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감 국어 신유형 실전 180제 (2018년) 수능국어 기출 N제 시리즈 (2018년)
이호형 외 지음 / 레드카펫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명실상부하게 "보감"이라 불릴 만한 레드카펫의 국어N제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기출문제의 알짜 편집, 혹은 문제 보는 눈이 확 뜨이는 해설은 물론, 신유형 문제의 분석과 공략 비법 공개에 초점을 뒀습니다.


어떤 책을 보면 평가원 배포 자료를 여럿 모아 토씨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자기 책마냥 내기도 하던데, 그런 책(꽤 유명한 브랜드에요) 보다가 이처럼 집필진의 창의와 열정이 배어난 결실을 보면, 정말 자청해서 영업이라도 뛰고 싶어집니다. 어느 시장에서건 악화는 퇴출되고 양화만 유통되어 선량한 소비자 대중의 복리 후생이 조금이라도 증진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어린 학생들을 위한 참고서라면 말입니다.

평가원의 출제 추세를 살피면, 매번 나오던 문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변별력을 강화해야 하므로 1년에 한두 문항 정도는 꼭 새로운 유형이 보입니다. 그런데 구태의연한 학습법으로 책을 파는 학생들은, 열심히는 해도 이런 문제에서 꼭 발목이 잡히곤 합니다. 노력 대비 성과가 안 나오는 학생들은 이런 덫에서 못 벗어나면,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신유형의 공략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파트 1은 기출문제 분석입니다. "아니 또 기출문제야? 지겹게 풀었다고!" 물론 그러시겠지만 더 이상 출제될 가망도 없는 낡은 문제는 백날 코를 박아봐야 실력 향상에 도움 안 됩니다. 어떤 분은 특정 브랜드 몇 권을 대며 "OOO은 다 떼고 수능 쳐야지."라고 하던데, 그런 학생과 학부모는 보수도 못 받고 특정 출판사 영업사원 노릇하는 환상에 만족하는 거지, 자신(혹은 자기 애들)이 좋은 대학 가고야 말겠다는 결연하고 건강한 마음가짐이 전~혀 아닙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쌩뚱맞게 출판사 좋은 일 시키는 게 참 이타적(!)이긴 한데, 애가 장수생으로 늙습니다. 네. 출판사 말곤 아무한테도 좋은 일 못 시키는, 쓰잘데기 전무한 이타주의란 참... 입시판에서야 얼마든지 이기적으로 굴어도 누가 뭐라고 안 합니다. 머리 속에 진짜 실력을 쌓아야지, 좁아터진 책꽂이에 색색깔로 온갖 잡동사니 참고서만 "수집"하면 뭐하겠습니까?

파트 1에는 바로 작년, 또 그 전년도에 출제된 신유형 여러 세트가 실려 있습니다. 기출문제야 동네 보습학원 안내 창구, 그 학원 블로그, 신문사 사이트에만 가도 구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정확한 해설"입니다. 정확하긴 한데 친절하지가 않아서 보다 보면 미궁에 더 빠져들어가는 게 평가원 공식 해설입니다. 애들한테 무슨 길을 일러 주는 게 아니라 더 뱅뱅 헤매게 만들고 의욕을 꺾는 게 목적이지 싶을 만큼이죠. 그래서 기출문제는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문제를 풀어도 이후 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돕는 "알짜 해설"이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애들 가르치는 고민 깊게 하고, 남의 주문을 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으로 원리를 발견하려는 흔적이 역력한 해설, 이 책에서 잘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2017년학년도(즉, 재작년인 2016년 11월)에는 보험 시스템의 원리를 다룬 지문이 출제되어 모두의 예상을 크게 비껴갔다고들 합니다. 사실 보험 하면 동네 아줌마들이 자신감인지 최면 상태인지 모를 이상한 막무가내 모드로 밀고들어오는 게 대뜸 연상되기도 해서 웃음이 나지만, 본디 경제학의 핵심 연구 영역 중 하나입니다. 엘리트 코스만 밟게 해서 키운 자식이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보험 창업 한다니까 대성통곡을 한 부모님도 있다는데, ㅎㅎ 사실 수익도 그것대로 따로 내고 영리한 가입자도 끌어모으는 모델을 설계하는 건 예사 두뇌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이 지문을 보면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 이슈", "조건부 상품" 등 최고 일류의 경제학 석학들이 일생을 두고 매달리는 대형 토픽이 줄줄 나옵니다. 그뿐 아니라 "고지 의무" 등은 현행 상법에서 매우 중요히 취급하는 계약사항(이면서 강행법규)인데, 우리 법체계는 따로 보험 일반법을 두지 않고 상법전의 한 장(CHAPTER)으로 포함시킨 게 특이하죠. 이처럼 이런 문제는 장래 경제학도나 법대생(퇴직금 꼴아박고 세월 낚는 늙수구레한 실업자가 아닌)을 염두에 둔 구석도 있습니다.

