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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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다움과 죽음 두 개의 강박에만 평생 시달리다 정직하거나 과시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장엄한 자살로 한 생을 마무리한 그의 작품이 과연 맞나 싶을 만큼 코믹하고 재기 넘치는 소설입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목숨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도무지 죽어지질 않는 불운한 남자가 결국 사무치게 생에의 열정을 회복한다는 줄거리더군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추한 잉여 인생들의 수중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돈이, 목숨을 매물로 제쳐 둔 27세의 니힐리스트에겐 손사래를 쳐도 자석처럼 빨려듭니다.

구매자(?)들도 돈을 건네면서 "곧 죽을 사람이 돈은 왜 챙기냐?"고 묻곤 하지만 그때마다 주인공 하니오는 매섭고 빈틈없는 답을 준비했다가 경멸처럼 내뱉곤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구매자들에게는 거꾸로 하니오가 정말로 궁금해져서 묻곤 하는데, 그럴 때는 이들이 "말이 되는" 대답을 이미 준비했더군요. 어처구니없는 부조리 속에서 치열하게 의미를 찾으려 드는 인물들의 발버둥이 해학적이면서 숙연한 느낌을 주는데, 간결하면서도 결국은 심각한 고뇌와 날선 회의를 숨긴 문장들이 과연 그의 솜씨구나 싶었습니다.

하니오는 히트작을 여러 건 만들어낸 젊고 유능한 카피라이터입니다. 더 이상 일을 안 배워도 독립이 가능할 프로급이지만 본인은 조직 안에 계속 머물고 싶어합니다. 일 잘 하는 사람은 자기 살림을 따로 꾸리고 싶고 천하에 돈안되는 군식구는 구차하게 자리를 보전하려 드는 게 광고회사뿐 아니라 모든 현대 조직의 역설(이른바 역선택)인데, 하니오는 그 나이에 맛볼 수 있는 성공의 절정에서 질병과도 같은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의욕을 느닷 잃습니다. "모든 활자가 바퀴벌레처럼 바뀌어 보인다"가 그의 고백인데, 사실 이는 지극히 세속적으로 맞은 일종의 해탈과도 같습니다. 불운이라면 본인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맞았기에 대체 뭔지를 모른다는 건데,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삶의 비의가 한눈에 엄습해 왔으므로 미약한 존재는 필연의 해답으로 죽음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의 자살이 실패로 끝났더라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하니오는 객관적으로 아까운 생(젊은 나이에 주위에서 인정 받은 광고인)의 마감에 보다 어울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기를 결심합니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제값 받고 목숨 팔기"인데요. 많은 이들은 이런 기괴한 광고를 두고 "청부살인의 청약" 정도로만 받아들이나 봅니다. 하니오는 그러나 보다 다양한 상황과 제의를 염두에 두고 펼친 계획이었고, 세상은 그의 이런 상상력에 충분히 부응하려는 듯 다양한 구매자를 그의 앞으로 보내 옵니다. 모두 다섯 건의 계약이 이뤄지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기발한 천재적 상상력을 우리 독자들이 충분히 즐기고 감탄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은 1968년, 그가 실제로 죽기 2년 전에 부분부분이 지어졌는데(플레이보이誌 일본판에 연재), 이로부터 한참 후 유행할 미국 고딕 호러, 코믹 판타지 장르 영화에서 애용하던 전개와 착상이 많이 보여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솜씨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목숨을 팔겠다며 광고를 낸 모습도 웃기지만, 그런 목숨을 사겠다고 찾아온 군상들의 사연이란 해학을 넘어 경악을 안기는 작태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번째 고객인 가오루 군의 흡혈귀 모친 에피소드는 특히 아직 뱀파이어 장르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한참 전이라 더욱 눈길이 갔는데요. 이런 소재에 어디까지나 국외자일 뿐인 일본인 작가가 이만큼이나 잘 소화해서 멋진 마무리까지(사랑하는 하니오를 위해 결국 대신 죽음) 이루는 걸 보고 과연 천재작가가 틀림없다고 여겨졌습니다.

A국(은혜를 갚는다 어쩐다로 봐서 틀림없는 미국이죠)와 B국의 첩보전에 휘말려 골치 아픈 분쟁을 손쉽게 해결하는 모습은, 다른 에피소드들에서 포레스트 검프나 바우돌리노처럼 운 좋게 해결의 대세에 올라탄 모습과는 달리 하니오 본인의 번득이는 재치에 전적으로 기인한 해결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특별한 당근인 양 트릭을 썼지만 사실 평범한 당근으로도 왜 문제가 안 풀리겠는가?" 쉬운 문제를 골치아프게 생각하는 게 미국인들의 병통이라며 마치 백치의 우연한 지혜인 양 교훈화를 시도하지만 현자의 눈에만 진리의 지름길이 한 줄기 빛처럼 직통으로 들어오는 법입니다. 한 줄짜리 소화(笑話)에 모티브로 쓰이고 말기엔 너무 아까운, 창의적인 장치여서, 아마 모르긴 해도 이후 어느 탐정물 장르에건 뻔뻔스레 도용되지 않았을까 추측되더군요.

