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 - 하버드 경영전략 교과서
마이클 포터 지음, 미래경제연구소 옮김, 권융 감수 / 프로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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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영사상가들의 업적과 이론은 학문적 영역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비즈니스맨들에게 경영 지침을 제공해 줍니다. 흔히 경영인이라면 "탁월한 감"으로 기업을 이끌어간다고도 하지만, 또 그런 직감적 요소를 특정 국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막연한 감만으로 큰 조직체(작은 사업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를 경영할 수는 없습니다. 관리와 시장 개척에는 체계적인 준비와 실행 과정, 그리고 피드백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을 즉흥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룸살롱 사장도 낮에는 도서관에서 필요한 학문적 정보를 검토한다며 자랑하던데, 얼마나 그 정수를 새로 깨닫고 자기것으로 소화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론 없는 실천이 엄청난 맹목임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CEO 선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인이 자신의 인생을 "경영"할 때에도 어떤 비전과 철학에 기반해야만, 실패와 좌절을 가능한 한 적게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마이클 포터의 정립된 이론 그 핵심 중, 경영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유익한 명제만 모아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제가 삼 주 전쯤 피터 코틀러의 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풀어 주거나, 동아시아의 현실에 맞게 잘 개량해서 학계와 일반에 제시한 어느 일본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필립 코틀러나 마이클 포터나 사실 일반 독자가 읽고 바로 무리 없이 소화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론에 정통한 다른 학자가 이 큰 간극을 요령 있게, 솜씨 좋게 메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권으로 읽는 피터 드러커도 누구를 위해서건 필요하듯, 마이클 포터도 시간에 쫓기는 여러 수요층을 위해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지요. 요약본이 나와도 되도록이면 학문적 권위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분의 솜씨면 더 좋겠죠.

저자 조언 마그레타는 현재 하버드 경영대 소속의 Senior Associate이며, 역시 현직으로 HBR의 편집자 위치입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서문에서 "왜 (이런 성격의 책에, 그리고 마이클 포터 같은 세계적 권위자의 업적을 요약하는 작업에) 내가 집필자로 나서야 하는가?"를 두어 단락 정도 분량으로 따로 설명합니다. 그녀는 HBR의 핵심 필진 중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한 명인 마이클 포터와 오랜 시간 동안 필자와 에디터 사이의 관계로 교감했으며, 본인 자신이 이 분야 이론에 정통한, 전미 범위에서 손에 꼽을 만큼 빼어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녀는 마이클 포터의 독보적 업적이 구축된 영역인 "경쟁"과 "전략"이라는 주제에 대해, 포터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실천적 의의가 훼손되지 않게, 최대한 쉽고 최대한 실제 적용에 도움이 되게끔, 평이한 언어와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서술합니다. 학문적 자격과 독자의 이해 편의,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만한 역량을 갖춘 저자가 확실히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론이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잡지 않고서는 출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조언 마그레타, 그리고 마이클 포터는 이 점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략"에 대해 매우 간명한 정의를 내립니다. "전략은 곧 탁월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 정의는 마그레타 편집장만의 의견이 아니라, 그 세련되고 주도면밀한 이론 전개가 정신의 특질을 이루는 포터 교수 본인이 직접 마련한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전략은 이미 전략도 아니라는 뜻이죠.

여기서 우리는 책의 편제를 다시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뉘었는데, 1부의 주제가 "경쟁", 2부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위 문단에 소개한 "전략"의 정의는, 2부가 아닌 이 1부에 벌써부터 등장합니다. 왜일까요? 책의 목적도 실용에 있고 경영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현실에서 성과를 내기 위함인데,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구태여 형식에 얽매일 건 없죠. 이처럼이나 실용적으로 "전략의 정의를 경쟁 논의에서 벌써 내세우는" 이유는, 경쟁에 대한 논의부터가 전략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략 없는 경쟁은 토대 없는 건축이며, 이런 이유에서 저자(들)은 전략이 무엇인지부터 독자에게 제시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명제가 또 하나 등장합니다. 경쟁은 반드시, 라이벌들을 제압하고 경쟁력을 상실시켜야 승자, 최고가 될 수 있는 걸까요? 마이클 포터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경쟁은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지, 라이벌의 제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대뜸 "성과"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의 실용적이고 간단한 정의"를 이처럼 책의 앞부분부터 가르치는 것도 다 이런 고려가 작용해서입니다.

