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도자기 여행 : 교토의 향기 ㅣ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7년 11월
평점 :
점입가경이란
말이 있죠. 아무리 천하의 진미라도 한두 술 뜨다 보면 맛이 물리는 게 보통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거스르는 현상과 체험을, 살다 보면 드물게나마 접하게 마련입니다. 잘된 미술품, 고아한 고전 음악의 감상이 그러하며, 반듯하고
정직한 환경에서 자란 혀만이 느끼고 평가할 수 있는 명품 요리의 "맛"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음식 그 자체도 아닌, 이를
담는 도구, 그릇류의 풍미(風味)를 심미(審美)할 수 있는 게, 우리들 교양 있는 인간만의 특권이자 천품이 또한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도자기는 이미 어떤 실용을 초월하여, 그 자체가 완상(玩賞)의 대상(對象)이 되기도 하며, 나아가 숭배와
신앙의 초점으로 자리하기까지 하니 보기에 따라서는 그런 각성과 경지에까지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기이하기도 하며, 유한한 존재가
까마득한 무한을 응시하며 작은 한계를 벗어나고 궁극에 포함되려는 몸부림이 애처롭게도, 위대하게도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곡절로건, 도자기는 이미 도구나 식기의 위상을 오래 전에 넘어서서, 인류의 간절한 희구를 대변하는 장인들의 예술혼, 그런 장인들을
빚어낸 대지의 그윽한 깨우침까지를 모두 체화한, 아름다움의 근원이자 도(道)의 종착점, 상징이라고나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조용준
선생님의 이번 책은, 여전히 일본에 머물며 그 고장 그 강역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심원한 도자기의 역사와 성취를 천착하되, 특히
열도 동쪽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겨 그들이 "황도"로 성역시하는 교토에 뜻 깊은 시선을 주고 있습니다. 뜻이 깊다 함은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하나는 교토 인들이 오랜 세월 가꿔 와, 자국 안에서는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극찬의 대상이 되는 고유의 도자기
예술품과 그 내력, 문화를 집중 조명함이요, 다른 하나는 이처럼이나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의 아득한 원류가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 집단의 전폭적이고도 결정적인 기여가 있었음을 명쾌히 근거를 들어가며 지적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때 "도래인"들이
속한 시대라고 하면 물론 일본 역사의 고대를 가리키며, 직전 권 <규슈의 7대 조선 가마>가 추적한, 주로
임란(1592~98) 이후 끌려 온 도공들의 위대한 족적과는 또 크게 구별되는 시대의 맥락 속에서의 의미입니다.
조용준
선생의 이번 저서는 특히 저자 고유의 연구 결과와 수 차례에 걸친 현지 답사, 구미의 관련 학계 성과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의 저서들을 빼놓지 않고 탐독해 온 오랜 독자들을 더욱 큰 흐뭇함과 감동을 안깁니다. 저자 스스로도 서문에서, 그간 각별한
도자기 사랑과 열정, 학문적 이해와 미학적 천착을 가뜩이나 보여 왔던 자신이, 이번 교토 편을 다루면서는 가진 역량과 정열을 모두
쏟아 부으며 집필과 출간에 임했는지 소상히, 감개 무량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페이지 곳곳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은 구석이 없다는 게 피부로 와 닿을 정도입니다. 전작들도 페이지 곳곳을 꽉꽉 채운 정보와 공력과 정성과
통찰에 독자가 압도당할 정도였는데, 이 책은 그보다도 더합니다. 하루 정도면 독파할 수 있겠지 여겼던 일정이, 일주일을 꼬박
읽고도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밀도가 높은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드디어 만나는 교토야말로, 일인들이 신성히 여기는 모든 가치와 질서, 관념이 응축되어 찬란한 유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도 중 고도입니다. 저자는 "京都"라는 명칭부터가 고대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도읍을 일컫던 단어임을 지적하며, 현대 한국어
"바다"의 먼 어원이 된 "파다", 또 이의 변용인 "하타" 등의 성씨를 가진 도래인들이 이 고장에 오래 전부터 정착하여,
일인들의 덴노와 공경귀족이 화려한 고대 문화를 꽃피우며 후손들에게 많은 유적과 유물을 물려줄 수 있었던 기반을 제공했음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정치 스캔들로 자민당이 대 분열을 맞았을 때, 야당과 연립하여 총리직에 잠시 오른 하타
쓰토무 씨, 오랜 정치 명문가 출신 호소카와 모리히로 씨 등이 있었는데, 이들 성씨들이 또 이 책에 고스란히 등장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묘한 느낌도 들더군요.
교토에
남아 있는 화엄종 본산인 고류지(저자는 이 고찰이, 특히 신라의 불국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의
국보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등의 제작, 탄생에 모두 도래인들의 공헌이 핵심적이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부심, 한편으로는 (어쩐지
사실 자체가 애써 가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 씁쓸한 느낌이 교차하는 대목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세계 학계의 주목되는 성과도 여럿 반영하여 정성스럽고도 치밀하게 저술되었는데, 그 중 한 예가 (우리
한국 독자들도 잘 아는) 故 조언 카터 코벨 박사의 파격적인 주장들입니다. 그녀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 문화에 고대 이후 줄곧
한반도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하게 작용했음을 여러 실증적 연구와 치밀한 논리로 입증해 보였는데, 물론 그녀의 업적은 친한
성향(?)의 연구 집적에 있는 게 물론 아니고, 여전히 미지의 안개에 싸여 있던 고대사 비밀의 자락을 거두어 낸 순수 학문적
의의가 더 큽니다. 이 책에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수뇌부가 (비밀리에 군수 생산 역량도 떠맡았던) 교토 일대에 원폭을 투하할
작정도 했었으나, 코벨 박사의 은사인 랭던 워너 교수, 또 당시 군부에 몸 담았던 박사의 남편 등의 노력으로 이 계획이 저지되는 데
일정한 영향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증언도 실렸네요.
