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로 빼돌린 검은 돈 이야기 역외탈세
장보원 지음 / 삼일인포마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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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외(域外) 탈세란, 해외의 조세회피처(tax heaven)을 이용해서 세금 납부를 회피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과거에는 "조세피난처"란 말을 즐겨 썼는데, 국민(혹은 거주자)의 당연한 의무 수행 행위가, 무슨 긴급히 피해야 할 "난(難)"이 될 수는 없으므로 요즘은 이처럼 바로잡아 쓰고 있습니다.

이 책 p1에서는 먼저 "조세회피처"란 바른 용어부터 제시하고, "해외로 소득 등을 유출시켜 탈세하는 행위"로 이른바 역탈을 정의합니다. 역외탈세가 간단히 "역탈"로 줄어 통용되는 현상(p14)만 봐도, 이런 행태가 의외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책에서는 2016년에 이은 2017년의 국제 탐사보도 언론인협회의 폭로를 잠시 언급하는데, 아마 한국인들에게 가장 충격을 준 건 지난 2013년 뉴스타파(역시 ICIJ와 긴밀한 연계를 맺은)의 폭로였을 겁니다. 당시 모 금융기관 K 사장, 유명 연예인 Y씨, 대기업 이사 L모씨, 교육자 C씨 등 다수의 (이른바)사회 지도층이 혐의를 받았었죠.

이 책은 저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사회에 은연중 만연한 어떤 범죄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파렴치한 행태에 대해 우리들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인식이 퍼지면 뻔뻔스럽게 탈세를 저지를 엄두를 (그들이) 덜 내겠지만, 그보다는 재미있는 소설 형식으로 된 책을 읽어가며, (꼭 역탈 같은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도) 세무 전반에 대한 상식이 크게 느는 보람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이강재라는 핸썸하고 전도 유망한 사업가가 차린 사업체가 본의 아니게(?) 국세청으로부터 "역탈" 혐의를 쓰고 궁지에 몰리는데, 이를 우리의 주인공 장태란 세무사가 도와 주며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아주 전형적이라 할 세무 관계 트러블들이라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을 재미난 이야기처럼 엮은 내용입니다. 뭐 주인공 중 하나인 이강재 대표님이 결국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등 아주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미모의 장 세무사님과 묘한 러브라인이 형성되는 등 소설적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장태란 세무사님은 벌써 서른 후반이지만 일만 하고 살아온 베테랑이라서 여태 연애 같은 연애 한 번 못 해 본 불쌍한, 그러나 주변에서 한 미모한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 화려한 싱글입니다. 이 정도면 "화려한"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게, 평범한 세무사도 아니고 국세청, 검찰청, 관세청 등에 외부조력인으로 출입한 바 있고, 여러 알짜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하며 그간 수입도 꽤 높이 올린 것으로 짐작되는 유능한 전문직이기 때문입니다. 경력이 이 정도면 세무사 중의 세무사라고 봐야겠죠.

이 약력을, 한 번도 아니고, 책 서문은 물론 본문에서도 두 번이나 강조하는 걸로 보아 작가님(일부 페르소나를 장태란에게 분명 투영한, 현직 베테랑 세무사이고 나이도 비슷하지만 남성이십니다...)이 그 세팅에 아주 공을 많이 들이신 듯합니다. 14년 경력 기준을 잡는 시점이 2016년이니 집필(혹은 구상)에서 출간까지 2년 가까이 소요된 것 아니겠습니까.

after all these years 같은 감상 지긋한 어구가 서두부터 대뜸 나오는 통에, 와 과연 역탈이 소재인 만큼 작가님이 영어 표현에도 참 능하시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고 아델의 노래 가사라고 나오더군요(...). (이 구절은 p130에 한 번 더 반복되고, 저 뒤 p122, p184에는 다른 노래 가사가 또 소개됩니다 ㅎㅎ)아무튼 시작은 장태란(이하, 직함은 생략하겠습니다... 만 캐릭터에 애정이 가서 계속 호칭을 높여 드리고 싶어요)의 회상으로 열립니다. 결말에 가서, 이강재 전 대표가 더 세련된 모습으로 (집행유예로 일단 미국에 갔다가) 장태란과 멋지게 해후하는 장면(발단과 동일 시간대)도 나오기 때문에, 뭐랄까 구성상의 묘도 빼놓지 않고 갖춘 셈입니다.

홍학익 회장은 대뜸 소리를 지릅니다. "뭐 그런 엉터리 규정이 다 있노?" 이 소설에는 유독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 중반쯤에 가서 우리 이강재 대표님 회사에 검은 양복 입고 조사 나오신 황도엽 팀장님도 그렇죠. 홍회장이야 감자(減資. p29에 자세히 나오죠)를 먹는 감자(potato)로 아는 무식한 분이고, 반쯤은 이런 무식, 반쯤은 정말 범죄 행위(상습횡령이라고 뒤에 나옵니다) 때문에 감옥에 가도 별 동정이 안 갑니다. 헌데 낭만도 있고 머리도 좋고 뻔뻔한 기질도 왠지 밉지 않은 이강재 같은 사업가가 젊은 나이에 "빵"에 들어가는 건 좀 안돼 보이긴 합니다. 제 주변에 누구는 "3년이나 살았다면서 집행유예는 또 뭐냐?"고 하던데 일단 불구속 기소로 시작은 했으나 1심에서 바로 실형이 선고되고(소위 법정구속) 항소심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면 이럴 수가 있죠.

