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이 - 일본인들의 이기는 삶의 철학
켄 모기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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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이키가이"에서 일단 "이키(いき)"란, 문자 그대로는 (들고나는)숨, 호흡, 활동이 왕성한 기간, 목숨을 뜻합니다. 意氣라고 새긴다면, 우리말에서 쓰는 용법과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p15)이 가장 중요하겠으므로 그에 더 주목하자면, 이때의 용법은 生き, 活き, 즉 우리말로는 "생기"란 뜻이 됩니다. 한편 "가이"는 効, 甲斐 등으로도 쓰는데, 우리말의 "보람"과 통합니다.

책의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이 "이키가이"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매우 자주 쓴다고 전합니다. 커다란 성취를 올렸을 때는 물론이고, 소소한 쾌거를 맛봤을 때도 그리 주저하지 않고 이 표현을 적용한다는군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비록 원하는 대로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고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은 얼마든지 자랑스러워하면서 즐겨 이 말을 쓴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저는 일본인들의 품성을 평가한 어느 고문헌에서, "일본인들은 악착 같이 굴기는 하나 간사하지는 않은데, 쓰시마인들은.... (이하 생략)"이라는 대목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민족성에 대해 그 평가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도, "악착같음"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뜻도 됩니다. 사실 일본은 길게 늘어지기만 한 국토 넓이에 비해 경작지가 태부족하고, 인구는 많으나 물산이 적고, 천재지변이 잦아 사람이 살기 그리 적합한 땅이 못 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은연중 정신 속에 스며든 게 바로 "이키가이" 정신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얼마 전 신기술을 발명하고도 그 이익이 고스란히 소속 법인에 다 귀속되다시피하여, 이에 반발한 엔지니어들이 소송을 낸 사건이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엔지니어들에 대한 대우는... 글쎄요... 일본에 비해서는 낫다고 봐야 하는지, 그래도 대기업에 다닌다는 평판과 명예가 금전적 부분을 어느 정도는 만회하는지 아리송합니다만, 일본인들이 느끼는 상실감에 비해선 적은 편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영광스럽게도) 직접 인터뷰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 거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독자에게 전합니다.

"보상은 돈도 돈이고 팬들로부터의 찬사도 찬사이지만,  창작 작업에 몰두하는 그 자체로부터 얻습니다."

이 말은, 미야자키 감독 같은 거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산업에 종사하는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손에 쥐는 대단히 미미한 보수가 문제는 문제 아닌가 하는 전제에서, 해당 거장이 스스로 토로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그 역시 구조의 모순에 대해서는 의식을 한다는 뜻도 되죠.

제 생각에, 이른바 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쥐꼬리만한 대가를 받고 그저 체념적으로 만족하라, 사회가 다 그런거지 뭐, 이런 결론은 아니라고 봅니다(혹시 그렇게 곡해된다면 주의가 필요하죠). 당연하게도, 나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누군가가 가로챈다면 싸워서 도로 뺏어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의기의 발동일 뿐 아니라,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발휘해야 할 의무입니다. 헌데 그런 경우 말고, 아무리 애를 쓰고 그 결과가 좋았다 해도, 그 당사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대가가 귀속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꼭 최적화된 구조는 아니라서, 결과가 나쁘게 떨어지는 수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 경우, 책임 소재를 추궁할 수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허나, 어디 대고 하소연도 못할 억울한 상황이 알고 보면 더 많죠. 이 때 분노를 간수하지 못하고 아무데나 화풀이를 해야 할까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을 방치하다시피 팽개쳐야 할까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 봐야 자기 손해이며, 나아가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님, 은인, 지인,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도와 준 이들에 대해 엉뚱하게 분을 풀어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임을 물을 장본인을 못 찾았다면, 그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 은인자중해가면서 응징의 저력을 길러나가는 게 차라리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랄까 비결은 바로 "이키가이"입니다.

"이키가이"라고 꼭 일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매사에 생기에 가득하고 넘치는 의욕을 발휘할 곳 어디 없나 눈이 반짝반짝한 사람은 어디 가도 환영을 받습니다. 저 사람하고 일하면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고, 설령 이 조직에서 아직 필요한 기능을 습득 못 했어도 금방 배워서 다 따라잡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로부터도 쌍수를 든 인기를 끄는 게 보통입니다.

