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기출 국어 최고난도 (화작문.비문학.문학) 보감 (2017년) - 2018 수능 대비, 가장 어려운 수능 기출 국어 보감 (2017년)
레드카펫 국어 연구소 지음 / 레드카펫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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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시험이라고 해도 기출문제의 분석이 중요합니다. 수능시험에서 국어 영역(저희 때에는 언어영역이라고 했지만요)은, 이게 안 되는 학생들에겐 상당히 골머리를 앓게 하는 장벽이더라구요. 반대로, 되는 학생들은 별 노력 없이 그냥 술술 풀리기도 한다던데, 제 생각에는 그것도 어느 수준까지만 통하는 얘기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한 고득점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고난도 기출의 복습을 통해, 자신이 왜 특정 유형은 매번 틀리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고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애들 대부분은, 자신이 약한 유형을 습관적으로 매번 틀리면서도 전혀 반성 없이 그런 실패에 익숙해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애들은 또한, "나에겐 태생적으로 그런 약점이 있음"을 순순히 인정하며 그런 함정, 루프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않는다는 것도 닮았습니다. 제 생각에 수능에서 고득점하는 애들은 반드시 높은 지능지수와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집념을 갖고 자신의 약점을 끝없이 보완해 나가는 애들이 실제 점수가 잘 나오고, 따라서 명문대에도 진학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머리가 좋아도 왠지 자기 만족에 쉽게 빠지거나 하는 타입은, 이상하게도 고득점이 안 나오더라구요.

현재 점수가 잘 나와도, 이런 기출을 풀어보고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자신이 틀리곤 하는 유형을 전략적으로 날카롭게 파악한 후 자기 반성 기제를 다져나가는 타입이, 실전에서 담대한 마음가짐으로 실수를 최소화합니다. 고난도 기출의 풀이는 그래서 중요하며, 자신과의 정직한 대화와 점검의 시간이 되어야지 기계적으로 시간만 메꾸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행히 푼 문제는 그게 내가 푼 게 아니라는 겸허한 성찰,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치밀한 분석으로 기진맥진할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30분을 공부해도 이런 진정성과 밀도를 갖춘 시간이, 멍하게 연습장 먹칠만 하는 세 시간, 서른 시간보다 훨씬 보람 있습니다.

이 책은 역대 수능 기출 문항 중, 난이도가 제법 높은 문제들을 잘 골라 풍부한 해설과 함께 분석해 놓은 교재입니다. 고난도 기출이기 때문에 주로 상위권이 참고로 해야 학습 능률을 높일 수 있는 내용입니다만, 간혹 "난이도 중"의 문제들이 끼어 있기 때문에 현재 1등급을 노리는 중위권 학생들도 큰 부담 없이 풀이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래 문제는 경찰대 기출 중에서 집필진이 엄선한 문항입니다. 경찰대, 사관학교 기출도 다뤘다는 점이 좋습니다. 경찰대나 사관학교 문제라고 해도 기본적인 경향은 같으며, 다만 이런 중상 이상의 난이도에서 조금씩 특성이 달라질 뿐이니 고난도 위주로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중하 밑으로는 일반 수능 국어와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정답(물론 틀린 것)은 ⑤입니다. 뒤의 해설(당연히 별권 분리가 가능한 제책 편집입니다)에 보면, 두 아이의 세계에 속한 폭력과 피폭력이 교차하는 모습으로 제시되었으며, 폭력"의 세계"와 비폭력"의 세계"는 "공존"할 뿐, "번갈아 가며 제시된 건 아니다"라고 풀이합니다. 물론 타당한 말씀이나, 제 생각을 좀 덧붙이자면, 지금 이 영화 속에 묘사된 세계는 오로지 암울한 폭력만이 판치는 단일한 세계이지, 두 세계가 교차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⑤가 답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또, 번갈아가며 제시된 게 혹 있다면, 그건 두 아이의 각각의 세계(혹은 과거와 현재)들이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니므로 역시 답은 ⑤라고 봐야겠죠.

과학 지문 유난히 어려워하는 애들이 있는데, 사실 과학에서 어려운 건 물리나 일부 화학 원리처럼 이치를 정확히 깨닫고 응용하는 대목이지, 이런 생명과학(생물학)에서처럼 어떤 메카니즘의 서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며, 이런 게 안 된다면 과학에 약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습득, 정리하는 능력 전반이 부실한 거죠(그래서, 철학이나 인문 지문도 잘 틀립니다). 또한, 이런 지문 이해 능력이 평균 정도라고 해서,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며 우쭐거릴 일도 전혀 아니고요. 이게 과학 적성에 대한 테스트라면, 과학 영역에 출제되어야지 1교시 국어 시간에 물어 볼 사항이 아니겠죠? 다시 말하지만, 지문에 나와 있는 정보만 정확히 습득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들입니다. 따라서, 고난도랄 것도 딱히 없습니다.


