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라이트 특급열차 철도 네트워크 제국 2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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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편이 가람어린이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1편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고, 멀찌감치 앞서 진도를 나간) 원서를 구해 읽으면 충분하지만, 서현정 역자님의 문장 스타일에 이미 맛을 들였고 또 필립 리브의 이 시리즈는 이 분위기로 쭉 가야겠다는 생각에 내내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또, 독자의 특권으로 "다음 사연이 이렇게 가지 않을까?"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맛이 따로 있기도 하니, 그 기다리는 시간을 그런 식으로 잘 활용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이 2편도 결코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를 보면서, 왜 일본 컨텐츠는 이렇게 암울한 상황을 구태여 미래로 잡았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주인공 소년은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그 상처와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이후 펼쳐지는 모든 모험을, 결코 그 나이 또래가 지닐 수 없는 용기와 배짱으로 헤쳐 나가는 거죠. 애초에 그런 상처와 상실이 없었으면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없고, 어 이건 안 되는데, 뭔가 만회, 회복(, 나아가 정의의 실현)이 이뤄져야 하는데 하면서 어린 관객들도 그 긴 사연을 매주 조바심치면서 계속 이어 보게 되는 겁니다. 이런 부당하고도 길고 긴 사연이, 마치 물리적으로 길쭉한 모양새를 지닌 기차에 담겨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거죠.

세월이 지나도 기차는 여전히 낭만적 상상의 대상입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시골 꼬마들은 (요즘 그렇다는 게 아니라 예전 이야기지만) 지나가는 기차에 돌을 던지는 못된 장난(을 넘어 범죄)을 치기도 했죠. 그런 행동은, 자신들이 이루거나 도달하지 못할 어떤 아련한 지점을 향해 쾌속 질주하는 물체, 혹은 그 위에 올라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서가 그 동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 우리가 기록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열차 지붕에까지 새까맣게 올라타서(얼마나 위험합니까) 당장의 연명을 도모하는 피난민 행렬 같은 걸 떠올려 보십시오. "오리엔트 특급" 같은 낭만과 사치 외에도, 기차는 이처럼 뭔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애환 같은 게 담긴 피사체였습니다. 거의 언제나.

