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소득세법 강의 - 이해와 신고실무, 개정 5판
박태승 지음 / 어울림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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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자소득이나 배당소득이나 이른바 "불로소득"이라 불리는 범주입니다. 불로소득이라고 하면, 도덕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비판 받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그런 걸 떠나 세법상으로는 이 범주가 따로 필요해지기도 합니다. 그건 바로, "필요경비 0"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기타소득 같은 경우 일률적으로 필요경비 30%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근로소득처럼 원천징수가 이자 지급 단계에서 벌써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1993년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이전에는 타인 명의로 돈을 은행에 맡기는 이른바 차명행위가 널리 성행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경우 세금은 세금대로 면탈이 되지만, 후일 자신의 돈을 되찾을 때 소송을 걸어도 법원은 "여튼 돈은 제 임자에게 돌려줘야 하며, 그 과정에서 탈법 사실이 드러나도 과태료나 (비교적 가벼운) 형벌만 받으면(혹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전제 아래) 충분하다는 태도였습니다. 이러던 게 금융실명제 조치(긴급재정경제처분) 이후, 법을 어긴 돈은 아예 되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법질서가 완전히 개편된 것입니다. 법이 이렇게 바뀌면 당사자 입장에선 무슨 대비가 있어야 하는데 "뭐 설마 어떻게 될까" 같은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다 더 큰 이중 삼중의 타격을 받는 사례(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가 속출했죠.

이들과는 달리, 사업소득은 역시 필요경비를 인정하는 구조입니다. 다만, 마치 법인세 세무조정에서처럼, "필요경비 산입", "불산입" 등의 과정을 거치는 이른바 "간접법"을 쓴다는 게 특이합니다. 법인세법은 특히, 자산수증이익, 채무면제이익 등을 익금으로 취급했으나, 소득세법은 "사업 관련성"을 그 요건으로 삼습니다. 지난 11주차(18기) 리뷰 네번째 문단에서도 그 말을 했었는데, 바로 여기서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의 이론적 기반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겠습니다.

사실 이는 제법 중대한 사안입니다. 업무와 관련 없이 어디서 기부를 받거나 해도, 법인세법상으로는(즉 법인이 설립된, 법인 등기가 이뤄진 사업체) 이런 돈(혹은 물건)에 대해서도 과세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법인 등기 아닌, 단지 사업자 등록만 하고 영위하는 사업체는, 이런 뜻밖의 이익에 대해선 세금 납부, 혹은 과세 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단, 어디까지나 사업 소득의 범주에서 그러하며, 기타소득으로는 신고를 하는 게 납세자의 의무입니다. 이 점 역시 지난 리뷰에서 언급했더랬죠.

그런가 하면, 혹 사업용 재고자산을 자신이 소비하거나, 피용인에게 지급했다면, 이를 판매한 것으로 간주해서(사실은 아니었지만) 총수입 금액에 포함을 시킵니다. 그리고는 물건의 원가는 필요경비에 다시 넣는 식이죠. 한마디로, 급여 대신 주건, 내가 쓰건, 모두 판매한 물품과 같게 취급하는 겁니다. 또, 만약 도난, 화재 등을 당했는데, 이로 인해 "보험 차익(보험금 자체가 아니라)"이 발생했다면(실무상 거의 없겠습니다만) 이 역시 사업 수입에 포함을 시켜야 합니다. 애초에 필요경비에 산입이 안 되었던 금액을 도로 받기라도 했다면, 이는 역시 사업 수입 금액에 포함을 안 시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처음부터 과세가 된(=과세표준에 포함된) 셈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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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 - 천만 열혈 청춘의 사고를 혁명한 인생지침서
리샹룽 지음, 박주은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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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부르는 동작, 주문 따위를 표현하는 말은 여럿이 있으나 그 중 하나는 conjure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 시대 법정 등 공공장소에 나가 선서, 증언하는 행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사적(私的) 공간에서 하는 말과, 여럿 앞에서 행하는 공언(公言) 사이에는 그만큼 큰 무게감의 격차가 있음을 짐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말의 무게가 전혀 없고, 장소에 따라 다른 장르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생은 조만간 법정에 불려 나와 대체 어느 버전의 횡설수설에 자신의 진의가 깃들었는지 "증언"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돈 몇 푼의 지출로 과연 빠져나올 수 있는 곤경이 될지, 사람이 어리석으면 집안에 쌓아 둔 돈 몇 뭉치가 그 행실의 파국을 감당 못 할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상만 험악했을 뿐 속에 든 지혜가 전무한 무지렁이가 과연 결정적인 순간에 무슨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말이죠.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힘을 갖고 태어난 이(저자의 표현입니다)라 해도, 그 잠재력이 적절한 수련 과정을 거쳐 온전한 사회적 능력으로 계발되지 못하면 그저 영원히 램프 속에 감금된 지니 신세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은 "어차피 힘을 들여야만 계발이 되는 잠재력이라면, 그게 과연 나의 것으로 불릴 수나 있을까?"라며 노력 자체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차피 나는 안 돼!" 같은 체념과 부정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반응이어서, 무관심이나 적대감이 아닌 단순 회의의 단계입니다. 이런 이들은 자아의 실현과 능력의 각성에 일단 관심은 유지하는 그룹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노력과 계발, 재발견에 미온적인 태도만을 여태 보인 이들에게, 꽤 자극이 될 만한 희망어린 주장을 펼칩니다.



