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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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럽지만 김정운 교수님의 저서 <에디톨로지>가 이미 2014년에 초판이 나온 책인 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받아보니 그 책의 개정판이더군요. 제목만 잊은 게 아니라, 김 교수님 특유의 생기 있고 발랄한 필치로 세계 문명사, 최근의 산업 발달사의 주요 국면을 힘 있게 요약하며 통찰을 제시하던 그 구체적인 내용도 많이 잊은 상태라는 걸 책을 읽어 가며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내용을 잊었다면 다시 새로워진 기분으로 그의 제언에 귀를 기울이며 독자로서 생각할 거리를 다시 챙겨 가면 그만입니다. 이런 걸 두고도 (저자의 말씀처럼) "행위가능성(Handlungsmöglichkeit)"이 하나 더 생긴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쓸모보다는 디자인이다." 아이리버 역시 우수한 성능과 (저도 써 봤기에 알지만) 이런 것까지도 다 배려하나 싶은 부가 기능 때문에 유저들에게 큰 만족을 준 기기였습니다. 그러나 모 회사의 모 기기에 의해 시장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지요. 저자는 당시(초판 기준으로도 여전히 회고적 시점입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OOOO가 예뻐도 너무 예뻤다." 사실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운영 체계의 한계) 1998년의 아이맥 역시 "예뻐도 너무 예쁜" 디자인을 자랑하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과연 예쁜 디자인"만"으로 OOO이 시장을 제패했을까요? 저자는 바로 이어, 감압식과 정전식이라는 인터페이스상의 차이를 거론합니다. 무엇인가를 사정 없이 두드리는 것과, 그저 "만져 주는 것"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는 겁니다. 어느 누구나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만져 보고 싶어하며, 또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로부터 "만져짐"을 당하고(좋은 의미에서의) 싶어한다는 겁니다. 이런 유저의 원초적 감수성에 어필한 전략이, 유례 없을 만큼 시장을 완전 장악한 애플 사의 필살기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애플 사의 성공 비결"만을 용비어천가처럼 늘어놓는 일부 자계서의 태도에 거부감(정도가 아니라 엄연히 팩트상의 오류)을 느껴 왔습니다만, 이 책(의 이 대목)은 그런 류의 책들과 달리 "한때 MS에 밀려 고전하기도 했던 애플의 과거"까지 균형감 있게 다루어서 더 신뢰가 가더군요.

올해 FIFA 월드컵에서는 비디오 판독(이른바 VAR)도 도입되고, 중계 시스템도 현저한 발전을 보여 시청자들이 큰 만족을 얻었습니다. 이미 2014년 시점에서, 저자는 "한국 축구가 중흥하려면 먼저 중계를 신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사실 축구는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이 (그 나름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제대로 그 맛을 알려면 생각을 많이 하고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완전한 몰입이 가능한 스포츠입니다(게다가 동체 시력도 좋아야..). 저자는 "축구는 마치 바둑처럼, 공간 편집을 잘하는 쪽이 이기는 스포츠"라고 단언합니다.

