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조직활력을 어떻게 높일까 - K-매니지먼트 3.0
이경묵 외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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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한국 직장에도 연공 서열, 직제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계급 파괴" 바람이 불었습니다. "OO부 XX과"라는 소속 대신, "∆∆ 팀"과 같은 성과 위주의 유닛이 일상화되었죠. 심지어는 공식 직제가 큰 의미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팀제나 다름 없는 구조였던 중소기업이나 영업팀 같은 곳에서도 (그 실질이야 어찌되었던 이름만이라도) 이를 따라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서 완전히 무풍지대일 것 같은 공무원 사회, 공기업에서도 현재는 "태스크 포스"제를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팀 개념"은 자유로운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는 서구 사회에서 그 효용이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지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유교, 농경사회적 전통을 보유한 곳에서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습니다.

본디 서양은 "슈퍼맨"을 지향하면 했지, 집단에 개인을 매몰하는 문화는 기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팀을 짜서 일하면, 동양인들(공, 사 불문)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성향이 "팀 활동"에 맞아서가 아니라, "팀"을 잘 짜고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팀" 중에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여기에는, 개인 단위로는 아예 성취가 불가능한 것도 포함됩니다), 도무지 달성이 불가능한 높은 실적을 올리는 "드림팀, 슈퍼팀"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드림팀이 슈퍼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드림팀이 다 슈퍼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슈퍼팀은커녕, 평범한 팀보다도 못한 성과를 내고 온갖 비난을 다 받는 드림팀도 많았습니다. 이렇다면, 구성원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그들로 이뤄진 "팀"까지 잘하란 보장은 없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 최소한 남들이 전혀 바라보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팀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내기보다, 최근에 존재했던 슈퍼팀의 성공 사례 7가지를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답안의 pool을 제공합니다. 각 챕터는 "슈퍼팀" 하나씩을, 경영 분야뿐 아니라 군사, 대중문화,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택하여 그 구체적인 성과의 경위를 자세히 풀어주고 있으며, 챕터 말미에는 이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교훈을 명제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장에는 픽사의 사례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첫째 장에서 굳이 이들을 다룬 데에는 저자의 분명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픽사의 예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대체 왜 팀이 필요한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공동의 목적이 없다, 팀을 꾸려서까지 이뤄야 하는 열정의 대상이 없다면, 처음부터 팀제를 검토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또한, 활동 영역이 아무래도 예술 분야다 보니, 영화를 위해 일을 하느냐(-돈을 버느냐), 그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느냐 같은 기초 인식에서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이 "팀 픽사"의 예에서 금전적 보상은, 빼어난 개인의 동기 유발을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 챕터들에서도 나오는 포인트이지만, 너무 단결이 잘 되고 대외적으로 순조롭기만 한 팀도 지속성 이슈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긴장감은 팀의 건강성 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테니스에 데이비스 컵이 있다면, 골프에서 국가(미국 대 유럽의 형식입니다만) 대항전으로는 라이더 컵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에는 복식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골프에서는 압도적으로 개인 단위의 시합이 주류 포맷입니다. 게다가, 골프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개인 멘탈 조절의 비중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직업 골퍼들은 극도로 예민한 감정적 성향을 보입니다. 이런 골퍼들로 한 팀을 꾸린다면, 팀웍이니 매니지먼트니 하는 게 타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꼬입니다. 그런 면에서 콜린 몽고메리가 중심이 되어  2010년 라이더 컵 대회를 위해 결성했고,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맞아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경영학적 측면에서도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가 지금 피파 월드컵을 보면서도 알 수 있지만, 개인기가 능숙하다고 반드시 팀에 적시적소의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며, 단 한 번의 슛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승부차기를 잘 해내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선수들로 이뤄진 팀일수록, 그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콜린 몽고메리는 그 자신이 필드 멘털의 달인이었고, 이런 체험과 소신, 강렬한 스타일로, 상대에 비해 그닥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그가 타이거 우즈에 대해 코멘트한 걸 눈여겨 볼 필요가 있더군요.