아무리 잘나가는 세무사라고 해도 통 연락 없던 누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갑자기 전화를 걸어 올 때, 이렇게 쓸모가 생길 때에만 연이 이어지는구나 같은 무상감을 느낄 수 있겠죠. 이런 use(사용)에 대한 좀 쓸쓸한 소회가 이 소설 속에서 두어 번 나오는데, 사실 세무사 같은 전문직(자유직종)은 고용(雇用) 혹은 사용(使用)이 아니라 위임(委任)이라고 하죠. 물론 로마법(혹은 독일 민법)에서 위임은 어디까지나 무상위임이 원칙이었으나(따라서 자유재량이 허용됩니다), 한국처럼 변호사건 세무사건 fee를 받고 일하는 게 대다수인 이상 일반 피용인과 다를 바도 없다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

p43에 "간주배당"이 나오는데 위에서 홍회장이 버럭 화를 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 주식 소각, 잉여금 전입 등의 경우에 적용되는 건 세법상의 "의제배당"이며, 지금 이건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한 것이죠. 용어가 서로 비슷하므로 일반인들이 헷갈리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배당이 아닌데 배당 취급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습니다. p37에 보면 주식이나 부동산 명의신탁이 어떻게 민형사상 제재를 받는지 자세히 설명되고도 있습니다. 다들 홍회장 같은분이 싫어하실 만한 제도들입니다.

2016년 당시 사정을 잘 반영하듯 해운업계의 구조적 특성(경기를 심하게 탐)에 대해 여러번 설명이 나옵니다. 본디 이 바닥은 심한 호경기와 불경기가 교차하게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8년 전 글로벌 위기의 여파로 해운사들이 더욱 심한 곤경을 겪는다는 분석(설정?)을 덧붙입니다. 톤세 제도에 대해서도 장 세무사 등의 소상한 설명을 통해 독자들이 많이 배울 수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유독 저 2008년에는 우리 정부 당국이 딴에는 선의로 도입, 권장한다고 한 게 기업들에게 치명타를 안긴 패착이 많았습니다. 키코(Knock-In Knock-Out)도 그랬고요.

이강재 대표는 p63에서 부당행위계산부인에 대해, "왜 상대회사는 액수 그대로 매출을 인정하고 과세하면서, 당사자에게는 경비 인정을 안 해 주느냐"고 묻는데, 이건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매출액이야 납세자가 그리 신고를 헸으니 과소(過少)가 아닌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고, 경비 인정 범위 문제는 본래가 정책적 고려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사업수완이 탁월했던 아버지(p87, p201)에게서도 이런 건 안 배우셨나 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역탈 이슈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니라, 사업 하면서 마주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세무 난관이 자세한 사이드 설명과 함께 재미있게 다뤄지기 때문에, 읽으면서 상식도 많이 늘고 공부도 됩니다. 소설류에서 대화 부분은 대개 따옴표 안에 발화자의 구분도 없이 독자가 알아서 추론해 가야만 하는 비능률적 형식으로 처리되지만, 이 책은 각종 세무, 법무 서적 출판을 통해 보기 좋은 편집에는 이력이 난 삼일인포마인의 솜씨라서, 지금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방백)인지 대화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독자 입장에서 아주 편합니다. "게임 안에 또 게임이 있다."던 이강재의 대사도 명언이고, 지전무(나중에 대표이사가 되지만 결국 물을 먹죠) 같은 캐릭터가 사회에는 꼭 있고, 이런 실감 나는 인물 묘사 덕분에 소설이 유익하고도 재미있었습니다(이강재의 영웅본색과 해피엔딩- 세상 참 좁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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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숲을 보다 - 리처드 포티의 생태 관찰 기록
리처드 포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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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숲을 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자신만의 좁은 한계에서 벗어나길 싫어하며, 그저 익숙한 뉴런의 경로 속에서 생각이 굳어가는 줄은 모르고 편견과 선입견이 주는 (그릇된) 쾌감 속에서 점점 자기만족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자신의 편협한 견문 안에서 매사를 판단하다 일을 그르치며, 인간이라는 종족 역시 인간 중심적 사고에 매몰된 끝에 자신을 낳아 준 자연을 경시하고 심지어는 파괴하기 일쑤입니다. 푸른 색채를 가득 머금은 식물,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가 없다면, 이 연약한 종이 어디 단 한 순간인들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해서, 우리들은 숲은커녕 나무에조차 참된 응시, 진정성 있는 시선을 못 주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입니다.

