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읽기와 필사 - 국가와 국민의 약속, 헌법 읽고 쓰기
대한민국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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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제9차 개정의 산물이며 최초로 여야 합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사실 "여야 합의"는 당시에 강조하던 의의이며, 지금은 그보다는 6월 시민항쟁의 산물이라는 쪽을 더 내세우는 듯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시대에 잘 안 맞는 점도 노출되었지만, 제헌 이후 39년 동안 9차나 개정되던 헌법이 1987년 이후로는 3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은 걸로 보아 규범력만큼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해진 헌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운용의 묘를 살려, 구태여 개정에 국력을 소비하기보다 지금 있는 헌법을 잘 살리고 적극적, 건설적 해석을 통해 문언을 존중해 나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안 지키고 악용하려는 사람이 문제지 법이 문제겠습니까.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필사책이라고 해서 지난번 대통령 탄핵 결정문처럼 크라운판형에 반양장인 줄 알았는데 하드커버라서 받아보고 좀 놀랐습니다. 확실히 고급스럽게 보이긴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 10장으로 이뤄졌고 앞에 전문(preamble)이 있으며 말미에는 부칙이 달렸습니다. 전문은 그간 여러 차례 개정절차에 따라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대체로는 유진오 박사의 원문이 풍기는 박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제1장 총강에는 그 유명한 제1항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나옵니다. 고종, 순종 황제의 후손을 세워 복벽한다거나 하지 않고, 이제 국민의 손에 놓인 주권(sovereign)이 영원히 국민의 것일 뿐임을 장엄하게 선언합니다.

p28에는 행복추구권이 선언되는데 이 부분은 8차 개헌 때 들어갔다고 합니다. pursuit of happiness는 원래 미국 헌법이 아니라 독립선언서에 나오는데(광의의 헌법이기는 합니다), 이게 지금처럼 추상적인 행복 추구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기보다 (그 당시 기준으로) 사유재산을 열심히 노력한 끝에 취득하고, 그걸 권력에 의해 부당히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돈 벌 권리, 그렇게 번 돈 내 맘대로 쓸 권리인데 점잖으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기독교 신자들이 말을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저렇게 돌려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36조는 혼인과 양성존엄 평등에 기초한 가정의 보호를 규정합니다. 또 2항은 특별히 모성(母性)의 보호를 선언하는데 모성은 출산과 양육 기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항에 양성평등을 이미 선언했으므로 이게 소위 독박육아의 옹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보건권이 이 조에 놓였는데 이건 시대에 좀 뒤떨어진 듯 보이기도 합니다. 보건권이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이 조(條)에 배치된 게 체계상 어색하다는 뜻입니다. 9차 개정 당시의 시대 감각으로는 그럴 만도 했을 것입니다.

p188의 제86조 1항을 보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동의라는 건 사전동의를 말하며 사후동의는 동의가 아니라 승인입니다. 이 조항은 제헌 당시부터 계속 이어져왔는데 한국 헌법에서 확고한 내각제적 요소(대통령제 하라고 해도)로서, 만약 국회가 총리 임명 동의를 안 해 주면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YS 이전에는 대체로 대통령의 당이 국회다수당이거나 의석수 1당(과반은 아니더라도)이었기 때문에 큰 의의가 없었고, 국회 동의가 없어도 서리(署理)라는 형식으로 임명하여 국무총리의 직무를 사실상 수행했습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위헌이었는데, 과거에는 지금처럼 상시 개원(사실상) 국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화되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p228에 105조가 나오는데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임기 등을 규정합니다. 우리 나라는 특이한 게, 헌법재판관은 9인이라고 헌법에 규정된 반면, 대법관의 정원은 법원조직법에서 정할 뿐이므로 국회에서 일반 법률의 개정 절차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112조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 등이 규정됩니다. 농업 경영 합리화를 위해 농지를 임대한다거나 융통성 있게 정책을 펴지 못하고 오로지 거주자, 직접 경작자에 한해 소유를 허용하는 건 p268의 121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때문인데, 해방 직후에는 이 조항 아니었으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에 중요했겠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좀 변화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런데 말을 이렇게 하고 보니, 서평 초두에 제가 개헌하지 말자고 했던 것과 꽤나 모순되네요 ㅋㅋ 

