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스웰 리더의 조건 -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이 제시하는 진정한 리더의 21가지 자격
존 맥스웰 지음, 전형철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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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도 절대 군주가 (한때나마) 있었고, 혈통의 순일성은 우리보다 더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왕실이건 "찬탈"이나 "신분 상승"으로 임자가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른바 농민 황제, 페전트 엠퍼러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그래서 저들 서양인들은 주원장이나 한 고제처럼 밑바닥에서 일어선 권력자를 매우 신기하게 봅니다. 여튼 한번 권력을 잡았다 하면 누구도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고, 명 태조나 그 아들 주체(영락제)나 그토록 심한 살상과 숙청을 일삼은 것도 정통성 면에서 컴플렉스가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명 황실에서도 환관의 발호가 매우 심했었고, 위충현 같은 자는 자신의 행렬에다 "구천세"를 외치게 했습니다("만세"는 대놓고 역적질이므로). 이런 모습은 진시황의 후계자 호해의 재위 시절에도 환관 조고 같은 자가 권세를 농단할 때 드러난 바 있었죠. 허나 명나라 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결국 황제의 마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환관이나 재상의 위상이 뒤집어졌다는 점입니다. 워낙 혹심한 이민족(몽골)의 압제를 거쳤기에, 한족 출신 독재자가 한족 위주의 질서를 한번 다시 잡아 준 것만으로도 만고에 은혜가 큰 거죠.


재상은 언제나 환관의 발호를 억제하는 안전판 노릇을 했습니다. 또, 비록 혈통에 의해 천자의 지위가 고정되었다고는 하나, 그 외의 직위는 개인의 능력에 의해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재 배분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제도적 장치였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중국사는 황제의 역사임과 동시에 명재상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황제와 재상 사이의 바른 관계 정립 원형은 물론 주문왕과 여상 사이의 바람직한 소통이었습니다. 여상 정도 되는 경세가의 조력이 없었다면 문왕은 아마 역성 혁명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를 능가할 만한 아름답고 효율적인 군신 협치의 예는 제 환공과 관중의 사례입니다. 이 책에는 한 고조와 장량의 교유도 거론하는데, 막상 천하가 유씨의 손 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장량이야 (현명한 은신이건 혹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결과이건 간에) 중앙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으므로 썩 적실한 분류는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실무가였던 소하를 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하긴 소하는 유능한 관리 타입이었지 배운 게 부족했으므로 재상의 반열에 끼긴 부족한 면 있습니다.


