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다시 겪어 아시안게임 개최권도 반납(그래서 올해 대회가 인도네시아에서 열렸지요)하는 등 체면이
크게 깎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베트남은 그 성장 잠재력이 주목되며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어갈 엔진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는
나라입니다. 인구는 거의 일억에 육박할 뿐 아니라 면적은 남북한 전체에 홋카이도, 시코쿠를 합친 만큼 넓습니다. 이런 까닭에
현지에 진출하여 사업을 벌이는 한국인이 부쩍 늘어가는 추세이며, 쌀국수나 국제 결혼 등 여러 이슈가 겹쳐 "그 말을 좀 알아
들었으면" 하는 욕구가 부쩍 늘기도 하는 게 바로 베트남이란 나라입니다.
특히
베트남어는 문법이 어렵고 성조가 복잡하며, 로마자를 그 표기에 쓰기는 하지만 철자와 발음이 전혀 연결이 안 된다며 당혹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외국어는 영어처럼 보편적이고 문법이 단순한 언어도 원어민 아닌 입장에서 어렵기 마련인데 이런 걸림돌까지 있으나
더욱 난감하게만 느껴질 수 있죠. 그런데 이럴수록 해당 언어에 취미를 붙일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미국 영화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절로 영어에 능통하게 되었다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거리 구경거리가 많은 베트남 같은 나라의 랜드마크, 관광명소를 소재로 회화를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핵심 패턴,
문법을 익히게 한 책의 구성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치고 여행 싫어하는 사람은 여태 못 보았고, 무엇이든 어떤
계기가 생겨 자발적으로 흥미를 갖게 되면 어려운 과제도 의외의 쉬운 돌파구가 보이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이며, 한국과는 달리 중앙집권 통일 국가 형성이 매우 늦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통일은 1970년대 공산
혁명 완수 후에나 이루졌는지도 모르며, 북, 남(이 나라에서는 북측이 더 메인스트림이므로 북을 앞에 썼습니다)이 서로 풍조가
다름은 물론 심지어 중부의 "후에"가 별도의 문화권까지 이루고 있습니다(이 책에서는 p92에서 다룹니다). 따라서 말을 배우는
것도 여러 모로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베트남 표준어의 위상인 하노이와 북부 지방의 방언을 주로 다룹니다. 물론 북부 방언의
학습만으로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p40에
보면 cuộc họp(꾸옵 헙)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책의 설명대로 "회의"라는 뜻입니다. 이걸 한자로 쓰면 局合(국합)이 되죠.
이처럼 한자로 쓰면 대강 우리 한국인들도 알아먹을 듯한 단어가 많아서 그나마 공부하기가 편합니다. 여기서의
cuộc(꾸옵)이라든가, p36의 thuốc(담배. "속하다"라는 뜻의 thuộc하고는 다릅니다. 이 단어는 이 책 p66, 또
p118 등에 나옵니다), 또 p18의 Hàn Quốc(한꾸옵, "한국"), p78의 dân tộc(젼똡, "민족"), p98의
Kiến trúc(끼엔 쭙, "건축"), p102의 con sóc(껀 썹, "다람쥐"), dốc cao(좁 까오, "가파른"),
p254의 luộc(루옵, "삶다") 등에서 보듯, 어떤 c는 우리말로 종성 ㅂ과 비슷하게(ㅋ가 아니라) 발음되기도 합니다.
교재에서 처음 볼 때는 혹시 오타가 아닐까 싶기도 할 텐데, 물론 그건 전혀 아닙니다.
이는
이 음가가 "무성, 연구개, 양순, 파열음"이라서인데, 베트남어 말고는 세계 어느 나라 언어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음소라서입니다. 쉽게 말해, 입을 꼭 다물고(특히 양 입술을 닫고 - 이것때문에 ㅂ 소리가 나는 거죠), ㅋ 발음을 하면, 좀
비슷해집니다. 실제로 해 보니까 우리말로는 대강 ㅂ 정도로만 해 줘도 저쪽에서 다 알아 듣던데, 그래도 더 정확한 조음을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국립국어원의 베트남어 표기법(
https://www.korean.go.kr/front/page/pageView.do?page_id=P000120&mn_id=97
)을 참조해도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안타깝고 답답한 일이죠). 저자 윤선애 선생님의 다른 책을 찾아 따로 공부를 해야 이런
의문이 풀릴 것입니다(저도 그렇게 했고요).
pp.104~107을
보면 "하이번 고개"가 나옵니다. 여기뿐 아니라 이 책은 말 그대로 베트남의 관광 명소, 랜드마크를 담은 아름다운 사진이 많아
공부 목적 외에도 그저 그림만 봐도 눈이 호강하는 장점이 분명 있습니다. 책에 보면 대화("일지쓰기" 파트 중)에서 이 단어가
한자의 해변, 구름의 의미를 각각 담았다고 설명이 나오는데, 한자로 쓰면 海雲입니다. 뜻도 글자도 모두 한국 부산의 모 명소와
같죠. 발음이 비슷한 게, "하이펀"아라는 중국식 음식 소스입니다. 요건 한자로 蟹粉(한국식 발음으로 "해분")이라고 쓰는데,
글자 그대로 게(crab)가 원료이죠.
p22에
보면 cạnh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읽기를 "까잉"이라고 읽습니다. 국어원에서는 이런 경우 "아인"이라고 적기를 권하나 이
책처럼 실제 발음은 "아잉"에 가깝더라구요. p60의 냐잉, p138의 타잉, 바잉, p190의 아잉("사진"), p22의 까잉,
p214의 하잉, p126의 쨔잉("피하다"), p182의 짜잉("전쟁"의 "쟁". 앞에 나온 동사와는 성조가 다릅니다) 등이 그
좋은 예입니다.
p98의 "꼬다이"
같은 건 한국어(뿐 아니라 중국, 일본과 공유하는 어휘) 고대(古代)와도 발음까지 거의 비슷합니다. p102에 나오는 "음력
설"을 뜻하는 "테트(Tết)"는, 우리가 역사책 읽을 때 "테트 공세"라는 말 때문에라도 아주 익숙하죠 한자로는 節(절)이라고
씁니다.
예전 한국의 중등 사회과
교과서에는 정(鄭)씨의 경우 "트란", 완(阮)씨의 경우 "구엔" 정도로 적곤 했는데 대략 이십 년 전쯤부터 베트남과의 교류가
늘어나며 이런 게 다 시정이 되었습니다. p170의 젿, p258의 재, p222의 쯕, p244 찌잉 등은 r과 tr가 특이하게
발음되는 베트남어만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사실 r의 경우 중국어 권설음에서도 약간 ㅈ 비슷한 소리를 냅니다(구식 발음).
베트남어는 특히 한국인 입장에서 낯선 음가가 많으므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MP3 음원을 여러 번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습관이 반드시 몸에 붙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