편제가 고급스럽고 필사란도 기능적으로 짜여져 아주 만족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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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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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작가님의 신작 장편입니다. 저는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단편집)>, <해를 품은 천리안>, <사랑의 묘약> 등을 읽고 전에 리뷰를 남겼는데, 세 편 모두 개성이 다릅니다. 매우 도회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델리키트한 삶을 소재로 삼은 것도 있고, 오랜 전통의 고장 진주 출신 작가답게 꼬장꼬장한 양반의 가치관을 체화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공간, 시대를 초월해서) 상류층의 삶들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건데, 제 눈에는 꽤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저희 모친도 저 밑에 통영여고 나온 분이라서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본래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입니다. 기생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니라 논개는 원래 주달문이라는 학식있는 인물의 딸이었는데, 그 삼촌이라는 자가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먹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놈은 어떻게든 천벌을 받기 마련인데(p61 참조)... 아무튼 논개(아명은 옥)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기질이 영특했으나 이런 곡절을 거쳐 관비로 등재되었고 천한 기생의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소설에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실 이런 배경이 구태여 세팅되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 기생은 요즘 술집 아가씨들처럼 돈 몇 푼에 몸을 파는 매춘부하고는 좀 성격이 달랐습니다. 기생집을 드나드는 손이라고 해도 쌩으로 저질들이 드물었으며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주류였기 때문에 기생 역시 그에 합당한 소양을 갖췄어야 했습니다. 아무하고나 잠을 자면 금세 소문이 나 그 세계에서조차 싸구려로 찍히고 저급의 색주가로 팔려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교양 있는 선비들을 상대하니 들은 풍월로라도 지식이 쌓였고, 세계관과 철학이 사대부의 그것으로 마이그레이션되는 게 보통이었겠습니다.

아마 고객들(?)도 술과 웃음을 파는 계집이라고 함부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겠고, 고객에게 존중을 받으니 고유의 기풍이 생겼겠으며, 이런 기풍이 있으니까 왜장을 끌어안고 죽는 의기를 발휘한 이런 인물도 나온 것이겠습니다. 수백 년 후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창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교들을 접대했는데, 파리 해방 후 그 창녀들은 모조리 거리로 끌려나와 삭발을 당하는 등 공개 모욕을 당했습니다. 손님을 가려받지 않은 당사자들도 한심하지만 사회 최하층을 상대로 무슨 나치 잔재 청산을 한다며 난리를 친 파리 시민들이라는 비겁한 작자들도 역겨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조선이 20세기 초 프랑스보다는 더 사회윤리와 기강이 잡힌 사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겅상우병사 최경회가 p109에 등장합니다. 경북 옆에 영해라는 지방이 있는데 지금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최경회도 원래는 전라도(p110) 능주 사람인데 냉면으로 유명한 지금의 화순(p124)입니다. 영해 동헌의 우물물이 좋다는 등 성지혜 작가님 특유의 지방색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김씨 부인도 조선조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부인으로서 그 이상적인 미덕, 인격, 품행이 두드러집니다. 