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배우는 딥러닝
닛케이 빅데이터 지음, 서재원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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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사람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실체가 등장한다면, 사람이 기존에 하던 일을 모두 대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같은 일을 맡겨도 더 바람직한 성과를 낸다면, 당연히 "그것"이 사람을 밀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인간의 미래가 그런 방향으로 진행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변화를 그저 겸허히 수용하는 마음 자세를 다지거나, 혹 남는 힘이 있다면 관계 당국에 "기본 소득제를 빨리 시행하라!" 같은 청원을 넣는 데 쓰면 충분합니다. 자기 힘으로 번 돈이 아닌데 과연 "소득"이란 말을 쓸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긴 하죠.

먼 미래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모릅니다만, 현재까지의 발전상을 보면 이른바 AI라는 것이, 현재 기업들에서 무분별하게 광고해 대는 단계에는 아직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게 분명합니다. 대신, "그 앞에 굴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면 아주 재미있고 유용한 것"이라는 건 아주 확실합니다. 이는 완제품 형태의 소비재로서도 그렇고(NUGU, 에코, 이 책에도 나오는 구글홈 같은 것들), 개발자나 사업가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훨씬 의미가 큰 건 후자인데, 제3의 물결 당시 기회를 한 번 놓쳤던 분들은, 이번 기회는 반드시 잡아채어야 거대한 부의 끝자락이라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AI 개발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딥 러닝" 기법에 대해 개략적인 컨셉이라도 잡을 필요가 있겠고, 전혀 개념이 안 잡힌 독자, 그러면서도 당장 어느 지점에서 첫발을 떼야 하긴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아주 유용한 길라잡이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영진닷컴에서 출판되었다고 혹시 수험서 아닌가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겠는데, 아닙니다. 전혀 모르는 독자들 읽으라고 낸 책입니다. 머신 러닝 관련해선 아직 자격증 제도가 마련된 바 없고, 제 생각에는 다른 프로그래밍 분야에 비해 "자격증"이 가장 덜 필요해질 섹터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제3의 물결로 대변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프로그래머, 시스템 분석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EDPS는 아직 용량과 효율이 미흡하여, 밀도 높게 설계된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는 유의미한 작업을 전혀 해 낼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그처럼 중요했던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예컨대 "삼성은 하드웨어에 집착하는 이상 미래가 없다. 구글처럼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가야 한다" 같은 (딱히 뚜렷한 근거도 없는) 예언 같은 진단이 인기를 끄는 건 이 영향이남아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딥러닝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사람이 짠 프로그램의 도움, 명령을 일일이 의존하지 않아도, 방대한 데이터셋으로부터 자신이 스스로 모델을 만들고, 어떤 경로로 그러는지 자신도 모른 채(이게 중요하죠) 정확한 답을 도출합니다. 이 컨셉 자체는 아주 예전부터 생각되었으나, 1) EDPS는 성능이 떨어지고, 2) 얘한테 학습을 시킬 방대한 데이터가 부족했죠. 프로그램을 대신할 정도로 유의미한 "학습"을 시키려면, 데이터라도 엄청 많아야 했는데 그럴 모을 방법이 없었던 예전입니다. 현재는 이 두 가지 장애가 모두 극복(AI 개발 때문에 인위적으로 추진된 건 아니고[그런 건 절대 불가능], 다른 분야에서의 성과가 우연히 이 쪽에 유입된 거죠)되었기에 가능합니다. 즉, 그닥 창의적인 혁신은 아닌 셈입니다.

작년 상반기 구글의 허사비스 CEO가 야심차게 선보인 "알파고" 때문에 특히 자극 받은 건 일본인가 봅니다. 현재 한국은 이 분야 투자나 발전이 아주 더디며, 온갖 걸 다 과잉투자하는 중국은 예상 밖으로 인공지능에 대해서만은 큰 관심이 부족하다는군요. 일본인들답게, 전문 지식을 최대한 문외한들이 알기 쉬운 수준으로 변환시켜, 자신들의 상식에 맞는 체계로 하나하나 더듬어 올라가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책 구성입니다. 그런데 이 이유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들이 읽기엔 참 편합니다. 제목은 "구글에서 배우는 딥러닝"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기법을 현저히 발전시킨 주체가 구글이라서일 뿐이고, 그 내용은 구글의 성과를 차근차근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함과 동시에, 현재 일본의 여러 기업들이 어느 수준에까지 다다랐는지까지도 풀어 헤치는 방향입니다.