이 대목에서 크게 공감하게 되었는데(기억도 나고요), 요즘은 인터넷 게시판에도 고수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편이라서 예전처럼 맹목적인 국뽕, 반대로 근거 없는 국까 모드의 매우 일차원적인 반응은 보기 힘든 경향입니다. 축구를 재미있게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려면,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빈 구석, 혹은 (게임이 이렇게도 전개될 수 있었다 같은) 대체 현실(평행 우주?)를,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연상, 상상이 가능하게 돕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야구처럼 상당 시간이 정적으로 진행되는 스포츠에서는 해설(컬러 코멘트)를 통해 빈약하나마 말로 이게 가능한데(물론 엉터리 해설자도 과거에 있었지만), 축구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결정적 순간들이 지나가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책에 나온 지적들이 거의 다 맞는 말씀이나, 사실 중계 시스템의 기술은 저 서유럽이나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선수들의 기량이고, 그 선수들이 속해 있는 클럽(구단)에 대해 일반 팬들이 바치는 충성도입니다. 물론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분들은 지금도 그들 혼자서 팀(그리고 나아가 K리그 전체)을 지킨다고 할 만큼 열성적입니다. 그러나 저변 확산이 (프로야구 등 타 종목에 비해) 미흡합니다. 이 역시 "에디톨로지"의 관점에서 어떤 혁신을 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의미한 공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편집 전략". 사실 이 구절이야말로 책 전체를 요약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합지졸"이란 말이 있듯, 수만 많다고 그에 해당하는 위력이 마치 물리법칙 F=ma에 수반하여 생기는 게 결코 아닙니다. 잘 정돈되고 조직화한 자원, 역량이라야 본래의 힘을 발휘하며, 책에서 잠시 소개하는 일본 전국시대 일화처럼 나가시노 전투에서의 혁신적인 성과도 가능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는 "잡단행동"이란 말이 우리와 달리(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확실히 저 단어에서 무슨 갈데까지 간 집단이 막무가내로 저항이나 하는 험악한 경우에나 저 말을 쓰곤 합니다), 파편으로 흩어졌을 시 별 힘을 못 쓸 자원이 고도의 효율을 발휘하게 돕는 비결, 비책처럼 통용되곤 합니다. 저자는 "한 번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군대 가서 고된 훈련을 한 경험을 (아들이 군대 갈 무렵에서야 서서히) 잊기 시작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닌 몸에 배워 둔 요령, 지식은 결코 그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과연 그래서인지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학력 소개가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따로 찾아보면 의외로 명문대인 경우도 부지기수이지요. 저자의 뜻은, 경력도 좋고 학력도 우수하지만 구태여 그런 말을 간판에 걸지 않고도 "나는 어떤 사람이오"라고 내세울 수 있는 이가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텍스트는 고립된 채로 아무 뜻이 없고, 오로지 콘텍스트 속에서나 바른 의미를 찾습니다. 조작, 날조가 아니라, 진실되고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콘텍스트, 사연, 스토리를 누구 앞에서나 자랑할 수 있는 에디톨로지의 대가야말로, 이 혼란스럽고 갈팡질팡인 세상에서 타 성원에게 어떤 지표, 지향점을 제공할 수 있는 등불 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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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중심의 Smart 원가회계 - 제3판
서강관리회계연구회 지음 / 유원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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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계 전공 과정에서 회계 테크닉을 빼고 이수한 전공 커리큘럼이란 참 실속 없이 초라한 대외용 강변입니다. 본디 "경영학"이란 현란한 말잔치로 때우는 학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도구만 던져 주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케이스마다, ad-hoc로 민첩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그 의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BA란 어떤 정해진 도그마와 같은 지식을 암기, 복창하는 과정이 절대 아니며 그런 지식이 쓸모있을 리도 없습니다. 마치 청년기에 읽은 시 몇 구절을 암송하고 터무니없는 경우에 적용하면서 '"내 눈에(만) 뭐가 보인다"고 떠드는 치매 늙은이의 추태나 다를 게 없습니다. 한평생 열등감과 가난에 찌들었기에 아마 그 눈에 보이는 건 침몰한 보물선(그런 게 있기나 하다면)의 썩은 잔해일 뿐이겠습니다.

설령 정통 mba 코스를 이슈한 엘리트 인력이라 해도 여전히 필요한 건 회계 실무 지식입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대부분의 루틴이 인공지능(까지 논할 것도 없고, 이미 상당부분을 프로그램이 대신 수행하고 있었습니다)에 의해 수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간교한 장부 조작, 위조를 통한 범죄를 적발해 낸다거나, 남들보다 앞서 가는 선진 투자(허황된 소문을 미신처럼 추종하는 미개한 범죄적 묻지마가 아닌)를 하기 위해서는, 공시된 재무제표뿐 아니라 장부를 읽어낼 수 있는 소양, 그것도 필요 없는부분은 버리고 자신의 목적에 적합한 부분만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걸 인공지능에게 대신 시킨다면, 아마 그 (구입한) 인공지능을 자기 식대로 튜닝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어야 할 겁니다.

어떤 기업이건 그 보유한 자산의 정확한 원가를 측정하는 방법이란 매우 까다롭습니다. 대체로 회계기준은 유형자산의 경우 환급이 불가능한 세금(이미 납부한)을 원가에 가산하게 권장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해당 자산과 관련된 지출이므로, 이 금액이 향후 다른 수익을 창줄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아예 원가에 산입하는 것입니다. 반면, 리베이트의 경우, 내가 이 자산을 특정 거래처로부터 매입해 줬다고 리베이트를 받았으니 그 금액만큼 할인 받은 셈 치고 원가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매입할인도 마찬가지이며 이걸 특별 수익으로 계상해서는 안 됩니다.