전쟁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전쟁이 꼭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터진 전쟁이라면 그냥 손 놓고 패배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의 "승리"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한 명(혹은 소수)의 힘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게 전쟁이요, 평화시에는 이 전쟁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 게 범죄자 소탕, 폭력 진압, 인질범으로부터 인질 구조 같은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세번째로 다룬 게, 1980년 주영(駐英) 이란 대사관에서 이란 내 쿠제스탄 분리주의(이란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이런 위험이 상존합니다)자들의 인질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영국 툭수부대 SAS는, 놀라운 능률과 과감한 작전, 치밀한 계획으로 인명 손실 0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SAS는 영국군 뿐 아니라 전세계 군사조직 중 최고의 명예를 상기시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사하는 교훈은 강렬했는데요. 최고의 팀은 결코 개인의 개성을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난척하고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을 과시하고, 더 날카롭게 갈고 다듬을 것으로 조장됩니다. 그러면 과연 팀이 유지가 될까? 이 스쿼드는, 워낙 빼어난 개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스킬이나 체력만으로는 분명한 우열이 안 갈라집니다(구테여 가를 필요가 있다면 말이죠). 따라서, 조직원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 기준은, 같은 동작을 수행해도 그 동작이 가능하면 팀을 위한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느냐입니다. 잘하는 건 누구나 다 잘합니다. 더 잘하는 팀원은, 같은 노력을 들여도 팀의 다른 구성원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선택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팀 때문에 개인을 죽이는 우를, 이 슈퍼팀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많은 "엉터리 팀"은, 무능한 팀원을 피곤하게 만드는 우수 팀원을 기를 쓰고 끌어내리려고만 들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팀은 결코 개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룹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와 대조되는 컬러로도 유명하지만, (그 음악적 성취의 레벨은 별론으로 하고) 비틀즈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멤버가 거의 다 살아 있으며, 개인 단위로 활동하기보다(이 정도 나이면 팀은 고사하고 개인 단위 활동도 어렵습니다. 물론 롤링스톤스의 이 빼어난 멤버들은 개인 활동도 합니다) 여전히 팀을 이루다시피 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뮤지션들이야말로 세상과 융화를 못 이루는 가장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임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일이죠. 우리가 잘 알지만 믹 재거니 키스 리처즈니 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은 또 좀 괴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도 무려 반 세기를 잘 "굴러 온"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실제로 이 책에 나온 바로도, 믹과 키스는 불과 얼음이라 할 만큼 상극이었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제 스타일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하나의 요령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은근히 강조한 건, 로니(론) 우드의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개성이 내 개성과 실제로 충돌만 안 한다면,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는 게, 이 무지막지한 개성이 모인 팀이 그리 오래도록 굴러간 비결이라는 거죠. 이 챕터는 "공연은 열심히 하는데 돈을 못 버는" 초기의 실패에서 시행 착오를 거쳐, "인기와 공연 성공을 고스란히 수입으로 연결시키는" "사업 단위로서의 롤링스톤스"가 커 나가는 모습도 알려 줍니다(이 책의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대목).

요즘 잠잠한 동네가 있습니다(더 시끄러워진 우크라이나, 이라크 같은 데도 있지만). 바로 북아일랜드입니다. 요즘 "신페인당"이니 IRA니 하는 말은 아예 뉴스에 안 나옵니다. 이유는 바로 지난 세기말,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이 잘 체결되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백년(최소한으로 잡아서요) 불구대천지 원수들이 이런 극적인 화해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토니 블레어 행정부가 구사한 전략은 1) 상대를 악마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 2) 그 자리에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대신 채움 3)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되, 억지 화해가 아닌, 대립하는 현실의 긴박함도 상기하게 함 등의 모범적 수순이었습니다. 원칙은 알아도 실천이 어려운데, 토니 블레어 팀은 분리주의와 연방주의 세력 대표자들을 한 데 모아, 이들을 "평화'라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팀"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팀은 이처럼, 종래의 피아 구분을 극복하는 인식상의 도약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는, 억지로 개성을 누르는 선택은 필패로 이끌어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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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본질, 위기, 유망산업 보고서
비피기술거래 편집부 엮음 / 비피기술거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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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죠. 사실 돈은 거짓말도 안 할 뿐 아니라 오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의 돈은 잦은 실수를 범하지만, 간절히 이익을 바라는 마음과 마음들이 합쳐진 대세는 대개 미래를 정확히 맞힐 뿐 아니라, 심지어 미래를 형성하기까지 합니다. 브렉시트가 언론과 학계의 (희망섞인) 바람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국민투표에서 가결되었을 때 시장은 처음엔 혼란상을 보였지만, 이후 차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이는 시장(곧 "돈")이 바라본 미래가 그리 불안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후 브렉시트 변수는 그보다 큰 폭으로 장을 흔든 다른 사건들과 뒤섞여 무엇이 그 순수한 효과인지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죠. 그것도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실 다른 배경색 때문에 혼란이 유발되는 불리한 점 없이 "그것만의 순작용"을 캐치하려면 초기에 정밀한 관측을 반드시 해 내야만 합니다. 조명진 박사님의 이 책은 그런 관측자들, 혹은 이후에라도 대세를 정확히 추적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좋은 지침을 마련해 줍니다.