앞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가 잠시 나왔습니다만, 저자는 이런 평가와 해석을 하는군요. 잠시 인용하자면 "작가가 행복에 가득 차서 그려내고 창작해 낸 작품은, 그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그 행복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들은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바로 구별해 낸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이 그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주된 향유층인 아이들이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오는 행복을 바로 캐치해 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아닌게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거장은, 표정도 행복하고 자세와 태도에 긍정적인 기운이 넘칩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만 행복한 게 아니라, 전혀 무관한 남들에게까지 그 밝고 맑은 기운을 전파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입니까. 사화의 빛과 소금이란 이런 분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죠.

저자는 이런 생기를 가리켜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물론 행복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이건 길어야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을 넘기 힘듭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이 남긴 자취는 마치 그윽한 향수의 발산처럼, 당사자가 가고 난 후에도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의 미덕입니다. 당장 건강에 한정시켜 봐도, 행복한 사람은 얼굴과 태도에 확신과 정열이 스며 있습니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손대는 것마다 성과가 좋습니다. 반면 마음에 부정과 어둠이 가득 깃든 이들은 남의 일까지 망칩니다.

한국의 SK가 과거 "선경그룹"이었던 시절, 그 회사의 3대 사훈 중 하나가 "꼼꼼하게 일처리 마무리하기"였습니다. 허술하게 대충대충 마무리하는 자세로는 남도 망치고 나도 망칩니다. 저자는 책에서 왜 근래 일본이 갑자기 관광대국으로 부상했는지를 두고 이런 분석을 합니다. "일본에는 코다와리 정신이라는 게 있는데,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마음자세를 가리킨다." 아주 적합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이 뭔지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일본인들끼리는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군요.

이키가이의 핵심은 작은 일부터 정성껏 시작하여, 내가 원하던 대로 세심하게 마무리지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정신 자세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 선조들도 얼마든지 자각하고 일상의 실천에 옮겼던 성(誠)과 경(敬)의 마음, 또 단사표음으로 상징되는 청빈의 이념과 통합니다. 결과가 안 좋으면 또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의 모습이 떳떳하고 뿌듯하면, 이미 나는 그것으로 충분한 승자가 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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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 국회의원 박용진의 경제민주화를 위한 끝나지 않은 분투
박용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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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패기넘치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박용진 의원의 책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과연 재벌은 대한민국 거시경제의 중추, 혹은 "화수분"으로서 국민이 믿고 의지할 바가 되느냐 하는 민감한 문제를, 그의 소신에 따라 과감히 분석하는 내용입니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라는 게 있어서, 대기업이 활발히 본연의 활동으로부터 수익을 거두면 그 혜택이 "아래"에까지도 널리 미친다는 믿음, 혹은 입장이 있고, 이에 반대하며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잔치에 그칠 뿐이라는 강력한 회의론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의 논쟁은 특히 십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목을 끌며 불 붙은 바 있는데, 아직까지도 명쾌한 결론이 난 바는 없습니다. 결론이 나기보다, 사회 전체가 진이 빠진 상태라고 할까요. 여튼 저자는 이 신저에서 주로 이 문제를 논급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책 중에서 김종인 전 의원의 말을 인용합니다. 김종인 전 의원에 대해서는 재작년~작년 연간에 여러 사건 때문에 낯익어하는 분들이 많겠는데, 이분이 젊었던 시절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할 때 남겼던 언행은 사실 그런 이미지와는 꽤 다릅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파업을 해 대니 원 세금은 내가 뭐하러 내는 건지."
"세금은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내는 겁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상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처럼 시원한 주장을, 명쾌한 논리와 함께 내놓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김 박사가 그런 말을 하고서야, 사람들은 세수 총액의 본체에서 노동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새삼 재고하게 되었죠.

이 책에서 인용되는 김 전 의원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닭을 붙들어매고 키우지 않으면 돌아다니며 농작물을 쪼아먹고 다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닭을 죽여 버린다면 농가에 더 큰 손해이다."

