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 팀장은 경영부터 배운다
여현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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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서열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직급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던 시절과는 달리, 오직 능력과 실적에 따라 직원의 가치가 평가되는 기업 문화가 자리잡고부터는, 이전 세대는 알지 못하던 "팀장"이란 새로운 리더가 어느 직장 구조에나 등장해서 부서 소속원들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지지 않고 기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조직이 정체(停滯)와 무기력에 빠지는 건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경직되면서 (어찌 보면)필연적으로 겪는 과정인데, 이병철 창업주가 아직 대권을 쥐고 있던 시기의 말엽의 삼성도 그랬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반발과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조짐을 경계하여, 누구도 예상 못하던 과단성과 단호함을 발휘하여 조직의 둔화와 낙후화를 막았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팀장의 자리란, 한국 기업에 도입된 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으면서도, 개별 기업이 험난한 외부 변수의 도전에 잘 대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액티한 관리직"이며, 한 직원이 이사나 중역, 나아가 CEO로 성장할 만한 재목이 되는지를 최초 검증할 수 있는 시험장과 같습니다. 연대장, 대대장급 지휘관이 유능하고 기민해야 군대가 강력해질 수 있듯, 팀장들이 강한 회사라야 경쟁사들을 제치고 승승장구하는 장수 우량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이런 "최일선 지휘관"의 중요성이 기업주들에게 인식되어서인지, 군에서 장교로 오래 복무한 인재들을 수출기업에서 스카웃해 오는 일이 왕왕 있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낭만적(?) 아웃소싱이란 상상도 못하며, 직원들 스스로가 알아서 독종 만능 특무대장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본인의 좌천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체 자체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그렇게 사내에서 한번 굳어진 평판은 회복이 어렵고(사회는 한 번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고과 기록이 계속 남기에 이직 전직시에도 (타 기업) 고위급들이 돌려 보는 자료에서 반드시 참고가 되므로 커리어 관리에 지독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요즘은, "성공하는 팀장이 되는 비결"을 다룬 책이 여러 권 나오는 추세이며 저도 이들 중 두어 권 정도를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한 적 있습니다. 꼭 대리급들만 이런 책을 읽는 게 아니라,과장 부장 나아가 이사들도 초심을 찾기 위해 back to the basic한다는 의미에서 내용을 반추하는 모습, 많이 보이곤 하죠. 이 책과 다른 책이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은, 1) 철저히 현실주의적 백그라운드에서 다소 냉혹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팁을 제공하며, 2) 다른 나라의 실정보다는 우리 한국 기업들의 살벌하고 비정한 상황을 더 많이 반영한 내용이라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우리는 이런 책을 읽을 때 흔한 "힐링"이나 마음의 값싼 위안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므로, 독한 예방약과 따끔한 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하드 멤버십 트레이닝의 일종이라 여기고 책의 내용을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런 책을 읽고도 "다들 하는 이야기 아냐?" 정도의 반응이 나온다면, 직장에서 자신의 "임전 태세"가 화석화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심각한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당장은 무감각해지는 게 대증요법일 수 있으나,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유기체는 죽음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팀장은 어떤 권위나 자격에 기반한 직책이 아니라, 실적을 내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라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 가지 목표에만 전심 집중해야 하지, 이런저런 혜택과 부대적 수익에 좌고우면하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팀 전체를 망칩니다. 이사, 부장도 그러할진대(요즘은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도 파트너 변호사가 일감을 물어 와야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하물며....) 팀장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단기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 목표는 오직 하나입니 다. 하나뿐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다른 일체의 곁가지는 무시하는 게 팀장의 소임입니다. 이 책에서는 따로 말이 없지만(이 책은 팀장의 직분을 논하는 책인데 다른 이야기를 않는 건 당연하죠), 고위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여타의 사정들을 두루  고려하는 능력, 원모심려의 수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팀장은? "미안하지만 그런 거 없다" 입니다. 그런 걱정은 부장 달고 별 단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최근 부상하는 소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전쯤에 필립 코틀러가 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앞으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CSR은 필수 수행 과제 중 하나로 편입해야 한다"'는 게 그 책의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김경준 소장님이 쓰신 이 책은, 그런 입장에 대해 아주 호되게 비판하는 쪽입니다. 심지어 "일부 학자의 왜곡 과장"이라는 표현도 쓰십니다. 혹시 그런 권위자의 주장을 함부로 폄훼한다는 반응을 우려하셨는지(?) 베인앤컴퍼니 CEO의 말도 인용하시면서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과감히 무시하라. 기업은 본래의 목적인 가치 창출 외에 전념하면 그만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김경준 소장님의 책도 여태 여러 권 읽었기 때문에 이런 기조는 사실 뜻밖은 아니지만, 문맥적 추론의 고리들이 어느 지점에서 부딪히는 것과, 이처럼 핵심 주장 사이의 정면 충돌하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입는 충격의 정도가 다르죠. 저는 "여튼 팀장 수준에서는 주제넘게 CSR에 개의할 필요는 없다"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다만 이 책의 해당 챕터는 "투명경영" 자체에도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 책임의 부차화"를 넘어 "반사회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맥락으로까지 오해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팀장의 지식은 "지식인적 지식"이어서는 안 되고, 현장에서 척척 쓸모를 발휘하는 "상인적 지식"이라야 한 다는 게 예전부터 공병호 박사가 주장해 온 바고, 김경준 소장님도 이 책에서(이분의 다른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토픽입니다) 재인용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머리 속에 든 지식이라는 게 전자쪽에 아무래도 더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보니, 습관적으로도 후자 지향을 이루려고 평소에 대단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설프게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인문 잠언을 현장에서 설파하면, 그게 PT 서른 번에 어쩌다 양념으로 한 번 들어갈까 말까아야지, 그 이상이 되면 "아이디어와 감각 부재를 모호한 선문답으로 때운다"며 윗사람들 반응이 매우 안 좋아집니다. 이게 현실이고, 위에서 말한 대로 기업은 "가치 창출"에 본연의 소명을 다하는 게 최우선의 의무일 뿐이지 교육 기관, NGO가 할 일까지 맡을 이유는 없다는 점에서입니다. 자신이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면 일단은 조직이 주는 보수에 대한 반대급부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인문하기(?)"는 회사 나온 후에 해도 됩니다. 일하라고 다니는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딴 걸 하면 안 되죠.

