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 :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제니 롱느뷔의 "레오나" 시리즈 세번째입니다. 앞선 1, 2권과 마찬가지로 자신감 가득한 표정,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 나이를 잘 알 수 없는(사실은, 꽤 드신 분이죠) 시크한 이미지와 날씬한 용모의 작가 사진이, 둘러진 띠지에 선명히 잘 나와 있습니다. 1, 2권을 안 읽으신 분들은 구태여 전편을 먼저 찾아 읽을 필요는 없지만(책을 그렇게 쓰는 베스트셀러 장르 작가는 없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나면 자연스럽게 전작들에 손이 갈 테고, 만약 읽은 이들이라면 이 3권을 도저히 피해갈 방법이 없을 겁니다.

레오나처럼 소신 뚜렷하고 타협을 모르고 강단 있는 여성이 어떻게 이런 조직(경찰)에서 버틸까(그냥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동료, 상관에게 두루 인정 받고 일정 지위도 확보한)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소신과 능력을 겸한 것과 그저 부적응자일 뿐인 것은 큰 차이가 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도 됩니다. 도무지 제멋대로이고 자신만의 폐쇄적인(앞뒤가 맞지도 않는) 세계에 빠져있는 타입은 그저 부적응자일 뿐인데, 이런 타입도 일일이 주변에 반항하며 여튼 정직한 에고를 노출하는 유형이 있고, 대외용 자아와 진짜 에고를 분리시켜 겉으로는 아주 비굴한 아부로 때우다가 결국 실체가 들켜 조직에서 쫓겨나는 유형이 있으며, 눈치를 살펴 강자에게는 선택적으로 굴신하고(말할 수 없이 비굴한데, 그 정도가 지나쳐 지켜보기에 좀 놀라울 정도입니다) 약자다 싶으면 마구 함부로 굴다 상황 판단이 오산이었을 경우 비참한 응징을 당하고 상처회복을 위해 "어린이 모드(아무도 안 속는 자기기만)"로 돌아가는 유형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레오나는 이 셋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훌륭한 적응자, 위너 스타일이지만, 우리 독자들도 아직 모르는(대충 감은 잡는) 어두운 과거가 있습니다. 이 과거가 그녀의 발목을 잡도록 게임에서 질지, 멋지게 수렁에서 빠져나올지는 물론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레오나가 특히 이 세번째 작품 중에서 "사회적 약자를 노리는 연쇄 범행"과 집중적으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 이들은 노숙자 등 사회 위계 구조에서 최하위에 놓인 불쌍한 자들입니다. 레오나는 우리가 전편들에서 잘 봐 와서 알듯, 또 스스로를 그렇게 평하기도 하지만, "어딘가 감정이 좀 부족한 타입"입니다. 하긴 풍부한 감성을 타고났다 해도 그런 조직에서 그처럼 오래 비비다 보면(?) 자연 몇 군데는 죽고 몇 군데는 무뎌지기 마련이죠. 남자 같으면 천성이 그러니 넘어가는데 여성에게 감성을 희생한다는 건 꽤 가격이 비싼 선택입니다. 이럴 때 뭔가 손해 봤다는 느낌을 면하려면 "아, 난 타고나기를 그리 태어났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현명할 수도 있겠는데, 레오나가 어느 쪽인지는 또 뭐 우리 독자 모두가 잘 아는 편입니다.

이런 레오나이지만, 달리는 열차 앞에 놓여(처음에는 자살 시도인 줄) 비참한 죽음을 맞은 어느 여인, 이어서 드러나는 연쇄 살인 범죄 앞에서 "왜 이들은 가장 취약한 이들을 상대로 몹쓸 짓을 저지르는가?" 같은 분노를 격하게 느낍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듯 혹 내면에서 엄청난 분노가 일어도 이를 표출하는 그녀의 방식은 언제나 침착하고, 또 그 결과를 따져 보면 효율적이기까지 합니다(그러니 부럽죠).

언제나 그래 왔듯 레오나는 수사의 정석을 밟아 기관사(여성입니다. 하긴 우리 나라도 여성 버스 기사분, 전철 조종기사 등이 무척 많고 이런 분들이 섬세하기까지 해서 자기 직분을 잘 수행하는 편입니다)를 찾아갑니다. "어떤 상황이었죠?" "자살을 시도하려다 나중에 마음을 바꾼 것 같았어요. 제동거리가 너무 길어서...." "여성인 줄 바로 알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 "아뇨, 나중에 '비현실적으로 변한' 시신을 보고서야..." 어디까지가 증인의 평가, 감정이고 어디서부터가 팩트인지 잘 가려 듣는 건 그녀에게 이제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여성 기사에게, 폭력적인 남편이 있었나 봅니다. "이 미친 경찰년, 당장 내 집에서 나가지 못해?" 사실 여기서 레오나가 쓰는 "제압 방법"은 통쾌하긴 하나 과연 후환이 없을까 싶은 좀 미심쩍은 수완이긴 한데, 여튼 놈이 워낙 바보라서 통하긴 했나 봅니다. 레오나는 이 장면뿐 아니라 언제나 대응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판단이 빠르고 정확한 편입니다. 레오나는 이 장면에서처럼 "찌질한 남자"들을 다루는 데에만 능숙한 게 아니라, 조직 내 자기 상관처럼 "성공했고 유능한 남자"들을 놓고도 역시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적당히 잘 다루거나, 정 힘에 부친다 싶으면 그냥 물러선 자신의 내면이라도 다독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 선을 잘 넘나들어야 여성들이 조직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데(무조건 양보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개겨서도 안되는), 하긴 이런 이치가 어디 여성들에게만 해당하겠습니까.

이런 레오나에게 무슨 약점이 있을까 싶은데, 있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남자 다비드인데, 이혼도 거치고 여러 번 신산을 맛본 그녀로서는, 제 인생의 보다 이른 국면에 진즉 만났어야 했을(=인생이 덜 꼬였을) 이성이었습니다. 야물딱지고 빈틈없어 보여도 이상하게 허술한 남자한테 크러시되어 정신 못 차리는 딱한 여성들도 종종 봅니다만, 다비드는 그렇지는 않으나 여튼 레오나가 그에게 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다비드가 이 작품에선, 말하자면 언더커버 비슷하게, 못된 놈들 사이에 침투하여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낸다는 식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몹시도 싫어하는 레오나이지만(이런 여성들이 경찰에 투신해야 우리 나라의 장래가 밝을 텐데....) 범죄자들에 대해 필요 이상의 폭력을 휘두르며 제압(이 아닌 개인적 응징)을 하려 들지는 않습니다(그래도 될텐데 ㅋ). 여기서도 야밤에 산에서 잡은 두 놈을 두고, 딱 필요한 만큼만 "결박"하곤 돈과 증거를 챙겨 몸을 피하죠. 한 놈이 레오나의 위력에 지나치게 위축되어 숨도 못 쉬고 고개를 처박자, 혹시 어디 탈이라도 났나 싶은 걱정에 상태 체크까지 하고 현장을 떠나는 장면에선 절로 웃음이 납니다. 레오나를 만나는 모든 범죄자들이 이처럼 상황 판단이 빠르게 되면 좋으련만(그녀나 그들 자신에게나 공히 말이죠).

