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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한시준 지음 / 역사공간 / 2016년 11월
평점 :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을 보면 낙엽을 두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은유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쓸쓸히 거리를 구르며 누구의 눈에도 무력하고 처량해 보이는 늦가을자락의 한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한 한국문학사의 절창이겠는데요. 영토와 국민은 이민족에게 앗기고 집행 강제 수단이 없는 이름뿐인 "주권"만 대행하는 어느 피정복민의 망명단체라 해도 그 애상적인 감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의 망명 주권 행사도 이 같은 느낌인데, 하물며 근현대사와 직접 맞닿은 우리네 순국 선열의 사연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책은 3. 1운동 직전부터 해방까지 시기에, 주로 상해와 중경에서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들의 활약과 일생을 조망한 "열전" 과도 같은 성격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고 주요 외국들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보다 앞선 7월 17일에 헌법이 공포되었지만(제정은 그보다 며칠 이른 7월 12일), 헌법에서 지난 시절 많은 고초와 수난 속에 민족 자존의 끊긴 맥을 이어 온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에 대해서는 언급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행 헌법은 제9차 개정으로 탄생했습니다만, 이 9차 작업시에야 비로소 본문도 아닌 전문에 "임시 정부의 법통" 언급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남도 아니고 후손들이 그 피땀 어린 역사를 외면해 왔으니 그 죄과와 불민함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늦게나마 학계 일각과 독서 대중 사이에서 임정 시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구체적인 성과도 나오는 건 만시지탄 속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보통,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3. 1운동의 성과로, 그로부터 한 달여 후인 4월 13일에 상해 임정이 수립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민족의 자존과 자립을 위한 노력과 분투가 느닷 공지에서 솟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시점상으로는 1919년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꿈틀대던 선구자, 투사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조망하는데, 제1장에서 "정부의 기반을 마련한 지도자들"의 활약을 다룸이 그 방법론입니다. 이 장에서는 홍진, (현순), 그리고 누구라도 교과서에서 그 존명을 익혀 배웠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임정의 연대기(태동, 발전, 수난, 침체, 재기)에 맞춘 서술 편제라서, 인물들의 유년, 청년기나 기타 개인적 행적이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 내용들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출판사에서 펴내었거나 근간 예정인 "독립운동가들" 시리즈를 찾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자께서도 그런 평을 간단히 하시지만, "일반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인지도"의 지도자 홍진 선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인물입니다. 우리 국사 교과서에도 "한성 정부" 사항이 주된 학습목표로 제시됩니다만, 그 한성 정부의 주도적 인물이 누구였는지는 잘 가르쳐지지 않는데, 홍진 선생은 (일제 강점, 강압의 직접적 타겟이었던) 서울(경성, 한성)에서 그 힘든 작업, 활동을 해내신 분이라 후손들이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한성 정부는 무엇보다 국내 활동의 성과물이라는 데에서 당시나 지금이나 주목받습니만, 책에 잘 정리되어 있듯 이후 노령 정부, 상해 정부, 미주나 하와이에 거주한 개별 거물 지도자들이 대립상을 보일 때 통합의 촉매, 명분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특유의 인품과 합리적인 사고 방식, 높은 식견 등으로, 통합 망명 정부 수립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실무와 정치적 교섭, 대화 주선, 알력 해소 등 여러 어려운 임무를 해내신 점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안도산의 경우 오늘날로 치면 "노동부장관" 역을 주로 촉탁받고 해당 직함을 유지하셨는데(명목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훨씬 많은 일을 떠맡으셨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죠), 이는 이보다 앞선 시기 조선땅에서 미주로 소위 노동이민을 떠난 이들을 현지에서 지도한 업적과 평판과 연관이 있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연하며 덜 수고롭고 더 큰 명예가 따르는 영역에 몸담기는 쉬워도, 험한 일을 자청하며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몸소 이뤄내는 건 확고한 인품과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책의 장이 바뀌어, 임정이 온갖 진통 끝에 정식 출범한 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대통령, 국무령, 주석" 등 정식 직함을 지닌 역대 국가 원수들을 조명합니다. 