 

작금의 세계적 대세는 globalization이 아닌, (책의 표현대로) 국수주의 유사의 어떤 것입니다. 딱히 국수주의라고 규정하기도 어려운 게, 일단 흐름을 이끄는 지도자가 분명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기보단 현재의 대세에 저항하는 "소극적"인 흐름이며, 결정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그리 장기적인 추동력을 가질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물론 어디까지나 희망섞인 추측이지만). globalization이 불과 20년전만 해도 세계의 미래를 완전히 결정지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졌는데 이처럼 가까운 시점에서 커다란 장애물을 맞을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겁니다. 아직도 학부 교과서(분야 불문)는 globalization을 대전제로 삼고 각론을 전개해 나갑니다. 이제 어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까지 수정이 이뤄져야 할 국면일까요? "브렉시트"는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기보다, 향후 이를 계기로 전체의 국면이 완전히 바꿔질지 그 상징성을 놓고 붙는 타이틀에 불과합니다. 이 책도 그런 분석과 예측이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럽의 통합은 원래 보수당(영국의 그 정당뿐 아니라 각국의 우파를 대변하는)에서 주도하던 것입니다. 미국이 단일 시장, 거대 영토,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의 패권을 쥐어 가자, 자신들도 종래의 각개 약진상을 유지해서는 가까운 미래에 도태되리라는 절박감이, 특정 산업의 효율화(석탄, 철강 기반)라든가 "단일 시장의 형성"을 일단 목표로 만들기 시작했었죠. 노동과 자본을 싼 값에 이용하려면 이런 자본가측의 단일 대오 형성이 시급한 과제였고, 분명한 전망을 할 수 없었던 노동자측은 이에 저항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현 영국 노동당 당수 코빈 같은 사람). 그러던 게 주로 수정주의자, 혹은 지식인 좌파를 중심으로 "차별 없고 국경 없는 연대와 평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었고, 일정한 정책적 양보 끝에 우파가 노선 일부를 수정함으로써 양측이 합의에 도달, 항구적인 동력을 얻기에 이르렀죠.

 