이 말을 두고 박용진 의원은 이렇개 해석합니다.
"여튼 재벌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해야 한다. 재벌을 개혁하는 건 국민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그 재벌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는 "혹시나 있을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재벌 개혁은 재벌을 해체하고 죽이자는 게 아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이 이슈와 관련, 그가 얼마나 깊고 너른 사유 끝에 이 대안과 논변을 제시하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2부에서는 외부에서 보기에 상당히 불투명한 과정이 많았던 이재용씨의 삼성그룹 승계과정에 대해 조목조목 짚습니다. 사실 이번 큰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도, 외국 투자자 그룹이 합병 비율의 이례적인 양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걸기도 했습니다. 국수주의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기업은 해외의 투자자들(꼭 그 사람들 말고라도)에 대해서도 일단 신뢰를 얻어야 살아남습니다. 승계 과정에서 불투명한 점이 자꾸 눈에 띈다면, (위에 인용한 박 의원 말대로) 해당 기업의 건강성과 장래를 위해서도 좋을 바 없습니다.

국민을 위해 단호하고 정의로운 정책을 집행해야 할 관료들이, 정기적으로 재벌 측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관리 대상"이 된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박 의원은 여러 제보와 사례를 통해 이런 우려가 현실에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뇌물을 두고 "떡값"이라 부른다면 그저 완곡한 우회어법이 아니라, 명백한 범죄의 추악한 징표를 희석시키려는 불의한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 의원은 유력 야당(당시. 지금은 집권여당)의 힘으로 촛불 혁명이 성취되었다기보다, 국민의 응축된 에너지가 한시에 폭발한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그 기저에는, 정의롭지 못한 경제 구조의 모순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땀방울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한 근로 대중의 활화산과도 같은 에너지가 작동했을 뿐, 특정 정파의 공으로 돌릴 게 아니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죠.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하면 이를 계기로 삼아 같은 모순과 병폐가 되풀이되지 않게 모두가 경각심을 다질 필요가 있는데, 한국 사회는 이 점이 결여되었다고 박 의원은 다시 지적합니다.

이 책은 결국 "경제민주화야말로 민주화의 완성이요 국민 행복의 종착점"임을 알기 쉽게 증명하는 기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돕는 주장이 많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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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장을 주도할 크로스 테크놀로지 100 - 융합과 재생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기술들
닛케이 BP사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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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를 여러 각도에서 포착할 수 있겠지만 이 책 저자들이 선택한 컨셉은 "융합과 재생"입니다. 평지돌출형, 파천황격의 전혀 새로운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들은 제아무리 최고의 인재가 투입된 분야라고 해도 극히 드물게 안출될 뿐입니다. 그보다는 지금껏 무관해 보였던 분야 간의 융합을 시도한다거나, 이 융합을 통해 처음으로 발견되는 "재생"으로부터도 유용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들의 쓰임새 역시 원천 신 기술 못지 않다는 건 산업의 다양한 국면에서 얼마든지 발견되는 실정이죠.

한국에서도 많은 CEO들이 참조하는 일본의 정평 난 언론사인 일본경제신문의 자회사인 닛케이(日經)사(社)에서 발간한 이 책은 주로 일본 산업계를 뜨겁게 달구거나 장래성이 촉망되는 "융합, 재생"의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우리 산업계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보다 훨씬 넓은 스케이프에서 전략을 꾸리는 게 저들의 저력이므로, 저들이 응시하는 먼 지평과 요긴한 디테일을 가까운 발치에서 엿보는 게 어쩌면 꽤 영리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기안 올려야 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오른다면, 이런 책을 보고 좋은 영감을 얻거나 참고될 단서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매스는 요즘이야 한국의 중등 교과서에서도 중요 이슈로 다룰 만큼 널리 알려진 토픽입니다. 바이오매스 응용의 단연 큰 장점은, 첫째가 재생의 컨셉에 가장 충실하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현재 화석연료 사용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부작용을 피해갈 수 있다는 데에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제2세대 바이오매스 원료로 조류를 이용한 방식을 소개합니다(조류는 쉽게 말해서 "해조류(海藻類)"이며, group of birds가 아닙니다). 이는 제트연료를 만드는 데 중점적으로 그 효용이 연구된다는데, 관련 업계에서는 "자동차, 선박에 비해 항공기는 연료와 엔진에 의해 움직이는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남을 분야"라고 합니다.

