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 MBC,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가 밝히는
신재원.이진한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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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이건 그 국민이 큰 걱정 없이, 또 부담 없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게, 현대 복지 국가에서는 정부의 기본 책무로까지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개인 책임 원칙이 침해된다면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된) 공산주의에 접근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바로 전임 대통령인 오바마가 심혈을 기울여 이뤄 놓은 이른바 "오바마 케어"를, 현 대통령인 트럼프가 다시 근본에서부터 손을 대려고 벼르는 중입니다.

제약이건 의료기술이건 개인의 자발적인 창의가 십분 발휘되어야만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고, 또 그 제품이 수요와 공급 원리에 의해 적정가, 적정량으로 산출될 수 있습니다. 너무 공익성, 공공재적 성격만 강조하면 창의가 침체되어 국민의 후생이 저하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의료 섹터를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긴다면, 이는 이른바 의료의 영리화를 초래하여 소수의 가진 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보건의 한계영역에 내팽개져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만 위선을 떨고 속으로는 남을 해코지할 더러운 욕망만 가득한 폐품 같은 늙은 인생은 공연히 국민의 세금을 좀먹을 게 아니라 폐기 처분되어도 애석할 게 없겠습니다만.

정부는 이미 이십여년 전부터 일반 의약품의 공급가를 낮추려는 노력을 이어 왔습니다. 이에 대해 국가가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며 제약업계의 원성이 이어져 왔고, 자본을 축적해야 신기술 신약 개발 투자에 쓸 여력이 생긴다는 항변도 들립니다. 오고가는 논리가 마치 통신업계의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최근의 공방과도 그 구조가 유사합니다. 여기에 대해 정부측이 내어 놓는 반박은, 첫째 복제약의 안이한 생산에만 기대다 보니 신약 연구 출시를 통한 혁신 노력에의 유인(인센티브)이 없고, 혁신보다는 그저 "영업을 잘하는" 회사가 승자가 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는  것입니다.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논리죠. 이는 공공성 vs 효율성의 해묵은 논쟁 레벨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답게 작동하게 하려는 원칙 회귀로도 들립니다.

또한 건강보험재정은 언제나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를 야기해 왔습니다. 이는 일단 건보공단 자체의 반성과 개혁도 요구되는 부분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타국 대비 카피약 등의 약가가 도에 넘을 만큼 높이 책정되었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 보건산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리베이트 수수 관행"이야말로 약가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이겠는데, 결국은 의사, 약사 등 현장에서 뛰는 보건의료인들이 자발적인 공감과 실천에 나선 후에라야 이 모든 갈등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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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1 - 치명적인 남자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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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녀"와 "나쁜남자"의 로맨스는 언제 읽어도 흥미가 당깁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사랑이란 이 원형의 변종에 가까우며, 남녀 이성 어느쪽이라도 자신을 저 기본 스탠스 중 하나에 대입하여 사랑이란 전쟁을 이끌고 싶은 게 또한 공통된 심리 중 하나이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르물을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이 마지막이었는데, 모처럼 다시 접하니 기시감도 느껴지면서 동시에 감정이 정화되는 듯 상쾌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미국도 십여 년 전부터 학력 인플레가 불기 시작해서 무자격 부실 대학이 간판만 차려 놓고 학위를 공장에서처럼 찍어내다 어느날 자취를 감추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해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사커 맘" 이라든가 "타이거 맘" 같은 새로운 교육 풍조가 일기도 했는데, 이는 모르긴 해도 한국이라든가(전세계 어디서도 따라올 나라가 없죠) 동양계의 풍습이 놀랍게도 미국의 평범한 학부모들에게까지 영향을 준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무지하고 거칠며 무능한 자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의 김을 빼고드는 풍조가 우려스럽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발버둥이 뭐가 나쁘겠습니까. 이런 교육열이 있었기에 우수한 인재가 그간 배출되었고 1980년대, 1990년대의 호황을 이끈 것입니다. 멍청한 지도자가 다 말아먹어서 문제였을 뿐이죠. 이후 삼성 등 대기업의 도약도 어디 최고경영자 한 사람의 자질과 용단에만 힘입은 결과이겠습니까. 세계 최고 수준인 이공계 엔지니어들이 창의력을 발휘한 덕택이 클 뿐입니다.