이 문제들은 작년(2016) 9월 평가원 모평에서 뽑은 건데, 제 생각에는 "중"은 "하"로, "상"은 중으로 한 등급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간혹, 해당 전공을 마친 졸업자가 "어휴, 이런 걸 애들한테 어떻게 풀라고 내지?" 같은 반문을 하는 걸 봤는데, 그런 분들은 대개 단편적 지식 습득 위주로 전공을 좀 부실하게 마친 분들입니다. 개별 지식 암기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전체 그림이 안 보이면 그런 건 공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고등학생들도 정신만 집중하면 얼마든지 습득이 가능한 문제이니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 적성과는 무관하게 본문에 밑줄 쳐 가면서 정보의 정리 습득만 잘 하면 누구라도 해결 가능합니다. 이런 지문에서는 기본적으로 고난도가 있을 수 없음을 바짝 명심하고 풀어야 합니다(정신만 차리고 읽기만 하면 답이 다 나옴). "장내 미생물은 포도당을 합성하는 게 아니라 다른 대사 부산물을 통해 숙주에게 에너지원을 제공함. 숙주(여기선 반추동물)도 섬유소를 자기 효소로 직접은 분해 못 함. 숙주의 체내(미생물의 외부 환경)이 산성이 될 때 더 왕성히 살아나는 미생물이 있고 그 반대가 있음. 너무 산성도가 높아지면 어느 미생물(산성 환경에 친화적인 녀석까지)도 맥을 못 춤." 이 정도가 지문에 담긴 내용의 전부입니다. 과학이 아니라 국어라는 점, 지극히 평면적인 기술적 줄거리가 다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을 상대로 출간되는 "과학 서적"도 다 마찬가지라서, 대부분은 고교생, 중학생 들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한글만 깨쳤다면 말이죠.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자기 나름으로 소감을 적어두고 같은 실수를 절대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문법은 사실 이런 지문 제시를 통해 처음 사항을 접하고 문제를 푸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국어 교육 과정에서 문법을 좀 따로 배우고 이치를 이해해야 실전에서 시간이 절약됩니다. 구체적으로 아래 문제를 보면....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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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2 - 생존하는 기업은 실패에서 배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2
윤경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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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성공자의 본을 받아 잘 닦이고 빛나는 길을 따라 걷는 게 아니라, 실패한 사람의 쓰디쓴 좌절 그 과정과 결과에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같은 교훈을 추출해 경각심을 갖는 역(逆)의 벤치 마킹을 뜻합니다. 어쩌면 성공한 기업의 사례에도 미화, 과장이나 우연한 행운의 개입이 있을 수 있고, 진짜 성공 비결은 기밀 유지나 전략적 이유 때문에 공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한 조직이나 개인의 사연은 가릴 것 못 가릴 것 구별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보통입니다(물론 이 역시, 과하게 그 실패자의 탓으로 모든 걸 귀인하는 결과론의 오류가 낄 수 있지만요). 성공의 길은 좁고도 드물며 (그런 성공을 거둔 이에게 한 번 찾아 왔었듯) 두 번 같은 기회가 찾아오란 보장도 없지만, 실패는 타인들에 의해 (안타깝게도) 되풀이되는 게 보통입니다.

남을 따라해서 같은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지만, 남이 잘못 밟는 길을 피해가며 같은 실패를 면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꼭 대박이다 싶은 성공을 못 거두어도, 최소한 큰 실수 없이 여태 갈무리한 바를 잘 지키기만 해도 적잖이 복 받은 인생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치명적인 실수를 잘 피하는 "차선"의 경영법, 나아가 처세 일반의 요령을 잘 가르쳐 준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사람 마음이 본디 편협하고 사악한 데가 많아서, 남의 찬란한 승승장구의 무용담보다는, 무슨 이유에서건 본디 목표를 달성 못 하고 좌절하거나 강자, 적자(適者)가 의외로 패퇴하는 이야기가 읽기에도 더 재미나게 마련이겠고 말입니다(물론, 뭘 공부하면서 읽을 때는 그런 느긋하고 안이한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요)

책에는 추상적인 설교, 교훈보다, 잘나가다 갑자기 쓰러진 기업, 그 좋았던 실적, 진로와 비전을 유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 기업, 누구나 승승장구할 것으로 내다보았으나 의외의 좌절과 파탄을 맞은 기업 등 매우 다양한 사례가 구체적으로 담겼습니다. 사례의 나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안목으로 정리, 유형화, 일반화까지 같이 따라옵니다. 사실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이제 웬만큼 단련도 되어서 현황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독자, 세상 물정에 어지간히 밝은 타입(무슨 환상에 빠져 있거나 막 우기면 현실이 되는 줄 아는 이들 빼고)이라면, 이 책의 사례만 읽어도 자동으로 교훈 추출이 이뤄질 겁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세상의 흐름이 절실히 와 닿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 매 챕터마다 적절히 시도되는 저자의 "교훈화"를 통해 손쉽게 소중한 지혜를 배워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사례와 깔끔한 명제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고, 그럼에도 전체 분량은 부담없이 독자가 소화할 만한 수준임이 만족스럽습니다.

저자는 "경영철학"과 "고집"울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따끔히 이릅니다. 고집은 그저 직원들에게 지루한 교장 선생의 전교생 상대 훈화처럼만 수용되지(도 못하고 한쪽 귀로 흘러나가지)만, 경영철학은 직원들의 마인드셋과 (심지어) 사소한 육체적 동작에까지 다 스며들어 흥하는 조직의 기세를 지탱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좀 다른 맥락에서 이 책 저자가 소개한 일화지만, 일본 오츠카 가구회사에서 부녀 CEO가 소송전까지 불사하면서 대립하다 그 굴지의 기업이 크게 사세가 기운 사례를 두고, 이처럼 CEO들의 철학과 주장이 대립할 때는 그 직원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도 합니다. 철학이 과연 조직에 부합하고 실제 운용과 경영의 동력으로 구실하는지는, 일을 일선에서 직접 맡아 몸으로 뛰어 본 이들이 가장 잘 알지 않겠냐는 겁니다. 사실 이 역시 한국에 적용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고도 저는 봅니다만(그 정도로 조직 내 알력이 심하면 이미 정치 팩션이 다 갈려서 이전투구가 벌어지기 십상이므로 누구 입에서도 바른 말 정직한 의견이 안 나오겠으므로), 그 회사처럼 사심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정직한 직원들이 많다면 유효한 조언입니다.(저자는 사실 두번째 대안으로, "외부 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권하는데 이 역시 너무도 많은 "외부 전문가"들이 전문성도 떨어지거니와 이미 내부의 특정 팩션에다가 나름 줄을 댄 경우가 많아서 객관성을 담보 못 합니다)