"당신은 여태 놀라운 일을 많이 이뤄 왔다! 다만 당신이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혹은 대학에 들어온 후, 친구들 여럿과 모여 집단 과제를 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라. 매번 성공적이진 못했어도, 몇 번 정도는 놀라운 성과를 내었을 것이다." "혹은, 수능 시험은 어땠는가? 당신은 과연 지금 다시 수능을 치면, 19세때의 첫번째 시련과 관문에서 보여 줬던 그 놀라운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재현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때 절박함이 무의식에 작용한 기적으로, 현재의 학벌을 마련했던 건 아닌가?" 책에서 저자분이 제기하는 질문은 여럿으로 변형, 응용할 수 있습니다. 혹은, 현재 영위하는 자격증이라든가 직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른 시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시행하는 공인 자격 고사란 난이도도 높고 출제 범위도 광대합니다. 어쩜 그 어린, 혹은 젊은 나이에 (비록 벼락치기일 수도 있으나) 그 많은 내용을 머리에 담고 이해하며 적용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내가 그 시험을 통과하는 게 당장 버겁고 귀찮다며 게으름을 피웠다면 지금쯤 어디에서 뭘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답합니다. "절박한 심정이 무의식에 들어가 결국 기적을 낳았다." 남들 다 하는 일이라고 우습게 볼 건 아닙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 간단한 통과의례를 못 겪어 내어 훨씬 우스운 모양이 된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그 열등감을 극복 못 한 나머지, 괴상한 패턴의 반인륜적 소통을 시도하다가(자신이 이러고도 무사히 넘어가는지 아닌지 스릴 테스트), 공권력에 의해 아예 치명적인 불이익 선고를 당하며 그러잖아도 부실한 커리어를 불가역적으로 망치는 한심한 인생도 적지 않습니다.