다도의
역사가 다소 극성이다 싶을 만큼, 특히 아시카가 막부 집정기와 전국시대, 이후 직전신장과 풍신수길의 통치 기간을 거치며 거의
종교로까지 격상되던 사연에 대해서, 이 책은 단조로운 통시적 서술을 피하고, 각 장의 주제가 된 도기, 자기들의 항목 곳곳에서
유격전 기법처럼 적실하게 요령껏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끼워넣듯 들려 주고 있습니다. 직전 권에서도 그랬습니다만, 도자기
산업과 유통, 이 중에서도 극히 드문 명기의 소장과 양도, 확보는, 본디 정치적 권력과 엄청난 부(富)가 동원된,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책략까지가 동반된 활동이자 극상류층들만의 문화적 고급 향락이었기에, 이 토픽을 꺼내면 역사 전반의 줄기가 따라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반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다성(茶聖) 센노 리큐, 이와 희한한 애증의 연을 유지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입니다.
두 사람의 기막힌
사연은, 가장 대중적으로는 산강장팔의 대하소설 <덕천가강> 같은 걸 읽어 봐도 비교적 소상히 짐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줄거리는 작가의 상상이 다분히 가미된 것이고, 심지어 이 책에도 일본의 다른 현대 소설가의 해석을 잠시
인용하고도 있습니다. 산강장팔의 해석은 둘 사이의 정치적 알력과 감정적 오해, 대국을 보는 시선의 차이 때문에 리큐가 장렬한
순교를 택했다고 (그 작가답게 다소 어거지로) 정리하는 쪽이나, 저자는 리큐가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오롯이 담았다 할 다기,
다완, 도자기의 본고장에다가, 자국 최고 실권자가 전쟁의 참화를 입히는 결과를 막기 위해 단호한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는 쪽으로
새깁니다. 또한 하시바 히데나가가 그 배다른(혹은 씨다른) 형에게, 국제 평화를 어지럽히지 않게 충언과 극간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는 사연도 같이 전하는군요.
전작에서도 우리 독자들은 같은 결론과 해석에 접하고 (아마도) 거의 전폭적이라 할 지지와 공감을 보냈겠습니다만(한국인이니까요), 이 책에서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
왜 우리가 놓치거나 예사로이 간과한 미의식과 정신 세계, 특유의 아름다움(모두, 우리 조상들이 발견하고 가꾸어 이 강산에서 그
시대까지 전해 온 덕목과 성취입니다)을, 일본인들만이 유독 절묘하고도 포괄적으로 파악, 수용, 예찬하며 별세계의 재창조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는가?
조선에서 일개
막사발로 "구르던" 이도다완의 원형이 열도에 건너와 명품 중의 신품으로 칭송받게 되었다는 주장은, 일제 때 활동한 저명한 학자,
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처음 꺼내들다시피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의 전통 다기, 혹은 그 어떤 방향성을 지닌
문화재에 대해 일체의 폄하 의도가 없어 보인다"고 하시지만, 그가 설파하고 감동적인 언사로 표현한 이도다완에 대한 찬미와 열렬한
미학적 규정은, 고려인(조선인)의 후손인 우리들이 듣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열렬하며, 가히 종교적이라고까지 여길 만합니다.
"양손으로 맞잡을 만한 크기이지만 그 안에 우주를 품을 만하고, 그러면서도 권위, 위압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모성의 포용과 자비를
연상케 한다." 같은 평자의 코멘트는 또 어떻습니까?
책
중에서 누누이 강조되듯, 일단 명품 도자기는 재료인 흙이 탁월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조선의 다완은 출생 성분부터의 어드밴티지를
지녔다고 평가될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저들 일인들이건 혹은 어느 국적의 전문가로부터건 간에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으로,
장인의 집중력과 예술혼이 오롯이 투영된, 그리고 오묘한 우연과 신통한 행운이 접목하여 빚어지는 요변(窯變)의 효과가 동시에
개입하여, 불가사의한 색채와 재질(명품은 보기에 무겁고 들기에 놀랄 만큼 가벼워야 한다는군요)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조상들의 놀라운 혜안, 손놀림, 성실성, 미의식, 바른 마음가짐이 도공들을 통해 면면히 전수된 결과이겠으며, 그 외에는
"해당 도자기를 누구누구가 소장해 왔는지" 같은, (미술품이나 문화재 일반 유통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provenance의 이슈가
있겠습니다. 이에는, 해당 다완을 오랜 기간 사용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는 변화, 흔적도 포함되는데, 사용한 이의 다도 숙련도나
품격, 습관에 따라 다완 역시 고상하게 "늙은" 흔적이 추가된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타고나기도 정성과 예술혼의 놀라운
결합이 있어야 하지만, 진정한 명품은 그를 사용한 이의 품격에서 비롯된다고 하니, 예술품을 빛나게 하는 본질은 결국 사람의 정신과
도덕, 몸가짐, 우주와 통하는 바른 혼임이 여기에서도 드러나는 거죠.
서평
서두에서 "점입가경"이란 말을 썼습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쓰면 쓸수록 맛이 웅숭깊어지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며,
도래인들이 지울 수 없는 항구적인 기여를 남긴 교토의 문화(도자기 관련 포함 일체)에 저자가 각별히 끌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겠지요. 또한 우리 독자들에게는, 조용준 저자님의 이 시리즈 역시 "점입가경의 감흥과 유익함"을 선사하는, 읽어가면 갈수록
새로운 눈이 트이고 정신의 각성이 깊어지는, 명품 독서의 시간, 보람, 체험을 제공했다고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