이처럼 명랑한(외견상) 피카레스크풍의 깔끔한 작품을 쓴 이가 이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자살을 선택한 게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죽으려 든 게 아니라, 세상의 괴기한 사건과 음모의 줄기를 맨몸으로 접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재치와 능력에만 의지해서) 큰 돈을 벌어 보려 거대한 쇼무대를 설치한 것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실상 자살을 주 소재로 삼은 소설의 작가가 실제로 요란한 퍼포먼스 속에 죽음을 택해 버렸으니 그런 해석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유능한 직원이 퇴직하면 거액의 전별금까지 챙겨 주고, 무능한 자가 버티려 들면 제발 좀 나가라고 책상을 뺏는 게 비정하지만 공정한 세상의 이치겠으며, 하니오 같은 재주꾼이 험한 세상과 정면대결하여 더 큰 실속을 챙기고, 무능한 현실도피자가 새해 벽두에도 분수에 넘는 요행을 품다 꿈이 망상으로만 끝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함이 없는 희화적인 풍속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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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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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헌법에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한때는 출판의 자유가 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협소한 개인의 행복과 자유의 범위를 넘어, 특정한 사상과 원리가 공동체, 나아가 전 인류의 복리 증진에까지 영향을 주려면, 그 정신적 가치나 기술적 세부 사항 등이 지면을 통해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도 웹 페이지의 최종 발표를 위한 편집 기술을 "퍼블리싱"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겠습니다. 인간은 이런 의미에서 "출판하는 동물"이라 불릴 만한데, 이런 근원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자유를 제한당한다면 이는 표의자나 잠재적 독자층에게 크나큰 고통이자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주로 서양의 출판, 저작 역사에 초점을 두어, 어떤 빼어난 책들이 여태 금서로 지정되고, 그 지정된 금서가 인류 문화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재미있게 서술합니다. 못된 책, 혹은 요즘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불온 서적"은 그럴 이유가 있어(내용이 불건전하여) 양식 있는 이들에 의해 금지되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서적에 끌리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내 자신이 어딘가 불측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심성이겠다며 괜한 자책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의해 이른바 금서로 지정된 서적들 중, 이 책에서 소개한 것들의 경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불후의 명작, 고전 리스트"에 다름 아닙니다. 어떻게 "금서=명작"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모든 금서가 다 명작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오늘날의 눈으로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풍속물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흔히 음서, 도색물로 분류되는 것들은 교황청이라든가, 엄숙한 지역 교구라든가, 정부의 출판 규율 당국 등으로부터 "금서 목록"에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흔히 "물건"으로 다뤄져 발각 즉시 소각되거나 압류되었을 뿐이었죠. 따라서 위험한(당시의 지배 계층이 보기에) 사상이나 주장을 담은 책들, 혹은 우아하고 잘 제련된 언어 속에 성(性)의 지향(행태가 아닌)을 담은 책들이 비로소 권력층에 의해 "금서"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적용되었기에, 당대인들이 이해 못 하거나 질서(낡은 적폐를 포함할 가능성이 높죠)를 위협할 만하겠다 싶던 책들이 제재를 받았겠고, 그런 책들 중에 명작, 고전이 많이 낀 것도 당연합니다.

아마도 금서라고 하면 <데카메론>이나 <우신 예찬> 등, 교회와 지배특권계층의 이해에 반했던 여러 선구자들의 문예 작품이나 논설을 대뜸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작품 목록들은, 오히려 근현대에 들어서까지 정부 당국에 의해 경원시된, 불멸의 명작들을 더 많이 포함한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 중에는 노동자층의 비참한 근로 여건을 고발하는 소설, 희곡도 있고, 인습과 제재를 넘어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주장하는 문예물도 있습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이처럼이나 가까운 시기에까지 금지되었다는 점도 의외이겠으며, 이런 책들을 개인 간에 우송, 교환하는 행위도 무려 "우편 당국"에 의해 검열, 규제되었다는 사실이 많은 독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적 비밀, 통신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금서들 중, 유독 제정 러시아의 폭압적 처사라든가, 이후 소비에트 시절까지 포함하여 많은 명작, 정의로운 외침을 담은 저술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제정 시대에는 다른 예속 민족의 자유를 외치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공산 정권 때에는 우리가 잘 알듯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든가 솔제니친 등의 작품들이 엄혹한 조치에 족쇄가 묶였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제정러시아나 공산당 일당 독재나 결국 체제의 내부 적폐를 청산, 극복 못 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사실이죠. 선각자,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문학가들이 외치는 소리에 제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스템이 한결같이 맞아야만 했던 운명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반드시 체제에 반대하거나, 음란한 풍습을 다룬 책들만 금지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야수적이고 잔인한 면을 그대로 묘사한, 졸라 풍의 자연주의 작품들도 결국 윤리와 미풍에 반한다는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죠. 어느 사회나 부모자식간의 바른 범절, 부부 윤리, 공동체 질서의 이상적 방향을 성원들에게 가르치고 사회화의 지침으로 삼기 마련인데, 이런 정책에 방해가 되는 내용을 담은 책 중 파급력이 있겠다 싶은 책은 흔히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인간의 품성 중 어둡고 부조리한 면을 그대로 서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금서로 묶여야 한다는 정책은, 오늘의 관점으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조치이겠습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워낙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자유시장의 원리에 의해 개별 저작의 튀는 성향이 그저 대중의 눈에 쉽사리 안 뜨인 결과일 뿐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금서들의 경우, 문제작이다 음서다 불쾌하고 불온한 저서다 이런 막연한 선입견을 확실하게 배반하며, 오히려 "고전, 명작 엄선 리스트"라 불려 무방할 정도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게, 이 많은 명작들이 하나같이 금서로 묶인 적이 있다면, 금서가 대체 인류 문명의 진보를 선도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어째서 이런 모순된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까요? 당대의 정부 당국자들,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눈멀고 아둔한 자들만이 그 자리에 앉혀졌다는 뜻일까요? 그 해답은, 어느 체제나 질서라도 그에 대해 정당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거나, 비판과 개선 사항이 반영, 수용되지 않는 닫힌 사회라면 결국 그 존속이 어려워지고, 자체 붕괴나 발전적 해체로 치닫는 게 필연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몸담은 사회가 훌륭하지만, 이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보자는 외침이 죄가 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은 작가 트럼보의 유명한 말이죠.

