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운명을 바꾸는 회의혁명 30분 - 회사를 살리고 나를 살리는 회의
노구치 요시아키 지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 시대의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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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회의를 부르는 게 진정 아이러니입니다. 많은 경우, 회의는 이미 최고 윗선에서 결정된 바를 두고, 그저 민주적 의사과정을 가장해 요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rite에 가깝습니다. 물론 조직 성원들이 이런 절차를 통해 실행력을 다지고 결의를 굳힌다는 정도의, 아주 소극적인 의의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원들은 회의를 시간 낭비로 간주하며, 다만 최고경영자의 심기를 상하지 않게 하거나 팀원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집중 자세를 확인한다거나, 행여 사내정치에 활용할 자그마한 정보(윗선이나 중역들의 미묘한 기색 변화 탐색)를 얻는다든가, 다 마치고 난 뒤 뒷공론의 장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정도의 의의를 둘 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런 문제의 경우 아랫사람이 뭔가 레버리지를 가질 여지가 극히 적습니다. 회의 문화의 근본 개선을 위해선 임원진과 오너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나 일반 직원 선에서, 나의 회의 우리의 회의가 조금이라도 더 생산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혹은 회의에 참여하는 "나 자신"의 기여를 높이기 위해(최소한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매우 현장의 느낌이 살아 있는, 현장의 고민이 치열히 반영된, 진지한 사고의 결과물을 담았습니다. 이 역시 현장에서 직접 부대껴 보지 않은 분들은 맹숭맹숭한 지침의 나열로밖에 안 들립니다("무슨 소리지? 그래? 그런가 보지 뭐."). 조직의 일원으로 내가 부족한 점을 고치고, 여튼 주인 의식을 갖고 내 선에서라도 이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정도는 윗분들 기분을 안 거스르면서도 내 선에서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질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누구나 신중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천에 일일이 옮기지는 않는 건데, 이 책에서 그 근거랄까 원군 노릇을 해 줄 동력, 혹은 권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저자의 절절한 고민 그 산물로 쓰여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조직 생활을 열심히 해 본 독자가 가장 잘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상당수는, 결론 파트만 보면 "아 나도 이런 생각, 느낌이었어" 같은 공감을 충분히 보낼 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저자처럼 그 결론에 대한 넉넉한 근거를 머리 속에 못 잡아내어서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연륜이 쌓여야 하고, 연륜에 걸맞은 경력, 직위를 쌓아야 그게 가능하죠(그런 분들이라고 또 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이 자기 역량을 발전시키고, 조직이 과거의 단계보다 뭔가 하나라도 나아지려면 젊은 참여자들이 이런 선배들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빨리 섭취, 내면화하고, 자신은 그 나이 그 자리에 올랐을 때 더 개선된 노하우를 생산해 내는 겁니다. 초일류 기업은 다 이런 단계를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무의미한 회의 방식, 그 유형을 여럿 지적, 정리한 챕터1의 내용은 사실 하급직원이면 열렬히 지지하고, 중간관리자급이라면 얼굴이 붉어질 만한 신랄한 비판입니다. 이 점은 현재 아래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이, 과장 부장 달고 나서 반드시 자신의 후배들에게는 같은 무의미한 고생을 안 시키게, 자기 선에서 잘라야 하는 폐단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일이겠으며, 심지어 부장이라 해도 현장에서 실천 못할 사항이 많죠. 여튼 현재의 과제만 날품팔이처럼 근근이 해결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미래의 관리자가 되어 있을 자신을 위해 열독해 놓아야 할 중요한 지적들입니다.