엘리트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을 김 소장님은 냉철히, 직설적으로 찔러 줍니다. 자신이 아무리 유능해도, 팀장으로서의 능력은 자신이 거느린 "팀의 성과"로 평가받을 뿐이 라는 겁니다. "거,... 팀장은 잘하는데 팀이 별로야, 그치?" 라고 말을 건네는 부장님 말에 "그러게요... 흑흑 어케 제 마음 아시군,..."라고 했다간, 부장님 다이어리에서 이름 지워집니다. "부끄럽습니다. 못하는 팀은 곧 못하는 팀장입니다. 두 말 없이 이번에는 제대로 하겠습니다." 이게 정답이죠. 팀장은 그래서 가장 빠릿빠릿한 일선 세일즈맨일 뿐 아니라, 그런 말단 직원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매니저입니다. 인생의 이처럼 젊은 시기에 너무 어려운 직분이 주어진 것이나 아닐지요. 하지만 경제인으로서 한창 체력도 좋고 센스도 충만할 지금 제 능력을 발휘 못하면 언제 해볼까요? 나이 서른 넘어서 전교1등, 수능수석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게 김 소장님의 말씀입니다. 고집쟁이들은 토론을 하지않고, 어설픈 독단이든 오랜 사고의 열매이든 무조건 제 입장만 고집하는 게 고질병이고, 설사 그가 올바른 생각을 가졌다 한들 다른 팀원(하위직)들이 이를 거부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주장합니다. 원래 머리에 든 것 없는 사람들이 "근거 없이, 이유 불문"으로 동어반복만 하게 마련이지만, 김 소장님은 아마 평소에 그런 사람은 상대해 본 적 없으실 겁니다. 저자 김 소장님이 지적하는 바는, "당신이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 해도, 여튼 팀에서는 타인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소통을 못하면 결국 그런 무식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당신이 맞는 말을 하고 있을진대, 왜 그걸 쉽게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가? 최소한, 틀린 말을 우기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 아닌가? 이 뜻이죠. 소신과 고집을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게 우리 나라입니다. 피드백 사고가 되어 있지 않은 구성원들이야말로 회사에서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평가/인기/평판 중에서, 평판을 좋게 얻는 팀장이 되라고 합니다. 평가는 하위직일 때 개별 업무에서 얼마나 꼼꼼한 일처리를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기는 조직의 건강, 건전성과는 무관하게 (주로 부하직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냐 하는 척도입니다. 팀장이 염두에 두어야 할 건, 이 두 범주의 중용이자 핵심 교집합이라 할 "평판(reputation)"을 얼마나 좋게 유지하느냐라고 김 소장님은 말합니다. 이런 평판을 잘 관리하려면, "나의 상사가 보는 시선과 관점에 항상 서 볼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이런 역지사지의 태도는 자신과 상황의 객관화이지, 등뼈 없는 아부나 영합과는 크게 다릅니다.