주제만 신선한 게 아니라, 기존 문제와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구조적 특징"도 눈에 띕니다. 얼핏 보면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별개 제시문이 나옵니다)의 사례를 이해한 것 중 가장 적절한 것은?" 같은 문제 형식이 여태 십 수 년 간의 유형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죠. 헌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문의 주제가 새로워서 신유형이 아니라, 문제 푸는 접근 방식 자체를 달리 요해서 신유형임을, 이 책은 그 백미인 해설에서 적나라하게 가르쳐 줍니다.


파트 2는 "독서", 즉 비문학 신유형이며(기출 아닙니다), 파트 3는 문학 영역의 참신한 자체 개발 문제를 싣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영어 같은 과목에서 "변형강의, 출제"를 잘하는 분들이 큰 인기를 끄는데, 지문 자체가 다르므로 국어와 영어 과목을 나란히 둘 건 아니지만, 참고서의 퀄리티는 결국 평가원 출제 경향을 존중하면서도 절묘하게 "다른 핵심"을 짚어낸 문제로써, 그해의 실제 출제 문제를 예측해 내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분량이 좀 적다는 게 약간 아쉽지만, 어디 신유형을 개척해서 이처럼 실전을 방불케하는 양질의 세트를 꾸리는 게 쉬운 작업이겠습니까. 한 문제를 풀어도 백 문제 푸는 성과를 거둘 생각으로, 온 정신을 다 집중해서 풀이에 임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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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 국어 이의제기 분석 120제 (2018년) - 제대로 분석하고 훈련하는 수능국어 기출 N제 수능국어 기출 N제 시리즈 (2018년)
박우섭 외 지음 / 레드카펫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수능 국어 영역 대비용으로 시중에 참 많은 참고서가 나와 있더군요. 갈수록 해설도 충실해지고, 해설 속에 문제 푸는 기본 원리를 새롭게 담아 주는 시리즈가 레드카펫 기출보감입니다. 솔직히 작년에 나온 시리즈는 (순전히 제 개인 생각이지만)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 좀 있었는데, 올해판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저 압도됩니다. "과연 최고의 집필진이 참여하여 정성들여 꾸려진 책!" 인정 안 할 수 없습니다.

기출문제라 함은 국가기관인 평가원에서 시행하는 모의평가, 또 수능 실전 문제를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이 기출문제와 그에 딸린 해설은 평가원, 혹은 각 시도 교육청에서 무료로 온라인 혹은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배포합니다. 무료로 나눠 주는, 공신력 100%의 해설지도 있는데 뭐하러 따로 책을 사서 봐야 할까요? 그 해설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다음 학년도 문제에 기출이 또다시 등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출을 통해 배워야 할 건 "문제를 푸는 원리, 교과서에서 채 명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으나 은연 중 숨어 있던 이치" 같은 것입니다. 이 점에서 매년 비슷비슷한 문제가 출제되는 공무원 선발 시험, 토익과는 차별화되죠.

여튼 저는 이 기출보감 시리즈를 보면서, 문제의 엄선도 엄선이지만 후반부의 해설 그 충실도를 놓고 거듭 감탄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지금은 작고하심)께서 하시던 말이 생각나네요. "니네들 교양 국어 시간에 공부하는 책을 잠시 봤는데, 어쩌면 그렇게 좋은 내용만 골라서 담아 놨는지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말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학창 시절 바로 그 해당 교재를 공부할 때 나와야 그게 축복받은 인생인데 말입니다. ㅎㅎ 여튼 저도, 나이 먹고 내 국어 실력이 과연 정직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고, 동시에 어떤 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함께 열심히 이 책 문제를 풀고, 적잖은 고민도 했습니다(남에게 뭘 가르치려면 본인은 그 백 배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왕년에 잘했다고 남한테 가르치는 것까지도 잘하라는 법, 절대 없습니다. 오히려 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죠). 지금부터 그 간단한 느낌과 평가를 리뷰해 볼까 합니다.

제가 역대 기출을 모두 살펴 보니까 국어 영역에선(예전 교육 과정에서는 "언어영역"이라고 했습니다) 거의 격년꼴로 "언어학" 토픽 지문이 나오더군요. 언어학 하면 역시 드 소쉬르가 빠질 수 없습니다. 저희가 학교 다닐 때는 국정 국어 교과서에 정면으로 언급되곤 했던 게 드 소쉬르의 이론이었습니다(원 그 어려운 걸 고등학생더러 어떻게 알아먹으라고 말이죠). 여튼 이 책 p200에 또 그 소쉬르 이론이 다뤄지(는 지문+기출문제가 나오)더군요. 나이도 넉넉히 먹었고 그동안 배운 지식도 있겠다, 일일이 지문 안 읽고 그냥 문제만 보고 답을 맞힐 수 있을지 한번 시험해 봤습니다.