얼마 전 큰 물의를 일으킨 이케아의 경우가 자세히 소개되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3년 전까지만 해도 이케아의 산뜻한 전략과 고객친화적 정책을 한껏 칭송한 책을 읽고 서평도 썼습니만, 그새 그런 좋았던 이미지를 한순간에 깨버린 사고가 벌어져서 일개 독자, 서평자지만 면이 좀 안 서기도 합니다. 이 책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소비자 대중에게 가장 공감 못 하는 기업으로 순식간에 이미지가 추락한 해당 기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합니다. 대부분 공감합니다만, 한때 그처럼 PR에 능숙했던 기업이 어떤 경위로 이런 치명적인 패착을 두었는지에 대해, (좀 무리이겠으나) 내부 사정이라든가 경영진의 개성 변화 원인 등을 짚는 분석이 좀 따라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태생부터가 불통이었던 조직이 (당연히) 아니었다는 이유에서요.

RJ 레이놀즈의 사례는, 이른바 전문 경영인 체제가 만능이 결코 될 수 없음을 잘 깨우칩니다. 전문 경영인이라 해도, 오래 전 경영학 교과서나 경제학 해당 분야에서 간파해 온 교리대로, 소위 에이전시의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주의 이해나 계약상 수임인(혹은 고용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보다 자기만의 실속(상여금 문제, 대외 평판)에 더 신경을 쓰는 위험한 유인을 외면할 수 없죠. 예화에서 소개된 갤러웨이 회장의 경우 적극적 배임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그럴 리가요), 그저 새로운 컬러로 경영 풍토를 쇄신하려는 좋은 의도였는데도 재앙에 가까운 결말을 보고 말았습니다. 한나라 재상 소하의 전철을 그대로 밟겠다는 조참의 선택이 차라리 지혜로웠듯, 잘 된 선례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임을 배울 수 있겠으나, 이는 최근의 트렌드인 파괴적 혁신, 즉 잘된 것이건 못된 것이건 기존의 틀은 무조건 부수고 보라는 주문과는 또 배치되는 면이 있기에, 골디락스, 혹은 중용의 처신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게도 되네요.

야후의 극적인 몰락은 모든 당대인의 예상을 비껴갔을 뿐 아니라 경영대중서, 자계서에서 너무도 즐겨(?) 거론하는 사례라서 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라 여러 저자들의 각양각색 분석을 접하고 평하는 재미(!)가 또 있게 마련입니다. 결과론으로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만 일개 독자인 저도, 2001년쯤부터 야후가 구글에 검색 엔진 외주를 주고 편하게 마케팅에만 전념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검색창 옆에 powered by google이란 문구와 로고가 반드시 적혔더랬죠. 그때 구글은 인지도를 대중 사이에 갓 넓혀갈 시절이고, 광고도 없는 떨렁 허연 메인 화면 갖고 뭘 하겠다는 건지 우려를 사곤 했죠. 그랬던 게...). 책에서는 첫째 CEO 메이어의 능력이 전혀 기대에 미치는 수준이 못 되었다, 둘째 기술개발을 등한히한 패착이 이후 성장 동력을 완전히 꺼뜨렸다, 셋째 스마트폰 사업에 눈을 감았다 등을 듭니다. 찬동되는 바도 있고 결과론 아닌가 싶은 느낌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게,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였다가 전국민의 애물단지가 된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중반 아이아코카라는 (그 이전에 엄청난 인생의 굴곡까지 겪어 더 대중적 스타가 된) 경영자를 맞이해서 극적으로 회생, 이 사람을 미국 대통령으로 모시자는 섣부른 흐름까지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때 회생 비결은, 아이아코카 개인의 독재였습니다. 신속히 전략 지침과 의사 결정이 이뤄지니, 현장에 대응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당연히 조직 전체에 활력이 돌고 실적도 나아지겠죠. 이걸 20년 뒤에 벤치마킹해서 큰 재미를 본 게 이건희 회장입니다. 그때 일각에선 "황제식 경영의 폐해가 아니라 그 승리"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러던 게 한계에 달해서 결국 크라이슬러는 또다시(!) 존폐의 기로에 섭니다. 후임자인 로버트 이튼은 또 스타일이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그는 모든 권한을 하급자, 실무자에게 위임하여, 문제가 생기면 윗선에 보고하지 말고 자신의 재량, 전결로 대응하라는 파격적인 스타일을 내세웠죠. 이렇게 해서 다시 크라이슬러는 죽은 목숨을 되살리는데, 왜 이런 상반되는 방침이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사 결정의 신속함"입니다. 독재자가 번거로운 자문 과정이나 토의를 안 거치고 내리는 결정이나, (그런 만능의 독재자 스타일이 한계를 드러내고, 그렇다고 다른 유능한 독재자를 어디서 모셔올 수도 없을 때) 똘똘한 실무자가 과감히 자기 책임으로 CEO처럼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시스템이 이번에는 먹혔던 겁니다. 스탈린도 독소전 당시, 전쟁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자신이 만기친람하며 나설 땐 다 말아먹었고, 주코프 같은 똘똘이한테 전권 위임을 했을 때 성과를 봤음이나 마찬가지죠. 요즘은 대체로는 이 후자가 대세인 듯 보입니다.