반드시 승진이다 출세다 따위를 염두에 두고 학습해야 할 사항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소임을 다하고 성과를 내는 건, 타산적이고 속물적인 선택이 아니라 "월급을 받는 피용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격입니다. 그뿐 아니죠. 개인보다 큰 단위인 조직을 생각하라, 나 아닌 타인의 입장에서 사물을 통찰하라, 타인과 소통하며 더 큰 자아를 형성하라,.. 이런 것들은 출세의 방편이 아니라, 수백 년 간 동양에서 군자의 미덕으로 간주되어 온 사항이 아니겠습니까? 인문 실력을 발휘하려면 이처럼 지행일체, 무실역행의 차원에서 찾아야, 인문의 관점에서도 떳떳하고 온당한 선택일 것입니다. 훌륭한 팀장은, 한 인간으로서도 빠질 것 없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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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
롤랜드버거 지음, 김정희.조원영 옮김 / 다산3.0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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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의 <미래 충격> 등 여러 고전들은 지금도 널리 읽힙니다. 노환으로 작년에 이미 타계한 분의 책이, 요즘의 첨단 추세를 시원히 해명하거나 곧 다가올 미래를 예견해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 당연히 아니죠. 그가 말한(말했던) "미래"는 벌써,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이거나, 아니면 이미 과거에 편입된 시간들일 겁니다. 그런데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이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의 예견이 이처럼이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놀랄 만큼 많은 대목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의 예견은 과거에 속한 사항이 아닌가? 우리가 다시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이처럼 정확한 예언의 맥락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가고 없지만(대신 그의 따님이 있긴 하죠ㅋ), 이 신통한 책의 취지를 다시 탐구하면, 혹시 "후편"에 대한 내용 짐작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토플러뿐 아니라 영역을 달리하는 다른 모든 고전도 마찬가지죠. 뻔한 소릴 갖고 혼자만 깨우친 진리인 양 부풀려 떠드는 건 바보들이나 일삼는 짓입니다. 현명한 사람, 혹은 현명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은 미래의 향방에 주시합니다.

이 책은 앨빈 토플러에 버금간다 할 덴마크의 저명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저술한, 어떤 의미에서는 "고전"입니다. 21년 전이 먼 예전이라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21년 전이라는 시간의 핸디캡을 딛고 이처럼이나 미래(즉 현재)를 정확히 내다보았다는 그 통찰력이 놀랍다는 뜻에서입니다. 만약 롤프 옌센이 누군지도 모르고, 21년 전의 저술임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1) 담론이 시원하다. 다른 이론가의 체계를 엿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야에 의해 "이야기(이 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미래는 이야기의 세상이다, 이 정도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를 풀어놓고 있다. 2) 많은 대중 경제경영서, 혹은 자계서 등이 요즘 써 대는 주장과 내용이 비슷하지만, 고품격의 철학이 전 내용을 관통한다 3) 디테일에는 다소 동의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래의 대세가 무엇일지에 대해, 실감나는 정신 무장이랄까 시야 전환을 힘있게 촉구해 준다, 뭐 이 정도 반응들이 나오지 않을지 짐작합니다.

