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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5월
평점 :
역사책
아니라 모든 인문서적, 혹은 책 일체의 소명이, 당대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대고,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해답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현대사를 배우며 항상 당혹스럽게 다가왔던 대목이, 1) 대체 갑신정변은 왜
시도되었으며 또 무참히 실패하였는가 2) 갑신정변의 주모자 중 아이콘처럼 후세에 전하는 김옥균은 왜 "그 사람"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배후가 혹 있었다면 누구인가 등이었습니다. 2)와 관련해서는 해방공간에서 안두희에 의한 백범의 암살이라든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죽음, 나아가 (앞의 두 사건 사이에 시기적으로 우연히 낀 먼 바다 저편의) 케네디의 비극 등이 함께
연상되는 면도 있습니다.
20세기
전반을 인접국에 의한 치욕스러운 병탄으로 채웠기에 우리는 보통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에 대해 아주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선/악 이분법으로 색깔 칠하기를 시도하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습니다. 이하응에 대해서는 대개 개방과 개혁을
반대하고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은 "쇄국정책"의 화체처럼 인식한다거나,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인) 갑신정변과 그 주동자들을 놓고는
"친일파, 준비부족, 단견, 성급함" 등의 특성을 들어 역시 부정적인 범주에 마구 편입한다거나 같은 태도가 있죠. 헌데
1880년대의 친일 행적과, 이후 삼십 여 년이 지나 동족과 고유문화를 말살하며 철저한 사익 추구에 몰두한 행위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것만은 아닙니다. 흔한 결과론을 가지고서야 무슨 말을 못하겠으며, 오히려 갑신정변이 당시 행여 성공(거의 가능성
없지만)이라도 했다면 향후 조선의 행로가 또 어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확정된 팩트 위주로 지난 역사를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옥균의 경우 저자의
평가는 후한 편입니다. 책 전체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표현대로, 명문가 출신인데다 일찌감치 관직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
첫걸음을 밟았고, 그냥 자연스러운 경로만 밟았어도 어느 정도는 성공과 부귀영화가 보장된 인생이 구태여 모험을 한 데에는 뭔가
남다르고 비상한 각성과 각오가 내면화한 면이 있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실제로 그는 귀공자다운 풍모에 영민한 지성을 지녔으며, 무슨
소외된 하층민 분자들이 막판에 몰려 무모한 도박을 시도하듯 무리수를 밟을 필요가 전혀 없는, 차라리 기득권 금수저에 속한 편인
처지였지요. 변혁은 수세에 몰리거나 불리한 진영, 계급에서 더 목청을 높여 옹호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반면
홍종우의 경우, 몰락 양반이라는 아슬아슬한 신분치레라 해 봐야 사실상 상민에 가까운 빈한한 처지였으며, 강점기 초반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백범이 내내 하시(배운 바 없고 학식이 일천하며 신분이 낮다는 등)되었던 분위기를 연상시키듯, 그 부류 안에서는 2급으로
치던 보잘것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과거 급제 등을 통해 변변한 관직에도 오른 바 없고, 다만 체구가 크고 억센 기질에 비범한
기상을 지녀 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풍모이긴 했나 봅니다. 가까운 촌수는 아니었으나 같은 문중 출신인 홍영식 등이 갑신정변의 핵심
지도층이었듯, 그 역시 김옥균 등과 망명지에서 일정 부분 고락을 함께하던 개화파였습니다. 이런 그가 왜 김옥균을 암살하였는가?
책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청 제국, 고종(과 민자영) 측, 일본 등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배후를 짐작합니다. 배후
세력 중 하나로 조선 개화파의 적극 후원 세력을 자처했던 일본이 끼어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겠죠. 하긴 일본은 이미 갑신정변
당일에도 뒤통수를 친 바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긴 하지만.

홍종우에
대해선 우리 독자들이 잘 몰랐던 면모를,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자세히 소개해 줍니다. 우선 그는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로
프랑스에 건너가(책에도 나오듯 여러 현지인들의 후원이 있긴 했습니다) 선진 문물을 배워 조국의 개화에 도움이 되려 했으며(그의
역량과 영향력의 현실적 한계가 어느 정도건 무관하게, 본인 딴에는 매우 진지한 의도로 시작한 듯합니다), 이 와중 해외에는 최초로
"춘향전", "심청전" 등의 번역 소개에 큰 공로를 남기기도 했다는 점이 (저자께서 누누이 강조하듯) 매우 인상적입니다. 책에는
그 번역서들의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요약되었는데, 우리가 아는 표준적 스토리와는 천양지차로 차이가 나 오히려 더 흥미롭습니다.
홍종우가 설령 엉터리로 저런 고전(당시에는 고전 취급도 안 했겠으나)을 알았다 쳐도, 오늘날같이 구비/기록 문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고 그를 대중 교육을 통해 보급하던 시절이 전혀 아닌지라, 그리 이상할 건 없습니다. 양반은 눈길도 주지 않던 비루한
학문(점성술 등)의 번역(여기에 오히려 프랑스인들은 큰 관심을 주었죠)에 치를 떨며 지겨워하던 그였다면, 고전 문학에 대해선
어떤 태도였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죠. 그가 만약 저승에서 현대의 한국을 주시한다면, 자신의 이런 행적(춘향전 등의 불어 번역에
기여)가 후손들의 관심을 끄는 사실에 오히려 놀라워했을 겁니다.