고정된 고립된 지침, 만능의 황금률이란 없습니다. 혁신의 시대를 맞아, 아무리 과거에 잘 작동한 시스템이라도 불과 몇 년 안에 꼭 결함과 약점이 노출되고 마는 게 거의 일상이며, 이상하게도 "저렇게 하면 망하더라" 같은 실패의 족적은 여전히 후발주자들에게 참고로 기능합니다. 이런 책, "실패의 비결"을 모아 놓은 책이 그래서 독자들에게 유용하죠. 사람이 타인의 실수는 물론, 자기 자신의 실수만 용케 피해가도 그 인생에 큰 시련과 좌절은 모면할 수 있습니다. 이 책들에 실린 실패담이, 그저 먼 데 떨어진 남 이야기가 아니라, 혹시 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냉철히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로 읽는다면, 책 한 권에서 정말 많은 교훈을 얻어 내면화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1권을 못 읽었는데, 내용이 좋아서 빨리 구해 본 후 좀 더 밀도 있는 공부를 이어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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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미국 랠리에 올라타라
양연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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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 변수는 서로 긴밀히 얽혀 돌아가기 때문에 함께 관측하지 않으면 그 정확한 원인과 효과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주로 트럼프 시대 어떤 종목을 눈여겨 보고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둘 지 대강의 지침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지만, 어떤 프레이밍이랄까 선입견에 갇혀 빤한 사실, 팩트를 못 보고 지나치지 말라는 선의의 권유, 혹은 충고도 담습니다. 물론 저자의 제안이나 의견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작년 세계인들을 충격 속에 몰아 넣은 두 가지 격변의 이벤트는 영국의 소위 브렉시트 레퍼렌덤과 미국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두 정치적 고비랄까 큼직한 절차는 첫째 주류 언론 기관의 예상을 빗나갔고, 둘째 결과가 확정된 후에도 (언론과 세계인 다수의 기대에 맞게) 반대자들의 격렬한 항의 표시가 있었으나(영국에서 재투표 청원, 미국에서 이른바 "Not my president") 큰 줄기가 변하지 않고 그 나름의 흐름을 찾아가는 것, 이 두 점에서 비슷합니다. 저자는 특히 두 사건 모두, 이른바 "조용한 상당수(다수까지는 아니라도)"가 묵묵히, 그러나 매우 강한 모멘텀을 줘 가며 대세를 이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게 일시적으로 경솔한, 무지한 일부 팩션이 사고를 친 게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절실히 대변하는 추세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일시적인 변동 사항이라면 교란이 걷어지고 다시 정상으로 회귀하길 기다리면 충분한데, 그게 아니라 이 자체가 하나의 뉴 노멀 트렌드라면 생각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겠죠. 특히 투자는 개인의 소신이나 취향을 떠나 살벌한 돈 문제가 달린 이슈니만큼 더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비교적 길게, "트럼프 측에서 파악한 상황" 내지는 "트럼프 쪽에 유리하긴 하나 어느 정도는 팩트에 가까운 사항"을 들려 주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순전히 투자의 전망과 향방을 가늠하려는 독자라면, 객관적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두 쪽 모두에서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다가도, 때로는 그건 미처 몰랐으나 들어 보니 그게 맞겠다 싶은 주장, 정보 전달이 제법 피곤할 만큼 책 지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우선 제가 그 당시에 각각 관련 서평 쓸 때도 말했지만,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속설의 힘이, 실제로 두 거대 이벤트가 종료한 후 주식시장에서 드러났습니다. 경제적 번영과 호황에 대한 기대감은, 두 시장의 대세가 모두 "이거 잘된 거임"으로 판정을 내렸고, 그런 반응이 당일 부근의 일시적 변덕으로 그치지도 않은 채 지금까지 거의 이어가는 중입니다. 유럽 통합이라는 대의명분, 소수자 포용과 관용의 미합중국이라는 모토가 아무리 소중해도, 그래서 저런 현상들을 아무리 개탄하는 관측자의 입장이라도, 적어도 왜 시장이 이런 반응을 대뜸 보이고 그 체질을 이어가는지는 좀 생각을 해 보고 뭔가 설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론이 현실을 귀납할 수 있어야지, 현실이 이론에 꿰어맞춰져 왜곡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영미 양국에서 불평불만이 일상인 비뚤어진 저소득층이 브렉시트 찬성, 트럼프 지지층의 주류를 이룬다는 분석에 대해서도 저자는 과장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아무리 최근에 소득양극화 추세가 심해졌더라도 이런 선진국들에서 그만큼이나 특정 계층이 늘어났을 리 없고, 위에 쓴 것처럼 증시 참여자의 기대와 성향이 그만큼이나 호의적 반응을 보인 것과 앞뒤가 안 맞다는 뜻이죠. 고학력자와 고소득자 상당수는, 우호적이지 않은 미디어의 프레이밍과 독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찍었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이 책은 또한 소수인종 상당수가 놀랍게도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점도 잘 요약해서 제시합니다. 이런 뉴스는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도 시청자들에게 전달은 되었습니다만, "이런 별난 이들이 다 있다"는 기조와 함께 보도되었기에 역시 큰 인상을 주지 못했죠. 허나 이 역시 뉴스가 채 캐치 못한, 도도한 저류의 일종이었음이 결국 판명되었습니다. 트럼프나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법을 지킨 이민자, 소수 인종들, 따라서 합법적 체류권을 얻어 내고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싸잡아 불법이민자로 몰리기 싫다"는 뜻에서 그런 성향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 추방대상이 된 이들도 영원히 미국 땅에 다시 발을 들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단 나간 후 다시 법절차를 밟아 들어오라는 정책의 선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하네요.