여튼 우리 테사, 예의 철벽녀이자 범생이이기도 하며 아직은 자신감이 좀 부족한 그녀("하긴 저런 애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라는 말에서 짐작 가능)는, 열성인 어머니 덕택에(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은 듯하니, 어머니 덕이 아닐지 생각해 봤습니다) 명문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자녀를 명문대에 넣고 가장 뿌듯한 첫 순간이 바로 (기숙사에까지 당첨되어) 문을 열고 짐을 꾸려 주는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엄마도 딸 테사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입주를 합니다. 명문대이니만치 다 자기 딸 같은 범생이만 있을 줄 알았으나, 첫날부터 웬 끔찍한 날라리를 마주하고서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요...

장르물에는 언제나 공통적으로 따르곤 하는 공식이 있습니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까지 비슷한데, 명문대에 입학한 예쁜, 그리고 실력도 좋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여학생에게는 항상 고향에서 거름내 풍겨가며 묵묵히 그녀를 기다리는 갑돌이가 있기 마련이죠. 여기서는 그게 아니라(또 테사의 고향도 그런 깡촌이 아니라), 테사에게 여러 모로 격이 맞는, 또 오래 전부터 알아온 공인(?) 교제 이성이기도 한 노아라는 애가, 동시에 합격하여(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당사자뿐 아니라 그 양가 부모님들이 더 기뻐할 만하죠) 같은 학교에 지금 들어왔고, 기숙사 다른 동에까지 입주를 한 상태죠. 아마 딸에 대해 마음이 안 놓인(그럴 이유가 물론 전혀 없습니다만) 그 엄마가, 노아에게까지 닦달을 해 가며 성적이 딸리면 채근까지 해 가며 입학에 공을 세우지 않았겠습니까. 딸을 성공(일차 관문 통과)시킨 후에도 얼마나 이모저모로 걱정이 많이 되겠습니까. 웬 거렁뱅이 변태 늙은이나 만나 욕을 당할까 우려스럽기도 하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열성인 엄마(대부분 자기 희생, 헌신의 열정이 강한 분들입니다)들은 무조건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아무리 한때 이런 유형이 한국 교육계와 사회를 우려 속에 접어들게 했다쳐도 말입니다. 아니 자기 자식 교육 잘 시키겠다는 게 무슨 범죄도 아니고, 그렇게 할 자신도 능력도 성의도 없는, 어디서 쓸데없는 정치 물만 든 건성 부모들이 한심한 사람들이지 열심히 사는 이들이 뭔 죄랍니까. 미국에서도 "우리가 저런 거 보고 좀 배워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거더군요. 자신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사는 것 아니냐면서요.

여튼 저는 조금 실수를 한 게, 엉뚱하게도 이 테사 엄마한테 너무 감정 이입을 하며 책을 읽은 나머지 정작 청년 하딘과 여주 테사의 짜릿한 연애담에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여성 작가의 필치라서인지 테사보다는 철저히 남주, 즉 나쁜 남자 하딘의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를 보고 테사 마음 속에 이는 반응, 오로지 등만 빼고 온 몸이 타투로 덥힌 외양을 보고 경악하는 그 엄마의 태도, 몸에 타월만 두른 채 방을 나온 테사를 보고 어디가 불룩해졌다는 누구의 상황 묘사 등 이런 장르물에서 독자들이 신경을 집중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지만 말입니다.

하딘은 분명 나쁜 남자의 전형인데다, 또 평범한 미국 여자들이 뻑가곤 하는 "영국 억양"까지 말투에 묻어 있는 그야말로 테리우스형 캐릭터이며, 소설 중반부부터 바로 드러나듯 "출생의 비밀"까지 간직했다고 하니 이건 원... 헌데 앞에서 "왠지 자신감이 살짝 부족한..."이라고 했던 테사지만, 저 하딘이 "어째서 너 같은 애가 아직 처녀인지 모르겠다"라고 한 걸로 보아 그냥 범생이에 그치는 타입이 전~~~~~혀 아님은 또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런 녀석이 설령 작업의 귀신이라고 한들 아무한테나 빈말을 늘어놓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또 솔직한 게 요런 영혼들의 공통점인데, 그 바탕에는 자신감이라는 게 깔려 있다고 해야죠. 학점 관리를 잘해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할 테사인데, 그간 저런 엄마한테 휘둘리고 관리, 간수당한 세월의 회한과 한창 때의 욕구가 결합한데다 이런 녀석까지 눈앞에 나타났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 다만 게임의 균형추가 너무 남자쪽으로기울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권이 더 기대되네요.