21년 전에 쓰여진 책치고는 놀랄 만큼, "4차 산업 혁명"이란 말만 본문 중에 등장하지 않을 뿐, 이 책은 아날로그식 감성이 사회 전반의 산업적 지향을 "다시" 지배할 미래를 생생히 그려냅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이른바 "제3의 물결"이라 일컬어지던, 정보화의 도도한 흐름이 세계를 휩쓸 시절이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가정마다 PC가 보급 안 된 곳도 있었을 시절이고, 우리가 지금 TV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접촉하는 그래픽 인터페이스(MS 윈도라든가)가 아직 결정판이랄 만한 게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정보화 사회가 채 성인기에 접어들기도 전이었는데, 옌센 박사는 "꿈과 스토리와 낭만이, 산업화 시대가 안긴 기계적 효율과 마음의 상처를 모두 덮어버릴 세상"을 논하고 있는 거죠. 물론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리로 향해 모두가 발버둥친다는 것, 이제 그 지점이 대세가 되었다는 것, 이 포인트를 잘 공략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고 기업들이 혈안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합니다.

옌센 박사는 놀랍게도, 인공지능이 등장하여(이 말은 물론 이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등장했었지만, 옌센 박사님이 거론하는 범주는 훨씬 구체적입니다. 게다가 지금 구글(이 책이 쓰여질 무렵 이 회사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과 애플, IBM 등이 컨셉화한 내용[상용화했든, 아니면 마케팅 구호에 아직 머물든 간에]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합니다. 물론 한 번의 대세 전환기에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는 건 지난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바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사람들이 잃은 일자리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게 "로봇세"를 물려야 한다는 등의 절박한 논의가 나오는 사정을 반영하여, 아직 그런 위기를 꿈도 꾸지 않았을 무렵의 독자들에게 미리 위안을 건네는(ㅎㅎ) 투로 책을 쓰는 분은 당시에는 한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이는 저자가, 매우 vivid하게 미래를 내다보고 확신을 가진 채 책을 썼다는 방증이죠.

제3의 물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정보화의 물결이 일상과 문명 전반에 가져다 줄 편의만 꿈꿨을 뿐, 실직이니 직업의 종언이니 하는 걸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래왔듯 이 대세가 적어도 반 세기는 지속되리라 보았죠). 박사님은 정보화사회가 일찍 종말을 맞고, 본인이 내다본 "드림 소사이어티"가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제가 눈여겨 본 건, 산업화 사회건 정보화 사회건 간에, 이런 변혁의 물결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는 식으로 저자께선 보고 계신 대목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정보화 사회는 그간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존재의 곁에 가까이 두며 위안을 구했던 많은 추억을, 메마른 부호 덩어리로 대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 노동의 상당수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갈아치우기도 했지요(제가 한 달 전쯤에 리뷰를 쓴 <더 박스>라는 논픽션에 그 실상의 상징적 일부가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산업혁명(1차, 2차)의 물결은 수공업 장인들의 설 자리를 대거 빼앗았습니다.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은 그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심각한 파문 중 하나였고요.

스토리를 만들고, 팔고, 산다! 이는 2년 전쯤 제가 이미 읽고 리뷰도 여기 남겼던 <르네상스 소사이어티>에도 나옵니다(이 책이 그 책보다 훨씬 앞서서 저술되었습니다만). 요즘은 아이들 수학 커리큘럼(국가에서 기획, 집행하는)에도 이 개념이 반영되었을 정도로, 파편적이고 냉정한 지식 덩어리는 미래(현재) 사회에서 퇴출되어 가는 게 현실입니다. 저자는 잃어버린 꿈과 낭만, 그리고 가슴을 가득 물들이는 "스토리"야말로, 사람들이 진정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그래서 존재의 일부로 편입하고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궁극의 상품이자, 모두가 제작자로 나설 수 있는 산업의 장이라고 말합니다. 기업 역시, 고용주가 피용인과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쌓았던 과거와 달리, 생산의 본체를 이루는 만인 경영의 시대가 열려, 종업원의 모임이 곧 기업이 되는, 계급 구조와 산업화 사회의 본격 해체를 선언합니다.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소비하는 세상에, 독점적 대량 생산 설비가 무슨 소용이겠냐는 뜻입니다. 이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저자는 "마르크시즘은 이 점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도 하는 대목이 있는데, 아마 요즘 독자들은 무슨 소린가 싶을 겁니다. 물론 이 책은 소련 붕괴 한참 후에 저술되긴 했지만요.