관련 기업과 (정부 기관인) 일본 에너지청에 의해 이 사업이 주도되는데, 해당 지역의 특수한 사정(대개는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을 최대한 감안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터라, 그만큼 비용도 절감되고 종사자들의 사기도 높은 듯합니다. 현재 한국도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중이지만,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이야말로 현지의 특장점(혹은 취약 사항)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처지이므로, 지역 자치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면 할수록 산업의 효율과 혁신 역시 용이하게 추진되는 한 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체제가 전면 도입되면 무엇보다 서투른 운전자들의 실수 때문에 초래되는 각종 사고가 방지된다는 점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충돌하지 않는 자동차의 개발"이야말로 시스템 작동의 핵심이겠는데, 그간 여러 책들에서 다소 피상적으로 커버한 바와 달리 기술의 세부 국면까지 그 발전상을 소개한 점이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정차 상태에서 차간 간격이 좁아져 차선이 보이지 않는 경우, 선행 차량을 그저 따라가면서 핸들 조종을 할 수 있게 돕기도 하는 옵션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때 "본다"는 건 물론 시스템 단말의 센서가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을 뜻하겠죠. 사람이 운전자인 경우 (다소 위험하긴 해도) 고개를 삐쭉 내민다거나 잠시 밖으로 내린다거나 해서, 최소 동작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기계는 이게 어렵지요. 이런 대목을 보며 여러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시나리오를 촘촘히 마련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면 도입"에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기도 했겠고 말입니다.

"빅데이터"는 요즘 안 쓰이는 분야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에서 항상 다루는 게 "대수(큰 수)의 법칙"입니다. 고작 십여 번 정도 시도할 때, 주사위의 눈 특정 숫자가 반드시 두 번은 나와 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아예 모든 시도에서 같은 눈이 나오기도 하죠. 허나 수백 번, 수천 번을 시도하면 대개는 1/6에 각각의 근원사건 누계가 수렴합니다. 이제 인터넷 혁명으로 데이터의 크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보험료의 책정은 얼마든지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춰 잡아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한 4년 전에 삼성화재 다이렉트 섹터에서 "자신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광고에 활용하던데, 그 말은 내부에서 설계한 모델의 정합성에 자신 있다는 뜻이었겠죠.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가 얼마나 요긴하게 쓰일지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안전운전을 하는 자동차(운전자)에 특히 할인 혜택을 주는 텔레마틱스 포맷에 대해, 특히 아이오이닛세이-도와 社에서 힘차게 추진한다는 설명이 잘 나와 있으나, 우리 보험업계도 Kb, 동부 같은 데서 주력 상품으로 개발해 놓고 있죠.

뭐니뭐니해도 한 나라의 거시경제를 먹여살리는 건 제조업입니다. 책에서는 금속 3D 프린팅과 협동 로봇, AR 등이 맞물려 어떻게 "연결되는 제조업"의 그림이 그려지는지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과연 3D 프린팅 기술이 대량 생산 분야에서 실제 효용을 내어 가며 구현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인데, 이 책에서는 현재 업종의 첨단을 걷는 GE(제네럴 일렉트릭) 그룹, 스트라타시스(이스라엘 자본, 법인이라고 하네요) 등이 어떻게 현황을 주도하는지 자세히 소개합니다. 예전 책 보신 분들은 스웨덴의 아캄, 독일의 컨셉레이저 등의 혁신에 대해 잘 아실 텐데, 그새 이들이 GE에 합병되어 트렌드의 중핵이 다시 미국으로 옮겨온 현황을 이 책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IoT는 실시간 노인 돌봄 기능, 의료 정보 체크, 빌딩 정보 모델링 등에 폭 넓게 응용됩니다. 물론 응용 분야를 개별 거론한다는 자체가 의미없을 만큼 미래 산업의 새로운 펀더멘털이자 플랫폼이 되는 시스템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간 이 기술이 다른 산업 어느어느 분야의 디테일에 깊숙히 파고들었는지 응용의 백화제방 현황을 잘 소개하고 있어, 마치 쑥쑥 커나가는 아이들의 키를 재는 양 뿌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물론 그저 소비자의 입장에서 레이스의 향방이 어디로 갈지 점치는 한가한 관전자 모드에 그쳐서는 안 되고, 향후 몇 십 년 동안 선발자가 헤아릴 수 없는 규모의 로열티를 꼬박꼬박 받아가는 모습을 구경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뒤처지면 애써 노력해 번 돈을 남 호주머니만 채우게 되는 셈이니, 시스템의 주형이 형성되어 가는 이 중요한 국면에서 결코 낙오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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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1 - 제1부 그 별들의 내력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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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에, 처연한 감상이 절로 치솟는 작품이었습니다.