여기서도 우리를 사로잡는 다른 캐릭터로는 알렉산드라가 있습니다. 사실 제 생각으론 작가 롱느뷔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이 셋(이라 함은, 레오나, 다비드, 알렉산드라)에 나눠 담지 않았나 싶은데, 1인칭 주인공 레오나는 능력, 다비드는 "누군가가 나에게 확 꽂혀 나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진짜 욕구", 그리고 알렉산드라는 소수인종으로서의 피부색, 취약한 출발점, 뭐 이렇게 말입니다. 여튼 표면적으로 불량배들의 일탈 범죄로 보이는 이 불쾌한 현상들 이면에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었음을 추적해 가는 과정의 후련함이 작품의 키 포인트이지만, 역량 있는 장르 작가는 이처럼 여러 주변 장치까지 풍성하게 마련하여 픽션의 세계 그 깊이를 더하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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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찬반 논란,

그 믿음과 불신의 역사를 파헤치다!


스튜어

트 블룸 지음 추선영 | 152×225 412 16,000 | ISBN 978-89-6570-651-9 (03400) | 2018629

스튜어트 블룸 지음 추선영 | 152×225 412 16,000 | ISBN 978-89-6570-651-9 (03400) | 2018629


 1. 책 소개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결핵, 콜레라, 소아마비, 황열, 말라리아, 자궁경부암.

질병 예방과 부작용 우려 사이, 백신 논쟁의 모든 것


현대 의학의 발전 지표이자 공공보건의 승리로 여겨졌던 백신. 백신은 인간의 면역 체계를 지원해 잠재적인 감염(혹은 질병의 심화)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한다. 백신접종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활동이었고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백신뿐 아니라, 그 이후에 개발된 소아마비와 홍역 바이러스 백신은 지역사회의 아동 수백만 명을 살렸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백신 안정성에 대한 불안으로 많은 사람이 접종 자체를 망설이고 있고, 더 나아가 백신접종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MMR(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백신의 경우에는 자폐증과 명확한 연계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안은 늘어가고만 있다.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나오게 된 데에는 현대 의학, 특히 백신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매년 겨울이 가까워지면 인플루엔자 백신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엔자 백신접종을 권고받는데, 특히 독감에 걸렸을 경우 위중한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 그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백신은 어린 시절 한두 차례 접종받으면 그만인 대부분의 다른 백신과 달리, 보호 기간이 왜 고작 1년에 불과한가?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 때문이다. 또 한 인플루엔자에 대한 면역이 다른 인플루엔자에 대한 면역이 될 수도 없다. 따라서 그 백신은 현존하는 (하위) 바이러스주에 걸맞게 조정해 효능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 때문에 WHO세계 인플루엔자 감시 및 대응 체계를 구축해, 매년 현존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수집해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샘플을 확인하고, 확인된 바이러스주는 곧바로 계절성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는 업체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그해 유행할 바이러스주를 제공하는 시점과 백신접종을 받아야 하는 계절성 인플루엔자 유행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기간은 일반적으로 몇 달에 불과할 만큼 짧은 편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WHO와 각국의 공공보건당국은 누구의 조언을 받아 무슨 근거로 인플루엔자 유행을 선언하는 것인가? 혹 첨예한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은 아닌가?

이 책 두 얼굴의 백신(원제: Immunization: How Vaccines Became Controversial)에서 저자는 냉전 시대의 정치 논리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이르기까지, 백신과 관련된 최근까지의 논쟁과 이슈들을 정리하면서, 그 의심의 근원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백신을 하나의 기술이자,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몇몇 접근법의 하나로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백신이 가지는 편협한 이익과 위험을 산정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판단을 내린다. 이 책은 백신을 둘러싼 우리의 선택에 보다 명확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2. 출판사 서평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졌던 백신, 왜 누구는 신뢰하고 누구는 불신하는가?

냉전시대 정치논리부터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까지, 백신의 연대기

 


백신접종은 당연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태어나 돌(생후 12개월)까지 맞아야 하는 필수 예방접종은 무려 9개다. 결핵을 예방하는 BCG, B형 간염, 뇌수막염 예방접종, 소아마비 예방접종, 폐렴구균, 그리고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등을 예방하는 DPT와 홍역과 유행성 이하선염(볼거리), 풍진을 예방하는 MMR, 수두, 일본 뇌염 등이 그것이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자녀에게 백신접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백신접종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므로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로 접종하는가? 아니면 자녀가 직면할 위험을 평가해 적극적인 태도로 백신을 접종하는가?

이 책 두 얼굴의 백신은 백신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본다. 논란이 무성했던 백신의 탄생 과정과 백신 사용이 확대된 과정을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최근 증가하는 백신에 대한 망설임이라는 현상의 근원을 매우 객관적인 관점에서 선명하게 그려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백신의 역사를 크게 기술(2~4), 정책(5~7)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특히 저자는 백신이 특별한 유형의 기술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 백신은 사람과 공동체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도구로, 유일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 냉전시대 정치논리부터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까지의 연대기처럼, 백신 개발 및 생산과 백신 사용과 관련된 정책 및 활동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저자는 백신이라는 건강을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를, 그 기술 자체와 그 기술의 사용 방식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신과 백신접종에 대한 많은 사람의 믿음이 사라져가고, 그에 따라 백신접종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경우 집단면역의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되어 홍역이나 백일해 같은 질병이 심각한 수준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공공보건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져가는 상황이다. 백신접종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백신을 둘러싼 논란들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백신 개발의 원동력, 공공보건인가 정치경제 논리인가?

 


위키피디아는 백신을 특정 질병에 대한 능동획득 면역을 제공해 특정 질병에 생물학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물질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정의한다. , 백신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물질에서 유래하고 특정 질병에 연계되는 생물학적인 물질로, 유익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천연두를 제외하고는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한 백신접종의 가치를 수용하는 과정이 더뎠을 뿐 아니라 일관성 없게 진행됐다. 수십 년 동안 백신이 개발될 수 있도록 자극해온 강력한 추진력의 하나는 무장 갈등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각국 군대의 사령관들이 장티푸스 백신접종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으니, 전시라는 상황 자체가 백신접종의 사용을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세기로 접어들어 맞이한 첫 60년에서 70년 사이 개발된 백신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이 시기의 백신은 대체로 보건의료의 필요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개발됐는데,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 원동력에는 경제 논리가 자리한다. 최빈국에는 개발된 백신을 구입할 자원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선진 산업국가에는 필요 없지만 최빈국에는 필요한 백신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열대지방 국가에서는 기생충병이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었지만 기생충병에 관련된 백신은 없을 뿐 아니라 개발 의지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에 따라 어떤 백신을 먼저 개발할지, 이 백신이 꼭 필요한 것인지 등 다양한 논란이 벌어졌다.

 


첨예한 백신 논쟁, 개인의 책임부터 부작용까지

 