물론 겉으로 표방한 말이 실제로 얼마나 당사자들의 편의를 배려하며 실천될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저자는 "이런 정서는 우리가 조선족, 혹은 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 대해 갖는 태도와 별반 다를바도 없다"고 하지만, 제노포비아는 그것이 우리 안의 것이건 바깥의 현상이건 대단히 우려스러운 경향입니다. 또한 저자는, 트럼프가 갓 취임한 현재 각종 경제지표는 대단히 양호하며, 트럼프는 호조건의 미국을 물려받은 만큼, 또 그가 지닌 각별한 사업상의 수완을 고려하면 앞으로 미국의 경제현황은 순풍에 돛 단 모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 논의의 단서로부터 본격 "트럼프 랠리에 올라타라"는 책의 본론이 전개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 역시 전임자 오바마가 8년 동안 국가를 잘 핸들링한 유산, 업적임이 반증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자본은 트럼프에 대해 호의적이고, 진보 좌파 성향의 각종 세력은 트럼프를 혐오하는 구도인가?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월가만 해도 큰손 투자가 상당수는 트럼프의 노선에 대해 공개 반대를 표명했고, 시장 당국 역시 주로 트럼프 쪽에서 꺼내든 개혁방안을 대부분 거부하고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타성에 젖은 월스트릿이 자기들에게 익숙한 클린턴식 처방만 옹호한 것"이라며 개혁 거부 세력으로 분류하는 쪽입니다. 이 논리라면 트럼프야말로 적폐를 청산하는(ㅋ) 개혁 주도 진영이죠. 또, 책 초반에 자세히 설명해 주듯, 팀 쿡이라든가, 베조스라든가, 그 외 실리콘 밸리의 첨단 산업 CEO들은 여러 이유에서 힐러리 클린턴 지지를 일찌감치 내세웠습니다. 이런 불리한 요소만 용케 맥락화하면, 도대체 지금 생각해도 사방이 지뢰밭이었던 트럼프가 선거에 이길 가망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지배적인 예측은 자기 실현력 효과 때문에라도 그대로 현실로 이어지기 일쑤인데도요.

오바마가 막 취임하고 나서 혼란을 수습하고 전국을 다독이던 무렵, 소위 "환율 전쟁" 현상이 양국 사이에 벌어졌음은 다들 기억할 겁니다. 이때 쑹홍빙의 그 유명한(?) 베스트셀러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렀고, 세계의 기축 통화 지위를 나꿔채어 일약 패권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측의 움직임이 활발했습니다. 서로 돈 찍어내기 경쟁을 벌이는 통에 결국 세계 경제는 유동성 위기만큼은 벗어났던 셈인데, 저자는 지금은 이와는 반대 현상이 물꼬를 텄음을 지적합니다. 우선 미국 달러가 추세적 강세입니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시각이 지배적일 때 다들 금 사 모은다고 야단이었던 것 기억하십니까? 아파트 단지나 시장 골목 같은 데서 좌판과 텐트를 세우고 금 매집하던 이들도 많았죠. 지금은 오간 데 없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인민폐에 대한 관심이 어떤 뚜렷한 흐름을 이루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네요.

달러는 우리가 지금 매일 뉴스를 보듯 연일 강세입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여전히 "환율을 조작해(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려 든다"며 반드시 위안화가치를 절상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헌데 저자는 "위안화가치 절상이야말로 중국이 원하는 바"라면서, 이제는 싸구려 통화로 외연만 확장할 단계가 아니라 진정한 기축 통화의 위신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책에도 나오지만 이미 작년 9월에 SDR 편입이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정책 방향을 그리 틀 시점이라는 겁니다. 트럼프가 이를 몰라서 헛발질을 하는 게 아니라, 자국 내 지지들을 겨냥해 "뭔가 하고 있음(어차피 그리될 것)"을 강조, 홍보하려는 정치적 제스처란 뜻이겠죠.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사람이 결코 바보가 아니며, 충분히 주판알을 튀긴 후 가망 있는 쪽에 과감히 베팅하는 실리주의적 도박사라는 점에서 신뢰를 보낼 만하다, 뭐 이런 쪽이겠습니다. 이 책은 대체로 올해 2월까지의 최신 사정을 책에 잘 담고 있어서 편하게 읽힙니다만(업데이트가 안 된 책이라면 독자가 아는 최신 사정과 충돌이 잦아서 진도가 느릴 수 있습니다), 오바마케어를 대체한 소위 "트럼프케어"의 법안 철회(정치적 실패와 좌절)까지는 커버가 미흡하긴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지금 중국 주식에 투자하면 십 년 후 강남아파트..." 같은 주장을 하는 책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긴 이들도 꽤 되기에, 꼭 상관관계가 입증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코스피에서 빠져나간 개인 자금도 꽤 많습니다(이른바 개인 엑소더스). 이 책은 그에 일종의 카운터 아규먼트를 제기하며, "여튼 분산투자는 어느 경우에나 현명한 선택"임을 다시 환기, 꼭 중국에 투자한 이들이라고 해서 미국 증시에 눈을 감을 이유는 없다며, 트럼프에 대한 괜한 정서적 거부감을 떨치고 어차피 다시 랠리를 이룰 분위기인 판에 개운하게 올라타라는 조언을 합니다. 앞에서 "트럼프는 운이 좋다"라든가, 어차피 실리주의자들이기에 팀 쿡이건 베조스건 내내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고, 옐런과 트럼프 역시 내심 계산하는 지점과 시선이 같을 뿐 아니라, (자기 당도 제대로 못 장악한다는 일각의 분석과 달리) 결국 공화당은 트럼프를 좇게 되어 있다는 예측도 내어놓습니다. 저자의 솔직함은 "어차피 특정 종목과 인덱스는 클린턴이 당선되었어도 상승세를 탈 기미였다"며, 대세가 호황으로 기운 미국 경기의 혜택을 과감히 맛보라는 결론으로 내닫습니다. 뭐 끝까지 트럼프가 싫은 투자자도, 오바마의 업적이 낳은 호황의 결실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다는 쪽으로의 기분 전환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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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힘 -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10
고장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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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려서부터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도서분류상 SF(과학소설로만 일단 한정하자면)만 읽고 자랐다면, 그 사람은 커서 몽상적 비현실적 사고만 하는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클까요? 이런 질문은 사실 무의미한 게,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는 어떤 reading material을 읽고 자랐는가 하는 요인 외에, 타고난 감정상의 기질, 지능 등 무수히 많은 변수가 더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저자께서는 이 책 중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선형적, 비례적으로(맥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독자인 제가 표현을 변형했을 수 있습니다) 이뤄지는 게 아니라, (천재의 업적이든 우연의 개입에 의해서든) 단속적으로 벌어지는 게 보통이다."라고도 하십니다. 저자께서 특히 주목하는 디랙,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등의 업적이 봇물 터지듯 나온 20세기 초의 경이로운 진전이 가능했던 건, 어쩌면 그 앞선 시기, 전례 없던 추세로 창작된 SF의 음덕이 컸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SF 작가들처럼 "논리와 이성에 바탕을 둔 사고의 실험, 상상의 극한"을 즐기는 철학자들(선후 관계로 따지면 이쪽의 출현이 먼저죠)이 탄탄한 길을 닦아 놓은 덕분이었든지 말입니다.