"반야"의 뜻이 뭔지 아시나요? 범어 "프라즈냐"가 빠알리어(부처님 시대의 입말) "빤냐"로 바뀌고, 이게 한역을 거쳐 굳어진 단어입니다. 음차로 형성된 말이긴 하지만, 한자로 새겨 보아도 얼추 비슷한 뜻이 되는 게 신기할 정도죠. 산스크리트 문자(데바나가리. 힌두어 등도 이 문자로 표기합니다)로 쓰면 प्रज्ञ입니다. 뭐가 저렇게 짧아지나 할 수도 있는데, प्र는 प와 र가 합쳐진 글자이며, ज्ञ는 ज와 ञ가 한데 모인 꼴입니다. 이는 해당 언어를 공부해야 그 체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헌데 너그러우신 부처님도 그런 뜻이었겠고, 많은 선승들은 치열한 문자 공부를 통하지 않고서도 그저 바른 마음과 수양으로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다니 다시 한번 마음이 숙연해지곤 합니다.

"반야"는 그 한 몸에 온갖 지혜를 담아낸 기이한 처녀입니다. 남장을 햐면 귀여운 사내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색을 하고 꾸미면 안 넘어갈 수컷이 세상에 없을 만큼 색기 넘치는 자태를 가졌습니다. 이런 반야이지만 속세에 태어나길 천것으로 태어나, 신상에 닥쳐오는 온갖 위험과 신이한 알림, 징후 같은 걸 몸에 끼고 살다시피해야 합니다. 그런 반야에게는 타고난 지혜 말고도 세상에 부대끼며 몸에 밴 안목과 요령이 점차 늘어, 이런 어리고 연약한 몸으로 어떤 대처가 가능할까 싶은 상황에서도 기적 같은 반전을 일궈 내는 품이 독자를 감탄하게 만듭니다. 물론 그녀에게는 신기(神氣)가 내내 감도는 운명적 재주가 몸에서 떠나질 않습니다만, 이런 건 이점이라기보다 차라리 저주에 가깝습니다. 그녀를 지켜 주는 건 결국 무녀로서의 신통력이라기보다,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권력욕과 이욕의 칼날 같은 서슬을 모면하는 뱀 같은 슬기입니다.

이 고을 사또 김학주는 소년 등과를 한 수재 관료입니다. 희한하게도 천것들이나 앓는 무병이 내내 그의 몸에서 떠나지 않아, 그는 맑은 정신과 빼어난 지성에도 불구하고 삭신이 안 쑤실 날이 없습니다. 이런 무병이 흔히 그렇듯, 상대와 마주하면 그 검은 속셈과 비루한 계산, 감정의 동요가 눈에 훤히 보입니다. 병이 떠나면 이런 통찰은 간곳없이 사라지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가의 가르침이란 본디 "사불범정"이라 하여 괴력난신을 이야기하지 않고, 무속은 물론 불가의 영향력과도 맞서가며 오랜 세월을 투쟁해 온 객관적 관념론의 총체입니다. 이런 유생들 중에서도 장차 최상층부에 자리하여 무리를 이끌 김핟주 같은 이가, 단지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그 이점과 쾌감을 놓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신기(천한)를 달고 산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야는 어린 나이임에도 척 보자마자 김학주의 슬프고도 컴컴한 운명과 체질을 직시합니다. 사또도 이 반야가 자신의 그런 속마음을 (일급 무녀이므로 당연히) 들여다보는 줄 알고, 고수들끼리만의 화통함으로 직설적인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반야는 사또의 깊은 곳 변덕과 정욕의 발동까지를 훤히 캐치하여 살벌한 수(手)를 말로 두는데, 김학주 역시 능글능글하게, 그러면서도 등골 서늘해지는 위엄을 풍기면서 받아넘깁니다. 언제나 반야는 복채에 있어 같은 정책(?)으로 나가고, 김학주도 제 그릇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확인시키기 위해(그럴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죠) 대담한 언사를 서슴지 않습니다. 둘의 이 맞대면 장면이 특히 볼만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고루 교차하고, 그 중 천벌을 받아 마땅한 패륜과 불의가 저질러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사신계는 인간사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섭리라는 룰을 지켜야 하며, 필멸의 인간계에서도 여튼 권력자들이 부려 대는 위력은 충분히 파괴적이기 때문입니다. 반야는 이 두 "포스" 사이에 끼어, 한편으로 제 한 몸의 물욕과 육욕을 영리하게 달래고, 다른 한편으로 어린 나이에 서글프게도 깨닫게 된 궁극의 법칙 한 자락에 줄곧 충실하며 진영 충돌의 파국을 막고자 몸부림칩니다.