진주 교방은 소례풍이라는 인물이 대모 구실을 하는데, p151 이하에 나오듯이 이 사람도 본래가 천출이 아니라 억울한 사정이 있어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것으로 설명됩니다. 통하는 게 있어야 사람을 내 여유 안에서 봐 주든지 할 텐데, 주논개와 소례풍은 살아 온 삶의 궤적 면에서 이렇게 닮은 데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일상이라는 게 모두 날아갑니다. 평범하게, 우리들처럼 트위터 하고 인스타하면서 지내던 우크라이나의 여인들, 젊은이들의 삶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p182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에서 삼망(三忘)이라는 말이 인용되는데 집(가족), 부모, 자신을 잊으라는 뜻입니다. 최경회는 원래 지방관이었으나 관군이 박살난 후에는 의병장으로서 맹활약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런 패턴이 많았습니다. 진주(晉州)는 조선 시대 삼남 최대 인구 밀집지 중 하나였으며 왜군에 대해 가장 처절하게 맞셔 싸운 고장이었고 피해도 가장 심했습니다. 논개 같은 민족혼의 한 상징은 그런 배경 하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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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일자리 혁명 - 사라지는 일자리와 살아 남을 일자리
이종호 지음 / 북카라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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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단연 핫키워드인 세상입니다. 전세계 증시에서 AI 중심으로 돈의 큰 흐름이 형성되며 나스닥이고 상해고 할 것 없이 이 섹터에 미래가 달렸다는 듯 움직입니다. AI에 대한 책도 무척 많이 나오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많습니다. 저자 약력을 보고 과연 이 책이 나의 의문에 답을 줄 수 있을지 신중히 생각하고 책을 골라야 할 시점입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5를 보면 인간의 생리적 대역폭이 산술급수 정보에 최적화했을 뿐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환경에는 애초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사람은 흑이냐 백이냐를 판단하는 게 고작이지,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 확률이 30%라고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50% 이하이니 우산을 챙기지 않아도 되겠다고 대충 결론 내리는 게 고작입니다. 확률적 사고방식은 특히 다양한 확률분포 시나리오가 가능한 주식 투자에 반드시 필요한데, 섬세하게 전략을 짜지 못하고 무작정 큰돈을 박으니 손해가 크게 나는 게 너무도 당연하죠. 인공지능은 감정적이지 않고 섬세하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이 짜 주는 전략을 따라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p100을 보면 인공지능의 문제점을 딥시크가 여실히 보여 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공표한 개발비를 보면 아주 적은 돈이 들었을 뿐인데, 가성비 면에서 이보다 영리한 성공 패턴이 또 없을 텐데 말입니다. 저자는 딥시크가 개발 과정에서 오픈에이아이라든가 다른 앞선 주자들의 데이터를 무단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합니다. 도둑질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친다면 이 역시 대단한 가성비를 증명한 셈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설령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의 기술을 도둑질했다 쳐도, 그를 응징할 어떤 사법적 방법도 현재로서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이 암호화폐를 사방에서 훔치고 들어도, 피해를 본 일본이나 미국 어디에서도 북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 듯합니다. 