책에서는 일단 "딥러닝은 머신 러닝의 많은 기법 중 하나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설명을 시작합니다. 사실 제 생각에 사업상, 혹은 기타 실용의 필요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체계 제시가 필요없다고 봅니다만, 일본 책 답게 "프로그램은 그저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거여!" 같은 부실, 날림 사고와는 매우 거리가 먼,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는 소심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머신 러닝의 다른 기법 준 하나로 "귀납 추론"이 간략하게 설명도 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일반적인 프로그래밍과는 정반대로, 대전제→ 소전제→ 결론(이게 연역입니다)의 단계를 거치지 않는, 방대한 사례로부터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귀납적 사고는 모든 머신 러닝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pp. 17~20에 제시된 뉴럴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이, 독자로서는 기존의 전산 처리 시스템과 이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가장 역점을 두어 이해해야 할 대목입니다. 중간계층이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야, 복잡한 특성을 지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고, 이것이 위로 올라갈수록 고차원의 판단으로 수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지 구조를 모방한 것인데, 사실 딥러닝 자체가 천재적인 발상으로 고안된 건 아니고, 책에도 나와 있듯 그저 "실용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인공지능을 구축할 수 있어서"일 뿐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아니 전산학 개론도 어려워 죽겠는데 머신러닝을 어떻게 배우라고?" 처럼 겁을 먹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도스보다 뒤에 나왔다고 윈도가 더 어려운 게 아니듯 말입니다. 딥러닝은, 이치만 잘 알면 그저 갖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며, 책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무슨 레고 메뉴얼 부록으로 주듯 구글에서는 API를 무료로, 일반인들도 갖고 놀아 보라고 자신들 사이트에 게시해 놓기까지 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필터링을 통해 G메일은 스팸메일을 크게 줄였다고는 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 메일을 제게 보낸 거래 상대방이 이미지 파일을 첨부해서 보냈다는 그 이유 때문만이었는지, 이 중요한 메일을 스팸함에 넣어 큰 곤란을 겪을 뻔했습니다. 이게 빅데이터의 함정입니다. 대세, 주류는 양적으로 판단할지 모르나, 질적인 소수의 중요성을 전혀 분간 못 합니다(그리고, 별로 개선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외국어 통역 등도 결정적인 팩터는 "남들이 잘 쓰지 않는 미묘하고 고급진 표현"을 다루는 데에 있는데, 그걸 천한 빅데이터로 과연 귀납해 낼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는 단순 반복, 비창의적 영역에 이 AI라는 게 용도가 제한되었음도 우리는 알 수 있겠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딥러닝을 통한 여러 성과물은 우리 일반인들도 (마치 컴맹도 윈도 쓰듯) 갖고 놀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현재까지 구글이 얼마나 이 장난감을 개발시켰는지 확인하려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보시면 될 듯합니다. (역자분께서 현재는 API가 여섯 개로 늘었다는 사실까지 친절히 알려 주시네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구글]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일본과 중국 여러 기업에서 이 AI를 채택한 여러 사례를 책에서 소개합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이 결정이 기존 채용 인력을 감축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그러나, 기업마다 사정이 다를 것입니다), 장래 채용 인원을 줄이는 데에는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도 합니다. "아직은 복잡한 응대에 사람이 필요합니다."라는 관계자의 말. 인공 지능 시대에 하나 확실한 건, 자기 일 어설프게 하는 사람은 모조리 도태된다는 결과입니다. 똑부러지게, 창의적으로, 핵심을 이해하고 알고리즘의 먼 단계까지 내다보는 능력이라야지, 남의 말이나 외우고 따라하며 부족한 부분을 감추느라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에겐 전혀 장래가 없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암상자와도 같아서, 무슨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는 컴퓨터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지만, 여튼 적합한 결과가 튀어나온다"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특정 시기 교육 커리큘럼이 비슷해서, 저 역시 "어둠 상자" 그림이 교과서에 나왔던 게 기억 나네요. 예전에도 그랬고 가까운 미래에도 역시, "맥락"을 이해하는 건 아직은 사람의 지성과 감성밖에 없습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마법처럼 도출한 결과를 두고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까지 알아내는 사람만이, 미래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갈 것입니다. 단순 반복 노가다는 사람이 할 게 아니라 기계한테 시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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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 국가를 바라보는 젊은 중국 지식인의 인문여행기 1
쉬즈위안 지음, 김태성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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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 여행기인데 꽤 재미있고, 혹 여행기에 관심 없는 독자라 해도 특정 고전에 큰 의의를 두고 감동을 받은 이라면 꼭 챙겨 읽어 봐야 할 책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갖고 읽었으며, 읽고 나서도 역시 기대대로였다면서 뿌듯함을 안고 책을 덮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시사주간 <TIME>에서 "인플루엔셜 100" 선정 기획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런 평가를 처음 읽었습니다.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해, 한국의 특정 세대(특히 80년대 학번 어르신들)가 그토록 큰 경외감을 가진 사실과는 반대로, 미국에서는 naive(특히 저 잡지의 평가가 그러했죠)한 판타지로 보는 게 중론이라는 걸 알았죠. 물론 한번 특정 이념에서 제공한 프레임에 사로잡히면, 다른 어떤 유력한 반대증거나 움직일 수 없는 팩트가 출현해도, 이제 "불순세력의 책동, 음모, 혹은 미(未)각성의 산물" 정도로밖에 안 보입니다. 이데올로기의 힘이란 그렇게나 무서운데, 다만 본인은 본인의 순수한 양심, 각성의 사고라 여기지 결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이데올로기의 포로라며 역(逆) 거울 뉴런을 발동합니다. 이런저런 영역에 다 몸을 담가도 보고 객관적인 각성, 휴머니티에 입각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과, 그저 위에서 지령 내려오는 대로 똑같은 주문만 반복하는 사람은, 결론이 같아도 그 순도와 가치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날 뿐입니다.

이 책 저자 쉬즈위안은 중국계 미국 교포 출신도 아니고, 나이도 아직은 장년에 가까운 세대입니다. 이데올로기에 물들지도 않았을 세대(그 부모들처럼)이며, 또 욱일승천하는 신흥 경제 대국으로서의 조국을 마음에 거리낌 없이 자긍심을 갖고 받아들였을 만한 나이이기에, 더군다나 "중국"을 객관화해서 받아들이기 마냥 쉬운 처지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마치 미국인이 방문자처럼 중국 각처를 돌아보고 코스모폴리탄(미국인 중 상당수는, 특히 우리가 그 책을 읽기도 하는 저자라면, 이런 입장, 시선에서 말하는 이가  꽤 많죠.)처럼 사고하며 기록하는 품입니다. "나는 내 나라가 낯설다"는 그래서 매우 적절한 제목이죠.