학교 다닐 때 저는 어느 미국인 저자가 쓴 책을 부교재로 삼았던 수업 시간에, "예컨대 코카콜라 광고 같은 건 아무런 실용적 정보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다. 그럼 소비자는 왜 이런 광고를 소비하며, 기업은 무슨 까닭으로 거액을 들여 집행하는 것일까?" 같은 질문(과제)을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신입생이었기에, "경제학 논리에만 파묻혔기에 이런 어리석은 의문이 드는가 보다"하고 넘겼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엉뚱하게도 "그래, 이런 건 다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에 지나지 않아"라며, 교재의 취지에 맞게 세계관까지 새로 세팅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영문판으로 대략 십 년 전에 읽고서야, 학부생 시절의 그 당돌한 반발이 오히려 정당했다는 각성이 들더군요. 그 광고는 (방향이 건전하든 그렇지 않든, 꿈이든 환각이든 간에) 시청자에게 "스토리"를 팔고 있었던 게(심지어 지금도 그렇죠) 분명하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던 셈입니다. 나만의 꿈을 정직하게 간직하고, 타인에게 희망과 긍정을 불어넣는 능력으로, 미래에는 서열(!)을 매기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 뜻에서, 저자는 "드림 소사이어티야말로 그 이후의 단계가 없는, 사회 발전의 궁극적 귀착점"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곱씹을 만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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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지음, 이문필 옮김 / 베이직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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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유의 전통에서 비롯했다 할 수 있는 자기계발 장르란, 알고 보면 파운딩 파더 벤자민 프랭클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연원이 매우 오래된 셈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메이플라워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토착인이 없는 곳을 가려 가며 농경지를 개간한 청교도들에게서도 초기 self -help의 사상적 맹아를 발견할 수 있으니, 어쩌면 미국 한정으로 본격 문학이나 철학보다도 더 깊은 뿌리를 지닌 게 이 자계 분야의 저술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계서 중 문장이 좋은 작품은 여느 문학 못지 않고, 실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독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념과 생각이라면 그것이 꼭 철학 분야의 작품보다 열등하다고 누가 강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오래된 실용풍 사상가들의 주장에서 빼놓지 않고 공통으로 발견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개개인이 유용하고 착실한 습관을 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습관을 들인다는 건 말은 쉽게 꺼낼 수 있어도, 이를 자신의 정신 깊숙한 곳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게 하고, 쉽사리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다지는 일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습관이라 함은 말이나 생각이 아닌 "몸의 차원"에서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습관을 통해 어떤 가치를 지향할 수 있음은 이미 수단이 아니라 목적의 경지에 다다른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어렸을 땐 픽션과 판타지를 좋아하다가, 나이 들고 내 생활과 이상의 구체적 실현, 도모에 보다 주안을 두면서, 전기나 역사를 좋아하게 되는 게 보통의 추이입니다. 이 책은 철저히, 대체로 데일 카네기와 동시대에 산 인물들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해,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결론을 저자 특유의 감성적 어조와 함께 이끌어내는 게 최고의 장점입니다. 제가 이 2권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건 헤티 그린의 이야기입니다. 이 비슷한 캐릭터가 1980년대 미드 <엘러리 퀸>에도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계서라고 해서, 직장인만 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은 초등 저학년이 읽어도, 재미있게 쓰여진 이 책의 다양한 일화들을 몰입해 가며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아이가 있으면, 많이 칭찬해 주시면서  건전한 독서 습관이 붙을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들도 어려서 아동 문고의 포맷으로 읽은 책들 중에, 이런 위대한 위인의 일화들만 모아 놓은 책을 읽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일화 모음의 성인용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배우 라이오넬 배리모어 같은 이의 이야기는, 설사 영화 팬이라고 해도 이분이 다소 오래 전에 활동한 까닭에 낯설 수가 있고, 이분의 이름을 알 연배라면 아마 연예인한테 자기계발을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부터에 벌써 동의하지 않으실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들은, 비록 해당 배우의 이름이 낯설게 들릴 뿐, 얼마든지 유용한 바를 배워 낼 수 있습니다.