사실 이 책은 인류 문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엄선 소개로 파악해도 전혀 무방한데, 절묘하게도 "금지, 금압"의 코드로 이 많은 책들을 엮어 소개한 저자의 센스가 탁월합니다. "센스"라고만 표현하면 어딘가 감각적인 능력만 강조하는 것 같은데, 이 책의 필치는 찬란한 고전을 선별하고 소개함에 있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엄정하고도 세련된 필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저자는 어느 작가를 소개하면서, "위대한 고전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변형, 재창조하려 든 계획"을 가졌다고 서술하는데, 이는 아마도 저자 본인이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섭렵하며 가졌을 꿈의 일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갖게 합니다.

명작 리스트라고 하면 대개 건조한 필치에 내용 요약식 뻔한 체제로 진행되기 일쑤인데, 이 책은 내공 깊은 저자의 소양 있는 문체로 각각의 저작에 대해 멋진 입문적 소개, 현대적 의미 부여가 되어 있어 소재 못지 않게 저자의 입담, 고아한 인문적 취향에 함께 매료되는 면이 있습니다. 고전에 대한 소개가 낡은 문장, 이미 확립된 정평에 의존하는 수가 많은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신선한 시각으로 해당 고전에 눈길을 다시 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아직도 출판, 표현의 자유가 널리 확립되지 않은 중국의 저자가 썼다는 점에서 묘한 여운도 남기는 게 사실입니다. 언제나 믿고 고를 수 있는 허유영 번역가의 유려한 문장도,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저술인 양 즐거운 착각을 부르게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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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무너지다 -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와 시민들의 이야기
정철운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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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약성경 중 루가복음의 한 구절을 약간 변형한 것인데, 대략 유신시절 기자 대량 해직 사태때부터 널리 퍼졌습니다. 고 송건호 선생, 리영희 교수 등의 책이나 강연에서 자주 볼 수 있었죠.

작은 책이지만 현대사의 큰 줄기 하나를 언론인의 시각으로 담아낸 무게가 느껴집니다. 박근혜 정부의 사실상 몰락을 가져온 이번 사태는 촛불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혁명의 "방아쇠(이 책 중의 표현입니다)"를 당긴 주체가 언론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민완 기자이신 저자(진보매체 <미디어오늘> 소속입니다)의 눈으로 볼 때, 강고한 정부 권력이 결국 무릎을 꿇어가는 그 과정은 지난 정치사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간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여러 언론사들이 동맹, 연합을 이루며 대형 비리를 세상에 고발한 국면이 두드러졌는데요.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한 좋은 예로도 기억될 것 같습니다.

"언론과 다투는 정부 권력이란 참으로 못난 짓을 하는 꼴이다." 이런 말은 지난 정부에서도 여러 번 들어 온 격언(?), 혹은 따끔한 독설이었습니다. 저자는 책 처음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언론사와 고소 고발 등 여러 분쟁을 벌였음을 지적합니다. 그리 단단한 집권 기반을 갖지 못했던 정부가, 심지어 보수 언론 매체들과도 간단 없는 다툼을 벌였던 게 스스로를 위해서도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겠는데요. 어쩌면 스스로 저지른 업보 말고도 정치적으로 서투른 실책의 남발, 무모한 각세우기 등이 총체적으로 빚은 비극인 듯도 합니다.

현정부 들어서고는 국제 언론 관련 단체 등에서 평가하는 언론 자유의 현실도 열악해졌습니다. 외신기자들의 객관적 기준으로 본 각종 지표도 내리막을 걸었으니 이게 대외신인도랄까 국격 같은 데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만무하죠. 정부는 심지어 일본 산케이신문 특파원의 추측성 전언 보도 한 구절을 문제삼아 큰 소송전(그것도 형사소송)을 벌였는데, 저자는 이 대목을 두고 "진영의 보-혁을 가리지 않는", 괘씸죄성 단정과 기분파 보복만이 횡행한, 예측 불허의 정책 기조가 낳은 난맥으로 진단합니다. 산케이신문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극우성향 매체임을 염두에 둔 분석입니다. 이 사건은 더군다나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며칠 전 정식 쟁송 쟁점으로 채택한 "세월호 7시간" 관련 보도가 그 원인이었기에 지금 돌아보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책은 이어서 종편 출범이 이뤄진 5년 전, 지난 대선 전후의 여러 사건, 현정부 출범 후 종편이 걸어온 길이나 크고작은 사건을 짚습니다. 종편은 출범 당시에도 특혜 논란을 빚었는데요. 특히 대선 국면에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응집시키는 역할을 크게 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요즘은 방송에 잘 안 나오는 분 중 박은주 부장의 발언 "형광등 100개"가 불러온 파장과 지금의 희화적 반향도 다시 언급하는군요. 다만 이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박 기자는 당시 박 후보의 부정확한 어법(주술 호응이 안 이뤄짐) 같은 걸 지적하며 기사에는 그 나름 소신을 담아 보도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까지 두루 지적하는 대목에서 이 책의 공정성 기준 일부를 엿볼 수 있네요.

"기울어진 운동장" 담론은 주로 진보성향의 논객, 전문가들이 자주 원용하는 프레임입니다. 저자께서도 지적하시는 것처럼, 운동장의 지평이 언제나 불공정하게 머무는 게 아니며, 야당이나 진보 진영에서 부지런히, 정확하게 아젠다를 추출, 선점하면 현명한 국민은 이에 바로 호응해 왔습니다. 저자는 오랜 세월 언론에 몸담아온 기자답게, 세칭 조중동에서도 얼마든지 현 정권이나 보수 진영에 비판적인 인사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지난 선거에서 문재인을 찍었다"고 고백한 동아일보 기자부터, "우리는 지금 빚을 내어 거대한 경로잔치를 벌일 뿐"이라고 개탄한 "종편 방송사 소속인(이렇게만 표기됐네요)"까지, 사리에 어긋나는 대목에서 대의에 분연히 공감하는 양심은 어디에서나 발견되기 마련입니다.