이 책 저자 리처드 포티는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도 꽤 이름이 눈에 익은 분입니다. 삼엽충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으로 독자들에게 이미 열띤 호응을 얻었으며, 고생물학자로서의 업적이 경력의 본체이신 분이지요. 요즘은 "빅 히스토리"로 역사의 더 큰 얼개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분주하고, 그 훨씬 이전부터 자연만의 독립된 역사(이른바 자연사[自然史])를 기초 놓은 후 인간사와의 너른 관점에서의 통합적 관점을 구축하려는 노력도 제법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특히 같은 저자의 책 <런던 자연사 박물관>도 읽어 보실 만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저자분처럼, 자연과 생물 일반의 아득한 기원을 더 오래 관조해 오신 전문가, 지성인이라야, 오히려 인간 문명사에도 더 적확하고 공정한, 또 유익한 통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연이 부과하는 험난한 시련을 이겨내고 이처럼 정교하며 풍성한 문명을 건설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긴 하나, 그 부작용이 너무도 심각하여 이제 거의 종족 운명 종착점에 다다르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엄습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역사만 놓고 보면, "대왕(~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은 이가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 바로 그가 알프레드 대왕(849~899)이라고 합니다. "물푸레나무의 수피(樹皮)는 성장하면서 기괴하게 주름진 파충류의 피부와 유독 닮는다.(p153)" 가지가 죽은 후에도 수피를 떨구지 않아 골프공 크기의 검은 콩버섯이 박혀 있다고 하는데, 이를 "알프레드 왕의 케이크"라고 부른다고 하는군요. 이 재미있는 이름의 기원을 정확히 알려면, 본문(의 역주)에도 소개된 "알프레드 왕이 케이크를 태운 일화"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그 바로 앞 페이지에는 애설레드 2세가 옥스퍼드에서 모든 데인인을 태워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나오죠. 제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리처드 포티 박사님의 책은 인문역사와 자연사가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된 서술로 가득하다는 것, 옛날 이야기를 전해 듣는 듯 구수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 어느덧 인문과 도의, 책임감 등까지 함께 전해진다는 점이 독보적입니다.


이렇게 유명하시고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분이라고 해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무색하게, 정말 뜻깊은 프로젝트 하나를 출범시켜 보려 해도 이를 감당할 재원(財源)이 언제나 적시에 마련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단, 2011년 운 좋게도(포티 박사님 말고도, 이처럼 우리 독자들에게 역시), 다큐멘터리 방영으로부터 나온 수익금에 기대어 박사님 부부(그 부인 되시는 재클린 포티(Jacqueline Fortey) 여사 역시, 전작들에 자주 성함이 등장하기에 우리가 잘 압니다)는 칠턴힐스에 숲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위 문단에서 옥스포드를 언급한 대목을 구태여 인용한 건, 바로 이 칠턴힐스(Chiltern Hills)가 옥스포드셔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래서 2012 April부터 월 단위로 이어지는 사적(私的, 혹은 史的?) 일지이기도 합니다.

"우리 숲은 여느 숲처럼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 원 저는 이 문장이 현재시제로 되어 있어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포티 박사님 특유의 유머인 듯. 아니 "여느 숲과 달리"도 아니고 뭐하러 당연한 소리를...). 동아시아에서도 일정 시기까지는 토지 중 사원(절)에 조세를 바치게 한 곳도 있고, 잉글랜드 역시 명색이 에피스코팔이 영국 국교회(하긴 지금도 이름은 여전합니다만)이던 시절엔 경작자의 신교(信敎) 여부에 무관하게 이런 의무를 지곤 했었죠. ("소유권과 책무가 묘한 형태로 짜깁기되었다." - p26)

인접한 램브리지우드에서 포티 박사님은 인적으로 얽히고설킨 별의별 인연들을 일일이 확인합니다(또 되풀이되지만, 이 책이야말로 자연사와 인문사의 아름다운 혼재, 조합이란 거죠). 준남작(baronet) 토머스 에라스무스 경과의 교분, 그리고 무려 찰스 다윈의 손녀 노라 다윈과의 만남 등이 이 숲을 고리로 이어질 때는, 거참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아니면 이 탁월한 지성과 자상한 마음가짐을 지닌 분에게만은 그러하지(좁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들기도 했습니다. 에라스무스라는 이름(물론 그 중세 철학자 말고)은 찰스 다윈의 먼 선조 중에도 있고, 우리는 박사님의 전작 중에서 새라 다윈이란 분(또다른 직계 후손)을 만난 적도 있죠.

개인 일지 성격도 겸하다 보니 이 책에는 친근하게 Andrew라는 퍼스트네임만으로 불리는 인물도 둘 나옵니다. 한 분은 p78의, 부인 클레어와 함께 나오는 패드모어 씨이며, 다른 한 분은 p331에서 포티 박사님에게 숯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 앤드류 호킨스 씨입니다. 자연 친화의 삶을 펴 나가는 중 저자는 따로 문명(다분히 환경파괴적인)의 도움을 입지 않고 이것저것 자체 역량으로(마치 우리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구경하듯) 헤쳐나가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무, 숲, 또한 그 속에 둥지 틀고 사는 무수히 많은 생물, 무생물들과 함께 교감합니다. 이 과정이 다 생생한, "너희가 자연을 아느냐?" 처럼 독자들에게 던지는 가르침입니다.

"물푸레나무를 위그드라실처럼 불멸의 나무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왜림작업이다. 물푸레나무의 줄기를 통째로 베어내면 잘라낸 밑동에서 움이 트고 새로 나무줄기가 자라기 때문에 무한히 재생시킬 수 있다." 그 바로 앞페이지에는 17세기 작가(이자, 이 책처럼 알찬 개인 기록으로 영국 문학계에 큰 기여를 남긴) 존 에블린의 <실바>를 인용하여 물푸레나무의 가치를 다시 환기합니다("실바(silva)"는 라틴어로 "숲"이란 의미이죠). 여기서 말하는 왜림(矮林) 작업이란 "맹아갱신"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불멸의 나무". 참 말만 들어도 인간이란 종의 왜소함을 실감케 한다고나 할까요. 근데 그 나무를 불멸로 만드는 데에는 우리 인간의 손길이 끼어든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그드라실은 실존의 수종(樹種)이 아니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소재입니다. "우주(宇宙)나무"라고도 하죠.