답은 바로 ④라고 맞혔습니다. ㅎㅎ 그렇다고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문제를 그런 식으로 해결한 건 물론 아닙니다. 잘 아는 주제니까 가능했겠지요. 책의 해설을 살펴 보니, 이 문제를 "최고의 문제"로 (집필진이) 고르신 이유, 그리고 이 문제에서 어느 포인트에 유의해야 하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일단 집필자는, "언어학이다 보니 내용이 워낙 어렵다"는 점을 이유 하나로 꼽습니다. 백번 타당합니다. 그런데 p201의 05-1은, 사실 공시태/통시태의 구분만 확실히 개념 잡혀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점도 눈에 띄더군요. 설령 공시태/통시태가 뭔지 모른다고 해도, ①②③⑤는 분명 같은 개념표지를 품습니다. 방향이 다른 건 ④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패턴 분석으로 회귀하는 셈이므로, 일반 IQ 테스트와 다르지 않게 됩니다.

혹 IQ에 자신 없는 학생이라면, 아예 평소에 이처럼 출제 빈도가 높은 학문상의 기본 주제에 대해, 정말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해서 기본 개념을 미리 익혀 두는 것도 유익한 수험 대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OO동 학원가의 일류들은 워낙 촉이 좋아서 그렇게도 한다고 들었습니다(여기까지만).

비문학 중 과학 영역, 천문학(고교 과정에서는 물리와 지구과학 사이에서 겹치는 부분입니다) 관련 문제를 풀어 보았습니다. (p239)


지문 처음에는 행성과 위성 등의 공전 궤도를 설명하며, 이들이 타원 궤도를 그린다고 상술합니다. 타원의 개념이 여기서 나오는데, 제가 알아 보니 요즘은 이걸 고3 1학기에(이과 과정에 준하는 코스 학생들만) 배운다고 하네요. 저희들은 문이과를 나누기도 전, 고1 2학기 때 배우던 내용인데 말이죠. 여튼 수학 시간에 타원의 정의를 착실해 배운 이과생(에 준하는)이라면, 이 지문의 1/5 정도는 일일이 안 읽어도 건너뛰고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심률은 아마 고교 과정에서 안 배우겠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 가능한 개념입니다.

왜 슈퍼문이 그처럼 크게 보일까요? 지문에서는 "겉보기 지름, 각지름" 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며, 이는 위성이 타원 궤도를 돌기 때문에 도출될 수 있는 "실용적" 개념입니다.


저자는 해설에서 "새로운 정보 A(여기서는 "일식"입니다)가 등장하면 , 기존의 정보 B와의 연계점, 공통점부터 먼저 떠올려 봐야 한다"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은 낯설고 생소한 정보를 지문에서 접했을 때, 이걸 새로 "공부"를 하라는 소린지, 아니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눈을 혹사하며 부호상의 짝짓기를 하라는 소린지, 그저 알쏭달쏭한 지식의 해일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분명한 전략적 지침을 갖고, 내가 기존에 공부해 오던 프레임 속에 어떤 문제라도 분해해 넣겠다는 의욕으로 접근해야 문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 보감 국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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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으로 만나요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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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아동용 애니메이션에는 왜 그렇게 잔혹하고 (간혹)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 걸까요? 이런 요소들 때문에, 함께 컨텐츠를 시청하던 학부모(특히 어머니)들이 기겁을 하고선 방송사에 항의전화를 하는 경우도 많고, 이런 시행 착오를 거친 기간이 길기에 현재는 "한국형 아동물"의 모범적인 유형이 정착했으며, 해외에 수출까지 하는 현황입니다. 어쨌든, 아동용 외산 컨텐츠에는 우리 한국인 상식으로 종종 이해가 안 될 만한 "현실성"이 개입합니다. 비단 현대에 들어 창작된 것들뿐 아니라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 등의 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화 홍련" 설화에도 간악한 범죄나 무고, 낙태 등의 소재가 끼긴 하나 이건 예외에 속하죠.

음... 여튼 이 소설의 주인공 엘라 신데델라, 혹은 에밀리아 파우스트는 아직 젊은 여성이고,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필자"이기도 한데 그녀의 장기는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게 잘 되리라고 낙천주의에 빠지는 캐릭터로는 우리가 잘 아는 폴리애나가 있습니다만, 이 엘라는 그녀와는 좀 다릅니다. 폴리애나는 낙천적 기질로 어느새 주위의 부정적 기류까지를 바꿔 놓는 개성이지만, 엘라는 사실 대책 없는 몽상가에 가깝습니다(적어도 이 소설 중반부까지는 말입니다). 필립 드렉슬러라고, 그녀보다는 훨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한, 키 크고 반듯한 성품의 신참 변호사가 그녀의 약혼자가 나오는데, 이 청년 역시 엘라의 비현실적인 성격에 은근 불안감을 느낍니다. "넌 언제나 딴세상에 가 있는 듯해."

