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강 - 대한민국 1% 핵심인재를 위한
김영민 지음 / 새로운제안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 중 "핵심인재"에 포커스를 두고 저는 책을 열었는데, 총 3파트 중 첫째 부분이 "조직역량"입니다. 그 다음이 (보다 범위를 줄여) "인적자원역량", 그리고 마지막이 "핵심인재"로 구성되었네요. 하긴, 조직역량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재(인적 자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인적 자원 중에서도 대체 가능한 잉여를 고려에서 제외한 채 핵심만을 추려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게 책의 주제입니다. CEO의 입장에서는 조직 역량 강화를 인적 자원(HR) 분야에서 적극 도모할 수 있는 매뉴얼의 점검이 되겠고, 직원의 입장에선 먼저 조직역량의 강화를 고려한 후 자신의 개인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조감도 노릇을 할 수 있는 책이겠습니다. 조직 입장에선 핵심 인재의 양성과 보유에 소홀한 채 물적 시스템 강화만으로 생존과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조직에 소속된 개인들은 무엇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인지 그 비전을 명확히한 자기계발을 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

파트 1은 경영학의 구식 패러다임에 익숙한 분들에겐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이미 필립 코틀러나 그 훨씬 이전 피터 드러커부터가 개념의 내포로 강조했던 어젠다인, "사회적 책임(CSR)"을 깊숙이 체질화한 논의입니다. UN 등에서 이미 지난 1990년대에 확고히 체계화한 "지속 가능한 발전(전지구적 과제, 혹은 공적 섹터가 유념해야 할 목표)"을, 개별 기업에도 적용한 게 바로 "지속 가능한 경영"입니다. 이때의 "지속가능(sustainable)함"이란, 기업의 윤리 경영, 준법 의식의 확립, 나아가 공감대적 가치의 선도적 창안 같은 것을 뜻하며, 기업이 고객과 함께 이익과 번영을 누리고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여, 소비자가 생산자(좁게는 경영자)를 타자 아닌 이웃으로 인식하는 단계를 궁극의 비전으로 간주합니다. 소비자에게 잉여를 거두어 기업만의 배타적 잇속을 챙기려는 전략으론 결국 시장에서의 생존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어떤 도덕적 각성이라고 꼭 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시장의 체질과 구조가 엄연히 소비자 위주로 재편된 환경의 변화가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사실입니다. (알아서 착해진 게 아니라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역량"인데, 원어는 competence입니다. 이 competence는 지능(intelligence)와도 다르고, 적성(aptitude)와도 차별되는 개념이죠. 지능은 쉽게 말해 "머리가 좋다"고, 적성은 "(일이나 과업과) 잘 맞는다" 정도입니다. 머리가 나빠도 왠지 그 일이 좋고 끌리고 몰두하면 행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재가 노력하는 놈 못 이긴다"라는 말도 있는데, 함정이라면 대개 천재는 적성까지 함께 갖춘 게 보통이라, 노력도 평범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한다는 거죠. 재능은 있는데 적성이 부족한 천재(아주 드묾)를 타겟으로 삼아야 승산이 있습니다. 헌데, "역량"은 이런 초기 조건(타고난 조건)과는 좀 별개의 개념입니다. 얼마 전 구속되어 큰 물의를 일으킨 화장품 차르 정 아무개씨도, 사실 다른 두 덕목보다 한 가지 팩터에서 압도적인 사람이었기에 학력이니 집안이니 아무 배경도 없이 그만큼이나 (일단은) 성공할 수 있었던 건데, 그게 바로 "능력"입니다. 남자는 외모니 학력이니 이런 것보다 "능력"이 있어야 여자 고생 안 시킨다고도들 하는데, 이 쉽게 표현되는 세칭 "능력"이, 경영학 교과서 등에서 어렵게 말하는 "역량'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역량"은 물론 지능이나 적성과도 상당 부분이 겹치는 개념이지만, 그 사람 특유의 근성이나 경험에서 쌓은 관록, 혹은 행운 등을 두루두루 지칭하는 개념이죠. 앞서 말한 정 모씨 같은 경우 이런 "역량" 개념을 써야 그의 사업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p87에 보면 데이빗 매클레란의 연구를 인용하여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 "역량" 개념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느 선배(같은 학교는 아니고)가 "학문이란 결국 누구나 다 알고 쉬운 걸 멋있는 언어로 포장하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거기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사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립니다. 그야말로 지능이 딸리는 사람이 공부를 못 쫓아가서 자기 위안으로 둘러대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데, 모르겠습니다, 일용 노동자가 이런 말을 하면 그건 그분 입장에선 정직하고 타당한 언명이기라도 하죠. 뭐 알지도 못하는 말을 떠들면서 없는 지식을 가장하는 것보다는 솔직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여튼, 이 "역량"은 그 개념 연구의 동인(동기)부터도 그렇고, 그 연구의 결과도 철저히, "사업 성공" 등 세속적 성취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인자(factor)를 잡아내는 것이었고, 보통 우리 주변에서 말하는 "그 사람 능력 있네" 따위와 정확히 일치하는 외연, 내포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고, 다만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것처럼 그저 약탈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역량"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인재가 가져야 할 덕목과 목표라는 점에서 장차 완성되어야 할(채워져야 할) 미래지향적 개념이라는 게 최근 연구의 성과입니다. 만약 전자로만 개념을 새기면 소위 "지속 가능 경영" 혹은 "사회적 책임" 등과 앞뒤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오죠.