도심의 가로수에다 겨울철에 짚으로 감싸주는 광경을 흔히 보셨을 겁니다. 이걸 운치 있는 분들은 "뜨개옷"이라고도 부르는데, 널리 알려진 상식이지만 동절기에는 온갖 병충해의 근원이 (지네들도 추우니까) 알아서 이리로 들어가 겨울을 납니다. 이걸 봄철에 풀어낸 후 싹 태워버리면 나무나 사람이나 근심 큰 부분을 더는 거죠. p239에 보면 마치 이런 지혜의 관습을 연상시키듯, 썩은 통나무 등걸에 온갖 (징그럽기도 할) 생물들이 기생한 과정이 묘사됩니다. 포티 박사님은 돋보기를 들이밀며 미세한 크림색 벽으로 만들어진(좀구멍버섯 등 각종 진귀한 균류에 의해) 이 밑둥을 살핍니다. 표현이 기가 막힌데, "분해 과정이 끝나면 작은 나뭇가지는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과거 자신에 대한 유령, 그것도, 모든 자존심 있는 망자의 혼처럼 흰색 유령이 된다"는 게 박사님의 해석입니다. 허옇게 곰팡이가 슨 잔해를 봐도, 앞으로는 생각을 달리 먹어야 할 듯합니다.

p266에는 또다른 준남작 한 분이 등장합니다. 이분은 18세기 중반 사람인데, 준남작 제도야 이미 제임스 1세 시절에 도입되었으니(우리네의 공명첩이나 선무군관과 비슷합니다 ㅎㅎ) 이리 자주 눈에 띄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나무와 숲 이야기를 하며 왜 이리 자주, 그것도 별반 모범적인 삶을 살지도 못한 "인간"이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과거에 이뤄진 조림(앞에서 말한 "왜림"도 이의 일종입니다) 사업과 현재 잉글랜드 지역 일대의 숲 생태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직업 역사학자 뺨치게 아날(annales) 분석에 능한 포티 박사님의 명석한 두뇌와 소양을 엿보게 되죠. 이런 대목들에서는 유독 내셔널 트러스트가 자주 언급되는데, 한국에도 지부가 있습니다만 확실히 선진국 영국의 앞서간 면모를 증명하는 탁월한 NGO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기심은 확신의 적이며, 인간 본성의 가장 의미있는 요소이다."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살아가며 끊임 없이 낯선 것과 대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대면이 "대적(對敵)"이 될지, 아니면 친교가 될지는, 오로지 그 사람의 심성에 호기심과 확신 중 어떤 것이 먼저 발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확신이 먼저 기지개를 틀면, 세상에는 다툼과 증오, 나아가서는 전쟁이 모두를 휘감고 지배합니다. 반대로 호기심이 먼저 눈을 뜨면, 세상은 열린 마음과 이성이 이끄는 과학이 활기찬 기지개를 폅니다. 노과학자가 한 땀 한 땀 수 놓은 이 아름다운 저널, 크로니클, 혹은 다이어리 속에는, 어떻게 해야 인간이 종족 내 다른 개체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 혹은 그를 낳고 키워 준 환경과 지혜로운 공존을 이어갈지, 직설이나 훈계가 아닌 "몸으로 손수 보여 주는 모범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숲은커녕 나무만 제대로 보려 들어도, 우리는 마음의 더러운 때를 힘들게 걷어내어야만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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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지리와 지명의 세계사 도감 2 지도로 읽는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노은주 옮김 / 이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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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리뷰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이 책은 "지명"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매 항목마다 언급, 설명이 되는 게 단연 장점입니다. 우리는 여행책이나 역사서를 읽을 때 처음 접하는 지명에 대해선 당연히 궁금함이 생깁니다. 하지만 찾아볼 곳도 마땅찮고 인터넷에서 알아보자니 왠지 믿음도 안 가는 게 보통이죠. 그럴 때, 2권으로 나뉜 이 책을 넘겨가며 듬직한 상식을 챙길 수 있어 참 좋습니다.

p58에 "바다의 여왕" 찰스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본래는 "찰스타운"이었으나 독립전쟁 이후 저리 개명이 되었다는 설명인데 그 사정 말고도 세월이 흐르며 음가가 변한 까닭도 있지 않겠나 생각했으나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찰스 1세가 아닌 2세의 이름을 땄으므로 대략 백 년 정도 후(명예혁명이 1688이므로)인 1783년에 정식으로(주 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철자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링컨의 연설(1863)로 잘 아는 "게티스버그"의 경우 1780년에 해당 도시를 설계한 제임스 게티스의 이름을 땄다는 친절한 설명도 책에 역시 나옵니다. 찰스턴이 또 중요한 이유는 남북 전쟁이, 바로 남군 측의 찰스턴 포격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발발했기 때문이죠.