저자께서는 조선일보, TV조선 기자진들만의 경쟁력, 역량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를 아끼지 않습니다. "일단 사건이 터지면, 이슈와 아젠다를 선명히 정리하여 밀고나가는 건 우리가 최고다." "우리는 정치 세력이 아니라 시장만 보고 나가는 편이다." TV조선 엄성섭 앵커의 말을 인용한 이런 대목들은 사실 지난 시절부터 반대진영 언론매체에서도 인정해 온 부분입니다. 지금은 종이신문의 위력이 엄청 줄었지만, 한겨레신문 등에선 조선일보의 광고편집 센스가 예술이라면서, "이러니 (저들이) 돈을 벌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죠. 물론 여기서 언론기관의 소명이 상업적 기조에 있어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 거겠고요.

안민석 의원의 활동 이전에도, 미르 재단의 의혹에 대해선 이미 조선일보가 선제적 보도로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사실 불과 몇 달 전이지만 그간 사태가 너무 급박하게 변해 왔기 때문에, 손석희 사장의 jTBC 특종 말고는 우리가 다 잊어버렸음이나 마찬가지인데요. 그 시점에 송희영 논설위원이 대우조선 관련 비위 혐의로 사직하고, 조선일보는 해명 보도를 내고 하던 것도 다 우리가 이례적인 사건이라며 설왕설래하곤 했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굵직한 결과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치닫기까지 어떤 과정이 선행되었는지 차분하게 짚어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SBS CNBC 소속 김형민 PD는, 많은 네티즌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최순실 사태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수면위로 이처럼 떠오르게 한 일등 공신에 가깝습니다. (전 SBS 앵커인 김형민 부장과는 다른 분입니다) 해시태그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 준 사건이기도 했죠. jTBC는 이 무렵 정유라의 특혜 의혹을 정규뉴스 시간에 집중 거론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숱한 소문이나 스캔들 중 하나 정도로만 봐 넘기곤 했습니다. 이 책의 백미는 제2部부터 시작되는, 10월 7일부터 10월 26일까지의 숨막히듯 이어지는 연대기식 사건 정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국민은 무신경했지만, 날선 의식의 기자들과 정부 사이의 숨막히는 대결 양상은 치열하게 물밑에서 전개되었으며, 오직 진실을 향하려는 기자의 눈에 이 모든 "역사"가 소상히 캐치되었건 겁니다. 승부가 결정난 10월 26일에 과거 또 무슨 일이 있기도 했다는 건 국민 모두가 다 아는 바이겠습니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세기 중반 히틀러가 사고를 치기 전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자본주의- 공산주의 간의 한판 대결이 발발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공산진영의 독재자 스탈린과 미-영 진영이 손잡고 "Allied Forces"를 이루리라고는 아무도 점치지 못했습니다. 요즘도 unlikely ally(있을 법하지 않은 동맹)라는 말은 흔히 쓰곤 하죠. 저자는 미-영-소(蘇)를 한겨레, jTBC, 조선 측에 비유하기도 합니다(각각 매칭이 아니라는 건 따로 설명이 붙었습니다). 후반부에는 중국의 지난 항일 투쟁사에 비겨 "국공합작"이란 말도 나오네요.