SF 문학(이 책에선 만화나 웹툰도 일부 다룹니다)에 나온 토픽, 주제만으로 이처럼 폭 넓고 풍성한 미래상, 아니 현재상을 논할 수 있다는 게 저로선 참 놀라웠습니다. 물론 명석한 두뇌와 빼어난 감각, 방대한 지적 자원을 보유하신 저자는 SF적 세계관과 그 파생 담론 외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보강 논거를 끌어들여 자신의 비전을 전개합니다만, 결국은 연세 지긋하신 저자가 유년, 청소년기부터 내내 읽어 온 SF 스피어의 갖가지 화제들만 엮어 이 두꺼운 볼륨을 다 채울 만큼 밀도 있는 담론을 펴시는 거죠. SF라고 해도 이제는 역사가 꽤 길 뿐 아니라 경향, 장르, 스타일, 주제의식, 정치관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 한 영역 안의 뚜렷한 업적, 마스터피스만 독서 이력의 한 줄에 꿰는 것조차 개인의 일생 동안 다 이뤄질 목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개인적으로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 본령의 공부를 더 좋아했던 독자에게조차) 하나의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나무보다 숲을 한눈에 조망시켜 주는 그 시원한 내러티브가 지향과 스타일이 다른 정신에게도 큰 공명을 울려 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죠.

첫째 토픽은 인공지능인데, 저자는 특히 "인공자의식"의 출현이 로봇에게도 일정 부분 인간처럼 권리를 인정해야 할 근거가 될 수 있고, 거의 반 세기 전부터 회자된 "기계가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의 공포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학생 때 본격 전공을 마친 이들에게도 어떤 지적 확신이라기보다 개인적 판타지 성향에 더 크게 좌우되어 주장되는 경향이 있고, 소위 딥 러닝이다 신경망 학습이다 하는 첨단 이론에서도 아직 분명히 실체를 잡아내진 못한 현황입니다. SF는 비전의 확대 면에서 실제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영감, 상상력"을 제공한 기여는 있지만, 이 인공지능은 그저 당연한 전제로 삼고 넘어갔을 뿐 그 원리의 구체화엔 (다른 토픽에 비해) 아직 손댄 바가 미미한 편입니다.

지능은 그저 연산의 중첩, 확대 버전이 아니고, "의식"은 더군다나 더 복잡미묘한 영역이니만치, 인간이 정말 쓸 만한 인공지능을 갖고 부리는 단계에 들어서려면 "의식" 같은 모호한 개념을 폐기, 지금까지 가꿔 온 자연과학상의 명징한 다른 컨셉으로 모조리 대체할 지경이 되어야 가능할 겁니다. 제 생각에, "인공자의식"이란 기둥에 기대어야 인공지능 담론을 펼칠 수 있다면 이는 자기부정의 기반에서 성을 쌓아 올림이나 마찬가지이며, 최소한 아직 걸음마도 못 뗀 단계임을 자백함이나 다름 없다고 봅니다.

유전공학 역시 마찬가지인데, 바로 앞 장 인공지능 토픽의 일부인 "기억의 이식, 조작, 제거"도 그렇지만, 소설에서 자주 소재로 삼아지는 "성형수술과도 같은 맞춤형 DNA 시술"이 가능해지려면, 정보가 담긴 나노(혹은 그보다 훨씬 이하)단위의 최소 실체가 무엇인지에나 대해 정확한 파악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통계적 확률에 기대어 시술한다면, 이게 고대 주술사의 마법이나 요행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겠는데, 저자께서 책 중에 자주 강조하듯 "윤리적 문제(이 역시 모호해서 마뜩찮은 편의적 핑계죠)"의 개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하려면 이론적 해명이 말끔하게 이뤄져야만 합니다. 저자께서는 "부처를 유전공학으로 되살리면... " 같은 화제를 꺼내시는데, 유전공학과는 무관하지만 이 테마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 이반의 창작물인 (극중극) "대심문관"에서 이미 다뤄진 바 있죠. 부처가 아니라 예수였지만.

