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사 1 -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전쟁과 평화 학술총서 1
일본역사학연구회 지음,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 엮음, 방일권 외 옮김 / 채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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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제독의 이른바 "포함 외교" 시도에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구폐를 소탕한 후 신체제를 부랴부랴 가동한 일본의 행보는 구미 측으로부터 일정 시기 동안 경탄과 우려와 경멸 어린 시선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아무리 근본 각성 없이 수박겉핥기식으로 밀어붙인 근대화의 시늉이라고 해도, 여튼 그렇게나 짧은 시간 안에 국가의 틀 하나를 완전히 새로 짠 후에는 가당찮게도 열강의 나쁜 행보만 본받아 식민지 침탈까지 시도했으니 말입니다. 이 역시 놀랍게도 성공(...)을 거둬 20세기 들어서는 러일 전쟁의 승리, 한국 병탄 등의 연이은 행보로 아시아에서 힘깨나 쓰는 강대국의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을 보면 "... 거듭된 요행 덕에 이뤄진 성공에 버릇이 나쁘게 들어...."와 같은 평가가 있는데 물론 히틀러를 두고 이른 말입니다. 천품이 비천하고 머리에 든 것 없는 망상자가 비뚤어진 욕심과 왜곡된 자아상으로만 정신을 가득 채울 때 이런 패턴이 흔히 나타나는데, 이런 이들에게 두 가지 길이 대개 앞에 놓입니다. 하나는 늦게나마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미래를 성실히 준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현실을 거부하고 망상만을 추구하다 처참한 파멸을 맞는 것인데, 역사의 필연과 정의가 대개 어느 쪽으로 귀착되었는지는 우리가 결과를 봐서 잘 압니다. 일본군국주의 역시 비슷한 길을 걸어, 객관적 자기 역량의 신중한 평가 없이 무모하게 감행한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패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국력의 손실과 막대한 인명 사상은 두고두고 역사의 상흔으로 남았습니다.

이 책은 거의 60여년 전에 쓰여진 일종의 "고전"입니다. 이미 태평양 전쟁 개전 전에도 일본의 양심 있는 지성인, 학자들은 체제의 모순과 허약한 시스템 기반의 맹점을 날카롭게 파악하여, 더 큰 재앙을 맞기 전에 무모한 "행군"을 중지할 것을 권했으나, 군부와 정치인들은 오불관언이었으며 오히려 양심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탄압하는 데에만 전력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쿄 대공습, 두 차례에 걸친 원폭 투하 등으로 민간인들까지 끔찍한 피해를 입고서야 이 무모한 전쟁은 비로소 무조건 항복으로 종결되고, 이 책의 저자들처럼 올곧은 양심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지성인들의 양심 선언일 뿐 아니라 이 책(시리즈)은 학문적으로도 치밀하고 충실한 방법론에 입각하여 저술된 모범적인 교본에 속합니다. 독자는 이 책들을 통해 1) 일본 내에 엄존하는 올곧은 지성의 양심 고백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2) 태평양 전쟁 직전과 경과, 이후의 aftermath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정립할 수 있고 3) 나아가 세계사의 거대한 맥락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사, 일본사에 침투하여 하나의 필연을 빚어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장에서는 태평양전쟁, 나아가 그 전단계였던 만주사변과 조선 침략 등이 그저 단견, 근시안의 정치인들이 둔 일시적 패착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작동되던 자본주의 기제의 필연적 모순 노출이었음을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p17에서는 "...천황제와 반(半) 봉건적 지주제, 그리고 이 둘과 깊이 결부된 특권적 대자본이.... 국가를 전쟁으로 내몰았음"으로 분명히 전쟁의 원인을 짚고 있습니다.

전쟁은 그저 표피적, 독립적,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의 모순과 언제나 연결됩니다. 저자들은 특히 일본 소농들의 빈곤과 궁핍상에 주목하는데, 대개 소출의 50%를 소작료로 지불해야 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반(半) 농노 상태에 머물렀다고까지 규정합니다. 반 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적 산업국가로 성장한 일본 굴기의 이면에는 이처럼 1차 산업 섹터의 어두운 그늘이 자리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국사 시간에 배우기로 "191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열도로 반출되었던 조선의 미곡 때문에 일본 내 소매가가 급격히 떨어져 (일본) 농촌에서 대대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같은 교과서의 한 줄 언급이 있었죠. 이처럼 식민지에서는 현지 농민들을 수탈하고, 자국에서마저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추진한 공업화, 산업화란 필연적으로 사회 구조상의 중대한 균열을 노정하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 제국주의는 세계적 규모에서 상품 수출과 자본 수출을 동시에 주변부에 진행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서평 맨처음에 적었듯 페리가 군함을 이끌고 열도에 내습한 건 그저 일시적 군사력의 위용 과시가 고작 그 목적이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선점한 주변부에서 향후 상품의 판매와 항구적 금융이익 획득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던 치밀한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책의 항목 일부를 "억압 받는 국가에서 억압을 가하는 국가로, 그리고 다시 억압 받는 국가로"로 제목을 정했는데, 심지어 조선에 식민 기지를 건설했을 때조차 일본은 초기 투자국인 미국, 영국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차관 상환을 압박받았습니다. 그 직전 단계인 러일전쟁 역시, 표면적으로는 "한반도가 러시아에 점령되어 일본 열도를 겨누는 칼끝이 되는 결과를 예방한다"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장래를 생각지 않고 마구 끌어다 쓴 온갖 빚이 정부와 민간에 큰 짐으로 끊임없이 작용했기 때문이죠. 이러던 일본이 정작 고종의 대한제국에 대고는 "경부선, 경인선 부설 융자금의 상환"을 끝없이 요구한 건 실로 아이러니입니다. 이처럼 내부를 들여다 보면 근대화의 화려한 외관 속에 숨은 부실이 끝도 없이 구조를 좀먹고 있었던 셈입니다.