중국인들과 대화를 해 보면 그야말로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고이고 영혼입니다. 어쩜 저렇게 남의 입장에 한 번도 서 보지 않은 이들이, 자기 생각만에 갇혀 앵무새처럼 뻔한 내용을 녹음기처럼 반복할까 싶을 정도죠. 하긴 한국도 유체이탈 매너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나라 전체가 미세먼지 때문에 폐암, 호흡기 질환으로 인구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질 판에 엉뚱한 소리만 들먹거리면서 사드가 어쩌구를 떠들다니 말이죠(중국 공산당에게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마스크 아니라 방독면 쓰도 산다 해도 건강에 끼치는 영향이 전과 같을 수가 있으며, 누런 하늘을 보는 절망감이 그저 "참고 견뎌야 할 일" 정도로 무시될 수가 있습니까?

이 책 저자는, "중국을 타자화하여 본, 담담하고 객관적인 여행기"에 가까운 태도로 이야기합니다. 일단 위의 스노 책을 두고도, "..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그대로 휘말릴 만큼 인식이 확고하지 못하여... " 같은 평가가 나옵니다. 물론 그는 종전에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말았다는 것이며, 이번 여행을 앞두고는 다시 그 책을 읽은 후,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문장, 생생한 인물과 풍경의 묘사가 그 책에 고스란히, 고맙게 녹아 있음을 깨닫고, 전의 평가를 수정합니다. "평소에도 나는 이런 느낌을 갖고 싶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추상화, 이념화, 명제화한 건조하고 딱딱한 틀이 아니라, 내 느낌과 감상이 정직히 반영된 그런 느낌으로 사물과 세상과 타인을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거죠. 스노의 고전에는 생생히 살아 숨쉬는 군웅들(아직 역사의 승자가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던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 반대에 가까웠으면 가까웠지), 정의감과 자존에 처음으로 눈 떠, 결연히 행동하던 농민들이 여기저기서 힘찬 거동과 눈빛에 가득차 있었지요. 저우언라이(周恩來)에 대해 "처녀처럼 날씬한" 몸매였다며 좋은 기억 속에 그를 간직한 대목도 있고, 마오가 수척한 링컨처럼 보였다는 서술도 있습니다(이건 맞습니다. 나중에 장제스와 회동할 때 찍은 사진에도 여전히 그랬고, 다만 통일 직후부터 얼굴과 몸이 불었을 뿐입니다). 어떤 고정관념과 개인적인 못난 원한에 얽매인 인간은, 이런 개별 체험의 인풋이 모두 왜곡된 채 볼품없는 정신에 축적됩니다. 정직할 때는 오로지 "더러운 욕구"의 부추김을 받을 때뿐이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욕구가 꼭 사라지는 건 아니고, 욕망이라는 게 참 비천해서 혹 몸이 욕구를 뒷받침 못한다 해도 마치 유령감각처럼 그 충동만큼은 집요하게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올혀 애 씁니다. 뭐 노인들 비웃을 일만은 아니고 우리도 언젠가는 다 겪어야 할 일이므로, 인생 자체가 이렇게 슬픈 과정인가 보다 하고 정리할 필요는 있겠죠. 이번주에는 빌 헤이스가 쓴 올리버 색스의 회상록과 이 책,  두 권이 특히 기억에 남는 독서인데, 두 분 저자 다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여전히 당사자들을 괴롭히긴 하나 봅니다. 한 분은 그러나 여전히 자기를 기만하고 살고(누군지는 말 안 하겠습니다. ㅋ 본인도 알더군요), 다른 한 분은 이 책에 잘 나오듯 대단히 초연하며(나이도 십 년 가까이 더 젊은데), 부도덕한 영역에는 알아서 발을 빼는 성숙함을 지녔습니다. 여행기에 꼭 "그 이야기"가 들어갈 필요는 없으나, 요즘은 어딜 가도 "그것"의 유혹이 빠지질 않기에, 어떤 책이든 간접적인 언급은 있는 듯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라곤 하나 개인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쑨톄춘의 경우, 채벌(採伐)로 한때 크게 번창하던 지역 경기가 갑자기 죽어버림에 따라, 그 역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일거리를 찾아 여러 지방을 전전해야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퇴직급여의 불공정한 지급이었습니다.

"30년을 일한 나와, 십여 년 일한 이들과의 처우가 같다면, 내가 산 20년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국가가 평가, 선언한 셈이 아닌가?'

이분의 생이 중국 인민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겠으나, 어떨까요. 한국에도 이런 부조리가 횡행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하소연을 늘어놓거나, 여차직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드 보복을 당하는 건 중국 납품 업체와 거래하는 한국의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인데, 이 거래처 하는 말이 "억울하면 법원에 소를 제기하라"입니다. 이런 뻔뻔스러운 작태가 또 어디 있을까요. 소송을 해 보야 중국 법원이 니네 편을 들어주겠냐는 배짱으로 하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쑨톄춘이 정신과 건강이 날로 병들어 가는 건, 육체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 때문이죠. 그리고 그 큰 책임은 원칙 없고 탐욕스러운 중국 공산당에 있습니다.

p195에는 마오 주석 실물의 얼굴을 어렸을 때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그의 "영광"에 대한 기술이 있습니다. 그의 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차량의 뒤를 따라 달린 군중이 수십만이었고, 이때 길에서 잃어버린 신발만 몇 켤레가 될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는군요. 신발의 품질이 워낙 낮아 누가 훔쳐갈 생각도 안 먹었던 듯도 하구요. 그때로부터 다시 십오륙 전, 대약진운동에서 목숨을 잃은 인구만 억 단위로 헤아리는데, 일본 침략군이 죽인 인명의 몇 백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혁명이었을까요?