이 책의 저자 스튜어트 블룸은 집단 백신접종이 도입되던 초기부터 찬반 논란은 계속되어왔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920년대 영국에서 BCG(칼메트-게랭 간균) 집단 백신접종에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된 개념의 하나는 바로 개인의 책임이었다. , 감염은 자기 통제가 부족하고 잘못된 생활방식을 선택한 개인의 탓이라는 논리였다. 따라서 보호 효능을 발휘한다고 약속하는 백신접종을 하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성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행동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저자에 따르면, 백신접종 반대 목소리가 등장하게 된 사건의 중심에는 백일해 백신접종이 자리한다. 백일해 백신접종은 1950년대 이후 광범위하게 시행됐는데, 일반적으로 디프테리아 변성독소와 파상풍 변성독소를 결합한 혼합 백신인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을 투여했다. 백일해 백신이 도입된 이후 어린 아동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백일해 발병률이 극적으로 감소했지만, 백일해 백신에는 거부 반응이나 우울증 유발 같은 부작용이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부작용이 일반적으로 하루나 이틀이면 사라지는 경미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모들이 경각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1970년대 말 무렵에는 백일해 백신이 뇌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학 연구 결과가 소개되면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유사한 논란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바로 ‘MMR(홍역-유행성 이하선염[볼거리]-풍진) 백신관련 논란이다. 1998년 소화기내과 전문의 앤드류 웨이크필드는 12명의 공저자와 함께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MMR 백신이 아동에게 자폐증과 장() 질환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이내 통제되지 않은 소수의 샘플을 토대로 작성됐다는 이유로 연구 방법론을 둘러싼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고, 그로부터 12년 뒤 랜싯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앤드류 웨이크필드의 논문을 정식으로 철회했다. 그리고 오늘날 인유두종(자궁경부암 유발 바이러스) 백신을 둘러싼 논란까지, 부작용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전반을 살펴보면 백신접종률은 상승하는 추세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의 부모 가운데 자녀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거나, 국가에서 권장하는 백신접종 일정에 완벽하게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 논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일각에서 벌어지는 백신접종 반대 운동이 부작용에 대한 불안을 넘어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백신과 관련된 가장 최근까지의 이슈들을 명쾌하게 전달하면서, 백신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이 생산해낸 손쉬운 일반화를 피해 이에 대한 하나의 통찰을 제시한다. 분명한 것은 백신에 대한 망설임 같은 현상은 분명 공공보건이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그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복잡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시작이다.

 

 

 

 

 3. 저자 소개

 

지은이_ 스튜어트 블룸(Stuart Blume)


암스테르담대학교 과학 및 기술학부 명예교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서섹스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를 거쳐 영국 정부에서 일한 바 있다.

공공보건의 승리로 여겨졌던 백신. 하지만 백신에 대한 망설임에서 백신접종에 대한 맹렬한 반대까지,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백신 논쟁의 한가운데서 이 책의 저자는 사실에 근거한 신선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냉전 시대의 정치 논리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정책과 진보를 논하면서, 공공보건이 상대적으로 덜 숭고한 관심사에서 밀려나게 된 배경을 파헤친다. 이 책은 백신과 관련된 최신 논쟁과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명쾌하게 제공한다.

 

옮긴이_ 추선영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천재에 대하여, 복지의 배신, 퓰리처, 여름전쟁, 세상을 뒤집는 의사들, 감시 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 의료 세계화: 자본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유엔: 강대국의 하수인인가, 인류애의 수호자인가, 에코의 함정, 추악한 동맹, 이슬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이단자(개정판), 녹색 성장의 유혹,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세계사,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자본의 세계화, 어떻게 헤쳐 나갈까?등이 있다.

 

 


 

4. 차례

 


1백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가?

전염병은 통제할 수 있다 | 전염병 유행과 공포의 조장 | 인간의 면역 체계를 보완하는 백신 | 집단면역을 통한 공동체 보호 효과 | 백신접종의 딜레마 | 백신에 대한 맹신과 불신 | 백신에 의존하게 된 공공보건 | 의무 백신접종과 대중의 저항 | 백신접종, 의무인가 선택인가

 


2백신의 탄생: 죽음을 극복하려는 노력

19세기 유럽을 휩쓴 전염병 | 면역혈청 개발과 세균학의 태동 | 디프테리아 백신 개발 | 결핵 백신: 투베르쿨린과 BCG | 콜레라와 황열 백신 | 누가, 어떻게 백신을 생산할 것인가? | 백신의 기준을 세우다 | 더 정교해진 백신의 검증 기법 | 20세기: 백신 개발의 전환기

 


3백신의 역할: 바이러스에 도전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국제적 차원으로 | ‘여과성 바이러스의 발견 | 바이러스학의 견인차, 인플루엔자 | 실패로 돌아간 인플루엔자 백신 | 첫 단추를 잘못 꿴 소아마비 백신 |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백신 개발 | 소아마비 정복을 위한 재도전 | 소크의 소아마비 사백신 | 대규모 임상 시험과 사백신 의 실패 | 세이빈의 생백신과 논쟁의 촉발 | 백신 개발의 황금기를 장식한 홍역 백신 | 유산과 기형을 유발하는 풍진을 막아라 | 볼거리 백신은 정말 필요했을까? | 백신과 특허

 


4 백신의 논리: 공공보건의 수호에서 상업화로

어떤 백신을 먼저 개발할 것인가? |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 B형 간염 | B형 간염 재조합 백신 | 백신 산업에 불어온 자유주의의 바람 | 전염병의 상식을 깬 AIDS | 공포를 부추기는 신종 감염성 질환 | 인플루엔자 변이: 누구를 위한 백신인가? | 역동하는 전 세계 백신 시장 | 첨예하게 맞선 공공보건과 제약 산업

 


5 백신의 수용: 확신과 망설임 사이에서

공공보건을 수호하는 기술 |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백신 개발 및 정책 | 백신접종의 주체는 누구인가 | 디프테리아: 백신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시대 | BCG 도입과 회의주의 | 세계보건기구와 BCG 백신접종 프로그램 | BCG는 정말 안전한가? | 논란의 중심에 선 백신

 


6 냉전 시대의 백신: 이념 경쟁의 도구화

진영 논리로 맞선 각국의 공공보건 | 세계보건기구와 주도권 경쟁 | 미국을 강타한 소아마비 | 각국의 소아마비 백신 도입 과정 | 진영 논리도 뛰어넘은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 | 기초 보건의료가 먼저다 | 홍역 퇴치 총력전 | 더 많은 전염병에 더 많은 백신을 도입하자 | 효과적인 백신접종 확대 프로그램 | 전 세계 모든 아동에게 백신을 접종한다는 목표 | 이념적 우월성을 표방하는 백신

 


7 세계화 시대의 백신: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정책 결정 논리의 변화와 대중의 인식 | 풍진 백신접종 전략 | 유행성 이하선염의 재탄생 | 질병 통제에서 질병 퇴치로 | 소아마비 퇴치는 실현 가능한가? | 홍역 퇴치와 말라리아 근절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우선순위, 새로운 절차 |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인유두종 백신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유두종 백신 도입 | 자유무역 시대의 백신: 질병의 재탄생

 


8 백신접종, 왜 망설이는가?

왜 백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는가? | 이윤 추구와 사유화를 꾀하는 백신 개발 | 세계 정치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백신접종 정책 | 백신접종에 대한 저항 | 백신의 안정성 논란 | 조작된 부작용 | 백신접종 반대 단체로 비난을 돌리다 | 확신, 거부 그리고 망설임 | 인유두종 백신의 실패와 교 훈 | 백신접종 거부의 상징적 의미 | 우리는 무엇을 믿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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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추천사

 


백신접종 프로그램이라는 뜨거운 쟁점과 그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면밀히 파고든다. 이 책은 설득력 있고 도발적인 백신의 연대기로서, 백신이 어떻게 인간의 건강과 제약 산업의 근간을 증진시켜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백신이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나, 그것이 누구에게나 두루 이롭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백신접종과 그 문제점의 역사를 다룬 대단히 흥미로운 책.” _<타임스 고등교육>

 


중요하고 종합적이며 선구적인 책이다. 저자는 국제 보건 계획과 전달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하고 극단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세계적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현대 백신접종의 역사와 공급 상황을 제시한다. 백신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논란이 무성했던 백신의 탄생 과정과 백신 사용이 확대된 과정을 자세히 검토한다. 또한 매우 풍부한 정보들을 통해 공공보건의 모든 사안에 도사리고 있는 기술적 결정주의의 위험을 전반적으로 짚어준다. 이 책은 신중하고 투명한 협의를 바탕으로 백신을 공정하게 도입하려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_산조이 바타차르야, 세계보건역사센터 소장

 