p123에 "본 이베어" 같은 우리 시대 셀럽들이 언급되어 더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본 아이버"라고 오버하기도 하던데 이 사람들은 프랑스계라서 이리 읽어 주는 게 맞죠. 책에도 그리 나와 있고요. 영어에서 하이버네이션이라고 할 때 그 단어와 어근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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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러 잔혹한 약탈자 - 중국에 뺏긴 기술패권 되찾아올 9가지 전략
김상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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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을 통해 최적화와 효율이 보장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체제의 약점을, 이미 백 년도 전에 마르크스나 힐퍼딩, 바란 같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는데 그 토픽이 바로 독점입니다. 자본주의는 결국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독점자본의 구축으로 귀결하고, 이를 과연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래를 암울하게 그린 SF 영화들 중 상당수는 "거대한 회사가 냉혈히 지배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삼은 게 많습니다.

독점의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병폐는, 우월 위치에 놓인 자가 열위 경쟁자의 창의, 기술을 도둑질하는 짓입니다. 자본주의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새로 출발하는 사업가들도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무기 삼아 시장에 느닷 강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점이 말살된다면 체제는 출발점에서부터 질식하는 셈입니다. 한국에선 현재 재벌 그룹에 의한 스타트업 죽이기가 도를 넘어, 신기술 도둑질하기, 기술진 빼내오기 등이 기승을 부립니다. 한편 해외로 눈길을 돌려 보면, 굴지의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소중한 기술들이 여러 경로로 중국 등 외국에 의해 도둑질당하고 있습니다. 본래 기술은 훔치는 거라며 일본이 예전에 기술 이전 요구를 했던 우리에게 비웃듯 말한 적 있는데, 그 충고를 그대로 실천(?)이라도 하듯, 우리 역시 일본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적잖이 훔쳐 온 게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애써 일군 기술 기반을 남에게 아무 보람도 없이 내어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일본 역시 한때 잘나가던 시절의 시스템에만 기대고 발전, 혁신이란 걸 잊고 살다 "잃어버린 20년"의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매너리즘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며, 누구든 잘나갈 때를 더욱 조심하고 경계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입장에서 더 무서운 건, 그런 일본이 현재 아베 신조라는(우리 입장에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지도자를 만나 현재 재기의 기반을 차근차근 다져 나간다는 점입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이 적잖이 호구 노릇을 해 준 중국 역시, 이제는 추격자, 모방자가 아닌 선도자(퍼스트 무버) 노릇을 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다는 점을 또 눈여겨 봐야 합니다. 베트남은 최근 십년기에 다소의 좌절을 겪었으나, 좋은 입지 조건과 풍성한 노동 자원 덕에 여전히 세계 경제의 엔진 노릇을 해 줄 게 기대됩니다. 경제 용어로 "넛크래커"라는 게 있는데, 자원은 후발 주자에게 뒤처진 조건이고 기술은 여전히 선진국을 넘볼 수 없어 둘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못 된 채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같은 신세를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저자는 생산성도 없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경쟁을 배제하고, 각 재벌 기업이 업종전문화를 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치킨 게임을 벌이는 풍토를 지양하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가 공멸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현 시점의 한국 산업계가 가장 명심해야 할 원칙과 덕목이라는 뜻이겠습니다. 또 저자는 "스타트업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있어 활력을 불어넣고 혁신의 맥박을 가동시킬 원천"이라고 주장합니다. 한때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이 세계가 본받을 모토라고 지적하는 움직임이 있었지요. 청년창업을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야말로 혁신을 양산하고 그 과실을 따먹을 자격을 갖췄다고나 할 것입니다.