장거정 역시 명재상의 반열에 꼽힐 만한데, 이 책에서 빠진 이유는 그가 모신 황제가 천하의 암군이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허나 재상이란 본디 암군 치하의 세상을 질서 있게 이끄는 데서 진가가 빛나게 마련이죠. 황제부터가 자질이 출중하면 구태여 명재상이 필요할 리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챕터 마오와 저우의 사례는 매우 적절한 편성인 듯합니다. 마오처럼 국가 경륜 능력이 부족한 폭군을, 저우 같은 경륜가가 보필하지 않았다면 벌써 공산 중국은 혼란 끝에 사분오열 공중분해되고 말았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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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회의 - 업무의 50%를 줄여주는 혁신적 회의법
정찬우 지음 / 라온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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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회의를 부르는 게 진정 아이러니입니다. 많은 경우, 회의는 이미 최고 윗선에서 결정된 바를 두고, 그저 민주적 의사과정을 가장해 요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rite에 가깝습니다. 물론 조직 성원들이 이런 절차를 통해 실행력을 다지고 결의를 굳힌다는 정도의, 아주 소극적인 의의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원들은 회의를 시간 낭비로 간주하며, 다만 최고경영자의 심기를 상하지 않게 하거나 팀원으로서의 조직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집중 자세를 확인한다거나, 행여 사내정치에 활용할 자그마한 정보(윗선이나 중역들의 미묘한 기색 변화 탐색)를 얻는다든가, 다 마치고 난 뒤 뒷공론의 장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정도의 의의를 둘 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런 문제의 경우 아랫사람이 뭔가 레버리지를 가질 여지가 극히 적습니다. 회의 문화의 근본 개선을 위해선 임원진과 오너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나 일반 직원 선에서, 나의 회의 우리의 회의가 조금이라도 더 생산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혹은 회의에 참여하는 "나 자신"의 기여를 높이기 위해(최소한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매우 현장의 느낌이 살아 있는, 현장의 고민이 치열히 반영된, 진지한 사고의 결과물을 담았습니다. 이 역시 현장에서 직접 부대껴 보지 않은 분들은 맹숭맹숭한 지침의 나열로밖에 안 들립니다("무슨 소리지? 그래? 그런가 보지 뭐."). 조직의 일원으로 내가 부족한 점을 고치고, 여튼 주인 의식을 갖고 내 선에서라도 이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정도는 윗분들 기분을 안 거스르면서도 내 선에서 지적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질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누구나 신중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천에 일일이 옮기지는 않는 건데, 이 책에서 그 근거랄까 원군 노릇을 해 줄 동력, 혹은 권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저자의 절절한 고민 그 산물로 쓰여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조직 생활을 열심히 해 본 독자가 가장 잘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상당수는, 결론 파트만 보면 "아 나도 이런 생각, 느낌이었어" 같은 공감을 충분히 보낼 만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저자처럼 그 결론에 대한 넉넉한 근거를 머리 속에 못 잡아내어서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연륜이 쌓여야 하고, 연륜에 걸맞은 경력, 직위를 쌓아야 그게 가능하죠(그런 분들이라고 또 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이 자기 역량을 발전시키고, 조직이 과거의 단계보다 뭔가 하나라도 나아지려면 젊은 참여자들이 이런 선배들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빨리 섭취, 내면화하고, 자신은 그 나이 그 자리에 올랐을 때 더 개선된 노하우를 생산해 내는 겁니다. 초일류 기업은 다 이런 단계를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무의미한 회의 방식, 그 유형을 여럿 지적, 정리한 챕터1의 내용은 사실 하급직원이면 열렬히 지지하고, 중간관리자급이라면 얼굴이 붉어질 만한 신랄한 비판입니다. 이 점은 현재 아래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이, 과장 부장 달고 나서 반드시 자신의 후배들에게는 같은 무의미한 고생을 안 시키게, 자기 선에서 잘라야 하는 폐단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래의 일이겠으며, 심지어 부장이라 해도 현장에서 실천 못할 사항이 많죠. 여튼 현재의 과제만 날품팔이처럼 근근이 해결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미래의 관리자가 되어 있을 자신을 위해 열독해 놓아야 할 중요한 지적들입니다.

이 책의 가장 잘된 점은, 능률적인 회의를 위해 보조자료들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화이트보드와 스마트폰, 프로젝터 등은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고 존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말입니다. 기능을 최대한 살리고 유기적으로 창의적으로 쓴다고 해서 그걸 나무랄 윗분은 아무도 없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좋아하고, 나이 든 세대들의 특징이 자기가 몰랐던 문자를 쓰면 싫어하지만, 자기가 몰랐던 기기 사용법을 보여 주면 바로 수그러들고 집중합니다. 뭐 과시하듯이 뽐내듯이 시연할 필요야 전혀 없지만 말입니다. 기기 아니라 간단한 시청각 도구의 (이전보다 유익한) 활용도, 자신들의 머리를 덜 쓰고 이해시켜 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어른들은 한 명도 없죠. 이런 보조도구의 활용은 "그거 괜찮네"라며 기특하게 볼 반응이 99%입니다. 욕 먹는 부하직원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어려운 말, 말, 말을 섞어 쓰는 타입입니다. 그런 말을 이해 못할 만큼 머리가 굳은 관리자들이 문제입니다만, 여튼 자기가 속한 환경의 성숙도를 봐 가며 재주를 피워야지 무작정 들이밀고 보는 눈치 없는 직원도 문제지요.