다 알다시피 초대 대통령은 (임시 정부에서도) 우남 이승만인데, 저자는 "6개 정부에서 모두 추대된 인사는 이승만뿐"이었다며 최소한 1919년 당시만 해도 명망과 정치력으로 그를 능가할 만한 인사가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안도산도 일부 단체에서만 (그것도 장관급으로) 거명되었으며, 이동휘 같은 분은 노령(연해주 일대를 가리키며, 이 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아령[俄領]"도 러시아의 한자 가차명에서 유래한,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에서 조직을 갖춘 실력자였지만 그에 못 미치는 5군데에서 직책에 추천되었을 뿐입니다. 독자인 제 나름대로 그 배경을 분석하자면, 일단 서북이 아닌 기호 지방 출신인데다(분단 전 황해도는 서북이 아니며, 오히려 범수도권에 들어가죠), 전주 이씨의 확실한 족보를 지닌 명문가 출신, 번듯한 풍신의 귀족형 신분, 미국 명문대 학위 등이 그 주된 원인이었지 싶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도 나오듯 "민족 자결 주의"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우드로 윌슨의 "친구"라는 점이 모두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했겠죠. (미국식 기준을 적용한다 쳐도 "친구"까지는 아니며, 세대가 너무 다른데다 오히려 "은사-제자" 관계가 더 적당할 정도입니다). 안도산 역시 이승만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거세질 무렵에도 그의 이런 미국쪽 인맥을 고려하여 무마하려 애를 썼을 정도죠. 그가 사임한 후 2대 대통령을 맡은 분은 박은식 선생인데, 이 책에는 그가 과공이라 할 만큼 몸을 낮춰 이승만에게 쓴 서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이로 보아도 16년이나 연상인 그가 "저"같은 1인칭 대명사를 쓴다든가(이 시절에는 "여[余]" 같은 중립적이거나 다소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1인칭 대명사가 자주 쓰였음은 이 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의 "본인"과 비슷한 느낌이죠) 하는 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형성된 계급 서열 의식이 느껴져 좀 씁쓸한 맛이었습니다. 여튼, 이만큼이나 추앙받던 분이 이후 그처럼이나 왜곡되고 원성 듣는 길을 걸은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
책에서도 누누이 지적되듯, 가뜩이나 영토와 국민을 갖지 못한 망명정부가 그나마 내분, 알력으로 "무정부 상태(책의 표현입니다)"에 자주 빠졌다는 게 읽으면서 매우 개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와중에도 모두의 비극을 막기 위해 화합형, 중재형 정치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어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더군요. 수반의 권한이 축소되고 이를 반영한 개헌이 이뤄진 후에는 "국무령"으로 명칭이 조정되는데, 여기서 책 맨처음에 굵직한 비중으로 다뤄진 홍진 선생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의 개명 사연은 제1장, 그리고 2장의 중반 등 여러 차례 비슷한 사연이 언급되는데요.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함자를 벼락 진(震)으로 고르신 건, 예컨대 대발해의 국명인 대진국이라든가, 우리 땅의 옛 이름 진단(震檀) 등을 염두에 두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 예 말고, 삼한 시대의 "진한"이라든가, 고조선과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정치 단위 "진"국 같은 건 한자가 달라서 지지 진(辰) 자를 씁니다.
우리는 소박한 상식으로,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를 거의 동의어로 취급합니다. 근현대사에 어두운 이들은, 이승만은 그저 미국에서 호강하고 나이만 먹다가 해방 후 밥숟갈만 얹은 파렴치한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튼 그런 상식이 자리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없지만도 않은 터라, 이 책의 중반 이후, 가장 큰 비중으로 서술되는 인물은 다름아닌 백범입니다. 책에서는 아무래도 "임시 정부"가 서술의 초점인 터라, 백범의 개인적(영웅적) 활동상보다는 임시 정부 안에서의 활동상에 보다 주목하는 편이네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백범의 재임기에는 "정부보다는 당(한국독립당. 줄여서 한독당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위의 원칙"이 여러 여건상 지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반드시 백범만의 노선은 아니라서, 예를 들어 위의 홍진 선생도 해외 활동보다 국내 유일당 형성 운동에 진력하러 상해를 떠난 것도 통일된 조직의 역량 강화가 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 때문인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지도자들이 대체로 공감한 대목 같습니다. 당과 정부의 이원적 관계라고 하면 대뜸 공산 체제가 떠오를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죠.