이 책은 최근 증가하는 백신에 대한 망설임현상의 근원을 매우 세련된 관점에서 명료하고도 선명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공공보건 기관이 이런 세태를 두고 쏟아내는 피상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그리고 백신에 대한 망설임의 원인을 선입견을 가지고 추측하거나 적절치 못한 틀 안에서 분석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실제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때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_윌리엄 무라스킨, 뉴욕 시립대학교 퀸스칼리지 교수

 


이 책은 백신이라는 이슈에 대한 굉장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백신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이 생성해낸 손쉬운 일반화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백신을 하나의 기술이자,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몇몇 접근법의 하나로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백신이 가지는 편협한 이익과 위험을 산정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판단을 내린다. 이 책은 백신 논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극화된 입장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것이다.” _브라이언 마틴, 오스트리아 울런공대학교 교수

 


 


 

 6. 책 속에서

 


공공보건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는 백신이 유도하는 면역 반응의 정확한 본질을 밝히는 일보다 백신을 사용할 최선의 방법을 밝히는 일이 더 중요하다. () 너무 어린 나이에 백신을 접종하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신생아를 보호하는 항체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위험이 극대화되는 시기에 도달하기 전에 백신의 효능이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 반면 백신접종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백신을 접종하기도 전에 먼저 감염되고 말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백신접종과 관련된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

접종해야 할 백신이 나날이 새롭게 추가되면서 백신접종 일정도 복잡해지고 있는데, 사실 오늘날 아동에게 보편적으로 접종하는 백신은 대부분 최근에 들어서야 접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수두는 1996년부터, A형 간염은 2000년부터, 폐렴구균은 2001년부터 백신접종을 권고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20159월부터 뇌수막염 B혈청형 백신을 생후 2개월 된 아기에게 접종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아동들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질병에 백신을 접종받게 될 것인데, 조부모 세대와 비교하면 거의 갑절에 달할 것이다.

_1장 백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가?, 24-25

 


사회가 백신접종률에 큰 관심을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백신접종률이 매우 높은 경우에만 집단면역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백신접종을 받은 사람이 인구의 80~90퍼센트를 차지하는 경우에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알려져 있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정확한 백신접종률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백신의 효능에 따라 그리고 특정 병원체의 감염 가능성에 따라 그 수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 컨테이전에서 역학자들이 시급하게 확인하려 했던 R0라는 매개변수가 바로 이 병원체의 감염 가능성을 의미한다. 매개변수 R0를 통해 감염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감염되지 않을 테지만, 감염된 사람이 존재한다면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수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매개변수 R0 값이 높을수록 해당 질병의 감염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현재 HIV/AIDS의 매개변수 R02~5, 소아마비의 매개변수 R05~7, 홍역의 매개변수 R015~18로 알려져 있다.

_1장 백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가?, 26-27

 


과거에 일어난 개입과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집단 기억 속에 각인된 정보에 의존하는 현상을 문화 자원 시나리오라고 한다. 모든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문화 자원 시나리오라고 부를 만한 정보를 접하면서 백신과 백신접종에 대한 생각을 형성해나간다. 따라서 근대 산업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백신접종에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위험과 공포를 느끼면 백신접종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백신접종을 의심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백신과 관련해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태도의 하나다. 세부사항이 달라질 수 있고 백신을 맹신하거나 의심하는 방식이 구성되는 과정도 변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맹신과 의심 모두 깊은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_1장 백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가?, 46

 


2차 세계대전 참전 준비의 일환으로 미국은 인플루엔자 분야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1941년 미군은 인플루엔자 위원회를 구성하고 바이러스학 분야를 선도하는 학자와 인플루엔자 백신 연구자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토머스 프랜시스가 위원회 의장이 되어 효능을 발휘하는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에 나섰다. () 열정적인 뉴욕 출신 젊은이인 조너스 소크가 연구를 보조하는 가운데 프랜시스는 불활성화 백신(사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자외선을 조사(照射)해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시도했고 다음에는 화학작용제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시도했다. 1942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여러 바이러스주와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담은 뒤 포르말린을 활용해 불활성화한 백신이 테스트에 들어갔고, 1945년 모든 군인에게 상업적으로 생산된 백신을 접종하는 데 성공했다.

_3장 백신의 역할: 바이러스에 도전하다, 113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동서 양 진영 모두가 과학이 진보의 기초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따라서 앨버트 세이빈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확인한 것처럼 과학자들은 정치적 장벽을 극복하고 과학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공보건 정책은 과학과는 사뭇 다른 문제여서 역사가 도라 바르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소아마비] 생백신이 철의 장막을 넘나들며 개발된 철두철미한 협업의 결과였다면 [소아마비] 생백신을 접종하는 문제는 냉전이 갈라놓은 단층선을 따라 추진됐다.”

동서 양 진영은 자국에서 공공보건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식과 1950년대 독립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여러 개발도상국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다투면서, 이들 국가에서 공공보건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에 서로 다른 입장을 표방했다. 이념으로 갈라진 동서 양 진영의 정치인들은 감염성 질환을 통제해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는 일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둠으로써 각자의 정치 체제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웅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_6장 냉전 시대의 백신: 이념 경쟁의 도구화, 253

 


앞서 많은 백신이 도입됐지만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만큼 뜨거운 논란을 불러온 적은 없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주체는 나라에 따라 달랐는데, 백신 생산업체들이 논란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 생산업체들이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에 강력한 저항이 일어났다. ()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이 도입됐다고 해도 논란이 그치는 것은 아니어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백신접종 피해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2011년 미국의 보수적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미셸 바크먼은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이 뇌손상을 일으킨다는 기존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지난 몇 년 사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2012년 당시 백신접종을 시행하지 않은 국가는 대체로 새롭게 EU 회원국이 된 중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뿐인데, 이 지역은 자궁경부암 사망률이 서유럽 국가보다 사실상 더 높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서유럽 국가 가운데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접종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몇 안 되는 국가로, 비용 대비 효과가 높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성 우려 때문에 백신접종을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개별적인 백신 구입은 가능하다.

_7장 세계화 시대의 백신: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337-338

 


최근까지도 의료 전문 매체와 공공보건 매체는 백신접종률의 하락 원인을 설명하는 데 단 한 가지 근거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 제시한다. ,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한 백신접종 반대 운동이, 앤드류 웨이크필드 같은 인물을 순교한 영웅으로 치켜세우면서 활개를 치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일한 설명인데, 모든 사람이 이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

따라서 메이요 클리닉 백신 연구 집단의 두 의료 전문가가 백신 프로그램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심지어는 중단시켜 이환율과 사망률을 높이는 결과를 빚어낸 원인으로 백신접종 반대 운동을 지목하고,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동원하는 오늘날의 백신 반대 운동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공공보건 정책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보건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_8장 백신접종, 왜 망설이는가? 370-371



 

 

 ☆ 서평이벤트 일정 안내

 

도서명 : 두 얼굴의 백신

서평이벤트 기간 : ~6월 28()

서평이벤트 발표 :   6월 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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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령시점 : 7월 2일 이후 /출판사 직접 배송(배송사정으로 늦어질 경우 서평기간도 늘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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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인블로그인터넷서점 2(예스24, 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 등) 총 3곳에 서평등록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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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 그는 과연 광기와 고독의 독재자인가?
고미 요지 지음, 배성인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북한 체제를 보며 언제나 느끼는 의아함은, 경제적 풍요를 정권 차원에서 달성해 낸 것도아니면서 어쩌면 체제가 저리 오래갈까 하는 점입니다.