제가 감탄한 건, 본인은 최고 경영자이면서도, 아랫사람들 급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에서는, 철없는 부하들을 어떻게 하면 일급 직원 인재로 키워 줄 지, 마치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해량하고 책을 쓴 듯 그 편제가 자상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겁니다. 형 만한 아우 없다고, 책을 이렇게 독자 위주로 써 나가듯 윗사람을 모시면 못 오를 자리가 없을 듯합니다. 오를 데까지 다 오른 입장에선 그동안 바친 수고가 억울해서라도 이제 "꼰대 행세"만 남을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본인 회사에서 실제 아랫사람을 어찌 다루시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쓰시는 걸로 보아 여튼 세대 간의 악습 플로우에서 이런 깨인 분이 한 번 정도는 끊어 주고 가야 조직의 진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그건 분명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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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의 시대 - 신 르네상스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이언 골딘.크리스 쿠타나 지음, 김지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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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와는 정반대로, "여기가 감히 어딘 줄 알고 시장원리를 들이밀어!" 같은 호통이 상식처럼 통하는 섹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최소한 이 책에서 논의하는 범위와는 거리가 매우 멀겠으므로 언급을 삼가겠습니다(위의 그 사람이 그런 섹터에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 그렇기는커녕ㅋ).

물론 시장 논리가 지존이자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곤란하죠. 다만 한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도 아니고 수백만 수천만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때 자상한 지도자가 부모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어루만질 수는 없기에 일단은 합리주의의 현실태 중 하나가 이 시장경제라고 보고, 그에 입각한 룰을 세운 겁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시장 논리를 들이밀다간 구성원 간의 도덕과 소통이 어떤 모습으로 변질되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당연히 전제에서 배제하고 시작하는 거죠.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 책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고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저런 논의를 글 앞에 달아 봤습니다. "경영의 실패". 경제학에서는 일찌감치 "시장이 결코 만능이 아니며, 예외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 양상에서 매뉴얼 튜닝이 필요하기도 한 경우가 아닌, 아예 원칙적으로 시장이 실패하고 들어가는, 나아가 시장이 끼어들어서는 결코 안 될 여러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이걸 두고 "시장의 실패"라고 부릅니다. 그냥 비난하거나 쾌재를 부르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가까스로 발견하고(애덤 스미스의 시대에) 어렵사리 발전시켜 온 근본 원리"가 벌써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걸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반영된 용어입니다. 반면, 케인지언 스탠스에서 정부가 여튼 시장에 지혜롭게, 기민하게 개입하여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결정적인 허점이 발견되자 이를 두고 "정부의 실패"라 일컫기도 합니다. 허나 정부는 워낙에 둔하고 오류투성이인 존재이므로, 이 명칭은 구색맞추기나 억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위적 조직인 정부야 성공보다는 당연히 실패를 더 많이 저지르지 않겠습니까.

이 책 저자께서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의 실패"를 논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다양성의 경쟁력"인 시대에, 경영진에 (지금까지는 진출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여성적인 자질, 능력, 아이디어, 스타일이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 CEO(그룹)의 리더십은 태생부터가 결격, 결핍, 불구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이 용어들에는 서평자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했음을 밝힙니다). 이른바 "유리천장"으로 대변되는 남성만의 세계인 경영자 월드에,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읽고 나아가 창출해 나갈 "아니마"의 요소가 조화롭게 배합되지 못하면, 그건 그 자체로 "실패한 경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죠. 제가 서평 앞에서 "~의 실패"를 길게 논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운이 없어서, 변화무쌍한 돌발 변수를 체계적으로 계산하지 못해서,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제 현대 사회에서, 기업에서, 여성이 빠진 의사 결정은 "구조적으로, 본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독자인 저 개인으로서는 이 결론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왠지 이런 "학문적" 주장이 그전부터 나왔어야 할 것 같았는데, 이제서야 빠진 퍼즐 조각이 메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은 남성 또는 여성이 우월하다는 식의 일방적 시각이 아닌 통합의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과도기적으로 남성중심 조직에서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도전 요인을 극복하고 효과적인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여성리더 육성의 핵심 주제와 전략을 제시한다...." 그러니 혹시 "낄데 안 낄데 못 가리고 또 페미니즘 타령?" 같은 거부감을 보이실 분들은 오해가 없어야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건 분명 조화와 균형, 통합이지 특정 진영 광신도들의 패권 장악 놀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번에 모 정당이 후보 선출을 위한 토론 과정에서 "성 인지 예산"이란 용어, 개념, 실천적 정책 마련을 두고 설전을 벌이는 걸 유심히 봤습니다. 성 차별(드물겠지만 남성이 차별 받는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이 원칙처럼 횡행하는 조직은 벌써 "우리 회사는 구성원 인적 자원의 포텐셜도 제대로 발휘 못하는 문제 많고 가망 없는 곳입니다"를 자백하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 책은 추상적인 원칙만 논하는 게 아니라, "만화경 커리어 이론", "젠더 통합 리더십" 등 이미 현장에서 실천의 고민을 밀도 높게 행한 진정성 있는 학문적 성과물을 고루 담았습니다. 한국의 젠더 경영 논의가 이만큼이나 성숙한 수준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며, 책을 읽는 보람과 독서-공부의 통합적 체험에 큰 도움이 된 멋진 내용이었다고 평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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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제3시장으로 간다
K.I.P 경제연구회 지음 / 산성미디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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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이라 하면 아직 국내에는 낯선 분야처럼 여겨지지만 현대인의 기대수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장래에 급부상할 유망 산업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적용할 때 한국은 특히 인적자원,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편입니다. (그 외 근원적 입지 요인으로, 13억 인구라는 거대 수요 집단을 이웃에 두었다는 어드밴티지가 있습니다) 반면 산업 발달의 장애요인이라면 "의료 민영화"에 대한 공중의 강한 반감인데, 만약 의료관광이 의료서비스의 공적 순기능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위협할 수준이라면 독자로서 저 역시도 반대가 당연한 입장입니다.