미복을 하고 야밤에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영조(이단. 연잉군)과의 조우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엄청나게 큰 기운이 느껴졌으나, 한편으로 너무도 슬픈 분이었다." 이보다 더, 저 대군주의 성격과 기질과 천품을 잘 요약한 평가가 있을까요. 한편으로, 천한 신분이 뜻하지 않게 세상사 가장 깊고도 위험한 이치에 접해 노출되는 온갖 위험과 한을 풀어내는 방법은 마치 육(肉)의 교접이라도 된다는 양, 다양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정한의 물적, 정신적 표출 묘사는 약간 낯이 뜨거워지면서도, 보잘것없는 인간의 아귀다툼, 드잡이가 결국 저런 몸짓하나로 다 설명되지 않나 싶기도 해서 많은 감흥이 교차하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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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0 법칙 - 2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리처드 코치 지음, 공병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코치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80/20 법칙>의 개정증보판입니다. 개인적으로, 우연히 다른 명저들의 개정증보판이 요즘 많이 나와서 몇 권을 같이 읽는 중인데, 이 책 역시 큰 틀이나 주제, 기조는 그대로이지만 논지가 보강된 구석이 많아, 예전 기억을 되살려가며 반갑게 읽으면서도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 다시 생각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은 80보다 크다" 요즘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상식이 되어 버린 사항이지만(그 역시 이 책의 성공에 기인한 바 큽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 주변엔 비능률적인 노력과 자원 투입 때문에, 애는 애대로 쓰면서도 소기의 성과를 못 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핵심적인 20을 찾아내어 이곳에다 모든 정력을 쏟아야 타깃이 적중될 텐데, 그렇지 않고 "조자룡 헌칼 쓰듯" 하는 게 안타깝죠. 사실 솜씨가 조자룡이기나 하면 그나마 언젠가는 적중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으나, 문제는 우리들 중 절대 다수가 그런 고수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노력마저 비능률적으로 행한다면 결과는 길게 지켜 볼 것도 없겠지요.

제가 일주일 전 리뷰를 썼던 <언스크립티드>의 저자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만, 노력만큼 성과가 안 나오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합니다. 그 중, 아주 비생산적으로 우리의 정력과 포텐을 갉아먹는 것이 바로 "쓸데없는 죄의식"이라든가, "특별히 소질도 없는 일"을 한다든가(마인드세팅이 잘못 되어 있어 소질은 없는데 애착은 강합니다. 최악이죠. 본인이 착각까지 한다면 트리플 크라운입니다), 사회적인 관습에 괜히 얽매인다거나 하는 게, 다 우리들의 아까운 정력과 잠재력을 낭비와 파탄, "꽝"으로 이끄는 지름길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한 최단의 경로가 분명 있습니다. 예전 어느 전직 대통령이 한 말이기도 한데, "나는 게을러서 좀 더 편한 방법을 찾다 보니 이런 발명을 하게 되었다."입니다. 쓸데없는 죄의식에 빠진 이들은, "아 게으름 피울 게 아니라 남들 하는 대로 정석대로 살아야지" 같이 애를 쓰다, 진짜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린다는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행만 바라고 대책없이 게으르게 지내라는 건 절대 아니겠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운명"이라는 말 자체가 "통제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암시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소한 잡동사니에서 인생을 바꿀 대결단까지, 우리의 잔손이 미치는 거의 모든 과정에 대해 통제, 규율해 보려 노력은 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결과는 우리 자신에게 (가깝든 멀든)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노력도 않고 남탓을 하는 거야 그 사람의 명백한 잘못이지만, 노력은 하는데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노력을 해도 결과가 안 좋은 걸 두고 "운명"을 거론하는 건, 만약 그 노력이 보다 효율적으로 쓰였다면 분명 결과가 달랐을 터이므로 이는 합리적 개선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단 경로를 모색하는 사람은 분명 남는 시간에 "삶의 질"을 염두에 둠이고, 이런 "삶의 질"은 노력과 성과의 적당한 인과관계(함수관계)가 확인될 때에 선순환으로 극대화합니다. 어쩌면 알짜 경로를 모색하는 노력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진정한 귀착점일지 모르겠습니다. 20만 들여 80을 얻으려는 건 도둑놈 심뽀가 아니라 참된 성실성의 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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