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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 - 신경제가 약속한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폴 크레이그 로버츠 지음, 남호정 옮김 / 초록비책공방 / 2016년 8월
평점 :
우리가
공급측면(중시) 경제학이라고 하면, 자유방임이라든가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에 대한 신뢰(맹신) 같은 조류에 대뜸 연결시키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보수우파 경제학의 든든한 한 분파 중 하나죠. 이 책의 저자 폴 크레이그 로버츠 교수는 실제로 저 학파가
세계 초강대국의 정책 기조를 장악했던 레이건 시절 핵심 경제 핵심 브레인 중 한 명으로 활약했고, 그 공으로 각종 영전을 수훈받은
인물입니다. 아무리 파격적인 발상을 일삼으며 기존 해석의 전복을 꾀하는 논자라 해도, 세상에 레이거노믹스를 두고 좌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책은
우파보다는 진보좌파 독자들이 쌍수를 들어 반길 만한 주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슈퍼리치들만 배를 불리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해지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자체 정화 기능을 상실했다, 약탈적인 금융자본가(뱅크스터라는 신조어를 씁니다) 말고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다, 생태를 총체적으로 파괴시키는 몰염치한 기업 활동 때문에 "세계화"된(되어가는) 지구는 오염되고,
가난해지고, 끝내 모두가 제3세계로 전락할 것이다(이건 저의 요약이 아니라, 저자의 책 곳곳 주장을 합쳐 보면 논리적으로 자동
도출되는 명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의 교육 홍보 자료에서나 볼 법한 주장들이라구요? 다시 저자의 약력사항에
눈을 돌이켜 봅시다. "1981년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 연방 정부 재무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독자 눈에 지금 헛 것이 보이는 중인지 원.
사실
돌이켜보면 서플라이 사이드 진영은 국민경제라는 거시경제 단위의 총체적 활력, 건강성에 보다 주안을 두었다는 점에서, 행여 자국의
거시경제에 위해가 될 상황의 변동, 정책의 전환 따위가 눈에 보이면 당연히 공격적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격한 근본주의
우파 같으면 아예 거시의 미시환원을 주창하지, "낡은" 국민경제, 국가 같은 관념을 아예 도외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공급측면학파의 전성기 시절 중진 중 한 분이, 탈규제 글로벌 트렌드 속에 자기반성 기제가 거의 해체되다시피한 신자유주의(이 책에서
그런 표현이 자주 쓰이지는 않는데, 다만 "신경제"가 거의 호환되는 개념이기도 하고, 이 책의 원제가 레세 푀르, 즉 자유방임의
총체적 실패를 지적하는 문구이므로 그냥 써도 무방할 것 같아요)를 맹렬히(좌파보다 더합니다ㅋ) 공격하는 게 어떤 변절(ㅎㅎ),
회심, 혹은 리캔테이션 같은 범주로 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즉, 그로서는 "기존에 밀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는 겁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 경제가 다 죽어간다." 이런 위기의식이 든다면, 그 치유를 위한 처방에 (효과만 있다면) 어떤 내용도 담길 수 있죠.
아 "공급 측면을 강화"하는 게 해당 학파의 사명 아니었습니까.
시민운동가는
뜨거운 가슴으로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학자라면 자신의 입장, 혹은 기존 도그마에 대해 반박을 개진할 때 명확한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직관이 아무리 뛰어난 학자(예를 들면 케인즈)라도 치밀한 논증과 실례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그건 자격이
없다고 봐야겠죠. 석학의 저서답게 그는 첫 장에서 "왜 자유방임주의(특히 자유무역 만능주의)의 신화가 (이제는) 깨졌는가(혹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를 차분히, 치밀하게 설득, 입증합니다.