또 하나, 현대 경영학에서의 "역량"은 이른바 구시대적 "능력"과는 달리 막연한 인상 포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치로 측정과 계량이 가능한 객관적 개념입니다. 이래서 한 인재의 역량은 피드백이 가능하고, 그를 평가하는 상사, 동료, 부하들에게 공히 어필할 수 있는 공통된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역량은 물론 개인화한 능력이나, 그 능력은 특정 개인에게 고정 고유 부품으로 쓰이는 게 아니고, 범용으로 표준화하여 조직 내 모든 인재(특히 핵심 인재)가 고루 모듈로 채용할 수 있는 롤 모델입니다. 한 사람의 역량이란 예측 불가하거나 반대로 장기간 불변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시대와 조직의 모럴과 기대에 못 미치는 바 있으면 급격히 수축합니다. 타락하고 배타적인 "능력", 혹은 일시 때를 잘 만나 대박이 터졌던 고정된 요인이 아니고, 상황의 변화에 융통성 있고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한 가지 방향으로 맹목 돌진하는 야수의 본능이 아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된 총체적 능력의 발휘입니다.

이렇게 역량 개념을 정리한다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이 개념을 왜 이렇게 정리, 규정해야 하는지 그 반성이 다시 필요합니다. 사실 "개념 정의를 그저 말만 멋있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그저 학문적 깊이만 부족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조직에 몸 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왜냐. "역량"에 합리적인 정의(definition)를 하려 애쓰는 이유는, 첫째 그것이 조직 성과와 강력한 연계(플러스 공분산이 절댓값까지 높은)를 가졌다는 가정 하에서고, 둘째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를 잘 양성하기 위한 조직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좋은 역량이라도 바로 그 역량을 자기 회사 인재에게 심어줄 수 없다면, 그런 역량은 포기해야 한다는 소립니다. 인재 양성에서 효과적으로, 가시적으로 계발 가능한 역량을 인재에게 함양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개념이 우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성과가 우선이며, 개념(역량)은 그에 부차적입니다. 번드르한 말이 전부가 아님은 여기서도 확인 가능하죠.

요즘 조직론, 그리고 HR에서 강조하는 게 "리더십"이란 개념이 또 있습니다. 이 리더십과 개인 역량은 겹치기도 하지만, 리더십은 엄밀히 말해 각론과 응용에 가깝습니다. 개인 역량은 경영학에서 철저히 조직 역량을 전제로 하고 창안한 개념이며, 따라서 모든 개인 역량은 (물론 개인의 적성과 특이 사정에 맞추긴 해도) 조직 역량을 전제로 한 채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 개인 역량 중 리더십 역량이라는 게 있는데, 물론 그 사람이 언제나 진두에 서서 무리를 이끎만을 염두에 둔 건 절대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올바른 리더십을 합리적으로 추종할 줄 아는 인재상까지 포섭하는 개념입니다. 흔히 공감 능력이란 말도 하는데, 꼭 보면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서 철저히 무능한 자가, 이상한 데서 보상심리를 발동하여 전체 분위기에 추한 방식으로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이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해고와 축출이 답입니다.