p68에 나오듯 오픈에이아이 역시 일론 머스크한테 소송을 당했습니다. 코딩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건데 사실 그 많은 자료를 학습시킬 때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일일이 받았는지도 의문이고,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인풋시켜 녹여냈다고 해도 과연 하나하나의 기여를 1/(10^n)으로 하찮게 틍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생성형 엔진의 출생 자체가 구린 점이 많은데, 그 성과를 과연 오롯이 오픈에이아이 등 몇 군데의 몫으로 돌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p114에서 재인용되는 이광형 전 카이스트 총장은 AI를 통제할 수 있게, 그것이 자신을 복제하여 무한히 힘을 뻗어나가게 하지 못하게 기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이른바 VUCA의 위험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반론도 소개하며, 움직이는 생체를 갖지 못한 AI가 어떻게, SF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방어하고 방해가 되는 세력을 공격하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실제로 인간은 대단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으며 자신을 번식시키려는 맹목적 의지 같은 걸 지닌 이상한 존재인데 이걸 기계덩어리가 따라할 것이라고 여긴다는 자체가 과도한 감정이입일 수 있습니다.

부동산 거래가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으나 다방이라든지 중개 사이트, 앱도 새로 생겼으므로 공인중개사라는 직종이 그리 유망하지 않습니다. 라섹 수술이 발달하니 안경, 콘택트렌즈 기술자의 입지가 줄어드는 세상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188). 저자는 직업 중에 소멸 고위험군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고 섬세하게 짚습니다. AI 아니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자기만의 장점을 잘 살려 발전시키고 주변과의 소통을 원활히하면 끝내는 살아남는 인적 자원이 될 터이니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히 노력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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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보 이베이 하루만에 끝장내기 - 월 1000만 원 수익 내는 ebay의 핵심 팁 37가지
금교성 지음 / 라온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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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의 한국화 사이트가 옥션이었습니다. 이베이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쇼핑몰이었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저렇게 현지화를 따로 해야 할 만큼 인지도가 낮았습니다. 지금 이베이가 한국인들에게 (새삼) 관심을 끈다면, 거기서 뭘 사려는 욕구보다는 나의 무엇인가를 팔려는 방향에서입니다. 즉 소비자가 아니라 셀러로서 거기 입점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는 건데, 실제로 아마존닷컴이나 쇼피파이 같은 데서 돈 쏠쏠히 버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작년 9월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생초보 쇼피파이...>를 읽고 리뷰한 적 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온라인 리테일셀러에게 한 번에 큰 매출을 가져오는 기업고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이다(p80)."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첫째 클레임 발생 비율이 낮다. 둘째 무엇보다 액수 자체가 크다. 셋째 고정 매출을 만들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자체 수요 조달을 위한 전형적인 기업고객보다는 "나(셀러)를 지렛대 삼아 드랍쉬핑(dropshipping)을 하려는 재판매 셀러를 더 빈번하게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나한테 물건을 떼어가서 다른 누구한테 파는 상인인데, 이 사람이 나하고 비슷한 고객(지역, 계층, 산업)을 상대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접근하기 힘든 누군가를 상대한다든가 그런 지역에서 영업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인도인 고객의 예를 듭니다. (본격 B2B 거래에 대해서는 p82 이하를 참조하십시오)

이런 플랫폼은 얼마나 셀러, 상품의 노출이 공정하게, 즉 가격이나 고객의 만족도에 따라 원칙적으로 이뤄지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건 한국의 배민 같은 배달앱도 마찬가지라서 맨날 좋은 자리를 돈 받고 팔아대기나 한다면 셀러들 입장에서 의욕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저자는 p41에서 이 점을 지적하되 상당히 조심스럽게, 우회적으로 표현합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좀 쉽게 풀어써 보자면, 이베이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아직은 공정한 노출 원칙을 지키지만 언제든 변화할 여지는 있다. 돈이 되는데 왜 안 하겠는가. 다만 아직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니 이걸 최대한 이용하고 싶은 셀러는 참고하라, 이 정도였습니다. 

자영업자들은 당장 현금이 있다고 함부로 써대서는 안됩니다. 이 중에는 부가가치세로 대리수납한 금액도 있어서 납부기한 안에 세무당국에 납부할 준비를 해야 하고, 종합소득세 등도 따로 떼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p69 같은 곳에서 저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특히 이베이 같은 데서 셀러로 번 돈을 계산, 평가할 때는 기간별 계산을 반드시 따로 해서, 내가 지금 돈을 과연 벌기는 하는지, 사업체가 영속이 될 만큼이나 버는 건지를 꼭 체크하라고 충고합니다. 돈이 수중에 있다고 다가 아니라는 거죠. 이베이가 정산은 바로바로 해 주는 편이라서, 오히려 나의 재무감각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하라고 합니다.