경제학
중 특히 국제무역론을 전개할 때, 경제학의 개조 중 한 명인 리카도의 "비교우위설", 그리고 헥셔-오린 모형의 언급은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이는 마치 애덤 스미스의 분업론이라든가, 알프레드 마셜의 수요-공급 동일가치설이나 마찬가지로 경제학의 무류(無謬)적
절대 도그마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1980년대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 대표라든가, 우루과이라운드라든가, WTO 설립
당시 선진국들이 개도국을 그토록 몰아댈 수 있었던 원동력도, "아니 학문적으로 당위가 확립된 사항에 대해 왜 정치적 핑계를 대며
회피, 부인하려 드는가? 당신은 대학에서 대체 뭘 배웠나?" 이 한 마디에 반박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제 사정이
바뀌고 있다는 소리니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죠. 본래 삼라만상에는 근본 질서라는 게 있어, 일시적으로 교란, 요동을 겪어도
결국은 정상(normal)로 회귀할 수밖에 없고,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도 그 근본 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걸로 여겨져
왔습니다. 작금의 교란은 그저 일시의 일탈이 아니라는 게 이 책의 시사, 아니 강력한 주장입니다.
저자(뿐
아니라 다양한 학파의 많은 학자들이, 이 책에도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듯 이미 제법 오래 전부터 입을 모아 가던 결론이긴
합니다)는 먼저 리카도의 비교우위설이 대전제로 깔고 있던 두 가지 사실을 들춰 냅니다. 첫째(이건 뭐 이론적으로 빼도박도 못할
명쾌한 논증이라 좀 충격적이기까지 한데요) 각국의 상대가격 비율이 달라야 한다, 포르투갈이 (다른 건 다 접고) 와인만
생산하려면, 그 와인이 다른 나라의 사정에 비해 포르투갈 안에서 훨씬 저렴해야 한다. 영국에서 옷:와인=1:2(단위는 일단
무시합시다)이라면, 포르투갈에서 1:1 정도는 되어야 분업화의 이익이 있다(이 경우 영국도 와인은 접고 옷만 생산하는 게
이익인데, 옷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기 때문이죠). 이익이 있다는 건 두 나라 모두, 같은 노력(자본, 노동)을 투입해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 이를 나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도 종전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포지티브 썸 게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는 어떤가? 물론 편차가 여전히 존재하나, 세계화가 상당히 진척된 지금 어느 나라건 상대가격 구조에 별 차이가 안
나는 게 현실에 가깝다는 겁니다. 옷과 와인의 가격은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대체로 1:2의 비율이라는 거죠. 저자는 상당히
날카롭게 일반의 착각을 지적하는데, 일본의 자동차 회사가 미국보다 싼 값에 자동차를 생산하는 건 리카도의 이론에서 말하는 그 비교
우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자동차가 흔하게 만들어져야 그게 리카도적 의미에서의 비교우위라는 뜻이죠.
두번째로
진짜 충격은 이 부분인데, 리카도는 특히 생산 요소 중 자본의 국제 이동을 거의 상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자본이 다른
마음을 먹고 생산 기지를 (인건비가 싼, 혹은 토지 임대료가 저렴한) 타국으로 옮긴다면, 리카도의 세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지금 자본은 아무 한계 없이 국경을 넘나들지 않습니까?(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세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죠) 또 그래서 토빈稅 같은 게 몽상이 아닌 현실 제도 도입이 운위되는 거고요.
이
논증이 매우 명쾌할 뿐 아니라 리카도 원전의 텍스트,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간 곡해되고 과장된 자유무역론을 주장해 온
이들의 입지가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속한 학파는 달라도 이런 자유무역론의 허상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견을
같이하는데, 대표적인 분으로는 제임스 K 갤브레이스(한국의 80년대 학번 어르신들이 모를 수가 없는 故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의 아들입니다), 론 바이먼 같은 이들이 있고, 이중 특히 후자는 리카도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과잉 결정된 것"으로까지
비판합니다. "과잉결정"이란 말은 쉽게 풀자면, 너무나도 많은 제약조건 아래에서나 나오는,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나 타당한
결론이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수학적으로 이미 증명이 끝난 줄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수학이 동원되어야 학문적 진리가 되는 곳이
경제학입니다.