심지어 천년 전 중국의 5대 10국 시절에도 권력의 3대 세습이란 매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개인 재산은 피붙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손 쳐도, 공직이나 권력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국가에서 아무래도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난다긴다 하는 실력자들 사이의 알력을 피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 세습이 (단지 부도덕하고 파렴치할 뿐 아니라) 매우 어렵습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안 한다기보다는 못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 김씨 가문의 3대 독재 지속이 일각에서 경탄(...)의 시선으로 주목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긴 합니다. 이번에 싱가폴에서 외무 장관, 전직 교육 장관이 김정은을 그처럼 극진히 대우한 것도, 싱가폴 역시 이현룡(리셴룽) 총리가 선대(리콴유)에 이어 2대째 전권을 맡는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의미심장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권력의 장기 세습과 국민에 대한 폭압 정치를 경계, 지탄해야 하는 "당위(Sollen)"와는 별개로, 저러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같은 당연한 의문,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실(Sein)"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앞에서는 분개하는 듯, 신랄히 비판하는 듯해도, 권력 앞에 비굴한 게 자연스러운 생리인 법이라 막상 이런 이들을 마주하면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가 봅니다. 심지어 트럼프조차도 그리 험한 말을 늘어놓더니 정작 당사자를 만나자 그 볼품 없는 독재자 앞에서 다정한 척, 친근한 척, 악의 없는 척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제스처를 늘어놓는 걸 보면서 우리들은 혀를 끌끌 차게도 되었습니다. 여튼 이 자그마한 독재자에게, 우리가 보지 못한 뭔가가 있긴 있으니 저렇게 제 의사를 관철해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 정리되고 중립적 시선에서 집필된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이 책은 1부에서 김정은 일가의 일탈적인 행태를 먼저 집중 조명합니다. 알다시피 북한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경제 제재, 단조로운 산업 구조가 그 부작용을 더 크게 야기한 흉년 등 자연 재해 때문에 큰 곤란을 겪었으나, 어찌어찌 고비를 넘겨 가며 근년에는 핵무기, ICBM까지 개발하여 태평양 건너 세계 최강대국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선대 김정일 치세에 없던 일이 벌어지니, 그간 정신이 불안정하다며 서방 언론(이 책의 저자가 속한 일본 미디어도 마찬가지)의 경계 어린 시선을 받아 왔던 김정은이지만 새삼 다른 시선으로 평가하게도 되었지요. 그러던 게 이번 남북 판문점 회담, 미북정상회담 등의 이벤트를 통해 "국제 정치 무대"에의 데뷔까지 이루면서 세간의 인식은 결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책은 그런 이미지 선전 정책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듯, 아직도 많은 수의 주민이 굶주리는 국가의 지도자 일가가, 그 유흥을 즐기는 용도로 얼마나 많은 금액이 지출되는지에 주목합니다. 정상적인 나라라고 해도 지도자가 향락에 국가 자원을 너무 많이 지출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국제 원조를 받는 처지에서 마치 보란 듯이 지도자의 헛된 위신을 과시하는 데 그처럼이나 많은 예산이 쓰인다는 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에도 그의 전용기 "참매호"가 노후와 성능 부실로 결국 중국 측의 도움을 받았으니 참 문제가 많습니다.

책에서는 김정은 특유의 "롤러 코스터" 인사를 비판합니다. 우리도 이번 정상회담 등을 통해 그의 실상이 본격적으로 공개되기 전에는, 제한적으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정보를 통해 누구누구가 어느 서열 어느 공직에 올랐다가 숙청되었다, 장기간 안 보이다가 다시 컴백했다 등등 아주 혼란스러운 모습을 봐 왔습니다. 다만 이런 인사 조치상의 변덕과 무원칙은 자유진영의 지도자라는 도널드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임된 코미 전 FBI 국장은 아직도 투쟁 중이며, 틸러슨 전 국무 장관 역시 석연찮은 이유로 느닷 퇴장했죠.

아무래도 우리가 여전히 김정은에 대해 의구심을 풀지 않는 이유라면,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를 동원한 극단적 수단으로 처형한 그 사건의 충격 때문일 겁니다. 손위 항렬의 인척을 그처럼 잔인하게 목숨을 앗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게다가 장성택은 개혁 개방을 주장하고 우리나 서방 측에 유연하게 나가야 한다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우군(?) 하나를 잃었을 뿐 아니라 향후 저 체제가 어떤 진로를 틀지 장기 비전에 대해서도 큰 우려가 일기도 했죠. 그런데, 과거 덩샤오핑도 자오쯔양, 후야오방 등을 숙청했으나 결국 바른 길을 가긴 갔고 경제 개방도 이뤄 냈기 때문에 이 점에 한해서는 좀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김정은의 수완과 진정성이 덩샤오핑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을지는 별개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 전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라면 말레이시아에서의 김정남 암살 사건이 있습니다. 저 장성택 처형과는 달리, 이 사건은 여튼 공식적으로는 누가 배후에서 일을 주도했는지, 배후가 과연 있기는 했는지가 아직 명확하게 판명난 건 아닙니다(범인이 누구인지는 우리 모두가 심증이 굳은 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책은 왜 김정은이 배다른 형 김정남을 죽여야 했는지, 성장 과정에서부터 품게 된 적대감과 경계심의 동기, 근원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핍니다. 이미 매체를 통해 널리 보도도 되었으나, 생전의 김정일은 특히 이 아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품었다고 하는군요. 그가 외국으로 유학 갈 때 김정일은 마치 딸을 시집이나 보내듯 눈물을 하염없이 떨궜다고도 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슬하에 둔 여러 아들들 중에서도) 김정남을 향한 정이 매우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자신을 가장 여러 모로 빼닮은 아들이어서겠죠?). 헌데, 이런 이복 형을 지켜보는 김정은의 심기가 어떠했을지도 우리는 짐작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sibling rivalry란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종종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재산가, 권력자의 소생들 사이에서는 피 튀기는 투쟁이 예나 지금이나 다반사로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들, 이삭의 아들들, 야곱의 아들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게 옳다거나 자연스럽다거나 하는 결론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이 책 쓰신 분이, 몇 년 전 크게 화제가 된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를 쓴 바로 그 일본 기자분입니다.

"기쁨조"란 말은 우리 남한에서도 워낙 널리 알려져 마치 오래 전부터 한국어 어휘 속에 들어 있었던 듯 착각도 됩니다만 이 책은 그 시초를 1996년 북한 무용수의 망명 후 회견 중 발언에서 잡습니다. 그 전에는 이 말을 우리가 알지도 못했고 쓰지도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지적을 듣고 보니 과연 그랬던가 싶기도 합니다. 어지간히 큰 (문화) 충격도 주었으니 그리 널리 퍼진 건데, 책을 보면 김정일 개인을 위한 인적 조직이라기보다 고위 당 간부들의 접대와 위안(...)에 널리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일부는 너무 유흥에 몰두하다 만취한 상태로 운전 귀가 중 사고를 내 크게 다치기도 했다는데 유독 북한 고위층 사망 원인 중 "교통사고"가 많은 이유(차가 얼마나 다닌다고)도 이것과 무관치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자인 제 개인 생각으로는 교통사고를 빙자한 처형, 암살도 그 중에 꽤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에 대한 여러 비화, 혹은 일반에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들을 이 책은 잘 정리해 놓았더군요. 김정일은 우선 아버지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와도 일차(?) 권력 투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헌데 김영주는 이른바 주체사상에 대해 평소 큰 의문을 품었으며, 혹여 자신이 집권하면 이를 정통파 맑시즘으로 복귀할 의향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감지한 김정일이 제 부친에게 꼰질러서 결국 그는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는데, 1973년만 해도 김영주는 특히 대남 관계의 굵직한 국면에서 책임자로 전면에 나서는 등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또한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도 일전을 겪었는데, 우리 한국인들도 잘 알지만 이 김평일이야말로 제 부친의 잘생긴 용모를 물려받은, 훤칠한 인상의 지도자감이었습니다.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의 소생인데, 여튼 이 위협적인 경쟁자를 김정일이 내내 살려두었다는 게 어찌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우리 쪽에서는 "비교적 합리적 성향으로 보이는" 그가 대신 정권을 잡기라도 했으면... 하는 희망섞인 관측을 갖기도 했지만, 그 실상은 사실 형에게 꽉 쥐여 꼼짝 못하는 무기력한 왕족에 가까웠나 봅니다.