무의식에 내재한 잠재적 능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졌고, 이를 발현시킬 기회도 아직 어느 나이에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로막는 건 부정적 사고의 습관, 몸에 밴 게으름, 어설프고 근거 없는 선민의식(선민이 아니라 천민이라고나 해야),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강박적 체질적 악습 따위입니다. 무의식에 내재한 무서운 힘을 나의 것으로 끌어오는 순간, 한때는 불가능하리라 체념했던 경지에 어느 순간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방합니다. 전에 내가 하지 못했던 생각과 아이디어를 지금 떠올릴 수 있고, 남에게 받지못한 인정과 크레딧을 얻어내며(페쇄 집단의 낙오자 품앗이는 제외), 지금까지 벌어 보지 못한 액수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얼마나 큰 희망이요 자기 능력의 확인이겠습니까? 주부는 비록 가난할망정 살림살이를 키워가는 재미, 애들이 하루하루 커 가고 적당히 머리가 굵어가면서 효도 시늉이라도 내는 보람에 세상 부러울 바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태어나 옆지기를 만나 2세를 낳고 키우는 일부터가 기적이요 공동체에 대한 중대한 공헌입니다. 이 모두가 나를 긍정하고 세상을 밝게 보는 데서 첫걸음이 떼어집니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내가 나를 올바로 지휘하는 삶에 눈뜨는 그 기적을 만남에 있어,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나의 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바로 최고의 기적이며, 인간이 신의 경지로 접근하는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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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인재 경영 -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도요타형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데이비드 마이어 외 지음, 정준희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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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 "핵심인재"에 포커스를 두고 저는 책을 열었는데, 총 3파트 중 첫째 부분이 "조직역량"입니다. 그 다음이 (보다 범위를 줄여) "인적자원역량", 그리고 마지막이 "핵심인재"로 구성되었네요. 하긴, 조직역량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재(인적 자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인적 자원 중에서도 대체 가능한 잉여를 고려에서 제외한 채 핵심만을 추려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게 책의 주제입니다. CEO의 입장에서는 조직 역량 강화를 인적 자원(HR) 분야에서 적극 도모할 수 있는 매뉴얼의 점검이 되겠고, 직원의 입장에선 먼저 조직역량의 강화를 고려한 후 자신의 개인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조감도 노릇을 할 수 있는 책이겠습니다. 조직 입장에선 핵심 인재의 양성과 보유에 소홀한 채 물적 시스템 강화만으로 생존과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조직에 소속된 개인들은 무엇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인지 그 비전을 명확히한 자기계발을 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

파트 1은 경영학의 구식 패러다임에 익숙한 분들에겐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이미 필립 코틀러나 그 훨씬 이전 피터 드러커부터가 개념의 내포로 강조했던 어젠다인, "사회적 책임(CSR)"을 깊숙이 체질화한 논의입니다. UN 등에서 이미 지난 1990년대에 확고히 체계화한 "지속 가능한 발전(전지구적 과제, 혹은 공적 섹터가 유념해야 할 목표)"을, 개별 기업에도 적용한 게 바로 "지속 가능한 경영"입니다. 이때의 "지속가능(sustainable)함"이란, 기업의 윤리 경영, 준법 의식의 확립, 나아가 공감대적 가치의 선도적 창안 같은 것을 뜻하며, 기업이 고객과 함께 이익과 번영을 누리고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여, 소비자가 생산자(좁게는 경영자)를 타자 아닌 이웃으로 인식하는 단계를 궁극의 비전으로 간주합니다. 소비자에게 잉여를 거두어 기업만의 배타적 잇속을 챙기려는 전략으론 결국 시장에서의 생존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어떤 도덕적 각성이라고 꼭 보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시장의 체질과 구조가 엄연히 소비자 위주로 재편된 환경의 변화가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사실입니다. (알아서 착해진 게 아니라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역량"인데, 원어는 competence입니다. 이 competence는 지능(intelligence)와도 다르고, 적성(aptitude)와도 차별되는 개념이죠. 지능은 쉽게 말해 "머리가 좋다"고, 적성은 "(일이나 과업과) 잘 맞는다" 정도입니다. 머리가 나빠도 왠지 그 일이 좋고 끌리고 몰두하면 행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재가 노력하는 놈 못 이긴다"라는 말도 있는데, 함정이라면 대개 천재는 적성까지 함께 갖춘 게 보통이라, 노력도 평범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한다는 거죠. 재능은 있는데 적성이 부족한 천재(아주 드묾)를 타겟으로 삼아야 승산이 있습니다. 헌데, "역량"은 이런 초기 조건(타고난 조건)과는 좀 별개의 개념입니다. 얼마 전 구속되어 큰 물의를 일으킨 화장품 차르 정 아무개씨도, 사실 다른 두 덕목보다 한 가지 팩터에서 압도적인 사람이었기에 학력이니 집안이니 아무 배경도 없이 그만큼이나 (일단은) 성공할 수 있었던 건데, 그게 바로 "능력"입니다. 남자는 외모니 학력이니 이런 것보다 "능력"이 있어야 여자 고생 안 시킨다고도들 하는데, 이 쉽게 표현되는 세칭 "능력"이, 경영학 교과서 등에서 어렵게 말하는 "역량'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역량"은 물론 지능이나 적성과도 상당 부분이 겹치는 개념이지만, 그 사람 특유의 근성이나 경험에서 쌓은 관록, 혹은 행운 등을 두루두루 지칭하는 개념이죠. 앞서 말한 정 모씨 같은 경우 이런 "역량" 개념을 써야 그의 사업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p87에 보면 데이빗 매클레란의 연구를 인용하여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이 "역량" 개념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느 선배(같은 학교는 아니고)가 "학문이란 결국 누구나 다 알고 쉬운 걸 멋있는 언어로 포장하는 기술"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거기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사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립니다. 그야말로 지능이 딸리는 사람이 공부를 못 쫓아가서 자기 위안으로 둘러대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데, 모르겠습니다, 일용 노동자가 이런 말을 하면 그건 그분 입장에선 정직하고 타당한 언명이기라도 하죠. 뭐 알지도 못하는 말을 떠들면서 없는 지식을 가장하는 것보다는 솔직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여튼, 이 "역량"은 그 개념 연구의 동인(동기)부터도 그렇고, 그 연구의 결과도 철저히, "사업 성공" 등 세속적 성취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인자(factor)를 잡아내는 것이었고, 보통 우리 주변에서 말하는 "그 사람 능력 있네" 따위와 정확히 일치하는 외연, 내포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고, 다만 이 책에서도 강조하는 것처럼 그저 약탈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역량"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인재가 가져야 할 덕목과 목표라는 점에서 장차 완성되어야 할(채워져야 할) 미래지향적 개념이라는 게 최근 연구의 성과입니다. 만약 전자로만 개념을 새기면 소위 "지속 가능 경영" 혹은 "사회적 책임" 등과 앞뒤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오죠.