폴리애나는 거짓말쟁이는 아닌데, 엘라는 사실 거짓말을 아주 자주 합니다. "잘하는" 편인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혼자서는 스스로의 거짓말 실력과 순발력에 매우 감탄하곤 합니다. 거짓말이란 꼭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이유 말고도, 이걸 하는 당사자부터가 매우 피곤하게 되는 정신 작용입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게 어디 ATP를 좀 소모하는 활동이겠습니까.

p184에도 오스카 드 비트 씨가, "과연 그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병적인 거짓말쟁이인지"를 재어보는 장면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거짓말이 체질이다시피 몸에 밴 사람은 도덕적으로도 사악하고 타락한 윤리 기준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죠. 엘라는 그럼 어떤 유형인가. 공교롭게도 둘 다입니다. 즉, 거짓말을 아주 자주 하지만 믿을 수도 있다는 뜻이죠. 이런 유형도, 우리 주변에 많지는 않으나 종종 발견이 됩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순간의 어색함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꽤 자주 합니다. 자신딴에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도 달래고 남도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인데, 대개 현실감각도 떨어지는 게 보통이라 상대는 그 거짓말을 금세 눈치챕니다. 이런 이들이 거짓말에 집착하는 건, 사실은 본인이 큰 매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고, 그런 마음에 안 드는 현실이 자신의 노력 덕에 어느 정도는 유리하게 바뀌었으먼 하는, 어린이 같은 심리 때문입니다. 소설 마지막의 슈페히트 박사 말처럼 "주술적 사고에 집착"하는 경향이죠.

이렇게만 생각하면, 이른바 엘라 형 인생에게는 아무 희망도 출구도 안 보이는 암울한 미래만 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라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즉, 이런 유형이 흔히 빠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태가 아닌, 그래도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나도 남도 함께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심과 진정성"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왠지 격이 안 맞을 것 같은 변호사 필립(그래서 계속 갈등하는 겁니다. 이 여자와 결혼하면 후회할 것 같다고)이라는 근사한 신랑감도 꿰찬 거고, 나중에는 OOOO과도... (내용 누설이라 여기서 줄입니다)

엘라는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젊은 여성이고, 어느 정도는 (이런 유형의 다른 맴버들과는 달리) 외모도 봐 줄 만한 타입 같습니다. 엘라가 모든 사연들을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는 강박에 빠진 건 그녀의 모친에게서 받은 영향입니다. 책에 나온 사정을 보면, 과연 그녀로서는 그럴 만도 했겠다 싶습니다(이런 타입이 독일에서는 별나게 취급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어머니 상이니 참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몽상가라도 자신만을 위한 몽상에 빠지지 않고, 행복한 몽상을 남과 공유하며, 자신의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여튼 곤경에 빠진 남 생각을 할 줄 아니 그녀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눈치 빠른 우리 독자들은 이제 소설의 중간까지만 읽어도, "그래서, 제목에 걸맞게, 엘라는 과연 남 아닌 자신의 인생은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까?" 같은 포인트를 확실히 짚고, 더 몰입하며(가뜩이나 몰입감은 원체 좋았습니다만) 페이지를 넘겨 갈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 의도 그런 체제가 맞긴 한데, 우리는 여기서 다른 의문 하나를, 엘라나 작가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라는, 이 기막힌 '부딪힘' 사고 이전에는, 과연 행복했던 여성일까?" 나아가, "6년 전 가정관리사(흠)로 필립을 만나기 전에는 어땠을까?" 같은 궁금함도 말이죠. 객관적으로 보아, 엘라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 자신은 p343에서처럼 자신의 [무려]국가 공인 자격증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지만) 특별한 기능이나 재능, 지식을 지니지도 못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콧대나 기대치만 높고, 척박한 현실은 그것대로 부정하려 드는 여성, 답은 이미 나온 것 아닐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미 제 결론은 위에서 내렸습니다만), 엘라는 심지어 현실로부터의 위험한 해리 상태(예를 들어 p250에 "툭하면 멍때리는"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에서조차 행복했고, 그녀의 행복감은 근거도 있었습니다. 친구 코라와도 언제나 티격태격이지만 우정은 진심이며 상대의 마음 깊은 곳도 살필 줄 아니, 그저 몽상가 타입만은 아닙니다. 이른바 소셜 클라이머나 골드 디거처럼 돈이나 지위만 보고 남자를 낚으려 드는 타입도 아닙니다. 필립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계급(헌데 이런 친구도 OOO에 대면 그저 소박한 변호사라고 스스로 털어놓는 대목이 나올 정도네요 쩝)이지만 엘라는 눈치 안 보고 마음에 품은 생각 다 까놓습니다. 이런 점에서, 남 눈치 보며 거짓말로 둘러대기 잘하는 "진짜 이기적인 거짓말병 환자"하고는 달라도 크게 다른 셈입니다.

소설 속에는 유명한 영화 여러 편이 언급되는데 그 중 작품의 기조와 밀착한 소재 겸 비유매개는 <라라랜드>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입니다. 특히 p221에서는 엘라가 자신을 홀리 고라이틀리(A 헵번이 연기한)와 동일시하며 그 유명한 H 맨시니(공교롭게도 극중 오스카 드 비트 씨의 아들과 이름이 같네요)의 <문 리버> 전곡을 다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쎄요. 홀리보다는 더 착하고, 덜 이기적이고, 생활 수단은 더 부족하지만, 그래도 몽상가라는 점에선 닮았네요. 아니 어쩌면 남성인 폴 바작에 자신을 감정이입한 걸까요?(둘 다 시시한 글쟁이라는 점이 공통...) 설마.

