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인 컨설팅 바이블 - 대한민국 CEO를 위한 ㅣ 법인 컨설팅 시리즈
김종완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CEO가 챙겨야 할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자질구레한 사내 잡무부터 회사의 수십 년 앞날을 담은 비전 구상이며, 당장 조직 분위기를 싸늘히 식힐지
모르는 세무조사에의 대비며, 때로는 비열하게 시장 침식을 노리는 경쟁업체 동향 파악과 이에 대한 전략 수립까지.... 이런 다양한
스케일의 과제를 동요 없이 효율적으로 해 내는 과업도 쉽지 않을 뿐더러,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방향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마냥 확신은 못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주로 회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부 컨설팅(훈수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는 건데, 이런
일도 차라리 내가 풍부한 상식이라든가 객관적 시야만 지녔다면 돈 안 내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CEO들을 위한 진정성 가득하고 요긴한 팁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얘기,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무슨 뜻이냐 하면, 아 내 회사에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데 남이 무슨 상관이냐며, 경영이나
회계의 불투명성을 적당히 우기고 드는 분위기가 이제는 더 이상 안 통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가수금 계정"을 만들어서, 회사
대표(주로 오너)가 회사에 돈을 빌려 준 척하고서는, 실제로는 회삿돈을 내 돈처럼 마음대로 갖다 쓰는 편법이 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그 출처는 주로 거래처로부터 회수한 외상 매출금인데, 이걸 엉뚱하게도 대표 개인 돈을 (필요치도 않은 멀쩡한 회사에)
빌려 주고선 쌈짓돈처럼 빼내 쓰는 거죠. 요즘 큰 물의를 빚은 어느 전직 기업인들도 과거에 워낙 이런 관행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딱히 죄의식도 없이, 또 흔적을 은폐할 마음도 안 먹고(?) 태연히 지내다 불벼락을 맞은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낡고 죄질
나쁜 관행은 통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법인을
설립할 때 별다른 이유도 없이, "주위에서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들었다"면서 남의 명의로(이른바 차명) 지분을 등기하는 게 또
희한하게 널리 퍼진 관행입니다. 정말 작심하고 세금 포탈을 노린 것도 아니고, 지난시절 기업인들이 얼마나 나쁜 루틴에 젖었으면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본래 그런 것"이라며 죄의식도 없고 위험 부담도 망각한 채 대세로 여기는지 참 개탄스럽죠. 이제 그런
차명 지분을 상대방이 순순히 돌려주지도 않고(이번 모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났죠), 돌려준다고 해도 증여세를 뜻밖에 무는 등
아무리 외관상 합법을 가장해 원만히 처리된다 해도(?) 이중삼중의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럴 바엔 그냥 처음부터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느니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관행이 원천 무효라는 점 알고 계십니까? 법리는 의외로 간단한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권리를
도대체 미리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근거에서입니다. 이혼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혼인관게가 형해화되며 양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무슨무슨 재산을 염두에 두고 분할을 논의하면, 그때 가서는 뭘 포기한다는 게 상정 가능해도, 미리 포괄적으로 포기한다는 건
법리상 무효라는 겁니다. 이것과 비슷한 사례가 p37에도 나오는데요 ....
어느
기업의 대표가 후계 구도를 생각 중인데, 장차 회사를 물려받을 아들 말고 여러 딸들에게는 미리 상속 포기 각서를 받아 놓았다는
겁니다. 어느 집안이 자기 집안사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건 남이 상관할 바 아니겠습니다만, 위와 비슷한 논리로, 사람이 죽어야 그의
재산을 누가 상속할지를 놓고 권리가 발생하는 건데,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권리를 (설령 그 당사자라 한들) 미리 포기할 수는
없는 겁니다(단, 이론적으로 기대권 유사의 권리나 지위는 생깁니다). 따라서 이런 각서는 원천 무효이며, 법정에 가져 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책에서는, 설령 각서가 유효하다 해도, 그 내용에 무관하게 상속법에서 정한 강행법규인 유류분 규정에 따라
어느 정도는 반드시 상속자가 청구할 수 있게 보호합니다. 단, 상속재산반환청구권 행사 시한이 지나면 소멸되는 건 어쩔 수 없죠.