영토 극북의 하얼빈에서, 아직도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는 먼 남방의 대만에 이르기까지, "인민들의 삶과 그 베경"을 눈으로 밟고 다닌 저자 쉬즈위안의 기록은 진솔하며, 마치 뉴요커의 담담한 시선처럼 모던한 색채로 독자를 맞이합니다. 요즘 뉴요커라면 오히려 political correctness 때문에 괜히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잔뜩 우회(그런데, 최근에는 또 그렇지도 않더군요. 워낙 중국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진상을 떨어대니)했을지도 모를 텐데, 그의 "내 나라"는 아직도 부족하고, 고통 받고, 갈 길에 멀고, 그러면서도 문제의 실상을 정면으로 마주하지도 않은 채 무엇인가 다른, 오도된 목표를 놓고 열정을 쏟는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 작은 반도에 태어나지 않고, 저런 광대한 나라에 속해 여전히 가난한 일상을 영위했다면, 과연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나 자신을 마주했을까요?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면, 이미 쉬즈위안과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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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섬니악 시티 -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빌 헤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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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는 나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던 누군가가 곁에서 죽었을 때도 "We lost him(her)."라고 말할 때가 잦습니다. 오래 내 주변에 간직해 오던 무엇인가를 잃었을 때도 우리는 좀처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하곤 합니다. 하물며, 가족, 친구의 죽음이라면, 그 아픔과 충격은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 누구든 한 번은 겪어 봤을 텝니다. 감정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눠 왔고, 대부분의 경우 육체적 결합 관계까지 이뤘던 동반자(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를 혹 잃었다면, 그것도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처럼 아픈 순간을 통한 상실이었다면, 이를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 해도 그 존재 차원의 충격에 대해 상상이 될 만합니다.

내용만 봤을 때 소설이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을 서정적 문체의 이 책은 작가 빌 헤이즈의 개인 회상록입니다. 책 전체를 통틀어도 풀 네임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그저 "스티브"라고만 불리었던, 17년 동안의 동반자를 잃고 그는 오랜 근거지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런던에 한 번 들러 스티브의 유해를 강에 뿌린 후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갖습니다. 한 달 가까이 머문 이곳에서, 그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 일종의 가교로 여길 택하고 활용한 듯합니다. (세 도시의 지리상 위치는 거꾸로지만)

"뉴욕에 잘 오셨습니다. 제가 한 잔 사죠."

로렌스 H 스테인, 변호사라는 이의 대접으로 입맛을 다시게 된 '파트론 테킬라'는 그런 서브장르가 따로 있는 술이 아니라 멕시코의 한 회사에서 개발, 판매하는 테킬라의 한 상표입니다. 스테인 변호사나 빌 헤이스 본인에게도 잘 어울리지는 않을 법한 묘한 선택입니다. 전 읽다가 처음에 나초 이야기하는 줄 착각했는데(묘하게도 이 역시 멕시칸 메뉴에 듭니다만), 그게 아니라 특히 이 작가님한테는 잘 받지도 않을 듯한 독한 술이어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뭡니까?"
물론 나이 지긋한 분이라면 꼭 생전의 올리버 색스와 같이 세속과 절연된 생을 살지 않았다 해도 그가 누구인줄 모를 수도 있습니다. 누군지 모르는 이상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라는 의문사를 썼다 해도 그  실수의 이상함은 독립된 게 아니라 이미 직전 번의 효과에 포함될 뿐입니다. 사실 진짜 이상한 건, 아무리 전세계적인 화제를 뿌린 대스타라 해도, 왜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그의 이름을 꼭 알아야 하느냐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어쩌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이들이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 자체에 더 열광하여 그를 실물보다 더 큰 크기로 만드는, 일종의 자기 강화 작업에 빠졌는지도 모르죠.

저자가 푹 빠지게 된 올리버 색스는 예컨대 <아내를 모자로...> 같은 화제작의 author라든가, 내내 세상과 철저히 스스로를 차단한 채 살았다는 사실이라든가, 실제로 만나 보니 너무도 티 안 묻고 심오한 사념으로 세상(당위)을 재구축할 줄 알았다든가, 무엇보다 아름답고 능숙하며 진정성 깃든 문장으로 작품을 아름답게 빚을 줄 알았다든가 하는 능력으로 타인을 매혹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빌 헤이스는, "내가 지금 올리버 색스를 보고, 이야기하고, 생각을 공유한다"는 사실 자체에 매혹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올리버 색스라는 이가 대체 누구인데? 성공한 작품을 여럿 쓴 셀럽이 아니었다면 함께한 시간이 과연 그토록 황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속물적 동기에 대한 지적을 누가 혹 한다면, 그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게 된 게, 올리버 색스라는 매혹적인 거인과 그가 함께 지낸 보람 중 가장 큰 것이겠습니다. "아니다. 올리버 색스는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당신에게서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인물이다."

우리 독자들에게는 고마운 선물(올리버 색스 이야기 + 뉴욕의 사연)입니다만, 작가 빌 헤이스는 뉴욕으로 새로 이주함으로써 작가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대화하고, 깊은 정도까지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빌의 한껏 고양된 감정과 각성이, 어디까지가 색스로부터의 영향이며, 어디서부터가 도시 뉴욕의 촉촉한 샤워 덕분이었는지는 본인도 알 방도가 없습니다. 마치 파트론 테킬라의 화끈한 감촉이 목을 넘기고 지나갈 때, 이런 느낌이 예컨대 스톡홀름에서도 같은 상표의 술(물론 엄청 비싸지겠습니다만)을 마시고 재현할 수 있는 건지 전혀 확신이 안 서듯 말입니다.

"행복과 즐거움 중 어느것이 더 서열이 높을까요?"
"행복은 보다 복잡한 녀석이야."

운이 좋았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사건"은, 올리버 색스가 살던 건물 다세대 주택 중 한 채가 마침 비게 되었고, 그 사실을 경비원이 알려 주었다는 겁니다. 이날 오전에 벌어진 어떤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빌 헤이스는 따로 기록하는데, 아마 기억에 의존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성격과 스타일상 어떤 꼼꼼한(혹은 간격이 좀 뜨는) 메모를 이어가는 중이었지 싶습니다. 그는 거인과 인접해 살게 된 행운을 굳이 부각하기보다, "그(이) 11층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즐거움은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지만, 행복은 보다 복잡한 녀석이라서일까요?