좌우 양쪽이 공감하는 정책이 왜 이런 저항을 맞고 있는가? 저자는 명쾌하게 두 가지 논점을 듭니다. 하나는 이민자 감소, 다른 하나는 알지도 못하는 먼 곳에 사무실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관료제에 대한 반발입니다. "이민자 감소"같은 이슈가 이 소동의 중심에 선 걸로 보아 현재의 움직임이 어떤 이념적 기반까지를 지닌 건 아닌 게 확실하며, 이 때문에 "포퓰리즘" 같은 일시적 변덕이나 집단 감정 표출 정도로 격하하는 쪽도 있는 것입니다. EU 출범의 목표 중 하나가 단일 노동 시장 형성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자는 쪽에 분명히 있었던 만큼, 이제 국경 철폐가 명백한 현실로 다가온 지금 특히 노동자층이 가부간에 분명히 무슨 의사표시를 할지가 표면화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노"를 투표로 표명했고, 아직까지는 개별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체제의 룰에 비추어 이는 존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 명백한 "임기응변"식 대응을 현재까지는 보이는 트럼프도, 자신을 찍은 자국의 개별 노동자들의 "긴급하고 당면한"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역시 이주 노동자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골치를 앓는데, 이는 멕시코와의 엄존하는 국경이 아직 철폐되지 않았는데도(nafta는 장기적으로 이를 추구합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라틴인들 때문에 촉발되었고, 하루이틀 지속된 문제가 아닌 만큼 단칼에 해결되기는 매우 어려우며 무엇보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이를 암암리에 반기고 있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재닛 리노가 불법이민자 여성을 베이비시터로 고용한 데서 크게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듯, 이미 뚜렷한 현실을 형성한 "불법"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거 추방이나 방벽 건설(그것도 상대국 부담)으로 밀어붙이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입니다. "브렉시트"와 직접 관계가 없는 미국의 사정도 현재 이런 판입니다.

 

미국은 불법이민자를 국외로 추방하고, 영국은 "국민의 뜻에 따른 이혼"을 감행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브렉시트"로 촉발된 국수주의가 지속성을 못 가지는 이유는, 이런 일시적 과거회귀 움직임이 더 많은 사회 문제, 경제난을 낳을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국은 거대 시장에서 고립된 후 과연 누구와 경제 파트너십을 새로 쌓아야 할까요? 해가 지지 않던 식민 영토도 다 잃은 판에 말입니다. 영국산 물품에만 관세가 높이 붙으면 어느 나라에서 이들 상품을 사 주겠으며, 보복으로 관세 장벽을 높인들 고충을 겪는 건 자국 노동자층입니다. 결정적으로 심각한 건 기업들이 아예 EU로 본거지를 옮기려 드는 경우입니다. 트럼프처럼 일일이 정치인들이 나서서 딴지를 걸거나 협박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달러의 장래가 불투명하므로, 향후 강세를 보일 전망이 있는 타국의 통화로 품목을 분산한 투자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때 금값이 등귀하고 시장이 혼란스런 움직임을 보였을 때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저자는 EU의 약화가 곧 NATO의 약화로 이어져,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전체에서 중국의 패권국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렇다면 외환 품목 다변화의 요구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죠. 중요한 건 한 가지 노선에 고지식하게 얽매일 게 아니라, 수시로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잘 살펴 현명하고도 정확히, 빠르게 대응하는 융통성이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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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공부법 - 모든 공부의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신영준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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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보통 타고난 적성이 맞아야 잘 해 나갈 수 있다고들 합니다. 이 적성이란 "지능"이 첫째 요소이며, 흔히 "엉덩이로 공부를 한다."는 말이 있듯, 우둔하다시피, 혹은 억척스러운 기질을 동원하여, 안되는 것을 되게끔 밀고나가는 성실성을 둘째 요소로 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분처럼 국내의 서울대, 국외의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이 두 가지 요소, 지능과 성실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들 하죠. 그래도 힘듭니다. 공부의 엘리트가 되려면, 지능과 성실성 모두를 갖추어도 힘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분처럼, 인생의 어느 한 단계에서도 공부라는 녀석에 끌려 가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의도와 능력으로 갖고 놀다시피 펜과 종이를 다룬 정도가 되어야, "에, 공부란 말이지..." 하며 뭔가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될 것입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과연!'하는 말이 절로 나왔고, 페이지를 샅샅이 훑다 보니 "저자 자신의 이야기만 써 내려가도 할 말이 얼마든지 많으실 텐데, 그 우월한 위치에서 타 케이스들을 메타적으로 이만큼이나 여유 있게 내려다 볼 수 있구나!"하는 점에서 다시 경탄이 나왔습니다.