1997년 대선이 끝나고 한참 후 한겨레신문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았던 쾌거인 정권 교체" 당시를 회고하며, 등장인물(대부분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경칭을 생략하고 한 편의 소설처럼 꾸민 형식으로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DJT연대를 촉진했던 배후의 일등 공신이었던 한광옥씨, 소장 국회의원 김민석 씨 등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여, 당시를 감격어리게 기억하는 독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었죠. 이 책 역시 역사의 바른 맥이 자리잡은 후, 그런 추억으로 남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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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
한시준 지음 / 역사공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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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을 보면 낙엽을 두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은유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쓸쓸히 거리를 구르며 누구의 눈에도 무력하고 처량해 보이는 늦가을자락의 한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한 한국문학사의 절창이겠는데요. 영토와 국민은 이민족에게 앗기고 집행 강제 수단이 없는 이름뿐인 "주권"만 대행하는 어느 피정복민의 망명단체라 해도 그 애상적인 감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의 망명 주권 행사도 이 같은 느낌인데, 하물며 근현대사와 직접 맞닿은 우리네 순국 선열의 사연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책은 3. 1운동 직전부터 해방까지 시기에, 주로 상해와 중경에서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들의 활약과 일생을 조망한 "열전" 과도 같은 성격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고 주요 외국들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보다 앞선 7월 17일에 헌법이 공포되었지만(제정은 그보다 며칠 이른 7월 12일), 헌법에서 지난 시절 많은 고초와 수난 속에 민족 자존의 끊긴 맥을 이어 온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에 대해서는 언급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행 헌법은 제9차 개정으로 탄생했습니다만, 이 9차 작업시에야 비로소 본문도 아닌 전문에 "임시 정부의 법통" 언급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남도 아니고 후손들이 그 피땀 어린 역사를 외면해 왔으니 그 죄과와 불민함이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늦게나마 학계 일각과 독서 대중 사이에서 임정 시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구체적인 성과도 나오는 건 만시지탄 속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보통,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3. 1운동의 성과로, 그로부터 한 달여 후인 4월 13일에 상해 임정이 수립되었다고들 합니다만, 민족의 자존과 자립을 위한 노력과 분투가 느닷 공지에서 솟을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시점상으로는 1919년 이전부터 여러 곳에서 꿈틀대던 선구자, 투사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조망하는데, 제1장에서 "정부의 기반을 마련한 지도자들"의 활약을 다룸이 그 방법론입니다. 이 장에서는 홍진, (현순), 그리고 누구라도 교과서에서 그 존명을 익혀 배웠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임정의 연대기(태동, 발전, 수난, 침체, 재기)에 맞춘 서술 편제라서, 인물들의 유년, 청년기나 기타 개인적 행적이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 내용들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출판사에서 펴내었거나 근간 예정인 "독립운동가들" 시리즈를 찾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자께서도 그런 평을 간단히 하시지만, "일반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인지도"의 지도자 홍진 선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제인물입니다. 우리 국사 교과서에도 "한성 정부" 사항이 주된 학습목표로 제시됩니다만, 그 한성 정부의 주도적 인물이 누구였는지는 잘 가르쳐지지 않는데, 홍진 선생은 (일제 강점, 강압의 직접적 타겟이었던) 서울(경성, 한성)에서 그 힘든 작업, 활동을 해내신 분이라 후손들이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한성 정부는 무엇보다 국내 활동의 성과물이라는 데에서 당시나 지금이나 주목받습니만, 책에 잘 정리되어 있듯 이후 노령 정부, 상해 정부, 미주나 하와이에 거주한 개별 거물 지도자들이 대립상을 보일 때 통합의 촉매, 명분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특유의 인품과 합리적인 사고 방식, 높은 식견 등으로, 통합 망명 정부 수립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실무와 정치적 교섭, 대화 주선, 알력 해소 등 여러 어려운 임무를 해내신 점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안도산의 경우 오늘날로 치면 "노동부장관" 역을 주로 촉탁받고 해당 직함을 유지하셨는데(명목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는 훨씬 많은 일을 떠맡으셨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죠), 이는 이보다 앞선 시기 조선땅에서 미주로 소위 노동이민을 떠난 이들을 현지에서 지도한 업적과 평판과 연관이 있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지도자연하며 덜 수고롭고 더 큰 명예가 따르는 영역에 몸담기는 쉬워도, 험한 일을 자청하며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몸소 이뤄내는 건 확고한 인품과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책의 장이 바뀌어, 임정이 온갖 진통 끝에 정식 출범한 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대통령, 국무령, 주석" 등 정식 직함을 지닌 역대 국가 원수들을 조명합니다. 다 알다시피 초대 대통령은 (임시 정부에서도) 우남 이승만인데, 저자는 "6개 정부에서 모두 추대된 인사는 이승만뿐"이었다며 최소한 1919년 당시만 해도 명망과 정치력으로 그를 능가할 만한 인사가 없었음을 지적합니다. 안도산도 일부 단체에서만 (그것도 장관급으로) 거명되었으며, 이동휘 같은 분은 노령(연해주 일대를 가리키며, 이 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아령[俄領]"도 러시아의 한자 가차명에서 유래한,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에서 조직을 갖춘 실력자였지만 그에 못 미치는 5군데에서 직책에 추천되었을 뿐입니다. 독자인 제 나름대로 그 배경을 분석하자면, 일단 서북이 아닌 기호 지방 출신인데다(분단 전 황해도는 서북이 아니며, 오히려 범수도권에 들어가죠), 전주 이씨의 확실한 족보를 지닌 명문가 출신, 번듯한 풍신의 귀족형 신분, 미국 명문대 학위 등이 그 주된 원인이었지 싶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도 나오듯 "민족 자결 주의"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우드로 윌슨의 "친구"라는 점이 모두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했겠죠. (미국식 기준을 적용한다 쳐도 "친구"까지는 아니며, 세대가 너무 다른데다 오히려 "은사-제자" 관계가 더 적당할 정도입니다). 안도산 역시 이승만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거세질 무렵에도 그의 이런 미국쪽 인맥을 고려하여 무마하려 애를 썼을 정도죠. 그가 사임한 후 2대 대통령을 맡은 분은 박은식 선생인데, 이 책에는 그가 과공이라 할 만큼 몸을 낮춰 이승만에게 쓴 서신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이로 보아도 16년이나 연상인 그가 "저"같은 1인칭 대명사를 쓴다든가(이 시절에는 "여[余]" 같은 중립적이거나 다소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1인칭 대명사가 자주 쓰였음은 이 책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의 "본인"과 비슷한 느낌이죠) 하는 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형성된 계급 서열 의식이 느껴져 좀 씁쓸한 맛이었습니다. 여튼, 이만큼이나 추앙받던 분이 이후 그처럼이나 왜곡되고 원성 듣는 길을 걸은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네요.

책에서도 누누이 지적되듯, 가뜩이나 영토와 국민을 갖지 못한 망명정부가 그나마 내분, 알력으로 "무정부 상태(책의 표현입니다)"에 자주 빠졌다는 게 읽으면서 매우 개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와중에도 모두의 비극을 막기 위해 화합형, 중재형 정치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어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더군요. 수반의 권한이 축소되고 이를 반영한 개헌이 이뤄진 후에는 "국무령"으로 명칭이 조정되는데, 여기서 책 맨처음에 굵직한 비중으로 다뤄진 홍진 선생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의 개명 사연은 제1장, 그리고 2장의 중반 등 여러 차례 비슷한 사연이 언급되는데요.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함자를 벼락 진(震)으로 고르신 건, 예컨대 대발해의 국명인 대진국이라든가, 우리 땅의 옛 이름 진단(震檀) 등을 염두에 두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 예 말고, 삼한 시대의 "진한"이라든가, 고조선과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정치 단위 "진"국 같은 건 한자가 달라서 지지 진(辰) 자를 씁니다.

우리는 소박한 상식으로,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를 거의 동의어로 취급합니다. 근현대사에 어두운 이들은, 이승만은 그저 미국에서 호강하고 나이만 먹다가 해방 후 밥숟갈만 얹은 파렴치한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튼 그런 상식이 자리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없지만도 않은 터라, 이 책의 중반 이후, 가장 큰 비중으로 서술되는 인물은 다름아닌 백범입니다. 책에서는 아무래도 "임시 정부"가 서술의 초점인 터라, 백범의 개인적(영웅적) 활동상보다는 임시 정부 안에서의 활동상에 보다 주목하는 편이네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백범의 재임기에는 "정부보다는 당(한국독립당. 줄여서 한독당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위의 원칙"이 여러 여건상 지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반드시 백범만의 노선은 아니라서, 예를 들어 위의 홍진 선생도 해외 활동보다 국내 유일당 형성 운동에 진력하러 상해를 떠난 것도 통일된 조직의 역량 강화가 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 때문인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지도자들이 대체로 공감한 대목 같습니다. 당과 정부의 이원적 관계라고 하면 대뜸 공산 체제가 떠오를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죠.