또 하나, 현대 경영학에서의 "역량"은 이른바 구시대적 "능력"과는 달리 막연한 인상 포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치로 측정과 계량이 가능한 객관적 개념입니다. 이래서 한 인재의 역량은 피드백이 가능하고, 그를 평가하는 상사, 동료, 부하들에게 공히 어필할 수 있는 공통된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역량은 물론 개인화한 능력이나, 그 능력은 특정 개인에게 고정 고유 부품으로 쓰이는 게 아니고, 범용으로 표준화하여 조직 내 모든 인재(특히 핵심 인재)가 고루 모듈로 채용할 수 있는 롤 모델입니다. 한 사람의 역량이란 예측 불가하거나 반대로 장기간 불변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시대와 조직의 모럴과 기대에 못 미치는 바 있으면 급격히 수축합니다. 타락하고 배타적인 "능력", 혹은 일시 때를 잘 만나 대박이 터졌던 고정된 요인이 아니고, 상황의 변화에 융통성 있고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한 가지 방향으로 맹목 돌진하는 야수의 본능이 아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된 총체적 능력의 발휘입니다.

이렇게 역량 개념을 정리한다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이 개념을 왜 이렇게 정리, 규정해야 하는지 그 반성이 다시 필요합니다. 사실 "개념 정의를 그저 말만 멋있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그저 학문적 깊이만 부족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조직에 몸 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왜냐. "역량"에 합리적인 정의(definition)를 하려 애쓰는 이유는, 첫째 그것이 조직 성과와 강력한 연계(플러스 공분산이 절댓값까지 높은)를 가졌다는 가정 하에서고, 둘째 그런 역량을 갖춘 인재를 잘 양성하기 위한 조직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좋은 역량이라도 바로 그 역량을 자기 회사 인재에게 심어줄 수 없다면, 그런 역량은 포기해야 한다는 소립니다. 인재 양성에서 효과적으로, 가시적으로 계발 가능한 역량을 인재에게 함양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개념이 우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성과가 우선이며, 개념(역량)은 그에 부차적입니다. 번드르한 말이 전부가 아님은 여기서도 확인 가능하죠.