"미국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이지만 그 앞 시기에는 신대륙 변방의 작은 신생국에 불과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지배력으로 지구인의 사소한 일상에까지 (소프트파워를 통해)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힘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어린 학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설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p53에 보면 지도가 나오는데, 저희가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배울 때도 미국 영토의 확장 과정을 묘사한 이런 지도가 꼭 제시되었더랬습니다(교과서는 아니고 사회과 부도라든가 참고서에). 단지, 당시에는 "구입" 같은 어색한 용어가 쓰인 게 달랐죠. "구입" 자체가 어색하다는 게 아니라, 사무용품 구입도 아니고 특정 필지의 땅을 국가 사이에 매매할 때 그런 용어를 쓰는 게 어색했다는 소리인데, 아마도 일본식 용어의 잔재였을 겁니다. 이 책은 하물며 일본 저자가 쓰신 책인데도 "(프랑스 나폴레옹 1세로부터의) 루이지애나 매입", "멕시코로부터 매입" 등 한국인의 감각에 맞는 더 자연스러운 말로 번역이 이뤄진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단, 1853년에 이뤄진 "개즈던 구입(이것도 물론 이 책처럼 '매입'이 좋겠습니다만)"이 명확히 구별 안 된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그 정도는 일러 줘서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역시 이 책은 취지가 취지이다보니, 왜 버지니아 주의 이름이 "버진"에서 유래했는지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이뤄져서 매우 좋았습니다. 저희 선생님 같은 경우는 마돈나의 히트곡 "라이크 어 버진"에서와 같은 뜻이라며 (도에 지나친) 자세한 설명까지 하던 기억도 나는군요 ㅎㅎ "뉴욕"의 이름도 그 "요크 공"이 누구인지에까지 설명이 이르는데 물론 오라녜 공(중에서도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겸직한 그 직위. 물론 이후에 등극한 사위 윌리엄 3세가 아니죠)을 뜻합니다.


p42에도 흥미로운 지도가 나옵니다. 저는 예전에 케네스 C 데이비스의 대중서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의 역사>란 책을 읽었는데(당시에는 성인용 포맷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고려원에서 출간했었으나, 지금 나온 책은 타 출판사에서 어린이용으로 다시 쓰여진 것이네요), 여기 보면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프랑스인들과 인디언이 서로 싸운 게 아니다"라는 재미있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이 책의 p42에는 전쟁의 전과 후 미국의 영토 획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도시(圖示)가 이뤄졌습니다. 거대한 프랑스 식민지가 영토의 좌안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면 미국이란 나라의 형세가 얼마나 옹색했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브라질의 이름은 왜 대체 브라질인지 궁금해한 적 없을까요? 새삼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의 경우 웬만큼 지식이 쌓이다 보면 어원이 대충 짐작이 갈 수 있으나 브라질의 경우 도통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적색 염료의 원료인 브라질나무 홍목(그러니 고유명사인 셈입니다)에서 유래했다고 명확히 그 기원을 밝혀 줍니다. 같은 페이지 바로 아래 "리우 데 자네이루"의 경우, 대강은 무슨 뜻일지 형태만으로도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태평양은 지구를 모두 삼켜 버릴 정도로 거대한 바다이다." (p90) 역시 같은 동양인 저자답게 미야자키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곤여만국전도를 언급합니다. 물론 마테오 리치의 번역 "태평양"에 대한 서술인데, 하긴 이 정도 중요한 항목이면 서양 저자라고 해서 그냥 넘길 수도 없겠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보면 이 미크로네시아니, 폴리네시아니 하는 이름들이 (그 뜻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붙여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 책도 역사책이다 보니 사관의 스탠스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길 만한데, 제가 읽어 보기로는 대체로 진보 사관에 조금은 기울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좌파로까지 규정될 정도는 아니고, "식민지, 제국주의, 패권" 등의 용어례에서 다소는 비판적인 색채가 감지된다는 정도입니다.



특히 p102 이하에선 아프리카 근대사가 이어 서술되는데 대항해 시절부터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의 침략이 두드러졌고 이후엔 제국주의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죠. "세네갈"이 강(江)이라는 뜻인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여행 준비 과정이 결국은 집필 동기가 되었다고 저자 스스로도 밝히신 적 있고, 그 티가 나는 게 세네갈 수도 다카르를 언급하며 유명한 자동차 경주인 "파리 다카르 랠리"를  거론하는 대목 등에서입니다.

이 책은 지리의 구도를 따라 움직이지만 엄연히 "역사 도감"입니다.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로 주제를 옮기면서도 따박따박 시대를 거슬러올라가서는 해당 제국의 굴곡 많은 사연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줍니다. p125에 보면 15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구성한 "3대 세계"라는 이름의 지도가 나오는데, 물론 유럽-(소)아시아 - (북)아프리카입니다. 해당 지도에 큰 글자로 "비잔티움 제국"이라 표기된 게, 아니 망한 게언제인데 이 대목에서 나오나 싶을 수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정체성은 비잔티움의 정복자, 혹은 계승자로서의 위상을 결코 배제하고 탐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국이고 황제이기 때문에 타 대륙, 타 민족, 타 신앙의 관리자, 수호자 노릇까지 (자랑스럽게) 겸해야 하는 거죠. 역시 이 책의 기획 의도가 무색하지 않게, 비잔티움이 이후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뀐 경위에 대해 설명이 또 나옵니다. "에이스 텐 폴린(εἰς τὴν Πόλιν. "텐"은 정관사이고 "폴린'은 우리가 아는 "폴리스"의 변화형입니다)"이 원 말인데, 보시다시피 당연히 그리스어입니다. 이게 음가가 변해 "이스탄불"이 된 건데, "하드리아노플"이 "에디르네"가 된 사정도 비슷합니다.