백범의 행적과 주장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철저한 자주적 정책 노선으로 펴는 독립운동"입니다. 이승만이 탄핵 당한 것도 직함 남용 등 개인적 일탈이나 "신탁 통치 청원" 등 비자주적 노선이 그 사유였는데, 백범은 이를 배격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장개석 정부에 그처럼 의존할 시절에도 "광복군이 연합군 자격이 아닌, 중국군에 예속되어야 한다"는 정책에 강력 반발하여, 앞으로는 중국 정부의 자금 원조를 받지 말자고 결의할 정도였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상해, 중경의 국민당 레짐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 이런 일화는 그간 소개가 드물었죠. 백범은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고도 긴 한숨을 내쉬며 "우리가 기여한 바 적으니 이후 발언권이 적을 게 걱정이다"라는 발언으로 위인전에까지 나오는 모습입니다. 시진핑이 작년에 飮水思源(음수사원)을 백범이 언급한 맥락이라며 기분 나쁜 소리를 한 적 있는데, 과연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나 하는 소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후손인 우리도 모르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망명정부는 강력한 활동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정책 수립 역할인 "이론가"와 "무장 투쟁 사령관"들이 또 필수입니다. 이 책 3장과 4장은 이분들을 각각 주제로 다룹니다. 이분들이 등장할 무렵이면 임시정부의 활동 반경은 대개 중국과 만주(현 둥베이) 등으로 제약되는데, 삼균주의로 유명한 조소앙 선생과 신익희 선생은 "내외 관계(원래는 부부를 일컫는 말이죠)"로 불릴 만큼 정부 안에서 내무, 외부 담당 장관역으로 맹활약했습니다. 신익희 선생의 존영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당직회의실에도 걸려 있는데, 이는 민주화 운동의 먼 명맥이 곧 독립운동에 닿아 있음을 표방한 의도라 하겠습니다.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활약상은 왜 중점적으로 언급이 안 될까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겠는데요. 이분들은 주된 활동시기가 임정과 연관을 맺은 활약, 시점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선과 연대기에 초점이 놓여 있고,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노선을 커버하는 목적이 아닙니다(팔로군 설명이 길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죠). 책에는 대신 우리가 그간 공부를 게을리한 "황학수 장군"의 무공과 활약상이 이청천 장군의 업적과 함께 제시되어서, 무장 독립 운동 중에서도 "광복군"의 의의, 공헌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파악됩니다.

아무래도 사료에 충실한 분석이다 보니 고어, 사어, 문어투가 자주 등장합니다. "난"은 현대 주격 조사 "는"으로 새기면 되겠고, "쥬의", "죠선' 등은 아직 단모음화가 이뤄지기 전 혼란스러운 표기, 음운 현상의 흔적입니다. 각지의 임시 정부 "주권자 3인"이 모여 과두정을 이루자 같은 문장에서는 아직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음이 엿보입니다(그때나 지금이나 주권자는 국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이죠). 책에는 후주와 각주가 동시에 세밀히 배치되었는데, 후주들도 그저 출처 언급만 담은 게 아니며, 대한 제국 당시 군인들의 계급 명칭 같은 게 정리된 항목도 있으니 앞으로 뒤로 넘겨가면서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하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2년 전 상해와 홍콩 증시가 서로 완전연동이 이뤄졌을 때 이걸 扈港通(후강통)이라 부르지 않았습니까? 상해(상하이)를 대표하는 글자가 "호(扈, 북경어 발음으로 '후')"인데, 이 책에도 마치 재미교포, 재일교포 할 때처럼 "재호인"이라든가, 내한(=방한)이라고 할 때처럼 "내호"라는 말을 일상어처럼 쓴 기록이 자주 인용됩니다.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게 상해 프랑스 조계에 위치한 "김신부로"입니다. 프랑스 가톨릭 사제인데 중국식 성씨가 金이었던 까닭입니다. 불어로는 "루뜨 뻬르 로베르"죠. 이 주소는 바로 상해 임정 소재와 관련이 있어 우리가 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포와급미주"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급(及)은 우리말의 연결격 조사 "와, 과"와 같습니다. 미주는 물론 아메리카 주, 그 중에서도 미국을 가리키며, "포와"는 하와이의 가차 표기입니다. 이 책에서 자주는 안 나오지만 박용만 선생 등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흔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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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4차 산업혁명의 미래 - 전 세계를 뒤흔드는 위기와 기회
미래전략정책연구원 지음 / 일상이상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4차 산업 혁명이 대체 뭐길래 이처럼 야단들이지? 궁금하거나 때로 불안하긴 한데 어딜 참고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 분들은, 딱 한 권으로 단시간에 현황을 파악하고 싶을 때 이 책을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입문자에게 최적화한, 현상적 급변상과 각 산업별 최우선 순위 과제, 가장 도드라진 트렌드가 망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항들은 과감히 생략되었고, 매우 평이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쓰여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편집이 뛰어나서 선이해가 부족한 독자들도 쉽게 접근하고, 내용 파악이 한눈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말, 개념, 공감대, 컨센서스가 이정도나마 실체를 갖추기 전에도, 글로벌 경제는 이미 끝없는 혁신과 변혁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투병 중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최초 대중서가 대략 3년 전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었는데요, 그 당시라면 아직은 한국에 "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가 일상화되지 않았을 무렵입니다. 헌데 이미 그때부터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심지어 종래의 좋은 선례조차 도움보다는 방해가 될 뿐이니 일체의 토대를 파괴한다는 기조로 임하는 혁신이라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위기의식, 각성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 책 역시, "아무리 늦잡아도 십 년 후면, 세상에는 익숙히 여겨 왔던 모습이 단 하나도 제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란 살벌한 경고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단히 온건하고 단정한(?) 품으로, 잘 정돈된 정보와 주장을 독자에게 PT해 주는 편인데, 이런 책에서조차 그 담은 핵심 주장은 "모두 다 바뀐다. 남아나는 게 없다"이니, 현황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이란 제목과 컨텐츠 속의 키워드를 보고서 아 경제 관련 서적이구나, 나하고는 별 관련이 없겠는걸 하며 뒤로 밀어놓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와 경각심을 다져 온 이들보다, 이런 분들이 더 먼저 꺼내들어야 할 게 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배려에서 비롯한 편집, 혹은 내용 편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1장에서 기후 변화 등 인류 전반이 처한 환경적 조건의 실태, 셰일 가스 혁명 등 4차 산혁과 직접 관계는 없는 여러 중요 사건, 트렌드 등도 짚으면서 시작합니다. 어차피 4차 산업 혁명이 인위적으로 특정 집단에 의해 촉발된 흐름도 아니고, 의도치 않았던 여러 흐름이 합류하여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 변혁이 세계를 휩쓰는 것인 만큼,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는 목적에서 이런 거시적 전망으로 주제를 고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 협약은 시대의 대세이지만(이런 관점에서, 트럼프 등 일부 정치인과 산업계의 움직임을 비판합니다), 반면 셰일가스 개발이 식수난, 환경 오염 등의 장기적 원인이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더군요. 이 책이 이 토픽을 책 처음에 배치한 데 대해서는, 원자재 가격 하락이라는 작금의 한 거대한 대세를 짚으려는 의도가 있었겠습니다.