아니 기차에 인공지능이 달려 있고, 이것들이 이루는 네트워크가 그 자체로 생명력, 혹은 의사능력과 의지가 갖춰진 "재국"이라니, 이런 발상은 어렸을 때부터 철도와 기차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자라난 마인드가 아니고서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2편에서 캐릭터들은 더 다양한 경로를 틀고, 희한한 개성을 보여 주며, 독자의 상상이 미치기에 훨씬 먼 간격으로 "광활한 제국"의 영역을 넓혀 나갑니다.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이긴 하나 혹시 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 걱정일랑 싹 접어도 되겠더군요. 간혹 예외도 있지만 기차는 그저 몸만 거기 실으면 나머지는 기차가 알아서 하지 않습니까. 필립 리브의 이 작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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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자 - 세상을 지배하는 다섯 가지 협력의 법칙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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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안 싸우고" 돈을 버는 사업가는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받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자 사이의 무한 경쟁, 완전 경쟁(혹은, 그에 가까운 경쟁)이 빚은 효율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쟁을 피해가거나 독점을 통해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기준, 잣대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며, 실제로도 사법, 공법이 아닌 제3의 영역인 "사회법(중 경제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업가 입장에선, 가능하면 피 말리는 경쟁 없이 편하게 돈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듭니다. 앞으로 도래할 "제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어떻게 그 양상이 바뀔지 미지수이지만, 자본이란 본래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시장에서 이로운 위치를 점하며, 일제강점기에도 "물산 장려 운동"이 벌어진 배경이, 도대체 조선인 사업가들의 손에 종잣돈이 좀 모이게나 해 보자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덩치를 부풀린 자본은 개인의 사업 시작(소위 breakthrough) 단계에서만 요긴한 게 아니라, 이미 덩치를 키울 대로 키운 자본이 다른 경쟁자를 다 쫓아내고 독점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더 유용합니다. 가격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반대로 가격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지점에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 사업자 입장에선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습니다. 반대로 소비자의 후생은 축소되며,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체 생존을 위해 이런 독점 현상을 규제하며, 나아가 생산자들 간의 담합을 통해 이뤄지는 과점까지 제재합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주제는 그러나 이런 탈법, 초법, 예외적 현상이 아닙니다. 경쟁이 없어지니 사업가의 마음이 편한 것까지는 같은데, 덩치를 키워 경쟁자를 쫓아내거나 (언제 배신할 지 모르는) 경쟁자들과 뒷거래를 하는(그래서 소비자를 등치는) 게 전혀 아니라,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사업 영역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그 영역에서 나의 물건만 찾게 하자는 전략입니다. 다시 말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상대가 안 나타나, 오직 나 자신만이 경쟁 상대"인 블리스포인트를 가리킵니다. 이런 걸 가리켜 예전부터 블루 오션, 혹은 퍼플 오션 같은 말을 써 왔으나, 그런 용어들은 어찌보면 결과론으로서, 혹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그런 시장을 운 좋게 발견하는 사례에 가까웠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그런 사례보다, 진취적이고 혁신 친화적인 기업가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안온한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었는지, 그 비결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가 지향하는 미래 이상적인 기업의 목표상은, 바로 강소기업입니다. "소"는 사이즈가 작아야(이게 앞서 언급된, 규모를 키워 독점의 장벽을 높이는 지지난 세기의 악폐와 대조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함의이며, "강"은 경쟁력을 통해 다른 참여자의 위협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는 뜻이겠습니다. "강소기업"의 육성은 예전부터 대만 같은 신흥국에서 강조해 온 정책 목표이자 미덕이었는데, 개발 독재기의 한국은 정반대로 재벌 중심의 중후장대형 산업 구축에 몰두했습니다. 저자의 견해로는, 이제 아이디어 중심, 톡톡 튀는 창의력 위주로 수시의 혁신이 필요하며, 이런 환경적 변화에 맞는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려면 강소기업 체제 외에 답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경영서를 쓰시는 저자들을 보면 1) 실무 최전선을 뛰다 나이 든 후 컨설팅 쪽으로 전환하신 분들 2) 처음부터 컨설팅 섹터가 주무대였던 분들 3) 학자 출신 세 부류로 대강 나눌 수 있는데, 이 저자님은 3)에 속합니다(컨설팅 쪽에서도 일정 경력 있음). 자신만의 파격적인 주장을 개진하신다기보다, 정평 있는 여러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촘촘히, 다양히 인용하시는 체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본디 경영자나 통치자의 유형도, 자신만의 개성과 일관성을 이어가는 타입(멋있긴 하죠)보다 주변의 말을 경청하고 센스있게 취사선택 잘 하는 타입이 끝에 가서 더 성공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균형 감각과 조화 있는 분별의 미덕이 잘 발휘된, 실무자들을 위한 개념 찬 요약서 같았습니다. 만약 "틈새시장(niche)", "블루 오션", "비경쟁 전략" 같은 주제들에 대해 여러 책들을 참고하는 수고 없이 단 한 권만 독파하고 최대한 실리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이 최고의 참고서이겠습니다.

일단 그는 잘나가는 선두기업의 기본 전략이 뭔지를 정리합니다. 선두기업이란 우리가 잘 아는 필립 코틀러의 정의에 기반한 개념인데, 리더/챌린저/니처/팔로워 중 "리더"를 의미합니다. 시마구치 미츠아키는 코틀러의 개념과 정의를 다소 수정하여 1) 주변 수요 확대(치약의 예를 드는 저자의 재치가 돋보이더군요) 2) 동질화 전략(챌린저의 혁신을 무용지물화) 3) 비가격 대응 4) 최적 점유율 유지 등입니다. 4)는 지나치게 시장 점유를 확대하려 들면 역효과(법적 제재도 포함)가 난다는 상황 인식에 기초합니다.