본래는 아랍 세계에서도 오스만 투르크가 맹주 노릇을 했습니다. 사우드 왕가가 지금은 성지(메카 혹은 마카)의 수호자를 자칭하며 이란과 으르렁대지만 당시만 해도 대 술탄의 위세에 눌려 찍 소리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오히려 투르크의 술탄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도 자제되었고(물론 사파비나 카자르 왕조의 권위가 오스만을 견제했던 덕도 있지만), 유대인들은 하물며 무슬림과 대적할 엄두도 못 내었습니다. 이러던 게 지금은 삼면 전쟁 직전까지 왔으니.... (지금 우리는 북한 문제 때문에 관심도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중동 정세가 훨씬 심각합니다. 트럼프가 두루 신경을 쓸 여력이 없으니까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구는 거고, 김정은도 이 점을 알고 지금이 그나마 유리하게 협상을 맺을 찬스다 싶었던 겁니다) 여튼 이 책은, 왜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지" 실감 나게, 그것도 지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납득시켜 주는 점이 좋습니다. (특히 이 책 p158 이하를 주의 깊게 읽어 보세요)

저희 때에도 동남아시아 역사를 (길게는 아니라도) 따로 배웠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전문 연구 인력이 부족하여 지명, 인명 표기가 매우 어색했습니다. 이 책은 특히 현지어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는 점이 두드러지게 돋보이고, 무엇보다 국립국어원에서 권고한 안(案)에 충실합니다. (예: 믈라카 해협, 사일렌드라 왕조 등) 저희 때에도 부남(扶南)이란 말이 교과서에 나왔더랬는데, 이 책에서는 "산(山)'이란 뜻이라고 역시 설명이 친절하네요. 전성기에 얼마나 이슬람 세력이 극성을 이뤘으면 믈라카 왕이 스스로 회교로 개종까지 했을까 싶은데 이 흔적은 지금도 말레이시아 정치, 종교 분포도를 보면 역력합니다. 그뿐 아니라 저 멀리 페르시아에 근거를 마련한 일 칸국 역시 몽골인들이 팔자에 없는 알라신까지 자청해 믿었고(이 사항은 1권의 p163 이하를 참조하십시오), 이 점은 투르크의 술탄들도 다르지 않았죠.



제가 개인적으로 이 책 통틀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제5장입니다. 제목이 뭐냐 하면 "팽창하는 중화 세계, 국가인가 문명인가?"입니다. 몇 년 전 큰 히트를 친 <진격의 거인>이 사실 일본인들의 중국에 대한 집단 공포를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아베 신조 현 총리대신이 저처럼 오래 집권하는 것도 일본 국민들의 대중(對中) 견제 심리가 크게 발동해서입니다(바꿔 말하면 일본 민주당 정권으로는 중국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역부족이라는 판단). 동양인 저자의 집필 체제치고는 좀 특이하게도 중국사가 맨마지막에 배치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 조선에 대한 언급도 있고, 특히 조선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침 햇볕이 선명한 땅"이라고 하시나 ㅎㅎ 글쎄요. 여튼 일본의 건국 주체가 한반도를 거쳐 이주한 이들이란 점은 분명히 밝힙니다.

이 책 마지막 문단을 잠시 인용할까 합니다. ".. 중국은 현재 공산당이 일당 지배를 유지하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해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사이의 모순(이 용어는 진보 진영 학자들이 쓰는 맥락과 완전히 같아요)이, 공산당이 내세우는 애국주의에 가려져 있어 향후 행방은 불확실하다." 이 문장만으로도 저자의 중립성, 공정성과 깊은 숙고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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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인도는 중국보다도 더 많은 인구를 가졌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고, 동셔양에 고루 끼친 방대한 문화적 영향 때문에라도 엄청 중요한 나라입니다. 이런 인도만의 지방색이, 인류 보편 관심사와 정서, 주제와 맞닿을 때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편이었다고 저 개인적으로 기억됩니다.


소설은 한 남자의 회고로 시작됩니다. 진로를 마땅히 정하지 못해 바황하던 대학원생 시절을 되돌아보는 문장인데, 소재가 된 시간적 배경과 집필 시점(실제 작가의 집필이든, 아니면 가공 인물인 라케시의 기준에서건)이 꽤 차이가 나는 듯합니다. 결말에 가서 보면 "문제의 그분이 맞은 어떤 운명(내용 누설이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습니다)"이라든가, 이후 1인칭 화자 라케시 신상에 닥친 상당한 변화(어떤 것은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 어떤 건 그가 끝내 피하고 싶던 것)가 자세히 나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줌파 라히리의 작품 세계와 비견하던데, 저는 오히려 얀 마텔(인도인은 아니지만)의 <파이 이야기>와 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봐, 그건 젊은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치고는 너무 암울한 전망 아닌가?"

완성도 높고 공감을 끌어내는 소설은, 주제 자체의 무게도 무게지만 이처럼 캐릭터 간의 소통이 실감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탐독과 감상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훈계(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청취와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독자 생각에도 저 말이 나와야 하지 싶은 바로 정확한 타이밍에 딱 맞는 코멘트를 던져 주는 (사실상 주인공인) 아닐 작가의 한 마디를 듣고(읽고), 가뜩이나 흥미진진했던 작중 세계에 한층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생후 몇 개월도 채 안 된 시기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화자 라케시의 말에 따르면 "뭔가 기억의 편린이라도 부랴부랴 챙기기조차 너무 이른 시점"), 이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간 위대한 정신. 이미 사회로부터 확립된 평판을 받은 분이라지만 왠지 자신만의 세계에 꽉 틀어박혔거나, 상처가 깊은 만큼 편견(무엇이든 간에)에도 단단히 사로잡혔을 것만 같은데, 전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었다는 뜻입니다.