"블루오션"이라고 해 봐야 한때의 블루오션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역시 피냄새 어린 경쟁의 장이 되기 마련입니다. 지속적으로 바뀌는 블루오션의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여, 아까운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가장 안타까운 결과라 하겠습니다. 중국은 현재 내부적으로는 성장의 정체를 맞이하고 있으며, 계획 경제의 한계와 부실로 부실 투자의 악영향을 온몸으로 떠안는 등 여러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미국도 거의 중국 수준으로 일부 산업에 장벽을 치는 등 "미러링 대응"을 펴 나가는 통에 기간 산업이 도산하는 위기를 겪고도 있습니다. 저자는 바로 이런, "기우뚱거리는 중국"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남의 불행을 내 호기로 잽싸게 전환시킬 수 있는 기민함이말로 이 험난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소중한 자질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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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 - 하버드 경영전략 교과서
마이클 포터 지음, 미래경제연구소 옮김, 권융 감수 / 프로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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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영사상가들의 업적과 이론은 학문적 영역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비즈니스맨들에게 경영 지침을 제공해 줍니다. 흔히 경영인이라면 "탁월한 감"으로 기업을 이끌어간다고도 하지만, 또 그런 직감적 요소를 특정 국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막연한 감만으로 큰 조직체(작은 사업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를 경영할 수는 없습니다. 관리와 시장 개척에는 체계적인 준비와 실행 과정, 그리고 피드백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을 즉흥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룸살롱 사장도 낮에는 도서관에서 필요한 학문적 정보를 검토한다며 자랑하던데, 얼마나 그 정수를 새로 깨닫고 자기것으로 소화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론 없는 실천이 엄청난 맹목임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CEO 선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인이 자신의 인생을 "경영"할 때에도 어떤 비전과 철학에 기반해야만, 실패와 좌절을 가능한 한 적게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마이클 포터의 정립된 이론 그 핵심 중, 경영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유익한 명제만 모아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제가 삼 주 전쯤 피터 코틀러의 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풀어 주거나, 동아시아의 현실에 맞게 잘 개량해서 학계와 일반에 제시한 어느 일본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필립 코틀러나 마이클 포터나 사실 일반 독자가 읽고 바로 무리 없이 소화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론에 정통한 다른 학자가 이 큰 간극을 요령 있게, 솜씨 좋게 메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권으로 읽는 피터 드러커도 누구를 위해서건 필요하듯, 마이클 포터도 시간에 쫓기는 여러 수요층을 위해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지요. 요약본이 나와도 되도록이면 학문적 권위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분의 솜씨면 더 좋겠죠.

저자 조언 마그레타는 현재 하버드 경영대 소속의 Senior Associate이며, 역시 현직으로 HBR의 편집자 위치입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서문에서 "왜 (이런 성격의 책에, 그리고 마이클 포터 같은 세계적 권위자의 업적을 요약하는 작업에) 내가 집필자로 나서야 하는가?"를 두어 단락 정도 분량으로 따로 설명합니다. 그녀는 HBR의 핵심 필진 중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한 명인 마이클 포터와 오랜 시간 동안 필자와 에디터 사이의 관계로 교감했으며, 본인 자신이 이 분야 이론에 정통한, 전미 범위에서 손에 꼽을 만큼 빼어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녀는 마이클 포터의 독보적 업적이 구축된 영역인 "경쟁"과 "전략"이라는 주제에 대해, 포터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실천적 의의가 훼손되지 않게, 최대한 쉽고 최대한 실제 적용에 도움이 되게끔, 평이한 언어와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서술합니다. 학문적 자격과 독자의 이해 편의,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만한 역량을 갖춘 저자가 확실히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론이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잡지 않고서는 출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조언 마그레타, 그리고 마이클 포터는 이 점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략"에 대해 매우 간명한 정의를 내립니다. "전략은 곧 탁월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 정의는 마그레타 편집장만의 의견이 아니라, 그 세련되고 주도면밀한 이론 전개가 정신의 특질을 이루는 포터 교수 본인이 직접 마련한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전략은 이미 전략도 아니라는 뜻이죠.