전쟁도 군수물자를 생산할 여력이 되어야 개시, 지속할 수 있으며 일단 일으킨 전쟁 역시 전선의 군인들을 꾸준히 지원할 수 있어야 승리는 고사하고 현상 유지라도 가능해지는 법입니다. 러일전쟁도 미, 영 측의 차관 제공이 아니었다면 일본 정부는 결코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며, 초기 예측과는 반대로 러시아가 극동에서 압살당할 조짐까지 보이자 미국은 도리어 일본 측의 지나친 세 확산을 경계하여 서둘러 종전을 주선했다는 분석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결국 전쟁을 일으키거나 향방을 결정하고 심지어 패전 처리의 구체적 조건까지 조율하는 것도 막후의 국제 자본이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대전 발발 직전 국면을 보면, 책은 협소하게 일본 국내 정치 상황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태평양 전쟁 반대쪽인 당사자인 미국을 보면, 1930년대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공황을 타개하려 시도합니다. 여기서 몇 줄 아래를 보면 "... 큰 곤봉을 차고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있다... "라는 루스벨트의 재담이 등장하는데, 책에서는 퍼스트 네임이 생략되었으나 이 말 자체는 FDR의 먼 친척 아저씨뻘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조크죠.

대공황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민중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빈곤에 시달린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했고, 한편으로 열도의 경제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식민지에서 이처럼 공황의 폐단이 집약적으로 발생하자 역으로 일본 본국에 그 부작용이 유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에서 말한 일본 경제구조의 봉건적 후진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던 데다 이런 타격까지 받으니, 일본으로서는 전쟁 외에는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었던 게 됩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부추긴 만주 내 한 중 갈등상이 큰 무력 충돌로 비화하고, 이 소문에 격분한 조선인들이 한반도 안에 거주하던 화교를 공격하는 등 대단히 안타까운 민족 간 분쟁으로 비화합니다. 현재까지도 일부 중국인들은 1930년대 이후의 만주, 북중국 일대의 정세에 대해 "조선과 일본이 합작하여 대륙 침략을 기도했다"는 오해를 하는데, 이런 배경에는 일정한 이유가 작용했던 셈입니다.

장개석 정권은 1930년대 일본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해도 유효한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내륙과 남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마오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견제와 진압에 국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른바 "북벌" 과정에서 북중국의 군벌을 견제하느라 장샤오량 등의 병력을 통제했으므로 정작 현지의 군벌(대부분은 농민을 수탈하는 봉건제적 구태에 지나지 않았지만)이 유조구 사태, 노구교 사건 등에 대해 전혀 효과적 대응을 못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장개석 정권이 친일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란 대상입니다만 그가 ㄷ담판을 위해 일본 정치가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 일부에서는 "여튼 그는 우리(일본)의 편"이라 단정했는가 하면, 귀국 후에는 (당시 일본과는 중대한 대립 관계였던) 미국 측에 곧바로 대화 제스처를 취하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여, 마냥 호락호락한 일본의 주구는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p59에는 악질 친일파 왕정위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p91의 후주에 보면 본명을 "왕조명"으로 한자 표기하면서도 정작 중국식 독음은 "왕정웨이"라고 하여 혹 혼동의 우려가 있으니 독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왕자오밍이야말로 누대에 악명을 남긴 친일파, "한간"이라고 봐야겠죠.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과 일본은 국가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점입니다. 미국는 만주 일대에 큰 이권을 가졌으며, 상대적으로 영국은 대륙 본토에 이해관계를 지녔으니 만주 침략에 대해서는 초연했는데, 이런 태도는 히틀러를 상대할 때 당장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화 제스처를 쓰다(네빌 체임벌린) 돌이킬 수 없이 상대의 간만 키워 준 어리석은 결과를 빋은 유럽의 정책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에서는 "맨츄리언 캔디데이트"라는 관용구를 두고 "괴뢰"라는 뜻으로 널리 쓴 적이 있는데 얼마나 그들이 중국 동북 지역 일대에 큰 관심을 당시 두었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러던 만주(현 동북 3성)를 일본이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장악했으니 세계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게 당연하죠.

책은 마치 소설책을 읽듯 시간적으로 정확한 경로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며, 전후 일본 지성계의 통렬한 반성을 글자 하나하나에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사를 공부하는 표준적 교과서로 충분히 참고, 열독할 만한 멋진 역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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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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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은 20세기 후반 들어 종교와 민족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분쟁으로 세계인들에게 참담한 인상만을 남겼지만, 본디는 백향목의 산지이자 수려한 풍경, 쾌적한 기후로 이름 높은 지역입니다. 이런 조건 덕분에 유대교의 경전(기독교의 구약)을 비롯, 각종 고문헌에도 그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한데요. 칼릴 지브란은 바로 이런 나라에서 열두 살이 되던 해까지 자라고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감성은 레바논의 조화롭고도 신비한 자연이 안긴 온갖 색채와 결을 지니고 있으며,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지냈기에 그의 언어는 현재 지상에서 가장 풍성한 컨텐츠를 담은 논리와 표현으로 물들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한국에서도 이미 1980년대에 대학생들과 독서층을 상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이며, 일정 연령대 이상의 분들이라면 적어도 제목 한 번은 들어봤을 시집입니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뒤늦게 알려졌으나, 칼릴 지브란이 문명(文名)을 떨칠 시절은 벌써 20세기 전반이었고 이때는 아직 최근 반 세기 동안과 같은 지역 분쟁상이 거의 발발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타고르와도 활동 시기가 일부 겹칩니다) 물론 만성적 빈곤, 오스만 제국과 서유럽 제국주의(특히 프랑스)의 이중 지배 체제 때문에 겪은 식민지의 질곡이 있긴 했습니다만.