의료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정체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거시경제에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던 게 원종하 교수님(외 공저)의 저서였는데요. 이런 저술 말고도 벤처기업 창업시 유의할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깔끔한 책도 지으신 교수님의 새 책에 눈길이 가서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현재 인제대학교에 재직 중인데, 학교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친 분답게 "대학행정"에 대한 권위서도 집필하신 적 있어서 그에 대해서도 유익한 공부가 독자로서 가능했던 기억입니다.

KIPP 교육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약어(略語)이지만 이 책은 원 교수님 스스로 창안한 모토와 방침, 프로그램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방법론을 제안합니다. 헨리 8세, 메리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를 거치는 기간의 영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을 뿐 아니라, 국토는 협소하고 안보는 허술하며 국민적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음은 물론 경제활동도 부진한 쪽이었습니다. 이런 많은 약점을 지닌 국가가 이후 세계 패권을 논할 만큼 번영을 누린 건 어떤 비결 덕택이었을까요? 이유는 여태 다양한 학자들로부터 많은 논거가 지적되었습니다만, 저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적, 실천적 펀더멘털이 사회로부터 널리 수용된 데에서 그 기원을 파악합니다.

제가 다른 책들의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은 현재의 번영상을 가져다 준 표준화 교육, 지식 주입 양태의 시스템으로부터 큰 혜택을 본 바 있습니다. 교육의 객체들(학생들 중 주입식 교육을 충실히 이수한)도 중추 기능을 사회에서 맡으며 중산층으로 기반을 잡았고, 시스템 역시 양질의 인적 자원이 수행하는 서비스로부터 많은 기여를 받아내었습니다. 허나 이는 과거에는 그리 해서 성과가 났었다는 소극적 체험, 교훈일 뿐,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지금 큰 도움이 되질 못하며, 오히려 바른 교육과 인적 자원 계발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창의력과 순발력이 지상의 순위를 점해야 하며, 지식의 반복 재생이 아닌 창의적 안출과 건설 능력이 중요해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저자 원 교수님은 이에 대해 어떤 실천 방안을 마련할까요?