백범의 행적과 주장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철저한 자주적 정책 노선으로 펴는 독립운동"입니다. 이승만이 탄핵 당한 것도 직함 남용 등 개인적 일탈이나 "신탁 통치 청원" 등 비자주적 노선이 그 사유였는데, 백범은 이를 배격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장개석 정부에 그처럼 의존할 시절에도 "광복군이 연합군 자격이 아닌, 중국군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정책에 강력 반발하여, 앞으로는 중국 정부의 자금 원조를 받지 말자고 결의할 정도였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상해, 중경의 국민당 레짐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 이런 일화는 그간 소개가 드물었죠. 백범은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고도 긴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기여한 바 적으니 이후 발언권이 적을 게 걱정이다"라는 발언으로 위인전에까지 나오는 모습입니다. 시진핑이 작년에 飮水思源(음수사원)을 백범이 언급한 맥락이라며 기분 나쁜 소리를 한 적 있는데, 과연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나 하는 소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후손인 우리도 모르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망명정부는 강력한 활동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정책 수립 역할인 "이론가"와 "무장 투쟁 사령관"들이 또 필수입니다. 이 책 3장과 4장은 이분들을 각각 주제로 다룹니다. 이분들이 등장할 무렵이면 임시정부의 활동 반경은 대개 중국과 만주(현 둥베이) 등으로 제약되는데,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 선생과 신익희 선생은 "내외 관계(원래는 부부를 일컫는 말이죠)"로 불릴 만큼 정부 안에서 내무, 외부 담당 장관역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신익희 선생의 존영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당직회의실에도 걸려 있는데, 이는 민주화 운동의 먼 명맥이 곧 독립운동에 닿아 있음을 표방한 의도라 하겠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활약상은 왜 중점적으로 언급이 안 될까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겠는데요. 이분들은 주된 활동시기가 임정과 연관을 맺은 활약, 시점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선과 연대기에 초점이 놓여 있고,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노선을 커버하는 목적이 아닙니다(팔로군 설명이 길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죠). 책에는 대신 우리가 그간 공부를 게을리한 "황학수 장군"의 무공과 활약상이 이청천 장군의 업적과 함께 제시되어서, 무장 독립 운동 중에서도 "광복군"의 의의, 공헌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파악됩니다.
아무래도 사료에 충실한 분석이다 보니 고어, 사어, 문어투가 자주 등장합니다. "난"은 현대 주격 조사 "는"으로 새기면 되겠고, "쥬의", "죠선' 등은 아직 단모음화가 이뤄지기 전 혼란스러운 표기, 음운 현상의 흔적입니다. 각지의 임시 정부 "주권자 3인"이 모여 과두정을 이루자 같은 문장에서는 아직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음이 엿보입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주권자는 국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이죠). 책에는 후주와 각주가 동시에 세밀히 배치되었는데, 후주들도 그저 출처 언급만 담은 게 아니며, 대한 제국 당시 군인들의 계급 명칭 같은 게 정리된 항목도 있으니 앞으로 뒤로 넘겨가면서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2년 전 상해와 홍콩 증시가 서로 완전연동이 이뤄졌을 때 이걸 扈港通(후강통)이라 부르지 않았습니까? 상해(상하이)를 대표하는 글자가 "호(扈, 북경어 발음으로 '후')"인데, 이 책에도 마치 재미교포, 재일교포 할 때처럼 "재호인"이라든가, 내한(=방한)이라고 할 때처럼 "내호"라는 말을 일상어처럼 쓴 기록이 자주 인용됩니다.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게 상해 프랑스 조계에 위치한 "김신부로"입니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인데 중국식 성씨가 金이었던 까닭입니다. 불어로는 "루뜨 뻬르 로베르"죠. 이 주소는 바로 상해 임정 소재와 관련이 있어 우리가 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포와급미주"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급(及)은 우리말의 연결격 조사 "와, 과"와 같습니다. 미주는 물론 아메리카 주, 그 중에서도 미국을 가리키며, "포와"는 하와이의 가차 표기입니다. 이 책에서 자주는 안 나오지만 박용만 선생 등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흔적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