요즘 조직론, 그리고 HR에서 강조하는 게 "리더십"이란 개념이 또 있습니다. 이 리더십과 개인 역량은 겹치기도 하지만, 리더십은 엄밀히 말해 각론과 응용에 가깝습니다. 개인 역량은 경영학에서 철저히 조직 역량을 전제로 하고 창안한 개념이며, 따라서 모든 개인 역량은 (물론 개인의 적성과 특이 사정에 맞추긴 해도) 조직 역량을 전제로 한 채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 개인 역량 중 리더십 역량이라는 게 있는데, 물론 그 사람이 언제나 진두에 서서 무리를 이끎만을 염두에 둔 건 절대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올바른 리더십을 합리적으로 추종할 줄 아는 인재상까지 포섭하는 개념입니다. 흔히 공감 능력이란 말도 하는데, 꼭 보면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서 철저히 무능한 자가, 이상한 데서 보상심리를 발동하여 전체 분위기에 추한 방식으로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이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해고와 축출이 답입니다.

기업은 과거와 달리 우수한 여건을 타고난 인재를 밖에서 채용만 해 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평범한 재목이라도 잘 양성하여 일류로 키우는 기능까지 해내야 합니다. 물론 평범한 자가 회사의 HR 역량 미진 핑계만 대다 결국 무능자 신세를 못 면하고 축출되는 경우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로 GE의 모델을 참고로 하는데, 코어그룹, 아웃플레이스먼트 그룹, 계발 그룹, 로테이션 그룹 등 세그먼트별로 접근하는 방식은 이미 기업마다 일반화한 방침이기도 하지만, 특히 핵심 인재에 들어온 자원이라도 언제나 지위가 보장되는 건 아니며, 반대로 밀려난 자원에게도 동기 부여와 트레이닝을 통해 코어 재진입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함은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사실 한국의 직장 풍토에서 한 번 실수는 그대로 "끝"을 의미하는데, 이 방침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기란 여러 여건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소위 discipline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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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관리회계
황국재.김도형.이성욱 지음 / 생능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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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의 정확한 측정과 배분은 관리회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개념이고 과정입니다. 보통 개별원가(계산)와 종합원가 계산으로 분륲하는데, 당연히도 훨씬 어려운 작업은 종합원가 파트이며 엄밀히 말해 실무에서 순수하게 "개별원가"인 상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이른바 "중요성의 원칙" 때문에 자질구레한 건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실무일 뿐이죠.

영어는 까다로운 게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어법을 구분하는 관행입니다. 하긴 이런 건 한국어라고 다르지 않죠. 우리 나라에서 알바를 뛰든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으로 체류를 하든 그저 발음만 유창하면 무조건 신뢰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그저 목소리만 좋다고 그 사람의 지성과 교육에 신뢰를 보내지 않듯 한국에서 영어 강사 노릇하는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믿을 게 전혀 아니더군요. 일례로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무엇인지의 질문에, '초기 식민지 정착을 도와 준 원주민에 대한 감사"라고 답하는 분을 봤는데, 물론 그게 도덕적(정치적?)으로 옳고 마땅히 그래야 할 수야 있겠으나, 실제 벌어진 역사는 그게 아니었죠. 고사성어 "교각살우"가 이런 경우에나 딱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품의 "다발"이라고 할 때에도, 영어로 이걸 batch라고 할지 아니면 bunch라고 할지는 참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도 각양각색의 고유어 뉘앙스를 구분할 때 아무 한국인 붙잡고 물어서야 당연히! 정답이 안 나오듯, 이런 건 제대로 연구를 하고 믿을 만한 과정을 밟아 공부를 한 사람한테 물어봐야 답이 나옵니다. 아무튼 원가회계(관리회계)에서 재품다발이란 용어를 쓸 때에는 batch가 맞습니다. 여기서 one batch인지 아닌지를 구태여 따지는 이유(의의)는, 이걸 개별원가로 계산할지 아니면 종합원가의 기법을 동원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철학에서 Einheit 개념만 잘 터득하면 그 2/3을 이해했다고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사실 어디까지나 단일 개념(혹은 실체)이며 어디서부터가 타자인지를 따지는 게, 저런 순수학문에서건 회계학 같은 기술응용분야이건 중요합니다. 이 영역에는 A라는 원칙이, 저 영역에는 B라는 준별되는 원칙을 명쾌히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당최 어려운 과제가 없을 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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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20-06-0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혹시 55페이지만 좀 보내주실수 있을까요ㅜㅜ좀 급하게 필요해서요