이보다 훨씬 까다로운 건 무형자산의 원가 처리입니다. 연구 단계에서 지출된 비용은 아직 원가로 계상하기 어렵고, 개발 활동 단계에 접어들면 해당 무형 자산의 입수가 눈 앞에 다가왔다는 뜻이므로 원가에 산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현장의 관행상 이를 인식함에는 상당히 신중한 기준이 요구됩니다.

많은 경우, "(무형)자산을 원래 의도한 목적에 사용할 있게 준비하는 데 직접 관련된" 금액만을 "원가"로 인정합니다. 인식 시점의 공정가액(취득가액이 아니라는 뜻이죠), 현금가격상당액이 그 표준입니다. 브랜드, 고객목록 등에 든 비용은 해당 자산만에 직접 연관시킬 수 없고, 사업 전체에 두루 연관된 금액이므로 이를 원가에 산입할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상식에 비추어서도 타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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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n0801 2020-04-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랑 관련된 댓글인건 알겟는데... 구해의사에 영향이 부정적으로 느껴져요..ㅠ 부정적이신가요?
 
공병호의 무기가 되는 독서 - 파괴적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을 읽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공병호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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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무기가 된다는 말씀이 다소는 역설에 가깝습니다만 여튼 현대 사회에서 워낙 경쟁이 치열히 펼쳐지다 보니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기량을 가다듬어 "무기화"할 필요는 충분할 듯합니다. 독서를 통해 삶과 조직의 경영(management)을 거의 처음으로 국내에서 설파한 전도사에 가까운 공병호 선생님의 저작이라서 더욱 집중하는 자세로 읽었습니다.

파트 1의 키워드는 혁신입니다. 이 파트에서는 최근에 제가 읽은 저작도 여러 권 나오는 통에 한층 주의를 기울여 독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히트 리프레시> 같은 MS CEO의 회고록( 겸 자계서)가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저자 공 박사님의 평은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공 박사님은 주로 1) 이미 1990년대 초부터 기술 변혁(이 단어를 공 박사님은 주로 쓰더군요)상을 지켜봐 온 저자  나델라의 통찰이 스민 부분, 2) 특이하게도 현대인의 미덕으로 (그와 같은 엘리트 엔지니어, 경영인이) "공감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는 점 등을 특히 강조합니다. 사실 이 대목은 논의의 앞뒤가 다소 중복되는 감이 있고, 상식선에서 다들 캐치해 낼 만한 포인트여서 공 박사님만의 날카로운 안목(꼭 비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장점을 짚어낸다 해도)을 기대했던 독자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거 실화임?" 요즘 이런 말이 유행이죠. 팩트보다 더 강력한 게 스토리텔링의 힘이라며 아예 제목에서부터 강조하고 들어가는 책이 나왔더랬으며, 공 박사님도 이 힘 있는 신작(작년 하반기에 나왔습니다)에 주목하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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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성, 결혼을 다시 생각하다 - 상위 7% 우등생 부부의 9가지 비결
그레고리 팝캑 지음, 민지현 옮김 / 진성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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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일생일대의 과업입니다. 요즘은 점차 전통적 가정관이 해체되고 보다 책임을 덜 지면서 상대를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만나 가는 관계가 서서히 확산된다고도 하나, 아직은 이런 행태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상대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고른 상대와 어떻게 행복하게 관계를 영속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무슨 직장 생활도 아니고 개인이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데 무슨 "기술,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게 참으로 큰 역설입니다만, 논리 구조를 따지기 전에 많은 기혼자들이 냉엄히 맞는 현실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부부의 (상대에 대한) 기대치는 한 없이 높아졌지만, 사랑을 완성시키는 방법과 실천의지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서양이라면 과거에는 종교 윤리가 특히 부부들에게 일일이 생 속에서 실천하고 준수해야 할 사항을 코칭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들 중 상당수는 불평등 관계를 전제로 한 것도 있고, 시대상이 크게 변한 지금 더 이상 큰 효용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전문가들, "선배들", 학자들이 그간 발견하고 축적해 둔 노하우를 참조하는 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 그레고리 팝캑은 이른바 "결혼 상담 치료사"입니다. 이런 직종의 전문성에 회의의 눈길을 줄 수도 있겠으나, 일단 많은 사람(고객)들을 상대하고 사례의 데이터를 축적, 분석해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일단은 그 말을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니 차분한 어조 속에 인생의 갖은 굴곡, 고비를 통찰하는 지혜도 충분히 녹아나 있어, 그리 얇지만도 않은 책 한 권을 읽어낸 보람이 충분했습니다. 특히나 이 책은 2017년도에 다시 이뤄진 개정을 반영한 신판이라, 전판을 읽어 본 독자들이라면 더욱 기대를 갖고 열어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처음 접하는 저자고요)

저자는 전판(나중에 확인 했습니다)에서 부부를 여러 유형으로 나누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나(우리)는 어느 타입에 해당하는가, 혹시 현재의 자신(들)이 불행하다면 어느 유형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겠으며, 그 방법은 무엇일지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숙고해 볼 만합니다.