이 책이 진짜 재밌어지는 건 3장부터입니다. 저자의 이해와 통찰도 더 깊이 있을 뿐 아니라 냉정히 말해 지난 역사의 SF가 여태 깊이 있게 다뤄온 건 이들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우주인 선발은 지능도 뛰어나야 하고(돌발 위기에 순발력 있게 대처), 체력도 강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우주 공간이란 종으로서의 인간이 활동하거나 생명력을 유지하기에 아주 우호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번 개척되고 나면 누구나 왕래, 이동이 가능해야 개척의 보람이 있겠는데, 이게 바로 우주 엘리베이터입니다. 이는 현재까지 발전, 확립된 과학기술의 분명한 연장선상에 있으므로 얼마든지 낙관적 기대가 가능합니다(반면 인공지능이니 유전공학의 일부 특정 과제 같은 건 뭔가 패러다임적 도약이 이뤄진 후라야죠). 최근 발생한 고의의 우주 쓰레기 발생 사고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는데, "미국 등 백인들이 앞에서 했으니 우리도 해도 된다"란 변명은 사실 파렴치합니다. 테라포밍은 일본 망가에서나 즐겨 다루는 소재로 아는 이들도 많은데 저자께서 분명히 밝히시듯 이미 반 세기도 전에 다뤄진 바 있죠(조금 방향성이나 경로, "잔혹성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저자는 이런 프로젝트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활발히 이뤄져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고 보는 듯합니다. 사실 영국의 산업 혁명도, 19세기 미국의 놀라운 폭발적 도약도 다 민간섹터가 이끈 흐름이죠. 우리 역시 1960년대 중후반 아폴로 프로젝트 때문에 우주 탐사나 개발은 으레 정부가 기획, 집행한다고 잘못된 선입견에 사로잡혔는지 모릅니다. 저자는 SF팬치고는 좀 뜻밖으로, 우주 개발 등 모든 거대 기획에 반드시 발생하는 거액의 비용을 일일이 사회적 대가로 명확히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사실 따져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데, 우리는 보통 대의를 위해선 돈이 얼마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비현실적인 주장을 일삼죠. 미소 냉전이 끝난 후 입자가속기 프로젝트 등 굵직굵직한 과학 현안에 배정된 예산이 모두 감축되거나 철회되었는데, SF팬이라면 그저 개탄만 할 것 같지만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어떤 사업도 추진될 수 없다"며 다소 의외의 견해를 피력하십니다. 물론 백번 천번 맞지만 이런 담론의 틀에서는 잘 접하기 어려운 목소리라서 말입니다(사실 그런 비현실적 분위기 때문에 SF를 즐겨도 그 애호가들과는 별로 이야기하기가 싫었더랬죠).

다이슨 스피어(球)는 이처럼 모든 현상의 경제(학)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는(그래서 전방위적, 통섭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한 분야에만 빠진 정신은 결국 맹목으로 치닫기 쉽고 결국 자기 분야도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저자께 특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처럼 SF와 본격 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저자 역시 SF 고전이나 현대의 역량 있는 작가(꼭 SF 장르에 한정하지도 않습니다)들만 거명하는 게 아니라, 권위 있는 과학 저널에 실린 여러 논문까지 정확히 출처를 짚으며 인용합니다. 우리에게 현재 불가능으로 남은 건, 기술적 불가능 사항이 있고 경제적으로 타산이 안 맞아 못 하는 게 있으며, 어떤 건 그 둘을 겸합니다. 마지막 사항의 대표적인 예가 대체 에너지 개발인데, 헬륨 3를 달에서 대량 채취한다거나, 우주공간에 무한정 뿌려지는 태양 복사 에너지의 100% 활용 등이 (SF 작가나 과학자뿐 아니라) 경제학자의 귀까지 솔깃하게 만들 토픽이 아닐 수 없죠.

전기차 개발이 중국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황사와 미세먼지, 그리고 방사능 전파의 문제는 셋이 별개이므로 이를 하나로 뭉뚱거리는 태도에는 반대합니다. 황사는 어찌어찌 버텨낼 수도 있는 재앙이지만, 후자 둘은 차원이 다른 해악일 뿐 아니라 사람의 과실로 초래된 문제 아닙니까? 전기차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고, 미세먼지나 귀족노조의 횡포를 탓하던 과거를 차라리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말씀은 좀 지나칠 뿐 아니라 이 책 다른 부분의 논리와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봅니다. 저자 말씀대로, 인간의 욕망과 의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활로를 찾아내기 마련이고(따라서 자동차 산업 혹은 어떤 대량 생산 섹터의 파생 일자리 창출이 극적으로 감소해도, 여태 살피지 못한 다른 서비스의 창조적 제공에 그 잉여 인력들이 몰릴 것입니다. 이게 안 된다면 사회 단위로서의 인간 생존은 불가능해지겠고요), 다만 오염된 환경에선 (모르겠습니다. 저자께서 다른 파트 중에서 말씀하시듯 아가미 같은 기관의 이식을 통해 미세먼지나 방사능 필터링이 가능해질지도) 인간이 살 수가 없는 거죠. 또 오지에 애써 침투했다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병원균을 옮아 왔으니 차라리 내버려두느니만 못했다는 말씀도, 문제와 도전, 현실의 직시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봅니다. 환경 보호는 물론 지상의 과제지만, 공포의 질병은 여튼 원인규명이 이뤄져야 마땅하지 이걸 판도라의 상자 속에 묵혀 둘 일이 아니죠.

