작태를 보이니 승진은커녕 제 자리 하나를 지켜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노력을 하는데도, 재능이 있는데도 위에서 안 써 주는 게 아니라, 그 누구한테도 쓰일 가망이 없는 겁니다. 춘추 전국 시대나 중세라면 모를까, 요즘 같이 정보가 흔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경쟁상대조차 뭘 하고 있는지 바로 지득이 가능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노력을 열심히 경주하나 성과가 나지 않는 비운의 직장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력의 방향성보다는, 애초부터 노력의 질과 양이 남보다 처져서 도태되는 겁니다. 혹 방향성을 처음에 잘못 잡았다고 하죠. 남들이(협업이든 경쟁이든) 어떤 쪽으로 지표를 파악하는지 주변만 둘러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교성이 전무하고 네트워킹 능력이 없거나 뭔가 지적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방향성을 잘못 잡아 애써 기울인 노력이 헛되이 썩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CEO라면 혹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지금 해양플랜트 투자의 대패착 때문에 한꺼번에 부도를 맞게 생긴(어찌어찌 헤쳐나가겠죠) 한국 조선 3사처럼 말입니다. 그 정도 요직에 있는 이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그런 종류의 실패는 일부러 할래야 할 수가 없죠. CEO급 과오를 평사원 레벨에서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대단한 희귀성을 지닌 경우겠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운이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실패자, 무능자는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지 않고, 어떤 사소한 우연에 의한 성과도 모조리 자신의 덕으로 돌립니다. 오너의 3세, 4세가 부서에서 이런 행태를 보여도 곱게 봐 주지 않는데 하물며 아무 배경도 능력도 없는 사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예언한다." 마찬가지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윤색, 왜곡한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모든 게 남 탓인데 이런 사람한테 무슨 발전이 있겠으며 어느 조직에서 쓰임을 받겠습니까.

일본 자계서 저자분들 중에 "운"에 대한 논급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아직 합리적인 의사 결정 문화가 자리잡지 않고(그래서 최악의 무능자가 요리조리 핑계를 댈 여지가 생기겠고요), 좁은 국토에 사람은 많고 경쟁은 덩달아 살인적이다 보니 "왜 이렇게 운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가?"라며 한탄하는 이가 많아서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운 역시 머나먼 시간 전에 당신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반대로 남탓 타령에 허송했는지의 냉엄한 응보"라며 일찌감치 결론을 내고 있더군요. 이 책 저자분은 아예 모든 토픽을 "운"이란 키워드 하나로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운"이란 대상에 대해 이처럼 틀리든 맞든 절절히 사례 분석을 해 보면, 그 역시 다른 모든 난제처럼 통제의 손아귀에 들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자의 진정성이 과연 얼마나 문장에 배어 났느냐가 이런 책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이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정말 고민을 하고 책을 썼는지, 내가 독자라고 생각하고 정말 이 주제에 대해 절실하게 머리를 짜낸 결과 답 같은 답을 줄 수 있을 자신이 있는지는 문장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답이 어디 매번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성실히 쓰여진 책을 읽고서는, 독자가 혼자 나중에 정리하는 시간에 자기 생각이 전보다 발전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요. 회삿일도 마찬가집니다. 정답이나 무슨 구원의 아이디어를 내라는 게 아니라 자기 일처럼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짜내라는 건데 어차피 망한다며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직원을 누가 데리고 있으려 하겠습니까. 행운이건 불운이건 자신이 다 자초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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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 - 서른 살 고시 5수생을 1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기적의 습관!
김범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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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탄생은 기적입니다. 어떤 인생이라도 태어날 때는 부모님 포함 주변 모든 이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태어납니다. 그러던 이들이, 왜 자라서는 질시와 모함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한 채 목숨을 끊고, 혹은 무모한 위험에 자신을 방치하여 불구가 되거나 공적 장부에 치욕스런 이름이 등록된(예:전과자) 꼴로 남는 걸까요? 또 어떤 사람은 소속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밀려나 거리를 헤매는 초라한 실업자 꼴이 되는 걸지요?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도 이론적으로 한 해에 52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값진 기록이 아닐 수 있지만, 이 책은 제법 수위권에 오래 머무른,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꽤 진지한 주목을 받은 내용을 담았던 책입니다. 그 이유는 읽어 보고 나니 더 분명해졌는데요. 저자가 생사의 기로에서 "6분 동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체험을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꼭 코마 상태에 진입했다가 깨어난 게 아니라도) 살아난 것도 관심을 집중시키기 충분하지만(그래서 사후 체험이니 뭐니 하며 알고 보면 몽롱한 꿈에 가까운 "브로큰 메모리"를 상품화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한번 "물건너 갔던" 생을 다시 이어가는 "두번째 기회"를 얻고 정신적으로나 체질적으로나 다시 태어난 사람의 간곡한 증언을 듣는 건 누구의 관심도 끌 만합니다.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의식을 되찾는다는 보장이 설사 있다 해도), 권태와 환멸에 찌든 영혼을 가뿐하게 리프레시하고 싶은 욕구와 필요는 누구나 갖고 있을 테니까요.

여튼 저자의 말은 그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보니, 매일 맞는 아침이 너무도 반갑더라" 여기에서 새로운 각성이 시작하여, 일상의 모든 시간을 계획성 있게 설계하고,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하겠다는 결의로 자신의 정신이 가득차게 되더라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만약 저라면 그런 큰 사고를 겪고 대략 6일 정도, 아니 6개월이라고 하죠, 여튼 그런 긴 기간 동안 무의식으로 있다가 깨어났다 쳐도, 모르죠, 직후 6주 정도는 정말 감사하고, 다시 태어난 느낌일 지 모르지만, 이후에는 예전의 타성에 젖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요.

그래서 저는,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고 전미 권역에 걸쳐 유명인사가 된 건 그저 죽었다 깨어난 희귀 체험을 해서가 아니라, 그 각성한 인격에 그만한 자격을 이분이 갖춰서가 아닐까, 그런 판단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전세계 70억 인구 중 치명적 사고를 겪고 재기한 사람이 한둘이 겠습니까. 당장 우리만 해도 국회의장을 지낸 김 모 원로 정치인의 경우, 김영삼이나 허문도보다 훨씬 고령임에도 지금까지 생존해 있고, 이미 유신 시절(40년도 전이죠) 뇌졸중 발병 때문에 운신을 못하고 의사로부터 뇌수술을 권고 받았으나 극력 만류한 후 자가 재활 노력 끝에 살아났죠. 전 그게 더 놀랍고, 그런 스트로크가 왔음에도 지금까지 건강히 생존한 게 더욱 놀랍습니다.

이 책은 담은 내용도 참신합니다. 그 중 하나를 예로 들면 "기록이 기억보다 우선한다"는 건데요. 저 역시 겉으로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하루하루의 로그(주제는 밝힐 수 없지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일단 남겨 두면 목표를 일정대로 이루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체계적으로 장기적인 전략적 사항을 조망할 때도 뭔가 가시적으로 기여합니다. 절실하게 당면한 과제에 부딪히고, 필사적으로 그 해결을 도모해 본 사람이라야 이런 아이디어가 내면에서 솟아납니다. 하루하루를 떠밀리듯 사는 사람은 결국 직장에서도 밀려나는 게 필연일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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