이 책의 가장 잘된 점은, 능률적인 회의를 위해 보조자료들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화이트보드와 스마트폰, 프로젝터 등은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고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말입니다.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유기적으로 창의적으로 쓴다고 해서 그걸 나무랄 윗분은 아무도 없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좋아하고, 나이 든 세대들의 특징이 자기가 몰랐던 문자를 쓰면 싫어하지만, 자기가 몰랐던 기기 사용법을 보여 주면 바로 수그러들고 집중합니다. 뭐 과시하듯이 뽐내듯이 시연할 필요야 전혀 없지만 말입니다. 기기 아니라 간단한 시청각 도구의 (이전보다 유익한) 활용도, 자신들의 머리를 덜 쓰고 이해시켜 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어른들은 한 명도 없죠. 이런 보조도구의 활용은 "그거 괜찮네"라며 기특하게 볼 반응이 99%입니다. 욕 먹는 부하직원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어려운 말, 말, 말을 섞어 쓰는 타입입니다. 그런 말을 이해 못할 만큼 머리가 굳은 관리자들이 문제입니다만, 여튼 자기가 속한 환경의 성숙도를 봐 가며 재주를 피워야지 무작정 들이밀고 보는 눈치 없는 직원도 문제지요.

제가 감탄한 건, 본인은 최고 경영자이면서도, 아랫사람들 급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에서는, 철없는 부하들을 어떻게 하면 일급 직원 인재로 키워 줄 지, 마치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해량하고 책을 쓴 듯 그 편제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겁니다. 형 만한 아우 없다고, 책을 이렇게 독자 위주로 써 나가듯 윗사람을 모시면 못 오를 자리가 없을 듯합니다. 오를 데까지 다 오른 입장에선 그동안 바친 수고가 억울해서라도 이제 "꼰대 행세"만 남을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본인 회사에서 실제 아랫사람을 어찌 다루시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쓰시는 걸로 보아 여튼 세대 간의 악습 플로우에서 이런 깨인 분이 한 번 정도는 끊어 주고 가야 조직의 진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그건 분명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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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분쟁
맹신균 지음 / 법률&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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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는 우리 주변에서도 아주 낯설지만은 않게 만나는 거래 패턴입니다. 보통 단기 임대차는 렌털, 장기는 리스라고 부르는데 물론 부동산은 후자에 속하는 게 보통이죠. 렌털이나 리스를 하는 이유는, 소유자로서 부담하는 제세공과금 문제를 우회하고, 보다 자유로운 자금 운용을 시도한다거나, 소유한 물건이 노후했을 시 손쉽게 새 상품의 취득으로 갈아탈 수 있는 편익 등이 있어서입니다.

따라서 리스 이용자는 어떤 경우에도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물건을 담보로 잡히거나, 자기 마음대로 타인에게 처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컨대 집에서 렌탈해서 쓰는 정수기 같은 건, 무슨 전당포에 맡긴다든가 지인에게 팔아치울 수 없다는 거죠. 현대 한국에서는 이런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위험 발생률이 높다면 업종으로서 유지가 어렵습니다), 업체들도 마음 놓고 이 렌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겠습니다.

리스는 정수기 같은 비교적 자그마한 기기 같은 게 아니라, 건축용 중장비라든가 부동산이 보통입니다. 대충, 법규에서 "등록"이나 "등기" 대상이 되는 건 리스로 취급한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부동산(의 관련 물권)은 모두가 "등기" 대상이며, 동산이기는 하지만 자동차는 "등록"을 해야만 소유권이 인정됩니다. 이처럼, 등기나 등록 명의를 이전하지 않고(이전한다면 이 과정에서 벌써 취득세, 등록세를 부담합니다), 소유권은 원 소유자가 그대로 가지되 그 사용권만을 리스이용자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나라는 건강보험이나 종합부동산세 산정 등에서 이런 재산 소유 여부를 참작하기 때문에 그런 사정도 따로 고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리스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전이 안 되는 건 "운용리스"라고 부르는데, 리스자산이 혹 사고로 파손되거나 했을 때(물론 이용자 과실이 아닌 경우죠. 이용자 과실이라면 당연히 이용자가 책임을 약관에 따라 져야 합니다), 그 위험 부담은 이용자 아닌 소유자가 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또 혹 리스 자산 소유에 따르는 혜택이 있을 때, 사용자에게 이것이 귀속되지 않고 원 소유자에게 그대로 가는 패턴입니다. 반대로, 위험 부담이건 혜택이건 모두 이용자에게 지워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금융리스"입니다. 이 경우는 명의만 리스제공자에게 남아 있을 뿐 사실상 이용자가 소유권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이용자는, 제공자에게 "리스 자산의 매입 비용"을 대출 받아서 장기간에 걸쳐 이자와 함께 분할 납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걸 "금융 리스"라고 부릅니다.