우드로 윌슨은 1912년, 태프트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불화로 인해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 정도로 아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데일 카네기는 이분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참고로 삼아야 할 지 제법 구체적인 교훈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가 이분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시각만 갖고 있는 건 아닙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여러 일화(T. 루스벨트는 데일 카네기가 매우 자주 인용하는 인물 사례 중 한 명이죠)에서, 공연한 분열과 대립이 엉뚱한 이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취지로 적고 있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드로 윌슨은 평화주의자로서 미국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은 위인이고, 무엇보다 본격 학자, 교수 출신으로서 대단한 책벌레였음이 당연하기 때문에, 데일 카네기는 이 인물을 두고도 독자에게 가슴에 와 닿는 여러 방침을 추출하고 있습니다.

로렌스 티베트나 엔리코 카루소 같은 성악가, 가수들로부터 데일 카네기는 일관된 팩트, 유용한 지침을 강조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정확한 음과 기교를 구사하는, 재능 있는 후보자가 반드시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재능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왜 그 재주꾼들, 탤런트들이 다 입지를 다지고 큰 돈을 벌지 못할까요? 그것은 자신의 창작과 아이템을 소화, 소비해 줄 대중의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는, 상업적 자각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데일 카네기 자신의 결론이기에 앞서, 현장의 무대 책임자나 감독, 매니저들이 일관되게 증언하는 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실제로 프랭크 시내트라나 투병 후의 새러 본, 혹은 밥 딜런 같은 사람도, 성량이 약하거나 심지어 가창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대중의 정서 한복판을 정확히 겨냥하여 그들의 가진 역량 모드를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라이벌 파바로티에 비해 기량이 그리 뛰어났다고 할 수 없으나 언제나 그가 당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감정 표현과 호소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기본기를 소홀히한 채 그저 선동이나 감성 자극에만 나서는 것은 더 나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직과 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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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원가마인드
정명환 지음 / 신론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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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자산 가격에 포함시켜야 할 부분이며, 어디서부터가 당장 소멸되고 마는 좁은 의미의 "비용"인지, 그 구분은 언제나 명쾌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금액은 내내 특정 자산에 담긴 채 남아 있어 그 자산이 일정 효용을 창출하는 데에 기여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부분은 분명 특정 자산의 가치로 평가하여, 그 자산의 "원가"를 구성하는 것으로 장부 처리를 해야 마땅합니다.

제조원가에는, 예컨대 책상이라고 하면 원목 구입 대금 같은 게 재료의 가격으로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재료 자체는 아직 특정 자산이 아니므로, 그 자산의 계정에 적어 넣을 게 아니라 (그저) "재료계정"에 기입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러다가 제조 과정(공정)이 상당히 진척되면, 이는 더 이상 "재료 계정"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재공품 계정"에 들어갑니다. 여기까지는 딱히 회계적 사고 방식에 고유한 성격이 아니고, 평범한 상식인의 관점에서도 그러려니 납득할 수 있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또 일시 고용한 목수 등에게 지급한 임금, 품삯 등은, 그저 회사가 지출하는 소모성 인건비로 처리하면 그만일까요? 이런 지출은 지금 만들어지는 중인 "제품"에 이후 내내 체화, 통합되는, 어려운 말로 "자본화"하는 지출이라고 볼 수 있죠. 따라서 노무원가 중 실질적으로 이 제품에 투하되었다고 추적할 수 있는 부분은, 이를 해당 제품의 "직접 노무 원가"로 간주해도 됩니다. 여기서부터 관리회계가 슬슬 어려워지는 부분이겠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인적 직접노무원가 비중이 매우 큰 실정이었습니다만,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업무 자동화 바람이 불고 많은 기술 혁신이 이뤄짐에 따라, 이제는 기계가 이런 부분을 상당히 많이 대체합니다. 또, 기계는 한번 사다 놓고 돌리면 돌릴수록 1/n의 비율로 그 비용이 감소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람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비용이 절감될 수밖에 없습니다(효율 이슈는 차라리 둘째치고라도).