그가 제안하는 정답이 KIPP 교육입니다. 앞서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금언(金言)이 "아는 것이 힘이다"인데, 이의 원 표현에서 앞 한 글자를 따온 애크로님이죠. 공교롭게도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대 혁신(그레이트 이노베이션)"을 당시에 주창했고, 암묵적 동의이건 명시적 추종이건 영국 사회, 경제, 강단, 시민 사회 전체가 이에 호응했기에 여튼 국내 차원에서 대도약을 이루는 게 가능했습니다. 원 교수는 이의 현대적(그리고 한국적) 변용을 주장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나 자신을 알자"는 선결 과제를 제시합니다. 외우는 지식, 베끼는 학습을 통한 자기과시 혹은 자기기만이 아닌, 책 한 권을 읽어도 내면의 발전이 뒤따르는 공부가 되려면, 우선 학습 주체인 내가 누구이며 어떤 세계관, 어떤 필요, 어떤 적성을 지녔기에, 향후 무슨 학습과 연구를 통해 어떤 인간으로 발전해 나갈지 먼저 분명한 상(像)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저자는 "어떤 대답도 그 학생에게는 정답이 될 수 있으니 무슨 해답에도 일단은 긍정해 주고, 다만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학생 스스로 충분한 근거와 이유를 마련하게 하라"고 주문합니다. 또한 저자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어, 스스로 알아 가는 쾌감을 체질화하게 돕는 단계를 강조합니다. 질문은 그 자체가 성취이므로 포인트를 부여하여 동기를 심어 주고, 바른 질문이 곧 현실에 대한 바른 답을 도출하는 지름길임을 인식시킵니다. 물론 질문은 내적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추동력을 마련하는 반응이라야 하며, 멋진 질문을 통해 지도교수나 클래스 동료의 감탄을 끌어내려는 연극적 의도라면 이는 경계, 지양되어야 합니다. 교수의 역량은 이 지점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자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책 제목인 "인생과 사랑을 디자인하라"와 어떤 연결지점을 마련할까요? 저자는 KIP 프로그램의 초석인 "너 자신을 아는" 단계에서 형성된 강한 주인의식, 자존감, 정체성 등으로부터, 현재의 젊은 세대가 빠져든 소위 삼포, 칠포의 절망감이 치유되고, 밝은 미래의 설계를 위한 정당한 기초가 장악된다는 주장입니다. 바르게 자리잡힌 인생관과 자아관으로부터 창의력도 형성되고, 사회에 유의미한 부가가치를 빚어 낼 수 있는 인생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도 절로 순도 높게 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과 사랑에 대한 "디자인"입니다. 자아실현, 거시경제 활성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개인 단계의 노력이 결코 별개가 아님을, 이 KIP 프로그램은 압축적으로 설득하여 공동체 전체를 향한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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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측마케팅 전략 - 측정하고 반응할 줄 아는 기업으로의 안내 Mindcube Economia 1
외머 아튼.도미니크 레빈 지음, 고한석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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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로만 무성할 뿐 아무도 분명한 아젠다나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도 일선에서 선명한 비전을 갖고 있지는 못한 듯합니다. 실정이 이런 판에 일반 시민이나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장래를 놓고, "4차 산업 혁명"을 키워드 삼아 어떤 건설적 투영을 해 내기란 거의 가망이 없다고나 해야겠죠. 그 실체가 파악되지 않은 채 말만 무성하니 사람들이 더 버거워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보다는 훨씬 부담 없는 이슈이겠을 "빅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5, 6년 전부터 많은 전문가나 저술가들이 지적해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미 키워드가 대중화한지 한참 지난 이 문제를 놓고서도, 일선의 경영자들이 자신의 업무에 거의 활용할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심지어 빅데이터의 개념부터가 안 잡힌 분들도 많습니다. 막연히 "통계를 잘 활용하라는 소리지"라든가(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빅데이터 어디 가서 얼마 주면 구할 수 있나?"라고 되묻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사고 방식이란, 세상을 통째 바꿔 놓을 이 도도한 흐름에 대해 그저 "기존의 데이터가 덩치가 커진 것" 정도로밖에 인식 못 하는 데 머무는 거죠.