대체로 고가의 전자제품을 할부로 살 때 물론 카드 할부로 살 수도 있습니다만, 판매자가 대부업체와 협약을 맺고 자동으로 할부 계약을 맺어 주는 걸 많이 봤을 겁니다. 이처럼 금융 리스에서는 사실상 할부 판매와 별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데 전자 제품 따위의 할부 구매시에도, 소유권이 할부 대금 완납시까지는 구매자에게 완전히 넘어온 게 아니고 판매자에게 그대로 남습니다. 물론 신용카드 할부 구매의 경우는 카드사가 대납을 해 주는 것이므로 카드 특약이 없는 이상(없죠) 구매 즉시 구입자가 소유권을 갖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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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 중급회계 - 상 - 개정 리스기준서 반영, 제4판 IFRS 중급회계
김재호 지음 / 도서출판 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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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회계 기법이 14세기 이탈리아 상업 도시에서 개발되었다고 합니다만 상인이 장부를 효율적으로 적고 관리하는 기법은 상업이라는 경제 영역이 자리한 어느 국가 어느 문명에서도 원시적이든 세련된 방식이든 각양각색으로 발전해 왔을 만합니다. 당장 우리 나라만 해도 고려 시대에 세계 무역 중심지 중 하나로서 엄청난 부와 물자가 거쳐간 지점이며 개성 상인은 이후 말업(末業)이라며 조선 조정에 의해 억압을 받던 시절에도 독특한 기장 양식이라든가 어음 융통 기법을 발전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영, 미, 유럽에서 다듬어진 회계의 원칙이 세계를 이미 제패한 추세이며, 한국도 십 수 년 전에 국제회계기준을 대대적으로 채용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흔히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회계관행"이란, 어느 나라의 투자자나 재무제표만 보고서도 바로 그 기업의 내실과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 창출에 도움이 되어야 하므로, 가급적이면 세상의 가장 너른 지역에서 통용되는 방식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한 나라의 특정 거래 패턴이 유독 탈세, 범법을 지향하는 쪽으로 성행한다면 그 나라는 그 방식만을 특히 겨냥한 고유의 법규를 더욱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회계는 물론 그 기업의 현황을 최대한 충실하게,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만, 1) 그럴 방법이 없거나 2) 할 수 있다고 해도 회계상의 자원 투입을 그런 미미한 데에 투여할 만한 가치가 없을 때라면 그저 "추정"에 그치는 선택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재무제표는 "회계 정책"과 "회계 추정", 두 가지 프레임에 의해 작성된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회계 정책과 회계 추정은 절대적이고 고정된 게 아니고, 일단 채용되어도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은, 회계 정책의 변경인지 회계 추정의 변경인지가 모호할 때에는, 후자, 즉 "회계 추정의 변경"으로 본다고 제1008호에서 규정합니다.

자산의 경우 특히 자산계정에 표시하여야 할 항목들은 이를 "적격자산"으로 부르는데, 이 용어가 의미를 갖는 건 기업의 어떤 지출을 그저 "비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특정 자산의 원가로 편입시킬 것인지를 가르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특정 기간에 돈이 빠져나갔다면 일단 이는 좋지 못한 거래사건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이는 그저 "비용"으로 처리될 뿐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 지출이란 게 그저 소모적인 게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는 기업의 출혈을 뜻하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혹은, 기존 자산의 가치가 늘어난 것). 이때 그저 일회성 비용으로 기장하지 않고, 두고두고 쓸모를 내는 자산으로 간주하는 선택을, "자본화"라고 합니다. 물론, 자본화 기법이 남용된다면 기업의 부실을 덮고 (보이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자산을 마구 치장하는 분식회계가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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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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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잖아도 요 네스뵈의 명품 스릴러들은 21세기에 믿고 보는 몇 안 되는 페이지 터너들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맥베스"라고 해서 그 오래된 비극 고전의 (또하나의) 현대역, 개역인가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요 네스뵈가 대체 "맥베스"라는 간판 아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고 말이죠.