자 그러면, 포터 교수와 마그레타 여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보다 현명한, 그리고 실용적인 경쟁"은 무엇으로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는 걸까요? 이건 문제 제기 단계에서 암시된 바와는 달리 그리 달달한 컬러는 아니고, 오히려 더 살벌한 제안입니다. 혹 실망할 분들이 있을까봐 미리 밝히는 건데요, 이분들이 제시하는 "성과를 내는 경쟁"은 결국 객관적, 절대적(다른 업체와 비교할 게 아닌)인 경쟁력 강화에 중점이 놓여 있네요. 고객,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백날 "경쟁"을 해 봐야 손해이며, 설령 시장에서 선두 주자라 한들 허울뿐인 점유율만 높을 뿐, 수익, 성과가 안 납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애플의 예를 들며, (전통적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 대체되기 어려운 상품, 서비스를 생산하라"고 합니다. 이 역시 제가 저 위에 잠시 언급한 어느 일본분의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상통합니다. 라이벌을 제압하기보다, 라이벌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만큼 경쟁력을 키우라는 뜻입니다.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탑 독이 되라는, 더 독한 충고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역시, 라이벌에 대한 (소모적 구태를 통하지 않은, 진정한 선제적, 본원적) 제압임도 우리는 다 눈치챌 수 있죠. "도전의 불씨"마저 근절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지혜가 요구됩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조건 생산 단계에서 후려치기만 하면(내부 공정이건 외부 하청이건) 다 되는 걸까요? 이번 갤럭시노트 7 사태에서도 새삼 이 점이 주목 대상이 된 적 있죠. 마이클 포터는 이런 비용 절감 문제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오히려 어떤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이, 최종 생산되는 상품에 어떤 가치를 추가하는지를 잘 살피라고 합니다. 책에 나오지는 않으나, 이 점은 경영학보다 순수(협의의) 회계학에서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이슈입니다. 특정 이벤트를 비용으로 계상(計上)할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자산(의 일부)에의 평가를 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논의를 거치는 딜레마입니다. 물론 가치 평가를 허술히하면 기본적으로 보수성이 지배하는 회계 원칙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포터는 좀스럽게 "절약"에만 매달리는 기업가가 혁신을 이뤄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합니다. 제4장이 제2부("전략" 논의의 본격 전개) 처음에 자리하면서 "가치는 모든 전략의 시발점"으로 부각되는 건 마그리타 여사의 탁월한 센스입니다.

연속성은 장기 전략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미덕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흔히 전략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최초의 프레임을 너무 고집하면 이미 전략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도 하죠. 저자는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디테일에 변화를 주되 그 뼈대마저 교체되는 전략은, 이 전략을 접하는 외부(고객 혹은 라이벌)에 혼란을 주며, 끝내는 전략의 설계와 집행의 주체인 조직에게마저 타격을 입힌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시어즈(미국의 유명한 백화점)의 예를 들며, 실제로 저는 삼전의 최근 15년을 보면 마케팅 부문에서 뭔가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특히 전략의 연속성은, 지금 그 조직이 무엇을 내세우고자 하는지, 그 "핵심 가치"의 설정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회사, 조직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유지되는 한, 가치의 전달 방법은 보다 유연한 모습을 띨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단기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대세를 그르치기가 참 쉽습니다. "방법 이슈"가 아니라 온존해야 할 핵심 가치의 침훼(侵毁)에 이르는 실패가, 어느 기업에서건 비일비재한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전략의 얼개를, 그리고 특징들을 제시하면 "아 이건 마케팅에 관한 논의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특히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면 뛸수록)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 포터 교수는 "전략은 마케팅보다 (개념상, 그리고 실제 적용상) 고차원의 개념"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차별점을 분명히 부각하기 위해, "전략"을 논의하는 파트에서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강조한 것입니다. 조직이 생산하고 창조하는 가치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기업의 생존 전략에서 중핵에 놓여야만 하며, 마케팅 섹터란 이에 비하면 그저 지엽말단의 비중이고, 위에 쓰인 용어를 다시 끌어들이자면 "전달 방법"의 varia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은 말미에 포터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특히 일반 독자에게 난해했던 개념과 이론 구조에 대해 본인의 명료한 육성으로, 다소나마 친절하게 "전달, 소통"이 이뤄져서 그를 존경해 온 독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됩니다. 권말부록으로는 용어 해설, 그리고 (에디터다운 꼼꼼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참고 문헌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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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 스타트업을 스타트업하는 최고의 실전 전략
권도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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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후 기존의 시스템에 편입되기보다 대담한 창업자의 길로 접어드는 젊은이가 많은 이스라엘이, 많은 나라들 중에 보다 밝은 성장의 전망을 가지게 된다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던 것도 몇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후 스타트업 예찬은 미국에 상륙하여 보다 바람직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모색되기에 이르렀으며, 요즘은 한국에서도 야심만만한 스타트업 기업가들 - 대부분 젊은이들 - 이 갖가지 빛나는 아이디어를 내어놓으며 위축된 국가경제에 그나마 성장 동력 중 한 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은 그러나 엄청난 위험 부담과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기존에 잘 꾸려진 탄탄한 조직에 몸을 담는 게 낫지, 자신이 회사 하나를 일궈 사장님이 되는 길은 그게 성공을 한다면야 화려한 날갯짓이 가능하겠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예측이 어려울 만큼 난제입니다. 국가 전체로선 장려가 요구되는 경향이겠으나, 개인으로서는 희생해야 할 자원과 기회가 너무도 큰 면이 있어서, 정확한 정보와 사전 탐사, 그리고 대국적 트렌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만 성공을 점칠 수 있습니다.