저자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기업"이 이런 선두 주자를 의미하지는 않음은 명백하죠. 이 책은 코틀러의 범주 중 니처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이어나갑니다. 작은 기업이 그 유리한 틈새 시장 안의 강자 지위를 유지하려면 여러 (변칙적으로 보이는) 지혜가 필요한데, 저자가 앞서 "선두기업의 전략"을 정리하고 넘어간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전략이란 나 혼자 멋지게 잘 짠다고 상대가 그 의도에 고분고분 응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좋은 전략이나 자원을 가지면 상대도 당연 그 점을 고려에 넣고 반응합니다. 저자는 그래서 "선두 기업- 대체로 규모가 크고 가용 자원 pool도 방대한 곳"이 내 시장에 못 들어오게 하려면, 1) 너무 이익률을 높이지 말고, 2) 너무 시장을 단기간에 키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익률이 높거나 시장이 갑자기 커지면 대기업 역시 전망을 좋게 보므로 곧바로 진입합니다. 이후 이 니처는 바로 약자가 되어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순인데 남 좋은 일만 시키고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시장을 빨리 키우면 투자자금이 빨리 회수되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보고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이므로 "그 이후"가 보장이 안 됩니다. 책에는 노래방 기기 시장, 의료용 가운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구체적인 예증 소개가 이 책의 최고 장점입니다.

특히 니처들은 기술니치(가장 이상적이지만 유지하기 어렵죠), 채널 니치(아주 좁은 경로만을 확보해 막고 있으면 대기업이 접근하기 어렵거나귀찮아서 간과합니다), 시공간 니치, 특수 니즈(수요) 니치 등의 전략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도 적고 규모도 왜소한데 덩치 큰 대기업과 정면 맞대결을 하다간 자멸의 결과뿐입니다. 전환 비용 니치라는 전략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캡슐 제조와 약품(펠릿 꼴) 투입을 전담하는 쿠오리커후스(퀄리캡스)社를 전형적인 예로 소개합니다. 이 사업은 첫째 이익률이 적정 수준이고, 둘째 정부의 인허가를 받기가 번거로우며, 셋째 기존의 니처가 쌓아온 평판이 확고한 데다 신규 사업자에 대해 소비자들(제약회사들)이 일일이 눈길을 주지 않고, 행여 작은 사고 한 번의 실수라도 바로 매장되므로 시장 진입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거죠. 익숙한 건 그대로 몇 십 년이라도 같은 브랜드를 쓰는 예도 "전환 비용이 높은 예" 중이 하나로 드는데, 일본에서는 종이수첩인 "능률수첩"이 그런 브랜드 파워와 충성도를 유지하는가 봅니다.