5장과 6장은 책의 토픽을 떠나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저자 개인의 세계관이 엿보여서 좋았습니다(사실 정치 문제입니다만). 우선 소위 세카이류 문예에 대해, 저자는 "마치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원인을 제공한 타국의 침략은 까맣게 잊은 채 월남전 트라우마만 강조하듯, 일본인들이 이런 장르에서 피해자로서의 원한만 내내 떠드는 것(한마디로 피해자 코스프레)도 문제다."라고 하시는데, 아주 속이 시원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소위 덕후들이 쓴 책과는 결과 격이 달라 보이더군요. 6장에서도 참... 평소에 제가 느끼던 게... 일단 저자는 미국에서 반 세기 전에 왜 한창 매카시 선풍이 불 때, 혹은 그 이전부터, 공산주의자들을 "에일리언(국적이 박탈되어 체류 자격 상실, 즉시 추방 대상을 가리키는 법적 용어)"이라는 딱지를 붙이던 현상을 상기시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헐리웃 프랜차이즈물 때문에 "에일리언"을 괴물로만 인식하는데, 저자는 원어민이 아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아 "사상이 다른 자=괴물"로 여겨 추방하려는 정치적 편협성을 신랄히 비판합니다. 전 이런 말을 하면 그게 언어의 역사적 의미 변천을 모르는 외국어 화자의 한계 같아서 좀 꺼려졌는데, 같은 말씀을 해 주시는 저자의 주장을 읽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제가 더 놀란 건 <인베이전 오브 바디 스내처>에서 우익 담론이 감지된다고 한 대목이었습니다.

슈퍼맨의 성생활 이야기는 예전부터 여러 "덕후"들이 해 오던 거지만 저자 버전으로 다소 돌려 말하듯 점잖게, 재미있게 읊어 주시는 게 좋았습니다. 다섯 개의 성 패턴을 가진 외계인이 우리 인류를 아메바 보듯 대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이처럼 전혀 다른 시선에서 사물과 세상과 우리 자신을 통찰하고, 객관화하는 것이 SF 장르의 최대 최고 미덕이다. 이는 사고의 실험이고 훈련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 한 마디를 접한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이 있을 정도로, 저는 열렬히 찬동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 책 말미에, "과연 SF는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세 가지 전망을 소개하며 각각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유익하게 읽은 독자로서 제 결론을 내어 보자면, "SF가 없어지기 전에 인류가 더 빨리 수명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 입니다. 사람은 여태 숱한 한계에 직면하고, 그 제약으로부터 존재의 도약을 이뤄 온 존재이기에, 생존과 창조를 위한 모색을 멈추는 순간 종의 활력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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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4-0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능은 그저 연산의 중첩, 확대 버전이 아니고, ˝의식˝은 더군다나 더 복잡미묘한 영역이니만치, 인간이 정말 쓸 만한 인공지능을 갖고 부리는 단계에 들어서려면 ˝의식˝ 같은 모호한 개념을 폐기, 지금까지 가꿔 온 자연과학상의 명징한 다른 컨셉으로 모조리 대체할 지경이 되어야 가능할 겁니다. 제 생각에, ˝인공자의식˝이란 기둥에 기대어야 인공지능 담론을 펼칠 수 있다면 이는 자기부정의 기반에서 성을 쌓아 올림이나 마찬가지이며, 최소한 아직 걸음마도 못 뗀 단계임을 자백함이나 다름 없다고 봅니다.

→ 의식과 관련된 위 주장은 무척이나 급진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근거에서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의식˝ 같은 모호한 개념》이란 언급은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와닿지 않아요. 의식에 대한 《자연과학상의 명징한 다른 컨셉》이 있다는 것인가요? 빙혈 님이 생각하는 그것이 뭔지 궁금합니다.

빙혈 2017-04-04 22:51   좋아요 0 | URL
qualia님, 늦게 이 덧글을 읽었습니다.

우선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이 책을 읽으셨거나, 혹은 ˝의식˝에 대한 여러 근거 있는(?) 주장을 담은 다른 책을 읽으시고, qualia님이 지지할 만한 견해를 따로 가지신 게 있는지요.

제 주장이 ˝급진적˝이라고 하신다면, 급진적이지 않고 보편적으로 수용될 만한 다른 이론 체계가 있고, 이를 qualia님이 지지하신다는 뜻 같습니다. 우선 그 점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소개를 해 주시고, 그에 대해 제 생각을 밝히도록 하죠. 그렇지 않고 이 책에서 표방한 견해(랄 것도 딱히 없었는데)를 지지하시는 편이라면, 그렇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에 대해 제 생각을 어디 개진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친절히 인용해 주신 제 서평의 해당 부분을 더 찬찬히 읽어 주시고, 정확한 의도가 뭔지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얄라알라 2017-06-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픅 빠져 읽었던 책이기에, 리뷰 다시 읽으니 공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빙혈 2017-10-02 09:5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텍스터[603]번째 책이야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스미노 요루
2016년 일본 서점 대상 2위에 오른 스미노 요루의 첫 소설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녀와 함께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요루노 야스미’라는 필명으로 소설 투고 웹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원고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파격적인 타이틀로 눈길을 끌었지만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임에도 불구, 섬세한 문체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출판사 편집자의 눈에 띄어 책으로 출간되었고, 작가는 어마어마한 주목을 받으며 일본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자의적인 은둔형 외톨이 남학생 ‘나’는 우연히 초긍정 인기 만점 동급생인 사쿠라의 <공병문고>를 발견하고 비밀을 공유하면서 그녀와 잠정적인 친구 계약을 맺는다. ‘네가 죽기 전까지’ 임시 친구 계약을 맺은 사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점점 자신에게는 없는 그녀의 뭔가가 옮겨온다. 게다가 묘한 감정까지 쌓여가는 것 같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책이 독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자, 2016년 일본 서점 대상 2위는 물론이고 일본의 각종 도서 관련 집계에서 1, 2위를 기록했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2017년 7월 28일, 개봉이 확정되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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