"벅스"라는 사이트가 한때 음원 저작권자 단체와 크게 마찰을 빚고 간신히 타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일이긴 하나 미국에서도 무료 음원을 제공하던 냅스터가 소송에 휘말리면서 큰 논란을 낳았는데요. 20년, 10년이 지나 또다시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가 작은 트렌드를 타면서 이 음악 컨텐츠의 저작권 관련 다툼이 재연할 기미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곽동훈 칼럼니스트 같은 분이 독특한 차분한 어조로 "기술 개발의 타당성"을 지적하며 이들 스타트업(startup)을 옹호하던 기억이 납니다만, 개인의 권리와 너무도 명확히 충돌하는 부분은 창의력과 혁신으로도 극복이 어려운 부분이 있나 봅니다.

무료 메신저로 미래 생태계의 한 비전을 제시한 카카오톡의 성공은 이제 그 자체로 거대 변수의 위상을 당연히 짊어지며, 카카오톡에서 무엇이 더 나올지 앞날을 점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건 엘로아이디인데요, 사장님들이 기존 개인 친구들과 영업상 지인들을 구별하고 싶을 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유익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사적 용도건 비즈니스 목적이건 백 단위를 넘어가는 지인을 메신저에서 관리하는 건 어쨌든 대단한 인맥인데요. 카카오(주)는 이처럼 이용자의 입자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민첩한 예측력을 보여 주며 그를 행동에 옮기고 있습니다.

기성복이 내 신체 사이즈에 정확히 맞기까지 하다면 그만큼 매력적인 상품도 드물 건데요, 실제로 길거리에 나타나 내 몸을 재어주고 옷을 보내주는 사장님이 등장했습니다. 발상의 시작은 간단한 게, 많은 사이즈를 재어 본 업체라야 소비자들의 몸에 잘 맞는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입니다. 이처럼 스타트업은 일견 무모해 보이는 발상을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대담성과 창의성이 주된 원천입니다. 현재 왜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지, 그저 대량 생산, 낮은 원가, 선발자 모방 따위의 전략으로는 단계의 질적도약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게 도와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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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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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말이 그렇긴 하지만 "청부살인"이라는 게 "업종"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그 사회에는 역설적이게도 어지간한 자유, 혹은 자본주의 질서가 부여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가 남 일에 일일이 상관하고, 국가 질서가 마치 빅 브라더처럼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섬뜩함이 도사리는 사회라면 이런 류의 범죄 대행 서비스라는 게 끼어들 틈이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물론 아무리  자유가 좋고 경제활동을 마음껏 일궈 나갈 공간이 마련되어도, 누군가가 그저 돈만 주면 기꺼이 내 목숨을 노릴 의향에 가득차 있다고 상상하면, 그런 자유는 기꺼이 사양하고 싶은 게 모두의 공감대이겠습니다. 아니, 예를 들면 전두환때 "민간" 살인청부업 같은 건 없지 않았던가 같은 생각도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청부"는 사실 일본말입니다. 고용은 아니고, 개별 건수를 맡아 그 일의 완성을 도모하는 계약은 우리 민법에서 "도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살인 도급"은 민법 103조의 반사회질서 위반이라 아예 계약으로 성립할 여지가 없고, 구태여 이런 몸서리쳐지는 현상에다 대고 "한국어 순화"를 시도할 이유도 없으니, "살인청부"는 어디까지나 그저 살인청부일 뿐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매년 선정하는 작품에 대해, 근래 우리 한국인들도 유심히 챙겨 보며 그 큐레이션의 높은 안목을 수용하는 추세입니다. 미스터리 장르 문학뿐 아니라, 만화, 라이트 노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선별이 이뤄지고, 그 대부분이 우리 한국인들도 좋아라하는 분야들입니다. 이 작품 역시 해당 랭크에서 일찍부터 주목 받았던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달의 문> 등을 발표한 이시모치 아사미의 아주 깔끔한 미스테리물입니다.