선두기업이 강소기업에 빼내 들기 좋은 가장 좋은 전략은 "동질화"인데, 이는 쉽게 말해 "너희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좀 치사하긴 해도- 자본주의는 원래 치사한 거죠) 우리가 바로 따라해서 없애 버리겠다"입니다. 여기에 강소기업(니처)가 응수할 수 있는 전략은 딜레마 전략인데, 2006년에 등장한 온라인 전용 보험사인 라이프넷의 사례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1) 영업사원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가입하게 한다 2) 특약을 폐지하고 약관을 간이하게 한다 3) 원가 구조를 모두 공개하여 소비자에게 유리한 계약임을 분명히 밝힌다. 인데, 이걸 대기업에서 따라하다간 바로 타격이 옵니다(이른바, 자산이 부채로 바뀌어 버리는 결과). 그런데 제 생각엔 이 예는 일본의 실정에 제한된 것 같고, 실제로 삼성생명이나 동부화재 같은 경우 다이렉트 사업 부문도 바로 만들어서 이런 틈새시장까지 차지하려 드는 걸 볼 수 있고, 이들은 시장 규모를 천천히 키우는 전략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이렉트 섹터가 더 이상 니치도 아님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을 합친 新전략을 "코퍼티션"이라 부르는데, 저자가 이 책 중 원용하는 네일버프와 브랜든버거는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게임 이론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학자들입니다(당시 한 번역서에서 "나레버프"라고 표기한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들의 연구를 재원용하자면 아메리칸 항공과 델타 항공이 경쟁 관계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보완적 생산자 관계도 유지한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일반 대중들도,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이 격화되자 메모리 조달 계약을 해지하는 결과를 목격함으로써 역으로 이 둘이 그간 보완적 공생 관계도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지요. 전적으로 특정 생태계에서 양자가 적대하기만도 오히려 어렵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게 마켓 메이커 전략인데, 저자께서는 라쿠텐 버스 서비스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우리 같으면 코버스 같은 버스 회사 연합(운송사업조합) 사이트에서 이를 전담하지만(만약 외주를 통하면 수익이 안 날 겁니다), 일본에서는 이 회사가 예매 업무를 대행하는데, 좌석의 쾌적도나 터미널 주변의 시설 정보도 제공하고, 혹 특정 노선이 수요가 초과되면 회사에 통보하여 증편할 수 있게 하는 등 부가 서비스를 통해 니처로서 입지를 굳힌 경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부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으므로 이렇게까지 온라인 예매 패턴이 진화하기란 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사례 소개와 연구가 책 읽는 재미를 몇 배로 늘려 주는 유익한 경영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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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독이다 - 삶의 유연함이 주는 성공의 기회
스티븐 M. 샤피로 지음, 마도경 옮김 / 중앙위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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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모두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아직 그 포텐이 터지지 않았을 뿐일까요? 이런 질문에 "그럼요!"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청소년 중에서라고 해도 매우 드뭅니다. 사회 구조가 고도로 정교화하고, 시스템 안에서 적정 보수를 받아가며 밥값을 하려면 예사 기능과 재주만 갖춰서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안 터진 포텐이 있다 해도, 그게 나 아닌 타인을 두루 만족시키기란 가망 없을 만큼 힘듭니다. 그래서 설사 애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 걱정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거죠. 일본에서 "사토리 세대"라고 할 때 이 단어의 의미는 "알아야 할 것을 (좀 일찍) 알아버린"이란 뜻이 스며 있습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처럼 청중, 독자에게 자계의 방법론을 실감 나게 가르치는 이들을 일컬어 특히 "동기부여자"라고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게 거의 직업명으로 굳어서, 거의 자계서 저자와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강연을 겸직하는 이들에게 더 자주 쓰이죠. 이분이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건, 막연히 성공을 꿈꾸지 말고 목표를 구체화하여 실천에 옮기라는 점입니다. 의욕이 가득해도, 그리고 만만찮은 시간을 그 의욕의 실현에 투입해도, 성과가 막상 안 나오는 건 애초에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자신이 모르고 있어서"라는 지적입니다.