저자 본연의 학파적
개성이 드러나는 대목은 "오프쇼어, 아웃소싱"에 대한 사정없는 맹공입니다. 첫째로 아웃소싱을 통해 원가가 내려간 상품이 국내에
소비되는, 이른바 물가하락을 통한 이점이란, 이미 직장을 잃거나 대폭 내려간 실질소득이 안기는 피해 앞에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게 2013년인데, 지금 미국 정부가 취하는 경제정책 기조를 보면 그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현실적
설명력이 있음이 다시 확인됩니다. 외국에 진출한 기업이 그로 인해 더 획득하는 수익의 추가분은, 그 대부분이 그 현지국 경제를
배불리는 데 쓰일 뿐(일단 이렇게 가정하죠. 나중에 반전이 있습니다), 자국의 소비자들에게는 큰 혜택을 못 주며, 이렇게 해서 한
국가 안의 빈부 격차가 더 커진다는 결론입니다.
다음으로
그럼 기업을 받은 그 다른 나라의 국민 후생은 늘어나지 않겠는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책 한 권의
논리일관성, 체계성이 유지되겠지만) 일단 타국에 진출한 기업은 주로 개도국이나 후진국 정부를 상대로 유리한 교섭을 시도하는데,
저렴한 인건비나 임대료 메리트도 있겠지만, 환경 관련 규제나 시민들의 따가운 여론 등 방해 요소가 없다는 게 그들로서는 가장 큰
인센티브이며, 이 때문에 마음껏 환경 파괴적, 생태 적대적 경영 행태를 드러낸다는 겁니다. 1차 산업에 종사하던 해당 주민들로서
일단은 손에 쥐는 명목소득이 늘어나 좋겠지만, 이후 파괴된 환경을 안고 살아야 하는 등 "외부 비용(정확하게는 부정적 외부
효과)"을 막대히 치른 후라, 결국은 종전보다 나을 것 없는 형편에 놓인다는 거죠.
미국,
서유럽 등 선진국에선 중산층이 실직하여 차차 "제3세계화(이 책의 표현입니다)"되고, 기존의 제3세계는 환경 지옥으로 인해 애써
번 소득이 상쇄되고, 그럼 이익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약탈적 금융자본가들과 이들의 조종 하에 놓인 기업 최상층부 극소수
경영자, 그리고 주주들입니다. 이들 빼고는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공급측면 학파가 처음부터 얼마나(그나마)
"국민 경제"를 염두에 둔 입장이었는지 이 책을 통해 짐작이 가능해지는 대목이죠. 사실 이렇게 이론의 본분에만 충실하면 좌도 우도
없어지기 마련이며, 지금 세상이 종래의 낡은 보-혁 프레임으로 보기에 너무 복잡해진 까닭도 있습니다(이 점은 나중에 다시 다른
맥락에서 언급됩니다).
사소하지만
저자가 다소 착오를 일으킨 부분이 있는데요. 일단 일본이 미국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마련한 걸 두고 "인소싱"의 예로
파악하시는데, "인소싱"의 개념이 학자마다 다르긴 해도 이런 걸 인소싱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건 일본 입장에서 엄연히
아웃소싱이죠. 낮은 생산비를 찾아 외국(미국)으로 왔으니 말입니다. 저자께서는 또한 "이는 국내(일본 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분량이 아니라, 미국에 그대로 수출하기 위한 목적이다"라고 하시는데, 맞긴 하나 그건 저자의 주장과 맥락에서
무관한(irrelevant) 지적입니다. 이 생산공장이 올리는 수익이 어디로 어떻게 분배되는가가 포인트이지 않습니까? (같은
이유에서, 미국 수입 쿼터 규제[지금은 아님]를 피하기 위해 이 공장이 설립되었다는 역사적 배경 설명도, 유익한 정보이긴
하나[저자께서 당시 그 행정부 정책 입안자 중 한 분이니] 논의의 설득력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반대 진영의 논거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 기업도 아웃소싱을
하지만 이처럼 일본 기업도 아웃소싱을 하니(그렇다고 미국 입장에서 이게 인소싱이 되는 건 아니죠), 부작용이 서로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책 조금 뒤에서 논파됩니다. 우선 저질 일자리만 결국 남게 되며, 기업 입장에선 노동자 풀을 바꿔 가며 협상력을
약화시킨다거나, 노동자의 지위만 취약하게 만들 뿐이란 거죠(책에 이런 표현이 있지는 않고, 독자로서 정리해 보면 그렇다는 것).