주식을
명의신탁하는 게 왜 문제일까요? 과거에는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에 대해서도, 세금 포탈 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얘를 들면
사회적 지위나 직분상 그 재산을 보유해서는 안 될 분이 대외적 소유자로 드러나서는 안 되므로) 지인이나 친족에게 명의를 대신
맡기는 게 거의 일반화한 관행이었습니다. 만약 "이건 내 명의니 내 재산이다"라고 수탁자가 우기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 재산을
도로 찾아오는 과정에서 과태료나 과징금, 형사 처분이나 벌금을 무는 건 별개로 하고, 신탁자가 참된 소유자이므로 법원은 신탁자가
소송을 걸면 각서 등 증거가 있는 이상 무조건 진정한 주인에게 재산을 찾아 주는 게 정의라는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던
게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계기로, 엄청난 벌과금을 무는 행정 제재는 별개로, 이제는 아예 참된 소유 관계 회복에도 법이
협조 않겠다는 쪽으로 태도가 180도 바뀐 겁니다. 이는 특별법 제정(그 이전, 대통령의 긴급재졍경제명령권 발동)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처럼 질서가 근본적 변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래의 관행, 혹은 분위기에 여전히 편승합니다. 이번에
드러났듯 형사 제재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 명약관화한데도 말입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문제점을 듭니다. 일단 "아무 사심 없이" 남의 재산을 자기 이름으로 맡아 둔 사람 당대에는 분쟁이 없다 치더라도,
그분이 갑자기 죽는다든지 해서 상속이 발생할 때, 그 상속인(배우자나 자녀들)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지 하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은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맡아 둔 주식이 이후 엄청난 가치 상승이 이뤄진다거나 하면 과연 초심을
유지할지도 의문입니다(어차피 떳떳한 계약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현재
관련법은 명의신탁 관계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의 무조건 증여의제로 취급합니다. 증여가 아니고 다른 실질이 있더라도
증여로 보고 세금을 매기며, 일단 "증여(?)"가 이뤄진 이상 돌려줘야 할 의무도 없으니 신탁자 입장에서 법으로 반환을 강요할
아무 근거도 없어진 셈입니다. 이처럼이나 상황이 위험(?)한데도, 우리 주변에서는 여전히 "업계 관행이나 지인들의 충고"를 들면서
돌발 상황에 무대책으로 일관합니다. 법은 본디 "불법"에 협조할 필요가 없다는 상식과 진리에 입각한 대원칙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건 모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두고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고, 남도 아닌
피붙이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면 하루하루가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사실 상속과 증여 문제를 규율하는 법은 이미 확고히 정해져
있고, 국세청이나 세무사들도 워낙 이런 비슷비슷한 사례를 반복적으로 처리해 왔기에 다들 도사님들입니다. 유독, 당하는 사람은 생전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겪기에(거액 증여나 상속을 일생에 두 번 이상 겪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닥치고 나서는 갈팡질팡이고
시스템이 아무리 해법을 마련한다 한들 그저 휩쓸려갈 뿐 큰 도움을 못 받습니다.
이
책이 참 마음에 든 건, 현행 법규정이 어떻다 저러하다를 떠나서, 1) 펑소에 조금씩 증여를 (예비 상속자들에게) 해 두는
식으로, 일거에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대비하라는 조언을 베푼다는 점이었습니다.
얼마나 타당한 지적이고 충고입니까. 그런가 하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2) 한꺼번에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인생을 망치는 결과를 막기 위해, 평소부터 재산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후계자에게 가르치며, 상속세를
면탈하기 위해 요리조리 잔머리 굴리는 방법을 알려 주기보다, 아예 거액의 상속세를 자신의 고유 재산에서 척 낼 수 있게, 미리미리
사회인으로서 자립할 능력과 방도를 훈육하는 게 더 바른 길이라는 말씀. 얼마나 정확하고도 올바릅니까.
3)
상속이나 증여 등 돌발상황에서 가족이 대립하고 풍비박산 나는 건, 대개는 평소부터 성원들 간에 신뢰가 부족해서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상속이나 증여에 대한 법규나 전략을 이해, 준비하기 전에, 평소부터 가족 간의 우의와 화합을 도모하는 집안이라면,
어떤 뜻밖의 위기에 직면해서도 지혜롭게 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는 말씀도 나옵니다. 책은 이처럼, 무슨 야비한 기술적 지식이라든가
요긴한 편법을 일깨우기보다, 사람 사는 방도의 정석을 일러줄 때, 진정한 품격이 증명되는 법입니다.
저는
몇 년 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상속 증여 만점세무>라든가, <병의원 만점세무> 같은 책을 읽고 내용이
하도 좋아서 서평을 올린 적 있습니다. 이런 법실무에 관한 책을 보면, 뻔한 내용도 괜히 어렵게 표현하거나, 너무 실무에 관한
내용만 담아서 정이 안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법도 결국 사람 사는 일을 다루는 시스템임을 잊지 않고, 우리들
평범한 시민의 상식으로도 납득이 갈 만한 처방과 조언을 베푼다는 점이 단연 탁월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았다 쳐도
편집이 불친절하면 왠지 손이 안 가는데, 이 책은 편집이 예쁘고 눈에 잘 들어와서 읽기에 아주 편합니다. 사장님들이 꼭 한 번
읽어보고 사업 태세를 점검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인생 행로를 겸허히 반성하기에 참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