여기서 저자의 말 중 재밌는 게, 반드시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난 뒤 그 목표를 종이 위에 적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어 보라고 하면 못 적거나 항목을 채우는 게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구체적으로 적어 보라고 하니 현존하는 직종 중 뭘 수행하는 지 뚜렷이 알고 있는 분야를 적어야 하는데, 아주 뻔한 직업 말고는 생각나는 것부터가 그리 많지 않더라는 거죠. 본인의 능력이 어차피 제한되어 있으니 먼 곳(멀게 보이는 곳)의 과실을 넘보지 않고, 아주 좁은 분야에만 시선을 한정하다 보니 결국 그 좁은 타겟에서 뭐가 빗나가기라도 하면 그 좌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더라, 뭐 대강 이런 논리입니다. 결국, 꿈을 막연하게 갖는 건 그걸 실현할 생각과 의도가 별로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자가 하는 말 중 아마 독자에게 큰 희망을 주는 대목이 바로 여기일 겁니다. "당신이 품을 수 있는 희망의 종류와 범위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 이런 전제 아래에서, 무엇을 구체적으로(이 말이 중요하죠) 성취할 수 있는지 구상해 보라고 하면 훨씬 더 많은 목표들을 떠올릴 수 있겠죠. 이렇게 목표의 pool이 처음부터 넓게 설정되면, 그 중에 하나가 적중될 확률이야 사물논리상 당연하게도 더 높아질 뿐입니다. 영어 속담 중에 픙랙티스 메익스 퍼펙트라는 게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기대 수준을 조금 낮춰, 퍼펙트보다는 해빗, 즉 올바른 습관을 만들기를 먼저 권합니다. 성공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 성공에 근접한 모든 우호적 요소를 먼저 자기 것으로 해야죠. "퍼펙트"도 개별화한 내용이 아니면 그게 의미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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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통찰 - 어떻게 원하는 내가 될 것인가
타샤 유리크 지음, 김미정 옮김 / 저스트북스(JUST BOO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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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이들을 늘리라는 주문이 유행하곤 했는데, 요즘은 상대방의 공격을 무마하는 항변 수단으로 "그것은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같은 말이 자주 쓰이곤 합니다. 벌써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의미가 확산되었기에, 감춰진 의도를 미화하는 게 더 이상 잘 통하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자리한 탓이죠. 대의와 명분이 올바로 섰으면 그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게 정도이지, 구태여 어떤 술책을 부린다는 건 스스로의 정당성 기반이 부실함을 자백함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나의 투쟁>이 이해가 안 되는 게, 선동의 기법을 가르친다면서 정작 그 책을 읽는 독자들도 속해 있을 대중을 대단히 어리석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차 대전에서 설령 이겼다손 쳐도, 히틀러 체제가 결국 오래가지 못했을 것임은 이것만으로도 자명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사물과 현상의 이면에 감춰져 있을 진상을 꿰뚫어 보는, 이른바 "통찰"의 중요성은 요즘처럼 겉발림의 술수, 기만, 과거 왜곡, 미숙한 자기 기만, 얼토당토않은 사기, 자격 사칭, 더러운 욕망 등이 판치는 세상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일시적이든 장기적으로 가는 팀이든 간에 프로젝트를 짜서 타인들과 일을 해 본 사람이라야만, 허울이 씌워진 그 정확한 내막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 한 건을 통쾌하게 완수해 내어서 평판과 물질적 성과를 얻어 내겠다." 같은 의욕에 들뜨기도 하지만, 반대로 "구태여 대세를 거스르는 튀는 의견을 냈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을 때 찾아오는 후폭풍"이 꽤나 신경쓰이기도 합니다. 팀 단위로 일해 볼 때라야 남들의 이런 기질, 성향이 정확히 드러나고, 반대로 쉼 없이 갈등하는 자신을 스스로가 목격하고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찾기도 합니다(못 찾고 본래의 자신에 계속 머무르면 퇴직이죠).

이때, 남들과 비슷한 인식에 도달(가끔은 이런 것도 능력입니다. 사전에 남들 의견을 감 잡을 계기가 없었는데도, 이심전심이라고 막상 까 보니 결국 대세에 수렴했다든가)하는 게 보통 무난한 귀결입니다만(나도 편하고 남도 편합니다), 간혹 기가 막힌 통찰을 척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친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하고(사실은 우연의 소산일 가능성이 큽니다만), 역시 해당 분야에서 굴러 본 구력이 있어서 남들 못 본 걸 찾아내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이 중, 통찰은 보통 후자를 가리킵니다. 전자의 경우 한 번이면 이쁘게 봐 줍니다만, 계속 그러면서 능력이 드러나면 조직에서 찍힐 수도 있으니 상사한테 적절히 공을 양보하며 오히려 "빚"을 지우고 약점을 잡는 게 현명한 처신입니다만 그건 지금 토픽에서는 여담에 불과하니 잠시 미루고요.