파레토법칙 2022-03-0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위의 책은 미묘한 용어를 적절하게 사용한 좋은 책인지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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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뭘 읽어도 즐겁고 신 납니다. 어떤 세계적으로 이름 난 작가(이름은 안 밝히겠습니다만)들의 경우, 정말 시장에서 잘 팔릴 만한 스타일과 프레스를 몇 개 정해 두고 조금씩만 바꿔서 찍어내는 듯 당혹스러움을 안길 때가 많지만, 이분의 작품은 통속적이면서도 그런 상업적 느낌을 받지 않게 됩니다. 최근 <나미야...>가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 안에는 언제나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 또 그에 동참할 것을 독자에게 권하는 따스한 목소리가 스며 있는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스커레이드 시리즈"는 첫째 작품 "호텔"부터 계속 읽어 왔습니다. "대형 추리물"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스케일이 크긴 하지만 <질풍론도> 같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보았듯 그는 꽤 자주 배경 규모를 크게 늘려서 이야기를 꾸리는 작가이며,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듯 제법 쫄깃한 스릴러를 잘 만들기도 하는 분이죠.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도, 추리 장르가 이제 나올 게 다 나온 편이기도 한지라 (또 유독 그에게만)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의 기본 소명은 "이야기"인데, 정말로 장르를 전혀 안 가리고 온갖 포맷에 다 도전하여 그만의 푸근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노고에는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심지어 그는 추리물이나 스릴러에서도 인간미를 언제나 심어 두는데 이는 그의 천성이 아닐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관성이 있을까 싶습니다.

"매스커레이드"란 단어만큼, 여타의 허름한(dingy) 숙박업소와 달리 호텔이란 업소에 잘 어울리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귀족들이나 신흥 부르주아의 키치 의식에선 "가면 무도회"가 긍러했듯, 20세기 들어서 성업하기 시작한 호화 대형 접객 업소에서는 각자가 이날만큼은 성장(盛裝)을 걸치고 다른 사람이 되어 꿈 혹은 망상을 실현하고자 애씁니다. "즐기는" 게 아니라 "애 쓴다"는 말이 맞을 만큼, 이런 데 와서 구태여 다른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이들은 사실 내면이 외롭거나 버림 받은 처지에 가깝습니다. 이런 대형 접객 업소는 주로 미국에서 비롯한 건데,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호텔 전속 "탐정"을 고용하여 행여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폭력은 물론 각종의 불륜 등)을 "어디까지나 호텔 안에서" 마무리짓고자 했습니다. 영어에 "What happens in Vegas, ....." 어쩌구 하는 관용구는, 따지고 보면 도박장과 호화 유흥업소가 밀집한 그 도시만 한정해서 해당하는 게 아니죠.

아마 1편에서 "알고 보니 좌표" 운운하던 그 트릭을, 이 작가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잊지 못할 것입니다. 기발해서가 물론 아니라, 어쩜 ㅎㅎ 그렇게나 자주 장르물에서 아주 예전부터 쓰여 욌던 트릭을 또 쓰실까 하는 놀라움, 그러면서도 (다른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별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독자 자신에 대한 의아함 때문이겠습니다. 진짜,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어째 그토록 고색창연하고 낡은 갖가지 잔재주조차, 마치 "나미야 잡화점"의 마술이나 입은 듯, 새삼 신기하고 자못 설레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독자들은 그저, 그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 줘도 유쾌하고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일까요?

이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1권부터 계속 모아왔습니다. 히가시노 상의 작품들은 국내 번역 출판사가 다양(그래도 큰 곳 아니면 계약을 못하죠)하고 어떤 "고전"은 재판, 한정판, 기념판이 나오기도 해서 컬렉션 꾸리는 데 좀 애로가 있긴 합니다. 양윤옥 선생님의 마치 한국어 같은 자연스러운 문장에선, 히가시노 상 특유의 위트와 인간미가 그대로 묻어나서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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