미국에서의 신조어 중에 "문라이팅"이라는 게 있습니다. 본업 외에 다른 부업을 통해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는 건데 우리식 조어로 예전부터 있던 "투잡 뛰기"로 생각하면 됩니다.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직업을 지닌 전문직인데, 숨어서는 그 뒤가 매우 구린 범죄에 몰두하는 이들... 이런 모티브를 쓴 미국 영화로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  2007년작 <미스터 브룩스> 같은 게 있었죠.

과연 죽어야 할 인간이란 범주가 따로 있을까요? 겉으로는 헤헤 웃으며 사람 좋은 척 위선을 떨지만, 속으로는 무능하고 멸시 받는 인간으로 살아 온 원한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의, 피해의식을 키우는 늙은이 따위를 두고 "죽어 마땅할 인간"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습니다(살 만큼 살았으니 비료가 되어도 뭐). 아무튼 남부럽지 않은 윤택한 삶을 누리는 이들이 특히 "청부 살인"에 나선 그 동기, 알고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고, 한편으로 한숨이 길게 나오기도 하더군요. 미스터리로서도 무난하며, 아마 진즉에 다들 눈치챘겠지만 청부살인 같은 섬뜩한 소재의 느낌과는 달리 의외로 경쾌하게 굴러가는 호흡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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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종합소득세 실무
윤지영 지음 / 삼일인포마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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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갑지 않으나 세상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게 꼭 있기 마련이란 뜻인데, 그 이면에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죽음만큼이나 불가항력인 세금 제도의 필요악적 성격을 암시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확실히 생명이란 존귀한 것이어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촌구석에서 몸에 스는 이를 잡아 혀로 핥아 먹으며 땀구멍으로부터는 구더기를 내뿜는 천민 성도착 치매 영감이라 해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며 정신나간 듯 낄낄거릴 동력을 마련하는 (전혀 바람직하지 못할망정) 신비한 힘을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세금 역시, 납부할 때에는 눈알이 빠질 만큼 내기 아까운 고통이나, 어디 사람이 제 개인의 힘만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생존이 가능하겠습니까. 미개한 중국인들에 기생하여 더러운 푼돈을 긁어모으는 근본 없는 천출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문명 사회에서 합리적인 시스템에 기대어 정당한 소득을 올리는, 제대로 교육을 받고 경제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헌법상 국민의 의무이기도 한 이 "납세" 이슈를 마땅히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 세금 체계에는 크게, 개인 단위로 납부하는 "소득세"와, 법인을 그 납부 주체로 삼는 "법인세"가 있습니다. 이들은 직접세이며, 그 외에도 물품을 구입할 때 (내는 줄도 모르고 내게 되는) 부가가치세 등이 있겠습니다. 전자는 담세자와 납부 주체가 동일한 "직접세"이며, 후자는 돈을 실제로 부담하는 사람과 관공서에 갖다내는 쪽이 서로 다른 "간접세"입니다.