이 책에서 일단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들어가는 저자님의 진단, 시각이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하고도 한두 달 전입니다만)에 세계, 적어도 동아시아 3국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인공지능(소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화제로 삼아, 대중들은 인간이 드디어 기계의 "지능"에 패배한 대사건이라며 입방아를 찧었죠. 헌데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하시네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그와 100m 달리기 경주를 벌여 진 인간을 보고 우리는 집단 패배감, 좌절감을 느껴야 하겠는가?" 오히려 또하나의 강력한 도구를 발견한 데서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평가해야 온당하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이 관점이 책 본문 전체를 관통하며, 또한 우리가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을 갖추는 데 이 책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잘 요약합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인공지능이니 4차 산업 혁명이니 하는, 아직은 그 실체가 분명하다거나 논자에 따라 뜻이 구구하게 갈리는 용어, 화두를 자주 쓰지 않습니다. 책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 (어쩌면 오래 전에 한물 간 듯 잘못된 느낌을 갖기도 하는) "빅데이터" 하나로 모든 설명을 시도하는 내용입니다. 인공지능을 운위하는 시대에 왜 옹색하게 빅데이터인가? 저자는 정반대로, 심지어 저 알파고- 이세돌 대국이 불러온 파장마저도 "종래의 방식에 대한 빅데이터 활용의 승리"라고까지 "치환"해서 설명합니다. 하긴 더 간명하고 상식에 부합하는 설명이 가능하다면, 구태여 번거로운 개념을 동원하거나 논증 과정이 불분명한 논의를 끌어올 필요가 없긴 합니다. "인공지능의 승리"라고 설령 인정해도, 그 실체와 핵심은 결국 "인간이 이용하지 못했던 방대한 데이터의 분석에 기인한 승리"라고 바꿔 말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지능" 자체가 어떤 구조, 속성인지 모르는 형편에, 더 이해하기 쉽고 내용도 분명히 규명된 "빅데이터의 위력"으로 초점을 잡으면, 더 유익한 결과가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적용해 보기도 더 쉽고 말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정말 성공, 실용 단계에 확실히 진입한다면 그건 빅데이터를 훨씬 뛰어넘는, 넥스트 레벨의 성취임에 틀림 없습니다. 자동차가 "엔진과 강철과 휘발유와 플라스틱과 쿠션의 합"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로요. 하지만 그건 업계의 성취가 일정 수준을 확실히 넘어선 후에 의미 부여를 해도 충분합니다)



저자께서는, 여전히 빅데이터라고만 해도 뭔가 어렵게 다가올, 현장의 그저 평범한 사장님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겪은(본인이 CEO이시기도 하니까요) 사례를 중심으로 무엇이 "빅데이터 경영"인지 재미있게 설명해 줍니다. 이 책은 이처럼 저자 스스로가 겪은 사례를 바탕으로, 실무에서 쉽게 실천해 볼 수 있는 지침이 많이 담겼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컨대 요즘 우리는 기업들이 "잉여 서비스"를 많이 줄여가고 있다는 점 실감하게 됩니다. 과거에 노트북 한 대를 사면 딸려오는 매뉴얼만 해도 웬만한 자계서 한 권 분량의 책이었습니다. 요즘은 가전제품을 사도 지류에 적힌 설명서를 구경하기 힘듭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운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허투루 새어나가는 무익한(?) 비용을 줄이자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의 발로이니, 우리도 다들 기업에 몸담은 입장에서 이해해 줄 여지는 있습니다.

저자는 잔반 줄이기로 비용 절감(나아가 환경 보호 기여ㅋ)에 성공한 직접 사례를 들어 주십니다. 회사 카페테리아 같은 데서 저렴하게 공급하는 식단에, 먹지 않고 버리는 반찬이 연간 수십 톤에 달한다면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그 역시 의미없는 원가(직원 복리 후생) 출혈입니다. 우선 먹고 버린 잔반통을 다 뒤져(여기서 웃음이 나기도 했고 과연 CEO  체면에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회의도 느껴졌지만 - 물론 직접 하신 건 아니겠지만요 -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화는 이런 자질구레한 문제의 위급한 인식에서 비롯한다는 점은 확실히 배웠습니다) 어떤 반찬을 가장 많이 남기는지 조사했다고 합니다. 답은 부침개인데, 이 음식은 갓 요리하고 바로 배식해야 하는, 온도가 생명인 품목이죠. 그런데 싸늘히 식어 있으니 입맛이 당길 리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장(확장하면 결국 시장이 됩니다)의 진짜 니즈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경영 효율화, 나아가서는 혁신의 단초가 된다는 거죠.