성적, 재산, 소득 등으로 백분율 상위 하위를 나누는 게 일상이 된 요즘이지만, 저자는 30년 넘게 모범적으로 살아 온 자신 부부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화기애애 기준 상위 7%"에 속하는 모범적인 부부로 살려면 어떤 노하우가 필요할지 자세히 소개합니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그리 오만할 만큼 우애를 과시하는 어조는 아니고, "그저 평균보다 좀 낫다"는 정도로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전문가라면 자신 개인의 사례뿐 아니라 다양한 표본을 두루 섭렵하고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라야 더 경청할 가치가 있겠고요. 혹 정말 절실히 숙고한 연구 결과라면 저자 자신이 설령 파국을 맞이한 불운한 경험자라 해도 그 쓰디쓴 실패로부터 뭔가 절실한 교훈을 (반면교사처럼) 도출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튼 이런 조언은, 본인 자신들도 뭔가 성공한, 아기자기한 혼인 생활을 영위하는 분들의 가르침이라야 더 설득력 있게 와 닿을 듯하며, 실제로 이 책은 그런 책이기도 합니다.

"동반자적 결혼"을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결혼의 목표가 비교적 가시적이고 뚜렷하게 잡혀 있습니다. "능력과 친밀감 추구"라고 저자는 요약합니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예컨대 가사일 분담에서 일을 전혀 상대에게 미루지 않고, 즉각 눈에 보이는 대로 처리하려 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더 유능해지고, 더 자격을 갖춘 배우자가 되어가며, 이런 과정에서 성취감마저 느끼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공유하는 목표는

1) 진정한 평등주의
2) 친밀감을 저해하는 자기방어적 장벽의 제거
3) 특별한 일치감
4) 타협

이상의 내용은 p85에 이미 잘 정리되었습니다만 저는 항목 4)를 (저자의 의도와 다소 다르게?) 분리해 보았습니다. 즉 이런 유형이라 해도 서로 살아온 궤적이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남끼리의 결합이니 다소는 충돌이 빚어지는 게 당연한데, 이때 그들은 이미 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성적으로 "어느 선에서는 타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린다는 겁니다. 본래 밑바닥이면서도 허상을 품고 사는 유형들이, 상대에게 가당치도 않은 분수를 넘은 그 무엇을 강요하고 드는 법이니 말입니다.

사회 생활이라고 하면 당연히 방어막이 일정 부분 형성되고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가 목표로 한 걸 교환하고는 관게를 해소합니다. 이 방어막을 침해하고 들면 보기 추한 싸움이 나는 거고, 이른바 2차 집단의 질서가 무너지는 거죠. 헌데 부부는 서로 살을 섞는 사이이니만치, 이런 방어막이 빠르면 빨리 해소되는 편이 낫습니다. 과거 유교주의 풍조 하에서는 남편과 양갓댁 출신 부인 사이에 (부부인데도) 엄격한 틀을 유지하기도 했겠으나, 이런 류의 릴레이션십이 현대 사회의 욕구 해소, 기능 수행을 제대로 해 낼 리 만무하죠. 저자는 특히 이 "진정한 친밀감형성"이란 덕목을 강조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살아가면서 지금보다 더 매력 있는 상대,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기대는 하지만, 현재의 배우자보다 삶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더 든든한 지원자가 되지는 못하리라 확신한다.(p87)" 물론 이것은 현실을 도피하가 위한 위선(과거에는 이런 유형도 제법 보였습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자신들끼리도 연극처럼 그러고 사는)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이렇게 서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부부는 대개 몇 번 피상적인 시도를 하거나 자기 욕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끝에 "원래부터 맞지 않았으며 결합되지 말아야 할 사이였음"을 결론내리고 파탄에 이르기도 합니다. 헌데 이는 자신의 인격적 불성실을 호도하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세식 정혼, 중매 시스템에 의해 만난 것도 아니고 서로 한때는 원해서 끌렸으면서 이제 와서 성격 차이, 출신 성분 탓을 하는 건 자신의 인격과 판단 능력에 결격 선고를 스스로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런 "노력", 그러나 방법만 잘 따라가면 과정 자체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을, "바른 노력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과정이 지옥이면 결과와 견주어 비용이 너무 크게 먹혀 결국 시도하지 않는 만도 못할 수 있습니다. 매몰 비용이 너무 크면 과거는 쿨하게 잊고 지금부터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빨리 헤어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결단을 내려(이른바 "인륜지대사") 맺기 시작한 관계에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어떤 극단적인 방향을 틀기보다 개선과 부활의 목표를 일단 먼저 염두에 둘 필요는 충분합니다. 사례 제시도 많고 깨알같은 팁도 여럿 나올 뿐더러, 무엇보다 부부 관계의 이론적 유형화를 시도하여 맞춤형 해법을 제시한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나(우리)의 유형이 아니라도, 다른 유형의 부부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하여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지 구경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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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금융.경제 핵심정리 - 틴매경TEST 공식 기본서
매일경제 경제경영연구소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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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론과 실천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론 면에서는, 앞서 적은 대로 종래의 인센티브 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매우 과감하고 대안적인 주장을 폅니다. 그가 들고 있는 비유는 이렇습니다. "며칠까지 마감을 준수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회사가 있다. 직원들은 이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열심히 작업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감기한을 준수하지 못할 사고가 생겼다. 이 때 a그룹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자>였고, b그룹은 <그래도 가능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보자>였다. 전자는 단지 동기부여만 되어 있었고, 후자는 몰입도가 높은 그룹이다. 동기는 일시적이고 변덕스럽지만, 몰입은 지속적이고 충성스럽다."