시집이면서도 이 책은 주제별 아포리즘을 묶어 놓은 듯 뚜렷한 체제 안에 각각의 작품이 고루 제 자리를 찾아가며 실린 모습입니다. 읽어가며 느낀 점은, 혹 한 편 한 편을 따로 접했어도 여운이 깊게 남았을 텐데, 이처럼 26개 카테고리 안에 예쁘게 편집까지 마쳐져서 독자를 만나니(우리 독자가 작품들을 만나니) 그 울림이 더욱 각별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언자>를 두고 성서의 언어를 사용했다고들 보통 평합니다. 기독교 성서 중에서도 시편이나 잠언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이 책은, 시적 화자인 ("예언자") 알 무스파타의 잔잔하고도 초월적인 말 건넴으로 채워집니다. 오르팰리스 주민들, 나아가 우리 독자들- 아마도 삶의 진리가 목마르거나, 연인이나 가족과 헤어져 살을 저미는 고독에 몸부림치거나, 품은 이상은 높은데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은 간절히 이 현자에게 말을 건네고, "예언자"는 타이르듯 다독이듯 일생을 두고 깨달은, 혹은 신(이슬람의 신일 수도 있고 딱히 어느 종교에 한정된 존재가 아니겠죠)으로부터 건네받은 계시의 한 자락을 들려 줍니다. 말 그대로 "구하라, 주실 것이요.."를 설교, 수훈하는 예수의 목소리와도 같습니다. 신약의 4복음서 중 예수의 육성만 따로 본받은 듯 하지만, 종교적 색채보다는 삶의 비의를 넌지시 일러 주는 노인의 다사로운 훈계나 톨스토이의 정숙한 교훈과도 비슷합니다.

When you love you should not say, ‘God is in my heart, ‘ but rather, ‘I am in the heart of God.’

“‘신이 내 마음속에 계시다.'라고 말하지 말고, '내가 신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하라.” 류시화 시인은 이렇게 옮기네요. 지브란, 아니 알 무스타파는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신은 누구의 마음 속에나 거하는 게 틀린 말이기라도 한가요? 신이 내 안에 있다고 하면, 왠지 이기적이고 스스로를 무람하게 높이는 듯한 느낌도 암시합니다. 그러나 내가 작아져서 신의 마음 안에 들어 있다고 하면, 그 마음 안에는 나의 이웃과 친구, 혹은 내가 적대하는 이들의 영혼까지 자리를 함께 나누고 마음을 터 놓을 여지까지 다 마련된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런 말을 하게(혹은, 하지 않게) 된다는 걸까요.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절로 "나는 신의 마음 안에 머문다." 같은 고백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And is not the lute that soothes your spirit the very wood that was hollowed with knives?

이처럼 이 책에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던 지브란의 원문이 함께 실려 있어서 좋습니다. 류 시인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슬픔이 존재 속을 깊이 파고들수록 그대들은 더 많은 기쁨을 품을 수 있다. 그대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피리는 칼로 후벼 파낸 나무이듯이.”

어쩌면 우리 영혼도 슬픔으로 철저히 단련된 모양새, 재질이라야, 한층 웅숭깊어진 속에 더 많은 기쁨을 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을 몇 배는 더 깊이 느끼라고 사람은 슬픔도 겪게 마련이며,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 소중한 줄을 알라고 아픈 이별도 호되게 시련으로 치러 내는 것 아닐까 생각도 되네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이런 슬픔의 더께와 상처를 성장의 거름으로 쓰고 난 영혼을 두고, 마치 칼로 후벼 파 낸 나무로 만든 피리, 아름다운 곡조를 처량하게도 경쾌하게도 빚어내는 관악기에 비유한 건 역시 지브란이 아니면 입 밖에 낼 수 없는 통찰이요 도약입니다.

That which seems most feeble and bewildered in you is the strongest and most determined.
It is not your breath that has erected and hardened the structure of your bones?

“그대 안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흔들리는 듯 보이는 것이 가장 강하고 확실한 것이다. 그대의 뼈대를 일으켜 세우고 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대의 숨이 아닌가?”

숨은 손으로 움켜잡을 수도 없고, 가까이 피부라도 대어 보지 않고서야 감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뼈대보다 삶을 더 깊은 근원에서 지탱해 주는 건 바로 숨결입니다. 생명은 숨의 들고 남을 멈출 때 비로소 종지부를 찍습니다. 숨처럼 약하게 보이면서, 동시에 숨처럼 강하게 모든 이치와 작용을 장악하는 건 세상에 없습니다. 레바논의 청아하고 쾌적한 바닷바람 숲바람을 동시에 맞으며 자란 영혼만이 감지해 낼 수 있고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진리라 하겠습니다.

And as a single leaf turns not yellow but with the silent knowledge of the whole tree,
So the wrongdoer cannot do wrong without the hidden will of you all.

"나무 전체의 묵인 없이 나뭇잎 하나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죄를 짓는 사람도 그대들 모두의 숨은 의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죄인 하나가 미꾸라지처럼 세상을 더럽힘도, 결국은 그를 사랑으로 감싸지 못 했거나 암암리에 죄악의 작은 씨를 그의 마음에 뿌리고 부추겼던 이웃들의 공동 연대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먼저 나서서 저 여인을 돌로 쳐라"라고 했습니다. 죄 없는 자가 도대체 없을 뿐 아니라, 그 여인의 행실이 그처럼 타락하게 된 데에 이웃들의 방조와 묵인과 사악한 기여가 없었다고 누가 감히 장담하겠습니까?