공부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한 사람은, 공부 잘한 사람, 거기에 성공까지 겸한(학창 시절에 공부 좀 잘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성공담을 읽거나, 혹은 공부에 대한 일반론을 접할 때면, 일단 열등 컴플렉스의 발동으로 부정부터 하려고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 아닌 다른 대상을 두고 호오(好惡)의 attitude를 두는 건 어디까지나 그의 자유, 재량의 영역입니다만, 그 범위를 넘어서서 인식의 영역까지 억지로 교정을 하려 든다면, 그것은 이제 정신의 건강성 진단에까지 이슈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인지부조화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갖고 있는 심리 문제이지만,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현실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면, 그건 이미 멘탈의 정상성을 걱정해야 할 차원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모든 논의는 읽는 입장의 주관적 감정 상태를 떠나서,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 본인이 학창 시절 공부로 큰 성공을 거둔 케이스고, 그 주위에 공부와 생업 두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친구들이 포진해 있으며, 자신의 자녀를 최우등 성적으로 국내 최고 명문대 경영학과에 입학시켰으며(게다가 특목고나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 출신이라고 하네요), 지금도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커리어를 지닌 이의 저술이라면, 특히나 자녀를 둔 입장에서 이 "강력한 공부 방법론"이 끌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죠. 미혼 직장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안 하면 못 살아 남습니다. 공부는 수능 때까지만 하고 이후는 종료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는 과거 어린 시절의 이슈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화를 반드시 거쳐야 그 인격과 정체성, 나아가 "가치"가 완성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사회화의 필수 도구인 "공부"라는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성취를 거둘 수 있으려면 두 가지 능력이 필요된다고 정리합니다. 그 하나는 인지능력입니다. 인지능력이란 우리가 소박하게 이해하는바의 "지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끈기, 열정, 집념, 도전정신, 동기부여 같은 비인지능력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이기도 한 "그릿"은, 이 비인지능력의 영역에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이 그릿(grit)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p84),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를 달리 표현하여, "마음의 근력(筋力)"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근력이라는 말은 근육의 힘을 의미합니다. 근육의 힘도 힘이니만큼, 타고난 요소가 크게 작용할 수도 있고, 타고난 바는 변변치 못하나 후천적인 트레이닝으로 깜짝 놀랄 수준까지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튼 이 그릿의 정의가 그러하다니, 그의 구체적인 내용 요소는 무엇무엇인가? 역시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자기동기력 ㉡자기조절력 이 둘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동기가 있어야, 뇌의 중추에서 합당한 명령을 내려 특정 목표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가게 할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던가요? 부모가 애를 채근하고 다그쳐서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할 수는 있습니다만, 책 속에 담긴 내용을 머리 속에 집어 넣고 바른 자리를 잡게 하는 일이야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설사 할 수 있다고 쳐도, 그처럼 강제로 주입된 지식이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수능에 이르기까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방대한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여기에 체계적인 자체 작동 원리까지 부여한 아이와는, 억지 춘향 공부를 한 애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함이 명백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자기동기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기조절력이란, 그렇게 부여된 동기가 마음의 바른 곳에 자리잡은 다음,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유혹과 장애, 방해 요인에도 교란당하지 않고, 정해진 경로를 따라 묵묵히 전진하는 뚝심, 절제력을 말합니다. 환경이 다소 불우한 편이라면 주로 뚝심이 요구될 것이며, 환경이 다소 여유로운 편이라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통제력" 쪽이 더 요구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릿"의 조건을 다룬 오른쪽 네 행을 보십시오. ①②③④의 순서대로 재배치하여 그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G.R.I.T가 됩니다. 저자는 여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능"이니 "지능"이니 하는 요소는 일종의 잠재력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잠재력"은 말그대로, 눈 앞에 드러나지 않은, 수면 아래에 잠재하고 있는, 그 발아와 만개를 기다리고 있는 발판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잠재요소가 만약 어떤 환경적 이유, 또는 심리적 장애 등으로 인해 그 파괴력이 현실화되지 못한다면, 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우등생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진정한 공통점이, "지능" 따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저자의 설명은 바로 그 해답이 "그릿"이라는 거죠. "그릿"은 그래서,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정의됩니다. "노력"과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 반대, 모순 개념으로도 이해되는데,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상당한 역설이 아닐 수 없어요. 다른 면에서 보자면, "그릿"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능 요소와 비지능요소를 콘트롤,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리하자면, "그릿"은 공부 성공에 있어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할 내용은, 시험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일을 망치곤 하는 나쁜 습관이 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시험 불안감이란 열등생보다는 우등생에게 더 많이 찾아오는 장애입니다. 어찌 보면 우등생의 숙명적 장애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내가 이렇게 아는 게 많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면 아까운 사람인데, 행여 일말의 불행으로 일이 망쳐지면 그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마치 사나운 육식동물, 날카롭고 잘 드는 블레이드를 지닌 이빨을 지닌 맹수에게, 그 강한 독아(毒牙) 때문에 숙명처럼 찾아오는 질환인 충치가, 강자의 저주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공부잘하는 아이에게만 찾아오는 "시험불안증"이란 정말 역설적인 운명이 아닐 수 없어요.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그 "시험불안증" 치유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니 꼭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복탄성력 개념은 요즘 여러 자계서에서 거론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좋은 설명이 있더군요. 특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면 부모가 아니라 아이한테 직접 읽혀도, "자기 동기력 양성" 차원에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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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신 -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움직일 것인가
최철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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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라기보단 근본이론 탐구에 가깝게 전략, 방향을 설정한 이 책은, 진지한 서양 학자, 저술가들이 갖는 기본 자세에 대해 다시 감탄을 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실전에 적용해 보니 꽤 도움이 되는 협상 관련 서적도 여태 많이 읽었습니다. 자계서라고 해서 그저 동기 부여에나 도움이 될 뿐, 그 속에 적힌 주문이나 가르침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다, 뭐 꼭 이렇지는 않더라는 거죠. 예를 들면 제가 2014년 초에 읽은 전직 미 정보기관 중견 관리자가 쓴 책(서평도 남겼지만)은, 그때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금 오히려 한국의 여러 실정에 도움이 되더라는 체감을 제가 지금 하는 중입니다.