엘라가 유쾌한 성격이기에 이야기도 내내 우습고 흥겨우며 간간히 시사와 연계된 농담도 나옵니다. p188에선, 지금 기억이 온전치 못 한 오스카 드 비트 씨에게 장난을 걸며, "글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지 뭐에요?"라고 하는데, "기억은 잃었어도 이성을 잃지는 않은(자신의 표현입니다. p179)" 오스카는 바로 의도를 알아채고 화를 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는 행복한 환상에서 곧바로 깨어나야 하는 그 불쾌감을 당신은 지금 내게 선사한 거요!" 어쩌면 이 역시 "엘라 식의 해피 엔딩으로 바꿔 놓기" 기술입니다.

주인공인 엘라가 그 생계를 위한 직업과 별개로, 일단 독자 앞에 내세워지는 신분이 "인기 블로거"이다 보니 소설의 구성도 현실과 웹상의 공간을 자주 오갑니다. 엘라가 포스팅하는 새로운 글들은 사건 국면 전환이나 중대한 심경의 변화를 독자에게 고지하고, 현실에서 직접 마주하는 인물들 말고, 닉네임 뒤에 숨어 엘라와 갈등하거나 우애를 다지는 이들도 따로 있는데, 그 중 누구는 나중에 정체가 드러나고, 좀 드러났어야 했을 누구는 끝까지 미지의 커튼 뒤에 남는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p506에서는 중간쯤에 띄어쓰기가 전혀 안 된 문장이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엘라가 숨도 안 쉬고 급히 말하는 대사라서 그렇다고 친구 코라가 (우리 독자들에게) 가르쳐 주네요.

배경은 우리 시대의 독일이다 보니 지방색이 생생히 드러나는 대목이 많습니다, p336의 토이펠스브뤽이라든가, 오스카 드 비트 씨가 맨발인 상태로 발견, 아니 엘라와 조우된 어느 곳이라든가.... 꼭 우리말 번역본에서뿐 아니라, 현대 독일인들은 마치 우리 한국인들이 그러듯 일상에서 영어를 많이 섞어 씁니다(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회화에도 능하다는 게.....). p285의 "번아웃" 같은 건, 실제로 미국인들만큼이나 독일인들이 일상에서 자국어처럼 쓰는 단어이며, 너무 자주 써서 자신들도 과장이나 남용이라며 반성까지 합니다.

p179를 보면 "그런데 제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묻는 등, 엘라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만 같아도 알고 보면 냉정한 현실적 계산이나 추론 능력도 발동시키는, 의뭉스럽고 약은 구석이 많습니다. 하긴 우리 독자들도 마찬가지, 어디 사람을 한 카테고리에 온전히 몰아넣고 판단할 수가 있던가요. 그러면서도 남을 재단할 때는 가차없고, 자신을 향해서는 "다중적 매력을 갖췄다며" 너그럽게 봐 줄 걸 요구하죠. 어찌보면 행간에 뜻을 따로 담아 소통의 단조로움도 피하고 나중에 발뺌할 구석도 마련하는 엘라는, 서브텍스트(p538) 토킹의 대가입니다. 다시 결론 내겠습니다. "신데렐라보다 엘라가, 더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 자격증, 국가 공인(p34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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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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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잘 알려진, 모든 희망과 인간애가 말살되었던 나치 독일 치하에서 홀로 꿋꿋이 양심을 지킨 위대한 극작가이고 시인입니다. 특히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은, 학생 운동의 와중에서 고문을 받고 녹화 사업 등 잔인무도한 권력의 폭압으로 목숨까지 잃은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특히 이 이 시를 자주 인용합니다. 자, 그 유명한 시가 바로 이 시선집에 실려 있습니다. 설레지 않으시는지요. 혹은, 마침내 마주하는 그 심오하고 처절한 고백의 원전 앞에 새삼 죄의식과 숙연함이 밀려오지는 않으시는지요.

사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다분히 의역에 가깝습니다. 화자의 감회가 철저히 절제된 중 극한의 슬픔과 좌절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도를 정확히 짚은 제목임은 분명합니다.

브레히트의 독일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ICH, DER ÜBERLEBENDE (나, 살아 남은 자)


Ich, weiß natürlich : einzig durch Glück.

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

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

"Die Stärkeren überleben."

Und ich haßte mich.


이 짧은 시를, 역자 이옥용 선생은 이 예쁜 책에서 이렇게 한국어로 옮깁니다.




물론 난 잘 안다.
순전히 운이 좋아 (여기까지 웜문과 달리 역자께서는 행가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친구들과 달리 살아남았다는 걸 (역시 조금은 의역이며, 다른 친구들은 일찍 죽었으나 같이 죽었을 수도 있었을 나는 그보다 더 길게 지금을 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내 얘길 하는 걸 들었다 (여기서는 반대로, 한 행을 둘로 나누는 게 역자의 태도입니다)

"보다 강한 녀석들이 살아남는 게야."
난 내가 싫었다.