겉으로 보아 철벽 같기만 했던 김씨 체제이지만 사실은 이처럼 내부에서의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던 것입니다. 책에는 한때 퍼스트레이디로서 많은 외부 활동을 벌였던 김성애가 언제부터 2선으로 후퇴했는지, 그 배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언제 조용히 최후를 마쳤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한 정보가 실렸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역시 치열한 암투를 거쳐 권좌의 정점에 올랐고, 김정은 역시 제 목숨을 건 결단과 의지를 통해 현재의 자리를 거머쥔 것입니다.

김정남은 한때 미국이나 한국측으로부터 해외 망명 정부 구상의 중심에까지 거론되었고 그를 따르는 북측 인사들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허나 한국에서는 이후 "통일 후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푸~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설레발도 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싶습니다. 아무튼 그 역시 "내가 권력을 잡는다쳐도 역시 권력 세습이다"라며 이런 "추대" 시도를 고사했다는 건데, 그 말을 문면대로 믿기보다는 왠지 패배자의 핑계나 현실 호도 같이 들립니다. 아무튼 생김새는 추해도 사람됨은 참 진실해 보였던 그가 혹여 권좌를 물려받았다면(가능성은 어차피 적지만), 훨씬 남북 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봅니다.

오히려 김정은 7년 재위(?)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았다는 보도가 다 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생각 외로 강했던" 북한 경제에 대해서도 집중 분석합니다. 허나 결론은 역시 "핵과 경제의 병진(竝進)은 불가능"이란 쪽인데 뭐 상식에도 부합합니다. 이 사람도 그런 현실을 알고 극한 곡예(brinkmanship)를 통해 판을 끝까지 키우고 패를 던져 보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아주 잘 풀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나 북한 정권의 실세들이나, 혹은 우리 모두나, 향후의 정국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죠. 평화나 목숨을 걸고 도박을 벌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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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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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느낌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고 아니고는 개인 차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이 작품을 즐겨찾는 이들은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역시 읽을 때마다 그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갈 겁니다. 이는 이른바 "나쁜 남자의 매력"과는 또 다른 류라 생각하는데, 어딘가 불쌍하다는 동정 비슷한 게 바로 그 이상한 끌림의 주된 원인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도리언은 사교계 데뷔 당시 그리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생김새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는 해도 그 이유를 스스로도 잘 모르는, 타인을 위한 관상용으로 고안된 전시품 같은 소외감에서 벗어날 줄 몰랐던 위태한 멘탈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머리가 비었고, 출신이 한미(p74 이하에 나오듯 귀천상혼 출신)했기 때문에, "인기, 선망"과 "자존(매우 유리한 조건이었건만)"을 일치시킬 수 없었지요.

"그만! 그만하세요. 너무나 당혹스럽군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뭔가 대꾸할 말을 찾고 싶은데.... (중략) 아니,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낫겠어요." (p44)

사실 여기서뿐 아니라 도리언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가장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 소년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도리언은 이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별안간 삶이,(쉼표는 제가 넣었습니다) 타는 듯 강렬하게 보였다. 자신이 불길 속을 걸어온 것처럼 보였다. 왜 진작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p46)

마치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뱀의 꾐에 넘어가 결국 부끄러움을 알게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도리언은 아마 미모를 급속히 잃게 되었을 텐데(음?? 누구 맘대로)....

"그레이군, 자네의 외모는 놀랍도록 아름답네. 찡그리지 말게. 사실이 그러니까(아름다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에 도리언이 반응한 듯). 그리고 미모는 천재성의 한 형태일세(헉!).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중 하나야. ..... (중략)... 시간은 자네를 시기한 나머지 백합 같고 장미 같은 미소에 전쟁을 선포할 걸세... (하략)"

화가 홀워드는 이런 열렬한 확신의 표백을 그저 말에 그치지 않고, 신이 자기에게 따로 부여한 천재성을 발휘하여 화폭에 실천으로 옮깁니다. 말은 그러나 예컨대 도리언의 (아래) 표현처럼, 생각보다 위력이 강한 것이었습니다.

"... 음악이 우리 내면에서 창조한 것은 오히려 혼란이었다. 하지만 말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얼마나 명백하고 잔인하며 생생한 것인지! 세상의 그 누가 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얼마나 미묘한(앞에서 명백하다고 한 것과 대조하여) 마법이 들어 있는가!"

여튼 화가 바질 홀워드의 손에 내려진 (신의)축복과, 유일한 자존의 근거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화사한(resplendent) 미모에 있게 됨을 비로소 깨달은 도리언의 간절한 희구(p58에 나옵니다)의 위력을 함께 받아서이기라도 한지, 홀워드 필생의 역작인 초상화는 그 주인공 도리언을 대신하여 나이를 먹습니다.

여기서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이 작품을 아동용 버전으로 초3때 처음 읽었는데, 그 서문에 보니 "... 어린이 여러분이 이해 못 할 만한 대목이 많이 나오므로 본서(어려운 표현인데)에서는 몇 군데를 고쳐서 소개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초상화가 나이를 먹고 사람은 그대로란 설정이 왠지 아이들 동화에나 나오는 설정같이 느껴졌으므로 아마 "고친 곳"이라면 여기이겠으며, 원작에는 "아이들이 이해 못 할" 훨씬 복잡하게 꼬인 "변신 스토리"가 나오거나, 아예 초현실적 요소가 제거된 진행이겠거니 짐작했더랬습니다.

근데 일 년 후 삼성세계문학 중 이 중편이 끼어든 권이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열심이 읽었더랬는데(故 이가형 譯 - 해문 추리소설 번역 참여로 유명한 그분이죠), 뭐 거의 그대로라는 걸 알고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지금 관점과 판단으로도 장담할 수 있는데, 제가 당시 읽었던 그 아동판은 성인 버전(이란 게 따로 없지만)이나 완역본과 별 차이가 없었고, 아마도 당시 역자들은 원작에 스며든 동성애 팩터를 우려하여 몇 대목(낯간지러워지는 대사 중 몇 구절)을 쳐낸 걸 두고 그리 말했던 듯합니다. 아니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화학자 앨런 캠벨과 그가 사실은 그렇고그런 관계였다든지...

헌데 오스카 와일드의 실제 생이 어떠했건 간에, 이 작품에는 외견상 이른바 퀴어 요소가 (그 숨은 주제를 제외하곤) 거의 없으며, 도리언 그레이는 작중에서 잘 드러나듯 의심의 여지 없는 이성애자입니다(오히려 정도가 지나침ㅋ). 혹 서두에서 화가 홀워드와 헨리 경이 이 젊은이를 농락하고 버린 일에 한이 맺혀, 여성을 상대로 한 엽색 행각에 빠져들었다는 대목이라도 들어갔다면 모르겠습니다만(아주 제가 창작을 하는군요).