기업은 과거와 달리 우수한 여건을 타고난 인재를 밖에서 채용만 해 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평범한 재목이라도 잘 양성하여 일류로 키우는 기능까지 해내야 합니다. 물론 평범한 자가 회사의 HR 역량 미진 핑계만 대다 결국 무능자 신세를 못 면하고 축출되는 경우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로 GE의 모델을 참고로 하는데, 코어그룹, 아웃플레이스먼트 그룹, 계발 그룹, 로테이션 그룹 등 세그먼트별로 접근하는 방식은 이미 기업마다 일반화한 방침이기도 하지만, 특히 핵심 인재에 들어온 자원이라도 언제나 지위가 보장되는 건 아니며, 반대로 밀려난 자원에게도 동기 부여와 트레이닝을 통해 코어 재진입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함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사실 한국의 직장 풍토에서 한 번 실수는 그대로 "끝"을 의미하는데, 이 방침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기란 여러 여건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소위 discipline proble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업과 세금절세 및 세무신고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직접 하기 - 전2권 - 개정 5판, 자영업자의 성공 창업을 위한 사업자금 운용, 창업 관련 정부지원자금 활용, 1인기업 4대보험 관리와, 개정4판
이진규 지음 / 경영정보문화사(경영정보사)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역 실무를 살피다 보면 "내국 신용장"이란 게 나오는데, 신용장이란 건 본디 이 기업을 전혀 모르는 외국 측의 거래 상대방에 대해 일종의 지급 보증을 서 주는 증서, 제도의 일환입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외국과의 거래"에 소용되는 녀석인데, 앞에 "내국"이 붙으면 뭔가 모순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의 도입 취지는 수출 업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즉, 수출 기업이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원자재, 혹은 하도급을 필요로 할 수 있는데, 그 상대기업들이 이 기업의 대금 지불 능력에 의심을 품는다든지 해서 거래에 선뜻 나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중간에 은행이 나서서 "이 기업 괜찮으니 마음 놓고 거래를 트라"고 일종의 보증을 서 주는 것입니다. 신용장은 마치 어음처럼 활용되어, 신용장을 발급 받은 기업은 미리 이를 은행에 제시하여 자금을 끌어 쓸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에 제품, 용역을 공급한 업체 역시, "수출품"을 취급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되면 좋은 점 하나가 "영세율"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품 제조뿐 아니라 "용역"에도 적용되는데, 예를 들면 사우디로부터 우리 기업이 수주를 따낸 공사를 놓고, 일부를 국내 업체에 다시 하청을 주면, 이 하청업체 역시 "수출 기업, 수출 실적"으로 집계된다는 겁니다. 또, 당연히 매출 부분에 대해 영세율이 적용됩니다.

재미있는 것이, 면세사업자가 중간에 끼면 국고 수입이 늘어날까 줄어들까의 문제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면세"가 끼니까 당연히 줄어든다는 쪽으로 냉큼 결론이 미칩니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로, "늘어난다"인데, 이런 걸 두고 "누적효과"라고 합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면세사업자는 메출세액도 납입하지 않지만, 매입세액도 환급받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납입하지 않았던 매출세액을, 그로부터 공급받은 다른 사업자가 "매입세액 환급"을 또 못 받습니다. 이러니 오히려 국고수입이 증가하는 것이죠. 역설적이지만 그 이치를 알고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 부가가치세법 강의 - 개정19판
오기수 지음 / 어울림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제 관련 어려워하는 대목이 있는데 "비영업용 승용차"가 대체 뭐냐는 반응이 그것입니다. 이게 부가가치세법에서는 이른바 "공급 간주(간주 공급)"으로 처리되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운수업, 자동차 매매업자가 소형승용차를 다른 고객에게 판매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쓴다든지 할 때, 이걸 (자신이 자신에게) 판매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판매"를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면, 일반 소비자들은 차를 살 때 당연히 VAT를 포함한 가격으로 사게 됩니다. 그 부가세를 받아서 대신 세무 당국에 납부하는 쪽은 차를 판 사장님이고요. 이처럼 일반인들은 차 한 대 살 때 부가세를 내는데, 차 취급하는 사장님들은 차를 살 때는 매입세액 공제를 받아 놓고(여기가 포인트입니다), 그걸 자신이 쓰면서는 매출세액을 납부 안 한다면, 이들에게 부당하게 세제 혜택을 주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사장님 자신이 쓰는 차라고 해도 이런 건 자신에게 팔았다고 치고 부각가치세를 매긴다는 뜻입니다.

이것 비슷한 게, 인테리어 업자가 자신이 부업으로 경영하는 커피숍에 자기 인테리어를 설치했다 해도 이 역시 매입세액 공제를 받은 부분이 있다면 자기 판매로 간주해서 부가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 흥미로운 건, 예컨대 특별재난지역에 물품을 공급하면 이는 공급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디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느냐 않느냐가 (이런 이유에서도) 매우 중요해지는 겁니다. 사업자들이 세금 부담을 안 느껴야 이런 지역에 "기부"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또 하나 조심해야 하는 게, 사업자가 폐업을 할 때 취득 재화 역시 팔아치우지 못하고 보유하는 부분은, 이것 역시 자신에게 판매한 것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폐업하는 분에게는 안된 소리지만 이런 상품의 경우 역시 사 들일 때엔 매입세액 공제를 받았겠으므로, 폐업한다고 세금 부담 없이 막 처분한다면 역시 부당한 결과라는 뜻에서입니다. 이런 "간주공급"은 재화뿐 아니라 용역(서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꼼꼼히 법제를 살피지 않고 널널하게 장사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내 주변에 아무도 그렇게 안 하던데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명이 안 되는 게 "법률의 무지"입니다.