(이상, 이 책 p54에서 인용)

이 시는 80년대 학번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지만,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박일문 소설가의 동명 장편(1992) 덕도 있겠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김광규 선생의 오래된 번역은, 마지막 행이 약간 의역되어 "그러자 나는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 정도로 옮겨졌던 듯합니다(제 개인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또, 그 앞 행은 다소 건조하게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였어요.

또, 책 제목이자 이 시의 제목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원문에 "슬픔" 같은 단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간혹 보면 이 시의 영역을 두고 Survivor's sorrow라고 소개하기도 하는데, 영역자에 따라 그런 태도를 취하기도 할지 모르나 대개는 "I, The Survivor" 정도로 처리하는 게 주류입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 이옥용 선생의 변역은, 브레히트의 원 어조를 그대로 가급적 살리면서, 적절히 역자만의 감각을 발휘하여 비장하면서도 참담한 분위기를 잘 살리는 듯합니다. 마치 윤동주의 시가, 그 자체로는 과도한 감상에 빠진다거나 철철 비감이 흐른다거나 하지 않는 미덕을 유지하는 것처럼요.

이 책은 이 명편 말고도, 브레히트의 다양한 작품집 중에서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어필할 만한 여러 시들을 예쁘게 간추려 놓은 시선집입니다. 브레히트가 동시도 썼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의외로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 3부 "어린이 십자군"에 11편이 수록되었습니다. 역자 후기에 보면 p109의 각주에서, "브레히트의 동시는 당시 시민 계급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은근히 강제했던 형식과 주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는 해설이 나옵니다.

챕터의 제목이자 개별 작품의 타이틀이기도 한 그 "어린이 십자군"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p66 중).


여동생을 오빠를, 아내는 남편을
군대에 빼앗기고
아이는 포화와 폐허 사이에서
끝내 아빠를 발견하지 못했어 (제2연)


독일어 원문을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In Polen, im Jahr Neunundreißig
War eine blutige Schlacht
Die hatte viele Städte und Dörfer
Zu einer Wildnis gemacht.

Die Schwester verlor den Bruder
Die Frau den Mann im Heer;
Zwischen Feuer und Trümmerstätte
Fand das Kind die Eltern nicht mehr.

Aus Polen ist nichts mehr gekommen
Nicht Brief noch Zeitungsbericht.
Doch in den östlichen Ländern
Läuft eine seltsame Geschicht.

Schnee fiel, als man sich's erzählte
In einer östlichen Stadt
Von einem Kinderkreuzzug
Der in Polen begonnen hat.

Da trippelten Kinder hungernd
In Trüpplein hinab die Chausseen
Und nahmen mit sich andere, die
In zerschossenen Dörfern stehn.

Sie wollten entrinnen den Schlachten
Dem ganzen Nachtmahr
Und eines Tages kommen
In ein Land, wo Frieden war.

Da war ein kleiner Führer
Das hat sie aufgericht'.
Er hatte eine große Sorge:
Den Weg, den wußte er nicht.

Eine Elfjährige schleppte
Ein Kind von vier Jahr
Hatte alles für eine Mutter
Nur nicht ein Land, wo Frieden war.

Ein kleiner Jude marschierte im Trupp
Mit einem samtenen Kragen
Der war das weißeste Brot gewohnt
Und hat sich gut geschlagen.

Und ging ein dünner Grauer mit
Hielt sich abseits in der Landschaft.
Er trug an einer schrecklichen Schuld:
Er kam aus einer Nazigesandtschaft.

Und da war ein Hund
Gefangen zum Schlachten
Mitgenommen als Esser
Weils sie's nicht übers Herz brachten.

(이상, 이 책 기준 p68 중간까지 해당 분량입니다. 물론 이 책에는 전문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꽤 긴 시이니까요)


사실 어린이 십자군은 중세 때 사회의 광기가 빚은 참극 선동 중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어른들의 꾐에 빠져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미친 곡조에 맞추듯 죽음의 행군을 하던 끝에 상당수가 기아, 질병, 부상 등으로 죽었지요. 브레히트는 1939년 폴란드에서 빚어진 참상을 두고 중세 한때의 비극을 떠올린 겁니다. 음... 이 책 p73에도 저자의 각주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제 생각을 잠깐 덧붙인다면, 여기서 브레히트는, 나치의 강점(强占)이 자리잡고 나서 곧바로 부역자들에 의해 벌어진 "세뇌 교육과 역사 왜곡" 등에 비판의 초점을 둡니다. 이게 바로 중세 노예 상인들과 정확히 매칭되는 심상이며, 유대계나 폴란드 소년 소녀들은 바로 노예로 끌려가는 그 희생양들과 패럴렐 관계를 이루죠.