여기서 우리는 책의 편제를 다시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뉘었는데, 1부의 주제가 "경쟁", 2부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위 문단에 소개한 "전략"의 정의는, 2부가 아닌 이 1부에 벌써부터 등장합니다. 왜일까요? 책의 목적도 실용에 있고 경영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현실에서 성과를 내기 위함인데,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구태여 형식에 얽매일 건 없죠. 이처럼이나 실용적으로 "전략의 정의를 경쟁 논의에서 벌써 내세우는" 이유는, 경쟁에 대한 논의부터가 전략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략 없는 경쟁은 토대 없는 건축이며, 이런 이유에서 저자(들)은 전략이 무엇인지부터 독자에게 제시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명제가 또 하나 등장합니다. 경쟁은 반드시, 라이벌들을 제압하고 경쟁력을 상실시켜야 승자, 최고가 될 수 있는 걸까요? 마이클 포터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경쟁은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지, 라이벌의 제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대뜸 "성과"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의 실용적이고 간단한 정의"를 이처럼 책의 앞부분부터 가르치는 것도 다 이런 고려가 작용해서입니다.

자 그러면, 포터 교수와 마그레타 여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보다 현명한, 그리고 실용적인 경쟁"은 무엇으로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는 걸까요? 이건 문제 제기 단계에서 암시된 바와는 달리 그리 달달한 컬러는 아니고, 오히려 더 살벌한 제안입니다. 혹 실망할 분들이 있을까봐 미리 밝히는 건데요, 이분들이 제시하는 "성과를 내는 경쟁"은 결국 객관적, 절대적(다른 업체와 비교할 게 아닌)인 경쟁력 강화에 중점이 놓여 있네요. 고객,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백날 "경쟁"을 해 봐야 손해이며, 설령 시장에서 선두 주자라 한들 허울뿐인 점유율만 높을 뿐, 수익, 성과가 안 납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애플의 예를 들며, (전통적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 대체되기 어려운 상품, 서비스를 생산하라"고 합니다. 이 역시 제가 저 위에 잠시 언급한 어느 일본분의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상통합니다. 라이벌을 제압하기보다, 라이벌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만큼 경쟁력을 키우라는 뜻입니다.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탑 독이 되라는, 더 독한 충고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역시, 라이벌에 대한 (소모적 구태를 통하지 않은, 진정한 선제적, 본원적) 제압임도 우리는 다 눈치챌 수 있죠. "도전의 불씨"마저 근절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지혜가 요구됩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조건 생산 단계에서 후려치기만 하면(내부 공정이건 외부 하청이건) 다 되는 걸까요? 이번 갤럭시노트 7 사태에서도 새삼 이 점이 주목 대상이 된 적 있죠. 마이클 포터는 이런 비용 절감 문제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오히려 어떤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이, 최종 생산되는 상품에 어떤 가치를 추가하는지를 잘 살피라고 합니다. 책에 나오지는 않으나, 이 점은 경영학보다 순수(협의의) 회계학에서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이슈입니다. 특정 이벤트를 비용으로 계상(計上)할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자산(의 일부)에의 평가를 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논의를 거치는 딜레마입니다. 물론 가치 평가를 허술히하면 기본적으로 보수성이 지배하는 회계 원칙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포터는 좀스럽게 "절약"에만 매달리는 기업가가 혁신을 이뤄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합니다. 제4장이 제2부("전략" 논의의 본격 전개) 처음에 자리하면서 "가치는 모든 전략의 시발점"으로 부각되는 건 마그리타 여사의 탁월한 센스입니다.