"몸의 어느 부위가 당신 것이 아니라고 느낀 적 있어?"
"내가 이래서 당신을 사랑한다니까요."

이는 뭐 특별히, 그(들)만의 개성적인 느낌은 아닙니다. 우리들 일반인(중에서 남성이라면 더욱)들도 마찬가지고, 가장 순도 높은 원초적 본능만을 대변하는 부위와, 나머지 정신적인 영역이 치열한 다툼(대개는 타협과 평화 중에 시간을 지냅니다만)을 벌임은 아무리 둔한 이라도 자각하면서 삽니다. 게다가 문학 작품 중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기도 했죠. 뭐 거기까지는 좋은데... 읽다 보면 좀 불편해지는 여러 서술이 특히 이 장(章)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사실 책 첫 장도, 사정을 모르는 독자라면 좀 놀랐을 법한 사연이 당연한 전제마냥 제시되기는 했습니다만.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고, 대체로 그가 책을 통해 전하는 뉴욕의 풍경은 무척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컷의 사진이 실렸는데, 그 중 상당수는 실제 인물(중요한 사람들이라기보다, 그가 뉴욕에서 마주친, 지나가던 이들, 그가 "이웃"으로서 공감하던 그 아주 짧은 순간의 "친구들"이었습니다)을 담은 것입니다.

이미 노년에 접어들기까지 단 한 번도 타인과 성행위를 해 보지 않은 사람, 영혼, 그에게라면 "샴페인의 코르크 따는 장면, 그 폭발하는 기포의 향연"도 생애 처음 겪는 신기한 목도일 수 있습니다. 물론 꼭 그러라는 법은 없죠. 혹 누가 앞의 사정(virginity)을 알고, "당신 샴페인은 따서 마셔 본 적 있어?"라고 묻는다면(대체로 이는 조롱이거나 경멸감의 표현입니다. 상대가 노인이라면 더욱 그렇고, 저는 우리 한국에서라면 거의 예외가 없을 듯하지 싶네요), 상대방은 크게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 올리버 색스는, A를 모르기에 B 역시 모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 빌 헤이스는 너무도 잘 알 수 있었기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어느 하나의 정체성, 개성으로 요약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뭐랄까, 그가 가진 모두가 그를 표현하는 하나의 전체라고나 해야겠지. force of nature일까?" 이것은 올리버 색스가 그의 "친구"인 고 칼턴 가이듀섹(노벨 의학상 수상자)에 대해 내린 평가입니다. 이런 사항이라면 영어(라틴어지만)에는 sui generis라는 좋은, 합당한 어구가 있는데 구태여 그 말을 쓰지 않으시네요. 1부 맨처음에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작가 빌 헤이스는 그 늙은 나이에도 여러 사람, "상대"를 만나고 다닙니다. 그쪽 기준이라면 아주 난잡한 정도까지는 안 가겠지만. 여튼 그가 올리버 색스를 좋아하는 한 이유는, "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이런 충동을 참을까?" 같은 경이로움이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그가 일생을 두고 불능이 아니면서 아무 갈등을 겪지도 않았다는 점은, 빌 헤이스가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빌 헤이스가 술을 좋아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벌써 성씨부터가 Hayes 아닙니까. 일로나와의 대화에서 그는 자기 부친이 아일랜드인임을 (그녀와 독자에게 모두) 밝히고, (이번에는) 자리에 어울리게 보드카를 마십니다. 이 앞 2부에서 그는 뉴욕의 여러 인물들을 만납니다. 대부분은 택시 운전수, 길거리의 사환, 가게 주인 등 평범한 이웃들이죠. 크리스, 압델 처럼 흔하고도 자기 색깔(적어도 종족의 색깔)을 드러내는 이름들은, 때로 불측한 욕망과 함께 각인될망정 모두 뉴욕의 정체성을 모자이크처럼 구현하는 필수 요소들입니다. 일로나와의 만남 이야기로 시작된 이 3부는, 어느 상점에 든 강도 사건을 O, 즉 올리버 색스 노인("자기")과 함께 나누는 등 제목에 맞게 약간은 씁쓸하고 불편하며 슬픈 사연들이 채워집니다. 대단원은, 우리가 잘 알듯 작가 O의 죽음을 다룹니다. 그러니 죽음으로 시작해서 이별로 끝나는 책이 되는 셈이네요.

책 서두에는 시인 김현의 헌시가 한 편 실려 있습니다. 책보다는 O, 올리버 색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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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tmzl 2017-10-02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은 인섬니악인데, 리뷰 내용은 내 나라가 낯설다네요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빙혈 2017-10-02 09:50   좋아요 0 | URL
네, 지적 감사합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서평 두 개를 올리다가 내용이 서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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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공 영어 학습법 - EBS 스타 강사 준쌤의
허준석 지음 / 꿈결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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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강사 레벨의 실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려면 어떤 공부 방법, 혹은 학력 이수가 필요할까요? 뭘 어떻게 실력을 쌓고 체험을 쌓아야 입에서 말이 술술 나오고 흠 없는 유려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많은 이들에게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 저자 허준석 강사님은 특목고 출신도 아니고, 어려서 조기 유학을 다녀온 경험도 없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들 다수가 겪은 어학 연수는 마쳤지만, 우리들 중 역시 다수는 "과연 그 정도로 영어가 ...?" 같은 의구심, 자신감 결여를 만성적으로 겪고 살죠. 그런데, 현재 허준석 님은 EBS 최고 인기 강사 중 한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EBS를 자주 볼 일은 없어서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분인지는 모르지만, 여튼 많은 학생들이 그 선생님 강의가 최고이며 성적 향상 효과를 봤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면, 성공한 인생임은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영어 구사 능력에 있어선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아닐까요?