공급은 그럼 언제 이뤄지는가? 정확히는, "언제 공급이 이뤄져서 몇년도 분에 이 거래를 신고해야 하는가?"입니다. 대부분의 거래는 큰 문제가 안 되겠으나, 사업연도 경계선에 걸려 전년도냐 후년도냐가 액수 산정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긴 하겠으므로 이 경우를 대비해서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하죠.

몇 주 전 리뷰에서 "장기 공사"의 경우 매출이 언제 이뤄진 걸로 보느냐를 회계학에서 꽤 기교적으로 다룬다고 했는데 부가세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 완성도 진행에 따라 각 대가를 실제 받는 시점으로 나눠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부가세는 1970년대 말 많은 반발을 무릅쓰고 도입한 제도이며, 박 정권에 대한 저항이 특히 부산, 경남에서 거세게 일었던 게 자영업자들이 일으킨 조세 저항(정치적인 동기보다)이 그 실체라는 분석이 아주 유력합니다(고 이만섭 국회의장 같은 이가 이런 언급을 했죠). 이전에는 그냥 막 팔던 걸 거래 건건이 영수증을 작성해서 상대방에게 교부하고 자신도 자료를 보관해서 세무 당국에 하나하나 신고해야 한다면 그 번거로움이 얼마나 크겠으며 그 과정에서 정확한 수입원이 다 드러나니(그래서 세무공무원과 이른바 "쇼부를 치고" 어쩌구 하며), 과연 한국 아니라 어디서도 쉽사리 도입할 엄두가 안 나는 제도 아니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금을 알아야 부가 보인다 - 2018 개정 세법 반영 최신판, 상속, 증여, 양도, 사업.근로소득세의 모든 것
이동기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업을 영위하다 보면 이익이 나기는커녕 손해를 보기도 일쑤인데, 이 경우 세금 납부 과정에서도 또 불이익을 받는다면 기업 입장에서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번 돈은 꼬박꼬박 신고도 하고, 일일이 부과되는 금원을 납부해야 할 뿐 아니라, 신고 의무 해태에조차 징벌이 주어지는 게 현실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특히 중소기업 영위 업종의 경우, 당해 사업연도에 부과된 세액을 한도로 하여, 그전에 발생한 결손금도 소급해서 환급받을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합니다.

이 경우, 결정세액을 한도로 삼게 한 건, 만약 이런 한도를 정하지 않는다면 국세청에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아예 돈을 타 가는 사업자, 기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급이란 이미 낸 돈을 돌려받는 게 그 본질인데, 이 한도를 넘어 어떤 시혜를 받는 기업이 생긴다면 그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또, 과세표준화 확정 신고 기한을 넘겼다면 이에 대해서는 환급 조치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소득에는 배당소득, 이자소득, 사업소득, 기타소득, 연금소득, 근로소득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중 양도소득에서도 "결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들여 적정 시점에 판매할 생각이었는데, 그새 시세가 하락했고 그 하락한 가격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는 분명한 결손 발생입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2017년에 손해를 본 금액은, 다음해인 2018년에 소득을 신고할 때 이를 보전받을 수 있는가? 현행 법제는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즉, 전년도(혹은 그 이전)에 손해를 얼마를 보았든 간에, 다음 해에 이를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올해 6월에 큰 손해를 보았고, 11월 경에 이익을 올렸다면, 이는 얼마든지 상계가 가능합니다.

아마도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적다고 보아 입법상 이런 태도를 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런 주장을 보십시오. http://www.taxtimes.co.kr/hous01.htm?r_id=112167 김면규 세무사가 쓴 이 논설을 읽어 보면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 이와 같이 매매와 양도는 본질을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법은 사업소득과 양도소득으로 구분하여 과세함에 따라 매매는 사업소득이므로 결손금의 이월공제가 허용되고 양도는 양도소득이므로 결손금의 이월공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세금 부담에 차이를 가져오는 모순을 낳고 있다.