시인이자 동시에 화가였던 지브란은 언어와 색과 면과 구상의 선을 모두 매체로 구사하여 시심과 궁극을 표현했던 셈입니다. 저렇게 단색으로 섬세한 얼굴을 그린 데에서 정말 블레이크의 분위기가 풍기기도 하고, 괴이하며 소름끼치는 형상이 많이 등장하는 블레이크의 작품 세계와는 소재 면에서 대척을 이루기도 합니다. 알무스타파(사실 띄어쓰기를 안 해야 맞는데, 섬세한 그가 이런 표기에도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겠죠)의 얼굴은 지브란 자신 같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닮았습니다. 어쩌면 내내 그의 작품 세계를 돌보고 충고하며 (사실상) 공동 작업까지 참여했던 그의 어머니가 눈빛 속에 입매 속에 머무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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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빙혈 2018-01-20 19:51   좋아요 0 | URL
헉 댓글은 자동으로 비밀 처리가 안 되는군요. 윗 대댓글은 급 수정했습니다.

2018-01-20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4 0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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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는 문학관 여행
김미자 지음 / 글로세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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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고 풍광이 수려하며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한국은 본디 뛰어난 문인, 풍류객들이 여럿 배출되어 공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예찬 받던 곳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지역(혹은 인접 고장)의 명소나 어트랙션을 자세히 살펴 보지 않아 지나쳤을 뿐, 알고 보면 가까운 곳에 향취 그윽한 문학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령 좀 멀다해도, 이미 고속철이나 수도권 전철의 연장, 혹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거의 연결되다시피한 요즘입니다. 찾아볼 마음만 먹고 정신에 약간의 여유만 품는다면 어느 곳인들 일일이 못 돌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전국에 문학관은 그 수효(數爻)가 이제는 꽤 많은 줄 압니다만, 중견작가 매강 김미자 선생께서 직접 답사하여 그 소회를 정리하신 이 책을 보면 (몇몇은 이미 저도 개인적으로 다녀온 곳인데도) 그 참된 매력을 못 보고 지나친 구석이 이렇게 많았던가, 혹은 이미 그분을 기리는 문학관이 (과연 있어야 할 만한 곳에) 들어섰는데도 그저 무신경한 탓에 존재도 몰랐구나 하는 자괴감도 느껴지더군요. 저는 <복희 이야기>, <마흔에 만난 애인> 등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저희 어머니도요), 바로 그 김미자 선생이 펴낸 문학과 여행기라서 정말 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전라북도 부안 태생이신데, 부안 역시 한국에서 첫손에 꼽는 예향 아니겠습니까. 저도 자주 찾고 제 지인도 여럿 거주하여 개인적으로도 연이 각별한,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이뤄졌습니다. 지역별로 나눠진 차례인데, 서울-경기(인구도 많고 지역은 넓긴 하나 문학관이 의외로 많지는 않더군요. 하긴 빼어난 문인들이 주로 자연이 더 보존된 지방에서 더 영감을 크게 받았을 테니), 충청, 강원, 전라, 경남, 경북 순(順)입니다. 강원도 여러 문학관들은 특히나 부군과 함께 탐방하셨으며, 이 여행기가 완성되기에는 근 일 년의 시간이 쓰였다고 하십니다. 여행도 다녀 오시고 여행기를 쓰시기까지에는 일 년이 걸릴 수 있지만, 이런 멋진 안내와 가르침을 담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 독자들이 한번 따라해보기는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만 투자해도 일정이 완료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청운동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이 들어선 연유가 무엇일까. 똑같은 의문을 작가님도 가졌다고 하시네요. 답은 "연희전문시절 이 동네에서 하숙을 하셨다"는 겁니다. 청운동이면 제가 일 때문에 한 주에도 여러 번 들르는 곳인데 여태 이런 사실도 몰랐다는 게 (하늘을 우러러?) 좀 부끄러워졌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 "팬"들이 자주 찾는 명소라고 합니다. 과거 자신들의 정부 체제가 식민지로 삼고 탄압하던 때 비참하게 희생시킨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고(글 말미에는 "생체 실험"을 암시하는, 경도[京都]제대 출신의 송몽규 선생의 증언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잘생겨서"라는 이유가 크다고 하네요. 좀 착잡하기도 합니다만 여튼 이런 식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가 늘면 반성도 이해도 몇 걸음씩 더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해외 홍보(일본뿐 아니라 중국에도)가 늘어야 국부에도 도움이 될 텐데 내국인들도 이처럼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미모 하면 그보다는 후배 문인인 한무숙 님도 빠질 수 없죠. 한말숙 작가님도 그의 동생분이기도 하고요, 한무숙 님은 <생인손>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데 해당 작은 MBC에서 특집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저희 가족이 모두 모여앉아 시청했었죠. 정말 반갑게도 p27에 그 언급이 나오네요. 매당 쌤도 보셨나 보죠?ㅎㅎ). "단아한 한국 여성의 기품과 자신의 문학세계를 조화시키며 모범적인 삶을 산..." 이런 평가를 사후에 남길 수 있는 분은 얼마나 가득 축복을 받은 인생입니까. 혜화동뿐 아니라 정작 문학관이 또 생겨야 할 곳은 태생지인 부산이기도 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당대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근래 들어 저항정신과 현실 비판 의식 때문에 더 각광 받는 분입니다. 제가 깜짝 놀란 건 1960년대에 불의에 항거한 활동과 족적뿐 아니라 그 다양한 시선과 넓은 폭의 작품 활동인데, 예컨대 <나는 아리조나 카우보이야> 같은 작품도 있더군요. 아시겠지만 1950년대 후반 가수 명국환씨가 부른 비슷한 제목의 트롯풍 가요가 있습니다.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트롯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란 생각이었는데, 무려 김수영 시인의 작품에도 채용된 모티브라니. 참고로 애리조나에는 정말로 전설적인 총잡이도 악질적인 카우보이도 역사(?)에 큰 한 자락을 남긴 바가 있죠. 와이어프 어프 등의 "OK 목장의 결투"가 그것입니다. 왠지 불의에 단신으로 저항하는 코드가 김 시인과 통하지 않습니까?