여튼 통찰은, 인문적으로야 아무리 고상한 의미를 가져도, 조직의 현실 속에서는 "남들 못 본 걸 정확히 짚어 내는" 바로 그 능력입니다. 파트너 기업과의 협상에서도 그렇고, 숨어 있는 시장의 진짜 지스팟을 찔러 내는 마케팅상의 혜안도 그렇습니다. 마케팅 능력이 따로 있고 협상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이 중요 팩터로 작용하는 건 바로 이 "통찰력"일 뿐입니다. 저는 영화 흥행과 선거의 승리가 이 비슷한 구조라고 보는데, 특히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단위 선거에서 참으로 전술을 잘 짜는 머리가 있습니다. 잡지나 신문, 방송 따위에서 "뭐가 문제"라는 식으로 아젠다를 던집니다만, 대개는 진정 하나마나한 소리이거나, 속내를 감추고 그저 듣기 좋은 구호를 포장(그것도 능력이긴 합니다만)하는 기선 제압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능력은, 시장(市場)이나 선거구에서 데모그래픽 스트럭처가 어떤 색깔인지 정확히 알아채고, 그들 자신도 모르는 그들의 욕구를 미리 파악하여 그들에게 일깨우는 능력입니다. 간혹 보면 이런 중소 규모의 선거구(혹은 시장)에서 무패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가 있는데, 몇몇 우연이나 행운의 사례를 제거한다면 그들이야말로 "통찰력의 대가"였기에 이게 가능했던 겁니다. 자기가 떠든 헛소리에 자신이 속는 게 낙오자들이며(정작 속아야 할 남은 콧방귀를 뀝니다), 헛소리는 남들용으로 남겨 두고 자신은 진짜 정보를 챙기는 이가 승자인 거죠.

그래서 회사건 어디건 간에, 진짜 전체를 살리는 능력은 "통찰력"입니다.  예전에 "기발한 아이디어는 IQ나 다른 능력에 무관하게, 정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다"란 말을, 자계서 저자도 아니고 이름난 수학자가 한 적이 있는데(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고 믿음도 더 가나 봅니다), 문제는 그 문득 찾아 온 아이디어를 잘 살려 나만의 성취로 가꿔 나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나만의 '아하'를 경험하라"고 부르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중요합니다. 사람의 두뇌는 기이하게도, 학습한 정보의 총체나 민활한 연산의 결과 그 이상의 것을, 간혹 도약하듯 이뤄내고 얻어냅니다. 그런데 "아하의 쾌감"을 겪고 내적인 자산으로 편입한 사람은 이게 자주 되고, 안 그런 사람은 반대로 더 루틴 반복의 수렁에 빠집니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나은데, 자신이 안 된다고 남들까지 다 안 되어야 정상이라고 우긴다거나,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아니, 이미 다 드러난)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근성을 타인에게도 전파, 일반화하려는 물귀신 작전까지 펼치는 퇴행분자도 있습니다.