p107에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라는 대로만 해도 팔리(고 장사가 꽤 되)더라구요."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집 근처 어느 편의점 점주분을 보면, 느낌상 분명 대기업 사원 하다가 저성과로 밀려난 사람 같던데, 저렇게 융통성이 없고 상품 자체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데 천하태평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안주하는 걸 보고 과연 저렇게 살아도 생계에 지장이 없나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편의점이 다 망하거나 주인이 바뀌어도 그분만은 몇 년째 그대로인 걸 보고, 이 장사는 첫째 입지, 둘째 매장 평수, 셋째 대형브랜드, 넷째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따라하기가 아닐까 싶더군요. 이름난 프랜차이즈나 플랫폼이 그렇게 된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베이 역시 이렇게나 오래 번창하는 건 그만큼 축적된 우수한 매뉴얼과 폴리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p147 이하에서 좀 다른 이야기도 하십니다. 만약 지금보다 더 규모를 키워서 다른 레벨의 사업가로 크고 싶다면? 이게 "1인 사장"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만기친람이라고 모든 일을 자기가 손수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그런 기질도 좀 바꿔야 합니다. 이 이치는 이베이셀러뿐 아니라 일반 오프라인샵 자영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잘한다 싶은(혹은 앞으로 그렇게 될) 사람이 있으면 과감하게 좋은 보수를 줘서라도 데리고오고, 확실한 분업을 마련해서 유기적인 팀을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는 초보 사장 레벨을 이미 벗어났고 자리가 확실히 잡혔을 때에만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이베이에 입점하기 전 최소한 알아두어야 할 주요사항을 쉽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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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의 미래 3년 - 2027년 반도체 골든 타임, 무엇을 준비하고 실현할 것인가
박준영 지음 / 북루덴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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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들의 추격 때문에 한국 경제가 큰 위기입니다. 일찍이 이건희 회장은 "나중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나 해 주며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마사지 일이 뭐 어떻다는 게 아니라 그 나라에 번듯한 산업이 없으면 젊은이들이 다닐 회사가 없고, 불안정한 고용 패턴에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 예전부터, 언젠가는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말들은 있었지만 반도체나 차화정은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서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드디어 그날이 온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전 산업계를 엄습하는 요즘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반도체에서 전방/후방이 정확하게 뭘 뜻하는지에 대해 p72에서 아주 쉽게 설명됩니다. 그 비유를, 정유산업을 통해 하고 있으므로 이참에 정유산업의 전후방까지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ㅋ). 참 재미있는 게, 정유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산업은 원자재 쪽을 전방이라고 하고, 제품 방향을 후방이라고 하는데(이게 상식입니다), 반도체는 정반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전부터 이게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저자 박준영 교수는 "원천보다 제품을 더 중시한 구분 방식"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줍니다.

과거, 삼전은 시스템반도체의 아성 인텔 등을 따라잡기는 어차피 어렵고(지금 인텔은 좀비로 전락했습니다. p139도 참조), 범용메모리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발휘해야겠다는 전략으로 올인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한국은 2010년대 내내 먹거리를 마련하지 못했을 테고 이제서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10년 전에 먼저 왔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전략적 안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 가능한 대목입니다. 책에서 "황의 법칙"이란 무어의 법칙 변형(p222)으로서, 저자가 현직 때 모셨고 삼전 반도체총괄 사장을 지냈던 황창규 전 KT회장이 "메모리 생산용량이 매년 2배로 늘어남(p258)"을 가리킵니다.

책에서 굉장히 뼈아픈 지적을 하는데, 저때는 삼전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고강도로 인력을 굴렸기 때문에 초격차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MZ가 주축이 된 현장에서, 더군다나 노동법도 개정된 판에 누가 야근을 하려 하겠습니까? 이건희처럼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면 그 존재나 등장만으로도 부하직원들에게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요즘 오너들에게는 그나마 이런 마력의 발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39에서 저자는 "경영, 기술, 조직문화의 측면에서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합니다. 바람직하든 그 반대든 이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TSMC는 지금과 같은 거인이 되었는가? p59에 중요한 서술이 있습니다. "생산에서, 파티클에 위한 수율 저하까지, 설계에서 참작해 줄 수는 없다." 이렇게, 파티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방식을, TSMC는 바닥과 근본을 살핌으로써 해결했다고 나옵니다.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 때 (거꾸로) 기발한 타개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일반적인 설계는, 비용 편익 분석 후 사소한 문제는 그냥 건너뛰는 게 차라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만, 반도체 설계는 그런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그 복잡한 설계를 바닥부터 다시 들여다본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습니다. p162에는 "설계, 전공정, 후공정, 설비, 소재 등 모든 공정을 존중하는 위계 철폐가 절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전이 과연 이런 교훈들을 내재화하면 다시 세계의 거인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앞에서 황의 법칙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황창규 박사는 원래부터 천재로 칭송받던 인물이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미디어에서도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판이 나왔고, 이 책에서도 2008년 점차 회의론이 고조되었다고 솔직하게 나옵니다.투자자들도 하도 미디어에서 많이 들어서  그 이름이라도 알겠지만 증착(deposition)과 식각(etching)이 3D 반도체 기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보는 자동화, 일치화되지만 물질과 노동은 측정되는 값 바깥의 결과가 많다(p276)." 앞 p47에도 나오지만 "자동화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고 이를 하루빨리 전(全) 공정 혁신으로 이끄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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