왜 화성에 노작 홍사용의 문학관이 들어섰을까? 이 역시 그가 유복한 성장기를 보낸 고장이라는 연원이 있다고 하시네요. 화성이라면 꽤 멀게 느껴져도 병점역에서 내려서 찾아가라고 할 것 같으면 그리 멀지 않을 듯합니다. 예전에 숀 코너리, 마이클 케인 주연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번역 제목을 단) 영화도 있었고, 근래에는 같은 이름을 붙인 장규성 감독의 한국영화도 나와 있습니다. 이들이 노작의 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특히나 전자는 더), 여튼 그 멋진 어감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더 앞선 시기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긴 합니다만)

1장에 실린 문학관의 주인님들 중 안양의 김대규 시인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활동 중인 "할아버지" 문인이십니다. 홍사용 문학관을 찾아가실 때에도 저자께선 1호선 안양역에서 출발하셨다고 책에 나옵니다만 아무래도 현 거주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터잡고 활동하시는 향토 문인(안양은 수도권이긴 합니다만)이시니 더욱 존경과 관심이 생기셨을 법합니다. 김 시인은 꽤 고령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실 뿐 아니라 문인 특유의 멋이 물씬 풍기는 참 젠틀한 외모이십니다. 바로 앞에 나왔던 토픽의 주제 조병화 선생(역시 큰 시인이셨죠)과 대학생 시절부터 교류하시던 분이라고도 나오네요.

부여는 백제가 도읍을 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고 호암사 정사암 등 무수히 많은 문화재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여기는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이 근거를 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가 본 적 있는데 작가께선 "신동엽문학상 수상작"들이 천장에 "모빌처럼" 매달렸다고 하십니다. 모빌이라 함은 물론 콜더의 그 모빌 장르를 말하는데, 아주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시의 깃발'과 옥상의 구조였다." (p111)

박인환은 참 그 이른 시기 현대 한국의 모던한 정서를 너무도 잘 대변, 표현한 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따지고 보면 별것없는데도 그 말 맛이 너무도 착착 감겨든다."고 평하시던데 가장 헐하게 평하고 들어도 이 정도의 감탄을 자아내는 진정 특출한 재능을 지닌 분입니다. 시로서도 탁월하지만 유행가 가사로 붙여도 참으로 제격인데, 1980년대 대중가요 상당수의 가사가 쓸데없이 현학적이고 고답성을 가장하는 건 어쩌면 (훨씬 앞선 시점에서 뜻밖에 요절한) 박 시인의 (예기치 않았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문학관이 소재한 인제는 그의 출생지이니 더욱 의외입니다. 그런 벽촌에서 이런 극한 도회적 감성의 소유자가 탄생하다니요.

천재 소설가 김승옥은 오사카 태생이지만 순천에서 성장기를 보냈기에 이곳에 문학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모두의 기를 죽이는 놀라운 재기를 발산했던 그는 젊어서부터 온갖 문학상을 휩쓴 분이지만 장년기에 쓴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이상문학상 제1회 수상을 하기도 했죠. 이곳에는 정채봉 시인의 코너도 마련되었는데 그는 인접 농촌 승주 출신이지만 현재는 행정구역이 통합되었으므로 이곳에서도 그의 자취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병주 선생은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는 분이고 하동에 세워진 그의 문학관에 찾아본 적도 여러 번입니다. 순천이나 하동이나 영호남 경계에 붙은 곳이라 작가께서는 인접한 일정으로 다 소화하신 듯합니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도 참으로 멋지고 작가 본인이 4. 19 등에 참여하신 이력이 있는 만큼, 이후 1980년대에도 <그해 오월> 등의 시사성 짙은 대작을 창작하기도 하셨지요. 사람은 이처럼 말과 실천이 맞닿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무슨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끝판을 보기라도 한 양 말만으로 폭주하는 정신병자도 있으니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그저 개탄스럽기만 합니다. 김 선생께서는 특히 이 문학관에 대해 존(zone)을 나눠 색깔별로 의미를 부여한 선택에 대해 특히 높이 평가하시며, 특히 갈색인 4 zone에는 "끝나지 않은 월광 이야기"란 제목이 달려 있었다고 회고하시는데 저 역시 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김동리는 책에도 나온 대로 본디 경주 태생이고, 그래서 그의 풍자적 단편 <화랑의 후예>가 더 각별한 의의를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명은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잘 배운 대로 "시종"이며, "동리"라는 필명(아호가 아닙니다)은 그의 형이 지어주셨다는군요. 김미자 작가님은 "... 곡선이 아름답고 웅장한 기와 지붕은 그 어떤 관문과는 격이 다르다..."는 말로 첫 소회를 표현하십니다.  "먼저 선배인 동리관으로 들어갔다"라는 문장이 있어 잠시 웃었는데 이 책에는 이곳 말고 그 앞에서도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처음에는 김 작가님 개인적으로 선배 된다는 뜻인 줄 착각했는데, 아무려면 김동리 소설가가 연배로든 무엇으로든 김 작가님께 "선배"가 될 수는 없죠. 한 고장에 세워진 문학관에는 그 지역이 배출한 여러 문인을 기리는 코너가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박목월 시인에게 소설가 김동리가 선배인 셈이란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정신적 여유를 찾고 삶의 깊은 의미를 돌아보는 데에 이처럼 문학관 탐방만한 멋진 계기도 또 없을 듯합니다. 예쁜 책이 아니라도 이곳들은 언제나 우리의 팍팍하고 메마른 정신을 향해 손짓하지만, 이런 예쁜 컴패니언까지 곁에 끼고서 한 곳 한 곳 발품 팔아 현지의 정취를 직접 접해 보는 것도 어떻겠습니까? 문학은 그저 종이 저편에서만 우리와 소통하려 드는 세계가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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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일의 철학 - 철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피터 드러커 지음, 조지프 A. 마시아리엘로 엮음,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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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앞 시대를 넘어 현재 우리들이 살아 내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위대한 경영 사상가인 피터 드러커. 한 위대한 정신의 가르침을 내내 머릿맡에 놓아 두고 하루하루마다 소중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생전에 그가 남긴 저작들을 원 포맷 그대로 읽어도 말할 수 없이 유익하지만, 공신력 있는 연구 기관이나 생전 그의 동료였던 권위자가 엣센셜만 간추려 펴낸 아포리즘 역시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고마운 배려일 수 있습니다.