주자(朱子)도 그 비슷한 말을 했지만, 여태 봐 오던 사물을 좀 다른 각도에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15도 다른 각도에서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너무 튀면 그건 시장의 대세를 비껴가는 엉뚱한 패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 대중 음악계에서는 서양의 대세를 참조하되, 대중의 기호보다 단 반 발짝만 앞서가라는 주문이 유행했죠(쉽게 말해, 남의 걸 베껴도 무작정 베낄 게 아니라 티 안 나게 하면서 기존의 관행을 존중하라는 거죠. 그러다가 요즘 같은 개명천지엔 그런 구린 베끼기 관행이 다 들통나기도 하는 건데). 지금은 뭐 한류가 세계적 트렌드 세터의 일원이므로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저자는 "절망을 창의적 몰입으로 바꾸라"고 하시는데, 이때의 절망이란 야심차게 추진한 일이 말짱 실패로 끝나거나 하는 참담한 체험을 가리키겠죠. 이럴 때 현실에 집중 못 하는 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겠는데, 이걸 오히려 기회로 삼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에 안 그러던(못 그러던), 15도만 바꾸는 방식으로 사물을 관찰하라는 겁니다. 일이 잘 되고 있으면 사람은 매번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외부를 관찰합니다. 요즘 같이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에 이는 대단히 위험한 습관일 수 있습니다. 한 번 정도는 큰 좌절을 겪어 봐야, 여태 안 떠오르던 생각도 떠오르고 패러다임의 건전한 수정이 가능한 겁니다. 이러다가 전혀 새로운 관점과 성과가 나타나면, 바로 그것이 "창의적 몰입"이 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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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를 반영한 관리회계
구순서.양승권 지음 / 형설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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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재료가 항상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일정 시점부터는 더 이상 재료가 아닌 가공품의 일부로 편입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원료로부터 가공품의 일부로 성질, 본성이 변하는 기준 시기를 "분리점"이라고 부릅니다.

연산품이란 용어를 낯설어하는 이들도 있는데, 한자로 "連産品"이라고 쓰면 더 뜻이 명확해질 겁니다. 말 그대로 두 가지 이상의 생산품들이 동일한 공정(제조 과정)에서 제조되는 걸 뜻합니다. 단 이 두 제조물 사이에, 어떤 주종(主從) 관계 같은 게 없어야 합니다. 만약 한 연산품이 다른 연산품의 부속 등으로 쓰인다면, 이미 그 시점부터는 더 이상 연산품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연탄 같이 지저분한 얼굴을 하고 날이면 날마다 넋두리를 읊는 늙은 인생이라 해도, 이 연산품 재공품의 자그마한 부속으로나마 쓰여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여지가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없는 업 덩어리 인생이라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아예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여튼 연산품이다 재공품이다를 따지는 이유는,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가를 과연 어디에 얼마만큼 배분하느냐의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 시기에 통째로 발생한 원가는 그걸 "몇 원어치는 이 제품, 몇 원어치는 저 제품" 하는 식으로 인위적으로 배분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까다롭다기보다는 자의적이기 쉽습니다. 자의적이든 뭐든 자신만의 장부(늙은 광인의 넋두리 일기가 아닌)에 적는 이상 자신만의 기준대로 적으면 될 터이나, 자기 기업에 어떤 원가가 얼마만큼 발생하며 기업의 이윤에 어느 정도 기여(또는 손해)를 끼치는지는 정확히, 또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부산품의 경우, 대체로는 상대적 판매가치법, 생산 기준법 등을 적용하곤 합니다. 이론으로는 후자가 우수하지만, 실무에서는 대개 전자가 쓰이죠.

결론적으로, 실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판매가치법에 의하면, 예를 들어 A와 B라는 상품에 각각 1만원, 2만원의 원가가 배분된다 쳐도, A라는 상품이 팔리지를 않았다면 1만원의 원가는 "인식"이 안 된 채로 내내 남아 있는 겁니다. 반면, 생산 기준법에서는 판매 여부에 무관하게 발생이 된 이상 인식을 하는 거고, 단 (당연히) 주산물이 아니라 부산품의 원가로 배분합니다. 판매가치법은 (판매 시점에서 비로소) 주산품의 원가로 인식되는 거고 말이죠.

이런 골치 아픈 과정을 왜 거치느냐? 어떤 상품의 "원가"가 높이 책정되면, 그 상품은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적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어느 기업의 어떤 상품이 기업 이윤 창출에 진정으로 기여하는지를 알아내려면 원가의 측정, 또 이익률의 측정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모든 논의는, 최고 경영자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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