김옥균이,
강점기 동안에는 총독부 당국을 통해 과장되이 미화되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설픈 혁명가 흉내를 내다 망한
친일파 정도로 흉한 이미지가 씌워진 면이 있습니다. 정/부정, 흑/백의 이분법 범주로는 전혀 유리한 평가를 못 받을 그이지만, 이
사람을 암살한(친분과 의리로 교유하다 느닷 배신했다는 점에서 반인륜 요소까지 있는) 홍종우는 그럼 이미지가 긍정적이냐, 그건 또
전혀 아닙니다(그 전에, 아예 이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듯). 만약 정부 당국의 매수와 감언이설에 넘어가
"거사"를 결행한 소인배라면, 그의 이후 긴 행적에는 그런 "나쁜 인격"과는 잘 매치가 안 되는 기이한 발걸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첫째
옥균을 갓 처치하고 돌아온 후 과거 급제(요식행위), 당상관 부임 등 평생의 한풀이 소원성취를 다해 본 그로서는, 이상하게도
정해진 코스라 할 여흥 민씨 척족의 하부로 냉큼 편입되지 않고, 오히려 소신 발언을 일삼아 주위를 무안하게 하거나, 엇박자 행보를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이는 물론 마냥 긍정적으로 볼 건 아니고, 그로선 보다 먼 정치적 장래를 내다보고 내디딘 신중한 정치
술수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저자께서 정리, 제시한 여러 팩트들은, 혹시 그가 (참으로 보기 드문 유형의) 괴짜 소신파(어느
세력으로 분류하기 힘든), 그 나름 마음에 순정과 대의를 간직한 진짜 의기지사였을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이는 제주 목사로
부임하고 난 후 여느 탐관오리처럼 가렴주구에 몰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뚜렷이 부각되긴 하네요.
홍종우의
생과 각종 사건의 중심에 섰던 그 진짜 의도가 완전한 암흑에 싸여 있다면, 김옥균은 그보다는 덜 심해도 여전히 많은 행적이
의문을 남기는 게 사실입니다(저자의 표현을 다소 변형하자면). 비(非)학자 출신 인기 대중서 저술가인 저자는 내내 이런 주제를
골라잡아 우리 독자들과 소통해 왔으며, 그의 독자들이 호응을 보내 온 이유도 이런 주제의식에 아마 크게 기댈 겁니다. 옥균은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 보장된 출세를 멀리하고 구태여 목숨을 건 가시밭길을 택했다가 진짜 목숨도 날리고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자신뿐 아닌 가문과 친우들의 안위마저 위협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진정성, 사상적 깊이"에 대해 더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견해는 물론 타당합니다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른바 궁정 쿠데타류의 정변이란 대부분 "시스템의
중추적 일부, 권귀 중의 권귀"들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아주 특이할 건 없다고 봅니다. 옥균뿐 아니라, 철종의 부마였던 박영효
등 정변 주체세력 대부분이, 곱상하고 뽀얀 얼굴을 한 귀공자풍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홍종우 역시 특별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기보다,
어느 정도의 선의를 품은, 힘깨나 쓰던 협객형 인물이었을 뿐 탁월한 경세가 반열에 끼기란 어렵다고 봅니다.
책은
대체로 재미있게 쓰여져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만, 1) 묄렌도르프 (목참판)의 이름이 내내 "뮐"렌도르프로 쓰여져 그 점이
의아했습니다. 철자가 Möllendorff이므로, ü가 아닌 이상 "묄"이 맞겠습니다(현지인 발음이나 현행 외래어 표기법 규칙 등
어떤 기준에 의해서도) 2) 예컨대 다음 사진처럼, 일일이 원어(여기선 러시아어 키릴문자)를 병기해 주시는 성의는 감사하지만,
띄어쓰기가 안 된 부분이 있어서 좀 불편했다고나 할까요?


파벨(이름). 표도로비치(부칭). 운테르베르게르(성)
거사
직후 왜 개화파들이, "쇄국 정책의 대명사인" 흥선대원군을 자측에 끌여들였는지는 참 의문인데, 저자께서는 "텐진에 억류된 노인이
이후 현실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대중의 호응과 관심을 끌기 위해 이름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에
동의하지만(이하응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포퓰리스트스러운 면이 많았죠. 유능하긴 했으나), 사실 대원군이 골수에 박힌 수구파도
아니었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때 큰 원성을 샀던) 유림의 지지를 얻으려 일종의 아젠다 선점으로 그런 정책을 취했을 뿐으로,
너무 도식화한 노선에 고정시킬 필요가 애초에 없다고 봅니다. 임오군란 때에는 왜 그런 스탠스였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개화-수구의
노선 분류보다는, 민씨 척족에 대해 이에 영합하느냐 아니면 모조리 축출하고 새 질서를 마련하느냐 쪽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개화파들이 공연히 이하응을 끌어들이는 인상을 주어 결과적으로 민자영의 반감을 불렀다"는, 인과 관계가 뒤바뀐
주장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