경제학과 경영학


개인적으로 저는 학부 시절 "경영학은 경제학에 비해 학문으로서 밀도가 낮으며, 경영학은 인접 혹은 원거리의 여러 다른 학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뤄진, 주기보다 받기를 더 많이 한 분야일 뿐" 같은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별 의미 없는 편가르기, 서열 매기기의 설익는 소산일 뿐인데, 이 책에서 저는 정반대되는 언명을, 그것도 사상의 거두 드러커의 표현으로 발견했습니다. (이것 관련, p91에서 드러커의 단호한 반박도 역시 들어 보십시오)

"나는 소비자들의 행동에 관심이 있었고, 케인즈는 제품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p22)

드러커와 케인즈는 대략 26년 정도 나이 차가 납니다. 당연히 케인즈가 앞선 세대에 속합니다만, 우리 선입견보다는 그리 많은 차이도 아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요즘 들어 (저 언급이 꼭 긍런 의도는 아니지만) 드러커가 자신을 케인즈와 나란히 견주어도(혹는 더 높이 평가해도) 그리 큰 무리도 아닐 만큼 뛰어난 위인임에 서서히 동의해 가는 중입니다. 참고로 저는 경제학 전공 출신입니다만.

같은 페이지에서 드러커는 몇 걸음 더 나아갑니다. "... 물론 경제학은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하지만 나는 경제학이 '독립적'인 사회과학 분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경제학적 고려는 인간 사회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결정적 요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제약적 요소이다... "

이 심원한 말씀을 제가 곡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우선적 고려가 아닌 합리적 요인만을 비정하게 앞세우는 한, 경제학 논의는 문명의 발전과 공동체의 복리 증진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저는 들립니다. 반대로 또, 선입견으로는 냉랭히 경영자의 입장만 내세울 것 같은 경영학 담론 역시, 그 중심에 "인간"이 위치할 때 오히려 정책 결정의 최우선 인자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무엇보다도 독립적이고 규범적인 학문 노릇을 하는 게 경영학일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먼저다


이처럼 그는 무작정 공자님 맹자님 같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우아한 외관을 갖춘 채로 대중의 통념 그 허를 찌르기도 하는 촌철살인의 명언만을 빚는 분입니다. 읽을 때마다 "그가 이런 지적, 통찰까지도 남겼었나?" 혹은 "내가 알던, 혹은 그러려니 하던 드러커와는 너무도 결이 다른 의외의 면모가 있다."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또 그때마다 대긍정의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은 "사람이 먼저다."와 통하는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p150에는 "우리(경영학자들)는 경제학이 인간적 가치와 관련을 맺도록 접근한다." 같은 말도 합니다. 그가 경제학을 어떻게 보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뒤로 넘어가서 p42도 같은 취지로 함께 참조해야 할 말들이 나옵니다. ("경영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p73에는 다시 케인즈의 유명한 말을 재해석한 언급이 있는데, 이를 통해 이른바 "최적화의 신화"를 비판합니다. ("근본적으로 기업체의 기능과, 경영의 책임에 대한 가치는 대립하는 것이다.") p91을 보면 다시 "경영은 인간에 관한 일"임을 강조하며, "의학보다는 과학에 가까움"을 지적합니다.


지식과 실천


p38을 보면 "교육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를 (먼 미래에는 물론) 현재에도 그 타당성과 유용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제 생각으로는 상아탑 속의 고답성에 머무는 건 지식인, 혹은 지식 노동자로서 의무믜 방기일 수 있다는 따끔한 현실 인식 촉구로 해석됩니다. 당장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지식이고 지식이라야 이를 익힌 보람과 긍지가 생길 법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는 같은 페이지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카스탈리엔의 세계를 은근히 비판하며 반대 논거로 활용하기도 하네요. "너의 지식을 활용할 수 없다면 바보가 지닌 금괴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뒤로 가서 p72에는 "가장 좋은 계획이라 해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이는 그저 '좋은 의도'에 그칠 뿐이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p114에는 "좋은 의도가 항상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언급도 읽을 수 있고요.