이 역본에도 잘 드러나듯 당대의 정치 현실에 대해 언급한 몇 대목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p69에 올버니의 파머 경을 두고 그 성향을 설명하면서 "... 정치적으로는 토리 당을 지지했는데 정작 토리 당이 집권할 무렵에는 '급진주의자들의 무리'라며 호되게 비판을 가했다" 같은 말을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자유한국당 그것들 영 못 쓰겠더구만! 웬 종복 좌파들이 그렇게 많아?"라고 하는 식인데, 어느 정도 보수 성향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무렵 젊은이들[출신 계층 불문하고]에게 토리 당이 인기 없었던 건 잘 알려진 사실)"... 이처럼 그는 영국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었지만, 정작 그는 영국이 망해가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 거 참. 이 책은 예언서(?)를 겸한 것이, 실제로 영국은 이 파며 경이 우려(!)했던 대로 완전히 망할 뻔했다가 1980년대 들어서야 기사회생을 했다는...

헨리 경도 그 피가 어디 안 간다고 보수적인 건 매한가지라서, p87 같은 데를 보면 "날씨를 제외하면 전 영국에서 어떤 것도 개선되길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물론 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요즘 영국 남자들은 기껏해야 돼지고기 가공업이나 벌이던 가문의 미국 여자들과 결혼하는 게 유행인데...." 같은 대목도 나오는데, 대표적인 게 윈스턴 처칠 경의 양친이었죠. 유행을 잘 따라서인지 그런 트렌드의 소생 중에 이런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으니(이 양반도 초년에는 휘그당에 몸을 두었다가 나중에 보수당으로 옮겼지요) 유행이 마냥 해롭거나 가볍거나 속물적이라고 비난할 건 아닙니다. 흠.

도리언이 일생을 두고 타락하게 된 게, 불쌍한 여배우 시빌 베인을 버리고 자살하게 만든 후부터인데, 이 책에도 나오지만 그녀 역시 귀천 상혼 소생(부모 스탠스가 바뀌긴 했습니다만)이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 대목에서 도리언이 제 스스로를 부정하고 파멸시킨 터닝 포인트로 상징을 삼았을지 모릅니다. 아직 열여섯 살이었던 남동생 짐(제임스 베인)은 도리언의 마음 한구석에 남은 마지막 정의감의 잔해이고 말입니다.

"오, 내 철부지 동생아, 그분은 신사이고 왕자님이셔. 너도 보면 그분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완벽한 분이라는 걸..." 정작 너무도 철이 없었던 건 물론 그녀였지만 말입니다. 어째서 여자들이란 한번 눈에 콩깍지가 씌면 이처럼 분별을 잃게 되는 건지. 이런 천하에 쓰레기 같은 놈팽이를 두고 말입니다. 시빌 베인이 말한 "이상형의 왕자님"이란 구절은 물론 원 텍스트의 "프린스 차밍"입니다. 제가 어려서 읽은 아동판에는 오히려 처음에 역주 한 번만 넣어 주고 이 "프린스 차밍"이 번역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덕분에 영어 공부도 했다는...) 프랑스어처럼 수식어가 피수식어를 뒤에서 꾸미는 구조로도 볼 수 있고, "차밍"이 그 프린스의 이름이라고도 새길 수 있죠.

"하지만 당신은 언젠가 책 한 권으로 나를 타락시켰어요. 전 그 일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해리, 누구에게도 그 책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책 한 권이 문제가 아니라 이 헨리 경 같은 놈하고 엮이게 된 자신의 운수, 아니 자신 속에 싹트고 있던 못된 씨알머리를 먼저 탓해야 옳겠습니다만 우리는 도리언 같은 새xxx한테 애초에 뭘 기대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압니다. 요즘 같이 책이 대량으로 인쇄, 보급되는 시절이라면, 설령 진짜 마력을 지닌 책이 있다손 쳐도 아마 대중의 "입" 앞에서 그 에너지가 15도로 희석되지 않을까요? 우리 전승 문학 <구지가>를 봐도, 여러 사람의 입이란 쇠도 녹일 정도라고 하니 ㅋ

마지막은 사람들이 "아주 초라하게 늙은 사내의 손에 끼어진 반지를 보고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인데, 제가 읽었던 아동판에서는 이처럼 원문에는 전혀 없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이 모시던 분인가요?"
"아뇨". 햐녀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인님은 저 초상화에 그려진 분처럼 젊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어떻게 된 게, 저는 그 아동판의 결말이 훨씬 마음에 더 듭니다. 아마도 그 각색하신 분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너무도 몰입을 한 나머지 아예 자기식으로 창작까지 한 듯한데(ㅎㅎ), 이게 오히려 더 원작의 유미주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그럴싸해지는 결말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영원한 경의와 애모의 메시지도 잘 살고 말이죠. 또, 죽고나서 신원이 밝혀지면 가뜩이나 생전에 평판이 안 좋았던 그레이가 말 그대로 "유취만년" 신세로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이런 변형된 결말은 그 아름다움을 봐서 행해지는 마지막 "사면(pardon)"으로 볼 수도 있고 말입니다.

박혜정 작가님의 일러스트는 평소에 우리가 잘 알듯 날카로움과 퇴폐적 아름다움이 동시에 구현된 참으로 미묘한 그녀만의 스타일 덕분에, 혹시 이런 기획이 나온다면(아니면 팬 서비스 차원에서 혹시 그녀만의 각색판이 그려진다면) 최적의 작가겠다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이런 책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단, 일러스트가 좀 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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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영혼을 꿈꾸다
임창석 지음 / 아시아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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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살아 있다." 사상가나 철학자들뿐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들 상당수마저, 표면에 기생하는 하잘것없는 생명체들을 거대한 힘과 호흡으로 굽어보는 지구의 "영혼"을 두고 가이아 이론으로 체계화한 바 있습니다. 이는 그 실체나 논거가 구비되어 있느냐 여부와는 무관하게, 양식 있는 지구인들로부터 옹호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지구 온난화 이론 같은 것도 사소한 논거 흠결을 빌미삼아 반대진영으로부터 트집을 잡히기도 합니다만, 우리 대부분은 탄소 원료 저감 등의 실천을 통해 이 추세가 반드시 가로막아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생존의 절박한 문제 앞에서 논거를 따지고든다는 건 참 한가한 짓입니다. 말 안 듣는 못된 아이들은 엄마한테 호되게 엉덩이를 맞는다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진리 아니겠습니까.

임창석 저자는 (지난번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현직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이 책의 유려한 문장에서도 잘 드러나듯 등단 시인이며, (아마도 우리 독자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사진을 참 잘 찍으시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수상록(잠언서?)마저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은근한 예언자"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단지 무슨 구약성서 등에 나오는, 눈빛 심상치 않고 거동 살벌한 그런 예언자풍이 아니라, 잔잔히 지혜를 일깨우고 좋은 말로 엄마처럼 타이르는 단정(端正)한 현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과연, 우리들은 선지식처럼 어머니 지구에 영혼이 있음을 알았지만, 세파와 이기심에 부대끼면서 우리 자신에게 영혼이 있는줄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이 책, 즉 "지구의 영혼"에 대해 자근자근 싱기시키는 가르침이란, 먼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궁극의 진리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너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서로와 연결된 하나이며, 인간들 역시 자연과 일체가 된 존재이다." 그러니 개인만 살겠다며 스스로의 몸을 해쳐 대는 짓거리란 얼마나 우습고도 어리석습니까.