나치 독일의 "최종 해결"은, 본래야 그런 뜻이 아니었으나 나치에 의해 극악한 행태로 악용된 후에는 희한한 환기를 부르는 어구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p78에 "해결책"이 실려 있는데 역시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6월 17일 봉기가 일어난 후,
작가 동맹의 비서는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스탈린 거리에 전단을 배포하게 했다


(이상에서도 같은 3행이지만 시어의 배치는 원문과 다소 다릅니다. 물론 우리말 통사 구조가 독일어와 다르므로 어쩔 수 없죠)




Nach dem Aufstand des 17. Juni
Ließ der Sekretär des Schriftstellerverbands
In der Stalinallee Flugblätter verteilen
Auf denen zu lesen war, daß das Volk
Das Vertrauen der Regierung verscherzt habe
Und es nur durch verdoppelte Arbeit
zurückerobern könne. Wäre es da
Nicht doch einfacher, die Regierung
Löste das Volk auf und
Wählte ein anderes



네, 시의 결론(?)은 그것입니다. "아니, 정부가 인민을 아예 해산시키고 다른 인민을 선택하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은가?" 겉으로는 번드르르한 구호를 내세우며, 속으로는 근로 대중과 농민을 잔혹하게 탄압하며 노예처럼 통제한 스탈린 체제의 위선을 비꼰 내용이죠. 체제의 취지는 좋았으나 방법이 폭력적이라서 잘못이었다는 어설프고 사아하며 무지한 궤변이 어디 있습니까. 음주는 했으나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파렴치한 변명과 무엇이 다릅니까? 시인의 양심과 혜안은 이처럼 간악한 영혼의 독 가득 스민 언어의 허실을 모두 꿰뚫어 보는 겁니다.

"나, 살아남았지." 슬픈 마음이 가득 묻어나는, 순결하고 솔직한 짧은 독백입니다. 같이 죽었어야 마음에 떳떳하고 친구들 보기 부끄럽지 않고 세상에 바른 고개를 들 텐데, 그렇지 못하고 비루하게 살아남아 진리와 질서와 정의와 나 자신에게 오늘도 죄를 지으며 참담하고 참람된 생을 이어나간다는 고해(告解)입니다. 허나 시인의 진짜 고민은, "앞으로 이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바른 삶 부끄럽지 않은 삶인지" 그 답이 안 보인다는 데에 더 큰 부분이 놓인 듯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말을 하죠. "가신 분들 몫까지 남은 자들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 또 이런 말도 합니다. "Life goes on." 헌데, 브레히트는 이런 이치를 몰라서 "살아남은 내가 밉다"며 힘 없는 자포자기성 고백만 했겠습니까? 어떤 시인은 "아우슈비츠 이후 시(詩)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언명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비극과 불의를 겪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며, 아니 애써 잊으려 들며 여전히 불의와 비겁함을 일상으로 물들이는 "살아남은" 우리 모두야멀로, 시인의 비전을 암운으로 가리는 부조리의 극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을 위해 생물학적 연명을 지속하는지, 인간다움과 이상과 순결은 어디에 내팽개쳤는지 진지하게 반성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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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리모델링 - 반만 일하고 두 배로 버는
정효평 지음 / 새로운제안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현재의 비효율적인 사업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일련의 작업" 이것이 바로 저자가 내리는 "비즈니스 리모델링"의 정의입니다. 사실 현장에서 많은 컨설팅 업체가 다름 아닌 바로 이 일로 먹고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업을 운영하시는 CEO들께서도, 한 번 정도 자신의 패턴과 스타일을 객관적으로, 3자화하여 분석, 고찰, 반성할 수만 있다면야 구태여 비싼 돈 들여 컨설팅 업체에 일을 의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이 얇고도 컴팩트한 책 한 권만 잘 읽어도, 현재의 크고작은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업체가 많아질지 모르겠습니다.

"창업이란 실로 미친 짓"이란 저자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책 중에 적절히 서술된 대로 "자신이 채용하고 있는 비정규직들보다 더 적은 소득만을 챙기는" 사업주가 80% 이상입니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고객들은 매사에 불만입니다. 3년 안에 자신의 사업장을 닫는 업주가 태반입니다. 파산할 경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도 불사합니다(p21:8). 이런 비참한 결과까지 맞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윤택한 장래를 꾸리기 위한 사업주의 바른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자는 "지금까지 당신은 많은 관련 서적(자계서나 창업 조언)을 읽어 왔을 터이나, 이 책은 그 이상을 알려 줄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하시네요. ㅎㅎ 어디 정말로 그런지, 호기심 가득히 품고 책장을 넘겨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저자이시다 보니, 사교육 시장이 워낙에 큰 한국의 실정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그쪽 언급이 있으시네요. 애초에 시장 볼륨 자체가 적으면 CEO의 창의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효과를 보기가 어렵죠. 개탄해야 할지 그 실낱 같은 긍정적 작용을 기대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한국의 교육시장은 기존에 형성된 범위도 클 뿐더러 당분간은 성장 잠재력도 여전합니다. 어제 저소득층의 이쪽 섹터 지출이 크게 줄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으나, 대신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지불 의향은 여전하거나, 아예 다른 방향의 수요로까지 확산합니다. 이쪽도 부익부 빈익빈의 추세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안이한 인식을 가진 창업 희망자들에 대해 대번에 질타부터 하고 듭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재미를 못 보고 매번 망한 건, 남들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씀에 따르면, 예를 들어 학원은 앞으로도 극심한 레드 오션의 전형적 패턴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겁니다. 남들 잘 된다니까 부화뇌동하며 거기 끼어든 거지, 앞으로 전망이 어떠할지 냉정히 분석, 계산해 본 적 있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맞는 말 아닙니까. 대치동에서 학원이 하루에도 몇 개가 죽어나가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하는 일침은, 당신이 지금 그 사업을 영위하는 목표가 무엇이냐고 되물어 보라는 겁니다. "돈 때문"이라면 당장 기본 마인드부터 뜯어고치라고 합니다. 아 물론, 당신이 예컨대 수학경시대회 고난도 문제를 푸는 고수이거나, 라틴어 등 희귀 고전어에 특별한 실력과 재능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대체불가능의 브랜드를 지닌 셈이므로 걱정 않아도 됩니다. 얼마든지 사교육 시장을 파고드십시오. 이 책은 그런 특별한 처지 아닌, 평범한 프리랜서나 사장님들을 위한 책입니다.