이 직접세 중에서도, 소득세법체계는 이른바 "소득원천설"을 취하는 것으로 학자들에 의해 파악되며, 법인세는 "순자산증가설"에 입각했다고 여겨집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개인을 상대로 부과되는 소득세는 법문에 분명히 적혀 있는 항목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면 되며, 법체계가 예상치 않은(그러나 이런 게 있기가 좀 힘듭니다) 소득에는 구태여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보통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에만 과세가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쳐도 그 범위가 꽤 넓으므로 큰 위안(?)이 되지는 못하는 설명입니다. 이 말만 믿고(자기 편할 대로만 해석하곤) 소득신고를 불성실하게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17년 전 최수종-하희라 부부가 전속계약금을 사업소득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했다가 국세청으로부터 처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내었다가 결국 패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건 법령의 불비, 모호함에서 비롯한 것이지, 납세자로서야 얼마든지 (세제상 유리한) 기타소득으로 간주하고 이런 신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작년 5월에는 어느 기업과 계약을 맺고 삼 년 넘게 고문으로 활동한 이가 고문료를 "기타소득"으로 신고했다가 국세청에게 처분을 받고선 역시 소송을 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판결에서 법원은 "42개월 동안 정규적으로 지급된 소득이며, 그 액수도 적지 않으니 설령 자문에 응하는 횟수가 불규칙적이고 적었다 해도 이는 사업소득으로 봐야 한다"고 설시했습니다. 만약에 이 납세자의 처지였다고 한번 가정해 보십시오. 당연히 부담이 줄어드는 "기타소득"으로 분류한 후 신고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법은, 모호한 경우까지 미리 세심히 상정하여 국민이 억울하게 덤터기를 쓰거나 배신감(설령 그것이 근거 없는 착각에서 비롯했다 해도)을 느끼지 않게 배려할 책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경우에는 당연히 사업소득으로 분류하여, 종합소득신고를 할 의무가 따로 생깁니다"라고 명문의 법규정에 의해 고지, 계도를 처음부터 받았다면 누가 세금을 안 내려 들겠습니까?(배운 게 없는 천출 악질들은 그래도 개기겠지만 말입니다) 선량한 시민과 그렇지 않은 악성 분자를 분별하여, 성실한 납세자가 언제나 최우선의 배려를 받는 사회가 바로 모범 준법 선진 사회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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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의 이해
장홍범 지음 / 한국금융연수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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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실무란, 생각보다 어려운 면도 있고, 맥만 정확히 짚고 들어가면 의외로 수월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서류와 절차 대부분이 영어로 된 점을 들어 언어의 장벽을 지적도 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어가 어려워서 무역이 어려운 게 아니라, 무역업무 자체의 생리와 구조에 아직 덜 적응이 된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에 신명을 내고 적성을 발견만 하면 영어 실력이 시원찮아도 잘만 일하는 사람도 보았으며, 이를 계기로 영어 실력까지 확 도약시키는 사람도 봤습니다. 중요한 건 일이지 "말"이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역은 꼭 국가 간에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남북 간에 이뤄지는 여러 상품, 서비스 교류도 무역의 범주에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는 뜻까지는 아니고, 이미 1990년대 초반에 특별법이 만들어져 북한에 특수 지위를 부여한 바가 있습니다. 경제 교류는 원칙적으로 정치 이슈를 떠나 서로의 효익 증대를 위해 가치중립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이것이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무역 관련 실무와 그에서 비롯, 파생할 여러 관계를 다루기 위해 여러 기본법이 제정, 개정, 작동 중입니다. 대외무역법, 외국환거래법, 관세법 등이 그것입니다. 장사든 사업이든 기본 룰을 알아야 자기 사업도 번창하고, 행여 법에 저촉되는 방향에다 아까운 수고를 들이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법규의 숙지는 꼭 필요합니다.

최근에 정부 기준이 바뀌어서 국제수지표를 구성하는 항목이 좀 달라졌으니 예전 지식으로 프레임을 짠 분들은 업데이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경상수지 구성 항목이 상품수지+서비스수지+본원소득수지+이전소득수지 등으로 정해진 건 그전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①경상수지의 세번째 항목 본원소득수지 중 투자소득과, ②경상수지와 배타적인 "자본금융계정" 중의 "직접투자", "증권투자"를 혼동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이자, 배당금은 ①이고, 주가가 상승해서 얻게 된 차익 등은 ②입니다. 보통 주식 투자라고 하면 ②의 "재미"만을 생각하지만, ①이야말로 이런 활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라진 건 "자본수지"의 명칭이 "자본 금융 계정"으로 바뀐 부분이죠. 예전에는 자본수지가 그저 장기/단기로만 나뉘었는데 이는 "만기"라는 단순한 기준만 적용한 분류라서 입체적 분석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새로 바뀐 카테고리에서는 일단 자본계정과 금융계정으로 나눈 후, 이를 각각 세부 항목으로 다시 나눕니다. 특히 금융계정을 두고, 직접투자, 증권투자, 파생금융상품, 기타투자, 준비자산 등으로 세분화합니다. 통계와 항목 분류는 그저 형식적 완결성만 갖춘다고 전부가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미래에의 예측과 분석이 가능해야 의미 있는 자료이므로 이런 전향적인 개편은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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