육안이 멀었으면서 오히려 심안이 널리 뜨인 현자의 원형으로는 그리스 신화의 테이레시아스 같은 캐릭터가 있겠습니다. 작중의 문호 아닐도 그런 유형이겠는데, 불편한 일상을 도와 주려 시급을 받고 일하게 된 알바생 라케시는 오히려 이 늙은 지성인과 함께 지내며 단단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저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 구체적으로 아닐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그는, 채용 즈음에 그의 책을 비로소 읽어가며 이 거인의 생에 대해 촘촘히 공부합니다. 본래가 영민한 자질의 젊은이였던 만큼 책도 빨리 읽어 내고 인물 학습의 속도도 신속하지만, 앞으로 그가 이 위대한 정신과 함께 지내면서 배우고 깨우칠 경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습니다.

"요즘은 뷰익 같은 미국 차를 잘 안 타나 보지?" <양들의 침묵>의 연쇄 살인마 닥터 렉터는 수감 중에도, 면회 온 스탈링의 체취만 맡고서 그녀의 출신 배경까지 다 밝혀 내는 신기를 과시하죠. 특정 감각(특히 시각)에 장애가 생기면 다른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나 그렇지 어디 장애인이라고 모두 타 감각의 보상을 받겠습니까. 그런 기제가 개체의 예외 없이 공통이면 장애인이라고 딱히 불편할 바도 없으니 누구나 장애인 되게요 어디. 이 아닐은, 타고날 때부터 명철한 정신을 갖췄기에, 엔진 소리만 듣고 차종까지 분별해 내는 신통함을 보일 수 있는 겁니다.

상경계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라케시는 학창 시절 내내 일등을 안 놓치던 수재라고 나옵니다) 금융회사로부터 좋은 자리까지 제의 받았던 청년은 단지 "나의 진짜 꿈은 글쓰기"란 낙관 하나로 좋은 기회를 흘려 보냅니다. 내심으로는 그의 부친이 "녀석아,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라며 따귀라도 후려쳐 주길 기대했지만, 자신만큼이나 신중하고 사려 깊은 부친이야 그 아들이 "알아서 잘 하기를 바랄뿐" 그런 적극적, 월권적 훈육에 나설 리 없었죠. 영리한 아들이 이 또한 모를 리 없건만 이런 햄릿 형은 언제나 "이뤄지지 않았고 이뤄질 수도 없었던 가능성에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눈먼 거인에게 "또다른 아버지상"을 기대했던 라케시는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돈이 궁해서요."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라케시는 여러 번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잘 하는데, 독자들도 알고 작중 인물들도 다 알듯 그 전부가 "화이트 라이"일 뿐입니다. 라케시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지 이 현인, 그리고 현인의 젊은 아내가 모를 리 없습니다. 라케시가 처음 아닐의 저택을 찾았을 때 우선 놀란 건 그 젊은 아내 미라의 놀라운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나와 남편이 너무 나이 차가 많이 나죠?"라는 질문에 대뜸 부정부터 하는 것도 그의 "귀여운, 그리고 속 뻔히 보이는 거짓말" 중 하나입니다.

라케시는 아닐에게서 "제2의 아버지"를 기대하는 건 우리 독자들 눈에 뻔히 보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하나 눈에 띈 건, 은근 이 라케시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채 극복 못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라케시는 어머니에 대해 채워지지 않은 애정과 배신감이 그 마음 속에 혼재해 있습니다. 사춘기, 혹은 그 이전 단계 애들이나 겪을 이런 혼란스런 상태로부터, 이 똑똑한 대학원생이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그 어머니의 잘못이 큽니다. "슬립 바바"라는 현자(라고는 하나 이런 류의 사이비 종교 창시자가 인도 국적자 중에 많았죠. 바다를 건너와서까지 포교하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다 봉변을 겪기도 한 실존 인물 중엔 오쇼 라즈니시 같은 이도 있었는데, 다 이 소설의 시대상을 반영합니다)에게 빠져 기어이 가출을 한 라케시의 모친. 행여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으면 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만 가능성이 현저히 낮음은 자신도 잘 압니다. 소설 후반부에 가면 이 바바와 라케시의 만남까지 이뤄집니다. 이 상처가 잘 마무리되어야 헬렌하고도 진도가 빠질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라케시가 미라를 바라보는 시선에 각별한 열정이 실린 건 이런 굴곡 있는 개인사, 가정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물론 미라는 (라케시의 뜨거운 주관적 묘사가 아니라도) 누구 눈에도 아름답게 비칠 만한 미인입니다. 이런 미인을, 나이도 많고 눈도 멀었으면서 장악할 수 있었던 아닐이야말로 작업의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습니다. 사실 아닐은 눈만 멀었다뿐, 체격이 탄탄하고 현란한 말빨을 자랑(머리가 좋으니 당연하죠)한 덕에 장애인이면서도 여자들에게 성장기 동안 인기가 좋았나 봅니다(게다가 부잣집 아들 ㅋ).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의 각별한 "크기"라는 사정도... (더 이상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닐은 특이하게도 "사회주의 중국 VS 소위 민주주의 인도" 중 전자를 더 옹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시대상이 드러나죠. 얼마 전에도 두 나라가 군사적 대립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빚었는데 만약 아닐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딱히 조국에 대해 원한을 품은 출신도 아닌데) 정치적으로 저런 스탠스를 품을 이유가 없었을 텝니다. 라케시는 옆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 주는 일을 하려고 고용된 건데, 예컨대 GQ에 실린 모델이 신디 크로포드라고 가르쳐 준다든가요. 이 무렵이면 어떤 잡지에도 ("수퍼모델"이란 말을 처음 대중화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그녀만 실릴 시절이죠. 재미있게도 작중의 아닐은, 신디 크로포드와 직접 만나 인사까지 했다고 말합니다ㅋㅋ