이 책은 겉으로 보아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실제 소설로 읽어도 됩니다. 아주 두드러진 사건이 없어도, 등장인물들이 담담히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자신을 짚어가는 포멧은 역시 익히 확립되었던 전통 중 하나입니다. 마치 저자 본인의 페르소나라고 봐도 될 듯한 "의대생(레지던트) 제임스"의 회고 액자로 소설은 시작합니다. 제임스는 장래가 창창한 예비 의사이고 역량과 솜씨도 좋지만 알지 못할 한 가닥 회의를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합니다. 온갖 인종이 모여드는 뉴욕 허드슨 강가에서 각종의 정물, 혹은 역동적 풍경을 스케치하는 그의 모습 역시 저자 자신의 상(像)을 어느 정도는 반영하는 듯합니다. 해부, 해부,... 제임스는 마치 전역 후 얼마 안 된 군인이 다시 내무반 생활로 돌아간 악몽에서 깨어나듯,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반복되는 루틴과, 칼을 쥐고 낯선 노인의 시든 육체를 가르는 역겨움에서 벗어날 방법이 무엇일지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이런 그에게 느닷 다가온 건 어느 소녀의 일기장이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마티"인데, 마티는 들으면 꼭 남자 애 이름 같지만 Matrha의 애칭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여자애한테도 흔히 씁니다. 남자는 Marty라고 살짝 철자가 다르다고도 하는데 뭐 꼭 그렇지만고도 않습니다. 여튼 이 소설에선 일부러 Marti라고, 소녀 이름의 정확한 철자까지 제시됩니다.(성씨는 "하비". 마치 해부학의 아버지 윌리엄 하비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마티는 엄마가 없습니다. 어느날 생전의 엄마와 함께 놀던 뉴욕 바닷가를 떠올리며, 새로 이사 온 오하이오 주 이리 호수 근처에서 뛰어다니다 구덩이에 빠져 크게 다칠뻔하고 기절까지 합니다. 뉴욕은 바다에 면해 있지만 이곳 이리(Eerie) 호수도 바다처럼 넓기에 소녀에게 기시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여튼, 정신을 차려 보니 큰 몸집의 갈매기가 자신의 아래에 깔려 죽어 있느데, 따스하기도 했고 푹신하기도 하다가 이제는 싸늘해진 무엇이 바로 지금 갈매기의 사체인 걸 알고 소녀는 놀랍니다. 이 사실을 아빠에게 말해주자 하비 씨는 차분히 딸의 머리를 어루만집니다.

"엄마가 너를 지켜 줬나 보다...."
"네에....?"

한편, 장면이 바뀌어 소녀 마티와 리처드는 그전부터 자주 만났지만(?), 이번에 제대로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까지 거칩니다. 무슨 소린가 하니, 리처드는 본래가 오하이오 출신이고 거기서 학부까지 마쳤지만 의대(콜롬비아대) 공부 때문에 뉴욕까지 온 거고, 아까 말했듯 마티는 뉴욕에서 나고 자랐으나 어머니를 잃은 후 이곳 오하이오로 아빠 따라 이사 온 겁니다. 그러니 둘은 고향과 거주지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교환(?)한 셈입니다. 리처드가 오하이오 체류 시절 호숫가에서 뛰놀던 마티를 먼발치에서 본 건데, 그때는 리처드 본인도 개인 마티를 의식한 건 아니었고 그저 풍경의 일부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앞에서 마티가 엄마를 잃은 소녀라고 했는데, 리처드 역시 비슷한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자랐습니다. 형 에릭이 전쟁터에서 죽었는데, 주변에서는 영웅의 죽음으로 떠받들지만 어린 리처드에게는 영문 모를 큰 시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소년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현인 아첵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문까지 닫았습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는 작가님의 다른 책 <자신의 영혼에 꽃을 주는 100가지 이야기>의 한 대목을 들춰 보게 됩니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 외에 "영혼"이라는 구성 요소를 갖는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에서, 양심이나 행동 원칙의 일관성 같은 게 결여된 채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을 두고 "영혼을 악마에게 판 자"라는 비난을 하곤 했죠. 겉치레로 반듯한 예의를 지키고 치밀한 계산 하에 행동하기는 하나 결국 이웃을 해칠 궁리만 하는 사람에게 영혼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치가 어찌 기독교 문화권에만 통하겠습니까? 바른 마음을 지니고 공동체에 속하며, 이웃과 가족에게 뜻있는 결과를 남기려 애 쓰는 인간 문명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이겠습니다.

 

저런 나쁜 유형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영혼을 잃기로 작정하고 이기심만을 키우는 사이 우리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인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영혼에 꽃을 주는" 행위와 마음가짐이 때로는 의식적으로 필요합니다. 척박한 황무지에 절로 꽃이 필 수 없습니다. 딴에는 정성스레 가꾸는 화분에 꽃 한 송이가 피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실제로 꽃을 다뤄 본 사람이라야 실감합니다. 하물며, 악이 언제나 방문객으로 깃들기 쉬운 우리 인간의 경우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저자는 말합니다. "인간이란, 우주에 플러스 효과를 일으키는 존재입니다.(p31)" 무슨 뜻일까요? 영혼의 안식이 깃들 여유가 없는 척박한 물리계에서 1+1은 언제나 2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따뜻한 마음, 풍부한 상상력,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여유 등은, 1+1의 결과를 때로 3으로 만듭니다. 자연 법칙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1=3이야말로 인간에게 맞는 산술법"이라고 합니다. 1+1=3을 때로 만들지 못하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 어쩌면 결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사람이라면 기계적 산술 법칙을 때로 초월할 줄 알아야 합니다.

 

"원주민들은 죽은 이의 슬픔보다도,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 속에 남겨진 죽음을 더 비극으로 생각한단다.(p60)." 그렇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 더 이상 우리와 살을 맞대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분의 죽음이란 그 자체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극이고 아픔입니다. 그러나 먼 천국에서 여전히 우리를 내려다보며 그리워하실 망자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더 찢어질 듯 아픈 건 살아남아 여전히 이승에서 삶을 부대끼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또 어디 내 마음만 잘 추스른다고 그게 다이겠습니까. 다른 유가족들, 친구들, 협업자들, 추종자들의 설움도 달래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구란 행성은 아직도 불완전한 단계란다... 이 넓은 시공간에 질서를 유지하고 착한 주파수를 쏘아대는 뇌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들처럼 진화된 집단 생명체의 조화된 뇌세포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단다.(p96)." 가슴이 뭉클해지는 말씀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우주는 너무도 광대하며 인간은 티끌보다도 작다. 그러나 거대한 공간인 우주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반면 그 작은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티끌보다 작은 인간이 우주 전체보다도 존엄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거의 끊임없이 대를 이어가며 심지어 우주 전체의 작동 원리까지 궁구해 낼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그런 존엄한 생명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타 생명체와 교감하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이것이 그저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순간에도 우주를 향해 주파수를 뿜어내는 것입니다. 그 주파수가 모이고 모여 감히 저 거대한 우주에 영향을 끼치며 마침내 어떤 운명조차도 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하찮은 개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씀이나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의해서 벌써 우주에다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벌써 하나의 우주입니다. 함부로 살아서 될 일이겠습니까. 책임이란 걸 의식해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보다 성숙해지면 종교 간의 갈등도 사라질 것이고 지구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인류 전체의 마음이 싹트게 될 것이다.(p115)" 인류의 마음입니다. 철수와 영희의 마음이 아니라, 70억 인구가 하나되어 뿜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마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마음은 저 차갑고 외로운 우주 검은 구석조차 온기로 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거창한 레이더나 인공 발열 장치를 통해서? 아닙니다. 그런 걸 만들려면 환경을 해치고 탄소를 다량 발생시켜야 합니다. 그건 자연과 우주와의 교감, 화해가 아니라 또하나의 전쟁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착한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이웃과 공유하고 우주로 향해 뿜어낼 수 있다면 그순간 우주는 환히 밝혀지고 암울한 팽창을 멈춥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죽음도 넘어설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다 우리 개인개인이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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