연속성은 장기 전략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미덕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흔히 전략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최초의 프레임을 너무 고집하면 이미 전략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도 하죠. 저자는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디테일에 변화를 주되 그 뼈대마저 교체되는 전략은, 이 전략을 접하는 외부(고객 혹은 라이벌)에 혼란을 주며, 끝내는 전략의 설계와 집행의 주체인 조직에게마저 타격을 입힌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시어즈(미국의 유명한 백화점)의 예를 들며, 실제로 저는 삼전의 최근 15년을 보면 마케팅 부문에서 뭔가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특히 전략의 연속성은, 지금 그 조직이 무엇을 내세우고자 하는지, 그 "핵심 가치"의 설정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회사, 조직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유지되는 한, 가치의 전달 방법은 보다 유연한 모습을 띨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단기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대세를 그르치기가 참 쉽습니다. "방법 이슈"가 아니라 온존해야 할 핵심 가치의 침훼(侵毁)에 이르는 실패가, 어느 기업에서건 비일비재한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전략의 얼개를, 그리고 특징들을 제시하면 "아 이건 마케팅에 관한 논의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특히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면 뛸수록)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 포터 교수는 "전략은 마케팅보다 (개념상, 그리고 실제 적용상) 고차원의 개념"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차별점을 분명히 부각하기 위해, "전략"을 논의하는 파트에서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강조한 것입니다. 조직이 생산하고 창조하는 가치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기업의 생존 전략에서 중핵에 놓여야만 하며, 마케팅 섹터란 이에 비하면 그저 지엽말단의 비중이고, 위에 쓰인 용어를 다시 끌어들이자면 "전달 방법"의 varia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은 말미에 포터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특히 일반 독자에게 난해했던 개념과 이론 구조에 대해 본인의 명료한 육성으로, 다소나마 친절하게 "전달, 소통"이 이뤄져서 그를 존경해 온 독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됩니다. 권말부록으로는 용어 해설, 그리고 (에디터다운 꼼꼼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참고 문헌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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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 스타트업을 스타트업하는 최고의 실전 전략
권도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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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학을 졸업한 후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보다 대담한 창업자의 길로 접어드는 젊은이가 많은 이스라엘이, 많은 나라들 중에 보다 밝은 성장의 전망을 가지게 된다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던 것도 몇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후 스타트업 예찬은 미국에 상륙하여 보다 바람직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모색되기에 이르렀으며, 요즘은 한국에서도 야심만만한 스타트업 기업가들 - 대부분 젊은이들 - 이 갖가지 빛나는 아이디어를 내어놓으며 위축된 국가경제에 그나마 성장 동력 중 한 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그러나 엄청난 위험 부담과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기존에 잘 꾸려진 탄탄한 조직에 몸을 담는 게 낫지, 자신이 회사 하나를 일궈 사장님이 되는 길은 그게 성공을 한다면야 화려한 날갯짓이 가능하겠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예측이 어려울 만큼 난제입니다. 국가 전체로선 장려가 요구되는 경향이겠으나, 개인으로서는 희생해야 할 자원과 기회가 너무도 큰 면이 있어서, 정확한 정보와 사전 탐사, 그리고 대국적 트렌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만 성공을 점칠 수 있습니다.

"벅스"라는 사이트가 한때 음원 저작권자 단체와 크게 마찰을 빚고 간신히 타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일이긴 하나 미국에서도 무료 음원을 제공하던 냅스터가 소송에 휘말리면서 큰 논란을 낳았는데요. 20년, 10년이 지나 또다시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가 작은 트렌드를 타면서 이 음악 컨텐츠의 저작권 관련 다툼이 재연할 기미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곽동훈 칼럼니스트 같은 분이 독특한 차분한 어조로 "기술 개발의 타당성"을 지적하며 이들 스타트업(startup)을 옹호하던 기억이 납니다만, 개인의 권리와 너무도 명확히 충돌하는 부분은 창의력과 혁신으로도 극복이 어려운 부분이 있나 봅니다.

무료 메신저로 미래 생태계의 한 비전을 제시한 카카오톡의 성공은 이제 그 자체로 거대 변수의 위상을 당연히 짊어지며, 카카오톡에서 무엇이 더 나올지 앞날을 점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건 엘로아이디인데요, 사장님들이 기존 개인 친구들과 영업상 지인들을 구별하고 싶을 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유익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사적 용도건 비즈니스 목적이건 백 단위를 넘어가는 지인을 메신저에서 관리하는 건 어쨌든 대단한 인맥인데요. 카카오(주)는 이처럼 이용자의 입자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민첩한 예측력을 보여 주며 그를 행동에 옮기고 있습니다.

기성복이 내 신체 사이즈에 정확히 맞기까지 하다면 그만큼 매력적인 상품도 드물 건데요, 실제로 길거리에 나타나 내 몸을 재어주고 옷을 보내주는 사장님이 등장했습니다. 발상의 시작은 간단한 게, 많은 사이즈를 재어 본 업체라야 소비자들의 몸에 잘 맞는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이처럼 스타트업은 일견 무모해 보이는 발상을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대담성과 창의성이 주된 원천입니다. 현재 왜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지, 그저 대량 생산, 낮은 원가, 선발자 모방 따위의 전략으로는 단계의 질적도약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게 도와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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