창조와 혁신, 생존


피터 드러커는 근 백 세를 산 분이고 따라서 그가 특정 시기 그토록 긍정적으로 평가해 마지 않았던 일본의 침체상, "잃어버린 30년"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p56에서 그는 "여태 잘 해오던 방식과 자산이 앞으로는 큰 장해가 될 수도 있음"을 거론하며, 바로 일본이 그 반면교사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p21을 보면, "오늘 돈이 잘 벌리는 사업이, 내일은 돈이 많이 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같은 말도 나옵니다. 현명한 사업가는 지금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사업체가 불과 얼마 후 처치곤란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을 날을 고민하며, 이 때문에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혁신"이 더욱 절실하다는 평가도 곁들입니다. p68에는 "오늘의 확신은 내일의 우행이 된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모두가 과거에의 집착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공공단체와 경영


"후진국이란 없다. 단지 경영되지 않는 국가만 있을 뿐이다." (p51) 이 말은, 지정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아무리 불리한 출발점에 시작했더라도,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경영의 원리"에 입각하여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간다면 도달 못 할 성취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증거로, "140년 전 모든 면에서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지금 모습을 보라"고도 합니다. 사업체와 공공 단체는 성격이 다르지 않냐는 반박도 가능하겠는데, 잉와 관련해서 그는 p181에서 "경영은 사업체보다는 비영리기관에 훨씬 적합한 활동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경영은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사고작용이고 행동이며 실천에 가깝습니다. 반면 경영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정신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않음을 냉정하게 일깨우기도 합니다. 드러커는 이와 관련, "미래 예측 따위란 아무 소용도 없다."며 호된 질책을 내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면 이런 위대한 경영 구루의 교훈을 하루하루, 일신우일신하는 결의로 자신의 체질 안에 내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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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전쟁 - 미래의 권력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데이비드 S. 에이브러햄 지음, 이정훈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주변에서 하도 전쟁, 전쟁 해 대어서 괜한 신경증까지 생길 수 있는 요즘입니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은 총성만 나지 않았다뿐 실제 전쟁 상황이 맞지 싶습니다. 다 읽고 나서 그 심각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쟁의 목표, 주제는 "자원"이고, 따라서 전쟁의 성격은 "자원 쟁탈전"입니다.

희토류가 무엇일까요? (주기율표상에 나오는 숱한 원소들 중) 희귀한 엘리먼트를 가리킨다는 정도는 우리 대중들도 다 아는 사항입니다. 여기서는 희토류 이슈를 집중 분석한 책 답게, 그 어원에 대해서, 또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문제를 초반부에 자세히 짚고 넘어갑니다.

희토류는 영어 rare earth를 직역한 단어입니다. 그러니 우리말로는 희귀 원소, 희귀 금속, 희귀 자원 정도로 옮겨야 뜻이 제대로 전달될 텐데 (책에도 나오지만) 8년 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분쟁 때문에 제대로 이슈화하여 미디어에서 쓰는 용례로 이미 굳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금, 은, 등도 귀한 건 마찬가지고 흔치 않으므로 귀하게 된 건데 이들 귀금속과 '희(稀)금속'의 차이는 무엇이냐?"라고도 묻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 가려운 곳을 긁듯 명쾌한 답을 내어놓습니다. 금과 은이 화폐나 가치 표상물처럼 쓰이게 된 데에는 원소 자체의 성격 외에 다른 역사적 이유도 여럿 끼어들었지만, 일단 문제의 희토류와 저들 귀금속이 다른 점은, 희토류는 광물 상태에서 순수하게 그것만의 높은 함유 상태로 발견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구리 등 다른 금속을 채광, 정련하면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게 이들 희토류인데, 자연 상태에서 농도가 극히 낮다고 합니다. 반면 금이나 은은 어떤지 떠올려 보십시오. 픽션 속에서 노다지를 발견했다며 기뻐하는 광산업자 눈 앞에는 대개 샛노란(혹은 새하얀) 덩어리들이 훤히 펼쳐지기 마련이었죠.

또 하나는, 금 시세야 물론 등락 폭은 있어도 대개는 일정 선에서 유지가 되기 마련인데(단기 재테크 품목으로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 차이도 민감하게 다가오지만), 희토류는 (책의 표현을 따르면) 계단식으로 가격 추세가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장에서 언제 제값이 찾아질 줄(오를 줄) 알고 무작정 공간을 마련해 보관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창고 임대, 재고관리 비용 발생). 다음으로, 함량 농도가 떨어지는 이들 원소를 그때그때 찔끔찔끔 생기는 양만 갖고 따로 챙겨 두거나 정련 시설을 갖추기엔 채산이 맞지 않다는 이유도 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희토류는 다른 광물과 달리 그 탐사, 발굴, 정련(생산), 유통 과정을 시장에만 맡겨 두기엔 대단히 부적절한 아이템 취급을 받습니다. 반면, 현재 희토류 관련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건 이를 국가가 관리하거나, 민간 업자에게 강력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인 덕도 있습니다. 물론 절대 매장량 자체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많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내몽골 자치구 등의 현황을 보면 깔끔히 개발은 된 현대식 시가지가 정작 입주민은 부족해서 텅텅 빈 사진을 보기도 하는데, 이런 게 국가 주도의 개발계획 경제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반면 희토류처럼 미래를 보고 전략적 개입이 필요한 자원의 관리에 대해서는 확실히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당장 돈이 되건 안 되건 정부는 일단 손을 뻗어 생산, 비축해야겠다고 결정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희토류 관련해서 유명한 언급은 이미 덩샤오핑이 반 세기 전에 당료와 공무원들을 모아 놓고 한 적이 있습니다. 덩샤오핑이 이런 말을 할 무렵이면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 조절을 놓고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할 시절이죠. "앞으로 희토류가 공업 생산에 부쩍 필요해질 세상이 오면, 중국이 결정적으로 키를 쥐고 흔들게 될 것이다."

책에는 이오시프 스탈린(나이로는 덩샤오핑의 아버지 뻘이며, 그가 죽고 난 후 사반세기가 지나야 간신히 집권하죠. 덩이 아직 젊었던 시절 마오의 수행단에 참여하여 둘이 실제로 만난 적도 있습니다)의 이야기도 잠시 나오는데, 물론 저 먼 발트해 연안국(에스토니아)에 그런 도시를 설계한 건 전략적 판단 착오에 기인하긴 했지만, 여튼 당장 채산이 안 맞는 산업도 국가가 개입해서 영리하게 육성하는 건 사회주의 국가를 시장경제 체제가 못 따라가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도 결국 덩샤오핑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경제 문제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봤다는 뜻도 됩니다.