"페드로는 메츠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야(p55)." 이 무렵은 우리도 박찬호 때문에 메이저리그를 한창 지켜 볼 때였죠. 메츠와 양키가 나란히 각각의 플레이오프를 치를 무렵이면 1999년입니다. 이때(이 직전) 메츠에 있었던 "페드로"가 누군지 모르겠네요(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우리가 잘 알듯 이무렵 보스턴에 있었구요). 여튼 "빌 클린턴이 나한테 욌으면 여자 관련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 줬을 텐데" 같은 말로 보아 배경은 거의 확실합니다.

아닐 트리베디는 이 픽션 속에서 필립 로스(며칠 전인 2018. 5. 22에 타계했죠), 가르시아 마르케스, 레이먼드 카버 등과 함께 놓이는 위상입니다. 눈먼 노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성장까지 함께 이루는 소년의 이야기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친숙한데 예컨대 영화로 잘 알려진 <여인의 향기> 같은 게 있었죠. 야구 이야기부터 해서 끊임 없이 시사에 대한 수다가 오가는 장면으로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매우 익숙합니다. 따뜻한 서사와 분위기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의외의 파격까지 결말에서 예비하는, 그러면서도 분량마저 부담이 안 되는 적정 수준이라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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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데이터 수집의 기술
타쿠로 사사키 지음, 김경록 옮김 / 한빛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웹은 정보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원이 많다 해도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방법론을 갖추지 못하면 허공에 뜬 별을 향해 손짓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은, 무엇을 위해, 어떤 용도로 데이터를 수집할지 먼저 목표의식, 혹은 전략 지향부터 분명히 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장 경제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내어야 합니다.

책에서는, 2020년 경 웹에는 대략 35제타바이트 정도의 정보가 축적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제타바이트란, 인간의 머리로 그 어림짐작조차 힘든 방대한 양입니다. 현재 많이들 쓰는 하드디스크(HDD 기준)이 대략 4테라 수준인데, 이 다음(즉 천 배를 한 것)이 페타, 그 다음이 엑사, 그 다음이 제타입니다. 제타를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역시 같습니다)로 쓸 때에는 zetta-를 쓰는데, 여러 모로 재미있는 접두어입니다.

우선 헬라어 자모로 숫자를 표기할 때 7을 나타내던 게 바로 ζ, 즉 제타입니다(물론 이때에는 t를 한 번만 쓰는 게 표준표기입니다만). 7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 이 제타가 1000의 7제곱(즉 10의 21제곱)이기 때문이죠. 헬라어에서 7은 "헵타", 라틴어에서는 "셉툼"으로 불렸고 어원도 같습니다. 그래서 본디는 "엡타" 정도로 불려야 옳았겠으나, 일단 "페타" 등과 운을 맞추고(단, 페타에서는 t가 하나입니다), 앞에 선명하게 자음을 달아서 더 음가 분별을 높이려 한 의도로 보입니다. 이 "제타" 다음에는 "요타"인데, 역시 t는 두 개이고, 앞으로 단위가 올라갈수록 z, y, x 등으로 거꾸로 알파벳을 달아가겠다는 뜻입니다.

데이터는 물론 디지털 형태로만 생성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추세대로라면, 분석의 대상이 되는 유의미한 정보의 94%는 디지털 포맷이며, 이 비율은 앞으로 점점 늘어가리라는 게 저자의 추측입니다. 구글은 일찍부터 가장 효과적인 데이터 추출 방법 고안에 정력을 쏟았으며, 벌써 10년 전에도 회사의 정보 담당 관리자들은 "구글에서 언제 이런 것까지 다 뽑아갔대?"라며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감탄이 아니고 불쾌, 경계의 반응이 우선이지만 말입니다. 당시만 해도 데이터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고, 그저 흘러가거나 버리는 쓰레기를 용케도 잘 활용한다거나, 미디어를 비롯 세간의 칭찬을 받아 마땅한 대견한 스타트업 정도로 여겼겠죠.

스크린 스크래핑이라는 말을 보통 쓰는데 화면에 보이는 것만 일단 대상으로 삼아서이며, 그저 우리 직관대로 "웹 스크래핑"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봇(bot)"이라 보통 부르는 건 크롤러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일일이 검색어를 설정하고 가치를 정제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스스로 알아서 다음 단계의 검색을 상정하고 자체 Db를 갱신하기까지 합니다. 이 단계가 중요한데, 많은 이들은 BI, 즉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를 두고, 이미 스스로 가치 판단이나 의미의 추출을 알아서 행하는 단계, 능력까지를 요구합니다.

정보화 시대에 그저 사람의 지성과 판단의 보조 도구로 쓰인 게 컴퓨터였다면, 이제 이들은 "주인"이 뭘 요구하기 전 한 발 앞서서 "주인이 요구할 만한" 정보를 미리 정리, 정제하고 가치를 창출한 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웹에서 정보를 추출하는 작업도 어느새 사람의 손을 떠난지 꽤 되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긴장이 되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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