외국어는 십대 초중반에 그 압도적인 사용환경에 네이티브와 함께 노출되어야 안정적 실력이 갖춰진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힘들다는 게 중론인데, 어떻게 하면 "혼자(책을 읽어 보니 완전히 혼자는 아니셨으나, 여튼 이 정도면 독학으로 늦은 나이에 마스터한 영어 도사님이 된 경우로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공부해서(즉 혼공), 영어를 잘 할 수 있을지, 이 허준석 님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허준석쌤은 학창 시절 특별히 공부를 잘하던 학생도 아니었고, 대부분은 조용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던 타입이었나 봅니다. 그러던 그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성격도 활달하며 세상을 자기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듯 의욕과 자신감 가득한 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건, 바로

"영어를 즐기게 되고부터"
라고 하시네요.

사실 영어뿐 아니라 사람이 무엇 하나에건 몰입하고, 사랑하고, 집중하여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눈빛도 달라지고 자존감도 생기는 게 보통입니다. 영어 실력은 대한민국에서 취업, 업무 수행, 비전 설계, 대인(對人) 응대 등 여러 분야에서 핵심적으로 대접 받는 기능입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쓰고 못 쓰고에 따라 그 사람이 활동, 참여할 수 있는 범위와 레벨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영어를 못 하면 심지어 출신 집안까지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다 있을 정도입니다. 사회에 대해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아도 영어 능력만은 "그까짓 스펙"이라며 함부로 폄하할 수 없죠(그런 사람은 꼭 일찍 퇴사하여 갈 곳을 마련 못하고 떠돕니다).

대개 이런 분들이 입시 칠 때에는 수학 때문에 엄청 고전하죠. 그래도 다른 과목 점수는 꽤 나온 편이었는지, 재수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사범대(영어 교육과)에 지원해서 합격하셨나 봅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볼 건, 어차피 사회 나가서 한 가지 적성에 올인하여 성공을 꿈꾼다면, 정말 자신이 애착을 갖고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는 한 분야에만 집중해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영교과에 들어가보니 역시 특목고 출신, 조기 유학파 출신 등 다양한 배경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실력(정확히 알 수야 없으나 최소한 발음이라도 멋지게 들리는)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생 쭌샘이 눈길을 돌린 건 어학연수였습니다. 부모님께 천만원을 타서 바로 캐나다 등으로 향했는데, 호리호리한 체구의 그가 난생처음으로 말도 안 통하는 벽안의 외국인들 틈에서 부대낄 마음을 먹은 자체가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 "겨우 그걸 갖고?" 근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자신을 던질 마음을 먹는 자체가(상황에 떠밀려서가 아닌 자발적 결단으로) 쉽지를 않죠. 이분에게는 이런 결심과 체험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게 틀림없습니다.

영어에 대한 열정과 취미 하나를 동기로 삼고, 그는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슬랭이나 문맥, 뉘앙스를 열심히 파고 들었습니다. 영어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정이나 생각이 자발적으로 언어가 되어 입으로 튀어나와야 합니다. 술먹다가 얼굴을 크게 다친 어느 여학생을 병원으로 자신이 앞장서 이송했고,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에게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냐"며 칭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침착한 대응에 대해 동료 학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인간적으로 확 성장하는 계기가 이런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영어 구사에 대한 자신감이, 어른으로서 성숙한 행동과 사회적 인정에까지 결합된, 성장 체험을 적정 단계에서 맞이하는 행운은 결코 흔치 않습니다. 이제 그는 주변의 존경과 선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때의 짜릿하고 뿌듯한 느낌이 "영어 실력"과도 연결됨을 내면 깊숙히 자각하게 된 겁니다. 남들 죽을 맛으로 공부할 때, 그는 인격이 완성되고 주변에서 인정받던 행복한 체험을 연상했으니 능률이 남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처럼 낯선 환경에서 타인들과 잘 어울리고 적응을 잘 해나가는 태도가, 어린 시절의 풍요로운 환경에 기인한 바도 크다고 봅니다. 남들의 장점을 시샘하고, 왜 자기 생각대로 안 되었을까 원한을 곱씹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시인 안 하고 고립된 세계에서 우기거나 왜곡하고, 비열한 뒤통수나 치면서(머리가 워낙 나쁘기에, 고작 이런 짓으로 보상을 찾습니다) 썩은 자아를 위로하는 습관이 붙은 이라면, 이런 즐거운 모험을 할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뭘 배워나가지도 못하고 언제나 그자리에 머물거나 퇴행합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거죠. 저자 준쌤은 그와는 정확히 반대 지점을 이루는 인성을 지녔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사람이 마음에 응어리진 바가 없으면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이든 그의 장점을 취해서 내 것으로 만듭니다. 영어 공부뿐 아니라, 사람이 성장을 위해서는 일단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게 다 이런 사례에서도 확인이 되죠.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자신이 표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쉽고 직관적이고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영작하거나 말하려면 어려운데 영어로는 엄청나게 쉬운 문장, 이런 걸 볼 때 우리 한국 학습자들은 절망한다고 쭌샘은 말합니다. 어떻게 극복할까요? 우리 주변에 널린 모든 문장, 영화 대사, 책 속의 한 구절이 다 선생님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공부 교재로 만들어야, "일발장전, 즉시성"이 몸에 밴 네이티브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다.