어떻습니까? 기존의 이론에 부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분명 이 대목은 읽다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과연 맞는 말 아닐까요? 아름답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논리 전개입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소위 <몰입도의 전도사>라고 할 만해서, 각지에 이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다닙니다. 한 청중이 그의 강연을 듣고 나서, "와ㅡ 그거 좋네요! 우리 직원들한테도 몰입 좀 하라구 말해주세요!" 저자는 이 일을 소개한 후, "이런 식으로 직원을 몰입하게 할 수는 없다."며 불쾌한 듯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에요. 저 청중은 과연 저자의 열심 강연을 듣고도, 이해도가 떨어져서 그런 리액션을 보였을까요? 그보다는 "말은 좋다!" 같은, 일종의 비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죠. 동기부여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단물을 다 빼고 나면, 그 다음은 과감히 회사를 등질지 모릅니다. 반면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은 거리에 휴지 하나 떨어진 걸 보지 못하고 자진하여 처리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찌 보면 기술적인 실천 사항이 아닌, 도덕심 함양이나 제고의 차원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경영 기법으로 다루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회사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방법이 요구될 테니까요. 반면 인센티브란 회사의 여건 불문 어느 정도 공통적입니다.


몰입도 증진의 방법도 그렇습니다. 애사심을 갖는다. 인정한다, 칭찬해 준다. 다 좋죠. 하지만 이런 방법이 어디까지 효과를 유지할까요? "회장님, 말만 하지 마시고 돈을 주세요!" 나중에는 이런 직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몰입 경향이 낮지만 능력은 빼어난 직원이라면, 몰입 교육을 아무리 시켜 봐야 하는 척만 하고 말지 모릅니다. 이런 직원에게는 종래의 인센티브 제도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을지 모릅니다.


존증은 말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보상에는 여전히 금전이 결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직원 존중을 유도하고 생산성을 장려하다간, 직원이 아닌 거의 동업자 수준으로 대우를 향상해야 할지 모릅니다. 물론 좋은 일이죠.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장님들이 이 방식에 선뜻 동의하고 나설까요?


저자는 고학력자답게 언어 사용에 있어 상당히 까다롭고 신중합니다. 심리학 용어인 <긍정적 강화, 부정적 강화>를 많은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다고 합니다(예를 들어 84페이지, 현장에서 몰입 여건의 정의와 몰입 정의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불평). 그렇긴 합니다만, 본인이 예로 들고 있는 <엄마가 우는 아이를 안아 주는 일>이 과연 부정적 강화일까요? 안아 주는 일은 불쾌한 자극을 없앤다기 보다, 안아 준다는 유쾌한 자극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건 긍정적 강화지요.


engagement가 이 책의 핵심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참여>라는 좋은 다른 뜻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경우 engagement는 <참여>의 뜻에 가깝습니다. <몰입>은 개인적인 열중만 말하는 것 같아서 부자연스럽습니다. <참여>라고 옮겼으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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