다시 중국과 일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8년 전 중국과 일본 사이에 그런 분쟁이 생기고 나서 어째 요즘은 잠잠합니다. 일본은 희토류를 대체할 만한 다른 수단을 마련했을까요? 일본 산업계가 다른 방법을 찾았다면 기술적으로는 희토류에 의지하지 않는 다른 공정이 기술적으로 마련되었다(다른 나라들도 따라할 수 있는)는 뜻도 되는데, 저자는 "아니다"라고 딱 잘라서 답합니다. 우선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원소 재료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란 그리 쉽게 발견될 수 없음을 저자는 환기합니다(그런 게 나왔다 하면 세계 과학사에 남을 대발견이란 뜻이죠). 약이나 치료제, 옷감 등도 한때 그토록 인공 합성 물질을 선호하다가 지금 다시 "천연"으로 추세가 바뀌는 걸 보십시오.

인류 문명 발전 3000년사 동안 거의 무시되다시피했던 희토류가 왜 이처럼 최근에서야 각광 받는 것일까요? 답은 우리가 쓰는 각종 공업 제품의 질과 성능이 그만큼 첨단을 향해 달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일상의 불편을 해소할 정도면 충분한 저품질 저성능 제품은 어느 소재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부피를 차지하면서도 정밀하게 작동 가능한 제품은, 기존의 핵심 부품과 궁합이 맞으면서도(주기율표상의 인접 원소) 성질은 분명히 차별화된 소재를 적용해야만 합니다. 마치 천피스 퍼즐을 맞출 때 게임 초기 단계에는 큼직큼직한 조각이 더 요긴하게 보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시시한(뭔지도 모를) 작은 조각이 결정적 구실을 하는 이치와 비슷하죠. 주기율표에서 그저 자리만 차지할 뿐 자연 속에서 여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각종 원소들은 이제서야 존재감을 드러내며 몸값을 호기롭게 외쳐 대고 있습니다. 인류는 손에 당장 넣기 쉽고 눈에 잘 띄고 다루기 쉬운 것부터 차례로 도구화했으며, 돌- 구리 - 철에 이어 이제 "잉여 원소" 하나하나까지 다 이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비극은 그런 잉여 원소가 지구상에 널리, 고르게 묻혀 있지 않다는 겁니다.

희토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하는 국제 정치 상황(우리에게도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슈 하나를 짚어 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시는 걸 보면 저자는 참 다방면에 너른 소양을 쌓으신 분 같습니다. 2010년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이 터지고 희토류 금수 조치(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습니다. 이번 한한령도 마찬가지였죠)가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했는데, 당시에는 민주당이 집권했을 시절입니다.

아베의 자민당이 정권을 잡은 지금은 그럼 뭔가 나아졌을까요? 저자는 역시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당시 집권당은 외교 경험이 부족하여 문제를 표면에 노출시켰을 뿐이고, 오히려 지금 집권당이 순진한 브링크맨십(저자의 표현입니다)을 극력 회피하여 대립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어차피 해법은 정면 대결 말고는 찾을 수 없는데,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을 당장 일으키기(일본은 중국과 싸울 힘이 없고, 중국은 어차피 일본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으니 부담스러워하고)보다 그냥 양국이 장래로 미뤄두기를 택했다는 결론입니다. 이 말을 저자가 굳이 하는 이유는, "희토류 전쟁"은 외교적 해법도 기술적 해법도 찾아진 적 없고,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씁쓸히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중등 과정 교과서에서 배우기로, 2차 산업 분류에는 "광업"이 항상 포함되었습니다. 주변에 "광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없는데 왜 이렇게 따로 항목을 만들어야 할까? 예전만 해도 미국에는 광산업자, 광산기사 등이 버젓한 직업군으로 존재했습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른바 "브리-엑스 스캔들(이걸 소재로 한 영화도 있어요)"이 터진 것도, 여전히 광업은 한번 잭팟이 터졌다 하면 많은 이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수지 맞는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미국에서도 이런 직종이 사라져감을 저자는 꼬집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숙련 직원의 평균 연령대가 50대라는데, 이 정도면 청년층에서 신규 충원이 거의 안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현장에서만 전수될 수 있는 소중한 지적 재산인 암묵지는 허공으로 다 날아갈 판입니다. 지원자가 없을 뿐 아니라 각급 학교에서 교육 커리큘럼도 마련 안 되었고 설치되었던 학과도 다 사라져갑니다. 반면 국가에서 정책으로 보호하는 중국의 경우는 이와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희토류는 그 자체가 일종의 화학 합성 물질처럼, 원료로 쓰일 만큼의 고순도 상태를 의미있게 단괴로 모으는 과업조차 매우 힘듭니다. 전문 인력과 시설이 없으면 산업으로 자생하기가 극히 어려운데, 그나마 그런 국제 분쟁이 터져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요란하게 장식하고도 일반이나 정책 당국자의 인식은 매우 미진합니다. 더 무서운 건, p60의 그래프(밸류 체인)에 나오듯, 현재는 자원의 독점자일 뿐인 국가가 미래로 갈수록 소재- 부품, 나아가 완제품의 독점자로 점차 위상이 넓어져 간다는 겁니다. 희토류가 쓰이는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을 쥐락펴락하는 국가가 앞으로는 중국이 된다는 뜻이죠. 희토류가 어느 전자제품에 쓰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고성능 기기 거의 모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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