적어도, 쭌샘은 알아서 작동하는 호기심과 열정과 학습 기제를 통해 그렇게 배운 분입니다. 천만원 아니라 수십 억짜리 유학을 해도, 열정 없는 좀비 같은 마인드로 시간을 보내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죠. 제 생각에는 일단 어학 연수 체험이 이분 인생과 경력에 primer를 마련했겠으나, 그거 아니라도 순수 독학으로 어차피 이분은 성공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왜? 인성에 긍정이 있고 열정이 있기 때문이죠.



p226을 보면 영어 공부에 고무줄을 활용하라는 팁이 있습니다. 이분뿐 아니라 영어 고수들, 강사님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냥 입으로 염불 외듯 기계적으로 공부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말과는 달리 영단어(뿐 아니라 상당수 인구어족, 외국어 일반)는 강세가 있기 때문에, 강세를 적절히 넣지 않고 flat하게 읊조리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상대가 알아 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영어도 이미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세를 넣을 때 고무줄을 함께 당기면 잘 안 잊힌다는 거죠.

이렇게 안 해도 바로바로 알고 잘 써먹은 이들은 두뇌가 남달라서 아닌가? 수학은 몰라도 영어는 끈기를 갖고 관습과 정서를 몸에 배게 해야 마스터할 수 있으므로, 머리 좋아도 초기의 능률만 믿고 중도에 그만두는 타입이라면 나중에는 뒤처집니다. 그런 사람(그건 타고나야 하니까 부러워한다고 뭐가 될 문제가 아닙니다)이 부러운 게 아니라, 이처럼 영어 구사가 생활이 된, 한때는 평범했던 쭌샘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닮으려고 노력해야죠. 단지 영어 공부 한 분야에 대한 진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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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종말 - 불확실성의 시대, 일의 미래를 준비하라
테일러 피어슨 지음, 방영호 옮김 / 부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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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의미에서의 "직업"이 하나둘 없어져가리라는 전망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듯합니다. 다만, 그런 직업들이 사라진 빈 자리를 어떤 시스템, 어떤 분위기의 사회가 메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죠. 확실한 건, 뻔한 사고와 판에 박힌 생각, 작업의 틀만 고집하는 정신은 반드시 도태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남들 하던 대로만 열심히 뛰어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철저히 개인화한 고유의 방식, 창의적인 발상 없이는 경쟁에서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같은 말이 한 번도 본문 중에 나오지 않지만(단, "제4경제"라는 용어는 1회 등장합니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어떤 직업들이 도태되고, 홍수에 쓸려나갈지 자신 있게 예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직업" 전체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저는 처음에 책 제목이 "직업의 종말"인 게 다분히 비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직업"은, 조금은 좁게 해석해야 타당한 결론이 나오겠습니다만(아주 광의로 잡은 "직업"이라면, 경제활동을 인류가 이어가야 하는 이상 결코 사라질 수 없죠).

직업이 없어지면 그를 대체할 활동, 시스템은 그럼 무엇인가? 저자는 단언하건대 그것이 "창업"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직업과 창업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동시에, "학위, 지식 위주의 경제 활동"은 직업에 대응하고, "창의력과 기발한 사고, 자유로운 개성 발현, 고유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체험, 경험, 만족, 행복 중시"는 창업에 대응합니다. 전자와 후자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며, 이것이 생존이냐 도태냐, 혹은 상위 20이냐 하위 80이냐로 갈리는 계기라고 주장합니다. 즉, 이 책은 직업의 종말과 동시에, "창업의 시작"을 독자에게 (강력히, 신나게) 권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한때의 자신을 포함한) 미국, 나아가 세계의 젊은이들이, 왜 버젓한 학위를 갖고서도 실업, 저임금, 불만족스러운 직장에 머물런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합니다. 그 해답은 먼저, 1) 세계 경제가 종래의 지식 위주 구조(여기서 "지식"은 다분히 저자의 편의에 따라 재구성된 개념이죠)에서 혁신, 창의 위주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2) 그만그만한 학위 소지자의 노동 시장 공급은 크게 늘었으나, 이를 소화(채용)할 수요는 완만히만 늘거나, 아예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하는 취지입니다. 세상이 바뀌면 그에 대처하는 개개인의 정신 자세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예전 식대로만 먹고살려드니 곤궁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마이크로-멀티내셔널은 기업이 세계 각지에서 소규모의 직원들을 고용하여 각처의 사정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미국처럼 인건비가 비싼 시장에서 사람을 구하느니, 예컨대 베트남이나 인도에서 비슷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 인력 몇 배수의 직원을 더 쓸 수 있다는 거죠. 예전 같으면 통신 시스템의 미비로 이런 상황을 상정하기 어려웠겠으나, 지금은 (책 중에서 예를 드는 대로) 와이파이가 설치된 카페 아무데나 들어가 스카이프 같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한국의 소규모 기업가들도 근 십 년 전부터 이런 방식을 써 왔습니다). 이런 충고는 "그런 게 있다" 정도의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려는 취지도 아니고(그런 건 우리도 벌써부터 다 알고 있는 사항이죠), 많은 비난을 받는 이른바 "오프쇼어링" 행태를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 의욕과 아이디어는 넘치나 창업이라면 괜히 주저하는 당신에게, "지금 바로 시작해서 하위 80을 탈출할 것"을 권하는 맥락입니다. 남들이 그렇게 하더라, 이게 아니라, 이제 당신도 얼마든지, 당신의 자리에서 바로 임해 볼 수 있는 도전이라는 뜻이죠.

커네빈 프레임워크는 철자가 Cynefin인데 왜 그렇게 읽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웨일즈어는 특히 철자와 음성이 매우 특이한 패턴으로 결합하기에, 가뜩이나 불규칙적인 영어식 관습보다도 정확한 발음을 알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커네빈"으로 읽어야, "다양한 팩터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상"이란 원의를 잘 살릴 수 있게 되죠. 이 책 맨처음에 나오는 방송인 Stephen Colbet 역시, 모계가 프랑스인이라서 당사자만 유독 "콜베어"라는 발음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그 부친은 아일랜드계지만 자신의 성씨를 그리 읽지 않습니다.