다음으로 해외에서 전문인력을 수입해 온다는 기업들의 명분(핑계)에 대해서는, 실제로 취업 비자를 받아 연수(고급 인력이라면 이런
영역에서 연수를 받을 필요가 없죠 일단)를 받는 근로자들이, 실제로는 대부분 단순 반복 노동에나 적합한 저급 인력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비자에 그런 걸 일일이 명기하지는 않으므로 얼마든지 전용 가능).
기존의
중저급 국내 인력은 직장을 잃고, 저급 노동자들만 해외에서 잔뜩 수입해 오거나 아예 해외로 공장을 옮겨 (그곳에서도) 저급
노동자만 고용한다.... 그러면 고급 인력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어디서 기업은 공급을 충당합니까? 그에 대해 이 책은 논의가
없고, 독자는 치밀하게 읽다 보면 이게 자연히 궁금해질 겁니다. 그에 대한 답은, 기업이 업무 자동화라든가 시스템의 힘에 점점
크게 의존하고, 또 부가가치 기여도도 그런 비(非)인력 섹터가 더 크므로, 이 책의 주제와는 무관하게 그런 수요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게 대세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삼성이 신입 사원 공채를 올해 사실상 취소한 것도, 심지어 고급 인력에조차 기대할 바가 거의
없어서 아닐까 추측할 수 있죠(니네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감). 4대 기업 공채는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일종의 서비스 같습니다.
이
책 본문보다 서문, 그리고 독일어판 서문에선 특히 충격적인 제언을 저자는 꺼냅니다. 이 책이 쓰일 무렵에는 그리스발 경제위기가
한창 고조되다 서서히 미봉될 때겠는데, EU의 효용은 이제 다했으니 각국은 과감히 허울을 걷어내고 자국의 현실에 맞는 주권적
재정경제정책을 운용하라는 겁니다. 특히 독일을 향해선, "그렇게 그리스의 빚을 대신 떠안아가며 과연 당신들이 얻는 게
무엇인가?"라며 현실을 바로보라고 쓴소리를 하네요. 대안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방대한 자원, 독일의 자본과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결합하면 또다른 기적이 탄생하며, 동유럽의 불안한 정치 경제도 이 바람에 다 묻혀 번영하는 지역 공동체가 새로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왜 러시아를 경계하는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외국군(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무엇인가? 비효율을 제거하려면
현지 사정을 잘 알고 더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권 정부가 제 할 일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이거 왠지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
테레사 메이 등의 주장 같지만 어쨌든 그 나라에서 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은 정책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미국의 국민 경제를 무엇보다 걱정하지만, 해외에서 벌인 미국의 군사적 삽질, 환경 파괴, 제국주의적 행태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조이므로 결코 치우친, 이기적인 국수주의가 아닙니다. 시스템의 지속을 담보하는 선의의 규제를
강조하고, 계층 상하가 고루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국가 단위의) 거시경제 건전성을 우선시하는 입장이죠. 세계체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허상을 통박하는 이런 관점에 대해 좌우를 떠나서 모두가 지혜를 짜내야 할 시점입니다. 공교롭게도 제레미 코빈
같은 정치인도 오랜 지론으로 EU를 반대하며 비주류로 소외되다 노동당 당수로 화려하게 컴백하지 않았습니까. 생존을 위한 노력에는
어쩌면 결론이 하나뿐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