또 하나의 모순은 두개의 양도 부동산 중 하나는 소득이 발생하고 하나는 손실이 생긴 경우에 이를 같은 과세기간에 모두 양도하면 소득과 손실을 상계하여 과세하고 과세기간을 달리하여 각 각 양도하면 손실분을 상계하지 않고 소득분은 전액 과세됨으로써 세금부담에 형평성을 잃게 된다.....

(출처: 세정신문 2008. 2. 25) 일부 띄어쓰기 수정은 본 서평자가 함

현행 소득세법상 결손금 이월은 오로지 사업소득에 한해서만 허용됩니다. 이분의 주장은, 매매는 사업소득이라 간주하여 결손금 이월을 인정하고, 양도는 매매와 본질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지적하는 겁니다.

세법도 이에 대한 반론 근거를 마련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즉 이 논설 중에도 언급되었듯이, 매매는 사업성이 없는 것이고, 양도는 그것만을 전문으로 하여 이뤄지는 것이므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거죠.

이 논설에서는 후반부에 "....이러한 태도는 법인세법이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일괄 취급하는 것과도 모순된다. 즉 귀속 주체가 법인이냐 개인이냐에 따라 효과를 달리하는 건... "이라며 역시 현행법규의 모순을 다른 각도에서 또 지적합니다. 타당하긴 하나, 이는 지난주차 서평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이 "순자산증가설/소득원천설"로 규율 태도를 달리하는 점에서도 파악되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프터 2 - 이게 사랑일까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TV CF 중 모 어플을 소개하면서, "OO야, 엄마는 티라노싸우루스 안 좋아해"라고 하는 어느 주부의 대사가 나오는 게 있던데요. 재밌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 브금으로 깔리는 쇼팽의 녹턴 때문인지 왠지 슬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성이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도 한편으론 영원히 남자들에게 주목 받고 싶은 저런 욕구를 숙명처럼 안고 가는 존재구나 하는,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어떤 로맨스를 읽어도(혹은 봐도), 당사자의 사랑이 성사되건 아니건 무관하게, 모든 사랑은 그 나름의 슬픔을 안고 있게 마련입니다. 1권에서도 흥미롭게 읽어 나갔지만, 여주 테사 역시 이 못된 녀셕 하딘과 잘 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그녀의 정체성(정신적인 것이건, 그 외 다른 무엇이든) 중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You complete me." 운명의 "The One"이 나타나면 그(녀)는 나의 부족한 모든 부분을 커버해 주고, 근원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평범하고 지루했던 모든 시간을 환희로 물들여 주긴 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제까지 나였던 어떤 부분"은 영원히 나와 작별하게도 됩니다. 


특히 이 소설에서 테사는 여태 숨막힐 듯한 훈육 분위기와 결별하고, 그나이 또래 여성이 가장 큰 환희로 맞을 만한 여러 순간을 누리게 되겠지만(또 뭐 실제로 우리 독자들이 봐서 알 듯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여태 안온히 누려 왔던 보호의 요람, 적잖이 수월성을 느껴 온 학업의 성취감, 모범생으로서 장래가 보장된 트랙으로부터의 일탈 등을 두루 겪어야 합니다. 또 이 점이, 하딘과 결정적인 선을 끝내 못 넘게 하는 주저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이 말은 꼭 난잡한 연애 경험을 거쳐 온 이 입에서만 나올 법한 게 아니라, 여태 품어온 그 설렘, 기대 등이 이제는 (아무리 만족스러운 결혼이라 해도) 어떤 환상의 거품이 걷히고 현실이 제공하는 행복으로만 그 범위가 한정되는 관문이라서 타당성을 갖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 환상이 환상에 아직 머물러 있을 때는 효용이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현실은 그와는 달라, 아무리 큰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라 해도 엄연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이래서 로맨스는, 손에 안 닿는 먼 거리에 머물러 있을 때는 현실로부터 멀기에 슬프고, 현실이 되면 그건 그것대로 슬픈 것입니다. 


"이게 사랑일까." 분명히 이게 사랑 맞는데도, 자신의 삶에 여태 큰 기대를 걸어 왔기에, 또 그럴 만한 자격도 충분한 테사이기에 이런 묘한 회의와 두려움, 주저함은 여전히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에게 맞지 않을 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테사라면 얼마든지 이런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만하며, 하딘 같은, 자신과는 극과 극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애 앞에서야, 아무리 그 매력이 치명적이라 해도 더더욱 그럴 만합니다. 어쩌면 우리 독자들도 이런 진행을 (1권 첫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다 예측하고 있었겠으나, 그래도 끝까지 일이 어떻게 번지나 싶어 계속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저력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