협상이라 하면,  아직 한국의 비즈니스 실정에서 그 누구라도 그리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일방적으로 연설만 늘어 놓거나, 최초에 자기가 짜 갖고 온 페이스에 상대가 말려들기만을 바라며 밀어 붙이는, 그래서 자신이나 상대나 황당함만을 느끼며 파탄 나는 초등학생들의 촌극 같은 모습이 어디서나 벌어집니다. 한국인들이 아직도 약한 분야가 토론이라든가 바로 이 협상 분야죠. 기본 룰이 도통 마련되어 있지 못하고, 최소한의 컨센서스가 부족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써 먹기에 유용한 팁이 많긴 해도, "왜 그러그러한 전술과 태도가 현실에서 유용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답을 못 해 주는 게 또 보통이었습니다(물론 팁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말이죠. 최소한의 팁도 못 가르쳐 주는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대체 협상의 본체가 무엇인지. 왜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야 결실이 나오는지"까지 알려 주는, 보다 근본적인 사항까지 해명을 돕는 내용이었습니다. 책 읽는 보람은 사실 이럴 때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협상의 본질과 근본 속성을 가르쳐 주니, 독자 입장에선 현실에 응용할 범위를 찾아도 이제 적용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로 이미 4년 전에 국내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모은 바 있던 분입니다. 그 책은 이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진 않았으나, 앞서 제가 말한 "현장에서 써 먹기 좋은 유용한 팁을 많이 가르쳐 주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이 책은 그보다는 더 심화된 내용이고, 독자가 알아서 숨은 가르침까지 파고들어 찾아내어야 할, 보다 "하드한" 컬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논의의 시작을 "어린 형제들 간의 다툼"에서 잡습니다. 엊그제에도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읽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형제보다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아무리 친해 봐야 남인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때에 따라선 더 의존이 된다니 사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한국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서양에서는 당연히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도 제3자일 뿐이니(이탈리아 같은 일부 라틴 문화권에서는 캥거루 족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딱히 별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둔 건, 유독 어려서부터 형제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성장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이해 다툼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심지어 늙어서도 여전히 갈등과 분란이 끊이지 않는 양상이 꼭 존재한다는 겁니다. 만약 어려서부터 협상의 묘미와 기술을 배운다면, 동기간의 끈끈한 정을 평생토록 자산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판 모르는 타인 간에도 갖가지 충돌이 빚어질 시 능숙하게 협상으로 다루는 체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죠.