트럼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책의 출간 시점에선 아직 미 대선 결과가 확정 발표가 안 되었었나 봅니다. 서문에서 박경식 원장께서는 미 대통령 당선인들이 언제나 보고(報告) 받는 <NIC 글로벌트렌드 20XX(연도는 당연히 매번 달라지죠)>를 거론하시는데, 전체로서 이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선사되는 "성의 있고 유익한 보고서"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도 아닌데 이런 내실 있는 정보, 리포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입수할 수 있는 것도, 지난 시대의 "산업 혁명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기고 간 그 혜택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 힘들다고 너무 불평할 게 아니라, 분명 세상의 진보, 변혁으로부터 우리가 혜택을 입는 바가 더 큰 것입니다. 아니라면 아마 문명의 종말이 먼저였겠죠.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야말로 4차 산업 혁명에 가장 취약하다며, 이런 점에서 한국은 "준비가 그리 잘 된 나라라고 볼 수 없다"는 게 클라우스 슈밥(한국에서 4차 산혁의 전도사처럼 인식되는 학자, 저술가)과 다른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반면 이 트렌드를 현재 선도해 가는 듯 보이는 독일의 경우 숱한 강소기업, 소위 "히든 챔피언"들이 잔뜩 포진했다는 게 과연 그래서 리더로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유지요. 사실 전(全) 역사를 통틀어 이런 경제구조의 특성을 언제나 유지해 온 게 다름아닌 대만인데, 최근 정치적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드디어 빛을 볼 만한 시점에서 주춤한다는 게 제3자 눈으로도 안타까운 점입니다. 물론 이 책 중에는 예컨대 일본의 샤프 전자 같은 기업을 인수하기도 하는 등 그 나름 적극적으로 4차 산혁에 대비하는 대만 산업계의 현실도 일부 조명됩니다.

한국 대기업은 그럼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을 운명이면서도 대책 없이 현상에 안주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나서 많은 투자자들이 불안해하자 후계자는 기민히 대응하여 "전자 못지 않게 차세대 주력으로 바이오시뮬레이션을 키우겠다"는 발표를 이미 3년도 전에 대외적으로 천명했는데, 갤럭시노트 7 사태도 있었지만(이 책에도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대체로 삼성은 학계와 업계의 첨단 전망을 조기에 입수, 이해, 정리, 적응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제 나온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각종 악재(노트 발화, 최순실 등)에 겹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삼전의 주가는 승승장구 중입니다. 섣부른 루머쟁이들의 말대로였으면 벌써 도산을 해도 시원찮았을 텐데요. 돈은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진리라서, 삼성의 미래는 좀처럼 위기에 휩싸일 것 같지 않습니다.

책은 대체로 한국 대기업들의 대처 자세에 대해 후하지까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며, 최소한 이런 노력을 한다 정도는 상세히 소개하는 편입니다. 물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데, 중소기업과의 상생적 협력이 전폭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체 역량 발휘에도 곧 한계를 맞을 뿐 아니라, 클라우스 슈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4차 산업혁명 본질과 대세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죠. 실제로 4차 산혁에서 기업은 배제보다는 공생, 공유, 협업을 일궈 나가야 오히려 생존이 가능한데,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 트렌드가 컨센서스를 얻기 전에도 일부 선구자들의 혜안에 의해 일찌감치 지적되었던 사항입니다. 다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널리 보급하려 애쓰는 건 좀 다른 전략적 견지에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한진해운, 현대중공업 등이 지난 십년기 그 좋았던 호황을 뒤로 한 채 실업자 대거 양산 등 처참한 몰락을 겪고 있음은 지금 우리가 다 보는 대로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놓고도 "4차 산업 혁명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재래 직종의 대거 퇴장, 사멸"의 일환으로 파악하시는데, 사실 여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편입니다. 대량 실직이 물론 4차 산혁의 불가피한 부작용 중의 하나이긴 합니다만, 저 기업들의 저런 문제는 경영진의 역량 문제라든가, 사태를 안이하게 본 노조 등 해당 기업 자체의 원인 이 더 큰 비중이 아닐지요. 현재 조선 해운업계 전체가 불황이고 급격한 구조 조정이 이뤄지고는 있습니다만 이는 이 업종이 태생적으로 겪곤 하던 경기연동적 이벤트에 가까우며, 이 과정을 잘 치러 낸 기업은 다음 호황기에 큰 재미를 보는 게 여태 지나 온 패턴이었습니다.