"시간과 일과 관습의 주인이 되어라." 아니 지금 먹고살기가 얼마나 팍팍한 과제이며, 다들 손톱만한 건수라도 찾아 혈안이 된 판에 무슨 한가한 충고인지요. 그러나 저자는 단언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패턴은 결국 본인을 관습과 패턴에 종속된, 다른 경쟁자들과 한 치 다를 바 없는 뻔한 지망생 그룹에 영원히 묶어 둡니다. 반면 주인이 된 인생은, 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휘하는 그 창의력부터가 남과 다릅니다. 저자의 중간 결론은 "일을 하느라 돈 벌 시간이 없는 삶을 살지 말라"입니다. 역설 같으면서도 얼마나 큰 진리를 담고 있습니까.

당신은 일단 당신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고 저자는 대뜸 조언합니다. 아니 이 취향 다각화의 시대에 뭔 소리냐 싶다면, 저자는 "당신 자신부터 포함해서,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대중이 '결정 장애'의 고민을 앓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누가 골치 아프게 선택지 앞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지고 있냐는 거죠, 요즘 세상에요.

저자는 곧이어, "당신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떠드는 건, 어느 한 가지에도 확실한 자신이 없어서이다!" 라고 꼬집습니다. 카,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면, 비슷비슷한 아이템 여럿을 끄집어 늘어 놓는 것도, 뭐 하나 확실한 킬러 아이템이 없어서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흔한 "남따라" 방식(앞에서 저자가 지적한)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과거에는 이런 걸 두고 "미투"라고 했는데, 요즘은 전혀 다른 쪽으로 사회의 거센 흐름이 하나 만들어져서 사용을 자제해야겠어요)

예를 들어 케이터렁이나 요식업이면, 자질구레한 부수 품목은 대거 줄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는 무려 반 세기 전 맥도널드 체인의 창업자가 그 효용을 일찍부터 증명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저 맛에 집중하는게 살 길이다."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나만의 브랜드화"입니다. 그토록 많은 마케팅 구루들이 "브랜드화"의 중요성을 인지했어도, 정작 우리는 실천에 못 옮기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저스트 두 잇!"을 강조합니다. 설사 망할 계획이라고 해도 일단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뭘 배운다고 생각하고, 뭐라도 저질러 놓고 보라는 겁니다. 당신이 우물쭈물 쓸데없이 뭘 재는 동안 황금 같은 기회는 저 말리 날아가고 맙니다. 당신은 고작, 일어나지도 않은 재앙이나 실패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거짓 안도로써, 당신의 못난 깜냥과 재간을 호도하고 있던 겁니다. 왜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까? 그것도 당장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두가 니치 마켓입니다. 널널한 장터를 마련하고 누구나 비슷비슷한 웨어를 들고 와서 여기저기서 좌판 깔고 장사 하게 도와 주는 마음씨 좋은 시장은 없습니다. 지금은 18세기 랭커셔의 싸구려 면직물을 이곳저곳에서 팔아대는 런던과 파리, 혹은 난징의 뒷골목 따윈 없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맘에 드는 딱 한 사람만 받습니다." 당신은 그 틈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고객도 자기 취향과 설 자리를 자각해야 셀러, 벤더에게 대접 받는 세상입니다. 어설픈 가짜 취향을 꾸미고, 안목의 부재를 과소비로 위장하려는 천박한 졸부는 오히려 판매자에게도 경멸 받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미투 소비자)에게는 팔지 말고, 당신의 상품, 브랜드를 진정으로 알아보는 안목 높은 고객만 상대해야 합니다.

"많이 벌기 위해서는 적게 일해야 한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도 이런 주문입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핑계 하에 루틴의 노예를 자청하는 사람은, 이미 혁신을 회피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남들 보라고 "쑈"를 하는 겁니다. 당신이 신명을 바칠 수 있는 일에 올인하고,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만들며,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리빌딩과 창의력 충전에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비즈니스 리모델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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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2018-03-2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어마무시한 통찰력 이네요~~^^ 멋진리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