여튼 커네빈 프레임워크의 골자는 "난해성(complicated)" 영역이건 단순성 영역이건, 이른바 practice를 통해 업무에 숙련되면 충분했던 직업이, 현재와 근미래 시점에서는 점점 사라져간다는 겁니다. 대신 융통성과 창의력이 보다 요구되는 "복잡성(complex)", "혼돈(chaotic") 영역이 늘어나,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이른바 "창업"의 셰어가 한층 커지는 중이라는 거죠. (이 이론은 꼭 이 저자의 맥락을 떠나서라도, 다른 현상의 설명에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되므로 권위 있는 서적을 찾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 후반부에도 예화로 드는 것처럼, 저자는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고, 자신만의 사업을 당장 구상하라"는 쪽입니다. 투자은행 직원 같으면 꽤 주위의 선망을 모을 만한 "직업"이겠는데, 한 사람은 "그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좋은 자리를 포기하고 현재 개인 사업 중이랍니다. 다른 사람은 열심히, 다른 이들보다도 몇 배의 정력과 시간을 쏟아 그 자리를 지키는데도, 현재 돌이켜 보면 개인 사업자보다 수입이 훨씬 적다네요. 물론 이런 사례는 미국이라고도 해도 모든 이에게 일반화하기 어렵고, 하물며 4대 보험 등 여러 부가 혜택이 많은 한국에서는 더더욱 과감한 실천에 리스크가 따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워낙 빠른 속도로 바뀌는 만큼,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p83을 보면, 저자는 역시 고유의 프레임에 따라 "지식 활동/창업가형 활동"으로 이대별한 후, 창업가형 활동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더 고부가가치 경제활동이 가능함을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돕습니다. 이때의 "지식활동"이란, 한 분야에만 기계적으로 반복 적용되는 근대형 고정 지식을 가리킵니다. "부업을 가진 고용인"보다, "기업 임원". "기업가형 고용인(우리식으로 따지면 프랜차이즈 지점 사장님 정도겠죠?)"이, 이 피라미드에서 더 하위에 위치하는 점을 눈여겨 보십시오.

저자는 창업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위험 중립형 내지 위험 선호형"으로 마인드셋을 전환하는 과감성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통적 경제학 개념에 따르면 위험 선호형이란 실속도 없이 미친 듯 행동하는 유형이므로 지향할 게 전혀 못 되지만, 적어도 위험이라는 bads와 이익이라는 goods를 유연히 대체할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익이 90이고 위험이 10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1/9로 낮은 그 위험을 회피하느라 현명한 선택을 못 한다는 겁니다. 워런 버핏의 예를 들며, 분산투자란, 확고한 투자 원칙이 선 이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으며, 자신은 확신이 섰을 때 모든 걸 베팅했던 서너 번의 기회로 부자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회고하는 사실(역시, 우리 독자들도 그간 여러 책을 봐 와서 아는 내용이긴 합니다)을 다시 거론합니다.

저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현재의 사회가 "평범의 왕국", 즉 그저 중간만 적당히 가도 생존의 최소 조건은 보장되던 안온한 과거가 아니라, "극단의 왕국" 즉,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고, 현명한 선택 몇 번으로 단번에 위상이 높아지는 변동성 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을 통렬히 지적합니다. 요행수를 노리라는 게 아니라, 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감정보다는 냉철한 이성과 계산에 의해 움직이라는 뜻이겠습니다.

학교에서 비싼 등록금 내고 무엇을 배우기보다,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각종 창업 기법과 마케팅 감각을 익히는 게, 급여도 받고 일도 배울 수있는 좋은 기회라고 저자는 역설합니다. 이런 걸 두고 "착취형 도제 시스템"이라며 비난하는 쪽도 있으나(이런 반대 의견을 저자는 넉넉히 의식하면서 논지를 전개하더군요), 세상이 단편 지식 전수, 반복 실행 패턴에서 현저히 이탈하여, 급변하는 환경에 수시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니 이 편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고, 저자 자신도 그런 식으로 현재의 지위를 일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되는 인맥의 구축도 빼놓지 않습니다(단, 이런 논리대로라면 학교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인맥은 기회비용으로 치르는 셈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 물론 분노할 때는 분노하고, 시스템의 비위에 대해 지적할 것은 지적하며, 대세에 무지렁이처럼 휩쓸려가기나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격변이 오히려 내가 기존 구조에 빼앗기는 것보다, 빼앗아 올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합니다. 이 역시 저자뿐 아니라 다른 "4차 산업혁명 이론가"들도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내용이죠. 이른바 "롱테일 산업 구조"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용케 틈새 시장을 찾아내어 블루 오션을 경영하듯 자신의 아이템을 팔 수 있게 된 것도 엄청난 기회인데, 제가 이 블로그에 서평도 올려 온, 몇 년 전부터 출간되어 온 다른 서적에서도 그 타당성이 입증되어 온 논의입니다.

"설계할 것인가, 설계 당할 것인가." 예전부터 노예로 사는 삶, 하루를 살아도 자신의 주체적 의지로 사는 삶의 구별에 대해선 많은 주장들이 있어 왔습니다. 저자의 경우, 그리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여건에서 여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어떤 틀에 휩쓸리기보다 분명한 소신에 기대어 신나게 살아 온 분 같습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논의들의 소개, 유용한 이론의 요지, 또 저자 본인의 성공담 등이 제시되지만, 전체적으로 꽤 흥겹게, 일관된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 읽기에 대단히 편합니다. 저자의 흥이랄까 박력도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남의 장점을 과감히 배우고 따라하라는 팁도 여러 대목에서 반복, 강조되는데, 이 역시 격변하는 세상에 각자가 융통성 있게 몸에 배게 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겠습니다. 결론은, "삶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려 애쓸 것이며, 이를 위해 창업하라, 과감하게" 정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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