회계의 원칙 중 "중요성"이란 항목이 있죠. 비용은 비용인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얼마만큼 흘러갔는지 추적이 어렵거나, 일일이 계산하고 드는 비용이 더 클 경우 이런 건 구체적으로 분류, 배분하기보다 그저 특정 항목으로 묶어 따로 취급하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입니다. 세상에 무슨 "회계를 위한 회계" 같은 건 없기 때문이고, 회계, 기장 역시 그 어떤 특정 목표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어리석고 미망에 사로잡힌 늙고 추레한 인생이, 보물선 같은 미친 환각에 사로잡혀 메르스 환자 같은 헛소리를 떠들며 상식의 우선순위를 정반대로 섞는 추태를 부림이나 마찬가지로, 회계 역시 "지금 기록, 분석을 하는 최우선 순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는 경영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이런 데 서투르면, 빚쟁이한테 쫓겨 다니거나 고작 그런 자의 운전대를 잡고 시중이나 드는 비참한 신세를 평생 면하지 못하고, 끝없는 자기합리화나 퇴행적 근친상간에나 집착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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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정에 서다 - 허승 판사의 공부가 되는 법과 재판 이야기
허승 지음 / 궁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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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관계가 불법이기 때문에, 원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법이 아니라 민법 746조에서 이런 청구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죠. 단, 수익자쪽에만 그 불법원인이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에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계약은 계약이고 법은 법 아닌가?" 같은 주장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법은 특별히 이런 경우를 조문으로 따로 규율한 거죠. 이것 비슷한 게, 민법은 제2조에서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 그 권리 행사를 들어주지 못하게 정해 놓고도 있습니다. 또 103조의 경우,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에 어긋날 경우 역시 권리 행사 자체를 부정한다고 명정합니다.

대법원1999. 6. 11판결99도275의 경우, A가 B더러 C에게 뇌물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경우, B가 C에게 주지 않고 마음대로 써 버렸다고 해도, 이런 행위가 A에 대한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법은 불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법언(法諺)에서 그 근거를 찾기도 하죠.

그런데 과연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불법이 아닌지는 "국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결코 아닙니다. 자신은 전혀 죄가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명예훼손을 저질렀을 경우, 고의가 없다고 항변하거나, 취지가 옳으니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 개인의 내면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세상에 죄 짓고 벌 받고 감옥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죄를 지어야지. 저놈에게 해코지를 해야지." 이렇게 또렷한 의식으로 다짐을 해 가며 어떤 행동에 옮기거나 하는 경우는 백에 하나도 찾기 힘듭니다.

내심으로는 다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는데, 이게 합리화인 줄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하는 인간, 전혀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줄 모르는 인간, 아예 무슨 의적질이나 하는 줄 착각하는 인간 등 그 고의의 정도는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모자라다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고, 머리 속에 견강부회 회로 말고는 들어선 게 없다는 이유로 다 무죄 방면을 해 줄 것 같으면, 세상에 죄인은 아마 한 사람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스포츠 선수가 한 여성 직업인(유명인)에 대해, 평소에 습성이 어떻느니 행실이 어떻다느니 하며 메신저상으로 길게 전 여친에게 늘어 놓은 것이, 전파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바로 기소를 하려 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설령 사적인 공간에서 나눈 대화라고 해도, 얼마든지 명예훼손을 이룰 수 있고 한국의 사법 제도는 대개 이런 경우 엄격히 취급하는 편입니다. 저 선수의 경우와는 또 별개로, 보물선 따위의 허랑방탕한 꿈을 꾸는, 정신이 맑지 못하고 지려천박하며 사회경험도 현저히 부족한 자가, 하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 가치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미성숙한 인간은, 일종의 정신적 근친상간의 쾌감에 빠져 영원히 정도에 복귀할 수 없는 수준이라 봐야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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