거기에 그치면 작은, 소소한 개량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반찬의 다양한 품목을 코드화하여, 막연한 직관이나 불분명한 "문과 언어" 사용이 아닌, 잔반 줄이기 프로젝트에서 계량화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언어"로 이 문제를 접근했습니다. 순간 독자인 제 머리도 아찔해지던데 해당 대목 바로 그 다음에 숱한 애로사항이 진술되더군요. 전산시스템은 글자 하나만 틀려도 전혀 다른 품목으로 분류하니 이른바 정성적 분석이 원활히 안 이뤄지더라는 거죠(오죽하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땀이 나네요). 저자는 이 귀찮은 단계에서 포기하지 말고, 아예 당신 주변의 모든 환경을 "데이터"로 다 바꿔 놓으라고 합니다. 왜 혁신기업의 CEO들이 "데이터는 미래의 석유"라고 했겠는지 그 의미를 새기면서 말입니다(사실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요약, 주제 대변이라고 새겨도 됩니다).

인간의 뇌는 사물과 환경을 실체, 혹은 아날로그 포맷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은 의식, 무의식상으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모두 데이터로 변환한 후 일정 프레임에 끼워 넣고 정리할 뿐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사실 여기서 인간 사이의 소통 부재, 오해, 갈등이 비롯하기도 하죠. 나는 나를 이러이러한 존재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는데 상대는 상대 나름대로 그의 시각에서 나를 판단(데이터화)하고, 객관적 실체(논란이 있겠습니다만)는 또 전혀 별개 지점에 있고... 여튼 문제를 선명히 인식하고 실천을 쉽게 이루려면, 아날로그적 감상이나 밑도끝도없는 이미지에 매달릴 게 아니라, 각종 장애와 이슈와 목표를 모조리 데이터로 바꾼 후 판단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겁니다. 진짜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또 여러 혁신가들의 명언이 곳곳에 소개되어 결론 정리에 유익했습니다. 시장 조사를 통한 체계적 예측 끝에, 독신자 가구가 증가하는 대세에 호응하고자 작은 벽걸이형 세탁기를 야심차게 출시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벽걸이까지는 모르겠는데 소형 세탁기라면 대략 십 년 전에 여러 작은 기업에서 생산, 판촉을 벌이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큰 실패로 끝나고 만 게, 1) 원룸 거주자나 소형 아파트 입주민 중엔 이미 빌트인 형태로 중형 세탁기를 제공받은 경우가 많으며, 2) 이런 사람들은 대개 빨래를 그때그때 하지 않고 일주일치를 몰아서 하는 습관이 있더라는 거죠. 이처럼 데이터의 해석은 그저 큰 줄기에만 주목하거나 현장의 구체적 상황을 무시하는 게 되어서는 안 됨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또하나 재미있는 게, 결국 빅데이터의 성공적 활용은 처음에 질문을 바르게 확정해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세탁력이 우수한 세제를 출시하려던 회사는 데이터의 분석 후, 소비자들이 세탁 완료 후 빨래를 꺼내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냄새를 맡는 것"이란 점에 착안하여, 전략 자체를 수정했습니다.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깨끗하게 빨리느냐"가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깨끗하게 빨렸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느냐"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2차 대전 당시 미 공군에서는 출격하는 폭격기가 적의 대공포에 희생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비행기 곳곳에 추가 장갑을 설치하려 했는데 자원이 무제한이면 문제가 없겠으나 한정된 자원, 물자를 놓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난점이었겠습니다. 귀환한 전투기를 보니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탄환을 맞은 흔적이 있어, 전문가들은 여기에만 장갑을 입히면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최고 책임자는 정반대로, 그곳만 빼고 다른 데다 장갑을 장착하라고 했다는군요. 그 이유란,

"그나마 이곳을 맞은 폭격기는 타격이 크지 않아 귀환할 수 있어서 우리가 지금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허나, 다른 곳을 맞은 폭격기는 적진에서 다 격추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예 확인도 못 하는 것이다."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통찰력 있는 리더는 이처럼 정확하고 본질을 해결하는 해법을 내어 놓습니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든, 인간의 창의와 상상력은 결코 기계의 효율에 압사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으로서 그 위에 군림하며 더 많은 효용과 복리를 창출합니다. 그 기반은 현재도 무한히, 한계비용 0에 가깝게 생산되는 데이터, 빅 데이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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