협상은 권력위상이 현격히 차이 나는 경우에도 규칙과 요령을 달리해서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모든 가르침이 그러하듯) 가정에서 시작되는데, 부모가 현명하게 이 시작점을 주도하고 잘 마련해 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인격과 판단이 미숙하여 무조건 자기 충동과 욕구를 우기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때 무조건 다 들어 주는 것도 문제고, 반대로 윽박지르면서 무조건 억누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둘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도 원칙이 만약 없다면, 아이들 입장에선 "왜 이렇게 반응에 일관성이 없지?"라며 혼란을 느끼는데, 역시 교육상 좋지 않습니다. 변덕스럽지 않고 실제 효과는 그것대로 거두면서 아이 버릇을 잘 들이는 방법은, 적절한 협상력의 발휘입니다. 아이에게 소통의 규칙을 가르치고, 성인이 되어 타인과의 소통, 관계를 형성할 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 삼조라고 하겠습니다.

제목부터가 "불가능한 협상은 없다"인데, 왜 없겠습니까. 없는 정도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말이 안 통해서 불가능, 양보할 수 없는 투쟁이라서 불가능, 여기도 불가능, 저기도 불가능의 연속입니다. "대체 가능한 협상 영역이 있기나 한가?"를 물어야 할 판입니다. 저자의 지론에 따르면, 상대가 누구이건 이슈가 무엇이건 협상의 여지는 반드시 남아 있고, 상대가 그걸 인식 못 하면 내가 먼저 알아내어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협상의 요체입니다. 이 포인트를 놓치면, 나뿐 아니라 그 역시 손해라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공연히 웃게 해 줄 뿐입니다. 이 점을 눈치채고도, 처음 시나리오만 고집하다 테이블을 깰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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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은퇴가 아니다 - 퇴직선배가 알려주는 생생한 퇴직스토리
최병근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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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직한 누구더러 제2의 인생을 시작하라는 주문은 흔히 듣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그렇게나 많은 창업자들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도, 매일같이 듣는 게 편의점, 치킨집 폐업 소식입니다. 특히 편의점은 대체로 우아해 보이는 외관 때문인지, 혹은 대기업에 다시 소속된다는 느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갓 퇴직하신 분들이 애호합니다(그나마 이처럼 수중에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벌 생각을 해야지,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그저 까먹을 생각이나 하는 인생이라면 참. 말이 좋아 학업이지 그 주변머리에 등록금이나 회수할 수 있을지 원ㅋ 정신 차리려면 몇 배는 더 심한 쇼크를 먹어야 평균수준에나 올라올 듯). 이처럼 "제2의 인생"은 흔히들 입에 올리지만, 사실은 그저 밥벌이의 주된 관문이 바뀌었을 뿐 나아질 것은 별반 없고, 오히려 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루틴에 빠져들다 남 좋은 일이나 시키고 퇴장하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죠.

이 책의 저자들은 "제2의 인생" 같은 추상적인 문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더 막연하고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텐데요. "인생의 재창조"입니다. 어떠신가요? 아마 반응들이 선명하게 갈릴 겁니다. 책을 읽어 봐도 그렇습니다. "과연 이대로 해서 뭐가 나아질까?"라며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이, 나하고는 안 맞는다며 일찌감치 딴데 시선을 주는 분도 있었지만, 어차피 흔하게 제시되는 대안들이 다 한계가 보인다며 이 책처럼 아예 근본적인 처방(고통스럽고 돌아가는 길처럼 받아들여지지만)이 필요하지 않냐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으므로, 이런 건 각자가 현명하게 판단해서 취사선택할 일입니다. 책이 옳은 제안을 담고 안 담고가 문제는 아닌 듯 판단됩니다. 맞는 말을 해도 독자가 에고에 가득차 있으면 정답을 만나기가 힘들고, 설령 틀린 말을 해도 독자의 마인드셋이 애초에 바르다면 제 갈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속이 꼬인 사람은 제대로된 책을 읽어도 못된 구절만 찾아 자기 내면을 더 황폐화시킵니다.