그가 만들어낸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우리가 다 잘 아는 해리 홀레 반장입니다. 대개 수사물 장르에서 그렇듯, 우리 독자들이 미친 듯 지지를 보내는 주인공들은 권위를 무시합니다. 반 세기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멋지게 소화한 더티 해리 형사도 그렇고, <다이 하드> 시리즈에서 정말로 좀처럼 안 죽고 자신보다 더 지적이며 더 매력적인 악당들 속을 어지간히 태우는 잔 매클레인 형사도 그랬지요. 혹은 MiB 시리즈에서의 "제이 요원(윌 스미스)"도 윗사람의 권위를 좀처럼 존중하는 타입이 아닌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승진은 일찌감치 또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장르물 작가들이 첫 3~4편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 이후에는 한번 개발해 놓은 뻔한 트랙, 기믹, 클리셰에 얹혀 거의 날로먹으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르물의 백화점처럼 이 시장이 수요 공급 양면에서 크게 번성한 미국이 특히나 그래서, 한때 열광했던 독자들도 이후 지리하게 이어지는 해당 작가의 매너리즘을 보고 너무 실망해서 바로 발을 끊기도 합니다. 요 네스뵈는 이런 선배들의 나쁜 전철을 보고 뭔가 단단히 다짐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타고난 영감과 말재주 덕에 구태여 슬럼프, 자기 복제를 거칠 필요가 없는 유형인지, 이번에도 이런 박력 넘치는 신작을 내어 놓았습니다.

제목이 "맥베스"인 것만 보고도 기대를 걸었다고 했는데, 다 읽고 그 기대가 조금도 배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저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팬이 아니고 그 나름 그의 스타일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읽는 독자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제목만 맥베스인 게 아니라 실제로 이야기 중에 그런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 사람이 이 신작 에피소드의 사실상 주인공입니다. 요 네스뵈가 제목과 타이틀 롤 작명을 그리했다면, 이 책 속에는 셰익스피어의 그 고전 테마를 멋지게 모티브로 잘 살려낸 장중한 사연이 반드시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그 기대는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그 고전에서 맥베스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은 바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 부인, 즉 "레이디 맥베스"입니다. 연극에서도 이 레이디 맥베스 역이 멋지게 연기되어야만 그 극 전체가 살 만큼, 전세계 무수한 후배 극작가, 문학 애호가들에게 끊임 없는 영감을 준 캐릭터가 바로 레이디 맥베스죠. 요 네스뵈는 심지어 (대담하게도) 이 "레이디"까지 등장시킵니다. 그는 상업 장르 문학의 안전하고 뻔한 길을 거부하고, 청년 시절 문학도로서 불태운 자신의 열정을 조금도 잊지 않은 깨끗한 영혼이었다는 점, 이 무지 재밌는 수사물을 다 읽고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은선님의 번역도 언제나처럼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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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짜 나로 살기 위한 인생 계획
마이클 하얏트, 대니얼 하카비 지음, 소하영 옮김 / 에스파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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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잘 꾸리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어느 회사이건 최고의 두뇌가 곧 기획통으로 키워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죠. 하지만 19세기 독일 통일의 주역 大 몰트케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전투 한 번만 거치면 살아남는 작전안이란 거의 없다." 아까 낮에 마이크 타이슨 특집 방송에도 잠시 그 비슷한 "명언"이 나오는 것 같더군요. 사실 현장에서 직접 여러 상황을 진두지휘해 보면, 어떤 완성된 안(案)이나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돌발상황에서 얼마나 잘 돌아가는 머리로 즉흥 대처법을 잘 꾸리는지가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갱요가 준가르를 평정하고 귀환했을 때도 옹정제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짐짓 게을리하며 말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었는지 그저 정치 투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너 따위가 알 리 없다"는 무언의 시위였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행력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도출된 그 어떤 시안이나 아름다운 알고리즘보다 중요합니다. 직접 성과를 내어야 하는 인재에게, 실행력은 그가 가진 역량이나 잠재력 모두라고 할 만큼 중요한 tool입니다.