AI가 특수 기능에 한정된 "기계"가 아니라 진정 "지능"에 가까운 범용의 tool로 자리잡으려면(이게 단지 기능성의 제고 때문이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 호환이 가능해야 시장성이 생기지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 책에서도 IBM 왓슨의 예를 드는데, 현재 에어버스 등에서 항공기 정비 기능을 맡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부품들의 노후도를 체크하는 등 숙련공보다 더 정확하고 빠른 완성도, 능률을 보인다는군요. 하지만 이는 문제를 좀 단순화한 감이 있습니다. 보잉 혹은 항공운송사 등이 "전면적으로" 왓슨을 채택하지 않는 건 다 그 나름의 이유, 한계가 있어서이죠. 물론 이 분야의 성능과 신뢰도는 앞으로 급격한 개선을 보일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범용이 아니면 그건 지능이 아닌데, 왓슨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일부 은행에서 투자 업무의 일부를 이미 전담하고도 있습니다.

대한항공 노조가 어제 파업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셨을 겁니다. 뭐 우리나라엔 많은 국내외의 항공사가 노선 취항 중이니 걱정할 건 없지만, 여튼 대한항공 노사관계가 다른 회사에 비해 매우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우려를 낳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는데(함부로 거론하기 민감한), 그 중에는 승무원, 조종사의 기여분에 대해 노와 사가 인식하는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게 있습니다. 사측의 경우, 이미 자동 항법 장치가 조종사 업무 대부분을 대체하며, 이에 비해 조종사측이 주장하는 기여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이 책에서도 이와 관련, "자율주행에서 혹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를 의미심장하게 거론하고 있습니다. 노조 측의 주장을 제가 구태여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게, 위 이 한 문장(관련이 없어 보이십니까?)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저 기술만능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첨단 트렌드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도 짚어 주는 게 이 책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구글이 내세우는 "딥 러닝"의 전략 목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입력한 정보의 충실한 응용, 연산, 혹은 약간 정도의 재생산이 아니라, "자발적, 자체적 학습을 통한 정보의 창조"에까지 다다르겠다는 거죠. 사실 "지능"이라 불릴 정도라면 이런 자격을 갖춰야 하고, 업계나 학계, 일반 소비자 중 눈높은 이들의 수요와 니즈를 충족시키려면 당연 이만큼의 눈높이를 지향해야 한다는 걸 구글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제가 의구심을 갖는 건, 그저 정보를 대량으로 입력하고, 신경망이라 불릴 정도의 정교한 회로 개선이 이뤄져도, 그게 양적인 면에서의 개선, 물량 공세이지 질적인 도약이 가능하겠냐는 점입니다. 양이 질을 대체한다는 건 유물론적, 기계론적 관점인데, 이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기가 주저되는 게 인문적 사고의 부인할 수 없는 조심성, 기질입니다. 이는 과학 vs (협의의) 인문 같은 게 아니라, 양 vs 질 혹은 물질 vs 정신 프레임으로 봐야 하죠. 구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엄밀히 말해 과학 단계가 아닌 엔지니어링의 치밀한 구축으로 기초과학의 성과를 대신하겠다는 포부이기 때문에, 여태 그런 식으로 질적 도약을 이룬 적 없는 인류의 역사 과정에 비추어서도 회의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4차 산업 혁명 트렌드보다는, 언어학과 뇌신경과학 분야의 천재들이 어떻게 하든 협업을 이뤄내어, 이론적 규명이 말끔히 이뤄진 후에야 의미 있는 성과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통역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서는 처음 "통역사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라고 하다가, 논의의 말미에선 "십 년 안에 AI는 각국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서도 마스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이유의 반론이 가능합니다. 시간만 지나도 현저한 기술적 개량이 가능한 건 반도체 회로 집적 등 일부 분야에서나 가능할 뿐입니다. 하나 유의해야 할 건, 일자리를 잃는 게 과연 누구냐는 거죠. 이 책의 결론은, 책 중 한 문장만 (구태여) 콕 찍어서 정리하자면, "스마트하게 일 못 하는 사람은 모두 밀려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자기 분야에 애착을 갖고 자기 일처럼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란 뜻도 됩니다. 업무 시간에 딴청피우는 자, 사장에 대해 원망과 탓질이 몸에 밴 자가, 4차 산업 혁명의 도도한 물결에서 첫번째 타깃이 됨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고용주에 대해 기계적 충성을 바치자는 게 아니라, 내 일이 정말 내 일이라 여기고 내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성실성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논의가 마무리된 후, 별개의 레이아웃으로 "본질이 무엇인지" 리포트 형식으로 정리를 잘 해뒀다는 점입니다. 책 자체가 정리, 요약의 미덕을 잘 발휘하는데, 그로도 부족해서 정리 끝에 또 정리를 해뒀으니 독자로서 참 편하게 읽힙니다. "리쇼어링"과 "글로벌 현지 기지의 확충(타국 도시에의 본사 거점 구축)"이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의 말도 들었는데요, 그건 지적하는 초점이 서로 다른 겁니다. "리쇼어링"은 생산 기지, 자원 조달의 문제이고, 후자는 IT 편의나 세제 혜택 등에 중점을 둔 논의죠. 책에서는 상하이나 뭄바이를 들지만, 송도국제도시라든가 새만금도 이 시장을 노리고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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