어제도 제가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읽었는데, 확실히 사람의 진짜 힘은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현명히 통찰하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사람은 정신으로부터 답을 찾으려 듭니다. 동물 중에 정신병에 걸렸다는 예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있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래도 여기에 길이 있겠거니 기대를 갖고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 그 결과가 뜻대로 안 나오기도 하니 정신이 돌기도 하는 게 아닌지, 반대로, 노력과 결과가 합치하면 성과가 폭발하거나 넥스트 레벨로 도약하는 거고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힘이 있어요. 다만 자기한테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끌어내지 않는 거죠. 우리의 힘은 우리 내면에 머물면서 활동을 시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책 중 일부 구절의 발췌입니다. 물론 이 내면에의 탐구라는 게,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또 곤란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분명 FIGHT라는 정면 응전의 본능뿐 아니라, FLIGHT라는 도피의 본능도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데스먼드 모리스의 책을 읽을 때, 정글의 맹수도 결전을 불과 0.1초 앞둔 그 운명의 순간 대치 중에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는군요. 뭐 사람만큼 의식적인 도피를 시도하는 건 아니고 뇌의 피로를 풀기 위한 생리작용이겠지만(그래서, 제때 그 자발적 최면에서 풀려날 겁니다) 여튼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참 놀라운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 주장의 특색은 이런 것입니다. (독자인 제 방식대로 정리하자면) 당신은 분명 퇴사 후 이것저것 다른 밥벌이가 없나 모색하며 새로운 수단을 모색할 것이다. 1분 1초도 멍때리지 않고 인맥을 총동원하며, 경력자를 찾는 어떤 구인 광고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꼼꼼히 훑은 후 지원할 것이다. 당신 머리 속에는 와이프와 어린 자녀에 대한 책임감만 가득하며, 이 진정성에 대해 당신은 물론 당신의 (성인이 된) 가족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운이 좋으면 재취업에 성공하겠으나, 결국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현실에 만족을 못 느낀 채 자신의 포텐을 소진하거나, 다시 퇴사하여 앞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런 삶은 결국 볼륨이 점차 줄어드는, 소득도 부실한 앞 과정의 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당신은 회한에 가득 둘러싸인 채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 소모적인 과정을 피하려면, 반성과 통찰 없는 시늉내기를 중단하고, 내면의 리빌딩에 먼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마인드를 재건하고 의욕과 마음가짐을 새로 챙겨 보자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실물 밥벌이 수단까지를 마련하자는 뜻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탈출구가 마련 안 되니, 아예 내면 전체를 다 갈아엎고 다시 태어난 듯 활로를 모색하라는 뜻입니다.

상당수 독자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좋은 말이지만 내게는 무리"라며 외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는 두 가지 심리가 대개 작용합니다. "내가 그래도 지금까지 인생을 헛산 게 아닌데 어떻게 리셋을 하나?" 같은 자존심, 혹은 "그렇다 쳐도 이제는 너무 늦었어" 같은 체념과 두려움. 책에서는 첫째 동기의 경우, 리셋은 기존의 성과(그런 게 실제 있든 없든 간에)가 0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성과는 그것대로 보존되면서 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던 "제2의 자원"으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규정하네요. 둘째 동기에 대해서는, 여태 다른 자계서들이 숱하게 강조한 대로, "지금은 백세인생 시대"라며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아왔을 뿐이라고, 앞으로도 대비해야 할 구간이 많이 남았는데 늦었다고 주저앉으면 어떡하냐고 독자를 다독입니다.

여튼 가장 필요한 과업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소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태 무심히 만나오던 사람들을, 오늘부터는 자극과 영감의 원천으로 대하게 된다는 말은, 설령 내면의 힘 같은 걸 믿지 않아도 변화와 활로는 사람과 인맥 사이에서 찾으라는 오랜 주문을 상기시키기에 반갑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새로워진 내가 여태 잠재했던 가능성을 비로소 현실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양한 형태로 즉각 수용이 가능하기도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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