목표의 수립 역시 중요한 단계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가진 역량 모두를 투입함에 있어, 전략적 목표의 바른 설정이 선행되어야만 괜한 헛수고를 방지할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안이 중요하고 전략의 자체완결성이 필수적이라도, 이를 현실에서 어떻게 매 단계의 성취와 검증으로 연결시킬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행이 없으면 성과가 없다"라는 명제는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지만, 필드를 뛰어 보면 그 우수한 두뇌를 보유한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계획 곧 성과"로 착각하는지 놀라울 만큼입니다. 그만큼 기안의 완전무결함에 도달하기가 어렵기에, 인간의 본성인 자기 평가에의 biasedness를 떨칠 수 없음의 실증이지만, 많은 기획이 자체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휴지통으로 향하는 게 다 이런 실행력에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실행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이게 참 뼈아픈 지적입니다. 부장에게 과장에게 깨지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하죠. 대개 이런 경우 뭣 때문에 지적을 받을까요? 안건을 검토해 보면 부실하게 넘어간 중간 과정이 있거나, 숫자 처리가 부정확하거나, 심지어 맞춤법이 틀려서(ㅎㅎ) 이런 걸 못 참고 넘어가는 깐깐한 상사에게 박살이 나는 겁니다. 지금은 많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예전 세대 부모님들이 왜 자식을 기술자, 노동자로 키우지 않고 책상 앞에서 펜대 굴리는 사무직 직원으로,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을까요? 이처럼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지 않고 육체적으로 축나지 않고 책상 물림으로 호강하는 녀석들이, 그 알량한(아니지만) 사무 처리 하나 못 하냐면서, 너 같은 건 그냥 공사 현장에나 나가서 뛰어야 한다는 듯 다그치던 풍조가 현재에까지 이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1970년대 초반엔 현대 등 대기업들도 건설업 따위가 성장의 추축이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요즘엔 전세가 역전되어 현장 근로자들이 툭하면 파업한다고 상전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사실 사무직도 실행을 점검하는 알고리즘, 피드백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고, 아직 중국 같은 데서 한국을 못 따라오는 부문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자께서는 이미 한참 윗세대이니까 이런 아쉬움을 책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대기업에서 그런 요소 관련 업무 혁신이 안 이뤄졌을 리가 없죠. 기안의 완결성 못지 않게, 실제로 집행 과정에서 개별 단계와 과업이 얼마나 현실화되고, 각 단계가 얼마나 정밀하게 성과가 계측되는지도 이미 일부 대기업에선 눈에 띄게 실무화, 정량화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정작 실무에서 중요한 게 이 단계인데 지난 시절에는 그냥 대충 넘어가거나 "알아서 하라거나" 느낌으로 점검하고 말던 관행이 분명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을 결코 못 따라잡을 것 같은 게 이런 세밀한, 업무 과정의 미세한 정신적, 비가시적 알고리즘의 빈틈입니다. 첫째는 여자처럼 세밀한 살핌과 꼼꼼한 뒷마무리가 요구되며, 둘째 남의 시스템을 통째 베껴 적용할 때 이런 부분이 자기네 조직의 체질과 정반대일 수 있기 때문에 전체가 망하는 게 비일비재하며(따라서 설사 다른 걸 베끼더라도 이 부문만큼은 자기 회사 체질에 맞춰 재 세팅을 해야 합니다), 셋째 기본적으로 창의성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행이 중요하다 함은 "야,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 같은 무식한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체질과 역량에 대한 정확한 SWOT 분석이 이뤄진 후에 달성 가능한 과업이고, 기안이나 기획과는 또다른 차원의 영역임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죠. 우리도 모르던 사이에 발전시켜 온 강점을 잘 유지하고, 이로부터 지속적이며 대체 불가능한 혁신을 추진해야겠습니다. 진짜 혁신은 기술 분야에서라기보다, 경영 섹터에서 이뤄져야 그게 지속적입니다. 기술은 금방 남이 따라할 수 있고,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쫓아갈 수(삼성이 그만큼 빨리 스마트폰 양산 체제를 갖춘 게... ㅎㅎ)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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